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벽 -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이청준 지음, 이관수 그림, 방민호 논술, 조남현 감수 / 휴이넘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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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진실이 아니다. 진실을 가장해 우리에게 다가올 뿐이다.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면 그 때부터는 소문이 아니다. 그냥 사실이다. 그래서 소문은 무섭다. 진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여기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문이 벽을 쌓으면 진실은 소문에 가려져 나올 수가 없게 된다. 올바른 진술들은 소문 속에 묻혀 버리고, 진술은 소문의 벽을 넘을 수 없게 된다.

 

소문의 벽을 넘지 못한 진술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응어리가 된다. 한이 된다. 그래서 진술을 하지 못한 사람... 그는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소문에 휩싸여 자신도 또 하나의 소문이 되어 소문의 벽을 더욱 단단하게 쌓아주는 역할을 하던지.

 

이런 소문을 제목으로 삼은 이 이청준의 소설은 읽을 만하다. 재미있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도 한다. 내가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서 좋아하는 작가인 최인훈과 더불어 한 때 이청준의 소설을 무작정 사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의 전 작품을 읽지는 못했지만 꽤 읽었는데...

 

이 작품 "소문의 벽"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가물가물한데, 요즘에 신문에서도 가끔 인용이 되곤 해서 다시 읽어보게 된 작품이다. 읽으면서 아무리 기억이 나빠졌다고 해도 몇 장을 읽으면 이 작품은 읽은 작품이다 아니다를 판명할 수 있으니, 이 작품은 읽지 않은 작품이 확실하다. 그냥 어디선가 줄거리를 보았든지, 아니면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논술과 연결지어 이 작품을 출판한 이 책은 작품을 읽는 재미와 그 작품에 대한 간략한 해설로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 있으며 논술 활동도 곁들여서 나름대로 학생들에게는 유익한 편제를 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문의 벽" 이 작품을 지금 읽은 이유는 단 하나. 소문 때문이다. 소문을 조금 안 좋은 감정이 담겨 있는 용어로 바꾸면 유언비어인데... 지금 이 참혹한 시기에 정부에서는 연일 유언비어를 배포한 자는 엄벌에 처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유언비어란 것이, 소문이라는 것이 진술로 대표되는 진실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할 때 지금 이 시기에 여러 유언비어들이 퍼지고 있다는 얘기는 무언가가 있는데, 분명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진실을 알려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유언비어 유포를 엄벌에 처한다고 하면 그것은 네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라는 얘기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소문을 조장하여 올바르지 않은 소문의 벽을 쌓아 진실이 이야기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소문은 나돌대로 나돌아 검증이 되면 어떤 소문은 사실로, 어떤 소문은 허황된 말로 판명이 된다. 그렇게 놓아두어야 소문의 벽을 쌓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세 가지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것을 중심으로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등장인물인 박준이 주인공이 다니는 잡지사에 투고한 소설 작품. 또 하나는 박준이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의 글. 마지막으로는 박준이 마지막으로 쓴 장편소설.

 

이 세 진술은 서로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들이 박준이라는 사람, 거짓으로 미친 척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인물인 그를 이야기해주는 열쇠가 된다. 그리고 이 열쇠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나는 자신의 진실을 발견한다.

 

그는 작가란 정체가 보이지 않는 불빛의 공포를 견디면서도 끝끝내 자기의 진술을 계속해 나가여 하는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이라고 했다. (147쪽)

 

이 구절은 박준이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작가란 결국 진실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이 말. 이것은 이 소설이 1971년에 발표가 되었으니 바로 그 시대의 현실에서 작가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간접적으로 나타낸 말이라고 하겠다.

 

즉, 이 구절은 박준의 말을 빌리고 있지만 실제로 작가인 이청준이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점점 독재가 심해지고 있던 시절, 유신을 앞두고 있던 시절, 그리고 언론이, 말들이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던 시절, 그 시절에 작가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침묵했던 작가들, 그들은 이 소설의 박준처럼 미치거나 아니면 아예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고 남의 말만을 따라해야 하는 앵무새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작품을 투고해도 발표가 되지 않는 현실에서 박준은 미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정신병원에 스스로 갔다고 표현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정말로 미치지 않았다면 미친 척이라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준은 자신의 장편에서 이런 표현을 한다. 한 밤중에 사람들이 쳐들어온다. 그들은 불빛을 비추면서 어느 쪽인지를 선택하게 한다. 자신들은 불빛의 뒤에 있어 보이지 않으면서 보이는 그들에게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선택하게 한다. 한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가른다. 그런데 선택할 수 있는 판단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대답을 강요당하는 현실.

 

6·25때 일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6·25에 국한되지 않는다. 박준이 병원을 탈출하는 것처럼 그에게는 병원의 의사도 바로 이런 전등의 뒤에 숨어서 자신에게 진술을 강요하는 사람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사회에도 적용이 된다. 자신들은 보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선택하게 하는 것. 그 선택에 운명을 걸게 하는 것. 그런 사회.. 진실이 가려진 사회다. 이런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전등의 뒤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소문이다. 이 소문이 벽을 쌓고 사람들에게 다른 쪽을 알지 못하게 한다. 다른 쪽을 보는 사람을, 다른 쪽에 관심을 두는 사람을 배제하려고 한다.

 

이 소문의 벽을 깨는 것은 자신의 전존재를 걸고 진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몫은 바로 작가의 몫이다. 그런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 소문의 벽이 높지 않은가. 우리 역시 아직도 이런 소문의 벽 뒤에서 우리에게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강요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참혹한 시기... 소문이 소문을 낳고 있는데... 이런 소문의 벽을 없애는 방법은 또 다른 소문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진술(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진실은 가둘 수 없기에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소문의 벽을 허물어뜨려야 한다. 그래야 박준처럼 미치지 않고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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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또 다른 영토가 있다 - 대안의 영토를 찾아가는 한국의 사회 혁신가들
송화준.한솔 엮음, 김종휘 외 인터뷰 / 알렙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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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남들과 같은 생활을 하려고 하면 치열한 경쟁을 통해야 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더라도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노력을 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그것은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생활은 고사하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 자본주의 사회니 자본의 논리를 추구하더라도 청년들의 일자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고령화 사회 또는 고령 사회로 진입이 되면 일자리는 없지만 연금은 수령하는 고령층의 비율이 엄청 높아진다.

 

이런 고령층을 부양하기 위해서도 청년들이 일자리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이에 따라 고령층들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그러므로 청년들의 일자리는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데 그 일자리가 무엇인가? 남들이 모두 원하는 직업인가?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만 하는 직업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지금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직업을 택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아 고생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으니,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과 사회적으로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일이 나를 살아 있게 하기도 하고 나를 표현하기도 하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일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나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일치하는 일을 하는 것이리라.

 

이 책에서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가치와 자신의 가치를 일치시키려는 모습을 일에서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을 다루고 있다.

 

17명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자신의 일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임을 확신하고 있으며, 그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

 

17그루의 나무라고 하는데, 이 나무들이 튼실하게 자라 숲을 이루면 그만큼 우리 사회는 풍요로운 사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모두 돈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돈을 도외시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본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최소한의 자본에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것보다 더해서 이들은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는 사람들, 이 행복이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임에 더욱 행복해 하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쉬운 말로 사회적 기업가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일을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로 하는데...

 

이런 사회적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이 하는 일만 해도 17개의 일인데, 이 일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일이기 때문에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다른 많은 일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도 이런 사회적 기업, 즉 나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일치하고 더하여 자신이 행복해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청년들이라는 것. 청년기에 다른 길을 돌아서 결국 이 자리로 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청년 실업의 시대에 청년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가 있다.

 

또 이들은 이야기한다. 자신들을 무작정 따라하지 말라고. 이들은 이들의 길이 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길이 있음을. 그 길은 자신 스스로 걸어갈 수밖에 없음을. 이들은 단지 이런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청년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꼭 돈만을 추구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돈은 정말로 필요한 순간 나에게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하나뿐인 내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내가 행복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그 일이 사회적 가치와 맞는지 살펴본 후 거기에 몰두해보는 일이다.

 

이것저것 재는 생각만 하는 바보로 남지 말고 청년기에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그런 실천가가 되어야 한다.

 

이런 태도로 지냈으면 좋겠다.

 

이 책에 나온 사례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다. 소위 말하는 88만원 세대들... 길이 여기 있다. 보지만 말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 보라.

 

덧글

 

단, 청년들이 이렇게 시도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적어도 청년들이 실천하다가 안되었을 경우에도 이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 우리는 다시 기본소득을 고민해야 한다.

 

기본소득... 예산 타령을 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 생각으로 기본소득에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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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 - ‘여성스러운 소녀’ 문화의 최전선에서 날아온 긴급보고서
페기 오렌스타인 지음, 김현정 옮김 / 에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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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재미있다. 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니...

 

얼핏 신데렐라로 대변되는 여성 이야기가 여성을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성에 머무르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 책은 이런 이야기보다는 문화에 중심을 두고 전개되고 있다. 신데렐라도 이야기가 아니라 이를 캐릭터로 만들어 아이들이 그를 따라하게 만들고 있다고 하고, 방송에서는 어린이를 내세워 그들의 모습을 따라하게 하고 있으며, 각종 어린이 미인대회를 개최하여 여성으로서 꾸미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게 한다.

 

아주 많은 예들이 나오고 있으며, 그런 예를 읽는 재미도 쏠쏠한데... 저자는 자신의 아이는 그런 공주풍의 여성으로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핑크'에 대한 반대를 하고, 공주가 나오는 영화들을 보여주길 꺼려하며 자신의 아이가 그러한 장난감이나 인형을 갖지 않도록 하려고 한다.

 

평소에 공주풍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온 작가가 자신의 아이에게 자신의 주장을 그대로 실현시키려고 하는 모습은 당연한데, 그게 녹록치 않음을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집에서 철저하게 교육을 하고 금지를 하더라도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문화가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남녀의 차이를 교육받고 체화된 아이들이 그것을 모르는 아이와 거부하려는 아이를 그냥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여성성, 남성성은 없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여성성, 남성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것이 그냥 차이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그러한 차이가 있음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어울리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이 책에서는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 쪽 성에 국한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성에 앞서서 온전한 인간으로 먼저 살아가는 법을 아이들이 익히게 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생물학적인 성보다는 사회학적인 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또 사회학적인 성은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 그런 방법을 어린 시절부터 익히게 하는 것. 그것을 중심으로 나는 읽었는데...

 

그리고 우리나라 상황과 연결지어 성형열풍, 이것은 결국 잘못된 성역할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남자들에게도 성형열풍이 불어닥치고 있으니, 우리나라는 단지 성역할의 고정이 아니라 사회에서 자신이 살아남는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성형에 관한 이야기는 성차를 확대하는 방향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아이돌로 대표되는 연예인 문화는 이 책에 나오는 나이와 우리나라 아이돌과는 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면 우리나라도 점점 나이가 어려지고 있으니... 여자들에 대한 성적 환상을 아이돌이라는 문화로 확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나라는 남성 아이돌 문화도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아이돌 문화가 남녀의 성역할을 고정시키고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스런 소녀', '남성스런 소년'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차이를 지니고 태어난 '인간'임을 먼저 명심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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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빅 브라더 - 지그문트 바우만, 감시사회를 말하다 질문의 책 1
지그문트 바우만 & 데이비드 라이언 지음, 한길석 옮김 / 오월의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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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빅 브라더.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감시자. 그는 전지전능하다. 모든 것을 다 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존재를 알 수 없다. 얼마나 무서운가.

 

벤담의 '파놉티콘'이 이런 원리로 되어 있고, 감옥이 이런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감시체제가 근대의 감시체제라고 한다면, 사실 이 감시체제는 허점이 많은 체제다.

 

적어도 감옥에 가지 않거나 또 누군가의 시선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감시를 당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따라서 근대는 감시하는 자와 감시받는 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감시받는 자와 감시하는 자가 구분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구분할 수가 없다고 보는 편이 옳다.

 

모든 정보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보들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일방적인 감시사회가 될 수 없어 보인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여기에는 배제가 먼저 작동이 된다. 이 배제된 자들은 감시당하는 자에도 끼지 못한다. 이들은 추방당한 자들일 뿐이다. 감시도 필요없는. 적어도 감시될 자들은 배제된 자들이 아니라 배제될 자들이다. 그들은 어떤 위험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낙인찍힌 자들이 된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감시를 당한다.

 

이런 감시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분리가 필요하다. 분리를 바탕으로 배제가 이루어지며, 배제를 효율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 감시라는 기제가 작동을 한다.

 

이 때 감시하는 기제는 예전에는 한 공간에서 특정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현대는, 바우만의 용어대로 유동하는 현대는 한 공간이 아니라 여러 공간에서 특정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의해, 특정한 시간이 아니라 어느 시간에라도 가능한 시간에 이루어진다.

 

 유동하는 현대에는 소비하는 모든 활동들, 움직이는 모든 활동들, 말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감시의 대상이 된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료들이 모이고, 분석되고 활용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감시에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감시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마치 자신의 편리를 위해서는 자신의 자유를 줄이기라도 하듯이.

 

이 점에 대해서 바우만이 데이비드 라이언과의 대담을 통해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논점들이 명확하게 들어오지는 않고, 역시 대책은 제시되지 않지만 문제의식만은 공유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자료가 집적되고 있는지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신용카드를 쓸 때마다, 또는 특정한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살 때마다, 검색 엔진을 이용하여 검색을 할 때마다 자신의 정보는 집적되고 있다.

 

하다못해 우리나라는 학교에서조차도 모든 정보가 집적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보의 집적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 즉, 감시당하는 자가 스스로를 감시하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은 감시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감시당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이 역설. 이것이 현대판 빅 브라더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빅 브라더를 두려워하고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들 하나하나가 모여 빅 브라더를 만들고 있다.

 

소위 말하는 '신상털기'라는 것을 생각해 보라. 아마도 몇 시간이면 자신의 모든 것들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질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감시하는 것 만큼 감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감시사회에서 벗어나지? 지금으로선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바우만은 말한다. 절망의 순간이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이 최후까지 놓지 못할 것이 바로 희망이라고. 희망을 놓지 말자고.

 

그렇다. 아무리 감시사회가 되어도 구멍은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를 보아도 벗어날 구멍은 늘 있지 않던가.

 

그 구멍을 누가 만들어주길 바라서는 안되겠다. 그 구멍은 나부터 먼저 말들어내는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바우만이 말한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서운 감시사회. 여기에 더 이상 일조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하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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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진화론 - 창작의 원리에서 도구까지 위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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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유행이긴 하지만, 이렇게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는 몰랐다.

 

스토리텔링 진화론이라고 하여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으며, 어떻게 하면 스토리텔링을 잘할 수 있나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겠거니 했는데, 왜냐하면 저자가 소설가이자 교수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아니다.

 

스토리텔링에 관한 프로그램의 발전사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이다. 오래 전부터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스톨리텔링에 도움이 될 연구를 해왔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음도 역시 알 수 있었다.

 

특히 외국의 프로그램보다도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스토리헬퍼라는 프로그램이 상당히 우수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바로 스토리헬퍼를 개발한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기 때문이다.

 

즉 창작에 몸담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만든 프로그램이고, 그런 프로그램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기에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그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다.

 

작가는 천재다. 또는 소설이나 극본은 작가의 영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속설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 의하면 누구라도 소설을 쓰거나 극본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조금만 노력을 하면 말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 작가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발판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이 책이 주장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이야기는 나름대로의 핵심요소들을 지니고 있기에, 그런 핵심요소들의 공통점을 추출해서 자신 나름대로 재배열하는 방법을 익힌다면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서 이 프로그램은 시작을 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최근에 발전한 기술을 이용해서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직접 예를 들어서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의 주요 요소를 '아바타'가 어떻게 차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어떤 작품이든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창작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하여 충분히 스토리헬퍼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창작을 할 수 있음을,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다른 나라의 다른 프로그램보다도 훨씬 우수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이런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이는 스토리텔링의 발전이 기계문명과 어떻게 결합하여 완성되어 가는가를 보여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창작의 고통을 느끼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아직은 아날로그적인 작가들이, 작품들이 더 좋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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