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봄이다.

 

  봄을 맞아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진정 봄은 오지 않았다.

 

  빨리 봄이 와야 하는데... 자연은 이렇게 어김없이 제 자리를 찾아 오는데, 우리 정치는 언제 제 자리를 찾게 될는지.

 

  그래도 봄은 온다. 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다는 말, 이 삼월이 가기 전에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도 봄이 와서 모든 사람들이 따스한 봄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학관 72호를 받았다. 2017년 봄호다. 계절마다 펴내는 계간 소식지라고 할 수 있는데, 받아본 지 이제 한 해가 조금 넘나 보다.

 

집 안에서 문학관을 거닐 수 있게 해주고, 새로운 문학관을 소개해주기도 해서, 봄 나들이 가고 싶게도 하는 소식지다.

 

이번 호에는 청류재수목문학관이라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문학관을 소개해 주었다. 나 역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진 곳, 문인들의 힘으로 문학관으로 만든 곳이라는데, 봄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문학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 호에는 우리 시에 나타난 은유에 대한 글이 있다. 은유, 추상적인 대상을 구체적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대상을 통해 좀더 깊이 있게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용운의 시, 김광균의 시, 허영자의 시에서 은유를 골라 알려주고 있지만, 예를 들어준 은유 중에 조지훈의 '범종'이라는 시에서 나온 은유.

 

'종소리'를 무엇으로 은유했나 하면 '향기로운 과실'이라고 비유했다. 종소리, 맑고 은은하게 멀리 오랫동안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우리가 직접 맛보는 향기롭고 맛있는 과일에 비유를 했다. 얼마나 멋진 비유인가.

 

종소리가 귀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깨운다면 과일은 코와 입(혀)을 통하여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우리 것이 되지 않는가.

 

보이지 않는 종소리를 그 청각을 다시 후각과 시각으로 변용시킨 은유, 그런 시들... 하여 시적 표현의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 우리나라 시에 나타난 아름다운 은유는 다음 호에도 계속된다니, 어떤 시들 속의 은유가 등장할지 기대되기도 한다.

 

이렇게 집 안에서 문학관을 거닐 수 있었다. 다사로운 봄, 집 안에서 나와 직접 문학관을 걷는 여유와 즐거움도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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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모든 기록 - 고문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위험을 무릅쓴 기적의 6주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간디서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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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9월 11일, 아픈 역사가 시작되었다. 결코 2001년 9월 11일이 아니다. 앞의 것은 미국을 등에 엎은 군부들이 일으킨 칠레에서 일어난 쿠테타이고, 뒤의 것은 바로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이다.

 

날짜는 같지만, 우리는 뒤의 날짜를 기억한다. 역사적 사건으로서. 이슬람을 테러와 동일시하게 된 사건으로서. 최근의 사건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앞의 9.11은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앞의 9.11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고 날짜이다. 남아메리카에 있는 '칠레'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 날짜는 몰라도 그 나라 사람, 한 명은 우리가 잘 기억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바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

 

시인으로서 알려져 있지만 이 네루다가 정치인이기도 했다는 사실,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려 했으나 자신보다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아옌데를 지지하면서 후보 사퇴를 했다는 사실, 아옌데 정권에서 대사로 근무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 네루다보다는 시인 네루다를 더 기억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칠레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네루다는 정치인보다는 시인으로 더 추앙받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그럼에도 네루다가 칠레에서 시인으로서 추앙을 받게 된 이유는 그의 정치적 입장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사랑'을 노래한 시인이 아니라 그 '사랑'이 민중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이라는 생각.

 

이런 네루다가 양보한 '아옌데'는 누구인가. 그는 결국 쿠테타로 죽음에 이르렀지만 살아서 대통령 궁을 나오지 않고 죽어서야 비로소 대통령 궁에서 나온, 자신의 신념을 죽을 때까지 지켰던 사람이다.

 

그의 죽음 이후 칠레에서는 피노체트의 기나긴 군부독재가 이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랐는데... 특히 진보진영 쪽에 섰던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탄압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문화예술계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이 당시 칠레에서 블랙리스트는 '살생부'라 할 만했다. 거기에 이름이 올라간다는 것은 죽음이거나 또는 추방이었으니.

 

그런 상황에서 아옌데 선거운동을 하고, 또 '칠레극장' 감독으로 일하던 미겔 리틴도 해외로 망명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가 어떻게 죽음의 상황에서 벗어났는지는 합리적인 이유로 설명이 안 되는 극적인 부분이 있다. 그 장면도 이 책에 나와 있으니... 반면 칠레의 음악가였던 '빅토르 하라'는 살해당하고 말았으니, 그가 살아난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외국에 살게 되고, 귀국이 영구적으로 금지되었던 그가 칠레에 몰래 잠입해 촬영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

 

망명자의 신분으로 칠레에 다시 들어가 그 당시 상황을 촬영해 영화로 만들어내는 일, 그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을테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팀을 꾸려 각자 그러나 같이 촬영하게 하고, 현지에서 칠레 촬영 팀까지 조직했으니.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조국을 잊지 못했고, 독재로 점철되는 피노체트 정권에 분노했으며, 이런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보고 있었다.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면 어떡하겠는가 하는 것이 감독인 그의 생각이었고 열정이었다.

 

여러 차례 위기 상황도 겪지만 자신이 계획했던 것들을 필름에 담아 무사히 반출한 다음에 영화로 만들어냈던 감독 미겔 리틴...

 

그의 경험을 책으로 만들어낸 마르케스... 이 책의 화자는 나로 - 바로 감독인 미겔 리틴으로- 나오지만 글은 바로 '백년 동안의 고독'을 쓴 마르케스가 쓴 것임을 밝히고 있다.

 

마르케스가 여러 차례의 면담을 거쳐 그의 목소리를 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썼느냐보다는 당시 엄혹했던 칠레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항거하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부러운 점... 칠레 사람들은 공과를 떠나서 정치인 아옌데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를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 그것은 그가 죽어서도 그의 신념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신념이 젊은이들을 통하여 면면히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네루다라는 산이 있어서 그들이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도 계속 나오고 있다. 즉,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마음 속에 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칠레를 군부독재의 어둠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마칠레가 군부독재에 신음하고 있던 당시, 우리나라 역시 군부독재에 신음하고 있었으니, 칠레의 이야기가 꼭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칠레의 9.11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겠고. 후일담 비슷하게 글이 쓰였기에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 꽤 있고, 목숨을 건 활동을 하면서도 이렇게 허술하게 할 수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도 있다.

 

그만큼 감독인 미겔 리틴에게는 칠레는 자신의 조국이기도 하고, 고향이기도 하고 삶이기도 했으리라. 감정이 이성을 앞설 때가 바로 그런 때 아닌가 싶은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제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그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억을 해야 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록을 해야 한다. 그 기록,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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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
우쓰미 아이코 지음, 이호경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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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끄러운 일이다. 조선인 전범 문제에 대해 이 정도로 무지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우리나라 정부도 일본 정부도 애써 눈감으려 했다는 사실이.

 

소녀상에 대한 문제로 일본과의 관계가 껄끄러운데, 그것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우리 정부에 대해 도대체 이 나라에 국민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나라는 국민의 생명과 생활을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바로 나라 아닌가. 그런데 그 나라 국민이 겪은 비극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어떻게 나라일 수가 있는가? 나라라는 것이 실체가 없다면 어떻게 국민들의 비극, 희생을 나 몰라라 하는 존재가 정치인일 수 있는가. 나라를 운영한다는 행정부일 수 있는가 이렇게 질문을 할 수가 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지 10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사실 조선인 전범으로 사형을 당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그들이 무슨 일을 해서 사형까지 당했는지 알지 못했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고, 학교 역사 교육에서 다뤄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10년 전쯤에 방송에 다큐멘터리로도 나갔다고 하는데, 그 때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책으로 읽어서 더욱 암담한 현실을 느꼈다고나 할까.

 

책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는데, 강제동원된 위안부 문제도 제대로 해결을 하지 못했는데, 포로수용소 감시원으로 간 사람들 문제야... 그들이 나중에 전범이 된 문제를 제대로 해결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더욱이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 전범을 A,B.C로 분류하는데 난 그것이 전쟁에 가담해서 책임져야 할 비중의 정도를 등급으로 나눈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참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선인 B급 전범이 왜 사형을 당했지 하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 책에 그 구분이 명확히 나와 있다. 보자.

 

'A급 전범이 '특정 지역을 불문하고, 연합군에 속한 모든 정부가 내리는 공동 결정에 따라 처벌해야 할 중대 범죄인'임에 반해, B·C급 전범은 일본이 점령했던 '대동아공영권'(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아시아 대륙에 대한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건 정치 표어-옮긴이) 각지에서 열린 전쟁범죄재판 법정에서 형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곧 특정 지역에서 '통례의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각국의 군사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을 말하며, 뉘른베르크 재판과 달리, 일본의 경우에는 B급과 C급을 구별하지 않았다.'  (8쪽)

 

한마디로 BC급 전범은 동남아시아에서 네덜란드나 호주, 영국 등에 의해 재판을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전범이 된 사람이 148명이고 그 중에서 23명이 사형을 당했다고 한다. (8쪽)

 

또 그곳에는 일본군에게 포로가 된 네덜란드, 호주, 영국 군인들이 많았고,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일본 군부는 조선인들을 고용(? - 참 문제 많은 단어다. 일본 정부는 지원을 받아 이들에게 월급을 주고 고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당시 조선인에게는 징용이나 징병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피하는 길, 그것도 2년이라는 기간을 약속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포로 감시원이었던 것. 징병도 피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길... 과연 이것을 고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었을까...)한 것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포로에 대한 관념 차이가 있다. 서양인들에게 포로란 명예로운 군인이라면, 일본인에게 포로란 수치스러운 존재라는 것. 일본인들은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자결하라고 했다고 하니, 그들이 포로를 보는 눈이 어땠을지, 포로를 어떻게 대했을 지는 알고도 남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기들 손에 직접 피를 묻혔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장교와 하사관들이고, 포로들과 직접 마주치는 존재들은 바로 조선인 포로 감시원이었던 것.

 

군대라는 명령계통에서 명령불복종은 곧 죽음인데... 명령을 거부할 권한도 개선을 건의할 권리도 전혀 없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이 일본 패망후 포로들에 의해 전범으로 기소된다.

 

포로들 관점에서는 일본인 장교나 조선인 감시원이나 같은 존재였을 것이고, 그들의 학대는 딱히 장교의 책임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조선인 감시원 입장에서는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었고, 자신들이 포로들을 딱히 악랄하게 대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식민지인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 이 차이가 꽤나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런 차이에 대해서 이 책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이런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포로 감시원이 된 것을 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두 죽일 놈이라고까지도 할 것은 없다. 그들 역시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아이히만에 비유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히만과는 좀 다르다. 아이히만은 자발적으로 학살에 가담했다면,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담했다는 차이가 있다.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지만 대다수는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ㅇ낳았다면 감시원으로 모집된 3,000명 중에 129명만이 전범이 될 이유가 없다. 그 129명도 오랜 시간 포로들과 생활해서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 포로를 특별히 적대시 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9쪽 참조)

 

물론 그 차이가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목숨을 빼앗을 정도의 책임인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보다 더한 위치에 있던,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일본의 고위급 전범들이 살아남아 전쟁 뒤 일본의 고위 정치인이 된 현실과 비교해보면 정작 책임져야 할 존재들 - 특히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과 같은 - 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힘없고 돌봐줄 나라가 없는 존재들이 더 많이 당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들은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이들을 희생자로 규정했다고 하는데...그렇다고 해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고, 이들의 영혼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책임을 명확히 가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책이 소중하다. 역사를 기억하게 해주니까. 역사를 기억해서 그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니까. 다만, 이 책이 1982년에 일본에서 처음 나왔다는데... 그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에 대한 책임과 사죄, 용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일본은 다시 군국주의로 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에 대해서 명확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읽으면서 분노하고 한탄하고 씁쓰레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이런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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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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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고기는 물에만 살지 않는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데

나무에 올라서는 물고기를 구할 수 없다는데

깊은 산 속 절에는 물고기가 산다

쇠가 되어

나무가 되어

바람과 함께

잠든 이 정신을 깨운다

순수의 시대로

사람들을 되돌아가게 한다


태고적을 잊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들 집에 물고기를 매달아 놓는다

문 앞에 창문 앞에

가끔 태고적 순수함을 잃었을 때

문을 열면 들어오는 바람에 물고기는

온몸을 맡겨 헤엄치면서

자연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우리를 물가가 아닌

산 속으로 데려간다


집 안에서

자연 속에 퍼지는

풍경 소리를 듣고

정신을 깨우는 목어 소리를 듣는다


이제 물고기는

물에만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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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아련해져 왔다. 제대로 읽지 않고 읽다가 포기한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처럼 무언가가 과거로 나를 데려갔다.

 

  그 무언가는 바로 정지원의 시 몇 편이다. 시 몇 편이 나에게 이제는 잊혀졌다고 생각한 과거를 일깨워줬다.

 

  잊혀진 것이 아니라 잠시 묻혀 있었을 뿐이라고, 그 과거는 내 기억 속에서 내 맘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고.

 

  또 우리 현실에서도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고, 다만 드러나고 있지 않을 뿐이지,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아직도 많이 있다고.

 

국민학교 졸업 당시,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하지만 대도시가 아닌 곳에 살던 우리들은 같은 반에도 여러 나이의 아이들이 있었다.

 

기껏해야 생일이 빠른 아이가 있는 한 살 차이가 나는 학급이 아니라 두세 살도 더 나이 차가 나는 아이들이 있는 학급이었다.

 

어떤 연유로든 부모가 출생신고를 늦게 했던지, 아니면 출생 신고를 했음에도 학교를 늦게 보냈다든지 해서 나보다 두세 살이 많은 아이들과 같은 학급에서 지냈다.

 

형이라고 하지도 않고 그냥 친구로. 이런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할 즈음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아니, 진학할 수가 없었다.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최종학력이 국민학교로 끝났다.

 

공장으로, 공장으로... 그리고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 또한 동네에는 없어서 걸어서 한 시간이나 가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때 들어간 중학교에 산업체 학급이라는 것이 있었다. 산업체 학급. 요즘 말로 하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간 아이들이 중학교 졸업장을 따기 위해 일을 마치고 야간에 공부하러 오는 학급이었다.

 

이런 산업체 학급에 대해서 잘 표현된 소설이 바로 신경숙의 "외딴방"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산업체 학급의 현실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우리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그때서야 그 아이들,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우리 학교는 여학생들-여자 노동자들-만 받았으니, 여학생들이 우리가 떠난 교실에 앉아 공부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번도 책상이 더러워졌다거나 물건이 흩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냥 그대로였다. 분명 우리 교실을 썼고, 내 책상을 썼을텐데, 다른 사람이 썼다는 흔적이 없었다.

 

그만큼 아껴서 썼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졸업식 날... 우리는 중학교를 떠난다는 것이 마냥 기뻤다. 기뻐서 생글거리면서 졸업식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우리와는 달리, 그 날만은 주간에 학교에 와서 졸업식을 우리와 함께 하는 산업체 학급 학생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 마음에 이 좋은 날 왜 울어 했지만, 그것이 이들에게는 학교 교육의 마지막이었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더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그런 처절함. 그것을 이해하기엔 중학생이라는 나이는 너무 어렸다.

 

아니, 어쩌면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으니까. 그들이 더 이상 배울 수 없는 것에 내 책임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과연 내 책임이 없었을까? 그들의 책임, 그들 부모의 책임일까? 아니다. 그런 바로 우리의 책임, 우리 사회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산업체 학급을 담당하고 있던 선생님이 우리 학급에 수업을 들어오시기도 했음에도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선생님들이 했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을지도 모른다.

 

학교 동창들 중에 고등학교에 진학 못한 학생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를 안타까워 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종종 그 아이의 소식을 듣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산업체 학생들에 대한 생각은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것은 사회의 책임임을 나이 들어서 통감하고 있는데...

 

이런 과거로 정지원의 시가 나를 다시 이끌었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말아야 하는데, 이제는 대학교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터무니 없이 비싼 등록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배우고 싶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허덕거리고 있는가. 그것을 개인 탓으로 돌리고 있는 우리 사회, 내 어린 시절, 나 몰라라 했던 나를 보는 듯해 더 부끄럽다.

 

그러면 안 되는데... 이것을 책임져 줄 사회, 그것이 바로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 아니던가. 그런 사회를 우리가 이루어야 하지 않는가.

 

많은 시들 중에 이 시 '덕순이'라는 시가 특히 나를 과거로 데려갔다. 시를 보자.

 

덕순이

 

고등학교 원서를 쓰던 가을

덕순이가 쓰게 웃었습니다

고등학교 갈 돈이 없어서

공장에 간다는 말에 기가 막혀서

어둠이 덮치도록 빈 교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산업체 고등학생이 되어 덕순이는

공장을 마치면 우리 반 복도에서

단어장을 들고 자율학습이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다가가 말 붙일 수도 없게 입 꽉 다문 채

꼿꼿이 자존심을 지키며 서 있었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책상에 올려놓는

보름달빵 정도였지만

덕순이는 용케도 내 자리를 찾아서 앉곤 했습니다

 

책상 서랍 속에 쪽지가 들어 있기라도 한 날이면

참고서 잘 썼다는 한 줄의 글에

나는 기나긴 답장을 써서 넣어두곤 했습니다

 

누구는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는 일이

또다른 누구에게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놓을 수 없는 목숨줄 같다는 걸

 

파르르 떨리던 촉촉한 속눈썹과

다부진 입 매무새를 꼭 닮은

덕순이 딸도 아마 제 엄마처럼 야무질 거라고

선뜻한 가을이면 날이 선 희망에 대해 생각합니다

 

정지원,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 문학동네, 2008년 개정판 2쇄. 60-61쪽.

 

이 따스함이 내 과거를, 나는 중학교 때 산업체 학급을 경험했지만 시의 화자는 고등학교에서 경험한 차이가 있을지라도, 부끄러움과 함께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누구는 당연하게 누리는 일이 / 또다른 누구에게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 결코 놓을 수 없는 목숨줄 같다'는 말에서 주위를 살펴보게 한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라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시인의 이 따스한 눈길이 아마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낳게 했나 보다.

 

안치환이 곡을 붙여 부른 노래로 더 유명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이 시인의 시라는 사실을 시인이 쓴 다른 그림에 관한 책에 실려 있는 시인에 대하여에서 알게 되었지만, 그 시가 이 시집에 실려 있어서 더 반가웠다.

 

시인은 그만큼 따스한 시선으로 사회를 본다. 결코 군림하지 않고 낮은 곳에 함께 서서. 우산을 펴는 사람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시들이 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좋다. 그리고 따스하고 편안하다.

 

간만에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런 시집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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