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책


날 투명하게 만드는

칠흑같은 어두움.

그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존재가

묻힌다는 두려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내 곁에 다가와 길을

알려준 밝음.

하나, 둘, 천, 만 ……

별을 보며 갈 수가 있던˚

행복한 나날들.

어둠도 두려움도

밝음에 안겨 날

가득 채웠던 기꺼움.

이 기꺼움 속에 빛을

양보하고 내 곁을 떠난

첫사랑 별들.

내 곁을 떠나도 누군가의

두려움을 기꺼움으로

바꾸어 놓을 영원한 빛

내 책들.

 

--------------

˚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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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기 알베르 카뮈 전집 1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여행을 왜 떠나는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운 문화를 맛보기 위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아니면 낯선 곳에 자신을 떨어뜨려 놓아 낯설어진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이도 아니면 낯설어진 자신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혹 놓치고 있는 자신을 찾기 위해서.

 

결국 여행은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한다. 그것이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든 어쨌든 최종 귀결은 바로 '나'이다.

 

그래서 여행은 현재까지의 '나'에다가 여행을 통해 얻은 새로운 '나'를 더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여행의 묘미가 있다.

 

내 여행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여행을 엿보는 것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경험을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가본 곳에 간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어보면 자신이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찾을 수 있어서 더 좋을텐데...

 

불행하게도 나는 카뮈가 여행하고 나서 일기를 쓴 이 나라들을 가보지 못했다. 아직도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다. 그럼에도 이 나라들에 대해서는 지구촌화 시대답게 텔레비전이나 책을 통해서 많이도 접했으니 그리 낯설지도 않다.

 

이 낯설지 않음을 토대로 카뮈의 여행일기를 읽어가려 했다. 물론 터무니 없는 생각이었음을 몇 장을 넘기지 않아 깨닫게 되었지만.   

 

카뮈가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필요한 경우에는 여행을 했고, 그 여행의 경험을 자신의 작품 속에 남기곤 했다고 하는데...

 

이 여행일기는 독특하게도 작가수첩에도 들어가지 않고 그렇다고 특별하게 어떤 작품으로 체화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물론 남미의 여행은 그의 작품 속에 남아 있기도 하지만, 이 여행일기가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직은 어떤 것으로 변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일기.

 

그래서 그는 이 책에 실린 두 곳, 미국과 남미를 여행하면서 주로 사실에 중심을 두면서 일기를 썼다. 나중에 어떻게 작품을 쓰겠다는 작가수첩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만난 사람들, 그 곳의 풍습과 자연, 그리고 자신의 건강 등을 구체적으로 쓰고 있어서 여행을 하면서 카뮈가 어떤 상태였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구체적인 면... 가령 이 책의 33쪽에는,

 

  흑인 문제. 우리는 마르티니크 출신의 한 흑인을 이곳에 파견시킨 적이 있다. 그는 할렘에 숙소를 정했다. 그 사람은 다른 프랑스 동료들과 자신이 같은 인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그와는 반대되는 관찰. 버스 속에서 내 앞에 앉았던 평범한 백인이 일어서서 늙은 흑인 부인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프랑스에서도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아 흑인들을 차별한 경우도 있었고, 파농의 경우처럼 마르티니크 출신의 프랑스인들 역시 차별을 받았는데... 그것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서술한 다음, 미국의 특징으로 백인이 흑인에게 자리를 양보한 일을 나열한다.

 

이런 일화를 통해 흑백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며, 인종차별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을 은연 중에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상한 점은, 아무리 남부와 북부가 달랐다고 해도, 카뮈는 주로 뉴욕 쪽에 있었을테니 북부에서만 흑백의 인종차별이 많이 완화되었음을, 그러나 남부에서는 1960년대까지도 흑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백인이라는 개념은 찾을 수 없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결국 카뮈가 본 미국식 민주주의도 일부에 불과했음을 지금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미국에 대한 카뮈의 인상 또 하나... 36쪽에..

 

  철학과 관련된 도서 카드들을 찾아본다. W. 제임스, 그게 다였다.

 

유럽에 비해서 미국의 철학이 빈곤함을, 철학이라고 해봐야 겨우 실용주의 하나임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면 될테고...

 

이런 식으로 여행을 통하여 세계와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느낌을 정리하는데... 그가 미국과 남미 여행을 할 때는 유럽에서 주로 배를 타고 갔으니, 배를 타고 가며 바다에 대해 느낀 점.

 

이것은 카뮈의 바다에 대한 욕망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라고 할 수 있어서, 우리가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바다를 무척 사랑했다. - 이 고요한 무한을, 이 다시 덮이는 물길을, 이 매끄러운 길들을. 처음으로 수평선이 인간의 호흡과 맞먹는 크기를, 인간의 대담함만 한 넓이를 갖는다. 나는 늘, 인간들에 대한 강한 관심과 부산하게 움직이고 싶은 허영, 그리고 이 망각의 바다에도 손색이 없고 죽음의 환희와도 같은 이 무한한 침묵에도 손색이 없는 나 자신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찢어져 있었다. 나는 이 세상과 나의 동류들과 얼굴들에 대한 허영에 마음이 끌린디. 그러나 이 세기의 곁에서 나는 나만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바다, 바다와 닮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바로 그것이다.  54쪽.

 

이런 구절이 바로 여행일기에서 미국 여행을 마치게 되는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그리고 다음은 남미 여행인데... 이 여행은 미국 여행보다 힘들어 카뮈를 매우 힘들게 한다. 그러나 광대한 자연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에게서 희망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카뮈의 여행일기를 읽으면서 곧 카뮈가 여행한 곳의 풍습이나 문화를 엿볼 생각을 멈춘다. 그리고 카뮈의 여행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이런 카뮈라는 낯선 존재에게서 '나'를 찾으려 노력한다. 이것이 카뮈의 여행일기를 읽는 또 하나의 목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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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지문 -하
그레이엄 핸콕 / 까치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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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에 이어 하권은 이집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나라. 가보지 않아도 참 많이도 듣고 보게 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아니던가.

 

피라미드 하면 그냥 파라오(왕)의 무덤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물론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이긴 하지만 가장 거대하게 남아 있는 일명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군(세 개의 피라미드가 있다고 한다)은 결코 무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피라미드 속에서 왕의 시신부터 어떤 기록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이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이 아니라 천체를 지구에 옮겨 놓은 어떤 상징, 어떤 기록이라는 것이다.

 

무려 1만 년 전에 만들어졌을 거라고 추측하는데... 이 추측은 피라미드의 배열과 오리온자리의 가운데 세 별의 배열이 일치하는 년도를 중심으로 추측을 했다고 한다.

 

이 추측은 학계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것을 정설로 받아들이면 인류 문명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고도로 발전된 문명 이후에 인간들이 다시 석기시대의 삶을 살았다니... 이것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데... 피라미드군이 오래되었다는 증거를 저자는 다시 스핑크스에서 찾는다. 스핑크스는 사자라고 하고, 아마도 당시에는 사자의 머리였을 것인데... 후대 이집트 왕조에서 사람의 얼굴로 바꾸었을 것이라고.

 

왜 사자일까? 이것은 바로 황도와 관련이 있다. 춘분과 추분을 기점으로 한다면 춘분이 시작하는 별자라기 몇첫 년을 기점으로 바뀌어가는데... 1만 년 전이라면 이때 춘분점의 별자리는 사자자리라는 것이다.

 

이때의 년도와 피라미드의 건설 년도가 거의 일치하기에... 이런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들었는가?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라진 대륙에 살던 사람들이 멸망에 즈음해서 자신들의 역사를 남기려는 방편으로 이런 건축물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마찬가지고.

 

참 놀라운 주장이다. 책만 따라가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 정설과는 다른 주장을 펼친 학자들의 주장을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말미에 인류 멸망의 예언, 즉 이들이 이렇게 커다란 건축물을 만든 이유는 몇만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이것을 해독할 현명한 후손들을 기다린 것이라고 하는데... 그리고 마야의 달력이나 또 다른 예언서들을 종합하여 2000년대 초반이면 다시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하는데...

 

우선 마야 달력이 제시한 2012년은 지나갔고... 그렇지만, 책에서는 불로 멸망할 거라는.. 그런 불길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인류가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니... 참...

 

아마도 시간이 좀더 지나면 이 저자의 주장이 맞는지... 우리가 배운 진화론을 새롭게 바꿔야 할지도 모를 주장을 하고 있으니...

 

게다가 대륙이동설이야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지만 지각변동설은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상이변과 지진 등을 이것과 연결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의 논리를 따라가도 이해 못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그토록 고도의 문명을 지닌 이들이 모두 실패해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누구도 후손에게 또는 다른 종족에게 자신들의 문명을 제대로 전수해주지 못했다는 것...

 

세계 모든 곳에서? 이게 가능할까? 어느 한 군데는 성공해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어야 하지 않나? 단지 우리가 이 지구에 살고 있었다라는 것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또 너희들도 위험하다, 지구는 예측가능하다고 한다면, 사람들을 교육시켰을 것이지 않나.

 

우리 인류의 먼 과거에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지만 서로 다르게 살아왔고,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다고 하지만, 지금과 거의 비슷한 천문지식, 수학능력, 그리고 어쩌면 더 뛰어난 건축술을 지닌 그들이 어떤 종족에게도 제대로 문명을 전수 못했다는 것은 좀더 해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뭐, 이것저것 다 떠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인류는 확실히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 어떻게든 우리는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

 

이 책에서 보여준 길을 걷지 않으려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 그 점을 생각하게 됐다. 상권과 하권을 이어서 읽으면 사라진 문명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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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69 2016-08-03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ㅡ읽어 보았는데 감회가 틀리네요.
다시 읽어 봐야 할 것 같네요

kinye91 2016-08-03 11:00   좋아요 0 | URL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은 것이 밝혀져 더욱 새로워질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든, 반대되는 사실이 나타나든 말이죠.
 
신의 지문 -상 신의 지문 1
그레이엄 핸콕 / 까치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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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이라고 해야 하나,, 지질학이라고 해야 하나, 천문학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미래에 대한 예언서라고 해야 하나, 참 뭐라 규정하기 힘든 책이다.

 

그냥 사라진 문명을 찾아서니까 고대 문명에 관한 책이라고 하자. 고대 문명을 연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인간의 역사를 하나로 꿰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지금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려는 목적과 미래를 예측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첫 부분부터 충격적이다. 남극의 지도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남극 하면 빙하로 덮여 있는 대륙 아닌가. 여기에 뭐가 더 필요한가? 그리고 남극에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의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근대보다 더 오래 전 도무지 사람들이 남극을 탐험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시대에 남극을 그린 지도가 있었다? 그것도 지금 수준에서 봐도 떨어지지 않는 정밀도로.

 

여기에 남극에 산맥과 강이 있었다고 하니...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여기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남극이 그랬단 말야!

 

더 흥미로운 것은 대륙이 이동했다는 것도 아니고 한 발 더 나아가 지각이 이동했다는 주장까지 한다. 남극이 온대지방에 있었다. 지각이 이동해서, 또는 대륙이 이동해서 약 3200킬로미터를 이동했다고 한다.

 

어떻게 믿냐고? 남극에서 발견되는 생물의 화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증거를 제기하기는 하지만 대륙이동설이든, 지각변동설이든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래서 다른 증거를 찾아 나선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잉카, 마야 문명보다 더 앞선 문명, 그것도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문명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고...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 이러한 사라진 문명을 찾아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문명들... 현대 기술로도 건설하기 힘든 건축물들, 현대 과학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천문학 지식들...

 

이런 증거들을 하나하나 찾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다. 지금 우리의 역사는 과연 직선적으로 발전해 왔을까?

 

고도로 발전한 문명이 어느 순간 멸망하고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여러 신화들에서 이런 멸망의 신화가 공통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대륙에서, 서로 교류가 안 된 문명에서 비슷한 신화가 나타나다니... 저자는 이것으로도 이전에 더 발전했던 문명이 있었으리라고 추측한다) 다시 지금의 문명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일어났을까? 책은 다음 하(下)권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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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치명적 농담 -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別記
한형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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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불교는 우리 생활에서 많이 멀어졌다. 우선 마을에 있던 사찰이 탄압으로 인해 산 속으로 갔고, 산 속에 있음으로 해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찾아갈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산 속으로 간 불교는 산 속에서 자신들만의 언어로, 자신들만의 수행에 빠져들게 되었고, 그럼으로 인해 더욱더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되었다.

 

신비주의. 산 속에 있는 절을 생각해 보라. 어떻게 이렇게 좋은 곳에 자리잡았는지... 늘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큰 맘 먹어야 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산사(山寺)였고, 산사 속에서 스님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살아왔기에 감히 쉽게 만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런 불교는 특히 경전이 더 어렵다. 한글로 번역된 책들을 보아도 이게 뭔 말인지 싶고, 한문은 해석할 능력도 없으니 안 되고, 이 책에서는 영어가 지금 현대인들에게 더 친숙하다고 했는데, 그것도 영어 공부를 한 사람들 얘기지 영어와 거리가 먼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영어는 더욱 더 어렵고, 그렇다고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를 알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불경은 더욱 어렵다. 누군가 해설을 해주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고, 해설을 해주어도 뭔 소리야 하기 쉽다.

 

이렇게 된 데에는 스님들의, 불교를 공부하는 학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자신들의 세계에만 빠져 있지 않기 위해서는 스님들이, 불교학자들이 더 쉬운 언어로 저잣거리의 사람들에게 불교를 알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마치 불교 책 중 하나인 십우도를 보면 깨달음을 치열하게 추구하다가 깨닫고 난 뒤에는 다시 저잣거리로 나갔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남에게만 미룰 수는 없는 일. 불교에 관심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찾아보아야 할 일이다. 찾다보면 자신의 성향에 맞는, 수준에 맞는 책들을,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 책은 제목이 재미있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 그래서 제목에 속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제목이 이러니 불교에 관한 우스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인가 싶어 손에 들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작은 제목은 무섭다.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다. 금경강에 대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이라는 뜻일텐데... 농담과 별기라니.

 

어렵다고 생각하는 불교를 전혀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하기 위해 '농담'이라는 말을 썼을 거라 생각하고, 금강경이라는 불경을 하나하나 주석해 가는 것이 아니라, 금강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냈기에 '별기'다.

 

그래서 이 책은 금강경에 대한 주석서도 아니고, 불교의 일화에 대한 책도 아니다. 불교에 대해서 결코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해 주는 책인 것이다.

 

이런 저런 선지식들의 불교에 대한 해석을 멀리하고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게,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해석을 들려주고 있다.

 

경전에 매달리지 말고 불교 고승들의 말에 매달리지 말고, 불교학자들의 해석에 매달리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지녀라.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불교는 결코 멀리 있는 진리를 찾으라고 하지 않는다. 진리는 이미 네 안에 있다. 네 안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다만, 그 깨달음 이후 그것을 실천하는 머나먼 길을 가면 된다.

 

그러니 시작하자. 자신을 돌아보는 일부터. 자신의 주변을 살피는 일부터. 하나하나 진심을 다해. 이것이 바로 불교의 기본이고 시작이다.

 

아마도 불교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질 것이다. 그만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써내려간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금강경의 내용을 풀이하는 책도 내겠다고 했으니, 그 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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