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겨레 신문 첫면에 난 기사의 제목

 

"침묵 깨고 강공…박대통령 '세월호법' 걷어찼다"(2014년 9월 17일자)

 

대통령의 면담을 요청하고, 여당과 야당이 제대로 정치를 이끌어가지 못하니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고, 삼권분립이라지만 아직은 제왕적 권한을 지니고 있는 대통령이 나선다면 문제 해결에 한 발 다가설 것이란 생각에 대통령의 나서주기를 바라던 유족들의 바람이 어제 장고 끝에내린 대통령의 결단(?)으로 끝나버렸다.

 

대통령은 자신이 나서면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하면서 세월호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을 거절했다

 

이 거절을 한겨레 신문에서는 걷어찼다고 표현했는데, 언제든지 자신을 만나러 오면 만나주겠다는 대통령의 약속도,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던 대통령의 말도 어제 이 말 속에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대통령의 권한이 큰데, 삼권분립이라고 하지만 국무총리부터, 대법원장, 국회의장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이 없는 지경인데...

 

지금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세월호이고, 이 세월호 문제가 도대체 삼권분립 체계 안에서, 또 현 사법체계 안에서 해결이 안되고 있기에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대통령이 이번에 과감하게 결단을 내 버렸다.

 

"그것은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그럼 누가 관여하지? 해경은 일종의 경찰인데, 그 해경이 문제의 핵심에 있는데, 또 여러 가지 의혹을 사고 있는 집단들이 힘있다고 하는 집단인데... 현재의 사법체계 안에서 잘 해결이 되지 않을 거라는 의심을 받는 것 자체가 이미 현 사법체계가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의 반증인데...

 

대통령마저 이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교육부에서는 이렇게 한단다.

 

역시 한겨레 신문 2014년 9월 7일자 첫 면의 기사다.

 

'세월호 리본달기' 금지령 내린 교육부

     점심 단식·공동수업도 불허

 

교사는 추모해도 안된단다. 교사가 추모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란다. 세월호 가지고 특별법 만들어 달라고 동조 단식을 하는 것도 정치적 행위이고, 세월호에 관하여 공동수업을 하는 것도 정치적 행위다.

 

이것이 정치적 행위 맞다. 한나 아렌트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모두 정치적 동물이다. 우리가 공동 생활을 하는 한 정치적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문에서 또는 교육부에서 말하는 정치적 행위라는 것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또는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런 정치 행위는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특정 정당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세월호에 관한 것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또는 정부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닌,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것이다.

 

자기 자식들이 또는 자기 지인들이 수장당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보아야 했던 그 심정을, 그 한을 풀어달라는 것이고, 그 한이 풀려야 함에 동조하는 말,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닐까?

 

적어도 지도자라면, 정치가라면, 리더라면 그런 행동을 오히려 장려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옳음을 위해서는 법과 원칙에 얽매이지 않을 것... 이것 아닌가.

 

원칙은 아름답지만 원칙에만 매달리면 추하게 됨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진정한 리더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 때 읽으면 좋을 책.

 

케샤반 나이르, 간디 리더십. 씨앗을뿌리는사람.1999년

 

예전에 정치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한 책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성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간디에게 배우는 책.

 

 

김종철 선생은 요즘은 '정치가 계급'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치를 하는 사람이 '정치가 계급'이 아닌 진정한 정치가가 되려면 간디 리더십에 관한 이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 책도 읽으면 좋다.

 

"위대한 영혼의 스승이 보낸 63통의 편지" 지식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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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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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건축과를 나오지 않은 건축가.

 

독학으로 자신만의 건축세계를 확립한 건축가.

 

건축계의 게릴라로 불리는 사람. 안도 다다오.

 

그가 자신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한 이 책은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자신의 사무실로부터 시작한다.

 

건축사무소인데 1층 중앙현관에 사장의 사무실이 있고, 해외 업무를 제외한 개인적인 전화나 메일은 쓸 수 없으며, 어디에서 일하던 사장의 눈에 띄게 사무실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는. 그런데 문제는 사원들만 사장의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사장 역시 사원들의 눈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

 

그렇게 자신있게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안도 다다오. 이 책은 이 장면에서 시작한다. 과연 독학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이룬 사람다운 고집이 느껴지는 사무실 구조다.

 

이런 그였기에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투자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무소에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포트폴리오니 면접이니 하는 것들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무실에서 함께 일해보고 그래도 하겠다고 하면 채용하는 식으로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다.

 

그의 말을 보자.

 

 학생은 자신의 미래를 키우기 위하여 오로지 자기 하나만을 위하여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면, 먼저 사회에 진출한 우리는 그 의욕에 부응하여 기회와 자리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미래를 짊어질 학생을 사회의 재산으로 보호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26쪽

 

이런 자세를 지니고 있기에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 사장과 사원이 1대1의 관계를 맺고 일을 하는 사무소. 자기의 뜻대로 일을 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게 하는 교육. 이것이 그가 하고 있는 교육이다.

 

이런 교육을 하고, 자신의 사무소를 운영하기까지의 과정과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어떤 건축을 해왔는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건축관을 결정한 것은 그가 어렸을 때 동네의 목공소에 다니면서 들었던 목수 아저씨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목공소의 목수는 "나무에도 성격이 있단다. 좋은 것이 더 잘 드러나도록 다뤄줘야 해."하며 10년을 하루같이 나무를 깎았다. 45쪽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과 사람들의 삶이 잘 드러나게 하는 것, 그래서 건축은 도시의 일부이자 사람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 건축은 바로 그 장소에 꼭 필요한 건축이 된다. 안도 다다오는 이런 건축관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장소가 아니면 안 되는 건축, 건축을 통하여 그 장소의 기억을 계승하는 것을 내 작업의 보편적 주제로 생각하고 있다. 372쪽

 

따라서 이런 건축이 있는 도시는 바로 인간 삶의 역사가 있다고 한다.

 

 ...세계의 대표적 도시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도시에 흐르는 '풍성한 시간'이다.

- 122쪽

 

역사가 있는 건축. 이야기가 있는 건축. 그리고 삶이 있는 건축. 이런 건축을 하는 건축가의 자세로 그는 '건축가라면 자기가 관여한 건축이 서 있는 한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234쪽)고 한다.

 

자기가 관여한 건축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그는 지속적으로 자신이 관여한 건축에 관심을 가지고 유지 보수를 해줌으로써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그의 건축적 신념은 개인주택에서 공공건축으로 넘어간다. 왜냐하면 건축은 결국 공공성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공건축에서 지녀야 할 공공정신. 이는 환경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고, 사람들의 삶과도 관련이 된다. 그렇기 위애서는 이런 정신과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한다.

 

 자유롭고 공평한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개인의 자아를 넘어선 공공정신이다. ... 뭇 사람들의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문화를 창조하고 키워가는 것은 어느 시대나 개인의 강력하고 격렬한 열정이다. 254쪽

 

결국 그는 개인주택에서 공공건축으로, 여기에 종교건축으로, 또 해외건축까지 진출하여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있다. 단지 건축계에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좋은 건축, 그 장소에 필요한 건축,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건축을 목표로 한 것이다.

 

어떤 인맥도 학맥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건축계에서 살아남은 그는

 

 "현실 사회에서 자기 이상을 진지하게 추구하려고 하면 반드시 사회에 충돌하게 되어 있다. 십중팔구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며 연전연패의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래도 계속 도전하는 것이 건축가의 삶이다.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계속 달리면 언젠가는 반드시 환한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 가능성을 믿는 강인한 마음과 인내력이야말로 건축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다." 404쪽 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여 우리네 인생에서는 건축가의 이러한 자질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건축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건축이 아닌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었다고. 자신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왔다고. 여러분들도 이런 자세로 살아가라고.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 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늘'을 제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용기 있게 전진할 일이다. 418쪽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의 일본 건축가였는데, 그의 자서전 비슷한 이 책을 읽으며 건축의 세계가 너무도 매력있음을, 그리고 우리 삶에 너무도 중요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가는 미래를 현재에 가져와 보여주는 사람. 바로 현재에서 미래를 보고 과거와 연결하여 과거, 현재, 미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실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사람이다.

 

역사와 자연과 사람과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는 건축. 그런 건축을 할 때 겪게 되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인정하면서 꾸준히 쉬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건축가.

 

그런 사람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많은 건축물들의 사진과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건축에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도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건축물을 사진으로 보는  눈의 호사. 즐거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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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포트킨 자서전 - 인류의 품격있는 진보를 꿈꾸었던 아나키스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김유곤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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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크로포트킨.

 

아마도 아나키스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인기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나키스트 하면 대표적으로 그를 떠올리기 때문이고, 그의 저서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상호부조론은 적자생존에 대항하는 이론으로써, 또 인간의 본성을 밝히는 이론으로써, 그래서 사람들은 경쟁보다는 협동할 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알려주는 책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많이 읽히고 있다.

 

아나키즘 그러면 테러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도 '아나키스트'라는 영화가 이들을 테러를 하는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들은 테러보다는 협동, 자율, 자치를 기반으로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여 아나키즘은 평화의 이론이고, 자유의 이론이며, 협동의 이론이고, 자치의 이론이다.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배제하는 것이지 모든 권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권력을 위에서 내려오는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께 하면서 자연스레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이 배제하는 권력은 자유와 자치, 협동을 억압하는 권력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말하는 권력은 권위 정도로 해석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말과 행동에서 자연스레 권위가 나오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자유 자유 하지만 함께 사는 곳에서는 자기의 자유와 남들의 자유를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협동하기 위해서 자율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줄일 필요가 있고, 이를 잘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레 권위가 따르기 마련이다.

 

아무리 권력이나 권위를 부정한다고 해도 모든 권력, 모든 권위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은 함께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나키즘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떠올리게 한다. 이기적 유전자. 정말로 이기적인 유전자는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음을 과학적으로 밝혀준 책이니...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아나키즘도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함께 하는 협동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자유라는 말보다는 자율이라는 말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개인의 자유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이루고, 이들이 자치를 하면서 상호협동을 해나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아나키즘이 꿈꾸는 사회고, 크로포트킨이 바라던 사회였을 것이다.

 

크로포트킨 개인의 자서전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인 내용보다는 당시 러시아의 상황과 민중들의 삶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더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급박한 혁명 전야. 전제군주의 독재정치. 그리고 그에 편승하는 귀족, 지식인들의 농간. 여기에 핍박받는 민중들의 삶. 그런 삶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모습. 그럼에도 민중들과 함께 하려고 하는 모습.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 추진해가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안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있다는 것.

 

크로포트킨은 어려서부터 이를 체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농노들과도 인간적으로 지냈으며, 근위부대에 들어가 우수한 성적으로 궁정에서만 지낼 수 있음에도 시베리아로 지원해 떠나고, 그곳에서 지리를 탐사해 나중에 훌륭한 지리학자가 되며, 단지 지리학자로 머물지 않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혁명의 자리에 자신을 내던지게 되니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군대시절, 감옥과 혁명운동에 투신해서 지내기까지의 삶 속에서 그가 만나고 보게 되는 러시아 혁명 상황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그리고 곳곳에 들어있는 그의 신념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느껴지고 있으니... 목적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태도라든지, 감옥생활의 경험으로 느낀 감옥제도의 문제점 등은 지금도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아나키즘... 우리나라에서는 다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풀뿌리 민주주의와 더불어 생기고 있는데, 그러한 아나키즘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아나키스트적인 자세인지... 아니, 어떻게 살아야 정말 사람답게 살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자서전이다.

 

책의 표지에 세계 5대 자서전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그만큼 한 사람의 생애 뿐만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를 알 수 있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지표를 제시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삐딱한 덧글

 

세계 5대 자서전? 참 사람들 이름 붙이기 좋아한다. 뭐가 5대 자서전이야 하고 찾아보니,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 괴테의 "시와 진실" 안데르센의 "내 생애 이야기" 그리고 이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이란다. 예전에는 "한 혁명가의 초상"이라고 나왔다고 하니, 아마도 이름을 "한 혁명가의 초상"으로 하는 것이 옳겠다.

 

내가 좀 삐딱해서 그런지 이들이 모두 유럽 사람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계에 위인들이 많고, 또 좋은 자서전도 많은데 꼭 이렇게 세계 5대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책을 광고해도 남들이 세계에서 5번째 안에 드는 좋은 자서전이라고 해도 크로포트킨의 생애를 생각하면 이런 이름을 붙여 책 겉표지에 홍보하는 것을 그가 좋아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백범일지"와 같은 자서전이 있고, 인도에는 "나의 진리 실험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간디 자서전이 있지 않은가. 또 내가 모르는 훌륭한 사람들의 자서전이 얼마나 많은데...

 

이왕이면 동서양을 아울러서 선정을 하던지 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님 크로포트킨을 생각해서 이런 광고 문구는 빼던지...

 

참, 나도 삐딱하다.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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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구본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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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먼 나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고, 전문가들만이 하는 일이라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고만 있었는데, 건축에 마음이 담겨 있다는, 좋은 건축은 이야기가 있다는,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텔링이 건축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나만의 집, 나만의 공간을 갖기가 힘들어진 지금. 남들이 지어준 집에 얹혀 살기만 하는 지금 시대에, 그래도 자신만의 집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집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어떤 이는 황토집을 스스로 짓고, 어떤 이는 통나무집을 스스로 짓고, 어떤 이는 돌집을 스스로 짓고, 어떤 이는 건축가와 협조하여 자신이 원하는 건물을 짓고, 공공건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건축, 멀고도 먼 남의 이야기라고만 여기다가 최근에 부쩍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내 관심 여부와 상관없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건축을 이왕이면 좀 잘 알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건축에 관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고 있는데, 전문적인 책보다는 쉽게 잘 설명해주는 책이 내게 훨씬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여러가지로 도움이 된 책이다.

 

우선 건축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좋았다. 그 건축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 참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읽으며, 그 건축에 대해서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처음에 이 책이 시작되는 '이진아기념도서관'

 

딸을 잃은 슬픔을 공공도서관을 건립하여 다른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승화시킨 아버지의 사랑과 그를 주변의 환경과 잘 어울리게 만들어낸 건축가의 이야기는 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 기쁨을 두 배로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책의 곳곳에 실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몇 년 전에 실시했던 기적의 도서관. 그 도서관이 아이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했는지, 우리나라 도서관의 구조를 바꾸는데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를 말해주고도 있다.

 

희노애락으로 4부로 구성해서 건축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데,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외국의 건축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서 건축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단지 건축미학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건축이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어떤 것이 진짜 훌륭한 건축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데,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에도 자랑할 수 있는 좋고 멋진 건물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획일적이고 위압적인 건축만이 우리나라에 있다고 우리나라 건축은 멀었다고, 가능성이 없다고 한탄만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건축에 관한 책을 읽으며 건축에서는 더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단일 건축에서는 빼기를 해야 한다. 불필요한 것들을 제외하면서 건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더하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건축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고 그것을 부각시켜 그것을 없애는 운동을 하기보다는, 좋은 건축을 찾고 그 건축을 자꾸 홍보하여 그러한 건축물이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건축이 있다. 이 건축은 이래서 좋다. 이 건축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런 좋은 면들이 자꾸 퍼져나간다면 자연스레 좋은 건축들이 늘어날 것이고, 좋은 건축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니 우리나라 건축이 자연스레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 

 

여기에 나도 나만의 집을 가졌으면 하는 소망. 이것이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님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으니. 비록 이 책에서 말하는 학자는 안되겠지만, 평민도 자신 스스로 집을 지었다고 하니, 그런 기회를 나도 갖도록 해야겠다는 소망을 지니게 되었다.

 

그 집은 내 마음을 품은 집이 되겠지.

 

집짓기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두는 것으로 이 글을 맺는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건축은 건축가나 시공자만이 하는 일로 여긴다. 건축이 전문 영역으로 완전히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가 살 집은 자기가 설계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양반은 자기 집을 직접 몸을 놀려 짓지 않았을 뿐 자기 생각과 생활에 맞는 집을 직접 구상했고, 평민들도 자기 살림에 맞게 자기 집을 설계했다. 양반과 달리 직접 짓기까지 했다.

 

  곧 조선 시대 가장 뛰어난 건축가는 목수가 아니라 학자들이었다. 특히 대학자일수록 뛰어난 건축가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은 자기 집을 여러 번 지었던 건축광이었다."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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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 진상조사위원회에 조사권과 기소권을 주자는 유족들의 의견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헌법은 우리나라 최고의 법이다. 그리고 다른 법률들은 이 헌법에 기초해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헌법에 위배된다는 얘기는 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얘기다.

 

이만큼 헌법은 우리네 삶의 기본을 규정한다. 그만큼 헌법은 공명정대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헌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법은 공정한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희망버스를 조직했던 송경동 시인에게 벌금 100만원이 내려진 판결, 파업에 성공한 노동자들에게도 각종 벌금이 부과되는 판결들, 그리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강하면서도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약한 판결들.

 

'000했으나 000은 아니다'라는 판결과 '당시의 관행이었다'는 말로 넘어가 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이것은 힘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판결이었고, 힘없는 사람들은 각종 소송금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 법, 헌법, 헌법 하는 시대. 과연 법치만능주의가 성립하는가? 법이 누구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해야 한다.

 

법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 법이 사람 위에 군림해서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법의 잣대에 맞추려고만 해서는 안된다. 사람에게 법이 맞추어야 한다. 법이 경직되어 있다면 고쳐야 한다. 헌법 역시 수차례 개정을 하지 않았던가.

 

또한 법은 해석에 따라 적용이 달라지기도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판결하더라도 만장일치로 판결이 난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소수 의견들이 나오기도 한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도 이럴진대, 지금 자식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유족들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헌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이지 위배된다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헌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나? 최소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함을 느끼지 않도록 법 적용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법가라고 불리는 한비자. 그가 법을 중시했지만, 법 만능주의에 빠졌을까 하면 그것은 의문이다. 법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비자가 기초한 법가의 사상을 정치에 응용한 사람이 상앙이라면, 그 상앙이 법을 글자 그대로 집행하려고 하다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기억하는 것이 좋다.

 

이들 법가는 힘있는 사람이나 힘없는 사람 구분하지 않고 공정하게 법적용을 하자고 하는데, 지금은 과연 그러한지도 의문이고...

 

법으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 법가가 천하통일을 하지 않고, 인의로써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한 유가가 세상을 통일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엄정한 법 집행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살리는 법 집행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 위에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법이 있다. 이것이 사실 법가의 궁극적인 주장이 아니었을지.

 

"한비자"가 다시 생각나고, 이들이 살았던 시대의 제자백가들에 대해서 잘 정리한 신영복 선생의 "강의"가 다시금 생각난다.  

 

사람을 위한 법... 그러한 정치...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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