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과 망각
김용진.박중석.심인보 지음 / 다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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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라면 제목을 아마도 '친일과 기억'이라고 붙였겠지. 친일을 기억해야 한다고. 그런데 '친일과 망각'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니, 아마도 그 의미는 친일의 주체들이 (이들 중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미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기억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반성이나 책임을 질 수도 없게 되었다) 또는 그 후손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망각' 쪽에 서 있지 않나 하는 마음이 작동했으리라.

 

우리 사회에서 반발을 일으키는 말들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두 단어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친일'이고 하나는 '빨갱이'(종북이니 좌파니 다 같은 의미로 이 말에 포함시킨다)다.

 

'친일'이라는 말이 주로 보수 쪽의 반발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말이라면, '빨갱이'라는 말은 주로 진보 쪽의 반발을 많이 불러일으킨다. 아마 상대방을 비방하는데 이 말들보다 좋은 말은 없을 터. 또한 그들이 처한 위치가 그만큼 다르다는 말도 될 것이고.

 

그런데 과연 이 말들이 실체가 있느냐 하면 그게 참 모호하다. 실체 없는 말들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기도 한다. 또 한 때 이 말들이 막 나왔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쏙 들어가 버리고 만다.

 

'친일'은 분명 실체가 있는 말이어야 하는데.... 당사자들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고, 이제는 자식 정도가 아니라 2대, 3대 후손들을 대상으로 너희 조상이 친일을 했다고 해야 하니, 조상의 잘못을 후손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식으로, 왜 나에게? 난 아무 상관도 없는데? (지금 자신의 자리를 잘 돌아보면, 아무 상관도 없는데... 라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텐데)라는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후손들 가운데 조상의 친일을 인정하는 사람도 드무니... 법적 소송을 통해서 자신의 조상이 친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려는 일까지도 하고 있으니... '친일'이라는 말이 정확한 실체로 다가오지 않고 상대를 비방하는 말로 전이되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빨갱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건 아예 상대방을 찍어누르려고 쓰는 말이니, '친일'이라는 말과 같은 위상에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말이다. 실체를 찾기 힘든 말.

 

그러니 책 제목에서 친일과 관련된 사람들의 관점이 '망각'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잊고 싶고, 다시 언급되지 않았으면 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는 '친일'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다. '기억'을 하고 있어야 '용서'를 할 수 있다. '망각' 속에 함께 빠져 있다가는 '용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망각' 속에서 허우적 댈 뿐이다.

 

이 책은 해방 70년을 맞이하여 친일 문제를 다룬 방송에서 '취재한 내용 중 핵심적인 사실과 다큐멘터리에서 제대로 담지 못한 내용, 취재 뒷얘기 등을 엮어서' (9쪽) 낸 것이다. 따라서 <친일과 망각>이라는 방송을 본 사람들에게는 그 방송을 더 풍부하게 하는 책이 될 것이고, 방송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친일의 잔재들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는 책일 될 것이다.

 

친일파 후손들을 추적하여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업, 교육 수준, 경제적 조건 등을 살펴보고 있다. 결과는 우리가 추측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면도 있기는 하지만 - 이는 책에도 나오는데, 친일파들의 후손들이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권력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들 후손이 가장 많이 택한 직업이 의사, 교수 등이라는 사실 - 대체로 우리의 추측과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직업들이 대체로 좋으며,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고, 경제적 수준 역시 상류층에 해당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 이것은 그들이 직접 친일을 한 조상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더라도 그가 물려준 사회, 경제,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는 쉽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독립운동가들의 자손들은? 이들과 거의 대칭이 되는 삶을 산다고 보면 된다. 직업도 변변찮고, 교육 수준도 낮으며 - 하다못해 대학 중퇴 수준의 학력이 높은 편에 속한다 - 경제적으로도 빈곤 수준에 가깝다는 사실.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출발점이 후손들의 삶을 결정해 주는 주요 요소로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이건 문제다. 출발점이 다르면, 그 출발점을 고쳐주는 역할을 국가가 해야 했음에도, 하지 못 했음을 - 안 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듯, 그래서 '친일'을 직접 친일을 한 당사자들과 그 후손들이 '망각' 했지만, 이것을 바로잡아야 할 나라도 '망각' 했음을, 그것도 '의도적으로 망각' 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게 이 책이 지닌 의미다. 친일파들의 후손들에게 무슨 연좌제를 씌워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출발은 이미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그것을 기억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 '용서'가 나오고, '화해'가 된다. 바람직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처음이 시작도 안 되고 있는데... 이 <친일과 망각>이라는 방송을 통해서, 또 이런 책을 통해서 그 처음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망각' 속에 완전히 빠지지 않았음을... 그래서 '친일'이라는 말이 보수층을 겨냥하는 화살로 아직도 작동하고 있음을, 이것이 화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정'이 우선되어야 함을... 최소한 '기억'해야 함을.

 

특히 후손들은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접한 조상들의 모습과 사회적으로 판단되는 조상들의 모습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적인 자리에서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조상이, 공적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 수도 있음을 먼저 생각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다음이 시작될 수 있다.

 

여전히 친일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무슨무슨 위원회들 해체된 상태고, 아직도 정확히 '기억'으로 남지 않았으니...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친일'은 실체가 있는 활동이었으니... 그 실체를 기록으로 남겨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 '망각'의 반대 편에 서 있어야 하는 존재들, 바로 '기억'의 편에 서 있어야 할 존재는 바로 우리들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상기시켜준다.

 

덧글

 

의문 1. 153쪽. 친일파 정교원에 대한 설명 중 ... 그는 1944년 3월 중일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1940년 4월 29일자로 욱일중수장을 받았다.  -> 년도가 앞뒤가 안 맞는다. 반민규명위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를 볼 수 없는 나로서는 앞뒤 년도 중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의문 2. 227쪽. 일제 강점기 시기, 누군가는 일제에 종속적으로 협력했고, 또 누군가는 일제에 저항했으며, 어떤 이들은 반일도 극일도 아닌 '회식지대'에서 살아가기도 했다. -> 이건 누가 봐도 오타겠지. 회식지대... 회색지대

 

아쉬운 점. 책에 부록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 (줄여서 반민규명위)에서 발표한 1006명의 명단을 실어줬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활동을 요약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분야별 명단만이라도.  

 

마음을 울리는, 너무도 슬픈 사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시... '아들에게' (189쪽) 독립운동으로 평생을 바친 분이 이승만에게 쫒겨나고... 그 아들 둘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죽고, 셋째 아들이 자동차 운전으로 부친을 부양하는 모습. 그 아들에게 준 당당한 시. 그러나 우리는 지금 심산 김창숙을 더 존경하는가? 아니면 성균관대를 인수한 삼성 일가를 더 선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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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고문이다 6

- 직립보행


인간다움은 직립보행이다

고문은 인간다움을 부정한다

똑바로 서서는 절대로 안 된다

병원도 직립보행을 거부한다

1단계,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한다

온몸에 바늘을 꽂고 무슨무슨 줄을 줄줄이 달고

2단계, 앉아 이동해야만 한다

여전히 많은 것을 달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3단계, 직립보행이 된다

병원에서 탈주한다

인간이 된다


고문이다, 직립보행을 못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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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들과의 점심 - 상처 입은 우상들, 돈, 섹스, 그리고 핸드백의 중요성에 관하여
대프니 머킨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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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제목 잘도 붙였다. 편집자들이나 또는 저자들이 제목을 붙일 때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그래서 책이 팔릴 만한 제목을 붙이는데... 이 책 제목은 번역자가 번안하여 붙였다기 보다는 저자가 붙인 제목을 직역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저자는 제목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인데... 이 책에는 잡다하다고도 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들이 섞여 있으니 어떻게 제목을 붙이느냐에 따라 책이 읽히느냐 읽히지 않느냐가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제목을 붙인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제목에 대해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다. 에세이 한 편을 쓰다 불현듯 떠오른 표현인데, 이 책을 묶으면서 생각해보니 모음집 제목으로도 적절할 듯싶었다. 유명한 사람들과 정말로 점심을 먹는다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기보다는 형이상학적 묘사, 다시 말해서 유명인들에 대한 우리의 강박과 유명인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 광휘 안팎의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평이라고 해야 옳겠다. -18쪽

 

나는 서점에서 이 책을 훑어보지 못한 관계로 제목에 관한 저자의 이 글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음은 곧 내가 제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유명인들과 점심을 하면서 그에게 이야기를 듣고 그 결과를 책으로 냈다고...

 

유명인들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책을 구입한 것이었는데... 이런, 역시 서점에서 직접 책을 넘겨보며 고르는 일과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일이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이야.

 

그래도 처음엔 좀 흥미로운 부분이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마릴린 먼로와 다이애나 황태자비'에 대한 글이니 말이다.

 

그들의 죽음이 비극이었고, 죽음의 전모가 다 밝혀지지 않았기에, 그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에서, 이들에 대해서 글을 써서 우리에게 그들을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하여 1부에는 책 제목과 어울리는 이야기가 실려 있어, 읽어가면서 나름 만족한다. 그러다 2부에 접어들면 문화적 충격, 생각과는 다른 내용에 어리둥절해지고,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내밀한 자신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유명인이 아닌. 게다가 이 사람의 생활이 나하고는 너무도 동떨어진 삶이니, 도대체 그 문화를 알지 못하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남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다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이 글에서 보이는 미국문화를 읽는 것이 아니라, 글에 보이지 않는 우리 문화를 읽으려 한다.

 

사람들이 같은 시공간에 살더라도 다 다르게 살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면서, 내 삶의 방식만을 고집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2부와 4부를 읽어갔다.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특히 애완동물에 관한 글 (개털아 휘날려라)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읽으며 논점을 잡아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읽기가 편해지고 더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읽어가면 3부와 5부, 6부에 이미 들어본 이름들이 나오니 읽기가 더 친숙해진다.

 

그리고 제목을 붙인 이유와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삶을 엿보는 그런 경험을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다양한 간접경험을 한다.

 

우리 문화에서는 도무지 경험할 수 없는 것들, 그리고 글로 이렇게 표현해서 출간이 되기 힘든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다른 문화를 경험한다.

 

그 경험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내 것만을 고집하는 고집을 버리게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책을 덮으며 이런 다양성들이 어쩌면 서구 사회를 유지해 온 힘이 아니었나 싶다고 생각하고. 단일민족 운운하면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려는 우리의 모습을 비쳐주는 거울이 되는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한다.

 

이 다양한 다름 속에서 어떤 공통점들, 그래도 함께 살 수 있는 그 무엇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이 책 덕분에 다른 문화, 다른 생각 많이 접하고 많이 경험하게 됐다. 내 삶에 경험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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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 즈음해서 우리 소설을 읽으며 간단하게나마 맞춤법을 생각해 보자는 의미로 알라딘에서 기획한 책이다.

 

  소설을 읽으며 맞춤법도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그 기획 좋았다는 생각이 들고, 한글날이 지나기는 했지만, 책을 주문했더니 사은품 목록에 이 소설이 들어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마일리지 1000점에 해당한다. 혹 소설의 전문이 아니라 발췌본이면 어떡하지 하는 우려도 잠깐 했지만,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사은품 신청.

 

  주문한 책들과 함께 온 이 책, 틀린 맞춤법으로 전문을 싣고, 그 뒤에는 다시 고친 맞춤법으로 전문이 또 실려 있다. 여기에 해설까지.

 

  더 마음에 드는 것은 맞춤법을 고치기는 했지만, 소설에서 꼭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표현은 맞춤법에 어긋나더라도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 표기했다는 것.

 

이런 이벤트 가끔 했으면 좋겠다. 마일리지 1000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소설 한 편을 두 번 읽었으니 더 좋았고.

 

소설의 내용을 설명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이 소설의 주인공이 가난을 도둑 맞았다고 생각하는데... 가난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던 주인공이 가난을 부자에게 도둑맞은 다음에는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것.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끄러움까지 안겨주면서 자신들의 경력을 하나 더 쌓으려 하니...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지만 이들 사이의 거리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정도의 거리라고 할 수 있다.

 

가난이 일시적인 경험인 것과 삶 자체인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데... 이제 우리는 가난만을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욕까지도 도둑맞은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우리는 희망마저도 도둑맞은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작은 희망이라도 품고 만족하며 살고 있었는데... 보이는 모습이 온통 그런 희망을 짓밟는 일들 뿐이니...

 

이런 이벤트처럼 잘못된 맞춤법을 적절한 표현으로 고쳐 보여줄 수 있듯이, 희망을 도둑맞고 사는 시대에, 희망을 다시 찾아주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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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칠곡 인문학도시 총서
칠곡 할매들 지음, (사)인문사회연구소 기획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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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할매들 두 번째 시집이다. "시가 뭐고?"에 이어 그동안 칠곡 할매들이 한글을 공부하고 글쓴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시인들만이 시를 쓰는 세상은 고도로 전문화되고 분화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라는 것도 특정한 집단만이 써야 한다면, 그것은 자기 분야가 아니면 전혀 모르는 청맹과니들이 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만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자기 분야말고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의학분야만 하더라도, 우리는 통칭 의사라고 하지만, 의사들도 자기 전공 분야로 나뉘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또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분야에 뭐라 말하기가 그런 세상이 된다.

 

뭐라 말하면 네가 뭘 알아? 하면 할 말이 없기도 하고. 이번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건을 보아도 대다수의 의사들과 사람들은 사망진단서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하는데도 주치의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하면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전문화는 곧 분업화요, 분업화는 곧 소통의 단절이 될 수 있음을 이런 사태를 보면서 절실히 느끼게 되는데... 이런 전문화ㅡ분업화를 거부하고 통합, 융합으로 갈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인문학 분야 아닌가 한다.

 

인문학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학문 간의 융합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함께 하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시 분야로 국한시켜 말해보면 요즘 시인들은 어려운 시들을 많이 쓴다. 그것이 시인이 해야 할 일인 양, 다른 사람과 시인을 구분해 주는 양 난해한 표현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도로 전문화, 분화된 지금 세상을 시인들이 반영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서 시 역시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있고, 시 분야에서도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나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시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행위 아니던가. 예전에는 시인이라는 직업이 없지 않았는가. 그냥 감정이 흘러 넘쳐 무언가로 표현해 내야 한다면 그것을 몸으로든 언어로든 표현하지 않았던가.

 

노래와 시는 그래서 삶과 하나였고,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분야였는데... 근대에 접어들면서 '시인'이 하나의 직업이 되면서,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좋다.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앞 부분에 중점을 두자.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는 부분에 말이다. 그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를 누구나 쓸 수 있게 하는 사회가 바로 좋은 사회 아니겠는가.

 

시를 특정한 사람들만이 쓰는 문학 행위라고 여기게 하기보다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쓸 수 있고, 발표할 수 있는 문학 행위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우리 사회에 시가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칠곡 할매들과 함께 한 인문학 교실, 여기서 한글을 배우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로 쓴 할매들의 결과물은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무언가 화려하게 꾸미려 하지 않고, 자기만 아는 표현을 하려 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온 삶을 그들의 언어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

 

그들 삶 자체가 시일텐데... 진솔한 표현들 속에서 할매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나고 있어서 때로는 울컥하기도 하고, 때로는 웃음이 머금어지기도 한다.

 

시가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오고... 이런 활동을 한 사람들이 고맙고 그렇다. 이 시집에는 칠곡 할매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시, 마음에 짠하게 다가온다. 이게 바로 우리 민초들의 삶이다.

 

민초들은 바로 이렇게 살고 있다. 이런 민초들의 삶, 그것을 소위 말하는 지식인들, 권력자들이 배워야 한다. 자신들의 삶을 강요하지 말고. 

 

  내 평생

            - 남영자

 

20살에 시집 가지고 아 다섯을 낳고

삼십다섯에

혼자 돼 아 다섯 지대로

키워주지 못하고 공부도 올재 못시킸다

그래도 여짓것 살면서

남 해롭게 안 하고 평생 거짓말

한 번 안하고 살었다

남 도와주지는 못해도

평생 남 해롭게 하지는 않았다

 

강봉수 외 118명,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삶창. 2016년 초판. 20쪽.

 

이런 시들이 수두룩하게 실려 있다. 이게 바로 시라는 듯이. 이렇게 삶이 바로 시가 될 수 있다는 듯이. 그래서 시가 삶에 더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준 시집이다.

 

* 표기는 할매들의 표기를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굳이 현대 맞춤법에 맞게 고쳐서 시에 쓰인 표현에서 들을 수 있는 할매들의 목소리를 지울 필요가 없었을 듯하다. 이것이 더 좋다. 그래서 이 시들에서 할매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린다. 눈만이 아니라 귀에도 들리는 듯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늘 고맙다. 이렇게 책을 보내주면. 특히 살아있는 목소리들이 담긴 글을 담아낸 책이 오면 더욱 반갑고 고맙다. 앞으로도 이런 책이 더 많이 사람들 곁에 다가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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