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흐리다. 무더위가 조금은 꺾이는 듯하다. 계속해서 시집을 읽고 있는 중.

 

시는 노래다.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시는 이야기다.” 그러면 무슨 소리하느냐고 다시 한 번 쳐다보는 사람은 많다. 그만큼 시는 노래와 가깝고, 이야기라고 하면 시를 통해 대표되는 운문이 아닌, 주저리 주저리 말을 풀어내는 산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는 말 그대로 말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갈래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기에, 사람들이 “시는 노래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시는 이야기다.”하면 갸웃거리게 된다.


그런데도 “시는 이야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들도 시는 노래라는 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것을 전제로 시에도 이야기가 있다고, 시도 이야기처럼 쓸 수 있다고 할 뿐이다.

그런 시를 우리는 ‘이야기시’라고도 하고 ‘리얼리즘시’라고도 하며, ‘단편서사시’라고도 한다.


아마 이 논쟁이 일제시대 때 임화의 시부터 시작되었을 텐데...

임화 시에 나오는 그 이야기성은, 우리에게 시를 한 편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게 임화의 시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풍습을 우리말로 잘 표현했다고 알려진 백석 시에도 이러한 이야기성이 잘 드러나 있다. 그의 시 “여승”은 한 편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런 점을 보아도 시에는 노래의 요소도 이야기의 요소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이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성이 강한 시와 노래 쪽에 가까운 시로 나뉠 수 있을 뿐이다.


난 이야기시의 대표로 최두석의 시집을 꼽는다. 서정춘의 시집 제목이 “죽편”이었다면 최두석의 시집 제목은 “대꽃”이다. 둘 다 대나무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면, 서정춘의 대나무는 개인적이고 서정적이라면, 최두석의 대나무는 역사적이고 현실적이며 집단적이다.


또 서정춘의 짧막한 시들이 ‘노래’ 쪽에 가깝다면, 최두석의 시는 이야기 쪽에 가깝다. 아니, 본인은 이야기시를 쓴다고 직접 이야기한다.


그가 시집의 자서(自序)에서 밝힌 다에 의하면 그의 시는 이야기라 해도 좋다.

이 시집에 수록된 상당수의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 내가 실화에 얽매이는 것은 이 질퍽거리며 끈적거리는 흙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최두석, 대꽃, 문학과지성사. 1989년. 3쇄 자서에서


처음 에 나는 아무 생각없이 이 자서를 읽었을 때 실화를 설화로 읽었다. 그만큼 이 시집에는 설화적인 요소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자서를 보았더니, 그 조그마한 글씨가 세상에 설화가 아니라 실화다.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고 시인이 아예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설화도 우리들이 있어왔다고 믿거나 우리의 의식을 규정한 이야기로서 어느 정도는 실화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니, 그게 그거라고 생각해도 좋겠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말은 노래보다는 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우리의 마음보다는 뇌에, 이성(理性)에 호소하겠다는 이야기다.


하여 시집의 첫 시가 바로 노래와 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시이다. 이 시는 시인이 자서에서 한 말을 시로써 보충해주고 있다. 다음부터 나올 시는 그래서 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읽으란 얘기로 받아들여도 된다.

노래와 이야기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 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 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최두석, 대꽃, 문학과지성사, 1989년 3쇄. 노래와 이야기 전문


우리가 겪어온 험난한 세월을 시인은 노래로써 심장으로써 느끼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이미 노래로 다스릴 수 있는 상처는 아니기에. 그렇기에 이야기로 상처를 다스리려 한다. 뇌수는 곧 이성의 힘이다. 이성의 힘으로 차분히 분석하고, 힘을 키우고,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개인의 심장만 울리지 않는다. 이야기는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가, 시대를 불문하고 퍼져나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남는다. 그랬었지. 그랬었어. 그렇군.  그래야겠어 하게 한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시인이 추구하는 시의 힘이다.


이 힘이 대나무로 나타난다. 대나무로 의인화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대꽃’이란 연작시다. 이 시집에는 1부터 8까지의 대꽃 시가 있다. 주로 동학 혁명을 다루고 있고, 대꽃의 마지막으로 오면 4.19가 나온다. 우리의 역사, 민중의 힘이 대나무로 등장한다.


대꽃 8

- 대꽃


  이루어진 지 스무 해쯤 되어 보이는 대숲에는 삼십대의 상인도 오십대의 품팔이도 들어가 섰읍니다. 철 모르는 어린이도 섞였읍니다. 대숲이 출렁거리더니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읍니다. 서걱이는 행진의 걸음마다에 외마디 외침이 폭발했읍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귓속으로 파고드는 이 소리는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곧장 달려갔읍니다. 소리가 부딪친 전방 바리케이트에서는 돌연 총포가 난사되었읍니다. 이에 대나무들은 쓰러지며 대꽃을 피웠어요.


한 송이 피면

또 한 송이 거품 뿜으며 피고

이꽃 저꽃 저꽃 이꽃 우르르우르르 무리져 피는

피다가 모두 죽은

대꽃. 


최두석, 대꽃, 문학과지성사, 1989년 3쇄. 대꽃․8 전문

(80년대 후반에 맞춤법이 개정되어 ‘-읍니다’는 모두 ‘-습니다’로 바뀌었다. 그래도 시인이 쓴 표기를 존중하여, ‘읍니다’로 그냥 표기한다. 혹 개정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는 시의 내용이나 시의 표현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기에 아마도 개정판이 나온다면 모두 ‘습니다’로 바꿀 것이라 생각하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 시에 4.19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 것을. 이 대꽃들이 몇 십년 뒤에는 찬란한 촛불로 다시 피어오르게 됨을... 아직도 진행형임을...


또 이 시집은 고은이 쓴 “만인보”의 전신이라고 할 만큼 시인이 알고 있던 실제 인물들이 시 속에 등장하여 우리네 삶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시집이기도 하다. 한두 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시집에 등장한다. 그래서 이 시집은 내용에서도, 소재에서도  리얼리즘시를 구현한 시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내가 갖고 있는 최두석 시인의 시집엔 이상하리만큼 “꽃”이란 낱말이 모두 들어가 있다. 그만큼 시인은 사람이 꽃처럼 피어나는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그 시집들을 이야기하면 이 “대꽃”을 비롯하여, “성에꽃”,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꽃에게 길을 묻는다”다. 안치환의 노래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세상, 우리가 만나야 할 세상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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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말이 이제는 신물이 날 정도로 반복되었다. 좋은 말도 자꾸 하면 듣기 싫은 소리가 된다는데, 무더위, 무더위 하다 보니, 이젠 무더위 소리만 들어도 땀이 솟는다. 시원한 빗줄기가 그립다.


기우제라도 드려야 하나. 예전 같으면 왕이 기우제를 올렸을 텐데... 자신의 책임으로 통감하고 몸둘 바를 몰랐을 텐데. 기우제로 실제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적어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려고는 했는데... 누구나 다 아는 말인, 녹조야 더위가 오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걸 다들 알기에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 대책을 세우는 것 아니겠는가.


서정춘의 시집을 읽었다. 마음에 비가 내리게. “죽편”과 “봄, 파르티잔”

워낙 짧고 또 분량도 적어서 이 시인의 시집 두 권을 읽는 일은 다른 시인의 시집 한 권을 읽는 일보다 시간이 적게 걸린다. 단지 물리적인 시간만을 따지면.


그러나 시 한 편 한 편이 만만치 않다. 백 편, 천 편, 만 편의 시보다는 영원히 남을 시 한 편 쓰기를 원하는 시인답게, 시는 짧고 양은 적지만 무게가 상당하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 말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이 되어야지,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써서는 안된다’는 말을 몸으로 실천한 시인이다.


그의 시 중에 이번 무더위와 관련된 시가 있다. 무더위 보다는 가뭄에 관련된 시지만, 지금은 한 줄기 비가 그리운 때이니...


가뭄타령


하늘이 독약같이 멀어 버렸다

어느 무덤을 파고

어느 빈 항아리를 묻어야 비가 오려나

아트홀 호암 콜렉션에 틀어박혀서

목이 마르다 실토를 하듯

금이 쩍쩍 가고 있는

청화백자운용문항아리

이것을 훔쳐서 묻어 주면

비구름을 몰고 청룡은 날고

청화백자난국문항아리

이것을 묻어 주면

물 먹은 산야(山野)에 도로 난초는 푸르고

야국(野菊)은 필까 말까

아즐타, 건곤(乾坤) 삼천리가

푸르 청(靑)이리


서정춘, 죽편, 동학사. 2002년 2판 가뭄타령 전문

(원래 시집에 있는 시에는 한자어가 그냥 쓰였다. 이것을 한글로 바꾸고 괄호 안에 한자로 집어넣었다. 본래는 시인이 쓴 대로 그냥 읽어야 더 맛이 나는데.. 한자를 모르는 세대가 더 많아지는 세상이니...)


재미있는 발상 아닌가. 문화재에 새겨진 그림에 기대어 비를 소망하는 모습. 지금은 무엇에 기대어 소망해야 하나... 우리가 초래한 일이 더 많으니 말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나라는 이 시의 마지막처럼 푸르 청이다. 푸르 청(靑). 푸르르다. 너무.


이 시집에서 압권은 역시 제목인 죽편이다. 그것도 죽편1. 짧은 시행에 많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죽편(竹篇) 1

- 여행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서정춘, 죽편, 동학사. 2002년 2판 죽편1 전문


대나무와 기차, 외형상 유사성이 있다. 여기서 착상을 했나 보다. 그러나 대꽃이 피는 마을이 어디일까? 시인의 고향? 아니면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 어디든 상관이 없다. 다만 그곳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우리 인생을 100년으로 치면 우리는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까지 멀고 먼, 길고 긴 여행을 해야 한다. 이 시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까? 대꽃은 웬만하면 피지 않는데, 그 대꽃이 한 번 피면 대나무는 죽고 만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는데.


다른 시집인 “봄, 파르티잔”도 마찬가지로 짧은 시들이 모여 있다. 그 중에서도 이런 기막힌 시가 있나 한 생각이 들게 한 시


우리나라 수평선


우리나라여거울에금간삼팔선이여하늘반물반이여모든쪽빛이여우리나라수평선이여


서정춘, 봄, 파르티잔, 시화시학사. 2001년. 초판. 우리나라 수평선 전문


기가 막히지 않은가! 수평선은 다 똑같은 수평선이어야 하는데, 시인은 우리나라 수평선의 특수성을 찾아내고 있다. 그걸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제목보다도 한참 작은 글씨로 한 줄로 가로 지르는 수평선을. 그 속에 우리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으니... 이 짧은 한 줄에 분단된 우리나라의 모습이 들어가 있으니.


다른 시에서도 시인은 수평선의 이미지를 시에 많이 등장시킨다. 그 때마다 다른 모습의 수평선이 나오는데...‘유리창’이란 시에서도 수평선이 나오고, 아예 제목이 ‘수평선’인 작품도 있다. 또 이 시집에는 도마뱀이 나온다. ‘도마뱀붙이’, ‘도마뱀을 좇아서’, ‘도마뱀을 살려라’,‘도마뱀이 피아노를 치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생각해 볼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서정춘 시인의 사랑에 관한 시 한 편.

아, 우리의 사랑은,

이 놈의 사랑은 정말.


당신


당신, 돌을 던져서 쫓아버릴 수 없고

당신, 칼로 베혀서 쳐버릴 수 없다

차마, 사랑은 물로 된 육체더라


서정춘, 봄, 파르티잔, 시화시학사. 2001년. 초판. 당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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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혁명 1 - 학습부진 탈출편 뇌기반교육 교수과학 시리즈 1
에릭 젠슨 지음, 이찬승.김성우 옮김 / 교육을바꾸는책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수업을 잘하고 싶지 않은 교사가 있을까? 공부를 잘하고 싶지 않은 학생이 있을까? 자기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소문내고 싶지 않은 교장이 있을까? 자신의 교육구가 좋은 교육구라고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교육감이 있을까? 자기 나라의 교육이 잘되었다고 자부심을 갖고 싶지 않을 교육부(우리나라는 교과부) 장관이 있을까? 교육에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대통령이 있을까?

 

답은, 없다. 다들 교육에 관해서는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하고, 칭찬을 받고 싶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게 잘 안된다.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학생들, 학교 가는 일이 하루하루 고역인 교사들, 오로지 더 좋은 자리만을 찾아 가고자 하는 교장들, 자신의 교육구가 너무도 방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잘 못 잡는 교육감들, 교육현실과는 동떨어진 정책을 펴서 여러 군데에서 지탄을 받는 교과부 장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말만 하지만, 교육 분야에 우선을 두지 않는 대통령. 이게 현실이다.

 

한 직장에서 10년, 20년, 30년 근무하다 보면 전문가로서 인정도 받고, 자부심도 느끼게 된다는데, 우리나라 교육현장은 오히려 나이 든 교사들을 무능하다고, 아이들과 맞지 않는다고 배쳑하고 있지 않은가.

 

또 학생들은 도대체 왜 배워야 하는지,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의미를 찾지 못해 마지못해 시간을 때우러 오고, 시간을 때우러 오다보니 학교에서 온갖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게 되고, 여기에 학생들은 더욱 학교를 싫어하고, 오직 학교란, 부모가 가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오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지 않은가.

 

자꾸 부정적인 얘기를 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교육 문제만 나오면 부정적이 된다. 이러면 안되는데... 부정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스트레스는 다시 부정을 강화하니,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교육은 정말 가능성이 없어진다.

 

이렇게 하지 말고, 자그마한 긍정이라도 하나씩 찾아보자. 아니, 자그마한 긍정이 아니라, 엄청난 긍정이 숨어있을 수 있다.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 어쩌면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을 뿐.

 

이 책은 이러한 긍정에서 시작한다. 더구나 요즘은 과학이 발달하여, 우리들의 뇌를 친절하게 보여주기까지 하지 않는가. 뇌에 기반한 교육을 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렇게 하여 큰 성과를 거둔 학교들도 많지 않은가.

 

안된다. 안된다 하지 말고, 최신의 과학을 이용하자. 뇌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요즘 과학계의 정설 아닌가. 그렇다면 "넌 안 돼" 라는 말은 성립할 수가 없다. 뇌는 환경이나 자극에 따라서 충분히 변화가 가능하니 말이다.

 

특히 사회경제적인 요소로 인해 어릴 적 배우지 못한, 자세를 갖추지 못한 아이들에게, "넌 원래 그런 놈이야."라는 생각은 잘못되었고, "네가 이러는 건 지금까지 네가 이런 일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지금부터 해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라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빈곤층 자녀들이 많은 학교에서, 힘들다, 힘들다만 하고 변화를 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던 점을 문제로 제기하고 충분히 할 수 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교사들이 학교 생활을 즐거워하고, 책임감을 지닐 수 있는 환경을 우선 조성해 주고, 이 교사들에게 뇌에 기반한 교수법을 알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지금 상태가 고정불변이 아니라, 교사가 하기에 따라서는 언제든 변할 수 있음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한다.

 

교사가 변하면, 변한 교사에 의해서 학생과 교사 간의 관계도 변한다. 서로 신뢰관계가 쌓이면 자연스레 학습에도 흥미를 갖게 된다. 이 때 교사가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충분히 지금까지의 퇴보를 만회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노력 중에 기억나는 것은 예,체능을 강화하라는 것, 그리고 심화학습을 하라는 것, 긍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라는 것 등이다.

 

우라나라도 지금 예체능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건도 안된 상태에서 체육활동을 늘이라고 해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체육활동은 학생들에게 필요하고, 또 공부에 필요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미술과 음악 역시 학생들의 정서 뿐만이 아니라 학습에도 필수적이라는 것을... 또한 너희들 수준은 이 정도야에서 그치지 말고, 한 단계 놓은 학습을 하도록 유도하는 심화학습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하다보면 그보다 낮은 단계의 학습은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감도 갖게 되고.

 

빈곤층 학생들에게 필요한 일은 바로 이러한 자신감, 자존감, 그리고 할 수 있다는 희망, 무엇을 하겠다는 꿈 등을 지지하고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교 환경이다. 

 

하여 이 책은 뇌에 기반한 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뇌에 대해 복잡한 설명을 하지는 않는다. 단지, 예체능이 뇌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희망, 꿈, 긍정이 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한 단계 높은 학습이 뇌를 발전시킨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학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학급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보여주고 있다.

 

혁신학교가 유행하고 있는 이 때, 단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의 발전을 위해서 지금의 혁신학교에서 하는 일에, 이 책에 나온 방법들을 더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받아들이자는 얘기는 아니다. 이 책에서는 체육 시간 다음에 어려운 교과를 배치하면 더 효과적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 현실에서도 이것이 맞을까는 의문이다. 내 기억을 살피면 체육 시간 다음에 우리는 진이 빠져 그 다음 시간에 집중할 수가 없었는데 말이다. 단, 체육 시간 다음에 충분한 휴식 시간이 있다면 가능하겠단 생각은 들었다. 최소한 땀을 뻘뻘 흘렸으면 샤워는 하고 수업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학교 환경이 개선이 된다면 이 책에서 말한 이런 내용은 타당성이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의 방법에 관한 책은 좋은 참고자료이다. 이것을 참고해서 교사들이, 교장들이, 교육감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맞게 변형하여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참고자료가 하나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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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시원하게... 

땅도 적시고, 나무들도, 풀들도, 그리고 따끈하게 데워져 있는 강물들도, 열로 확확 달궈져 있는 콘크리트, 아스팔트들도 적시고, 무더위에 지쳐 있는 사람들 몸도 마음도 적시게.

 

그런데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파란 하늘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이 무더위 때문에 태풍도 피해간다고 하지 않는가.

 

거기에 강들은 녹색으로 덮이고 있다고 하고... 더위에는 장사 없다. 오뉴월 늘어진 개처럼 우리들도 늘어질 수밖에 없다. 이젠 시원한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마음이 시원해질 수 있는 시가 무엇이 있을까 책장을 훑어본다. 어떤 시를 읽으면 조금이라도 시원해질 수 있을까. 난해한 시는 제외한다. 머리를 써야 하고, 그 시를 갖고 고민해 빠져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덥다. 이럴 땐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시, 그런 시가 오히려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별로 망설이지 않는다. 서정홍의 시집이다. 무엇이 있나? 찾아보니 두 권이 있다.

"58년 개띠""내가 가장 착해질 때"

 

사실, 이 더위에 신경질이 많이 늘었다. 그럴 때 '내가 가장 착해질 때'라는 시는 어떨까? 어떨 때 가장 착해질까? 시인은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맞다. 이럴 때 우리는 착해지고, 또 더위로 인한 짜증도 누구러뜨릴 수 있다. 요즘 도시에서는 참 하기 힘든 일이지만.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서정홍, 내가 가장 착해질 때, 나라말, 2008. 초판.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전문

 

흙과 더불어 사는 사람, 착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얼마나 흙에서 멀어져 왔는가. 흙에서 멀어져 온 결과가 이렇게 더위를 더욱 더 심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서정홍 시인의 이 두 시집은 각기 다른 생활을 그리고 있다. "58년 개띠"는 좀더 시인이 젊었을 때 낸 시집으로 이 시집의 주요 배경은 공단이다. 노동자의 삶이다. 그는 노동자로 오랫동안 일해왔다. 그래서 이 시집에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들이 시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반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조되어 나타난다.

 

시인은 자신을 출세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출세는 우리가 말하는 출세와는 다르다. 그의 시집 제목이 되기도 한 '58년 개띠'라는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 황금을 다 준다 해도 / 맞바꿀 수 없는 / 노동자가 되어 / 땀 흘리며 살고 있다.

 

갑근세 주민세 / 한 푼 깎거나 / 날짜 하루 어긴 일 없고 / 공짜 술 얻어먹거나 / 돈 떼어먹은 일 한 번 없고

 

어느 누구한테서도 / 노동의 대가 훔친 일 없고 / 바가지씌워 배부르게 살지 않았으니 /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

 

서정홍, 58년 개띠, 보리, 2003 고침판 1쇄. 58년 개띠 5-7연에서

 

말 그대로 세상에 나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살고 있는 모습이 시에 나타나 있다. 그런 시인이기에 없는 사람, 힘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 반면에 있으면서도 군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 있는 체하는 사람들까지도.

 

하여 시인은 시란 어렵게 써서는 안된다고 한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 노동을 하는 사람들, 노동자이건 농민이건 어리건 나이 들었건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고 한다. 그의 유명한 시 '우리말 사랑1-4'를 보면 이런 시인의 생각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다.

그래, 그래, 시는 이래야 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는 시인이 농사를 지으면서 농부로 살아가면서 이웃과 함께 어울리고 느꼈던 점들을 그려내고 있다. 노동자 시절에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았던 시인이 농민으로 살아가면서, 흙과 같은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더욱 따뜻해지고 있다. 이 따뜻함이 무더위에 시원함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두 시집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아내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진정 행복한 가족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바로 우리 이웃이 곁에 있는 것처럼, 때로는 미소를 머금게 하고, 때로는 눈물을 짓게 하는 시들이 넘쳐나고 있다. 어느 한 시 어렵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 않고... 곁에 두고 언제든지 펼쳐보아도 좋은 시들이다.

 

서정홍 시인이 생각하는 시인으로 마무리 한다.  

 

시인이란

 

시인이란

쉬운 걸

어렵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걸

쉽게 쓰는 사람이다.

서정홍, 내가 가장 착해질 때, 나라말, 초판, 시인이란 전문

 

 

시인

 

그저 바로처럼

외롭고 눈물 많은

사람입니다.

 

그 눈물로

세상을 적시고 싶은

사람입니다.

서정홍, 내가 가장 착해질 때, 나라말, 초판, 시인 전문

 

서정홍 시인의 시가 내 마음을 시원하게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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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해야 할 것
수잔 손택 지음, 김유경 옮김 / 이후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작가이자, 비평가, 연출가로 알려져 있는 손택이다시피, 다방면에 박식하다. 이렇게 많이 알고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을 글로 써낸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여기에는 영미 문학(문화) 또는 서양 문학(문화)에 대해서 무지한 내 자신의 상태가 그를 더 대단하게 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손택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 중에 솔직히 읽은 게 없다고 해야 하나? 이거야 우리가 세계문학에서 다뤘던 사람들을 이야기하지 않고, 아직은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작가들을 그들의 위대함을 찾아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니, 내 무지가 그냥 무지가 아님을 위안하여도 되는지...

 

내가 본 것들, 내가 읽은 것들, 그곳과 이곳으로 나누어져 있는 책이다. 각 부마다 나름대로의 일관성은 있지만, 굳이 이렇게 묶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짜피 안 보고, 안 읽고, 못 가본 곳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손택의 글은 읽을 만하다. 그 이유는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과 같은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시선을 가지고 어떻게 대상을 바라보는지를 손택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주로 무용과 영화와 그림 등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를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문화적인 대상을 감상할 때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뭔 얘기인지, 원 작품을 알 수 없으니 그냥 손택의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좀 짜증나기도 하지만... 방향을 바꾸어서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이 어떠한지 파악하는 방법으로 읽으면 읽을 만하다.

 

2부는 그래도 1부보다는 조금 친숙하다. 문학 이야기니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도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도 친숙한 것 아니던가. 여기에서 가장 기억에 부분은 구절은 읽기와 쓰기에 관한 부분이다. 작가는 쓰는 사람이라 읽지 않는다고 하는 작가들에 대해 손택은 자신은 작가이기에 읽는다고 말한다. 쓰기 위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 먼저 읽을 수밖에 없다고.

 

우리나라에서도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좋은 시들을 많이 읽어라라고 답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다. 글쓰기에 대한 자세는 동양이건 서양이건 나름대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사람들은 글쓰기만을 고집하지 않느다. 그렇게 쓰기까지는 얼마나 많이 읽어야 했는가. 또 읽을 것인가.

 

그래서 손택은 자신의 작품을 자신이 읽을 수 있어야 좋은 작가라고 말하는 듯이다. 작가에게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글 하나만으로도 손택의 이 책은 나에게 의미가 있다.

 

3부는 그곳과 이곳이다. 이분법으로 갈려진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이분법으로 갈라놓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게다. 손택은.

 

여기서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여행이란 이곳과 그곳을 극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요소이니 말이다. 예전에는 그곳을 야만의 장소로, 다시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이상의 장소로 인식했던 여행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주요 내용은 사라예보에서 있었던 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전(사실 내전이라는 말보다는 학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이 한창인 사라예보에서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했던 일을 중심으로 그곳과 이곳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우리는 그곳을 배제의 장소로 이곳과는 다른 장소로 인식하기 위해서 그곳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어느 곳이나 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 그리고 평소에 말이 많던 지식인들이 그곳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다물고 있었는가 하는 사실.

 

그곳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이 있었던 나는 손택의 이 글이 가슴에 와닿았다. 멀리서 그곳이라고 지칭했을 땐 이미 그곳과 이곳은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 지금 우리도 그곳이라고 부르는 장소가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먼 나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얘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부끄러웠다. 나 역시 그곳은 이곳과 다른 곳으로 구분짓고, 나는 안전한 이곳에서 그곳을 방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나를 반성하게 만든 글이다.

 

그래서 이 책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흥미를 끈다. 생각할거리를 제공해 준다. 손택의 글들이 참 자유분방하게 쓰였다는 생각이 들지만(번역의 문제는 아닐테고), 읽으면서 마음이 콕콕 박히는 글들이 있다. 그 점이 손택의 글을 읽게 하는 점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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