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횃불 되어 세상을 바꾸다

     -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누가 말했던가

바람이 불면 불수록

촛불들은 모이고 모여

횃불이 되어

바람을 타고 우리들 마음에 날아들어

거리로, 청와대로, 헌법재판소로

거대한 불길로 치솟아

한 줌도 안 되는 국정농단세력들을

태워버렸다

작은 불씨도 방심 말고 보자 했던 그들

불길이 될 촛불을 무시하니

분노가 촛불이 되고

촛불이 횃불이 되어

우리들 마음을 불태워

온 나라를 밝혀서

한 줌 어둠을 물러가게 했다


깃발 속에 숨은

차가운 마음들이

쌓아놓았던 얼음들을

촛불이, 횃불이 녹이고 녹여

얼음 속에 갇힌 그들에게도

따스한 봄길을 함께 가자고

다시 촛불이 거리에 섰다

녹은 얼음은 물이 되어

뭇 생명들을 살리니

촛불에 녹은 얼음들도

함께 하자고 우리 손잡고

함께 가자고

횃불은 사람들 마음속으로 들어가

너나없이

손에 밝고 따스한 촛불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함께 가자고

마음을 활짝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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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7-03-15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박사모들과 그 부역자 내지 조력자들 무리도 반드시 죄값을 치루어야 된다고 봅니다. 박근혜 하나뿐 아니라 말입니다.

kinye91 2017-03-15 14:26   좋아요 1 | URL
법치주의를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보수라고 할 수 있죠. 진정 보수라고 한다면 법에 의한 판결에 승복하고 자신들이 어떻게 그 책임을 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법을 무시하는 사람들, 그들은 보수도 아니죠. 그냥 법을 위반하고 있는 사람들에 불과하다고 저 역시 생각합니다.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제 새로운 정치를 시작해야 할 때다. 특정한 한 인물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정치를 만들어 갈 때.

  

 

  어쩌면 불행한 이 때야말로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니던가.

 

  녹색평론 153호에서도 시민혁명에 대해서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다. 국민이 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정책들이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추진되었는가.

 

 그래서 이번을 기회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정치제도에 관한 논의가 되어야 한다. 그것에 관한 논의가 '시민혁명, 정치혁명, 전환의 시대'라는 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런 혁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여유가 있어야 한다.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 시간을 마련하는 길, 그것은 바로 최소한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게 해야 한다.

 

최소한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 정치권 일각에서 논의가 되고 있고, 녹색평론에서 꾸준히 주장한 '기본소득'이 실현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이 환상적인, 실현불가능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가능한 시도라는 점, 이번 호에서 '판 파레이스와 실질적 자유주의'와 '농민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제안한다', 그리고 '기본소득과 잃어버린 시간'에 잘 나타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시간을 투여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삶의 조건이 확보된 상태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민혁명이 완수될 수 있다.

 

벚꽃 대선이라고 한다. 이 대선이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제도를 바꿀 수 있는 그런 논의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지속적으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녹색평론의 주장들이 물밑에서 밖으로 나와 활발히 논의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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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쾌한 시들이 많이 실려 있다. 내용이 좀 저속한 시들도 있지만, 그것이 어쩌랴. 삶인 것을.

 

  읽기엔 편한 시집인데... 시인의 삶과 우리의 삶을 생각하는 그런 시들이 많이 실려 있기는 하지만...

 

  조금 가볍다는 느낌이 든다. 비속어도 직설적으로나오고, 성에 관한 내용들이 거침없이 드러나 있기도 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읽으면서 우리네 삶의 현실을, 우리의 삶이 그렇게 고차원적이지도 고상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것이 현실 아니겠는가. 그리고 시인이 말한 우리말과 우리글이 일치하는 모습 아니겠는가.

 

삶이 비루한데, 그 비루한 삶을 애써 포장하지 않으려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시집이었는데...

 

시집 중에 이 시를 읽고 이랬으면 좋겠다. 정말, 이렇게 청춘이 아름답게... 그 아름다움이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밖으로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게 나오기를...

 

삼미신(三美神)

 

여고생들은 참 너무 예쁘다

가장 예쁜 나이이다

내가 예수라면

저 전철에 앉아 있는

여고생들을 보라

그렇게 말하겠다

저 여고생들이 입은 것이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낫다

 

부리부리 형형한 눈

계속 떠들고 웃는다

 

짧은 감색(紺色) 치마

감색 블라우스에 넥타이

재킷, 맨 종아리

 

이 봄날 저녁의 전철은

헌화가(獻花歌)의 노인 같은

절벽.

 

김영승, 화창, 세계사, 2008년 초판 2쇄. 136-137쪽.

 

세계 최장의 노동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학생들, 그럼에도 이들이 발산하는 밝은 웃음, 명랑한 기운,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젊음의 풋풋한 모습.

 

이랬으면 좋겠다. 정말로 이렇게 학생들을 보며 절벽 위에 있는 꽃이라도 따다가 주고 싶은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아이들이 웃음을 잃지 않게 해주어야 하는데...

 

세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런 존재들이 그 아름다움을 잃어가지 않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은 헌화가의 노인처럼 꽃을 따다 바치는 우리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오로지 대학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학생들이 아니라, 제 삶을 충분히 누리는 그런 학생들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을 만들 줄 아는 노인, 그것이 바로 노인들이 바치는 꽃이 아닐까.

 

우리가 아직 그런 사회를 만들지 못한 것은 절벽이 있기 때문이고, 꽃은 그 절벽 위에 피어 있기 때문인데... 아무도 꽃을 따올 엄두를 내지 못했을 때 자기가 따다 주겠노라고 한 노인처럼, 우리 역시 이런 여고생들을 위하여, 아니 우리 젊은 세대들을 위하여 사회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웃음을 내뿜어 우리 모두를 밝게 만들어주며 지낼 수 있도록.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다. 이 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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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노엄 촘스키 지음, 구미화 옮김, 조숙환 감수 / 와이즈베리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솔직히 어렵다.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네 가지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고 있는 책이라는데,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읽어도 답이 되지 않는다. 결론은 모른다는 것.

 

이 책의 최종 결론은 인간에 대해서 아직 우리는 모른다는 것, 우리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이 정도가 아닌가 싶다.

 

결국 모른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을 끌어와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다.

 

내용이 어렵다는 것을 책의 편집자들도 알았나 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앞부분에는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설명해주는 글이 실려 있다.

 

컬럼비아대 철학과 교수라고 하는 아킬 비그래미의 글인데... 이 글의 내용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확장한 것이 바로 촘스키가 쓴 책의 본문이다.

 

그래도 어렵다.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는데... 내용을 이해한다기보다는 읽으면서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내 나름대로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를 찾기로 했다.

 

책은 네 가지 질문으로 구성된다. 아마도 언어학과 철학과 과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내용을 잘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언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

공공선이란 무엇인가?

자연의신비:얼마나 깊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촘스키가 본래 언어학자였고, 그가 주장한 변형생성문법은 전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우리나라 문법체계를 바꾸어놓는 역할도 했다.

 

그런 그가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인간 존재의 탐구를 시작한다. 언어는 인간만이 가진 특징이라고 하고, 그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인간 존재에 대해서 접근하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지 않을까 한다.

 

내재적 언어와 외재적 언어라는 개념으로 언어를 분류하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재적 언어라고 한다. 이런 내재적 언어는 다른 사람의 용어를 빌려 말하면 '유한한 수단의 무한한 활용을 수반한다'고 한다.

 

그렇다. 언어는 분명 유한하다. 그러나 그 유한한 언어를 우리는 무한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특성이기도 하겠단 생각이 든다.

 

여기에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언어 없이는 성립할 수 없으니, 자연스레 이 문제로 넘어가고, 이렇게 사는 인간이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사는 존재니 함께 살아감에 있어서 꼭 필요한 공공선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공공선을 실천하며 사는 인간에게 살아가는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세계- 내 -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질문이 나오는데... 이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참으로 난해하다. 잘 이해 못하겠다. 이것이 내 감상평이다.

 

너무도 어려운 책이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한지를 느끼면서 읽었다고 할까. 그럼에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더 많은 지식을 쌓은 다음에 다시 읽어야 하리라.

 

아니면 내 나름대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다시 이 책에 도전을 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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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 - 반짝임과 덧없음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대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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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가장 잘 알려진 작가 중에 하나가 헤르만 헤세가 아닐까 한다. 그의 작품이 중고등학교 필독도서 목록에 올라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작품이 우리나라 사람들 성향에 맞기도 했기 때문이리라.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지와 사랑, 유리알 유희 등 그의 작품은 너무도 많이 알려져 있다. 여기에 중학교 때 그의 '나비'라는 소설 - 공작나비, 공작나방이라고도 한다-을 배우니 그는 여러모로 친숙한 작가이다.

 

그런 그의 글들 중에 나비에 관련된 글을 모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나비는 애벌레-번데기-나비의 단계를 거치는데, 이를 사람의 정신적 성숙의 단계로 보면 될 듯도 하다. 헤세가 나비를 좋아하는 이유 역시 이런 것과 관계가 있을 듯한데...

 

이 책에 실려 있는 '공작나비'를 보면 이런 관계를 알 수 있다. 애벌레처럼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고 본능, 욕망에 충실한 단계, 이 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다른 것은 다 무시하고 오로지 나비를 잡는 생각, 활동에만 몰두한다.

 

그러다 이런 활동이 번데기처럼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비록 에밀이라는 친구가 너무도 까칠한 모범생이어서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말이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틀 속에 갇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 단계가 바로 번데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에밀에게 자신의 나비를 다시는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언제까지 번데기로 지낼 수는 없다. 고치를 깨고 나와야 한다. 고치를 깨는 순간, 나비가 된다.

 

이 순간이 인생에서는 어떤 깨달음의 순간인데, 이 소설에서 공작나비를 훔치다 망가뜨리는 장면, 그 이후 사과 장면에서 이루어진다.

 

자신의 욕망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한 행동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음을 알게 된 순간, 욕망대로만 행동하지 않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

 

그렇게 소설은 정신적 성숙의 단계를 나비 수집을 통해서 보여주는데, 이것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헤세가 나비를 좋아한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을 보아도 그 현재의 모습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앞날을 볼 수 있는, 즉,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공작나비'라는 소설이 헤세의 개인적인 체험과 관련이 되어 있음을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으니, 헤세에게 '나비'는 소설의 소재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생활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나비'에 관한 헤세의 여러 글들을 뽑아 실어서 헤세가 나비에 대해 느낀 감정, 감탄, 표현 등을 누릴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나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읽으면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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