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이는 물결 - 작가, 독자, 상상력에 대하여
어슐러 K. 르 귄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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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이 쓴 에세이 선집이다. 많은 글들이 있다. 글 한편 한편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만큼 글에 깊이가 있다. 깊이 내려가 글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제목에 대해 생각에 본다. 마음에 이는 물결이라? 참 마음에 드는 제목이다. 글은 마음에 이는 물결이어야 한다. 마음을 일게 하지 않으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마음을 일게 한다는 마음을 울린다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을 울리는 글은 내 마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도 울리는 글이고, 그런 글들이 마음과 마음을 울림으로 연결시켜준다.  좋은 글이다.


마음을 울린다는 면에서 보면 르 귄이 쓴 소설도 좋지만, 에세이도 좋다. 여러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그 중에 이 책의 제목과 연결되는 글들이 후반부에 나온다. 아니, 후반부뿐만이 아니라 도처에서 나온다. 그것이 르 귄이 글을 쓰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목이 된 말은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따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몇몇 작가의 작품을 꼭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는 이미 읽은 책도 있지만, 다시 읽고 싶어진다. 또 뒤로 미뤄두었던 소설들을 찾아 읽고 싶어지기도 하고. 그만큼 르 귄이 쓴 이 책은 마음을 울린다. 다른 책들과 공명(共鳴)하게 한다.


우선 작가를 중심에 두면 작가가 어떻게 글을 쓰는가에서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가 말하는 '길들이기'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 길들이기가 무엇인가. 바로 기다림이다. 상대에게 곧장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천천히 스며드는 것. 그리고 책임지는 것. 


울프는 이를 마음에 이는 물결이라고 했다고 한다. 마음에 이는 물결을 통해 단어가 나오고, 그 단어들을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서는 안된다. 또 다른 '길들이기'다. 르 귄의 말을 인용한다.


'기억과 경험 아래에, 상상과 창조 아래에, 울프의 말처럼 단어 아래에 리듬이 있고, 기억과 상상력과 단어는 모두 그 리듬에 맞춰 움직인다. 작가가 할 일은 그 리듬이 느껴질 만큼 깊이 내려가서 리듬을 찾아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다. 그 리듬이 기억과 상상력을 움직여 단어를 찾아내게 가만히 가두는 것이다. ...울프는 그것을 마음에 이는 물결이라고 부른다.' (462쪽)


'울프의 이미지는.... 그녀가 생각한 물결은 파도다. 조용하고 매끄럽게 바다 위를 1천 킬로미터 넘게 가로질러 와서 해안에 철썩 부서지는 파도. 파도가 부서져 날아오르면서 단어라는 거품이 된다. 그러니 그 파도, 일정한 박자의 충격은 단어 이전에 존재하며, "단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작가가 할 일은 그 파도를 알아보는 것이다. 저 멀리 바다에서, 마음이라는 대양 저편에서 조용히 부풀어 오르는 파도를 알아보고 해안까지 따라오는 것이다. 해안에서 파도는 단어를 변화시키거나 스스로 단어가 되어 품고 있던 이야기를 내려놓고, 자신의 이미지를 토해내고, 비밀을 쏟아낼 수 있다. 그러고는 이야기의 대양으로 스르르 다시 물러간다.' (462-463쪽)


산문과 시, 모든 예술, 음악, 춤은 우리 몸, 우리 존재, 이 세상의 몸과 존재가 지닌 심오한 리듬에서 솟아나 그 리듬과 함께 움직인다. 물리학자가 읽는 우주는 아주 다양한 진폭의 진동,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술은 그 리듬을 따라가며 표현한다. 일단 올바른 박자를 찾기만 하면, 우리의 아이디어와 단어가 그 리듬에 맞춰 춤춘다. 누구나 합류해서 춤출 수 있는 윤무(輪舞)다. 그러면 나는 당신이 되고 장벽이 내려간다. 잠시 동안.' (463-464쪽)


인용한 글들, 참 아름답다. 작품이 이렇게 탄생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마음을 열고 함께 춤출 수 있다. 


이런 글들은 편견에 머물지 않는다. 편견을 깨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그래서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편견도 깨지만, 다른 사람의 편견을 깨는 역할도 한다. 그것이 바로 작가다. 


그렇게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기다림, 적절한 단어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많은 작품이 언급되지만, 꼭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들을 마음 속에 담게 한다. 그 작품들은 마음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마음껏 읽고 함께 춤출 때까지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 톨킨의 [반지의 제왕]. 그리고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 세상에 내가 아는 허클베리핀의 모험이 그런 소설이었어? 다시 읽어봐야겠네 라는 생각이 들게 한 이 에세이집이다.('작가와 등장인물',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가설들' 387-410쪽)


무엇보다도 이 에세이집은 르 귄의 소설을 읽을 때 도움이 된다. 물론 이 책에서 르 귄은 자신의 경험과 소설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많은 도움이 된다.


르 귄이 말했듯이 독자 역시 이 글을 읽으면서 글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또 르 귄 소설을 읽을 때 이 글들을 떠올리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 작가도 이해할 것이다. 왜 자신의 소설을 읽는데 이 글들이 도움이 된다고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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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7-23 2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물결, 작가가 할일은 마음에 이는 파도를 알아보는 것! 넘 멋있는 표현이네요. 뭉클한 느낌!

kinye91 2023-07-24 06:02   좋아요 2 | URL
르 귄의 글(소설도 에세이도)을 읽으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글쎄, 이번 호를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지?


  편집자는 편집자의 말에서 귀여움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표지는 확실히 귀엽다.


  귀여움은 마음을 풀게 한다. 마음을 열게 한다. 상대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니 귀여움은 상대와 잘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한다.


  빅이슈 역시 딱딱한 잡지가 아니다. 빅이슈에 소개되는 달달한 디저트들이 얼마나 많은가? 꼭 음식점 이야기가 아니다. 소개되는 디저트들도 달달하지만, 한 꼭지 한 꼭지에 달달한 이야기들이 많다.


어떨 때는 쓴맛을 느끼게 하는 글들도 있지만, 그 글들이 지닌 쓴맛은 결국 우리 모두가 단맛을 느끼며 살게 하기 위한 애피타이저다. 전채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생의 단맛은 무엇일까?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일까?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간다와 자신'만'의 인생을 잘 살아간다는 것은, 단 한 글자 '만'때문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빅이슈는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가게 하고자 하지만, 자신'만'의 인생을 잘 살아가게 하는 잡지는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호에서 편집자가 말하는 '귀여움'을 이렇게 해석했다. 우리의 우리 인생을 달달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인생이 달달해질 수 있을까?


'만'자를 떼어버리면 된다. '만'자를 떼어버리려면 바로 이런 자세...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자기의 길만큼이나 상대의 길도 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영화 속 관장의 말처럼 "재능은 없지만 인간적인 기량이 있"는 "정직하고 솔직하고 아주 좋은" 사람들.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 (정지혜. '자기의 길을 만들어가는 힘'에서. 17쪽)


바로 이렇게, 자기만큼 다른 사람도 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나만 최고가 아니라는 생각, 모두가 최고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면 된다.


어떻게 인정할까? 우선 알아야 한다. 알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노력 중에 책이 있다. 책은 인간 문명이 발생한 이래 우리와 함께 해오지 않았던가. 전자기기로 손쉽게 읽을 수 있게 된 지금도 종이 책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종이 책이 지닌 물질성 때문이다. 


읽으면서 손에 감촉을 느끼고, 그 읽는 시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 또 그 시간을 통해서 책 속에 있는 글자들이 글자들이 아니라 인생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느끼는 순간.


세계 명화라고 하는 그림 중에 책 읽는 그림들이 있다. 그 그림들을 귀엽다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그림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 책. 세상을 바꿀 희망을 주는 책들.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이야기가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하고 싶어요. 희망 없는 시대일지라도 책은 분명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정규환, '베스트셀러가 되고 싶어-김수인 출판 마케터'35쪽)


책이 간접 경험을 준다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하면서 서로 마음을 열어야 잘 살 수 있다. 어떻게 마음을 열까? 앞에 나온 이야기처럼 상대를 인정하면 된다. 인정하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이번 호에 나온 이 방식을 써보면 좋겠다.


경상도식 화법은 제게 반면교사로 사용됩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일 때는 뭐든 그와 반대로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가 남이가?'에서 시작되는 말하기를 '우리는 남이다. 그러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로...(정문정, '충격 요법의 언어에서 친절한 언어로 나아가기'에서. 47쪽)


즉, 직설적인 말하기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말하기를 하는 것, 직설적이라도 상대와 교감이 되면 별 문제가 없지만, 그런 교감이 있는 상대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통할 수가 있으니, 굳이 말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말하기 방법을 고민할 때는 나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다.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과 이야기할 때 위에 나온 방법을 사용하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이런 자세를 지니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을 때 몸과 몸이 교류를 하고, 마음과 마음이 교류를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브레이킹이라고 '브레이크 댄스'가 교육과정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탱고'를 비롯한 춤들도(학교 체육시간에 배운 무용과는 다른 의미로) 들어와야 한단 이 말... 춤을 배우는 아이들. 모습을 상상하니 귀엽다.


다른 성별과 교류하고 관계 맺으며 서로에 대한 존중을 학습하게끔 하는 것,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하나의 방법 아닐까?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게 하고 관계 속에서의 균형을 배우게 돕는 탱고를 공교육 과정에 두는 일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이 될 수 있겠다. (최서윤, '탱고 공교육을 꿈꾼다'에서 59쪽)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춤은 최서윤의 말처럼 작용한다. 내 중학교 시절, 남녀공학, 합반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교장 선생님이 남녀 간, 또 학생 간 서먹함을 없애야 한다고 도입한 교육방법이 '포크댄스'였다. 어떤 종류의 춤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파트너를 바꾸며 추는 춤이었음은 기억나는데...


수업을 오전에 마치고 오후에는 일주일 동안 각 반에서 포크댄스를 추도록 했다. 무려 일주일이나! 지금은 아주 짧은 시간 같지만 당시는 아주 긴 시간이었고, 수업을 하지 않고 오후 2시간 정도를 포크댄스를 추면서 남녀가 또는 남남이 손을 마주잡고 움직인 그 시간은 우리들에게 서로를 어색해 하지 않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이 꼭 포크댄스가 아니어도 괜찮을 터. 탱고든, 살사든, 아니면 다른 스포츠댄스든 함께 하는 활동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활동들이 서로 마음을 열게 하지 않을까? 서로에게 귀여움을 발견하는 시간을 갖게 하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귀여움을 발견하게 되면, 그 자체로 이미 마음이 열려 있고,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이 되니, 다른 교육적 효과보다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빅이슈가 우리의 삶을 달달하게 만들어주는 '전채 요리(애피타이저)' 역할과, 삶의 달달함을 끝까지 느끼게 해주는 '디저트(후식 요리라고 해야 하나?)' 역할까지 해주고 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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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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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이제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기계 문명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고 해야 한다. 디지털이 이제는 우리 삶 곳곳에 들어와 있다. 이런 일들 가운데 하나인 챗지피티라는 말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어서 '복제'라는 말은 쏙 들어가 버린 듯하다.


한때는 '복제'란 말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복제'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언론에서 다루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는 말인지...


하긴 '배양육'이 우리 식단에 들어오는 현실이니, '복제'라는 말은 이제 일상에서 쓰이는 언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인간복제에 대해서는 수긍하기 힘들다.


인간을 복제한 클론이 과연 인간일까? 라는 질문을 할 수가 있는데, 그들에 대해서 과연 우리가 알 수 있을까?


클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알 수가 없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다. 그 사람의 내밀한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자신도 자신을 모르는데... 그렇다면 클론의 마음을 인간이 알 수 있을까?


자신을 복제한 클론을 마주친 인간이 클론이 자신과 똑같다고 여길까? 자신이 클론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오만 아닐까?


신이 있다고 가정하자.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신은 창조한 인간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신은 전지전능하니까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연 그럴까?


신이 인간을 창조했고, 신의 뜻대로 인간이 살아간다면 인간의 '자율성'은 어디에 있는가? 아니, 그때 자율성이 있다고 말할 수가 있나?


그렇다면 지금까지 인간이 이룬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복제까지도 만들어낼, 생물 복제만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존재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금, 인간은 여전히 신의 뜻대로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 라고 답할 수 있다면, 클론을 우리 역시 다 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신의 뜻대로 살게 되듯이 클론 역시 인간의 뜻대로 살게 된다. 어떤 어긋남도 없어야 한다. 어긋남 역시 계산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만약,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면? 이때는 인간 복제는 해서는 안 된다. 아니, 해도 된다. 다만 복제된 클론이 자율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이 뜻대로 해서는 안 될 자율적 존재라고 인정을 한다면.


이렇게 되면 클론을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만들어낸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클론 역시 인간의 한 부류이므로. 우리가 인종이나 민족으로 인간을 구분하듯이, 여기에 클론이라는 또 하나의 부류가 첨가된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지나친가?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클론이 생각할 수 있다고? 그들은 그냥 주입된 것을 표출할 뿐이라고? 어떻게 아는가? 클론의 뇌 속으로 들어가 보았는가? 뇌의 조직, 기능을 다 안다고 해도 생각이 어떤지 정확히 맞출 수 있는가? 없다. 뇌라는 보이는 형태와 뇌가 작동해 일으키는 생각은 같지 않다. 


그러니 클론이 인간의 복제라면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 된다. 이들을 단지 인간의 병치료를 위해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소설은 이런 클론의 문제를 클론의 처지에서 서술하고 있다. 캐시를 서술자로 선정하고 있다. 소설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캐시의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다. 캐시의 학창시절부터 어른이 된 후까지가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다보면 곳곳에서 캐시가 보통 인간과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된다. 기증자, 근원자라는 말이 나오고, 조금 읽다보면 캐시가 복제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서 복제인간인 캐시의 관점으로 사건을 따라가게 된다.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캐시를 보면서, 그런 캐시가 결국은 자신의 일부를 기증하는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알게 된다.


캐시와 루스, 그리고 토미. 이 셋의 애증관계, 성장관계. 그렇지만 여기에 얽힌 복제인간에 대한 관계. 그들이 자란 헤일셤이라는 곳은 복제인간을 인간답게(?) 가르치는 곳. 어차피 장기기증으로 죽어갈 그들에게도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교육을 받게 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곳.


이곳은 기부자의 기금으로 운용이 되고, 이들 목표는 클론 역시 교양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 그러나 이들은 외부에 의존해서 운영하려고 했고, 또 클론을 자신과 함께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이 한시적으로 시혜를 베풀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고 운영했다.


철저히 인간의 관점에서, 시혜를 준다는 관점으로, 그러니 클론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는 루시 같은 선생은 떠날 수밖에 없다.


클론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정확히 알리지 않고 최대한 시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입장과 클론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입장의 차이. 작가는 명확히 이야기하지 않지만, 작중 인물인 토미가 "루시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에밀리 선생님 생각이 아니라 말이야."(374쪽)라는 말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복제인간이라고 해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즉, 복제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어야 한다.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자신의 복제인간이라 해도 또다른 자율적 존재임을, 존중해야 할 존재임을, 결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한다.


작가는 복제인간을 서술자로 택함으로써, 그들이 어떻게 고민하고 성장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복제인간에 대한 문제에 대해 간접적으로 답을 하고 있다.


생물학에서 시도하는 복제인간을 넘어서서 이제는 컴퓨터과학기술로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니, 벌써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인공지능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런 인공지능의 흐름에 밀려서 복제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은데, 인간 '복제', 이렇게 묻혀서는 안 될 주제다. 특히 지금처럼 마음만 먹으면 '인간' 복제가 가능한 시대에서는.


이 소설을 읽으며 문학의 힘을 생각해 본다. 왜 과학자가 될 사람들이 어린(젊은) 시절에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지... 아니, 그들에게 영재교육이 아니라 문학작품을 읽혀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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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반할 민화 - 생활의 단면 유쾌한 미학, 오천 년 K-민화의 모든 것 알고 보면 반할 시리즈
윤열수 지음 / 태학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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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전문적인 화가가 그린 작품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냥 예술적 가치보다는 실용적 가치가 더 큰 작품이라고 해도 좋고.


주로 조선시대에 그린 민화가 많이 남아 있는데, 작가를 알 수 없는 작품이 많다. 그럼에도 민화는 당시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이었는데...집 안을 꾸미는데 이런 민화들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민화의 정의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종류의 민화를 소개하고 있다. 민화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많이 소개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예전에 본 민화도 있지만, 처음 보는 민화, 또는 이런 그림도 민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그림들도 있다.


그만큼 다양하고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는 그림들이 민화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민화에 대한 정의와 특성에서 민화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를 소개하고 있다. 그 소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민화는 장식적 필요에 의해 그린 그림, 토속신앙과 세계관이 반영된 그림, 주술적 신앙이 반영, 집단적 감수성의 표현,'뽄' 그림


이 특성을 보면 우리들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그냥 두고 감상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그림에 담아 곁에 두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술을 특정 집단만이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향유할 수 있음을, 또 향유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또한 민화 그림을 많이 소개해주고 있어서 많은 민화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기도 한 책이다. 무엇보다 민화를 종류별로 나누어서 설명해주고 있으니, 그 민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왜 그렇게 그렸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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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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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소설이 최근에 많아졌다. 어떤 특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가고, 위로를 받는 그런 소설들.


일본 소설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우리나라 소설로는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와 [책들의 부엌], [불편한 편의점] 등이 그렇다.


이 소설 역시 그렇다. 츠바키 문구점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른 소설들이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있다면 이 소설은 문구점 주인인 포포가 자신이 하는 편지를 대필해주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마저도 치유한다는 데서 차이점을 보인다.


그만큼 편지란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편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물론 내용이겠지만, 내용만큼이나 글씨 역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츠바키 문구점에 들러 편지를 대필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을 읽은 포포는 그 사람의 마음을 편지에 오롯이 담으려 한다.


감정이입. 포포는 그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그 사람이 되어 편지를 쓴다. 단순히 대필이 아니라 그 사람이 되어 마음을 전달하는 일.


편지는 그런 역할을 한다. 또한 편지는 즉각적이지 않다. 동시성이 아니라 시간의 차이가 편지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다.


자신이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상대에게 가 닿는 시간이 꽤 걸린다. 이메일로 전송하면 거의 즉시 상대에게 도달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시간의 차이만큼 편지는 쓰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시간을 준다. 


그런 편지가 이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데, 빨리빨리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느긋하게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손으로 편지를 쓰면서 온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그런 마음이 편지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을 하는데...


이제는 거리에서 우체통도 찾기 어려워졌으니, 편지를 쓰는 일이 더욱 힘들어지긴 했지만.


이 소설은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잔잔한 물결, 또는 부드러운 바람이 몸을 감싸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포포를 따라가면서 마음을 다독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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