이번 호를 읽으면서 편견에 대해 생각했다. 편견은 곧 가짜뉴스가 판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들을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43쪽)고 가짜 뉴스에 관한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선택을 강화하는 쪽의 글들을 읽는다. 자기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래, 그랬지 하면서.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면서, 다른 생각은 아예 듣질 않으려고 한다. 듣고, 잘못을 이야기하지 않고, 또는 비판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귀를 닫고 만다. 


  닫힌 귀... 이런 닫힌 귀들이 많은 세상에선 가짜 뉴스가 판치게 된다. '가짜뉴스는 가짜라서 성공하는 게 아니다. 뉴스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을 때만 성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은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세력에 대한 나쁜 뉴스는 필터링 없이 받아들인다.' (43쪽)


남 이야기 같은가? 아니다. 바로 우리 얘기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맞는 이야기는 잘 받아들이면서도 우리의 필요와 거리가 먼 이야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귀가 두 개인데, 이상하게도 한 쪽 귀만 있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니 말과 말이 부딪혀 진실로 향하지 않고, 한쪽 말이 아예 나오지 못하게 막는다. 일방적이다. 그러니 가짜뉴스가 활동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다.


[빅이슈]를 읽는 이유는 어쩌면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일지도 모른다. 내가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세계를 [빅이슈]를 통해서 만나게 되니까.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연예인처럼 화려한 세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빅이슈판매원처럼 결코 화려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을 함께 만날 수 있으니까.


고급스러운 음식에 대한 소개도 만날 수 있고, 하루 한끼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은 노숙인들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또 환경을 생각하며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이렇게 [빅이슈]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서 좋다. 다양한 삶들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빅이슈]와 같은 역할을 하는 매체들이 많아진다면 가짜뉴스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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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김동식 소설집 2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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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소설은 허무맹랑하다고 할 수 있다. 혹평을 하자면 그렇다. 허무맹랑.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 괴력난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옛날 이야기에서 귀신 이야기가 참 많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을 이야기를 통해서 이루는 경우, 또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다. 사람들 욕망을 드러내는 소재로 도깨비를 활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김동식 소설은 바로 그런 옛날 이야기와 연결이 된다. 허무맹랑이나 괴력난신이라고 비판만 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바로 우리들이 감추고 있는 욕망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김동식 소설 역시 우리들이 감추고 있던, 또는 크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욕망들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준다.


특히 옛날 도깨비에 해당하는 요괴를 통해서. 요괴는 결국 우리들이 욕망의 결집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요괴들이 소설에 많이 등장하는데...


소설은 아주 짧다. 짧아서 읽기에 편하다. 그냥 별다른 생각없이 읽을 수도 있다. 환상적인 이야기 아닌가. 그럼에도 읽은 다음에는 마음 한 켠에서 어떤 의문이 일어난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지닌 욕망이 이렇게 발현될 수 있음을 소설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젊음에 대한 욕구, 돈에 대한 욕구,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 건강에 대한 욕구 등등. 그렇다고 이런 욕구들을 다 충족시키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이런 욕구, 욕망들이 다 실현되는 사회가 과연 행복한 사회일까?


어쩌면 그런 욕구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편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소설집 제목이 된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를 보아도 그렇다. 이 요괴는 약하다.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그는 사람을 먹을 뿐이다. 먹는다? 다른 말로 하면 다시 태어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상태로 사람을 돌려놓기 때문이다. 젊음에 대한 욕망. 그런 욕망때문에 사람들을 요괴를 보호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사람들의 욕망이 요괴를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에서 가장 강한 요괴로 바꾸어 놓는다. 


부작용이 발생하고 만 명 당 한 명이 죽어나가도, 오천 명 당 한 명이 죽어나가도, 또 천 명 당 한 명이 죽어나가도, 이렇게 점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확률이 높아져도 사람들은 젊음에 대한 욕구를 버리지 못한다. 


욕망 앞에서 눈 멀어 버리는 사람들의 모습. 이 소설집에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편하게 읽히는 이 소설에서 우리는 무언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풍자 개그를 보면서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듯이, 이 소설집을 통해서 감춰진, 또는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들 욕망을 요괴를 통해 마주하게 되면서, 우리는 우리들 삶에 대해, 욕망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일, 또는 잘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여주는 일, 소설가가 하는 일이고, 그것을 소설을 통해서 하게 되는데, 이 소설집은 그런 면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결코 허무맹랑한 소설이 아니고, 괴력난신에 해당하는 소설이 아니다.


우리 사회, 우리 욕망에 관한 여러 편의 풍자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도깨비를 통해서 옛날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했듯이, 김동식은 요괴를 통해서 현대인들의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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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25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 종교학이나 민속학 책인줄 알았는데 풍자소설이었군요^^
도꺠비 소재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혹하게 하는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개 감사드립니다

kinye91 2022-07-25 16:56   좋아요 0 | URL
김동식 소설은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여행하는 곳.

  낯선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

  이제는 낯선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낯선 언어를 만나 생소함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런 제주도에는 볼거리만큼이나 아픈 역사도 있다. 아픈 역사만큼이나 가족이 겪은 비극도 많다. 또한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겪은 고통도 있고.


  단순히 관광으로 끝날 섬이 아니다. 그런 제주도를 아우를 수 있어야 제주도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곳. 제주도. 이 청소년 시집에는 제주의 이 모든 것이 다 녹아들어가 있다.


제주도 소년과 소녀가 느끼는 감정, 그리고 제주가 겪은 역사. 제주의 자연 등등. 이 시집에는 다양한 제주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해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시인이 해녀의 딸이라고 해서 그런지, 해녀의 생활이 시에 많은 편인데, 바다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배를 타고 멀리 나간다. 생계를 위해서.


이런 저런 제주도의 모습을,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를 통해 만나다가, 제주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폐를 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에서 만나고는 씁쓸해지기도 했다.


시인은 이런 시를 통해서 사람들이 제주도에 와서 제주도의 본 모습을 체험해야지, 오로지 자신들의 관점에서 제주도를 이해하고 행동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관광객들이 현지인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인식도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를 통해서 그것을 보여주고 있으니 우리들의 행태를 살펴봐야 한다.


 올레길은 돌아서


길은 주인이 없다지만

동네에선 널어놓은 깨가 먼저고

귤 실은 트럭이 먼저고

지팡이 짚은 할머니가 먼저고

아기 업은 엄마가 먼저라서

친구들과 우르르

올레길에 몰려다니다가도

한쪽으로 비켜서는데

길마나 코스 이름 번호 붙더니

전세 버스 타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리는 

트럭도 막아서고

지팡이도 막아서고

우는 아기 막아선 줄도 모르고

널어놓은 깨를 툭툭 치며

즐거워한다

이젠 심부름 갈 때

올레길은 돌아서 간다


허유미. 우리 어멍은 해녀. 창비교육 2020년 초판 2쇄. 75쪽,


이런 제주도의 모습, 우리가 원하는 모습 아니던가. 올레길이 무엇인가. 그 지방의 모습을 체험하면서 걷는 길 아닌가. 그러니 그곳의 풍습을 해치지 않고 걸어야 하는데, 걸으면서 자신들 멋대로 행동하면 어떻겠는가.


그렇게 하면 '온몸에 힘을 주고'(80-81쪽)이란 시에 나오는 문어와 같이 제주도를 대하는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다.


'갯바위에 달라붙은 문어를' 맨 손으로 떼려는 사람들. 하이힐로 문어 다리를 찍는 사람들, 문어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제주도를 제대로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 아닌가.


청소년시집을 통해서 여행은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가 자주 가고 또 가고 싶어하는 제주도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하는 시이기도 하다.


어쩌면 제주도는 지금 이 시에 나오는 '다리가 너덜너덜해지도록 관광객을 받아 낸 문어 / 바다 한 귀퉁이도 너덜너덜하다'(81쪽)는 표현처럼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하는 사람, 이 시집을 한번 읽고 가면 좋겠다. 제주도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처럼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지 않고, 가려져 있는 제주도를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시집이 바로 이 시집이다.


꼭 제주도만이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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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7-23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계속 올려주시는 청소년시집 참고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kinye91 2022-07-24 07: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청소년시집을 통해 잊고 또는 잃고 있었던 마음을 다시 찾기도 해요.
 

  "으르렁, 으르렁"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고 나오는 소리다.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담은 소리다. 머리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심장에서 나온 소리다.


  가식이 없다. 꾸밈이 없으니, 솔직하다. 솔직하기 때문에 한 순간에 불꽃이 일기도 하고, 금방 식어버리기도 한다.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


  특히 사랑에서는 더욱 그렇다. 감정을 따른다. 아니, 감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내 심장이, 내 몸을 움직인다. 


시집에 첫번째로 실린 시 '심장으로 걸어 볼래'에서 말하고 있다. '오늘부턴 좀 멋지게 걸어 볼래'라고... 멋지게 걷는 일, 그것은 바로 심장으로 걷는 일이다. 그래서 '심장으로 걸어 볼래'라 하고 있다.


이런 사랑은 자신의 모두를 걸고 있다. 그때는 전부다. 그것 말고는 없다. 그러므로 무엇을 해도 사랑을 벗어날 수 없다. 이 시집에 단 한 번 '춘향'이가 나오는데, 그 춘향이가 햄버거와 함께 나오는 점이 현대시라고 할 수 있지만, 춘향이가 누군가.


사랑에 전존재를 건 사람 아닌가.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오로지 사랑으로, 사랑에게 전력질주한 여인 아니던가. 그런 춘향이가 바로 청소년 아닌가. 이팔청춘.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춘향이의 사랑은 죄일 수 있다. 특히 변사또처럼 기득권을 대변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은 죄다. 자신이 허락하지 않은 사랑은 더더구나. 


과연 사랑이 죄일까? 청소년의 사랑이 죄일까? 죄가 아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를 인용하자. 사람이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죄다. 원죄다. 우리는 원죄를 안고 태어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불교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윤회의 업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 자체가 죄라면, 사랑은 당연히 죄다. 그런데 이 사랑은 죄를 벗어나게 해주는 죄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사랑이라는 죄를 지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득시글한 사회.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불행한 사회다.


청소년시집이라고 하지만, 이 시집에는 그야말로 '사랑'의 난장판이 펼쳐지고 있다. 시집 곳곳에서 '으르렁, 으르렁' 소리가 들리고 있다.


살아 있다. 살아 있는 그런 소리들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죄의 발견'이란 시.


죄의 발견


열일곱 살이 되고 나니 / 놀라운 일이 한두 가지가 / 아니다 가장 놀라운 일은

사랑을 발견하는 일, 그깟 일이 / 뭐라고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 너는 누구나 인생은 초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 아마추어 / 참 놀라운 일이다 / 사랑을 발견하는 일이 

곧 죄의 발견과 맞물려 있다는 / 사실 그러니까 그 애를 / 사랑하게 된 뒤 알았다 나는

괴물이 되었다는 걸 다행이라면 / 아름다운 괴물이란 사실 / 한순간 사랑이 바닥났다는 걸

열부 났네, 하고 비웃는 / 너 또한 아마추어 / 그 애에게 다 주고 남은

사랑이 없는 나는 걸핏하면 / 으르렁대지 선생님도 / 눈에 뵈질 않지 / 고아였으면 싶었지

그러니까 나도 / 아마추어 / 그러나 나는 결심했지 / 프로가 되기로, 그 애에게

몽땅 바친 사랑을 누룽지처럼 / 조금씩 훔치기로 했지 / 부모님과 선생님께 조금씩

나눠 주고 옆집 개에게도 / 아량을 베풀기로 했지 / 참 놀라운 일이다

사랑을 꺼내는 열쇠가 / 죄라는 건 죄를 꺼내는 열쇠가 / 사랑이라는 거짓말 같은

사실은,


김륭. 사랑이 으르렁, 창비교육. 2019년. 113-115쪽.

 

이 시를 읽어보라. 청소년에게 사랑을 하라고 하고 싶지 않은가. 청소년들이 사랑에 자신을 걸어봐야 그 사랑이 다른 사람, 다른 존재에게도 갈 수 있다.


온몸, 온마음을 바쳐 사랑에 빠진 경험이 없는 사람, 아마추어다. 그 사랑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사람도 아마추어다.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한 사람에게만 빠져보았던 죄를 경험했던 사람이 프로가 된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청소년기에는 '심장으로 걸어' 봐야 하고, 사랑이라는 죄에 빠져봐야 한다. 


그래, 우리 청소년들이 마음껏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그것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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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7-23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몹시 관심이 가는 시집이예요
읽어봐야겠어요.^^

kinye91 2022-07-24 07:44   좋아요 0 | URL
마음에 와 닿는 시들이 많아서 좋아요. 청소년들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성공한 사람 - 교유서가 소설
김종광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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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소설 하면 이문구가 떠오른다. 충청도 농촌을 배경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던 작가. 그런데 지금 농촌이라고 하는 곳이 있을까? 이문구가 소설로 쓴 농촌은 이미 해체되기 시작한 농촌이었다.


산업화라는 명목으로,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 농촌은 농촌으로 남아서는 안 되었다. 농촌은 도시를 지탱해주는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곳, 그것도 값싼 외국산 농산물에 밀려 돈이 되는 몇몇 작물, 축산업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논농사를 지어도 수익이 남지 않는, 쌀값이 터무니없이 낮아진 상태로 수십 년을 지내와야 하는 곳으로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은 갈수록 줄었고, 소농이라는 개념은 전문서적에나 존재하는 말이 되었다. 기업농이 존재하기엔 농토가 적었고, 소농들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기엔 농사를 짓는 사람도 적었고, 먹고 살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돈이 되는, 소위 환금작물을 재배해도 때에 따라서 흥망이 갈리곤 했으니, 농촌은 농촌의 특징을 살린 채 존재하기는 힘들어졌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보상을 해준다는, 소위 농사짓지 말라는 정책이 실시되기도 했으니...


농촌소설이라는 말도 존재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이문구가 소설로 썼던 농촌은 이제 과거의 농촌이다. 하지만 농촌이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다. 휴대전화 없이는 살 수 있어도(적어도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 식량 없이는 살 수는 없다. 식량 안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없어져서는 안 될 곳이 농촌이지만, 여전히 농촌은 사라져가고 있다. 아이들 울음 소리를 듣지 못한 농촌이 많다고 하니 말이다. 농촌이라는 말로 시골을 대표했다면, 이젠 농촌이든, 어촌이든, 산촌이든 다 시골이라는 말로 통용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시골이다. 도시가 아닌 곳. 사람들이 떠나가는 곳. 돌아오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많은 곳. 귀촌이라고 하지만, 소수일뿐이고, 대부분은 도시로, 도시로 나간다.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월등히 많은 곳. 그곳이 바로 시골이다. 


김종광은 바로 이런 시골을 배경으로, 시골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그는 농촌소설이라고 하지 않고, 시골소설이라고 한다. (350쪽)


농촌이라는 말로 국한시키기보다는 농촌, 어촌, 산촌을 아우르는 말로 시골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리라. 그리고 도시 사람들에게 도시가 아닌 모든 곳은 다 시골이다. 


시골소설이란 표현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시골소설에 11편의 소설이 실렸다.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이 겹치곤 한다. 하긴 시골에 사람들이 많지도 않으니, 소설 속에서 이 인물들이 다양한 사건을 일으킬 수밖에 없으리라.


그럼에도 시골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퇴색적인 분위기는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소설의 배경인 시골은 낙후되어 있다. 노인들만 득시글댄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보일러를 설치하면서, 제대로 수리도 하지 않는 모습도 나타나고, 종합병원이라고 있어도 노인들 건강을 세심하게 살피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는 모습도 나타난다.


조류독감이다 구제역이다 하면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가축들을 도살하라는 판에 박힌 정책도 나와 우리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장면이 제법 있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시골소설에서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미소를 띨 수도 있지만, 이들의 신산한 삶, 그리고 조만간 사라질 삶들이 무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물론 전체적으로 이 소설집은 무겁지 않다. 무거운 분위기도 가볍게, 웃음을 유발하는 해학적인 장면이 많다. 이장 선거를 주요 사건으로 삼고 있는 '여성 이장 탄생기'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우리나라 정치 현장을 풍자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골마을에서도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살아야 하는 까닭'에서는 시골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는 교육이 얼마나 형식적이고 가식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작 시골 사람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하지도 못하고(할 수도 없다. 시골 사람들이 면사무소, 또는 군청, 시청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교육해야 한다. 그들은 시골살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농사도 모르는 사람들이 공문에 의거해서 농사 교육을 한다? 우스운 꼴이다), 형식적인 교육으로 서류만 채우는 모습. 그런 형식에 갇힌 공무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시골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으리라. 살려고 오는 사람이 없으니... 기껏해야 별장을 짓고 가끔 쉬러 오는 곳이 될 수도 있으니.


그런에도 그렇게 되기까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산다. 그들은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견디지 못한다. 몸이 아파도 일을 한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간다.


그런 시골 사람들의 모습, 이 소설집에 잘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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