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의 역설 - 반성을 시키면 범죄자가 된다
오카모토 시게키 지음, 조민정 옮김 / 유아이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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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지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뭐야, 이거?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점에서는 성공이다. 책 제목보다 제목 위에 있는 문장, "반성을 시키면 범죄자가 된다" 이 문장이 이 책을 읽게 했다.

 

우리는 보통 잘못을 하면 반성을 하라고 한다. 반성하지 않으면 나쁜 놈, 가능성이 없는 놈이라고 욕을 한다. 이게 보통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반대로 이야기한다.

 

이때 반성을 잘하는 사람은 또다시 사고를 친다고. 그것도 점점 더 큰 사고를. 왜냐하면 반성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바로 피해자의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반성을 해야 할 대상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인데, 피해를 입은 사람의 입장에서 너 잘못했어, 반성해, 다시는 그런 일 하지 마라고 해봤자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반성하는 척해 이 때를 벗어날 뿐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예로 들면 소위 생활지도부라는 곳에 가면 학생들에게 반성문을 요구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구구절절히 반성문을 써오는데... 그 반성문대로 행동이 변화된 학생이 얼마나 될까.

 

교정시설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단지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차원을 넘어 범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교육도 하는데... 학교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교육을 한다는 것.

 

결국 이들 역시 반성하는 척(?)을 하게 된다는 것.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저를 돌봐주신 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이런 류의 틀에 박힌 반성문만을 쓰게 되고, 행동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반성의 역설이다. 반성을 강요하기에 다른 사람에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반성을 시키는 것이 일으키는 부작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성은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이니, 반성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피해자의 시선이 아니라 가해자의 시선으로 먼저 사건을 보게 하라고 한다. 자신이 왜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했는지를 글로 쓰게 하는 것이다. 그 글을 쓰다보면 이상하게도 첫부분에서는 피해자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글이 나오게 되고, 중간 부분을 넘어가면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반성하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이것은 피해자에 대한 감정을 풀다보니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이것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턱대고 반성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랬는지 차분히 그 이유부터 들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어렸을 적에 나타난 문제는 앞으로 일어날 큰 문제를 막는 예방주사가 될 수 있는데, 앞뒤 안 가리고 반성하라고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봉합되어 버리고 이것이 나중에 크게 터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반성을 시키면 범죄자가 된다'는 말의 의미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반성문을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방해한다. 그리고 그 때만을 벗어나게 한다. 또한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원인을 차분히 밝히는 일을 막는다.

 

그러니 우선 너 잘못했어, 반성해 라는 말을 하기보다는 왜 그랬는지 가해자의 입장을 우선 고려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해자를 완전히 긍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목적은 가해자가 다시는 그런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기 위한 근본적 치유는 원인을 감추고 당장의 행동을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가해자 자신이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반성문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면서 자신을 발견하면 그 다음으로 진정한 반성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안 좋은 행동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 이 책에서 제시한 내용 곱씹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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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날 인연이 있는 시집이다. 헌책방에 가고 싶단 생각에 아무 생각없이 길을 나섰는데... 그 헌책방에 도착했을 때 이런, 문이 닫혀 있었다.

 

  뭐야, 휴일이 아닐텐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체로 휴일은 일요일이거나, 월요일인 경우가 많은데... 목요일이 휴일이라니.

 

  굳게 닫힌 문에는 정기휴일 매주 목요일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일이... 그렇다고 헌책방이 이 집만이 아니니, 옆 헌책방으로 발길을 돌려 책을 둘러본다.

 

  책을 둘러보지만, 눈에 띠는 책이 별로 없다. 책들의 배치가 눈에 익지가 않아서일테지만, 낯설다. 그러니 책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오늘은 공쳤구나, 하고 나와 커피 한 잔을 하자고 커피집에 들어가 커피를 시키고 들고 나오는 순간, 아, 그 헌책방의 문을 주인이 열고 있다.

 

들어가서 책 봐도 돼요 하니, 된단다. 본래는 쉬어야 하는데, 밀린 일이 있어서, 정리할 것이 있어서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책과 나는 인연의 끈이 닿는다.

 

너무 오래 있으면 책정리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 시집 서가를 빠르게 죽 훑어보는데, 김명수 시집이 눈에 띤다. 김명수 시인, 나에게는 오래 전부터 '하급만 교과서'로 각인되어 있는 시인이다. 특히 요번 정권에서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드는 바람에, 우리 국민을 무슨 하급반 학생 취급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던 터에, 김명수 시인의 시집이 헌책방에 있으니 안 살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이미 하급반을 졸업하고 상급반도 뛰어넘어 학문을 한다는 대학 수준의 공부를 전국민이 하고 있는 터에, 무슨 국정화... 정말, 김명수의 시 '하급반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국민들 역시 정권이 만든 교과서를 그대로 따라 읽게 하려고 하는 걸까.

 

이미 대학 수준의 교양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데, 교육 수준을 - 중,고등학생은 대학 수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미 사회의 수준이 그러한데... 무슨... - 이렇게 낮추어도 되나 하는 답답한 마음.

 

이 시집은 1991년에 나온 시집이다. 그러니 지금 상황과 많이 달라졌어야 하는데... 그런데... 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 씁쓸하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 참다운 사람 세상의 작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145쪽)

 

그래서 시는 시대가 흘러도 사람들이 지닌 보편적인 마음에 호소하기 때문에 계속 읽히고 낭송되는지도 모른다. 그런 시가 좋은 시겠지... 요즘은 낭송하기 힘든 시도 많지만, 낭송이 안 되더라도 꾸준히 읽히는 시는 좋은 시다. 여기에 시간이 흘렀어도 사람의 정신을 깨우치는, 생각하게 만드는 시가 좋은 시다.

 

이 시집에서 '수유리에서 온 편지'를 시작으로 '개미'라는 시를 생각하고, 이어서 '불씨'라는 시로 지금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유리에서 온 편지

 

(앞 부분 생략)

 

답해주세요.

여기 차가운 땅, 땅 밑 세상으로

그곳, 우리 뜨겁게 사랑하던 조국의

새 소식 전해주세요.

조국은 이제 정녕 자유로운지?

우리가 뿌린 씨앗 싹이 텄는지?

불의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자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자

내 조국 내 땅의 어진 백성들을

송두리째 짓밟고 옭졸라 매어

감히 우두머리라 으스대는 자

이제 그자들 다시 없는지

밀실에서 대로에서 이름도 없이

자유와 정의와 민주의 이름 아래

짓밟혀 비틀려 목 졸려 쓰러지는

피지도 못하고 봉우리째 시드는

우리들 아름다운 청춘들은 없는지

 

(뒷부분 생략)

 

김명수, 침엽수 지대, 창작과비평사, 1991년. 89-90쪽에서

 

답을 할 수가 있나? 과연 우리는 이 물음에 제대로 답할 수 있나? 아직도 우리는 이 시에서 말하는 화자들의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사람은 신문과 뉴스를 보지 않아야 오래 살 거라고 했다. 오래 살기 위해서 신문을 끊고,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사람... 왜냐고? 안 좋은, 속 터지는 일만 나오니까. 아직도 권력을 쥔 자들이 호령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더 자유와 권리를 구속당하기도 하니까.

 

시에서 말하고 있는 '불의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자 /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자 / 내 조국 내 땅의 어진 백성들을 / 송두리째 짓밟고 옭졸라 매어 / 감히 우두머리라 으스대는 자' 들이 없다고 어찌 말할 수 있는가. 뉴스를 보면, 신문을 읽으면 이들이 늘 전면에 나오는데...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듯이, 여전히 자신들이 옳다는 듯이.

 

그러니 '땅의 어진 백성들'은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대지만, 더욱 말라갈 뿐이다. 더욱 쪼들려 갈 뿐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다른 곳을 바라볼 힘조차 없게 된다.

 

'저녁이 있는 삶' 꿈만 같은 얘기다. 저녁을 함께 먹을 시간도 없다. 각자 살기 바빠서. 그러다 나이들면... 결국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해 갈 뿐이다. 그것이 바로 이 '땅의 어진 백성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이다. 

 

이 시집에 나온 시 '개미'에 나오는 모습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지금 모습이기도 하다. 이 시가 나온 지가 15년이 지나가는데도.

 

     개미

 

개미는 허리를 졸라맨다

개미는 몸통도 졸라맨다

개미는 심지어 모가지도 졸라맨다

나는 네가 네 몸뚱이보다 세 배나 큰 먹이를

끌고 나르는 것을 여름언덕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네가 네 식구들과 한가롭게 둘러앉아

저녁식탁에서 저녁을 먹는 것을 본 적 없다.

너의 어두컴컴한 굴속에는 누가 사나?

햇볕도 안 쬐 허옇게 살이 찐 여왕개미가 사나?

 

김명수, 침엽수 지대, 창작과비평사, 1991년. 10쪽

 

이 시를 읽는 순간, 어이구 하는 한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 우리는 바로 이 개미처럼 살고 있지 않나. 일에 허덕거리며 평생을 살지만... '식구들과 한가롭게 둘러앉아 / 저녁식탁에서 저녁을 먹'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지 않나...

 

그런데, 이런 개미들과 달리 '허옇게 살이 찐 여왕개미'들이 얼마나 많나... 그들이 바로 신문과 뉴스에 자신들의 얼굴과 이름을 그리고 행적을 드러내고 있지 않나. 부끄럼도 없이, 당당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면 안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이런 삶, 벗어나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움츠리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어진 백성들'이 물이라면,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르던 물이라도 더이상 견딜 수 없을 때는 배를 엎어버릴 만한 힘을 발휘한다. 그 힘이 지금은 숨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시 '불씨' 명심할지어다.

 

  불씨

 

아궁이 속에

불꽃이 사위면

할매는 남아 있는 잉걸불을

재로 묻었다.

 

차가운 강바람이 문풍지를 찢어대던 밤이 가고

밤새 먼산에서 울던 늑대들의 울음도 그쳐

새벽해가 약산 너머 솟아오르면

할매는 부엌에서 아궁이의 재를 헤쳐

잉걸불을 꺼내

가랑잎에 넣어 불어

불을 일궜다.

 

오늘은 가슴에 불씨를 묻어두는 사람들 많다.

 

김명수, 침엽수 지대, 창작과비평사, 1991년. 85쪽.

 

'오늘은 가슴에 불씨를 묻어두는 사람들 많다'고 했지만, 그것은 오늘'은'이다. 그렇다면 내일은 그 불씨를 꺼내 불을 붙일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도 된다. 불씨는 지금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 가슴 속에 있다. 다만 숨겨두고 있을 뿐.

 

그러니 '여왕개미들'이여, 불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영원히 자신들의 세상이 유지될 거라 착각하지 말지어다. 이렇듯 사람들의 가슴에 잉걸불이 있음을, 또 그 불을 불어 불을 일굴 사람들이 있음을 깨우치고 있는 시인들이 있으니.

 

김명수 시인의 말처럼 시는 참다운 사람 세상이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또 그 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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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연설.문학 비평 알베르 카뮈 전집 18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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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평화상을 수상한 고 대중 전대통령 이외에 노벨상 수상자를 낸 적이 없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분야라고 생각하는지, 다른 분야에서는 후보자에 대한 기사를 언론이 다루지 않는데, 문학상 분야만은 후보자들 중에 우리나라 문인 누가 올랐다더라 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한다.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문학상을 결정하는데, 그들이 후보자를 선정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나라 도박사이트 (세상에 노벨상까지도 도박사이트에 올라 배당액을 선정하는 이 세태라니...)에 누가 후보자 몇 위로 올랐다고 호들갑을 떠는 기사가 나기도 한다.

 

이 무슨, 노벨상을 탔다고 그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되지만, 현실 문학세계에서 노벨 문학상은 상당한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과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한 달도 안 되어 번역되어 나오니... 노벨 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는 미국 가수인 밥 딜런이 선정이 되었다. 사회 참여적인 노래를 불러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가수이기도 하지만, 그가 부른 노래들의 가사는 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우리나라에도 번안이 되어 많이 불려졌으니... 그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고, 또 그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읽힐 것이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이 작가. 어쩌면 그가 우리나라에서 더 유명해진 이유가 바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작품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 나 역시 카뮈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있는 편이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상의 권위로 훌륭한 작가로 그를 대우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름이 잘 알려진 작가인데...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카뮈란 작가가 문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글이 바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직후 스웨덴에서 한 연설이 아닐까 한다.

 

작가는 오늘날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를 겪는 사람을 위해서 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11쪽)

 

... 작가라는 직업의 위대성을 보증하는 두 가지 짐을 능력이 닿는 한 짊어진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 두 가지 짐이란 다름 아니라 진실에 대한 섬김과 자유에 대한 섬김입니다. 작가의 사명은 최대 다수의 사람들을 융합시키는 것이므로 거짓과 굴종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12쪽)

 

모든 세대는 저마다 이 세계를 개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세계를 개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세대의 과업은 ... 이 세계가 붕괴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3-14쪽)

 

이런 말들을 통해서 카뮈는 작가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만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는 작가가 아니라, 진실과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사람, 이 세계가 잘못되고 있다면 작품을 통해서 잘못을 저지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작가'라는 것이다.

 

좀더 이 주장을 구체화하는 것이 스웨덴 대학에서의 강연이다.

 

우리 시대는 우리가 시대에 무관심한 채 지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작가들은 그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면 당장에 비판을 받고 공격을 당합니다. 또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침묵만을 물고 늘어지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고 시끄럽게 비난을 퍼부어댑니다. (17쪽)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숱한 제국과 국가들이 서로 싸우며 법석을 떠는 한가운데서 나직하게 날개 치는 소리처럼 생명과 희망이 꿈틀대는 정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한 국민이, 또 어떤 사람은 한 개인이 이 희망을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 자신의 행동과 작품을 통해서 국경과 역사라는 가장 어설픈 외관을 부정하는 수백만의 고독한 사람들이야말로 이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소생시키고 간직해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늘 위협을 겪고 있는 진실, 그러나 각자가 만인을 위하여 자신의 괴로움과 기쁨을 딛고 일으켜 세우려 하는 진실을 덧없는 한순간이나마 빛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49쪽)

 

작가는 어지러운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더라도 희망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바로 진실과 자유를 섬김으로써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런 작품을 그는 쓰려고 노력했고, 비평을 통해서 자신의 관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작가란 말에는 어떤 책임이 따르고 있음을 카뮈의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앞에 인용한 말처럼 지금 우리 시대도 작가가 말을 해도, 말을 하지 않아도 비판, 비난을 받는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작품을 통하여 해야 한다는 것, 그런 작가를 시대가 요구한다는 것...

 

카뮈의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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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 2016.여름 - 2호, 시론
파란 편집부 엮음 / 파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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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선 이 책 가격에 비해서 내용이 더 알차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가격이 그리 싼 편은 아니지만, 요즘 책값들이 보통 12,000원에서 15,000원 사이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 분량에 15,000원이면 싼 편에 속한다고 본다. 450쪽이 넘는 분량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책 크기가 조금 작으니 우리가 보통 국판이라고 하는 다른 책으로 치면 400쪽쯤 되는 분량이겠다.

 

왜 가격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많은 책들이 한 번 읽고 서가로 직행해 거기서 평생을 보내거나, 또는 아예 끝까지 읽히지도 않고 어느 책 밑에 깔려 있는 운명을 맞이해서 도무지 제 밥값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펼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제 몫을 충분히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책이다. "계간 파란"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이번 호 기획은 "시론"이다. 시에 대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론가들이 펼치는 시론이 실려 있지 않고, 시인들이 말하는 시론이 실려 있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평론가와 시인은 같은 작품을 놓고도 다르게 보는 경우가 많다. 평론이 시를 선도하느냐 따라가느냐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평론가들이 주장하는 시론보다는 시인이 직접 주장하는 시론이 더 시를 잘 이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총 28명의 시인이 시론에 대해 글을 썼다. 허만하 시인부터 정영효 시인까지. 이들을 배치한 순서는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시인으로 등단한 해에 따랐다. 1957년에 등단한 허만하 시인과 2009년에 등단한 정영효 시인까지 등단 년도만 보면 50년도 더 차이가 난다.

 

강산이 무려 다섯 번이나 바뀌었던 세월, 그 세월을 따라 시를 발표한 시인들이 자신의 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는 글들이다.

 

그 글들은 다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어느 시인의 시론이 더 시론답다 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마치 우리가 '나무'가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각자의 설명이 다 다르듯이. 그 설명들에 우열을 가릴 수 없듯이.

 

한 편 한 편의 시론들을 읽으며 시란 무엇이라고 꼭 정의하기 힘든 것, 그러나 이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완성된 무엇이 아니라는 것.

 

시는 변화요 움직임, 그러므로 딱 이거다 할 수 없는 것. 시란 성공할 수 없는 것, 실패를 예견하지만 쓸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말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읽어보며 자신의 구미에 맞는 시론을 받아들여도 되니...

 

시론에 관해 내 맘에 들은 구절들은 아래에... 너무도 많은 생각해 볼만한 시론들이 있지만 주관적으로, 그냥 내 맘대로 인용한다.  

 

시는 비록 여리지만, 이따금 그 해독을 위하여 인간의 지적 체계 전부를 동원하기를 보채는 철부지다. - 허만하 21쪽

 

▶ 시인은 정해진 위대한 실패를 향해 영원히 오르고 또 오를 뿐이다. - 문정희 33쪽.

 

▶ 시는 모든 질문을 비켜 가게 만들었고, 모든 질문이 하나의 질문이 되게 했다. - 백무산 71쪽.

 

▶ 언어는 언제나 실패를 하게 되어 있고, 그 실패가 언어의 무기일 것이다. 그 실패를 다루는 자가 시인이다. - 백무산 72쪽.

 

▶ 결핍을 인식하는 것이 어쩌면 시 쓰기의 시작일 것이다. - 허수경 96쪽.

 

▶ 시의 언어는 ... 말해질 수 없는 말이며, 재현 불가능한 말이다. 혀를 잃어버린 입, 또는 입을 잃어버린 혀처럼.   시를 쓰는 일은 죽은 몸 위에 스스로 비문을 새기는 일처럼 답답하고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 나희덕 114쪽.

 

▶ 언어가 꾸는 꿈보다 언어가 꾸는 현실이 내가 뒹굴어야 할 시의 현장이고 사랑의 속세다. - 박용하 125쪽.

 

▶ 시는 지금 이 순간 태어나는 말이면서 저 먼 과거의 빛이며 지금 이 순간을 새기는 말이면서 태어날 미래의 입김이다. 누구나 보고 있으되 보지 못한 말이고, 누구나 듣고 있으되 듣지 못한 말이며, 무수히 말했으되 아직 말해지지 않은, 무수히 썼으되 아직까지 쓰여지지 않은, 아는 말이되 모르는 말이다. - 박용하 129쪽.

 

▶ 시 또한 뼈 없는 신체를 가진 미지의 우주적 생물체다. - 함기석 148쪽.

 

▶ 시는 기존의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되는 체험, 그 암흑의 감각으로 사물과 우주를 새롭게 인식하는 전위적 탐측 행위다. - 함기석 153-154쪽.

 

▶ 시는 환멸을 또 다른 환멸로 바꾸는 작업이며, 상상력을 통해서 잘 보이지 않는 자아, 타자, 사물, 음악에 다가가려는 노력의 결과다.  시인은 누구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하는,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거나 사원을 지으려 한다. - 정재학 188쪽.

 

▶ 시는 문장에서 문장으로의 이행 자체다. - 김언 202쪽.

 

▶ 시는 눈의 문제로 시작해서 귀의 문제로 끝난다.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듣는 것으로 끝난다는 말이다. - 김언 205쪽.

 

여기에 첨부하면 이 책에는 시론이 기획으로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들이 실려 있다는 것. 그 시들을 읽는 재미.. 한 시인이 세 편씩의 시를 발표하고 있는데...16명의 시인이 작품을 실었다. 이번에는 가나다 순으로 시를 수록했고.

 

이 시들 중에... 이 시... 에고, 우리나라엔 아직도 천사가 더 필요한지... 이제, 천사는 필요없는데... 천사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슬픈 시. 이런 천사들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천사들의 나라

 

우리는 이제 걱정 없을 거다

삼백 명 아이들이 천국으로 가

천사가 되었으니

두고 온 나라를 보살펴 주겠지

책임 있는 자들이 침묵하고

예수 팔아먹는 목사들이 망언을 해도

우리는 이제 잘나갈 거다

심청이처럼 바다로 뛰어든 아이들

남겨진 부모를 생각할 터이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전윤호, 천사들의 나라, 계간 파란 2016년 여름호. 4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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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4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지금도 문학 잡지인 계간지 하나 정기구독하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ㅎ 이렇게 또 계간지하나 소개해주시니..근질근질하네요..
문학도가 아닌데 계간지 2개보는건 오버 아닌가 싶어서.고민되네요..ㅎㅎㅎ

kinye91 2016-10-14 11:49   좋아요 0 | URL
저도 정기구독하고 있는 계간지가 있지만, 모두 구독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때그때 기획을 보면서 사 보는 편이거든요.
 
국수는 내가 살게 삶창시선 46
김정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영화 두 편을 이틀에 걸쳐 보았다.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그냥 영화를 보고 싶었다고 할까? 그 두 편의 영화가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로 연결이 될 수도 있는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보고나니.

 

한 편은 "죽여주는 여자" 그리고 또 한 편은 "그물"

 

[죽여주는 여자], 얼핏 떠오르는 말은 '와, 저 여자 죽여준다!'는 말. 여기서 죽여준다는 끝내준다는 뜻, 처음에 영화는 그런 뜻의 주인공을 보여준다. 그러다 이 말을 목숨을 끊어준다는 뜻으로 바꾸어 주인공을 보여준다.

 

 성적(性的)으로 끝내주는 여자에서 사람을 죽여주는 여자로... 사람이라야 힘없는 남자 노인. 앞으로의 삶에 희망이 없는 사람들. 인생에서 쓸쓸한 겨울을 맞이한 사람. 더 이상 살아갈 어떤 이유를 찾지 못한, 빅터 프랭클의 말을 빌리면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

 

 여기에 주변 인물들은 어떤가. 함께 거주하고 있는 남자 인물은 다리 한쪽을 잃은 장애인에, 변변한 돈벌이를 못해 집세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을 보듬어 주며 사는 집주인은 트랜스젠더이고, 여자주인공이 데리고 온 아이는 혼혈아.

 

다들 사회에서 변방에 머무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소수자로 분류가 되는 사람들. 대다수가 삶 속에서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적은 온기나마 함께 나누는 사람들. 이들에게 사회는 겨울이다. 그들의 삶을 지탱하기 어렵게 하는.

 

[그물]. 그물에 걸리면 죽는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도저도 못하고 속절없이 그물을 던진 사람의 뜻에 의해 운명이 결정될 뿐이다.

 

하여 그물에 걸린 존재는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왔든, 또 어떤 생각을 하든 자기가 결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그물을 던진 존재의 결정에 따를 뿐. 여기서 자신의 의지가 발휘된다면 단 하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

 

 갑자기 혹독한 겨울로 내던져진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길은 그물을 치워버리는 일인데... 그것이 쉽지 않음을 영화는 그물에 걸린 인간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물론 영화는 남과북이라는 현실이 개인의 삶에 그물로 작용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남과북이 이렇게 대치하고 서로 체제와 이념 전쟁을 하는 사이, 그 사이에 낀 개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파멸해 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개인에게 이를 계절로 표현하면 혹독한 겨울이다.

 

여기서 두 영화의 공통점을 찾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두 영화를 보고 난 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연결시켜준 책이 바로 이 시집 [국수는 내가 살게]이다.

 

이 시집에서도 '겨울'에 해당하는 삶들이 많이 나오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첫시인 '겨울'은 반대로 생각하도록 해서 겨울의 의미를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게 한다.

 

'겨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시인데...

 

    겨울

 

겨울은 참 따뜻한 계절이다

그대의 체온을 그립게 하니까

 

겨울은 참 인간다운 계절이다

그대의 추위를 나누게 하니까

 

살 에는 평화의 소녀상에게 목도리를 씌워주고

살갑게 손잡고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겨울은 참 깊은 철학의 계절이다

묵은 정신의 때를 서슬 푸르게 벗기게 하니까

 

김정원, 국수는 내가 살게. 삶창. 2016년. 초판 1쇄. 12쪽.

 

따스한 봄만 있다면, 겨울을 알지 못하고 살리라. 자신의 인생에서 이상하게도 봄만을 보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겨울에 사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감성이 없으리라. 아니, 머리로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래서 머리에서 가슴까지, 다시 가슴에서 손과 발로 가는 가장 먼 길을 (고 신영복 선생님의 말) 그는 절대로 가지 않으리라.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자신 역시 머리에서 가슴, 손과 발로 가는 여행이 30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교사이자 시인이다)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미 전성기를 지나 노년에 접어들어 사회에서 더이상의 쓸모를 잃고 잉여가 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받는 사람들, 없어서, 도무지 가진 것이 없어서 몸을 팔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념이 달라서 배제되는 사람들...

 

기껏 가진 아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살고 싶다고 해도 안보라는 이름으로 그것마저 빼앗기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삶은 얼마나 추운 겨울인가. 그런 겨울을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손과 발로의 여행을, 그리고 겨울을 나는 사람 곁에서 함께 겨울을 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 시를 보라. 그렇게 겨울은 다가온다. 그에게 겨울은 주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따스한 봄 속에 갇혀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 주변에 겨울이 있음을, 그리고 그 겨울은 홀로 나면 더 힘들어짐을...

 

함께 나야할 겨울은 '묵은 정신의 때'를 벗기고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함께 나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두 영화에서 얼마나 멀까? 멀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 두 영화는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우리는 이런 혹독한 겨울에 살고 있다고. 이런 겨울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고 보여주는 거울.

 

그리고 이 시는 이런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 시에서처럼 우리는 '겨울'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함께 나려고 해야 한다. 그러면 '겨울'은 곧 '봄'에게 우리를 양보한다.

 

김정원의 이 시집을 읽고 영화 두 편과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겪고 있는 겨울을 생각하게 됐다. 그냥 춥다고 혼자만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함께 나야 더 겨울을 잘 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 시이고,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이 시 말고도 마음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시들이 제법 많다. 그 따스한 온기가 번져 나갔으면 좋겠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반갑고, 고맙고. '겨울'을 날 때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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