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증보판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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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제목에는 진화의 개념이 들어 있다.

 

연장통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을 모아놓은 통이니 사람들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통, 즉 우리의 몸이나 마음을 의미하고, 오래된 이라는 말에서는 인류의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인간에게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제목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문화나 환경에 따라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진화해 온 것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를 학자들은 진화심리학이라고 한다. 심리학이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에서 벗어나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대한 연구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진화'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유의지는 없다'라든지 또 기타 뇌과학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면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자기가 다스린다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진화의 결과로 형성된 뇌와 뇌의 작용에 의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하여 진화심리학은 최신 과학발전과 함께 간다.

 

이 책은 이러한 진화심리학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진화심리학에 대한 이론 설명을 하는 책이 아니다. 그런 책을 원한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진화심리학'을 검색해서 그에 합당한 책을 읽으면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무슨 역할을 할까? 우리가 진화심리학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서 역할을 한다. 아니, 진화심리학이 도대체 뭘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게 한다. 그래서 진화심리학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한다.

 

그리고 그런 목적을 달성했다고 본다. 과학책, 심리학 책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읽을 수 있는 이야기책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손에 들고 읽으면서 그렇구나 하는 감탄을 할 수 있는 책이기에 저자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본다.

 

여기서 더 나아갈 일은 진화심리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일이다.

 

꼭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그런 마음이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은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무런 의문없이 지나쳤던 문제들, 그것들이 사실은 진화의 산물일 수 있다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서 최적의 상태로 살아갈 수 있게 수백만년에 걸쳐서 진화해 온 것이 지금 우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

 

고기에 관해서, 이방인에 대한 태도에 관해서, 털이 왜 없어졌는지에 관해서, 도덕, 종교에 관해서, 그리고 동성애에 관해서 진화론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지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진화론, 아직도 창조론으로 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종교적 신념을 떠나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것조차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제가 바로 진화론임을 이 책은 간명하고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뇌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진화심리학은 더 발전을 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오래된 연장통에 새로운 연장들을 넣어두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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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세상을 비춘다. 그런데 별은 밤에만 비춘다. 낮에는 별들의 빛이 세상이 닿지 않는다. 아니 닿을 필요가 없다. 별빛이 필요없을 만큼 밝기 때문이다.(사실 별빛은 낮이나 밤이나 같다. 다만 우리의 눈에 보이냐 보이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지만... 그러한 과학적 사실 말고... 우리가 느끼는 진실의 면에서는 이렇다)

 

그렇다면 별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다. 결국 별의 바탕은 어둠이다. 어둠이 없다면 별은 제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나라 청문회 문제로 말들이 많다. 청문회라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직책에 어울리는지를 함께 묻고 답해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청문회 자리에 나선다는 것 자체는 세상의 별이 되고자 한다는 얘기다. 그는 자신의 빛으로 세상을 조금더 밝게 비추고자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별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밝아서, 그들의 삶이 대낮이어서 도리어 별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무슨 무슨 비리 비리 비리......

 

언론에는 그 많은 비리들이 감자를 캘 때 감자들이 줄줄히 딸려나오듯이 나오고 있다. 세상에 그들은 자신의 삶이 너무도 밝아서 그러한 어둠 쯤은 쉽게 감춰질 줄 알았나 보다.

 

그러나 자신의 어둠을 감추었던 밝음이, 그러한 대낮이 청문회라는 자리에서는 결코 대낮이 되지 못한다. 청문회는 어둠이다. 별의 바탕이다.

 

별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서야 하는 바탕이다. 청문회라는 바탕에 서 있을 때 그는 진짜 별인지 아니면 별 흉내를 내고마는 가짜 별인지 판명이 된다.

 

청문회라는 바탕, 철저하게 어두운 바탕에서 그 동안 자신을 가리고 있던 낮, 밝음을 제거하면 진짜 별이 되는 사람들은 그 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대낮에 가려져 있던 빛들이 제 구실을 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대낮에 가려져 있던 어둠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 대낮을 제거하고 나면 이제는 어둠만이 남는다.

 

그들에게는 청문회라는 어둠에서 자신들의 어둠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빛을 발할 수가 없다. 별이 될 수가 없다. 그냥 묻힐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지... 이렇게 자신의 대낮에 가려져 있던 어둠이 청문회라는 바탕에 의해 드러나는데도 그걸 한사코 부인하고 '난 별이다. 난 빛이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대낮일 때 자신의 어둠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없애려고 하고, 대낮이라 티가 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빛을 간직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하는데.. 그래야 정말 별이 될 수 있는데...

 

세상의 별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청문회라는 바탕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 대낮에는 빛을 발하지는 않지만 결국 빛을 발하게 되는 자신만의 빛을 간직하는 삶을 살기를...

 

자신만의 빛이 없이, 대낮에 겨우 자신의 어둠을 감추고만 있던 이들... 청문회라는 바탕에서 빛은 커녕 자신의 존재조차도 가두어버리는 이들. 반성하길.

 

정진규의 '별'이란 시... 마음에 와 닿는다.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정진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문학세계사. 1990년.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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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기억 - 아파르트헤이트가 건네는 이야기들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베벌리 나이두 지음, 이경상 옮김 / 생각과느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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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이 나라에 대해서 알려 주는 인물은 둘이다.

 

한 명은 인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간디. 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갖 차별을 받고 나서야 진정한 인도의 독립운동, 비폭력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하니 그와 이 나라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 한 명은 넬슨 만델라.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으로 또 남아프리가공화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반대해서 온갖 탄압을 받았던 사람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이렇게 두 사람에 의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나에게 다가왔다.

 

지금은 흑백차별이 별로 없지 않나 싶은데...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폐지된 지 20년이 넘었으니, 흑백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토대가 마련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더 많은 자료를 알고 있지 못해서 무어라 말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이러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판치던 시대부터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어 무지개 정책(인종에 상관없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사회를 만들어가는 정책)을 펼친 이후까지를 배경으로 시대 순으로 여러 편의 단편들을 모아 놓았다.

 

1940년대부터 시작하여 2000년에 이르러서 이 작품집은 끝나는데...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인종차별 정책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백인 아이를 주인공으로, 때로는 흑인 아이를 주인공으로, 또 인도 출신의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아이들의 눈에 비친, 또는 아이들이 경험한 인종차별의 잔혹함을 표현해 내고 있다.

 

인종차별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지 이 작품을 읽으면 자연스레 느낄 수가 있는데, 최근에 본 영화 "헬프"와 연관이 되어 더더욱 마음에 남았다.

 

이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사람들을 네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영국인과 같은 백인, 예전에 이 나라로 들어와 정착한 보어인(이렇게 두 집단은 최상층을 이루게 된다), 백인과 흑인의 혼혈(컬러드라고 불린다), 그리고 원주민이라 불리는 흑인, 여기에 나중에는 인도계 사람들까지(아마 이들은 컬러드라고 하는 흑인들을 사람취급하지 않는 그런 사회. 여기에 흑인만큼 차별받지는 않지만, 백인처럼 대우받지는 못한다).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고, 생명의 무게는 어떤 생명체든지 똑같다는 생각을 하면 어떻게 피부색깔로 사람들을 차별할까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이런 습성이 남아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사실 피부색에 의한 암묵적인 차별이 있지 않아 싶어 반성이 되기도 하고.

 

이런 차별의 습성이 경제력의 차이를 차별로 전환시키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마지막 작품은 아마도 인종차별 정책이 없어진 다음에 경제력의 차이가 또 다른 차별을 낳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차별도 아이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바뀌고 있지 하는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작품 제목이 '장벽을 넘어'인 것을 보면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서 과거에 일어났던 차별은 철저하게 기억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차별은 인종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그것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됨을 이 책의 마지막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그 자체로 존귀함을. 누구나 동등함을. 그래서 함께 지내야 더 행복함을, 힘들었던 과거를 작픔으로 표현해 내 기억함으로써 잊지 말자고, 그 바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작가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어찌 남 나라 일이겠는가. 우리도 지금 경제력에 따라서, 또 사상에 따라서 차이를 차이로 인정 안하고 차별로 전환시키려는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가.

 

그러면 안됨을 이 책에 나와 있는 살아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그런 사회가 바로 야만임을. 문명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어울려 삶임을...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자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의 일. 잊어서는 안된다. 기억과 용서는 다른 말이다. 용서는 바로 기억에서 출발한다. 잊지 않음,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함. 그것이 바로 기억이고 용서다.

 

한 편 한 편의 소설들이 마음 속으로 파고든다.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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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에서 카프카로 모리스 블랑쇼 선집 11
모리스 블랑쇼 지음, 이달승 옮김 / 그린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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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발음을 해보면 참 강한 발음이 나온다. 이름에 거센소리가 이렇게 연달아 있을 수도 있다니.

 

그의 이름 만큼이나 삶도 참으로 강렬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에 살고 문학에 죽으려 했던 사람이었으니.

 

그는 늘 고독 속으로 들어가려 했고, 그 고독 속에서 글을 쓰려 했다. 글이 쓰여지지 않았을 때 더한 고독으로 들어갔으며, 반대로 글이 쓰여졌더라도 고독 속으로 들어갔다. 하여 그는 지하실에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했다.

 

지하실.

 

무언가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 그곳에서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카프카는 그곳에서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또 남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그런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치고 그는 결코 지하실로 들어가지 못했으니, 그가 지니고 있었던 생활이라는 짐이 그를 늘 지상으로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과는 반대로 그는 법과 관련된 그것도 보험과 관련된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문학과 생화의 불일치가 그를 더욱 고독으로 몰아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고독이 그를 경계인으로 살게 했고, 그의 작품도 이 쪽도 저 쪽도 아닌 양 쪽에 걸쳐 있는 그런 느낌을 주고, 또 그의 작품은 어쩌면 이곳과 저곳을 넘나들 수 있는 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이긴 한데 잘 보이는 문이 아니라 감춰진 문. 그래서 공들여 찾아야만 하는 문. 그것이 그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프랑스 학자인 모리스 블랑쇼가 카프카에 대해 쓴 이 책은 카프카에 대해서 여러 면에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아마도 카프카 작품을 읽은 사람을 전제로 쓴 듯한 느낌을 주는 글인데, 그만큼 글 내용이 쉽지 않다.

 

물론 카프카 본인이 쉽지 않은 인물이고 그의 작품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니, 카프카 작품의 주석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 역시 난해한 것이 정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프카가 자기만족을 위해서 글을 썼다고 하더라도, 또는 자기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편으로 자신의 죽음을 나타내는 글쓰기에 사력을 다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카프카에 관한 책들은 좀 쉬웠으면 좋겠다.

 

카프카 소설을 읽어도 난해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카프카에 대해서 설명을 한 책조차도 이렇게 어렵다니... 도대체... 카프카 문학을 전공한 사람만 이런 책을 읽으란 말인지...

 

적어도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카프카의 "변신" 정도는 배우지 않나, 또 좀더 나아가면 "성"아나 "소송"정도를 읽는 학생들도 나오는데, 정작 카프카에 대한 책들은 어렵기 그지 없으니,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가 이토록 어려워야 하는 것인지...

 

어느 정도 카프카에 대해서 감을 잡을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그의 전집을 읽은 다음에 이 책을 읽으면 블랑쇼의 이 책 내용이 어느 정도 머리 속에 들어오기는 할 것 같다.

 

카프카.

 

그는 이름만큼이나 매혹적인 사람이다. 그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고.

그런 그에 대해서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음에, 이 책이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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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집이다.

 

너무도 슬픈.

너무도 참담한.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노아의 방주는 세상 생물의 종말로부터 생명체들을 구해냈다고 하는데, 세월이라는 이름을 가진 배는 청춘들을 비롯한 많은 생명들을 바닷속에 가두어 버렸다.

 

이 배가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배를 둘러싼 사회가, 사람들이 그랬지만... 너무도 어이없고, 너무도 덧없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문제는 일이 일어난 다음에 벌어졌다.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아 지금까지도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 있으며, 문제가 발생했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있으며,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책임질 자리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으며, 그 불똥이 온전히 행복한 오늘을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떨어지고 말았다.

 

수학여행 전면 유보, 더불어 수련회 유보.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 자기들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고자 열망했던 전국의 많은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학교라는 공간과 가정이라는 공간을 벗어날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의 놀이 시간을 뺏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장은 집과 학교와 같은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다른 경험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고로 인해서 전국적으로 학생들이 가져야 할 성장의 기회를 교육을 주관하는 교육부에서 박탈한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이었는지, 이번 호를 읽으면서 생각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이번 호를 읽으며 생각한 것은 우리가 한 교육이 과연 무엇이었나 하는 것.

 

도대체 17-18세가 된 아이들이 자신들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남의 말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가 하는 문제.

 

쥐는 배가 좌초할 것 같으면 먼저 탈출을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선원들은 쥐가 탈출하는 것을 보고 배의 위험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하는데, 동물들이야 본능적인 직감으로 그렇게 한다고 해도, 사람 역시 동물적인 생존 본능이 있을텐데...

 

쥐를 열등한 동물로 취급하는 우리들이, 정작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쥐만도 못하게 행동하다니...

 

어쩌면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의 이러한 생존본능을 아주 철저하게 죽였던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통해서 순응하는 법만 배웠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판단하는 법에 대해서는 배울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모두가 순응이지 결코 비판적인 사고는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듣는 소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똑바로 앉아. 조용히 해. 왜 말대꾸야. 가만히 있어. 제대로 줄 맞춰. 자세 바르게. 나서지 마라 등등.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남과 다름을 인식하고 다름을 강화하는 교육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같아야 된다는 신념으로 모두가 같아지는 교육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각까지도 같아지는 교육.

 

그래서 남과 다른 생각, 남과 다른 행동을 하면 눈총을 받고 비판을 받고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 그런 생활들, 그런 교육들.

 

그 교육의 효과가 바로 이런 사태 아닐런지. 말을 잘 듣는 학생들이 속절없이 자신들의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이런 현실을 낳았던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은 이런 교육 현장을 바꿔가는 일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지.

 

남을 보지 말고 우런 나를 보는 연습부터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바로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는 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이번 호에 있는 메르코글리아노의 글 중에 '전자미디어와 이별하기'라는 제목을 단 글이 있는데(78-79쪽) 이 글을 읽으며 세월호와도 연결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서 최고속 인터넷망이 가장 발달해 있으며, 국민들의 사용량도 세계 최고이고, 스마트폰 사용도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스마트폰을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니고 있었음에도 자신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것이 제 구실을 전혀 하지 못했음을, 그 기계가 신고는 했을지언정 그 다음 생명의 구조로는 이어지지 못했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아이들은 이 스마트폰을 믿고 승무원들의 방송을 믿으며, 또 교사들의 지시를 따르며 마냥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을까. 직접 현실을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스마트폰 화면으로 자신들의 현실을 보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일까?

 

이런 가정은 위험하고 불필요하지만, 그래도 만약, 만약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그 혈기왕성한 나이의 아이들이 배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었을까... 누군가는 참지 못하고 배 위로 올라가 보지 않았을까. 누군가 올라가 보라고 밖으로 보내 보지 않았을까?

 

스마트폰이 없는 그 시간을 아이들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하여 우리는, 아니 나는 '세월호'을 잊지 않겠다. 아니 잊어서는 안된다. 잊을 수가 없다. 그 잊지 않는 방법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늘 생각하겠다.

 

아이들이 지금처럼 자라지 않게, 이렇게 무능하고 어리석은 어른들로 자라나지 않게...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다. 그것이 내가 '새월호'을 잊지 않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들레 93호.

과연 우리는 '세월호'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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