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 창비아동문고 233
김소연 지음, 장호 그림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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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절반 또는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 여성이 절반의 대접을 받았던가. 세상의 절반이 아니라, 남성의 부속물 취급을 받지 않았던가. 남성과 동등한 여성이라는 인식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평등을 지향한다는 서양에서조차 여성이 참정권, 즉 투표권을 얻는 데는 엄청한 노력이 있었고, 또 인류의 역사를 보면 바로 얼마 전에서야 이루어졌다. 이만큼 여성은 남성에 속한 존재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일까? 아니다. 우리나라는 봉건시대를 거치면서 여성의 권리는 한없이 줄고, 남성의 권리는 한없이 늘어만 갔다. 여성이 이름을 지니고 사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다. 그냥 무슨 무슨 씨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여성 앞에 세 가지 문제가 닥친다. 하나는 식민지 문제이고 하나는 근대화 문제,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여성에 관한 문제.

 

이 소설은, 아니 동화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식민지가 막 시작된 1910년대에서 3.1운동이 일어난 직후까지의 사회에서 한 여성이 어떻게 자기를 찾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개화된 사람이라도 여성은 결혼하면 그뿐이라는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식민지에서는 식민지 백성이라는 차별에 여성이라는 차별이 중첩되어 있었으니,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데는 이중 삼중의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소설의 주인공 명혜는 자신의 이름을 갖기를 원하는데, 이 이름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하지만, 어른들은 명혜라는 이름 대신 아기라는 이름으로 주인공을 대한다. 이는 아직 명혜가 완전한 한 사람인 명혜로 존재하지 않고, 집안에 속한 남성의 세계에 속한 아기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이 동화는 명혜의 성장을 보여주는 성장동화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을 통해서 또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화.

 

굳이 동화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소년소설이라고 해도 좋고, 성장소설이라고 해도 좋다.

 

처음부터 흥미롭게 읽히고, 나름대로의 갈등이 잘 드러나고 있어,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게 된다.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결국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얼마나 찾느냐에 있다. 우리가 소설이나 다른 글들을 읽는 이유는 그런 내용이 있구나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참고자료로 삼는데 있기 때문이다.

 

문정희의 시 중에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란 시가 있는데, 이 땅의 명혜들은 지금 자신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고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남성의 분야, 여성의 분야로 딱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다인 세상이다. 여성들은 명혜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남성들도 역시 명혜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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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 - 상상을 현실로 만든 혁신학교 이야기
에냐 리겔 지음, 송순재 옮김 / 착한책가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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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나라도 교육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교육열을 지니고 있다. 또 국민 누구나 다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교육전문가가 무색하리만큼 교육에 대해서는 많이들 알고 있다.

 

그래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많은 논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육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안교육이 1997년 즈음에 들불처럼 일어났지만, 대안교육은 대안교육으로만 멈춰있는 상태이고, 이것이 아직은 공교육까지 퍼지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공교육은 지방자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과부의 통제에서 벗언자지 못하고 있으며, 전국적인 틀에서도 벗언나지 못하고 있다. 즉 학교만의 재량이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불과한 실정이다.

 

여기서 교장이란 한 학교를 책임지는 최고 책임자라기보다는 위에서 내려보낸 정책을 실시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대리인이 사명감을 갖고 교육개혁을 하기란 힘들다고 본다. 사실 교장 중에서 교사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지역사회에서 발언권을 지닌 교장이 얼마나 되는가?

 

또 교과부나 교육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이 얼마나 되는가? '모래 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독일에서는 이미 20년이 넘은 과거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얼마간의 성과를 거둔 학교가 있다. 그 학교의 이름이 바로 헬레나 랑에 학교다.

 

교장의 지도력과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 여기에 학부모와 연계된 교육활동, 또 학생들 스스로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모습 등이 제목을 꿈의 학교라고 붙이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쓴 이 학교의 교장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학생들이 더는 수동적인 가르침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는 주체로서, 학교문 밖 실제 삶의 현장으로 나가보고, 연극을 하고, 실험을 하고, 작업실에서 아름답고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 통해 전인적인 배움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한국의 독자들에게에서

 

우리는 학생과 교사가 날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그런 학교를 꿈꾸었습니다.

- 지은이의 말에서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는 교장은 불가능하다고 먼저 판단하지 않고, 또 관료적인 판단을 먼저 하지 않고, 교육적이라면, 학생들의 배움에 도움이 된다면 우선 시작하고 보자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정규 교과 수업을 줄이더라도 다른 테마 수업을 늘리는 모습들이, 그리고 관료들이 반대할 만한 사항을 타협해가면서 관철시켜 나가고 있다.

 

이런 교장, 부럽지만, 이런 교장이 꼭 독일에만 있으란 법은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혁신학교 책을 읽어보면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교장들이 있다. 다만 아직 이들이 다른 지역에까지 강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해서 그렇지.

 

하여 옮긴이의 말을 보면 우리가 할 일이 드러난다.

 

혁신학교 만들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가능한 한 하나의 완결된 모형을 찾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착상들을 한데 모아 실현해보는 것이다.

- 옮긴이의 말에서

 

나는 교육에는 완결된 모형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때 그 때 과정에서 최선의 과정들을 찾아가는 모습들이 모여 혁신학교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지닌다면 우리가 할 일은 지금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또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시작해야 한다.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한만큼은 이루었을테니 말이다.

 

헬레나 랑에 학교도 처음부터 잘된 학교는 아니다. 이 학교도 처음에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이루었다. 이 중에는 학생들이 스스로 나서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가는 모습도 나온다.

 

마찬가지다. 우리도 시행착오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란 속담. 적절한 속담이다.

 

교육개혁, 혁신학교, 이것은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한 장이다. 이 장들이 잘 익어가는데, 가끔은 구더기도 낀다. 그렇다고 구더기 때문에 아예 장을 안 담글 수는 없지 않은가.

 

시작하자. 긍정정인 관점을 지니고. 안되면 설득해나가자. 끈기를 가지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교의 장이 중요하다. 학교의 장을 어떻게 선출할 것인지 더 많은 고민을 하자. 더 좋은 방법을 찾자.

 

물론 모든 것을 교장에게만 미루어서는 안된다. 교사들의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교사들의 노력에 부응하는 교장제도, 지금 우리가 주장할 첫번째는 바로 그것 아니겠는가. 성공한 혁신학교의 사례를 잘 보라. 어떤 교장이 있는지.

 

또 이 책을 잘 읽어보라. 교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교과부 장관, 교과부 관료, 교육청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읽어야 한다. 이런 책은. 적어도 교육정책을 펼치려면 뭘 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 쪽 교육제도와 유럽 쪽 교육제도, 또 다른 곳의 교육제도 중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만한 정책, 제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하지 않겠는가.

 

다음으로는 학부모들, 아니 우리 어른들이 읽어야 한다. 우리들은 진정 어떤 교육을 우리 아이들이 받기를 원하는지...

 

헬레나 랑에 학교가 꿈의 학교가 아닌 현실의 학교라는 사실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우리에게도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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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벤이라는 태풍이 우리나라를 강타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과 경기는 오늘 이미 초중등학교들은 휴교를 한다고 결정을 했고,

지금 태풍은 제주도 쪽으로 맹렬히 다가오고 있는 중.

 

최첨단 과학시대. 이 디지털 시대에도...태풍은 아날로그로 무섭게 다가오고 있다.

 

0과 1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도 태풍과 같은 자연만은 1과 0으로 해체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을 0과 1로 헤체하고 다시 합치기를 반복하는 이 디지털 세상에 아날로그가 자신의 존재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모습, 그게 바로 태풍이다.

 

디지털이 작아지고, 결국 우리를 거대한 자연 앞에 겸허하게 만드는 순간.

 

조심해야겠다.

 

아직은 우리 인간 역시 0과 1로 해체되고 조립되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 인간은 아직은 아날로그다.

 

이 시집에는 디지털 시대의 인간, 사회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이원의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야후의 강물에 천개의 달이 뜰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는 그러한 디지털이 아니라, 현실의 실체를 지니고 있는 태풍을 맞이하고 있다.

 

시인은 서문에서 나는 클릭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만들어왔다. 자, 과연 태풍 앞에서도 클릭이 가능한가?

 

자연은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그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인은 새로운 감성을 시로 만들어내고 있지만, 아날로그적 심성이 더 강한 나는 이 시집이 어렵다.

 

어쩌면 아직 그렇게 0과 1로, 바코드로 나 자신을 해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살아 있는 육체를 지닌 태풍이 바로 코 앞까지 와 있으니 말이다.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태풍은 지구가 재채기를 하는 거라고. 견딜 수 없어서. 이렇게 재채기를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그럼, 디지털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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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교사
안드레아스 플리트너 외 엮음, 송순재 옮김 / 내일을여는책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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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교사란 참 중요한 직업이다. 아니, 직업이라기보다는 소명을 지닌 자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리라.

그래서 한 때 교사를 성직에 비유한 적도 있었는데, 성직이 정치나 세속을 떠나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언가를 위해서 자신의 전존재를 걸어야 하는 자리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되리라.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교사를 어떻게 뽑고 있는가? 과연 교사들이 막중한 책임을 생각하고 학생들을 대할 수 있는 구조인가? 교사 임용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오로지 지식과 기술만을 습득한 사람이 교사가 되고 있지 않은가?

 

교직에 들어와서는 그렇게 우수했던 인재들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전락하고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를 교사들에게 전가하면 안되는데, 모든 책임은 교사에게 전가하고, 그 구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의 임용제도로는 사유하는 교사는 임용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임용제도를 바꿔야 하지만, 언제까지 임용제도 탓만 할 수는 없는 일. 하여 임용된 교사들도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사유하면서 무언가를 바꿔갈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게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이다. 이미 교사란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고, 또한 자신들의 직업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책임의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교사들에게 사유할 수 있는 자극을 준다면 교사들도 그 사유를 바탕으로 실천에 나설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배움이 이루어지는 모습에서부터 학교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제시하고, 그 사례들을 통해 생각하게 하고, 이것들을 점점 더 교육학적인 이론으로 이끌어가게 책이 편집되어 있다. 그래서 앞부분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라면 뒤로 갈수록 전문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순서대로 읽어가면서 교사들은 교육에 대해서 학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제목이 "사유하는 교사"인가 보다.

 

2장에는 생각할 거리들이 많이 있다. 아니, 90년대에 쓰여진 글이지만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글들이다. 논쟁거리이기도 하고, 아직도 우리가 이루려고 하는 꿈이기도 하다.

 

비록 이 책이 독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요즘 같은 시대는 굳이 어느 특정한 나라의 문제로 끝나지 않으니, 우리나라 교육에서 생각할 점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보아도 된다.

 

보자. 아이들을 인지하고 이해하기, 개성을 존중하기, 재능을 발견하고 촉진하기, 표현과 구상적 작품 활동 등은 이미 교육을 제대로 하려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이고, 우리가 실현해야 할 문제 아니던가.

 

또한 다르게 가르치고 배우기라는 장에서는 교사의 "역할" 바꾸기, '전체적으로', 과목을 초월해서, 다각적으로 가르치기, 심화, '뿌리 내리기', 육체와 모든 감각을 활성화하기, 집중과 침묵 연습, 도움이 되게 판단하기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교육과도 상통한다.

 

또한 사회적 문화와 교육이라는 장에서는 공동체를 경쟁보다 위에 두기, 상이성을 인정하고 활용하기, 배타성을 극복하기, 삶과 노동의 사회적 "문화"를 발전시키기라고 하여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공동체 교육과 유사하지 않은가. 아직도 실현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는 우리가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목표들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와 미래라는 장에서는 사회적 불이익 앞에서 굴복하지 않기, "현실"을 향한 다리 놓기, 공적 책임이라는 큰 과제로 이끌기, 변화된 노동세계를 파악하기라고 하였다. 남의 나라 이야기 같은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 아닌가.

 

이에 대한 답을 교사들이 찾아야 한다. 아니 교사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학생과 학부모, 정치인, 경제인, 학자 등등) 찾아야 한다. 이것은 교사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는 교사, 그가 바로 "사유하는 교사"다.

 

그리고 이런 사유하는 교사가 많아질수록 우리 교육의 미래는 밝아진다. 오래된 책이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는 부분이 많다. 차근차근 읽으면서 생각해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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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가는 길 문학과지성 시인선 123
임동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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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운주사,

머리 속에 떠올려보면 산 속에 폭 박힌 하나의 배처럼, 편안함을 연상시킨다.

 

운주사.

한자어로는 운주사(雲住寺)다. 구름이 머무는 곳. 구름이 사는 곳. 즉 천상의 존재가 지상에 내려와 머무를 수 있는 곳. 이는 민중들이 소망하던 유토피아, 무릉도원이었으리라.

 

그런데 나는 운주사 하면 다른 한자어가 연상된다.

운주사(雲舟寺)!

구름배!

 

지상의 존재들을 천상으로 이끌어가는 곳. 지상에서 천상으로 초월을 할 수 있는 장소로서 운주사를 생각한다. 그리고 운주사 경내에 들어서면 마치 배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포근해지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집 제목이 "운주사 가는 길"이다.

운주사에서가 아니다.

아직 운주사에 도착하지 않았다.

따라서 시인의 인식은 구름이 머무는 곳,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지상의 존재들을 위무해주는 장소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다. 도착을 해야 다시 지상에서 천상으로 갈 수 있는데 말이다.

운주(雲住)에서 운주(雲舟)로!

 

운주사에 전래되어 내려오는 이야기, 황석영의 "장길산" 서두 부분에 나오는 운주사에 대한 이야기, 천불천탑의 이야기는 곧 민중들의 소망이다. 민중들은 운주사에 오길 바랬고, 운주사에서 세상을 뒤엎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도 이른 첫닭의 울음소리는 민중들의 소망을 뒤로 미루게 했으니...

 

시인은 운주사에 가려고 한다. 다시 민중들의 소망을 담기 위해서.. 민중들의 소망과 한이 서린 그곳으로.

 

따라서 이 시집을 지탱하는 힘은 기억의 힘이다. 그리고 나무와 같은 식물의 힘이다. 시인은 시집 곳곳에서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현재를 만든 과거, 이것은 뒤로 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얻는 일이기도 하다. 과거는 과거로만 존재하지 않고, 현재에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힘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인은 자신을 위로해주는 존재로 고향의 살구나무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고단하고 힘겨울 때면/언제든 안아주마, 다독여주는...'(내 고향집 살구나무 부분) 그러한 나무를 이야기하고 있다.

 

얼핏 생각해 보면 나무는 운주사에 대한 생각과 배치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굳건히 박고서 제 자리를 지키면서 제 소임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무는 우리들이 안식할 수 있는 고향같은 존재이고, 고향을 잃었을 때 민중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해 보면, 그곳은 민중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곳, 운주사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즉, 땅에 굳건히 자리잡은 나무는 우리의 아름다웠던 과거를 상징한다면, 이제 그 뿌리를 잃었으니 우리는 찾아가야 한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으로. 그것이 비록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일지라도.

 

우리는 아직 운주사에 도착하지 못했다. 운주사는 아직도 우리에게 진행형이다.

 

첫닭 우는 소리

- 운주사 가는 길1

 

그리고 비밀한 그 골짜기 속에

이미 바깥에서 모두 저버리고

안으로만 대피해온 사람들

다급히 새 왕국을 세우고자 했네

그러나 정사(情死)의 뒤끝처럼

미처 상호(相好)를 가다듬고

법의 하나 제대로 음각할 틈 없었던

조급한 욕망의 흔적들만을

여기에 어지러이 남겨놓았네

그랬다네, 그들은 가장 은밀한 곳에

숨겨둔 돛배 한 척 가득히

창칼에 상한 육체들을 실어나르며

하루 낮과 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우려

돌을 쪼개고 힘든 목도질 나섰다네

하지만 원수 같은 첫닭 우는 소리에

제 어미 품에 깃들이지 못한 축생들

얼굴이 으깨어지고 심장이 터져

무더기로 떼죽음당해갔다네

더러 창자가 꾸역꾸역 기어나오고

사지가 갈갈이 찢겨나간 채

그 격정의 강물에 떠가기도 했다네

그리하여 절정의 시간 후에 엄습하는

허무처럼 그곳은 한 발 내밀면

절벽인 나락의 숲으로 남았다네

끊임없이 슬픔의 항해를 재촉하던

아흔 굽이 죽음의 기항지였다네

 

임동확, 운주사 가는 길, 문학과지성사,2000년 5쇄. 첫닭 우는 소리 전문

 

시인이 광주 출신이고, 젊은 시절, 우리나라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었다는 전기적인 사실을 고려하면 이 시는 다르게도 읽힌다. 단지 운주사에 얽힌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 죽음의 기항지, 우리에게도 연상되는 곳이 있지 않은가. 이젠 죽음의 기항지가 아니라, 새 삶의 기항지로서, 출발지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고...

 

이제 운주사는 운주(雲住)가 아니라 운주(雲舟)였으면 한다.

 

이 시집에서 지금도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시가 있다. 그가 누구인지 역사를 아는 사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임동확의 시들이 대부분 길어서 이 시는 부분만 인용을 한다.

 

그는 죽어서도 명령하고 있다

그는 분명 죽어 나갔는데, 그것도 처참하게

그가 믿었던 심복의 저격을 받아서.

.......(중략)

그리하여 이젠 과대망상의 망나니가

영영 이곳에서 추방된 줄 알았는데

대체 어떤 곡절로 관료들의 거수 경례를 받고

선량한 광장의 시민들을 붙박이게 하는가

......(중략)

정녕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그는 끈질기게 남아

오늘도 우리들 생각들을 통제하고 있다

...... (생략)

 

임동확, 운주사 가는 길, 문학과지성사, 2000년 5쇄.  그는 죽어서도 명령하고 있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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