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굴라.오해 알베르 카뮈 전집 1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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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읽어가고 있는 카뮈의 작품들 중에서 이번엔 희곡이다. 젊은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 전에 카뮈의 '정의의 사람들'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방인'이나 '페스트'라는 학교에서 들었던 작품 이외에 내가 처음으로 읽은 카뮈의 작품이 아마 그 작품일 듯하고, 그래서 카뮈의 소설 말고도 희곡도 읽을 만하다는 생각을 계속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읽은 두 편의 희곡 중에서 '칼리굴라'는 그다지 감흥이 오지 않았고, '오해'는 엇나가는 운명에 대해서, 인간들의 삶이 이토록 엇나가고 있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서 괜찮은 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로마의 황제 칼리굴라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다. 그가 폭군이었다는 것, 그래서 쫓겨났다는 것, 그것이 전부 다다. 이 희곡에서 그가 폭군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폭군이 되었나 하는 것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희곡이 아닐까 한다.

 

로마의 황제, 절대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단 하나만 빼고. 그것은 바로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 그 진리 앞에서는 황제라도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면 절대권력의 소유자에게도 자유란 완전하지 않다는 말인가?

 

여기서 '달을 따다 달라'고 하는 말은 결국 소유할 수 없는 진리를 개인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 이 욕망은 바로 죽음을 자신이 조종하려는 마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죽음마저 조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자유에 이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칼리굴라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누구라도 그렇게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차피 막지 못할 죽음을 자신의 뜻대로 해보려 하는 것. 이때부터 궁정에는 피바람이 분다. 그는 죽음의 본질은 어쩌지 못하니 다른 사람의 죽음을, 즉 다른 개체의 죽음을 자신이 조종하려 한다.

 

또한 자신의 죽음에서도 한 발 물러나 있기도 하다. 암살 기도를 알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 죽음을 조종하려는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부처가 생각났다. 부처 역시 절대권력을 쥘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그는 진리를 깨우치려고 한다. 그는 절대로 진리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깨우치려 할 뿐이다. 여기서 칼리굴라와 부처의 길이 달라진다.

 

부처의 깨달음, 그 깨달음 뒤의 자유, 그것은 죽음조차도 넘어서는 자유다. 그러니 부처는 진리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도달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람들에게로 그 진리의 세계를 가지고 온다.

 

'옛다, 여깄다' 하고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도록. 스스로 깨우침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님으로. 그 깨우침으로 죽음을 넘어서도록 안내자가 된다. 칼리굴라는 죽음으로 이끄는 안내자라면 부처는 죽음을 넘어서게 하는 안내자다. 이렇게 다르다. 이런 점을 중심으로 읽긴 읽었는데...

 

그렇다면 '오해' 역시 '죽음 앞에 선 인간'-필립 아리에스의 책 이름이기도 하다- 이다. 오해로 아들과 오빠를 죽인 여인숙 주인들. 그러나 이런 오해는 운명 앞에서 서로의 말이 빗나가는 데서 나온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말의 비틀림.

 

말은 진실에 한 발 다가서기도 하나 자꾸만 그 자리에서 어긋난다. 서로의 마음을 열어주는 말들이 아니라, 서로가 알아주길 바라는 말들일 뿐이다.

 

즉, 내 감정의 진실을 담아 전달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이 내 진실을 알아주길 바라지만 미끄러지는 말을 하고 만다. 이 미끄러지는 말들 속에 사람들의 관계가 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이렇듯 말들이 미끄러지고 만다면 진실한 관계에 이를 수가 없다.

 

좀더 크게 보면 죽음 앞에서 인간들은 진실한 말들을 주고 받아야 하는데도 자꾸만 말을 비트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진실을 담지 않고서도 남들이 진실을 알아주기만 하는 말들. 그런 말들은 기필코 오해를 부른다. 그리고 오해의 끝은 죽음이다.

 

이런 파멸적인 관계로 치닫는 말들... 마지막 장면이 계속 마음에 울린다. 마음을 받아주는 말들이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슬픔에 가득 차 있는 마리아에게 하인이 하는 말, '아뇨.'

 

소통하지 못하는 말들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걸 희곡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카뮈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한 희곡 '오해'였다. 

 

희곡이라는 글의 특성 상 무대에서 상연될 것을 전제로 쓰여졌기에, 대사가 많으니 그 대사를 중심으로 읽어가면 빨리 읽게 된다. 그러나 빨리 읽으면서도 지시문에 있는 내용들을 머리 속에서 상상해내야 하기 때문에, 읽어가면서 연극의 장면처럼 머리 속에 내용을 떠올리며 읽게 된다. 그것이 희곡을 읽는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아마, 직접 연극으로 보면 또다른 감흥을 맛볼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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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6-12-22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뮈 희곡 중에 칼리큘라는 많이 들어본 거 같아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서평을 읽는 동안 한번쯤 꼭 접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해도 마찬가지구요. 좋은 서평 잘 읽고 갑니다.

kinye91 2016-12-22 09:41   좋아요 1 | URL
저한테 그렇다는 얘기니까요.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느낌이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봄에 피었던 꽃이 겨울에 다시 피다

 

봄에 피었던 꽃이

가을에 겨울에 다시 피었구나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던 꽃이

뜨거운 열기를 전해주러 다시

광장 한복판에 피었구나


발갛게 세상을 밝히던 꽃이

세상이 더위에 헉헉거릴 때

땅 밑에 그 열기를 담아두고

세상이 추위에 덜덜 떨 때

다시 길가에 피어나는구나


4월의 바다 속에서

5월의 함성 속에서

6월의 승리 속에서

다시 우리 곁에 온

밝음과 뜨거움을

우리가 어깨를 걸고

손에 손을 잡고 피우고 있구나


세상이 얼어붙을 때 다시

세상을 녹이려 하는구나


봄에 피었던 꽃이

겨울에 다시 피는구나


꽃은 

겨울을 위해 졌던 거구나


겨울에 우리들 손에서 피어나려고

그 화사했던 봄에

졌던 거구나


이렇게,

겨울 광장에 밝고 따스한

꽃으로 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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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가 들려주는 문화 이야기
전세화 지음 / 예경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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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이런 말이 있었다. 연예인의 인기도를 알려면 광고를 보면 된다고. 즉, 광고에 얼마나 출연하느냐가 인기의 척도라고.

 

그만큼 광고는 유명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꼭 연예인만이 아니다. 유명인이면 광고에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유명한 만큼 광고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쉽다는 이유였으리라.

 

그렇다고 유명인이 나온다고 모두 그 광고를 보고 제품을 사지는 않는다. 아니 꼭 광고만 보고 제품을 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광고를 통해서 제품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면 아무래도 제품을 구입할 때 참조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어떤 것을 구매해야 한다면 많이 들어본 것, 아는 것에서 선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광고에 그만큼 투자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광고기획자들은 소비자들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줄 만한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지나치는 광고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흥미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는 그 시대의 문화를 따르거나 또는 그 문화를 토대로 넘어서는 무엇을 제시해야 한다.

 

그냥 자기 멋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과 장소에 맞는 광고를 기획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당시 유명인을 출연시킨다든가 또는 문화적 공통성이 있는 광고를 만든다든가 아니면 그 시대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이게 무슨 광고인가 생각하게 하는 광고를 만들기도 한다.

 

어떤 형태로든 소비자의 눈을 잡아야 한다. 눈을 잡고 마음에 닿게 해야 발을 이끌 수 있고, 광고된 제품을 손에 잡히게 할 수 있다.

 

그러니 광고에는 그 시대의 문화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광고를 보면 그 사회의 문화를 알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광고를 보아야 할까? 이 책은 2004년까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광고들, 해외 광고제에서 수상한 작품들과 우리나라에서 펼쳐진 광고들을 대상으로 광고 읽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냥 광고를 아무 생각없이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광고의 이면에 숨겨 있는 문화까지 읽어낼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 광고가 나왔는지, 그 광고가 의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 광고에서 사용한 방법이나 의도는 무엇인지를 기존의 광고를 중심으로 해설해주고 있다.

 

따라서 광고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그 광고의 문화적 맥락을 읽어내는 재미도 있다. 그런 재미를 통하여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광고를 더 넓고 깊이있게 만날 수도 있고.

 

광고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그 광고를 능동적으로 읽어내려고 하는 사람을 위한 광고에 관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이 광고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구나, 이 광고에는 이런 문화가 깃들어 있구나 하면서, 광고가 이렇게 변해왔구나까지... 그렇다면 지금 나오는 광고는 이런 맥락에서 이런 문화적, 사회적 상황에서 나오는 거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 소비자가 되기 위한 광고 읽기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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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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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관한 책은 재미있다.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서 화가의 삶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 그 당시의 사회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가의 삶과 당시의 사회, 역사를 만난다는 것, 그림을 통해 통합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와 상통한다. 여기에 미적 감상을 통해 감수성을 키울 수도 있으니, 인문학도 이런 인문학이 없다.

 

단순한 그림의 역사와는 다르게 책을 신과 왕, 그리고 민중의 3부로 나누어 그림의 역사를 알 수 있고, 그림들이 사회적 변화에 어떻게 맞물려 변하는지도 알 수 있게 해주었지만, 그 시대에 유행했던 미술사조로 국한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 사람에게서는 딱 하나의 특징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특징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여러 특징들 중에서 화가의 말년에 또는 맨 마지막 그림에 나타난 정신, 기법, 모습, 사회, 역사 등을 고찰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다고 화가의 마지막 그림만 나오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화가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그림도 나오며, 그 화가의 생존시에 유명했던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따라서 읽다보면 자연스레 미술사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편제를 신과 왕, 민중으로 한 이유도 그것이다. 또 등장하는 화가도 연대순으로 배치하여 자연스레 미술사를 익히게 된다. 여기에 화가의 삶을 통해서 단 하나의 사조가 아닌 여러 사조가 그의 그림에 나타남을 보여주기도 하고.

 

먼저 화가와 신 편에는 보티첼리, 라파엘로, 티치아노, 엘 그레코, 루벤스가 나온다.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음 직한 화가들이다. 그들의 대표작도 직접 미술관에서 보지는 못했더라도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았을테고.

 

이들이 말년에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그때의 상태는 어땠는지, 특히 보티첼리 같은 경우는 화려하고 기교가 넘치는 그림에서 그 기교를 쪽 뺀 그림이 말년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들어 한 화가에게 공존하는 여러 모습에 대해, 화가를 한 유파로만 정리해서는 안됨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가와 왕 편에는 벨라스케스, 반다이크, 고야, 다비드, 비제 르브룅이 나온다. 소위 궁정화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그림에 궁정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은 그들이 속한 지위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 나름대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으며, 고야의 경우에는 어느 하나로 국한시킬 수 없는 다양한 그림들이 나오고 있다. 그 점을 볼 수 있는 장인데... 비제 르브룅이란 작가에 대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고맙다.

 

궁정화가가 되어 마리 앙투아네트의 화가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여성 화가.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음에도 자신의 실력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날렸던 화가.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어느 부인의 초상'도 그의 그림이라고 하니, 편견을 딛고 우뚝 선 화가라 할 만하다.

 

또한 이들로 인해 왕가의 사람들이 역사에 남았다는 사실, 별 볼 일 없는 왕이나 왕족이 이들의 그림으로 영원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당시에는 왕가가 갑이었겠지만, 지금은 화가들이 갑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로 남기도 한다.

 

마지막 편인 화가와 민중에서는 브뤼헐, 페르메이르, 호가스, 밀레, 고흐가 나온다. 이제는 시민사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시민들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그림도 변한다. 궁정화가들의 시대는 끝났고, 시민화가들의 시대, 시민들에게 그림을 팔아야만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 그들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은 시민들의 의식에서 관심에서 멀리 벗어나면 안 된다. 그렇게 그림은 시민사회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 활약했던 화가들 중에 몇 사람을 뽑아 그들 그림의 마지막 작품에서 작가의식과 사회를 읽게 해주고 있다.

 

얼마나 다양한 그림들이 나오는가. 얼마나 다양한 기법과 소재가 동원되는가. 이제 그림은 어느 한 분야로 국한되지 않는다. 화가에 따라 수천 수만의 그림이 나오게 된다.

 

이런 식으로 흥미롭고 재미있게 책을 읽어가는 중에 그간에 읽었던 미술사에 관한 내용들과 더불어 새롭게 한 화가에게 들어 있는 많은 특성들을 읽어가게 된다. 더불어 그 시대의 특성 등도 함께.

 

그러니 단순히 그림만을 감상하는 책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화, 적응해 가는 예술에 관한 책이다. 그것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 것과도 통한다. 너무도 난해해지는 현대미술이지만, 언제까지 난해할 수만은 없다.

 

난해함 속에서도 사람들 곁으로 다가오는 미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조가 역사 내내 지속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 우리 시민들 속으로 들어올 예술은 어떤 예술일까, 그런 생각도 하게 한 책이기도 하다.

 

풍부한 그림을 통해 눈요기도 맘껏 하고, 다양한 삶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화가의 모습을 통해 시대와 예술가에 대한 공부도 하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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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판이 워낙 개판이라 묻혀서 그렇지, 지금 우리나라 생태계는 난리다.

 

  고병원성 조류독감(AI-그냥 조류독감이라고 하겠다. 영어보다는 이게 더 친숙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처음 용어가 조류독감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고 한다.

 

  그게 왜 문제냐고? 조류가 병에 걸렸는데,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냐고? 그 조류에 닭이나 오리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열에 조리해 먹으면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하지만, 안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삼가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기도 하다.

 

  병에 걸린 닭이나 오리를 처리하면 되지 않냐는 생각, 그런데 이것이 전염성이라서. 그리고 인간에게도 전염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조류독감에 걸린 닭이나 오리가 있는 농장은 물론이고, 근처 몇 킬로미터에 있는 농장의 조류들까지 모두 살처분(죽이는 것)해야 한다고 한다.

 

벌써 천만 마리가 넘는 닭, 오리들이 살처분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감염의 요인을 철새로 보고 있다. 조류독감에 걸린 철새가 날아와 퍼뜨렸다는 것.

 

그런데, 철새들은 걸려도 몇 마리만 죽어나갈 뿐, 집단적으로 죽는 경우는 없다. 또한 철새는 지구 탄생이래 계속 이동을 거듭해 왔고, 그들이 이렇게 여러 곳을 다니는 동안에 온갖 질병에 걸리기도 했을 거고, 질병균들을 전파하기도 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 문제가 없었던 일들이, 최근에 들어 급속도로 퍼지면서 재앙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인간에게는 전염이 안 되던 것이 이제는 인간에게 전염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철새를 막을 방도도 없고, 또 철새를 막아서도 안 된다. 대책은 다른 데서 나와야 한다. 역시 답은 정해져 있다.

 

지금의 좁은 공간에서 대량으로 사육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이런 일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지금처럼 환경을 파괴하는 일을, 환경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일을 계속하면 안 된다는 것.

 

조류들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이번에는 소와 돼지들이 수난을 당한다. 연좌제에 걸려 수많은 소, 돼지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

 

결국 인간이 만들어 놓은 환경이 문제라는 것인데, 환경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이렇게 살처분으로 나아간다면 상황은 바뀌지 않고 반복될 뿐이다. 그때만 벗어나고, 다시 시작되는 악순환의 반복.

 

촛불이 활활 타올라 우리나라 정치권을 바꿔가고 있는데, 이제는 정치권만이 아니라 생활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지속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촛불 정국이라는 이름으로 묻히고 있지만 지금 고병원성 조류독감, 너무나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철새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만들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헌책방에 산 "지구는 아름답다"란 시집을 꺼내 읽었다. 생태시를 표방해서 한국시인협회에서 시인들에게 생태시를 받아 수록한 것. 401명의 시인들 시가 실려 있다. 모두 환경, 생태를 소재로, 주제로 한 시들이다.

 

이 시들을 읽으며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고, 변화가 시급함을 느꼈다. 정치권의 변혁만큼이나 우리 생활의 변혁도 필요함을.

 

그것들이 따로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함을, 함께 갈 수밖에 없음을, 지금의 정치권력으로는 생태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니.

 

이 시를 보자.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너의 일상을 돌아보라

                    - 강상기

 

강이 오염되었어!

누구 짓이야?

산이 파괴되었어!

누구 짓이야?

오존층이 파괴되었어!

이 또한 누구 짓이야?

 

한국시인협회 엮음, 지구는 아름답다. 뿔. 2007년. 13쪽.

 

누구 짓? 우린 알고 있다. 범인은 바로 우리라는 것을.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언제까지 책임 회피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촛불이 정치권을 바꾸듯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을 바꿔 환경이 더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하자. 지구에 있는 생물들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그것은 바로 내 일상을 되돌아보고, 일상에서 고칠 수 있는 것, 바꿀 수 있는 것은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은 책이다.

 

지금 계속 번지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독감 소식을 접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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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8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8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6-12-18 1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치권만이 아니라 생활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생활 역시 정치가 나서서 주도하고 좋은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정치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가 과거의 악습을 그대로 고수하기에 시민들이 나서야겠지만 시민들 역시 대량 사육, 대량 소비로 인한 저가의 고기를 먹는데 길들여져 있어 그 틀을 깨기는 어렵다 생각합니다. 지금 촛불 집회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데 촛불 집회와 소비자 운동 또는 시민운동은 차이가 있다고 보입니다. 지금의 촛불 집회는 분노(물론 정의감에 기인한 분노)가 추동하지만 친환경이나 유기농 사육에 비해 저가일 수 밖에 없는 지금의 대량 사육의 결과물들을 마다할 리가 없고 그런 점에서 분노해 무엇인가 운동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육식 위주의 생활을 지양하는 길 밖에 없지 않을지요?

kinye91 2016-12-18 14:19   좋아요 2 | URL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분노를 운동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정치겠지요. 지금 현실 정치세력들로서는 이런 일에 나설 일이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지녀왔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치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언론에서 다루지 않지만 그런 정치세력은 비록 힘이 약하지만 존재하고요. 그런 정치세력들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해주고, 내 생활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꿔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ysj0722 2016-12-1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꼬마요정 2016-12-18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경제는 어려워지고, 유기농이나 친환경이 유행한다지만 가격을 포기하기엔 우리가 너무 길들여져 있겠죠.. 그래도 저라도 동물복지 계란 먹고, 가능한 육식을 줄이고, 먹더라도 농장에 풀어놨다는 곳에서 파는 고기를 삽니다. 아울러 삭스핀 같은 거 좀 안 팔면 좋겠고, 잔인하게 채취하는 모피나 거위털, 오리털 좀 안 쓰면 좋겠구요. 이래저래 가슴 아플 때가 많은 요즘입니다. 많은 생각을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16-12-18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qualia 2016-12-18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류 독감(AI, Avian Influenza, Avian Flu, Bird Flu)이나 신종 플루(Swine Flue) 바이러스가 미국의 한 비밀 실험실에서 만들어져 퍼뜨려졌다는 음모론도 있더군요. 이와 관련해 의문스러운 점은 대략 1990년대쯤까지는 조류 독감이나 신종 플루 발생/확산이 거의 없었거나 미미한 수준이었는데, 2000년대 중후반부터 매년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해서 뭔가 수상한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본격 유행하기 시작한 시점, 발생 빈도, 발생 대륙, 확산 속도나 범위, 전염성 여부나 그 병증의 강도, 백신 개발 제약사의 백신 독점 판매, 등등에 대한 상세 사항과 음모론자들이 지목하는 ‘바이오테러’를 획책하는 비밀단체나 비밀국가기관 따위의 음모 내역이 뭔가 서로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지는 느낌도 들고요. 음모론이라 해서 걍 소설로만 여기기에는 뭔가 좀 수상쩍은 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kinye91 2016-12-18 19:22   좋아요 0 | URL
음모론인지 아니면 소설 소재에 불과한지 관심을 가지고 추적, 조사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 방면에는 문외한이라, 처음 들어보는 말이네요.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하니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지겠지요.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이 비극을 먼저 막았으면 좋겠어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12-1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거친 생각에 공감해주시니 다행입니다. 고민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정치가 나아지듯 우리 삶도 나아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