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Acquaintance Rape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로빈 월쇼 지음,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옮김 / 미디어일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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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이다. 이 말이 심하게 느껴진다면 "성폭행"이다. 그것은 서로가 마음이 있는 썸도 아니고, 서로의 만남을 이어가는 데이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로의 합의하에 육체관계를 맺는 섹스도 아니다.

 

한 사람에 의해 다른 한 사람이 또는 여러 사람에 의해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강제로 성관계를 당하는 일이다. 이것은 범죄다. 당연히 범죄인데... 이 책의 제목이 이렇게 나온 것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또는 당한 일을 '강간'이나 '성폭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일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떨 때 사람들은 '강간'이라고 명확하게 인식하는가? 바로 이 책에는 강간의 좋은 사례(참, 이 말 쓰기도 민망하다. 좋은 사례라니, 이런 역설이 있다니... 하지만, 이것은 경찰이나 검찰이 기소하기 좋고,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 이것도 가능성일 뿐이라는 게 우습다 - 많다는 것이다)가 나와 있다.

 

좋은 사례의 피해자는 대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처녀로 그녀는 어느 날 오후 두세 시경,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의 벙문안을 가다가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 의해 공격을 당한다. 그 남자는 칼이나 총, 혹은 쇳조각 같은 흉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녀가 소리 지르지 못하게 주먹을 날려 턱뼈를 부러뜨린다. 그리고 적어도 한 번 이상 그녀을 칼로 찌른 후 수풀로 끌고 가서 강간을 한다. 피해자는 이미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계속해서 극렬하게 저항하고, 그 덕분에 어느 남자 경찰관에게 발견돼 마침내 목숨을 건진다. 이후 공식적인 의료 검진을 통해 피해자의 질 속에 남아 있던 정액이 가해자의 것으로 밝혀지고, 마찬가지로 가해자 몸에 묻어 있던 혈흔과 피부 조직은 피해 여성의 것으로 확인도니다. 또한 피해자의 온몸에 난 상처들 역시, 사건 당시 가해자가 갖고 있던 흉기로 인한 것임이 판명되기에 이른다.  218쪽.

 

아마, 이 지경에까지 이르려면 강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아니, 주로 목숨을 잃어야지만 강간살해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인식을 지니고 있으니, 알고 지내던 사람, 그것도 데이트를 하거나 또는 그전에 이미 성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에게 '강제로' 당했다고 해도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많았고, 또 무언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강간'은 아니었다고 피해자가 생각하거나 (가해자는 말할 것도 없다. 피해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이 책에 나와 있는 사례들을 보면 이렇게 관계를 맺은 다음 가해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피해자을 집에까지 데려다 분다. 이 생각 없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화의 문제라고 이 책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그런 사회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가해자가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강간'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 신고가 되는 경우가 1/5도 채 안된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한 강간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사례들이 미국의, 그것도 17년 전의 미국 사례라고 우리가 안십해도 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국보다 성에 관해서는 더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성에 관해 상당히 개방적인 미국에서도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한 강간이 많이 일어나고, 일어나는 빈도에 비해 신고 건수는 적고, 처벌 건수는 더욱 적은데...

 

우리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네가 처신을 잘못해서 그래'라고 하는 경우가 더 많은 나라니...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얼마나 많을지 두려워진다.

 

특히 조금 권력이 있단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만지고 놀리고 하는 것이 일상화되다시피 했는데... (그많은 유명인들의 성추행 사건 보도들을 보라. 이들은 잠깐의 실수라고 하거나, 기억이 안난다고 하거나, 잘못한 게 없다고 한다. 피해자가 받을 고통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언론도 마찬가지로 흥미 위주로 기사를 쓰지. 피해자의 인권은, 감정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이것이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떤 통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성경험을 한 청소년들은 약 4%정도라고 하고, 이들의 첫 성경험 평균 나이가 15세 전후라고 나와 있는데, 우리나라 나이로 15세 전후라고 하면 만으로 따져도 중학교 3학년 또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이들의 성경험이 과연 모두 합의에 의한 성관계일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도 이렇게 그것이 '강간 또는 성폭행'이라는 생각없이 그냥 어쩔 수 없는 일, 일어날 수 있는 일, 또는 자신이 잘못해서, 유혹해서 생긴 일이라는 인식으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았을까.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 모 대학에서 벌어진 성추행, 성폭력 사건도 따지고 보면 그냥 쉬쉬하고 넘어갈 뻔한 일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오히려 피해자가 더 피해를 보는 일도 생기고 하니, 아마도 신고 없이 넘어가는 일은 우리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아는 사람에 의한 강제적 성관계, 즉 싫다는 의사 표현을 했음에도 물리력이나 또는 심리적 압박을 통해서 강제로 맺은 관계는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닌" 바로 "강간"이라고... "성폭행"이라고.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찌 미국이라는 나라의 일만이겠는가. 우리에게도 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것은 여자만의 일이 아니다.

 

피해를 여자가 당하더라도, 그 여자의 주변에는 남자가 있다. 함께 고통을 받을 남자가 있으니, 역시 이런 일은 남녀 모두의 일이다. 서로가 예방하고, 또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 몇 가지 대응방법이 나와 있으니 그것을 참조해도 될 듯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응보다는 예방이 더 우선이다. 인식 개선이 우선이다.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리고 법률적으로도 명확하고 단호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이루는 남자와 여자가 모두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

 

이 책 학교에, 집에 비치해두고 두고 두고 참조해보면 좋을 듯하다. 남일이라고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하면 안된다. 이건 우리 모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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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2016년 1월 15일 영면. 이렇게 또 한 명의 지성이 우리 곁을 떠났다. 신영복 선생이 이제는 편히 쉬시길 바라며...

 

나의 대학시절

 

내가 신영복 선생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이 글이리라. 물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많이 읽히고 있었지만, 나중에 읽어야지 하면서 뒤로 미루다 미루다 먼저 읽게 된 것이 "녹색평론"에 실렸던 (정확히 몇 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대학시절'이라는 글이었다.

 

읽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 고리키의 말을 인유해서 나의 대학시절이라고 했다지만, 그의 대학시절은 서울대 재학시절이 아닌, 감옥에서 지낸 시절을 말한 것이다.

 

지식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들보다 감옥이라는 그 폐쇄된 공간에서 그것도 사회에서 무지랭이라고 천대받고 멸시받고 경원시되던 사람들에게서 배웠다는 사실.

 

절절한 배움. 사람에 대한 예의, 그리고 관계에 대한 성찰이 그 글에 묻어 나 있었다. 참 좋은 글이라는 생각. 그리고 이렇게 감옥을 대학으로 여기면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참 좋은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

 

나무야 나무야

 

짧은 여행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엽서 책. 한 편 한 편의 글에서 성찰의 결과가 느껴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특히 이 책에 실려 있는 글 중에서 '반구정과 압구정'.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는 아직도 머리 속에 남아 있다.

 

갈매기와 함께 한다는 이름을 지닌 두 정자. 반구정과 압구정. 하나는 청백리로 소문난 황희 정승이 세운 정자고, 다른 하나는 모사꾼으로 유명한 한명회가 세운 정자.

 

지금 어느 정자가 남아 있는가? 반구정인가, 압구정인가? 압구정은 이름만 남아 있다. 강남의 화려함을 대변하는 동네로. 하지만 반구정은 지금도 임진강 가에 서 있어 갈매기들을 벗할 수가 있다.

 

비록 분단으로 인한 철책선이 강을 가로 막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삶이 바람직한 삶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정자 이야기.

 

여기에 편한 길을 놓아두고 어려운 길을 간 사람, 그런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평강공주와 온달이야기를 다룬 글이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궈갑니다'였다.

 

어리석은 자, 요즘 말로 하면 '바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바보'들... 우리가 얼마나 존경하고 따르고 있는지... 우리나라에서 바보로 불리는 사람들이 몇 있다는 것. 그들에게 이 '바보'란 말은 경멸의 말이 아니라 존경의 말이라는 것.

 

강의

 

긴 감옥 생활. 대학시절이라고 이름 붙였듯이 사람들을 만나 인생 공부를 할 수도 있었지만, 많은 시간 동안 신영복 선생은 어렸을 적 할아버지에게 배웠던 옛 학문을 다시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다.

 

동양사상을 정리한 책. 강의.

 

소위 제자백가에 해당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어서, 동양사상을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된 책이었다.

 

이런 '강의'가 예전 학문에 대한 지식을 펼치는데 있지 않다. 우리가 예전 학문을 배우는 이유는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알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최근에 책을 내셨는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중.

 

쇠귀체

 

이제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철학적인 용어로 하면 인식론, 존재론을 넘어 이제는 관계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던 그.

 

감옥에서 목수 출신의 죄수가 집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는 그. 흔히 집을 우리는 지붕부터 그리지만 목수는, 직접 집을 지어왔던 사람들은 기초부터 그린다는 사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기초부터,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함을 말했던 지성인.

 

그는 떠났지만, 우리에게 글씨를 남겨주었다. 일명 쇠귀체. 한 글자 한 글자를 떼어놓고 보면 무언가 균형이 잡히지 않은 모습, 그리 잘썼다고 할 수 없는 글자지만, 이 글자들이 모이면 서로가 서로를 받쳐 아름다운 글자로 존재하는.

 

우리들도 그래야 한다는. 사람은 더불어 살 때 그 빛을 발휘할 수 있음을 글자로도 보여준 그 분의 쇠귀체.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먹는 술, 소주에도 그 글씨가 쓰여 있으니...

그래,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렇게 서로 어울리면서 더 좋은 세상을 향해 기초부터, 어리석게 묵묵히 살아가야겠지.

 

그것이 우리 시대 지성을 보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겠지.

 

고 신영복 선생님. 하늘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관계 맺으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지 잘 지켜봐주시길...

 

고인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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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된 건축, 건축이 된 그림 1 - 신화와 낭만의 시대
김홍기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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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건축이나 미술 어느 분야로 분류해야 하나 망설였는데, 읽고 나서도 역시 잘 모르겠다. 건축과 미술 양쪽에 걸쳐 있는데, 어느 쪽으로 추가 기울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이 책의 저자 역시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건축과 미술의 관계를 탐닉하면서 그것을 둘러싼 역사적 상황과 시대정신, 문화예술적 상황을 모두 아우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성격은 통섭에 가깝다. ... 건축과 미술의 관계를 논한 책에서 필자는 비록 초보적인 수준일지라도 인접 분야의 지식을 아우르는 통섭의 차원에 접근하려 했기 때문이다. 미술을 건축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건축을 회화적 차원에서 바라보면서, 미술과 건축이 어떻게 교류했는지, 어떻게 시대정신과 문화를 공유했는지 인문학적 관점에서 그 줄기를 잡아 보고자 했다.' (11-12쪽)

 

그럼에도 굳이 분류를 하자면 책 뒷표지에 있는 숫자의 마지막 세 자리를 보면 되는데...아뿔사, 숫자가 600이다.

 

이런 600이라고 하면 '예술' 분야라는 것만 알려주지, 예술의 하위 분야인 '건축, 미술, 영화, 음악'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참고로 610이 건축이고 620은 조각이란다. 650이 회화, 도화라고 하니,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도 이 책을 어느 분야로 분류해야 하는지 좀 망설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포괄적인 600이라고 한 걸 보니 말이다. 그런데, 600이라고 한 것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분류하겠는가. 읽어보면 건축과 미술이, 여기에 음악, 문학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데... 그러니 이 책은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통섭'이 이루어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가 건축가이니 굳이 분류를 하자면 건축 쪽에 분류를 하고 싶어지기는 한다.

 

이 책에는 총 11 개의 그림과 건축이 나오는데, 최소한 11개의 그림과 건축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이들이 어떻게 관련되는지 알게 된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나오게 된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도 설명이 되어 있고, 작가에 대해서도 설명이 되어 있기에 한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사실들을 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첫장이 생각도 못했던 부분에서 시작한다. 그림이야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지만, 건축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봐서, 그리고 이렇게 정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신선했다고나 할까. 영국식 정원 스투어헤드를 설명하는데, 클로드 로랭의 작품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그림이 어떻게 건축이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와 반대로 건축이 어떻게 그림이 되었는가는 터너의 예에서 잘 설명이 되어 있고, 우리가 흔히 건축가라고만 알고 있는 르 코르뷔지에는 화가이기도 했다는 점, 그의 건축에 영감을 준 것이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라는 사실 등등 이 책에는 건축과 그림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창의융합을 강조하고 있는 이 때, 그림을 그림으로만 보지 않고, 건축을 건축으로만 보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시대다. 특히 이들은 도서십진분류표에도 600이라는 분야에 속해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관성, 또는 서로 주고 받는 영향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더 필요한 일이 될지도. 이런 상상은 이 책에서 '파라네시'의 상상의 감옥에 나오는 그런 환상적인 공간들이, 또 에셔의 작품에 나오는 공간들이 현실에서도 추구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읽으면서 그림도 보고, 건축에 대한 지식도 얻고, 그 당시 사회, 문화, 역사와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되는 '통섭의 향연'이 펼쳐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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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지러울 때 시가 더욱 필요하다. 시가 필요없는 시대는 없다. 시는 평안한 시대에는 우리의 마음에 즐거움을, 어지러운 시대에는 우리의 마음에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엄혹했던, 암흑기라 하던 일제시대에도 시를 쓰지 않았던가. 숨어서 쓰든, 나서서 쓰든, 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했다. 그런 시들은 바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

 

정대구의 시집을 헌책방에서 구했다. 시집인 줄 알고 샀는데, 자세히 보니 시선집이다. 여러 시집에 실려 있던 시를 모아 펴낸 책이다. 그렇다면 이 시집이 나오기 전까지 정대구가 쓴 시들 가운데 한 시집에 모아놓으면 좋다고 생각한 시들을 편집했다고 보면 된다.

 

오히려 한 시인의 핵심적인 시를 한 권의 시집에서 모두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천천히 읽기 시작.

 

시가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으니 우선 마음이 편안해 진다. 왜 그럴까? 시집의 첫머리에 시인의 말이 있다. '쓰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쓰느냐'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글. 그 글의 말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글(시) 쓰기를 통해서 나의 존재, 나의 삶, 나의 가치를 확인하고 보다 참된 글쓰기를 위해서라도 나의 삶을 아름답게 영위하고자 함이 나의 바람이다.' (시인의 말에서)

 

그렇다. 그는 바로 잘 살기 위해 시를 쓴다. 자기의 삶을 아름답게 영위하고자 시를 쓴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참된 글쓰기라고 한다.

 

이 말에 의하면 시는 우리의 삶도 아름답게 해준다. 해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시는 쓸데없이 어려워서는 안된다. 시는 쉽게 우리의 마음에 다가와야 한다. 그런 다짐을 그는 '철산리에 가서'란 시에서 하고 있다.

 

철산리에 가서

 

내 누님을 생각하면

나는 맥주나 마셔 가며

어려운 시를 쓸 수가 없다.

과수댁이 된 누님

삼양동 막바지에서 주렁주렁

7남매 매달고 살아 온 길은

말도 아니고 길도 아니다.

지금은 개봉동 너머쪽

서울이 외면하는

경기도 시흥군 서면 철산리

산 221번지에서,

어려운 시를 쓰고 있는 나를

원망하고 있는 우리 누님

날아간 지붕을 고치고 있는

우리 누님

(나는 여기서 막걸리 마시고 별을 보며 시를 썼다.)

그러나 이것은 시의 방법이 아니다.

어렵게 사는 누님을 생각하면

정말 나는 시를

쉽게만 쓸 수도 없다.

 

정대구 시선, 쌀을 씻으며, 문학세계사. 1991년. 31쪽.

 

'어렵게 사는 누님을 생각하면 / 정말 나는 시를 / 쉽게만 쓸 수도 없다.'는 시인의 말은 시를 아무렇게나 쓸 수 없다는 말, 삶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시를 쓸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시는 진실한 삶과 관련되어야만 한다는 말로 읽히는데...

 

여기에 더해 시가 쓸데없이 현학적이면 안된다는, 시인은 그런 현학적인 시는 쓰지 않겠다는 말로도 읽힌다.

 

다른 한 편으로는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남들은 다들 살기 어렵다는데 왜 시가 쉽게 쓰여질까를 고민하던 그.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시를 쓰려던 윤동주이기에 이런 고민이 시로 나타났으리라. 마찬가지로 정대구의 이 시도 그렇다. 시대가 변해도 삶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시인들은 해야 한다. 그 길은 쉽지 않다. 마치 누님이 살아온 길처럼.

 

그럼에도 그런 시를 써야 한다. 그러니 시가 쉽게만 쓰여질 수가 없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녹아 나와야 하기 때문에.

 

꼭 시만 그럴까? 우리들 삶이 모두 이렇지 않을까? 이 시를 정치에 대입하면 어떨까? 정말 쉽게 정치를 하면 안된다. 힘들게, 너무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꼭 정치만이 아니더라도 이 시는 여러 분야에 적용될 수가 있다.

 

모든 일,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세상을 쉽게만 살려고 해서는 안된다. 시인이 시를 쉽게만 쓰지 못하듯이. 그렇다고 어렵게, 남들이 알지 못하고 자신만 알게 써서도 안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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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1-16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의 제목이 작가의 입장과 독자의 입장을 동시에 대변한 것이겠지요. 배타성의 조화가 가능할런지 의문.
하지만 정대구 시인은 독자의 입장도 헤아릴 줄 아는 분인 것 같군요.

kinye91 2016-01-16 08:28   좋아요 1 | URL
정대구 시인의 시들이 읽기에 어렵지 않아요. 그렇다고 쉽게 쓰였다고는 할 수 없으니, 독자에게는 쉬운, 그러나 시인에게는 치열한 고민이 담긴 그런 시들을 쓴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사람들이 좋은 시인이 아닌가 싶어요. 자기만의 세계에만 갇혀 있는 시인보다는요. 적어도 제게는 그래요.
 
세월호의 진실 - 누가 우리 아이들을 죽였나
곽동기 지음 / 615(육일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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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실이 아니다. 사실이 밝혀져야 한다. 사실을 가리고 있다고 생각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인 것이다. 사실을 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발표할 때마다 말이 달라지고, 질문에 대하여는 교묘하게 피해가거나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사실을 발표한다고 할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벌써 한 해가 지났고, 두 해가 다가온다. 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이 되었지만 이상하게 반쪽짜리 조사위원회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권한도 없는 듯하고.

 

전국민이 두 눈으로 목격한 그런 참사에 대한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는 사회가 어떻게 투명사회이고, 공정사회이고, 신뢰사회가 될 수 있겠는지...

 

유언비어를 유포한다고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유언비어는 사실이라고 발표한 내용들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을 때, 더이상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 자기들끼리의 추측, 추론이 아니던가.

 

이런 유언비어를 없애는 방법은 단 하나다. 사실을 사실대로 공개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실이다. 많은 유언비어들에서 나오는 의문제기를 하나하나 사실에 기초해서 발표를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세월호의 진실'이다.

 

이 책에서는 세월호를 둘러싼 온갖 의혹들을 다루고 있다. 사고 원인, 사고 경위, 선원들 구조 과정, 해경의 출동과 구조활동, 정부의 대응, 언딘이라는 업체, 또 구원파 등등 그간 세간에서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점들을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과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사실에 기초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무엇이 해명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온 질문에 제대로 해명을 한다면 당연히 '세월호의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사실이 밝혀져야, 그래야 진실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야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방지할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책임질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고 자기보다 힘이 없는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할 때 나온다. 그러면 사고는 재발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책임을 지지 않았기에, 대책도 일회적인 임시방편이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책임진다는 것, 이것 어떻게 보면 너무도 간단하고 쉬운 일이고, 다른 면에서는 너무도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왜냐하면 책임진다는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그대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를 밝히고, 그것에 대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지만 (이 책은 이 법과 조사위원회가 발족되기 전에 이를 촉구하는 의미로 쓰여졌다. 검찰로는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안된다는 판단에서 이런 위원회를 요구하고 있는데... 특별법이 이상하게 변질되면서, 조사위원회의 힘이 약화되었고, 권한이 축소된 그들이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원들과 해경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고 있다.

 

두 해가 다가오도록 어느 하나 해명된 것이 없으니,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도 저 차가운 진도 앞바다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세월호의 인양과 더불어 세월호의 진실도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런 진실, 도대체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 책에서 잘 정리되어 있으니, 우리는 이 책에서 제기된 질문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어떻게 결과를 정리하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세월호에 대한 진실 규명은 우리 사회가 어떤 수준에 있는가, 우리 국민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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