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화사 4 - 국가 1920~1960 유럽 문화사 4
도널드 서순 지음, 오숙은 외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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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에서 시작한 유럽문화사가 이제는 근대, 아니 현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처음에 인쇄매체인 책으로부터 시작한 첫권이 시작을 영상매체로 시작하는 4권이 되었다. 방대한 문화적 편력이지만, 가끔은 아는 사실과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흥미를 자극한다.

 

문화에 관해서 영국과 프랑스가 패권을 지니고 있었는데, 어느덧 4권에 오면, 아니 1920년대에 오면 1차세계대전이후 미국의 패권으로 넘어가게 된다. 특히 영상매체인 영화에서는 미국의 패권이두드러지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다.

 

유럽이 이러한 미국 영화의 패권에 대항한 방법이 예술영화를 만드는 일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국제 영화제들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즉, 유럽은 미국의 대중적인 영화에 도전하기보다는 자기들 나름대로의 기준을 지니고 영화라는 매체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1920년대부터 약 20년 동안 우리나라는 식민지였기에 제대로된 영화가 발달하지 못했고,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는 미국영화의 공세 앞에서 많은 부분을 내줄 수밖에 없었으며,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 쿼터제를 도입했지만, 세계화의 물결 앞에 쿼터제도 많이 축소되어버렸지 않은가.

 

다만, 미국영화의 물결 속에서 영화기법들을 자연스레 익히게 되어, 우리도 이제는 미국 영화 못지 않은 영화기술들을 보유하게 되었고, 대작들은 미국영화에 밀리기도 하지만, 우리 영화로도 천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한중일 합작영화를 찍는 등 우리영화를 외국을 대상으로 촬영하기도 하니, 이 책에서 나온 영화의 발달사를 우리나라 역시 따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즉, 이 책은 우리나라 문화를 보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 이어 책들은 여전히,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읽히고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음악 부분에서도 녹음 기술이 발달이 가수들을 유명하게 만들어 주고, 음악의 세계화를 이끌고 있다는 내용에서, 세계화는 1990년대에 나온 말이 아니라, 이미 근대화의 초기에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세계화가 문화에서는 자연스레 일어난다는 생각. 지금 우리나라 역시 한류열풍에 힘입어 우리의 음악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상태이니, 한 때 문화의 수입국에서 이제는 문화의 수출국이 되고 있으니, 그런 문화적인 힘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영화만큼 미국의 패권을 보여주는 분야가 만화 분야라고 한다. 만화 역시, 유럽은 변방에 머물고 있으며, 미국의 대중적인 만화를 번역, 번안하고 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 시대는 유럽문화라고 하지만, 유럽에서 건너간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문화가 유럽 문화를 오히려 선도하고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언론들, 특히 일간지들을 다루고 있는 장은,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왜이리도 비슷한지, 그들의 독자확보 경쟁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자건거 신문, 상품권 신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과 비슷해서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고, 라디오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모습, 이것은 곧 텔레비전으로, 그리고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바뀌어갈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라디오로 교양과 교육을 담당하다, 정치적인 면까지 다루게 된 루즈벨트의 이야기는 지금 정치상황을 연상시켜, 참 세상은 빠르게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지니게 한다.

 

우리와 가까운 기간이 이 책의 내용이다. 지금 우리를 규정한 대부분의 문화들이 이 때 활발해졌거나, 탄생했으니... 단지 유럽의 문화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이런 문화들은 우리의 문화이기도 하다.

 

지금 시대와 가까울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그리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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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대에 대한 논쟁, 그리고 NLL에 대한 논쟁,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논쟁,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논쟁...

 

정말 이번 대선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네 과거는 이랬다... 어쩔래? 하는 모양.

 

물론 과거를 묻어버릴 수는 없지만, 과거에 매달려서도 안된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미래를 제대로 기획하기 위해서이다. 과거로 끄집어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재는 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배태하고 있다고 한다면, 과거에 대한 철저한 공부는 필수적이다. 과거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을 뿐더러, 과거는 과거일뿐이라고 할 수도 없고, 또 과거를 과거로 내버려두자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과거에 넌 이랬으니까 앞으로도 이럴 거야, 네 과거는 이랬어, 너는 그런 사람이야 하고 규정짓고 새로움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다.

 

우리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지금 이 자리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과거는 과거로, 즉, 역사는 역사로서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 검증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공과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냥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런데.. 도대체 역사가 뭐지?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단재의 말도 있고,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란 E.H.카의 말도 있는데...

 

과거가 어떤 실체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이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과거를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사실(이게 참 어렵다)에 대해서는 공통의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유력한 세 명의 후보들... 기본적인 사실들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을까? 만약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과거에 대한 공통된 인식과 누가 가장 가까울까 그 점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기본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거의 기사식으로 정리해놓은 책.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 난 4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읽었는데... 이 시대에 대한 공통인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선은 가장 문제가 되는 60-70년대에 대해서 기본적인 사실을 알고, 그에 대한 공통인식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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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사 3 - 혁명 1860~1920 유럽 문화사 3
도널드 서순 지음, 오숙은 외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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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사 3권의 제목은 혁명이다. 이 책이 문화에 대해 다루고 있으니 이 혁명을 정치적인 혁명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시대를 무 자르듯이 싹둑 자르지는 않지만 책에 있는 시대구분은 1880년에서 1920년까지다. 정치적으로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난 때이기도 하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인 혁명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물론 정치와 문화의 관계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통신혁명으로 시작한다. 통신이 혁명적으로 발전함으로써 세계는 하나가 되어 간다. 며칠, 몇달씩 걸리더 일이 이제는 몇 시간만에 서로 연락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혁명이다. 여기에 라디오까지 발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통신 혁명은 세계를 좁게 만들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고 교류를 쉽게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유럽대륙과 미국이 함께 묶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할까.

 

하여 이 시대에는 소설도 국제화가 되고, 이러한 문학들이 세계를 막론하고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프랑스의 에밀 졸라가 양심적인 작가의 대표로 나오고, 또 세계적인 작가의 자리를 차지하고, 소설에서도 범죄, 아니 추리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추리 소설이 자리를 잡으며, 과학소설이 등장하여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며, 이제는 대중소설들이 등장하여 문화의 대중화가 이루어진다. 

 

언론 또한 이제는 특정 집단을 벗어나서 대중들이 향유할 수 있는 매체로 자리를 잡으며, 이와 더불어 음악 분야에서도 축음기의 발명으로 인한 녹음기술의 발달로 가수들이 유명해지고, 이들의 노래를 녹음하는 일이 유행하게 되는 모습, 그리고 그러한 노래의 녹음이 오히려 공연을 더 활발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 여기에 드디어 영화가 나온다.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화는 1890년대에 등장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는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의 중심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 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영화는 이제 겨우 10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기술의 발달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영화라고 할 수 있으니...

 

영화의 중심국이었던 프랑스가 미국에게 주도권을 내주게 되는 모습도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문화의 중심이 한 곳에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우리도 문화의 수입국에서 문화의 수출국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 우리나라는 기울어져가는 국운, 그리고 곧 닥칠 국권의 상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이 때는 우리의 문화에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때가 아니었던가. 비록 우리는 국권상실이라는 비극을 겪어 정상적인 문화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봐야 하지만 말이다.

 

읽으면서 자꾸 우리나라의 그 때와 겹쳐진다. 이들이 이렇게 문화를 만들어갈 때와 우리가 제대로 된 문화를 만들지 못하고 일본에 종속되던 때...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문화의 중심은 항상 변한다는 사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깨닫게 해준다.

 

방대한 내용들이 펼쳐지고 있지만, 갈수록 우리와 친숙한 내용들이 나온다. 이제는 어느 정도 우리와 동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해야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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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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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글자가 참 예쁘다. 한 글자 한 글자 놓고 보면 잘 썼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웬지 아이들 글자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글자들이 모여 하나의 제목을 이루고 있으니,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산문집의 제목을 이루는 아이의 작은 발과 같다. 죽어가는 사람 옆에 있는 작은 생명력, 그 생명력이 발하는 예쁨, 그것은 마음 속에서부터 아이고, 예쁜 것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되리라.

 

작은 제목이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이다. 이런 제목과 어울리게 표지의 글자가 박완서 선생을 떠올리게 한다. 무언가 예쁨을 연상하게 하는. 

 

몇 년 사이로 내가 젊은 시절 읽었던 작가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가고 있는데, 이 산문집에는 그들과의 교류도 나와 있다.

 

박경리 선생, 화가 김점선,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장영희 교수 등등.

이들과의 추억, 그리고 이들을 기리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 글들. 읽기에 편하기도 하고, 박완서선생과 그들을 함께 생각하게도 하고.

 

이 산문집의 1부에 박완서 선생의 개인적인 삶이 드러나 있다. 개성에서 지내다 서울와서 지내게 된 일, 그리고 자신이 소설가가 되게 된 이유 등.

 

그래서 박완서 선생의 소설 중에서 "엄마의 말뚝"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은 사람이라면 그래 그래 하면서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이 박완서 선생의 소설과 어느 정도 겹치고 있다면, 다른 글들은 박완서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갈하다. 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느낌.

 

글들이 이 산문집에 나와 있는 말처럼 글자들이 사막의 모래처럼 따로따로 놀지 않고, 글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고 있다. 마치 온갖 나무와 풀들이 모여 동산을 이루듯이 박완서 선생의 글들이 하나하나 따로따로 놀지 않고 이들이 바로 박완서 선생을 이루고 있다.

 

이 산문집에서 박완서 선생은 박경리 선생을 대가라고 부르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썼지만, 이제는 박완서 선생도 박경리 선생 못지 않은 대가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읽기에 힘들지도 않고, 마치 박완서 선생이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이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듯이 읽을 수가 있다.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따뜻해진다. 작은 것 하나에도 마음을 줄줄 알았던 박완서 선생의 모습이 이 산문집에서 절절하게 느껴지니.. 자연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질밖에.

 

삭막한 시대, 따뜻한 글이 그리워질 때 가끔 펼쳐보고 싶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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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군인이 휴전선을 넘어 우리네 초소에까지 와서 노크를 하면서 귀순을 했다고 한다.

 

아직은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데, 북한 군인이 우리네 초소까지 오는데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게다가 우리네 군인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이 북한 군인이 초소에와서 노크를 할 때까지 아무런 낌새도 채지 못했다는 것, 이것은 국방에 심각한 위험이 있다는 신호로 보면 정말 무섭다.

 

확실히 우리는 평화의 시대에 살지 못하고,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북한군과 총부리를 마주 대하고 있는 우리나라 군인들이 그렇게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전방에서 지내는 군인들이 별다른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얘기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어떤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그냥 그렇게 마음 놓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넘어가는데 후방에 있는 우리는 국방이 뚫렸다, 안보태세에 구멍이 생겼다고 호들갑을 떠니, 우리 안에 어떤 공포가 잠재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직접 겪고 있는 사람들은 만성이 되어 있고, 후방에 있는 사람들은 공포를 내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그 뉴스를 보고 갑자기 한 편의 영화와 소설이 생각이 났으니, 이건 무슨 오지랖이냐.

 

심각한 문제에 그러한 작품들을 떠올리다니... 사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네 마음 깊숙한 곳에는 어떤 "공포"가 자리잡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지금 평화롭게 지내고 있지만, 이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그것도 바로 저 편에 인간의 얼굴을 한 우리를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이 생각이 바로 "공포"이고, 이 "공포"가 어느 순간 튀어나오면 우리는 집단적으로 '공포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는 생각.

 

평시에는 가만히 숨어 있다가 한 번 나오면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현재 웃으며 함께 지내지만 언젠가는 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그럴 땐 나도 나를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영화 한 편, "공동경비구역 JSA" 그리고 이 영화의 원작인 박상연이 쓴 "DMZ"

 

소설에서는 바로 이 "공포"가 어떻게 발현이 되는지, 그리고 그 공포를 우리가 마음 깊숙한 곳에 지니고 있기에 어떤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는 이런 "공포"의 문제가 빠져 있지만.

 

함께 보고 읽으면 좋은 작품들이다. 지금 이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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