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성격이 조금 달라졌지만 '삶창'에는 민중들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들이 많았다. 그것을 부끄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민중의 삶이라는 사실, 관념에 의해 포장되거나 또는 관념에 의해 비하된 삶이 아닌,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드러나 있는 글들이.

 

100호를 넘어서면서 (사실 어떤 책이든 100호를 넘긴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책의 성격이 좀 달라졌다. 소위 밑바닥 인생이라고 하는 민중들의 글이 사라진 반면에 지식인들의 글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

 

그 전에는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면 이제는 대부분 지식인들이다. 사회에서 그래도 한 말씀 한다는 사람들의 글이 많다. (물론 그들의 한 말씀이 정권을 쥐고 있는, 또는 정권을 쥐려 하는 저 높은 곳에 있는 자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민중들의 삶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식인들이라고 하지만 그들 역시 민중이기 때문이다. '삶창'에서 지식인이라고 내가 표현하지만, 소위 먹물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민중일 뿐이다. 그리고 그게 내 맘에 든다.

 

어차피 세상은 민중들에 의해 유지되고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맹자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백성은 물이요, 정권을 쥔 자들은 그 물 위에 떠 있는 배라는 사실...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런 민중들의 이야기, 이번 호에서는 다른 일들을 빼고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면 '밀양송전탑'과 '사드'다. 밀양송전탑문제는 정부 주도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겠지만) 해결이 되었다. 아니 해결이 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그 경과를 이번 호에서 정리해주고 있다.

 

읽어서 슬픈 그러나 꼭 알고 기억해야만 하는 일... 민중들의 생존권은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짓밟힌 것이 우리 현대사라면 이제는 그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밀양송전탑 문제에서 그것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제기하고 각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드' 문제로 넘어가 또 지역 문제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으니...

 

'사드' 역시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밀양에서 송전탑이 "우리 마을은 안 돼!"를 넘어 전력생산과 수급의 문제를 제기했고, 이런 식의 송전탑은 어느 곳에서도 안 됨을 보여주었는데...

 

정부는 그런 소리들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다시 '사드' 문제를 일으켰다. 주민들의 목소리는 들으나마나 한 소리라고 생각하는지... 우리 마을은 안 돼가 아니라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안 돼!" 라고 외치는 그 소리를 어떻게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는지...

 

가끔은 그들은 국가와 정권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통령이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이 된다. 대통령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 권력을 잠시 위임한 사람일 뿐인데 말이다. 다른 국가 기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들을 보면 이들은 자신이 국가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호에 실린 '밀양송전탑 문제'나 '사드' 문제에 대한 글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국가는 이들 권력을 쥐고 있는 소수의 몇몇이 아니라 나라를 지탱하게 하고 있는 다수의 민중들이다. 송전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국가다.

 

그 점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름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승만이 외쳤던 구호...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것을 권력을 쥐고 있거나 쥐고 싶어하는 자들은 잘도 지킨다. 그들은 정말 그들끼리 똘똘 뭉친다. 도무지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자기들끼리 뭉쳐 있다. 뭉쳐서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

 

반면에 민중들은? 이들보다 더 뭉쳐야 할 민중들은 아직 제대로 뭉치지 못하고 있다. 각개격파되어 싸움도 각자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송전탑부터 사드까지 (그 전에 있었던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통하여) 민중들은 뭉쳐야 함을 깨닫고 뭉치기 시작했다.

 

그게 이번 호에서 보여준 희망이다. 그런 희망이 아직도 우리를 버티게 해준다. 세상은 어두컴컴하지만 새벽은 어김없이 온다는 믿음, 그런 희망... '삶창'을 읽으며 그래도 버티는 희망, 그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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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6-10-03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격월간이었는데, 어느새 계간으로 바꿨군요. 성격이 좀 달라졌다는 말, 수록글 제목과 저자를 보니 알것 같네요. 다만 제 생각에는 예전에도 글쓴이들은 대분분 이쪽에서 유명하거나, 공부 좀 하신 분들이었어요. 글의 성격이 시사가 아닌 생활글 위주였다가 이젠 좀 이슈 중심의 잡지로 변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kinye91 2016-10-03 16:40   좋아요 0 | URL
계간으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예전에도 민중운동 쪽에서는 유명하신 분들이 많았다는 말에 저도 동의해요. 다만 예전에 격월간으로 발행할 때는 일반인들의 소위 생활글이라는 것이 뒷부분에 한 꼭지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아예 없어져 버려서, 그게 좀 아쉽다는 얘기지요... 여전히 `삶창`에는 기대하는 것이 있고, 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행복한 죽음 알베르 카뮈 전집 5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5년 9월
평점 :
절판


카뮈의 작품을 꾸준히 틈나는 대로 읽고 있는 중. 소설이건 희곡이건 수필이건 다 읽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한 권씩 한 권씩 구입해 읽고 있다.

 

이 소설이 죽음에 대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또 이방인의 전편 또는 이방인을 쓰기 위한 구성단계의 초고라는 말도 있던데, 읽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도대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왜 카뮈가 생전에 이 소설을 출판하지 않았겠는가라는 혹평이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혹평할 필요는 없는 소설일 것 같고.

 

제목을 중심으로 소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이 소설의 주제를 제목과 관련이 있는 이 구절에서 파악한다. 이 소설의 1부 1장에 나오는 메르소의 생각을 표현한 구절이다.

 

'그처럼 무르익은 공기와 풍요로운 하늘 가운데서 사람들이 해야 할 단 한 가지 일이란 사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0쪽)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답을 주는 사람이 바로 메르소가 죽인 자그뢰스다. 그는 이렇게 메르소에게 말한다.

 

'돈이 없으면 행복해질 수 없어요. ... 다만 행복해지려면 시간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도 많은 시간이. 행복 역시 길고 긴 인내에서 오는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돈을 버느라고 삶을 허비해요. 돈으로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요.' (82쪽)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있어요. 아니 모든 것이 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지요. 부자이거나 부자가 된다는 것, 그건 바로 우리가 행복해질 자격이 있을 때 행복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해요.' (83쪽)

 

그러나 그는 돈만이 행복을 불러온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돈은 행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얘기다.

 

' ... 돈만 있으면 행복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 얘기는 다만 어느 계층의 사람들에겐 행복이란 - 시간이 있을 때만이지만 - 가능하다는 것과, 돈이 있다는 것은 돈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85쪽)

 

그러므로 행복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저절로 오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서 올 수밖에 없다. 즉, 돈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복이 오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자그뢰스는 메르소에게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오직 행복만이 비극적이란 걸 알아두시오.' (87쪽)

 

이 구절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행복이 비극적이라니. 결국 행복은 우리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온다는 말인가? 그건 아닐테고. 하여 비극적이라는 말을 다르게 생각해 보았다. 예전 서양의 비극. 그 비극은 바로 평범한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자신의 뜻에 맞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다가 좌절하는 것 아니었던가.

 

이것을 행복이 비극적이라는 말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행복을 찾아 온갖 노력을 하지만 그 행복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 행복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찾을 때 오히려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메르소는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그가 찾은 행복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더불어 완성되는 것이다.

 

2부에서는 그의 행복찾기가 시작된다. 자그뢰스를 죽임으로써 그의 많은 재산을 확보한 메르소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떠난 일이다. 2부의 1장은 그래서 여행으로부터 시작한다. 여행은 자신을 낯선 곳에 놓아둠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있던 곳에서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이 첫번째 할 일이다. 그렇게 떠나 고독 속에 자신을 내맡기지만 행복은 거기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일상을 떠난 행복이 있을 수 없듯이.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그가 돌아오는 곳은 같은 장소가 아니다. 비슷한 곳이기는 해도. 여기서 그는 사랑을 찾는다. 사랑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 속에서도 그는 고독을 찾는다. 고독 속의 행복. 이것은 행복은 자신의 것이지 남들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랑한다고 생각한 사람, 뤼시엔과의 관계다.  메르소는 그녀와 동등하게 지적으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오로지 그녀는 그의 생각대로 행동해야만 한다. 그의 생각 밖에서 그녀가 들어오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그런 그녀에 대한 설명.

 

'그녀는 필경 지적인 여자가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잘됐다고 기뻐했다. 정신이 깃들이지 않은 미(美)에는 어떤 신성한 데가 있는 법인데 메르소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 점에 민감했다.' (144-145쪽)

 

메르소에게는 행복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또한 일상생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서 온다.

 

'행복은 선택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고 그 선택 안에서는 어떤 신중하고 냉정한 의지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167쪽)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니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고 해야 한다. 우리가 행복을 일상을 떠난 그 어떤 곳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시간을 벌어주는 돈 역시 일상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그는 부끄럽게도 (이건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자신을 발견한다.

 

' ... 자신이 찾고 있는 특이한 행복은 바로 이른 아침의 기상과 규칙적인 해수욕과 의식적인 건강법에 있다는 부끄럽기 짝없는 진실을 뼈저리도록 느끼고 있었다.' (168쪽)

 

'행복이란 인간적인 것이고 영원이란 일상적인 것이다. 요는 하루하루의 리듬을 우리의 희망이 그리는 곡선에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하루하루의 리듬에 순응하도록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한다.' (170쪽)

 

이렇게 깨달은 그는

 

'행복에는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한다든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해야 한다든가 하는 조건이 있다고 믿는 건 잘못이야. 중요한 것은 말이지, 다만 행복의 의지이고 언제나 뚜렷하게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야.' (178쪽)

 

라고 말한다. 행복은 결코 일상에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상에서 내가 행복을 깨우치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할 수가 있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최종적인 행복이 죽음에 있다. 어떻게 죽느냐...

 

'운명이 인간 속에서 창조하는 선택을 그는 의식과 용기 속에서 행했던 것이다. 바로 거기에 그의 모든 삶과 죽음의 행복이 있었다. 짐승처럼 날뛰면서 그가 바라보았던 죽음, 그는 이제 그 죽음을 겁낸다는 것은 바로 삶을 겁낸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죽는 것에 대한 공포는 인간 속에 살아서 움직이는 것에 대한 끝없는 집착을 정당화해주는 것이었다.' (199-20쪽)

 

이 말은 삶에 대한 집착은 삶이 주는 행복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삶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라는 말로 이해가 된다. 그것은 결국 사라져버릴 것들에 자신의 마음이 매여 놓여나지 못하게 되는 것, 거기서 행복은 찾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죽느냐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느냐와 같은 질문이 될 수 있음을,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은 메르소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는 죽을 때 미소를 짓고 죽는데, 그것은 자신이 행복을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면 이렇게 이해할 수가 있단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소설 속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행복한 죽음"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은 급작스럽다.

 

그리고 삶에서도 그는 행복을 찾는다고 하지만 지루한 일상을 반복할 뿐이다. 아무리 행복이 우리의 일상에 있다고 해도,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고 말을 하려고 해도, 그리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지와 선택이라고 해도 소설을 읽으며 그것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그런 생활을 하는데, 즉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생각할 여유가 있는 시간을 벌게 된 것이 살인으로 얻은 돈이기 때문이다. 수단부터 정당할 수 없는데, 어떻게 행복이 올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소설 속에서 찾을 수가 없다. 물론 이 소설이 카뮈 생전에 발표가 된 소설도 아니고, 완성된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카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소설 속에서 드러나야 하는데, 잘 못 찾겠다.

 

그냥 소설 속 구절들을 따라가면서 혹, 이런 말을 하고자 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소설을 한쪽으로 밀어넣고 더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정말로 우리는 어떤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정말로 돈이 시간을 벌어다 주고, 그것에서 행복이 찾아질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돈은 필요조건이기는 하다.

 

그 필요조건인 돈을 충분조건으로 전환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의지이고 선택이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산 사람은 죽을 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즉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메르소는 행복한 죽음과는 거리가 좀 먼데... 그는 돈을 행복의 충분조건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생각, 그리고 잘못된 수단으로 얻어진 돈은 결코 행복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고 행각하므로...

 

앞으로도 계속될 카뮈 작품 읽기... 왜 이 작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그것이 의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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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 왜곡된 현대사의 서막
박태균.정창현 지음 / 역사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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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면서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나서 이제는 제 나라를 세울 때인데, 이 때부터 일제로부터도 암살당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제 동포들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원통했을까.

 

그렇게 우리나라 현대사가 시작되었고,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서막이라는 사실을 이 책이 말해주고 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자는 말에는 이들의 노력을, 죽음을 배제하자는 말이 포함되어 있을텐데,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정치 신념을 펼치려 했던 사람들을 우리나라 역사에서 괄호치려는 그런 모습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더 한심하다고 생각한 것은 제 동포의 손에 죽임을 당한 지도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철저하게 밝혀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기본적인 사실들만이라도 밝혔어야 하는데, 당시 경찰과 법원은 도대체 한 일이 없으니...)

 

오히려 그들이 죽음에 경찰이 관여되어 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고, 더 높은 선에서도 그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음에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마도 경찰, 검찰, 재판부에 대한 불신이 이때부터 싹트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하는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정치인은 다섯 명이다. 암살 당한 순서대로 하면 '현준혁,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김 구'다.  

 

이들을 다시 인지도 순으로 배열하면 김구>여운형>송진우>장덕수>현준혁 순이 아닐까 하는데...

 

해방직후에 암살당한 현준혁은 사회주의자라는 점에서, 또 북한에서 암살당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고, 그의 암살이 남한의 정치계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고, 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알려져 있지 않다.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머지 네 사람은 남한에서 암살당했고, 당시 정치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암살은 남한의 정치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영향 하에서 이승만 독재 정권이 탄생하게 되고, 그의 독주가 시작된다.

 

이승만의 독주 속에서 진상규명은 물 건너 가 버리고, 지금도 우리는 그들의 암살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해방 정국의 극심한 혼란 상황에서 이렇듯 암살이 빈번했던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남과 북의 분단을 초래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온건한 보수주의자였던 송진우의 죽음으로 온건보수 쪽은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고, 중도 좌파 정도의 평가를 받던 여운형의 죽음으로 좌우합작이 물 건너 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과 남북 분단이 이루어지기 더 쉬워졌으며, 장덕수의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확립하려는 카드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

 

여기에 김구의 죽음으로 인해 이승만 독재를 견제하고 물리칠 수 있는 가장 큰 정치가가 사라져 버렸으니...

 

이들의 죽음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누구인가? 암살의 배후를 캐는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이 암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더 많으므로...

 

아직도 미국의 비밀문서 중에 해제되지 않은 것이 있어 이들 암살의 전모를 밝히기는 힘들다고 한다. 게다가 이제는 암살의 관련자들이 모두 세상을 떴으니... 기록에 의해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최근까지의 결과로 이들 정치가들의 암살에 얽힌 배후와 의미를 파악해 보여주려는 노력을 한 것이 이 책이다. 따라서 이런 역사를 알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지닌 의미일 것이다.

 

덧글   

 

읽다가 발견한 소소한 오류와 동의하기 힘든 부분

 

1. 22쪽. 고은의 시 인용 첫구절에서 1995년은 -> 1945년으로 수정되어야 하고

 

2. 120쪽. 장경근은 ... 1960년 3.15 부정선거 때에는 내무부 장관으로서 부정선거를 총체적으로 지휘한 인물이다. -> 이상하다. 이 부분은. 내가 알기론 내무부 장관으로 3.15 부정선거를 지휘한 인물은 최인규인데... 최인규 편을 찾아보면 그렇게 나오고, 그가 부정선거 죄목으로 사형당한 걸로 나오는데...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하다.

 

3. 229쪽.  미군은 결국 6월 29일 철수를 끝냈다. 바로 김구가 암살 당하기 3일 전이었다.  -> 김구가 암살 당한 3일 후였다가 맞는다. 240쪽에는 미군이 철수하기 3일 전이라고 제대로 나온다.

 

4. 그 다음 납득하기 힘든 부분 : 여운형 편에서... "지도자의 삶은 그 자체가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 여운형은 통일정부가 수립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 그 자신에게 전혀 책임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 이전보다 더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134-135쪽)

 

이런 말이 있는데, 이건 참... 여운형은 미군정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으나 무시당했고, 경찰은 그의 암살에 관련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정계은퇴? 그건 정치가로서의 책임이 아니지 않은가.

 

여기에 여운형은 개인 경호원을 두었으니, 그는 자신이 할 만큼 했다고 보는데... 또하나 해방 정국에서 훌륭한 정치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한다.

 

간디를 보라. 그 역시 죽음을 예견했음에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순간을 모면한 정치가는 훌륭한 정치가일 수 없다.

 

죽음의 길을 알고도 가야 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삶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의 여운형 편의 말미에서 한 주장은 여운형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동의하기는 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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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 시가 되라 - 달털주 샘과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詩 수업 이야기
주상태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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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학생들에게 시는 참 어려운 분야다. 그냥 낭송하고 즐기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놈의 시에는 온갖 문법적 요소와 시적 요소들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시험에서 답을 고르기 가장 힘든 분야가 바로 시 아닐까 한다.

 

게다가 과학처럼 딱 이거다 하는 답이 없고 문맥에 따라서, 또는 시인의 의도에 따라서 답이 달라지니 (오죽하면 시를 쓴 시인조차도 자신의 시에 대한 문제를 맞추지 못했다는 일화까지 있겠는가) 학생들에게 시는 참 어려운 분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를 무려 12년 동안이나 배웠으면서도 어른이 되어서 서점에 가서 시집을 스스로 사서 읽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그만큼 시는 많이 배우고도 오히려 더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시교육에도 문제가 있지만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독자들을 고려하지 않는 시인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다 맘 먹고 시집을 펼쳐보면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이 나열되어 있으니, 누구 말대로 한글은 한글인데, 그냥 글자를 읽을 수는 있겠는데 의미는 파악할 수 없다고 할 정도의 시들이 있으니, 시가 사람들에게 가까워질 수가 없다.

 

그래도 시인 탓하기 전에 시교육을 먼저 탓하자. 시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이 시를 좋아했다면 다소 어려운 시라도 해석하려는 도전의식을 지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본래 시라는 것이 자신의 감정을 짧은 글로 나타내려다 보니 다른 사람이 해석하기에는 좀 어려운 구석이 있는 것이 사실 아니던가.

 

그렇다면 시교육을 거꾸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시를 읽고 해석하는 교육이 아니라 시를 직접 쓰는 교육을 계속 하는 거다.

 

자신이 시를 쓰다보면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몸에 익힐 것이고, 이는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시를 읽는데도 많이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창작 교육으로 시인을 양성하는 교육을 할 것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시인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것, 그래서 세상을 좀더 자세하게 바라보고 정리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 그것이 바로 시창작 교육인 것이다.

 

이런 시창작 교육은 자신이 시를 써 봄으로써 다른 시를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교과서에만 매여 있는 교육이 아닌 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하는 교육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그런 교육이지 않을까 하고, 이 책을 통해 그런 교육이 충분히 가능함을 보게 되었다.

 

그냥 시를 쓰라고 하면 학생들은 막연해 하고, 난감해 하는데ㅡ그렇다고 교사가 시에 대해서 어러쿵 저러쿵 중언부언하면 학생들은 시를 더 어렵게 생각하고 시에서 멀어진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교사인 저자가 발견해 낸 방법이 바로 사진을 통한 시쓰기 교육이다. 사진을 보고서 사진에서 느낀 점을 시로 표현하게 하는 것.

 

그래서 시에 대해 좀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교육, 이것이 이 책의 저자가 한 교육이다. 그런 교육이 끝난 다음에는 학생들의 시를 선정해 엮어서 책으로 펴내는 것.

 

결국 시교육이 학교에서 끝나지 않고 학생들이 두고두고 자신의 생활로 가져올 수 있게 하는 교육인 것이다.

 

이 책을 보면 20시간을 시교육에 할애하고 있는데, 그런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의 읽고 쓰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주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를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고 시를 친숙하게 여기도록 해주고 있으니...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 시를 좀더 가까이 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시와 함께 하는 삶을 살지 않을까 한다. 이런 교육, 좀더 늘어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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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30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또 시에 찰떡 궁합이죠..^^..

kinye91 2016-09-30 10:42   좋아요 1 | URL
사진에서 시적인 면을 느낄 때가 있는데요, 그만큼 시와 사진이 잘 어울린다는 얘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yureka01 2016-09-30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맞습니다.반대로 시에 사진의 어울림도 강력하죠.. 시와 사진의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지 시는 언어로써, 사진은 이미지로써 말하는 것이니까요.감사합니다.이책 주문 들어갑니다 ^^.좋은 책 소개 해주셨어요~

kinye91 2016-09-30 10:49   좋아요 1 | URL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에게 이 책이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이 책은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은 책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이 책은 시를 어려워 하는 사람, 특히 학생에게 시에 좀더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기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2016-09-30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는 빈곤세대입니다 - 평생 가난할 운명에 놓인 청년들
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참 답답한 현실이다. 어쩌면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일 수도 있다. 이 터널 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나 터널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는 상황.

 

여기에 누군가 분명 터널의 끝이 있고, 그 끝이 멀지 않았음을, 빛이 비추는 곳에 다가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안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꿈꿀 수 있을텐데.

 

아마도 지금 우리나라 청년들이 처한 위치가 바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힌 사람들과 같지 않을까 한다.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도대체 밖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

 

그렇다고 누구도 청년들에게 터널의 끝이 있다고, 그 끝을 향해 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할 뿐이다. 그러니 청년들은 더욱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수밖에.

 

사회 문제를 개인 문제로 돌려놓아,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청년 개인들이 지어야 하는 상태,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도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요, 혹 능력이 있다손치더라도 일자리를 가려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말들이 나돌고 있는 상태.

 

그러나 과연 그것이 청년들의 책임일까? 우석훈은 벌써 몇 년 전에 "88만 원 세대"를 써서 우리나라 청년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평균임금 88만 원을 받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그러니 청년들은 토익을 버리고 단결해서 짱돌을 들라고 했었다.

 

하지만 현실이 과연 그러한가? 청년들이 짱돌을 들기 위해서는 지금 힘든 현실이 개인이 책임져야 할 상황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하고, 그 책임 중에서도 더 큰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음을 알려주고 깨닫게 해야 하는데... 오로지 청년들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 아니었던가.

 

그래서 오찬호가 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나왔고. 청년들이 각개격파되어 함께 단결해서 사회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오로지 자신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 중에서도 더 뒤쳐진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그런 상황에 처하고 만 현실.

 

씁씁한 현실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그런 현실이었다. 88만 원 세대를 필두로, 삼포 세대, 오포 세대 등등의 비극적인 말들이 청년들을 수식하는 말이 되어 왔는데...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이게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고, 유럽도 미국도 문제는 많지만 그래도 일본과 우리나라가 직면해 있는 문제보다는 덜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일본의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런데, 추천글에도 나와 있지만, 이름과 지명을 우리나라 것으로 바꾸면 그대로 우리나라 현실이 된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일본 청년들의 문제는 바로 우리나라 청년들의 문제다. 그리고 그런 청년들은 다른 이름을 또 하나 얻게 되었다. 바로 "빈곤 세대"

 

아무리 노력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대라는 말이다. 물론 소위 금수저로 불리는 청년들은 예외다. 가정 환경에 따라서 일생의 삶이 규정되는 사회, 중세의 신분 사회도 아닌데, 자본으로 그렇게 되도록 흘러가는 이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것이 문제다. 잘못 되었다. 잘못되었음을 알면 고쳐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기성세대가 지닌 편견의 굴레들.

 

'일하면 수입이 생긴다. 가족이 도와줄 것이다. 청년들은 건강하다. 옛날엔 더 힘들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이것은 일본의 기성세대가 지닌 편견이지만 우리나라 기성세대가 지닌 편견과도 같다. 어떻게 이렇게 거울을 보는 듯이 똑같을 수가 있는지...

 

일해도 빚만 늘어나고 있는 현실, 가족붕괴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가족이 도와주는지, 오히려 가족이 청년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경우가 많고, 장시간 노동에 온갖 스트레스를 받는 청년들이 건강할 리가 없고, 옛날엔 더 힘들었다고 하지만 그때는 터널의 끝에 빛이 보였다.

 

그 빛을 보고 나아가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으니, 이 말엔 좀 문제가 있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고통의 굴레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 사서도 한다는 것은 나아진다는 가능성이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여기에 더해 주거 문제, 교육 문제 등 정말로 우리나라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그대로 나와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이대로 두면 안된다. 이 책에서 노인들을 '하류노인'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는데, 하류노인 문제는 빈곤세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 빈곤세대들이 노인이 되면 자연스레 하류노인이 될테니 말이다.

 

그리고 청년들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 주거 문제로 제대로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자연스레 출산율은 저하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모두가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빈곤한 청년과 하류 노인들...

 

그것은 온전한 사회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가고 있는데... 막을 방법은? 아니, 막아야 한다. 대책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유용하다.

 

'노동조합의 활동, 장학금제도의 도입과 부유층 과세, 청소년대책과의 연대, 주거비 보조제도와 충실한 주택정책, 빈곤세대여, 목소리를 높이자'

 

이것이 이 책에서 제시한 대책이다. 우리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노동자로 살아가면 노동조합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또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여기에 대학 등록금, 우리나라 역시 너무도 과도한 등록금으로 인해 반값 등록금 투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공약이기도 했지만, 정치인들의 공약은 공약(空約)이 되어 버렸으니, 청년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고, 노인들은 쪽방촌에서 청년들은 고시촌에서 사는 그런 주거 형태는 비인간적이기에 더 좋은 주거정책이 실시되도록 주장해야 한다.

 

일본 청년들의 이야기지만 결코 일본 청년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럼으로 우리 역시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출구 없는 터널이 아닌, 출구가 보이는, 그 출구를 안내하는 빛이 있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렇게 살기 힘들어진 것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혼자가 아닌 함께 해결책을 마련하려 노력해야 한다.

 

짱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차별에 찬성하지는 말아야 하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에 가입해서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청년들이 해야 할 일이고, 기성세대들은 그런 청년들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고 기성세대 자신들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나라 일본. 그러나 청년들이 처해 있는 현실은 어쩜 이리도 똑같은지...

 

일본의 빈곤세대, 우리의 88만 원 세대, 삼포, 오포 세대... 이런 말들이 나도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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