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이 없는 단자(單子-monad)'라는 말이 생각난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완결된 개인들이 - 전혀 완결되지도 않았으면서, 사실 사람이란 완결된 존재가 될 수 없다. 완결된 존재는 죽음 이후에나 가능하다.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을 보아도 그렇다 - 제 삶에만 갇혀 남들과 교류하지 않는 상황.

 

어쩌면 공자의 말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사장은 사장답게, 노동자는 노동자답게, 교사는 교사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자기 역할에 충실하라는 것은 자기에 갇혀지내라는 얘기가 아닌데... 자기 역할을 다하라는 얘기는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파악하고 실천하라는 얘기일텐데...

 

각자 자신의 세계에만 갇혀 있는 상황... 이런 상황을 뚫어줄 사람은 최근에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의 말을 따르자면 교수도 철학자도 정치가도 사업가도 아닌 시인이어야 하는데...

 

세상을 이성으로만 파악하는 사람이 아닌 감성으로도 파악하는, 그런 감성으로 다른 존재들과 공명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인의 역할이 한층 더 중요해지고 필요한 때인데... 요즘 시들을 읽어보면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많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긴 여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머리에서 콱 막혀버리고 만다. 머리에서 더이상 나오지 못학 있는 시들이 어떻게 가슴까지 가겠는가.

 

가슴까지 가지도 못하는 시들이 어찌 발로 갈 수 있겠는지... 시들까지도 '창이 없는 단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시들조차도 시인의 세계에서 완결되어 버리고 남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문을 내려고 하지 않는지, 이렇게 감성 면에서도 '창이 없는 단자'가 되어 버린 이 시대라는 생각에 씁쓸함이 밀려온다.

 

기혁 시집을 읽었는데... 머리에서만 맴돌뿐. 그것도 맴돌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다. 마치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고 있듯이... 아직 이 시인의 시를 이해할 수 있는 머리도 감성도 되지 않았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고나 할까.

 

중국 고전인 "시경"의 시들은 그 시대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에는 자신의 세계에 갇힌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자위하더라도 쓴웃음을 짓게 되기는 마찬가지다.

 

적어도 시는 다른 사람들의 가슴까지 도달했으면 한다. 내가 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이 시집에서 한 시를 고르라면 '지주망(蜘蛛網)'이라는 시를 고르고 싶다. 제목도 좀 어렵지.

 

이상의 소설 '지주회시'를 읽고 그 뜻을 알아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주(蜘蛛)'가 '거미'이고 '망(網)'이 그물이니, 거미 그물, 즉, 거미줄이라는 말인데... 제목부터 어렵다. 그래도 이 시는 머리까지는 머물 수 있는데...

 

나중에 다시 읽어보아야겠다. 아님, 기회가 될 때마다 들여다보던지...

 

기혁,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민음사.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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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기록하라 -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 : 전태일에서 세월호까지
박태순.황석영 외 20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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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하는 사람,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 이 사람은 아마도 미쳐버리거나 성인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불경에서 "본생담"이라는 책이 있다. '자타카'라고도 하는데, 부처의 전생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믿는다면 부처는 자신의 모든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기억이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했으리라. 다 기억하는데, 어떻게 안 좋은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일의 결과를 알고 있는데, 어찌 허튼 행동을 하겠는가?

 

그런데 반대로 자신의 자그마한 실수 하나도 다 기억한다면, 그것을 잊지 못한다면 어떻게 제 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을지... 아마도 미치는 것이 정상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성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기억을 다 한다면, 고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되,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미치지 않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되,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 기억하는 것,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 기억으로부터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유추해서 사건을 방지할 수 있도록 기억을 작동할 것.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게도 망각이라는 도구를 지니고 있다. 잘 잊어버린다. 그래서 정작 잊어서는 안 되는 일까지도 잊고 만다. 이것도 문제다.

 

망각은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자신을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도 한다. 아니, 똑같은 상황이 아니라 더 나쁜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가게 하기도 한다.

 

이것은 큰 문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편이 차라리 더 낫겠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래서 예로부터 성인은 중용이 중요하다고 했나 보다.

 

잊을 것은 잊되, 기억할 것은 반드시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중용 아니겠는가.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잊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더 악화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3.1운동부터 시작하여 4.19정신을 계승했다는 헌법을 지니고 있는 이 나라, 그 헌법이 87년 민주화투쟁으로 만들어졌는데...

 

과연 우리는 헌법에 명기된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가? 헌법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혹, 우리가 무언가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 잊은 것이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을 이 책이 주고 있다. 바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민중들의 힘, 우리들이 바로 민중이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민중을 잊고, 민중임을 잊고, 오로지 소비자로서 그날그날을 소비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지... 민중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잊었다면, 그것을 기록으로 기억해내야 한다.

 

기록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많은 역사 기록들이 있지만, 우리 곁에 생생하게 다가오는 기록들은 바로 문학으로써의 기록이다. 로포문학이라고 하는 것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한 때 이 '르포 문학'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많이들 읽었고, 많이 읽혔다. 그리고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그런 기록들, 이제 와 새삼 다시 펴내는 것은 우리가 민중을 잊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보라고, 이 기록들을,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다고. 이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일이라고.

 

이 책은 전태일의 분신으로 시작해서 세월호로 끝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에 대해서 그때그때 작가들이 기록한 것을 모아 놓은 책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직접 읽어야 더 의미가 있다. 근 45년의 역사 중에서 우리 사회에서 큰 역할을 했던 일들을 그 상황에서 멀지 않은 때 작가가 직접 쓴 글이다. 그 당시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더 구체적인 설명은 필요없다. 직접 읽어야 한다.)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고, 지금은 많이 멀어진 사건들이어서 마음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책에 기록된 민중들의 삶, 민중들의 행동이 지금 우리를 만들어 왔다는 것을 안다면 이 기록들은 잊혀져서는 안된다.

 

또한 이 기록들은 현재에 머물지 않고 미래의 우리들을 만들게도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기록들은 더욱 의미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을 잊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역사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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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나들이 3

        - 음식


세계 어느 곳을 가도

먹어야 산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다.

잘 먹지 않으면 여행은 없다.

여행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오로지

고통만이 남는다.

하여 음식은 여행의 핵이다.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해 떨어지고, 숙소에 짐 풀고

교토에서 먹는 첫음식

어디로 가야 하나?

자유여행의 묘미는 이런 헤맴.

알고 있는 곳이 하나도 없는 상태,

가장 무난한 길은 역 주변으로 가는 것.

교토역 지하에 포르타(porta)라는 거대한 상가,

음식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비슷비슷하다.

일본에서의 첫음식인데...

결국 가장 무난한, 우리나라에서도 먹을 수 있는

돈가스를 고르며,

첫날부터 모험을 할 필요 없지.

그런데, 

짜다. 

교토에 있는 동안 먹었던 모든 음식들이

다 짜다.

아무리 교토가 분지 지형이고, 바다에서 멀다지만,

우리나라 안동과 비슷한 음식들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모두 짤 줄이야.

각양각색의 음식점들이 즐비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음식점들도 많지 않다. 또 고만고만한 음식점들이다.

우동, 라면, 초밥, 돈가스……

이 정도다.

음식점들도 넓지 않다.

좌석도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지 않고

많이 앉아야 네 명이다

혼자서, 또는 둘이서 앉아

먹을 수 있는 식탁들이다.

문도 일찍 닫는다.

술을 밤 늦도록 마시려면 낭패다.

간단하게 마시고, 먹고 끝내야 한다.

우리 음식문화가 화려한 천연색이라면

이들 음식문화는 수수한 흑백이다.

교토라는 도시만큼 음식도 흑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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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이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고 되어 있듯이, 3.1운동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운동인 것이다.

 

다시 3.1절을 맞아 우리는 과연 일제시대에서 완전히 벗어났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일제시대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원통함이 풀렸는가 생각해 보면, 그렇다라고 답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영화 두 편을 봤다.

 

한 편은 "동주", 그리고 또 한 편은 "귀향"

 

둘 다 일제시대를 배경을 한 영화다. "동주"은 일제시대 끊임없는 자기성찰로 부끄러움의 시를 썼던 윤동주를 다룬 영화이고, "귀향"은 소위 정신대라고 하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다.

 

두 영화에서 만나는 지점은 일제시대라는 것 말고는 없지만, 한 가지, 이 두 영화를 보면서 이들의 원통함이 풀렸을까 하면, 아니다 라는 말...

 

최근에 위안부 출신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셔 이제 정부에 등록된 할머니들이 몇 분 남지 않았는데도, 일본과 한 합의라는 것 자체가 해결이 아님을 사람들이 목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는 상황.

 

윤동주나 위안부나 모두 제대로 해결이 안 된 상태. 윤동주의 죽음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있지만,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고, 위안부 문제 역시 일본을 완벽하게 누를 자료들을 정부나 학계에서 모아 발표를 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상황.

 

두 영화가 다 마음 아프게 다가왔는데...

 

언제쯤 우리는 이들의 원통함을 신원(伸寃)할 수 있을까? 3.1운동으로 건립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정부가 일제시대 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신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떻게 낯부끄러워서 헌법 전문을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영화 귀향의 한자어 제목이 "귀향(鬼鄕)"이다. 흔히 생각하는 '귀향(歸鄕)'이 아니다.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이 아닌, 영혼들의 원통함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영혼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원통함이 풀려야 한다. "귀향"이라는 영화는 그래서 "씻김굿"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씻어내고 풀어내야 한다.

 

그것을 우리나라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한다. 물론 정부가 나서도록 시민들이 깨어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두 영화를 보면서, 3.1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정말 일제시대로부터 벗어나려면 그 시대를 씻어내야 한다고, 풀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일본이 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이다. 헌법에 명시된 3.1운동을 이어받은 우리정부, 우선 이것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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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영복의 언약, 개정신판
신영복 글.그림 / 돌베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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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냥 곁에 두고 읽으면 될 것을.

 

읽지 않아도 된다. 그냥 보아도 좋다.

 

글과 그림과 글씨가 다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잠언이 있어 좋은 말씀이 우리 삶으로 다가오는데...

 

잠언과 더불어 시편은 말씀들이 하나하나 시로 우리 가슴에 다가오는데...

 

신영복 선생이 자주 하는 말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 머리에서 가슴까지, 또 가슴에서 발까지.

 

이 책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우리를 단숨에 인도한다.

 

한 편 한 편의 글과 글씨와 그림이 머리와 함께 가슴을 울린다.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 한 켠에서 어떤 울림이 일어나는데...

 

잔잔한 물에 떨어진 돌멩이가 일으키는 파문,

 

이 책은 우리들 가슴에 동심원을 일으키며 퍼져 나간다.

 

가슴에 도달한 이 책은 다시 발까지의 여행을 하도록 한다.

 

이것은 바로 이 책을 세 번 읽는 것이다.

 

텍스트를 읽고, 작가를 읽고, 그리고 바로 읽는 자신을 읽는 것.

 

삼독이라고 하는데, 마지막 단계,

 

독자를 읽는다는 것은 바로 가슴에서 발로 여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작은 제목이 '신영복의 언약'이다.

 

머리에서, 가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까지 가야 한다는.

 

우리는 머리 좋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보다, 손이 좋은 사람보다,

 

발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바다는 낮아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 '바다'라는

 

함께 가는 길, 그것이 바로 '관계'이고 삶임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냥 주변에 두고 손에 잡힐 때마다 들여다 보면 될 것을.

 

들여다 보고 들여다 보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이제는 발로 함께 가면 될 것을.

 

그것이 이 책의 의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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