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명, 어느 날
스티븐 에모트 지음, 박영록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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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인구가 100억이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당연히 지금의 인구 추세대로라면 지구의 인구는 곧 100억 명에 도달하게 된다.

 

지금 인구가 약 70억 정도라고 하는데... 100억이 된다면 우리 지구가 인간을 위해서 감당해야 할 몫이 어떻게 될까?

 

지구가 버틸 수 있을까? 지구가 인구를 감당할 수 있는 상태를 네 가지로 분류하여 제시하고 있는데...

 

대기권(우리가 숨쉬는 공기), 수권(지구의 물), 빙권(빙원과 빙하), 생물권(지구의 식물과 동물) 36쪽

 

지금도 이 네가지 조건은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데... 대기권은 우선 이산화탄소의 과다 방출로 악화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서 지구는 온난화가 심해지고 이상 기후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후협약을 맺었으나 이산화탄소 방출량은 줄지 않고 있으며, 오존층의 파괴는 점점 심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에 대량의 메탄가스들이 방출되고 있는 현실에서 '소방귀에 세금을' 매기자는 말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수권은 물부족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지하수가 고갈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엄청난 물들이 소비되고 있어서 음용수로 사용될 물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물을 사서 먹는 경우가 많으며, 아프리카와 같은 대륙에서는 물부족으로 인해서 심각한 위협을 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빙권은 이미 심각해지고 있다. 빙하가 녹고 있어서 낮은 해안지대는 침수가 되고 있으며, 투발루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이미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빙권의 약화는 이것만이 아니다. 빙하가 녹으면서 빙하 속에 갇혀 있던 메탄가스들이 대기로 방출되기 시작하여 대기권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빙하가 녹아 새로운 땅이 생기고 자연자원을 채굴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을 대기권의 오염이 상쇄하고도 남는다. 하여 빙하가 녹는 것은 지구에게 좋은 점보다는 안 좋은 점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생물권에 대해서는 이 책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생물종 다양성 보호에 앞장서는 단체인 국제자연보호연맹은 2012년 현재 양서류 전체의 41퍼센트, 조초산호류 전체의 33퍼센트, 포유류 전체의 25퍼센트, 조류 전체의 13퍼센트가 곧 멸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55쪽.

 

지구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중요한데, 그러한 다양성이 인구 증가에 따른 개발로 인해 파괴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생물 다양성이 파괴된다면 인간의 생존에도 많은 문제점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구가 100억이 될 때 우리 지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조금 더 심화된 모습으로, 더 심각한 상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있을까?

 

이 책에서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둘째는 인류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155쪽

 

기술혁신으로는 다섯 가지 방안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녹색에너지, 원자력, 담수화, 지구공학, 제2의 녹색혁명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산화탄소를 줄이는데 실패하고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단 한 가지 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우리의 생활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 대가를 치르지 않더라도 우리의 후손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 책의 마지막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섬뜩한 해결책밖에는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인구 100억 명. 한 때 인구가 국력인 적이 있었는데, 또 우리나라는 인구감소를 무슨 국가적인 문제로 여기고 인구증가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인구 증가에 따른 범지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점...

 

이 책은 그러한 점을 100억 지구라는 가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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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시들이다.

 

그런데 마음이 애잔해 진다.

 

슬프다. 농업은 사람을 살리는 일인데, 정작 그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

 

자신의 희생으로 우리들을 살리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너무도 예의를 지키지 않고 있지 않은지.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농업개방도 거의 이루어졌고, 이제는 쌀 마저도 개방되어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아주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는데...

 

도시는 개발이 되어 빌딩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점점 솟아오르고 있는데, 농토는 빈 들이 되어 가고 있는 현실.

 

농촌에 가면 놀고 있는 땅 (하긴 어떤 때는 농사를 짓지 않으면 아주 잘했다고 보조금을 지급하던 때도 있었는데...)도 많고, 곳곳에는 폐가가 남아 있는데...

 

여기에 농촌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이라서 50대면 청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데...

 

그렇게 우리나라 농촌은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농업에 대해서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않는다.

 

아니 농업은 투자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한다.

 

이 시집은 오래 전에 나왔다. 내가 헌책방에서 구입해 갖고 있는 시집이 1990년에 나온 것이었으니.  90년이 되기 전에도 우리나라 농촌은 이리도 힘들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으니.

 

농업.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우리가 우리의 목숨이라고 생각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이다.

 

"농민에게 월급을!"이라는 주장... 공허한 주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고진하의 시집 중에 한 폭의 수채화같은, 그러나 너무 슬프고 애잔한 수채화 같은 그런 시. '폐가'

 

폐가

 

휘영청 밝은 달빛 쏟아지는

솔고개 마루터

폐가 한 채

반쯤 내려앉은 썩은새 지붕 위엔

올망졸망

쫓겨난 흥부네 새끼들 같은

탐스런 조롱박들이 뒹굴고 있었다

 

고진하,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민음사. 1990년. 13쪽

 

중국 주석인 시진핑이 방한 한 지금. 중국에게 농산물까지 완전히 개방해서 우리 농촌이 더 힘들어진다면 정말로 우리나라 농토엔 무엇이 남을까... 우리는 그 빈들에 집들만 지을까? 공장만 지을까?

 

빈들이 식물들도, 곡물들로, 우리들의 삶으로 차게 해야 할텐데... 이렇게 '폐가'가 늘어나는 농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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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 - 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 너머의 역사책 1
이희근 지음 / 너머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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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2007년 8월 18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한국 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고 '단일 민족 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5쪽

 

다음에는 이런 말이 이어진다.

 

  이와 같이 중국인,, 일보인, 그리고 북방 유목민족 등 한반도의 주변 여러종족 및 민족만이 아니라, 멀리 무슬림 세계의 아랍인까지도 오늘날 한민족으로 지칭되는 구성원의 일원을 이루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현재 한국인의 관념 속에 자리하고 있는,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란 신화는 만들어진 역사 즉,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8쪽

 

어떤 책에서는 이런 말도 있었다. 중국인들이 세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잘 살고 있지만, 유일하게 중국인이 자신들의 공동체 만들기에 실패한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은 단일민족이라 배타적이다.

 

그런데... 이게 자랑일까? 그리고 우리가 진짜 단일민족일까? 단군신화만 보아도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 될 수 없지 않았을까? 곰족과 호랑이족. 그리고 천계족과 지상족. 이렇게만 보아도 이미 고대사회부터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에 갇혀 독일의 아리안 순수혈통을 주장한 히틀러의 광신을 비판하면서도 우리 자신이 그러한 틀에 갇혀 있음을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그러한 신화가 허구임을, 우리는 애초부터 다문화 사회였음을, 우리가 단일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얼토당토하지 않음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고조선 시대에 위만부터 시작하여 삼한시대 특히 가야 전에 마한, 변한, 진한 때에도 역시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았으며, 왜라는 이름을 지닌 사람들은 지금의 일본과 똑같은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우리와는 다른 민족의 사람들이 한반도 남쪽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통일신라 때에는 아랍인들까지 들어왔음을 역사적 근거들을 들어 보여주고 있으며(이 책에서는 나오지 않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도 외국에서 건너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때에는 국제무역항은 벽란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종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함께 살아갔다고 한다.

 

여기에 거란과 여진에서 넘어온 사람들, 몽고에서 넘어온 사람들, 그리고 다시 명나라 유민들, 또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정착한 일본인들 등등 하여 이미 예전부터 우리는 다문화 사회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많은 민족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하긴 했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이 지금처럼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백정이다.

 

'백정'은 유목민족이 우리나라에 정착한 결과로 보여지는데, 유목생활을 강제로 정착생활로 돌리려는 정책으로 인해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받았으며, 제대로 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백정'을 단지 천민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유래가 바로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온 다른 민족 구성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차별이 어쩌면 지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의 연원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고.

 

책에 "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라는 말이 있다. 다문화 사회는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는 사회다. 그런 사회가 강한 사회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단일종은 멸종되기 쉽다. 마찬가지로 단일성을 강조하는 사회는 지속되기 어렵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엄연한 다민족 사회다. 그걸 인정하기에 다문화 교육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다문화 교육이 어떤 때는 우리 민족 문화를 다른 민족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모든 문화는 평등한데 다만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쪽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래 전부터 다른 민족구성원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다. 하지만 그들을 우리 문화에 동화되는 쪽으로 정책을 펴왔는데... 그런 결과로 다민족 문화가 아직 우리나라에 제대로 살아남아 전승되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아니다. 역사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우리는 다문화 사회가 이미 되었다. 그렇다면 다양한 문화가 함께 어울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이 책은 우리의 다문화 역사를 살펴보게 함으로써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 민족의 다문화 역사가 이리도 오래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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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온 시간을 살아가기 - 몸도 마음도 저당 잡히는 시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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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현대.

이것이 현대를 바라보는 바우만의 관점이다.

유동하는, 무엇으로 변해갈지 모르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그렇기 때문에 예측을 하기 힘든 시대. 또 한 사람이 한 직장에서 한 가정을 꾸리고, 한 장소에서 평생을 살아가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수 없는 시대가 바로 현대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런 유동하는 현대에 직면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분석을 담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시트랄리가 질문을 하고 바우만이 대답을 하는 식으로 엮어진 대담집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현대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현대에 대한 분석 중에 머리 속에 쏙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는데 바로 규제완화에 대한 구절이다. 우리는 지금 '규제완화, 규제완화'하는 여당의 높은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그들은 규제완화를 통해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하는데, 바우만은 이러한 규제완화가 어떻게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일으켰는지를 이 책의 앞부분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규제완화는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있는 자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몰아주는 정책이고, 이런 규제완화로 인하여 중산층은 하층민으로, 하층민은 버려지는 삶으로 내몰리게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규제완화를 강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권력은 전지구적인 자본에 넘어갔는데, 정치는 지역적으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규제완화에 대한 그의 글을 보자.

 

우리는 이제 좀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한다는 미명 하에, 인간적 대담성과 주도성을 터무니없는 규제들로부터 해방시켜 선택의 자유를 증진시킨다는 미명 하에 촉진되는 규제 완화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즉 국가 개입을 찬양하는, 즉 규제 완화로 풀어놓은 자유에 의해 촉발된 파국을 강제로, 국가가가 지원책을 내놓아 구제하는 것을 찬양하는 정반대 노래의 합창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을요. 79쪽

 

이렇게 국가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국가가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의 권력 행사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의 권력행사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몇 년에 한 번 하는 투표로는 권력을 견제할 수 없는데, 그나마 남아있는 견제 수단으로서의 선거에도 제대로 참여하고 있지 않은 형편이다.

 

이는 그동안 국가나 정치권력에 의해 밖으로 밖으로 내몰려 더이상 중심의 일에 참여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이들은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는데, 그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고, 의식이 어떻다느니, 왜 자기 권리를 포기하냐느니 하는 말들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하게 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내몰린 삶들을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노력이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에 자그마한 틈을 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서는 지금의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권력을 행사하는데 필요한 대상은 초기에는 토지였다고 한다. 식민지로 나타나는 토지가 남아 돌던 시대, 자본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든지 노동과 자본을 식민지로 보낼 수 있었고, 폐기물, 일명 쓰레기라고 불리는 대상들을 식민지에 보내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통이 발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식민지는 사라졌다. 그 때 다시 개척한 식민지는 바로 사람이다. 사람, 특히 연령대를 불문하고 그들을 소비자로 만들어 버리는 자본의 능력. 이런 자본의 능력으로 우리나라는 지금 어린 아이들까지도 상품의 미끼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다.

 

사람의 연령층으로 더 이상 확대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이들이 선택한 식민지는 바로 몸이다. 몸에 대한 권력의 행사. 무궁무진하다. 하여 우리나라는 성형천국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제 사람의 몸은 경제권력의 대상이다.

 

이런 몸에 대한 확장은 이제는 몸 속으로까지 퍼져 나간다. 유전자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유전자조차도 상품이 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러한 것들을 넘어서서 자본은 이제 우주로까지 눈을 돌린다.

 

이렇듯 자본은 정말로 끝없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식민지를 만들어내고 확장해 간다. 거기에 대응하는 권력은 아직도 미약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이미 현실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무언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고,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견고한 자본의 권력에 흠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틈을 내는 행위, 이를 '사랑'이라고 하고 싶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 바로 희망, 유토피아를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을 남녀간의 사랑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확장된 사랑으로 해석하면 사랑은 이 책에서 말하는 이런 의미, 이런 태도가 된다.

  

사랑은 장기간의, 고된 노력의 산물로, 위험하여, 항상 차질이 빚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름 아니라 언제든 곤란한 타협과 무거운 자기희생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을 것을 요구합니다. 286쪽.

 

그렇다. 현실은 유동적이다. 이 유동적이라는 말이 절망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전환시키는 힘,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하고, 사랑은 현실을 똑바로 보게 하는 힘을 우리에게 부여해주고, 현실에서 더 나은 가능태로 나아가게 하는 동기를 부여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바우만의 이 책. 더 유동하는 우리나라에 우리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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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이야기로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청문회가 아니라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사람들(?)이 청문회 대상이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청문회법을 개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와 시끄러운 것이다.

 

그런데 잘 이해를 못하겠다. 청문회라는 것이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제도 아닌가? 그것도 나라를 좌지우지 한다는 정치권 중에서도 장관급 이상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조선시대로 따지면 판서급 이상에 대한 청문회를 한다고 하는데, 그 청문회 무용론이 나오질 않나, 아니면 왜 청문회를 하는데 그 사람이 그 자리에 맞는 능력을 지니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를 따지지 않고, 개인신상에 관한 것들부터 따지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하더니, 자신들이 야당인 시절 행정부의 관료들을 엄격한 잣대로 선별해야 한다고 기를 쓰고 청문회법을 만들어 놓더니, 이제 여당이 되니, 그것과 이것은 다른 문제라고 개인의 능력과 비리를 같은 선상에 놓지 말라고 하고, 그런 기준으로는 어느 누구도 통과할 자신이 없으니 청문회법을 개정하잖다.

 

조변석개. 때에 따라 이렇게 행정부 관료들에 대한 기준이 달라져도 되는지 모르겠다. 굳이 옛말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아니던가.

 

세상에 제 몸 하나 깨끗히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가정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으며, 또 제 집 하나 다스릴 능력이 없는 사람이 나라를 경영할 수 있으며, 제 나라를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는 통치자가 어떻게 세계 평화에 기여하겠는가.

 

물론 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순서대로 가진 않겠지만, 적어도 '수신과 제가'는 '치국'에 앞서거나 동시에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에만 빠지게 된다. 그러니 개인신상에 관한 것들이 청문회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서양의 경우, 청문회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 이미 추천과정에서 이런 문제는 다 검증이 되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검증을 마치고, 이 검증 기준을 통과한 사람만이 청문회 대상으로 추천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청문회에서 굳이 개인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없다.

 

이미 검증을 거친 것들을 반복할 만큼 시간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때는 자리와 능력이 어울리느냐를 중심으로, 또 정책 비전을 중심으로 청문회를 실시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도 전에 우리는 개인 문제로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위장전입, 병역미필(가족까지 포함하여), 논문 표절, 전관예우, 부적절한 언행 등이 청문회 대상자들마다 오르내리고 있으니...

 

이래서 청문회장에 가기 전에 이미 까발려질 대로 다 까발려지니 '청문회에 가기도 전에 개인적 비판이나 가족들 문제가 거론되는 데는 어느 누구도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고, 높아진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인터넷 한겨레 신문에 난 2014년 7월 1일자 기사 중에서 대통령의 말이라고 한 부분 재인용)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이 곧 청문회 검증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정작 문제는 청문회 검증 기준이 아니라 그 기준에 미달되는 사람을 추천하는데 있지 않나. 행정부의 장관이 되려는 사람이면 검증 기준이 매우 높아야 하지 않나. 적어도 선비란 개인적인 청렴함이나 가족들의 청렴함은 기본이요, 여기에 능력까지 갖추어야 하지 않나.

 

그러니 청문회의 검증 기준은 낮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아져야 하고, 적어도 자신이 행정부의 장관 정도 하려면 이 높아진 검증 기준을 가뿐히 통과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정도 기준도 통과 못할 사람은 나와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에 불과하니 행정부에서 일을 한다는 헛된 욕심을 버리는 것이 자신의 삶과 우리 사회의 삶에 더 도움이 되는 것 아닐까.

 

따라서 청문회 검증 기준은 낮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아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검증 기준을 통과한 사람만이 진정한 선량(選良)이라는 소리를 듣고 책임있는 자리에 갈 수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진정 좋은 사회이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말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당연과 물론의 세계'(김승희의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자서에서)에 우리는 너무도 물들어 있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 벗어나는 일은 너무도 무거운 싸움이 된다.

 

내가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던 것을 느끼면서 그것을 털어내기 위해서 싸우는 싸움,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고, 너무도 '무겁고 힘든' 싸움이다.

 

나와 같은 보통 사람도 이럴진대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이 '당연과 물론의 세계'와 싸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들 것인가. 그들에게는 얼마나 엄격하고 높은 잣대가 주어진 것인가. 그걸 알아야 하지 않나.

 

검증 기준을 탓할 것이 아니라 검증 기준을 가볍게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신이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는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이어야 할테니 말이다. 

 

하여 정치를 한다는 사람, 또 행정부에서 고위관료로 일을 하겠다는 사람, 더 높은 곳에서 나라를 위해서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사람들은 적어도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 속해 있으면 안된다. 이들은 끊임없이 이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벗어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주어진다.

 

김승희의 제목과 같은 시를 보자.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1

 

「이 문은 자동도어이오니

개폐를 운전자에게 맡겨주십시오」

 

누군가 나에게 넥타이를 입힌다

그리고 질질 끌고 간다

 

김승희,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세계사. 1995년. 11쪽

 

하여 우리는 이런 '토끼장의 평화'를 벗어나기 위해서 정말로 또다시 '무거운 싸움'을 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팔복을 빗대어 시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마치 윤동주의 '팔복'을 읽는 느낌이 난다. 진정 이런 복은(이게 복이라니, 참 무서운 역설이다) 우리가 '무거운 싸움'을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다가오리라.

 

八福(팔복)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땅의 나라가 저의 것이요

 

당연을 따르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당연을 따르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당연을 따르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당연을 따르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토끼장의 평화가 저의 것이라

 

김승희,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세계사. 1995년.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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