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구에게나 소원이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

 

  제목이'위시'다 우리말로 하면 '소원'이다. '소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가정이 해체되어 이모가 살고 있는 시골로 온 한 소녀 '찰리'. 그녀에게 시골은 따분한 곳이다. 그리고 잠시 머물다 갈 곳이다. 결코 이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소녀는 계속 무언가 소원을 빌 빌미가 있을 때마다 소원을 빈다. 그 소원을 비는 모습이 재미있다. 그런데 그 소원이 무엇인지 나오지 않는다.

 

  소원을 빌 때는 수없이 많다. 여러 조건들이 생겼을 때 찰리는 꼭 소원을 빌지만, 그 소원을 이야기하면 안 된다. 소원은 남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찰리가 절실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집요하리만큼 찰리는 소원을 빈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얘기다. 그 소원이 무엇인지 소설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짐작하고, 또 나중에 알게 된다. 결말에 찰리의 소원이 나오니까. 그 전까지는 늘 소원을 비는 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2, 도대체 이런 가정이... 이런 가정을 만나면...

 

아빠는 감옥에 가 있고, 엄마는 거의 폐인처럼 지내고, 언니는 곧 고등학교를 졸업할 거라서 친구 집에서 기거하며, 미성년자인 찰리만이 보호자가 필요해 이모네 집으로 온다. 가족 해체의 전형이다.

 

아빠는 쌈닭이다. 툭하면 싸운다. 그래서 감옥에 가 있다. 감옥에 가 있기 전에 집에서 보여준 모습은 엄마와 툭하면 싸우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사랑은 없다. 도대체 이런 가정이 어떻게 유지되는가.

 

가정이 해체된 소녀, 찰리는 무언가 '분노'로 가득차 있다. 자신이 잘하는 거라고 뽑은 것 중에 사실이라고 한 것이 바로 '싸움'이니,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한 소녀가 바로 찰리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감의 결여, 그리고 피해의식으로 꽉 차 있다 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집안에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을테니. 아빠의 별명은 쌈닭이고 엄마도 일이 있을 때마다 야단만 쳤으니, 누구에게 칭찬을 받아본 일이 별로 없는 찰리였다.

 

그런 찰리에게 새 가정이 생겼다. 처음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그 가정은 잠시 머물다 갈 가정이다.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스쳐지나가는 곳, 그런 곳에 정을 둘 수가 없다.

 

여기에 친구가 된 하워드의 가정은 그야말로 찰리의 가정과는 정반대다. 시끌벅적하고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그곳에는 사랑이 있다. 가족들이 사랑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것이 찰리의 온몸에 그대로 전달이 된다.

 

이제 찰리는 전혀 다른 가정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가정은 어떤 것인가? 단지 과거로 돌아가는 가정인가? 아니면 이곳에서 경험한 사랑이 넘치는 가정인가. 답은 우리가 알고 있다. 찰리 자신도 알고 있다. 비록 말을 하지 않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답이 나오지만.

 

3. 정을 줄 수 있는 아이는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정을 줄 수 있겠는가. 찰리가.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는 사랑을 줄 줄 모른다.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어떻게 전달하는지 모른다. 제대로 전달하려 해도 그것이 잘 안된다.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 오해가 결국 또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정을 받지 못한 아이는 냉혹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기 표현에 서툴기 때문이다.

 

이런 찰리에게 하워드라는 절름발이 친구가 생긴다. 무언가 찰립만큼 결핍된 것이 있는 존재가 찰리 곁에 나타난다. 그때문에 찰리는 하워드를 멀리하지 않는다. 하워드가 자신과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절름발이로 학교에서는 왕따라 할 그 아이가 활달하게 지내는 것, 남들이 놀려도 전혀 노여워하지 않는 것, 그리고 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함께 지내려 하는 것에 찰리도 조금씩 마음을 연다.

 

또한 이모인 바서와 이모부인 거스 역시 찰리를 진심으로 대한다. 사랑으로, 잔소리보다는 사랑을 먼저 보여준다. 그런 점이 방어기제로 똘똘 뭉쳐 있던 찰리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 여기에 찰리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결정적인 존재, 위시본이 등장한다.

 

떠돌이개에게 찰리는 위시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 개를 결국 자신의 개로 만든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야단만 맞고 싫은 소리만 들은, 그래서 남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경험을 하지 못한 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준다.

 

사랑할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랑을 한다는 것, 사랑을 한다는 것은 곧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거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모인 바서와 이모부인 거스에게 받은 찰리, 또 하워드에게도 친구가 되게 해달라는, 그리고 이곳에서 함께 지내게 해달라는 소원에 대해 들은 찰리.

 

이제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 여기에 개인 위시본에게는 더욱 필요한 존재가 된 찰리이니 자신의 과거와 결별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소원은 결국 이루어진다. 저절로가 아닌 노력으로.

 

과거와 결별, 새로운 가정의 탄생. 그곳에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줄 줄 아는 존재로 거듭나는 찰리. 그 과정이 참으로 유쾌하게 전개되고 있다. 참 비참한 상황이어야 하는데도 지긋이 웃음이 머금어질 정도로 찰리의 행동에 공감하게 된다.  

 

소설이 전개될수록 찰리는 이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된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소통하는 것, 사랑을 줄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그 과정이 결코 짧지 않다. 쉽지 않다.

 

그러나 이모네 가정의 무조건적 사랑, 하워드와의 만남, 위시본이라는 떠돌이개에게 주는 사랑. 이미 찰리는 변해 있다. 이제는 사랑하는 가족을 만들 일밖에 없다.

 

그 소원, 이루어져야 한다. 얼마나 찰리가 바라는 소원인가. 책 제목이 그래서 '위시'다. 떠돌이개에게 붙여준 이름도 '위시본'이다. 닭에게 있다는 V자형의 뼈, 그 뼈를 양쪽에서 잡아 긴 쪽을 잡은 사람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찰리는 위시본을 잡아당긴 결과 긴 쪽을 지니게 된다.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준비는 끝났다. 여기에 자신을 따르는 개 '위시본'까지 있지 않은가.  

 

5.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청소년 소설은 어떤 교훈을 주려고 해, 주제가 재미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소설은 아이들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주제가 강한 소설, 학교에서 지긋지긋하게 배우는 도덕과 무엇이 다른가.

 

우선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성공했다고 본다. 사건 전개가 짧막하게 그리고 빠르게 전개된다.

 

찰리가 곤경에 빠져 있을 때도 이상하게 슬픔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오게 된다.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고전소설에서 보이는 '해학'이 넘쳐난다.

 

그래서 웃으면서 읽게 된다. 또 빠른 전개에 지루할 틈 없이 읽게 된다. 그러니 재미를 느끼면서 읽는다. 읽은 다음에 무언가 마음에 남는다. 그러면 된다.

 

특히 가정에 대해서, 한 아이에게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소설을 읽는 사람들 자신의 가정을 돌이켜볼 수 있게도 되기 때문에... 더욱 좋다.

 

청소년들, 아마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만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덧글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응모해서 당첨이 되었다. 책을 가제본 판으로 받아 읽었다. 재미있는 책이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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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4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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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다. 이제 소설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그리고 혁명. 이 4부의 제목이 그것을 알려주고 있다.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는 두 연인을 나타낸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두 사람, 그들에게 세상은 온통 그들의 것이다. 세계를 모두 자신의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이렇게 서정시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정시의 시대만 지속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세계를 온통 내것으로 만드는 그런 서정시의 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비록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겪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서정시가 되겠지만, 그 사랑을 유지해 나가는 일은 서사시가 되어야 한다. 이제 자신을 세상에 내놓고 세상과 싸워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사회와 치열하게 대립해야 한다. 주변의 사람들과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이야기 없이 감정이 넘쳐나는 서정시에서 이야기가 있는, 사건이 있고 갈등이 있는 서사시로 넘어가게 된다. 소설은 두 사람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이 맺어지기 위해서는 사건과 갈등이 있어야 한다.

 

그 사건과 갈등을 이겨내야 한다. 서사시의 주인공은 영웅들이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그 운명을 비켜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여기에 사회 문제까지 겹쳐져서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가 된다. 단지 두 연인의 사랑에서 사회에 대한 사랑으로 사랑이 확장되는 것이다. 더 큰 갈등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겪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렇다. 사람들에게 운명은 절대로 비껴가지 않는다. 운명은 사람들에게 곧장 다가온다. 자, 어떡할테냐 하는 식으로.

 

코제트와 마리우스를 중심에 놓으면 그들의 사랑에 이야기가 생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장발장의 처지에서 보면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에게는 사랑의 차원이 달라져야 하는 지점에 와 있는 것이다.

 

평생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에게, 이제 사랑이 찾아왔는데, 그 사랑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사랑이라니... 하여 서정시에서 서사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방대한 서사시로 가는 과정에서 여러 인물들이 나오게 된다. 이제는 영화로 친숙해진 인물, 앙졸라를 비롯해 에포닌, 가브로슈가 나온다.

 

이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는 과정을 통해서 작품은 방대한 서사시로 흘러간다. 이제는 개인들만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이라는 지점에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된다.

 

바리케이트 앞에 선 사람들, 그들의 운명은? 여기까지가 4부다. 그들이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운명에 맞서게 되기까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4부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 : 1. 몇 쪽의 역사 - 2. 에포닌 - 3. 플뤼메 거리의 집 - 4. 아래에서의 구원이 위에서의 구원이 될 수 있다 - 5. 시종이 같지 않다 - 6. 어린 가브로슈 - 7. 곁말 - 8. 환희와 비탄 - 9. 그들은 어디로 가나? - 10. 1832년 6월 5일 - 11. 폭풍과 친해지는 미미한 존재 - 12. 코랭트 주점 - 13. 마리우스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다 - 14. 장엄한 절망 - 15. 옴므 아르메 거리

 

줄거리만으로 느끼지 못하는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작가의 직접적인 개입이 이렇게나 자주 일어나다니 하는 생각을 하고, 혁명에 대한 빅토르 위고의 생각을 알 수 있고, 주변 인물들을 통하여 주인공들의 삶에 더 잘 접근할 수도 있다.  

 

여기에 마리우스가 혁명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공화국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보다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절망에서 나왔다는 것, 그러나 그 절망은 바로 순수함이고, 그 순수함으로 인해 혁명의 순수함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

 

또 영화나 줄거리만으로 느꼈던 코제트에 대한 인상, 코제트를 요즘 시대로 생각해 20대일 거라고 착각하는데, 이 때가 겨우 십대라는 것, 1832년에 많아야 17살이었다는 것.

 

우리나라로 치면 이제 겨우 고1이다. 투표할 수 있는 나이를 만 18세로 하자는 안을 내느니 마느니 하는 이 나라에서 17세에 이미 사랑에 빠졌고, 마리우스의 나이와 합쳐도 40이 안 되는 나이에 그들은 이미 어른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혁명에 참여한 가브로슈는 어떤가? 그는 코제트보다도 더 어린 나이이니 말할 것도 없고, 사랑에 빠져 자신의 목숨을 바친 에포닌 역시 코제트와 동갑이 아니던가.

 

우리나라 춘향이, 로미오와 줄리엣 등 당시의 나이를 생각하면서 읽어갈 수밖에 없는 낯설음. 그만큼 우리는 독립하는 시기를, 정신의 성숙시기를 뒤로 늦추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개인의 감정에만 빠져 있는 서정시에서 우리 역시 사회로까지 시야를 확대해야 하는, 그래서 사건과 갈등이 있는 그런 서사시의 세계에 처해 있다는 생각.

 

이제 남은 건 5부다. 소설은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있다. 줄거리를 이미 다 알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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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세밑 원숭이와 닭의 대화

- 병신(丙申)년이 가고 정유(丁酉)년이 오니


자네도 참 억울하겠어

자네와 발음이 비슷한 ‘닭’이

나라를 뒤흔들어 놓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게 됐으니

그 ‘닭’이 사고는 제가 치고

저는 쏙 빠져나가려 해

내가 분신들과 함께 광장에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여의봉을 들고

하나가 되어 세상을 밝히고 있지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지

하지만 저 ‘닭’은 귀를 막고

차벽으로 우리의 발을 막고 있지

이제 우리 해가 가고 자네의 해가 오는데

자네들은 어둡고 추운 땅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려는가


아닐세, 우리가 비록 독감에 걸려

비명횡사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본디 새벽을 알리는 족속,

알을 낳는 족속

세상이 흉흉할지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네

‘닭’이 암탉 망신을 다 시켰다지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이 흥할 알을 낳는 것이라네

수탉이 울면

새벽이 왔음을,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네

비록 우리 지금 힘들지라도

자네들이 밝힌 촛불이 환한 대낮을 만들도록

우리 목청껏 울으려네

‘닭고집’이 더 이상 고집 피우지 않고

밝고 따뜻한 세상이 오게

그렇게 마음껏, 목청껏 울어보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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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3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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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권이다. 중반에 접어들었다. 소설은 정점으로 치달아야 하는데, 아직도 주요 인물에서 멈춰 있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을 셋으로 줄인다면 장발장, 코제트, 그리고 마리우스 아니던가. 물론 팡틴이 있지만 팡틴은 장발장과 코제트를 만나게 해주는 매개 역할에 머무른다고 할 수 있으니. 또 작품 내내 등장하는 인물, 장발장을 드러나게 해주는 인물로 자베르와 테나르디에가 있지만,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기는 좀 그렇다.

 

이번 권에서는 '마리우스'다. 청년이다. 우리나라도 치면 대학생이다. 우리나라가 엄혹한 독재 시절이었을 때 대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앞에 나섰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하기 힘들 때,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대학생들은 자기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민중 속으로, 노동현장으로, 그리고 민주화 운동의 맨 앞으로 나섰다. 청년들이었다. 배운다는 것의 의미를 민중 속에서 실천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미래를 현재에 살았다. 기득권층이 과거를 현재에 살았다면, 이 소설에서 왕당파들이 그렇다, 대학생들은 미래를 현재에 살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현재에는 미래가 있었다. 그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청년들이었다.

 

이 소설에서 마리우스 역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권에서 마리우스는 아직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아직 미래를 꿈꾸지 못한다. 다만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을 뿐이다.

 

철저한 왕당파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왕당파, 우리나라로 치면 보수주의자였던 - 사실 우리나라는 보수주의라고 하기보다는 수구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 그가 공화국 편에 섰던 - 이것도 좀 그렇다. 나폴레옹이 처음에는 공화국을 수호하는 수호자 역할을 했다면, 그는 나중에 공화국을 붕괴시키고 왕정으로 돌아간 사람 아니던가. 나폴레옹 편에 섰다고 해서 공화국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되고 할아버지의 품을 떠난다,

 

할아버지의 품을 떠나지만 아직 공화국을 자신의 신념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비록 그가 공화국을 신념으로 삼는 친구들과 만나기는 하지만. 이 친구들에 대한 서술이 4. ABC의 벗에 나온다.

 

마리우스가 공화국의 신념을 지니고 민중들을 위해서 혁명의 앞에 나서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고. 이 권에서는 마리우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가 코제트를 만나는 장면으로 나아간다.

 

물론 마리우스가 일방적으로 코제트에게 반하는 것이고, 또 장발장이 테나르디에를 알아보지 못하고 도와주러 왔다 곤경에 처했다가 위험에서 벗어나는 장면으로 이 3권이 끝나지만...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 사회의 하층민들이 나온다. 그들이 그렇게 타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들이 사회의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들은 사회의 불안요소가 되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바꿔야 함을 소설의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민중에 대해서 환상을 지니지 않게 하는 서술들이다. 그러나 민중들에 대해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들에 대해 적대감을 가질 필요 역시 없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 점을 깨달을 수 있다.

 

3부 마리우스 : 1. 파리의 미분자 - 2. 위대한 부르조아 - 3. 할아버지와 손자 - 4. ABC의 벗 - 5. 불행의 효험 - 6. 두 별의 접촉 - 7. 파트롱 미네트 - 8. 악독한 가낸뱅이

 

이제 주연들은 모두 등장했다. 앞으로는 이들이 프랑스의 혁명적 순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나올 것이다. 사회는 변혁에 직면해 있다. 이 변혁에 직면했을 때 거기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이 앞으로 전개될 소설의 내용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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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2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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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코제트 : 1. 워털루 - 2. 군함 오리옹 - 3. 고인과 한 약속의 이행 - 4. 고르보의 누옥 - 5. 어둠 속 사냥에 소리 없는 사냥개떼 - 6. 프티 픽퓌스 - 7. 여담 - 8. 묘지는 주는 것을 취한다

 

2부다. 제목은 코제트다. 가련한 어린아이. 그러나 장발장에게 사랑을 일깨워 준 아이. 그렇다고 해도 코제트가 주인공으로 서술되는 분량은 아주 적다. 왜냐하면 코제트를 중심으로 하기에는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겨우 여덟 살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코제트가 겪어야 할 불행은 어머니와 떨어져 살 수밖에 없다는 것, 가정에서 떨어진 아이들이 행복하기는 참 힘들다. 물론 환경에 따라서는 행복해질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이 1860년대에 나온 것을 생각하면 가정을 잃은 아이, 특히 엄마를 잃은 아이의 생활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엄마인 팡틴은 돈을 내고 아이의 양육을 부탁하지만 엄마의 눈에 띠지 않는 아이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소설에서 너무도 잘 서술되어 있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생계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기지만,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던가.

 

결국 엄마의 눈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하고 그것을 인터넷에 연동시켜 언제든지 부모가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방법까지 동원되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방법이 없던 그 과거에는, 아이는 전적으로 양육자의 선의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양육자인 테나르디에는 인간성을 상실한 부류다.

 

그가 얼마나 못된 인간인지를 또 뒤편의 내용과 연결짓기 위해서 이 2부는 워털루 전투에서 시작한다. 장황하게 워털루 전투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 끝부분에 가면 드디에 테나르디에가 등장한다.

 

전투에서 죽은 사람들의 몸에서 온갖 귀중품을 훔쳐가는 인간으로. 그런 인간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제대로 키워줄 리가 없다. 그에게는 돈이 전부인 것이다. 돈을 제때 부쳐줄 때도 코제트를 잘 대해줬다고 할 수 없는데, 돈을 잘 부쳐주지 않았을 때 어떤 대우를 했겠는가. 테나르디에 부부는 코제트를 식모보다도 더 못한 존재로 부려 먹었다.

 

부모 없는, 또는 부모의 눈에서 멀어진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고난, 그리고 그 아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 꼭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인간성을 상실한 불쌍한 사람과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은 사람이 2부에 나온다.

 

결국 사건은 코제트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중심 사건은 장발장과 그 주변 인물들이다. 장발장이 수녀원에 들어가 자리를 잡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 코제트를 만나고 코제트를 데리고 가, 팡틴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과정.

 

그리고 코제트는 이제 장발장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는데, 그것을 수녀원 생활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그는 두 번 갇혀 지내는데, 한 번은 감옥, 또 한 번은 수녀원이다. 모두 다 철조망 안에 갇혀 있지만, 한쪽은 증오와 억압이 있다면 한쪽은 사랑이 있다.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쪽은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이고, 한쪽은 성스러운 사람들이다.

 

'그토록 비슷하면서도 그토록 사뭇 다른 그 두 장소에서, 그토록 판이한 그 두 종류의 인간들이 똑같은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즉 속죄를.' 453쪽.

 

그러나 그 속죄의 종류가 다르다. 감옥에서는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를 하고 있다면 수녀원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속죄를 하고 있다. 이기적인 모습과 이타적인 모습.

 

'인간의 너그러움 중에서도 가장 숭고한 것, 즉 남을 위한 속죄다.' 453쪽.

 

이렇게 장발장은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앞으로 그의 삶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즉 그는 불쌍한 사람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 코제트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불행한 삶을 살던 코제트를 위한 삶, 그 삶을 살기 위해 장발장은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단지 코제트만을 위해. 아니다, 코제트와 같은 삶을 사는 불쌍한 사람을 위해 장발장은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제 그는 코제트를 통해 미리엘 주교의 정신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레 미제라블들'에게 그는 다가갈 것이다. 이런 그로 인해 이제는 불쌍해지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 주변의 사람들, 테나르디에나 자베르 같은 사람이 되겠지.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의 정신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코제트다. 사랑을 몰랐던 장발장의 마음에 사랑으로 가득차게 해주는 존재, 코제트. 이제 장발장은 자신의 마음에도 사랑을 채우게 되었다.

 

3부는 마리우스다. 이제 소설은 더 확장되어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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