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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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가정을 꿈꾸는 부부. 때는 1960년대. 이들은 아이를 많이 낳고, 전원주택에서 대가족의 삶을 꿈꾼다. 마치 중세의 귀족 가족들이 자신들만의 성에서 삶을 살아가듯이.

 

남들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한다. 지금 시대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는 많은 아이와 함께 살며 다른 가족들까지 불러 모아 잔치를 하는 것이 행복한 가정생활의 모습이다.

 

그렇게 그들은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낳는다. 하나, 둘, 셋, 넷. 이때까지만 해도 부인인 해리엇은 지쳐가지만 그래도 행복한 가정은 유지한다. 표면상으로 이들은 아직은 행복한 대가족이다.

 

시대는 이미 1970년대가 되었다. 중세의 삶에서 멀리도 온 때. 이 때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다. 이 아이는 임신 때부터 다르다.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 왜 아니겠는가. 이미 1970년대는 인구 억제정책을 쓰는 때다.

 

많은 아이가 자랑인 시대가 아니라 부끄럼인 시대다. 이런 모습을 해리엇의 동생이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는다는 얘기로 형상화된다. 정상성을 벗어난 가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운증후군 아이는 보호를 필요로 한다. 명확하게 장애임이 표가 나기 때문이다. 이 부부가 원하는 가족은 이렇게 표가 나는 상태는 아니다. 그냥 이들은 많은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싶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 행복은 지속될 수 없다. 다섯째 아이는 지나치게 크고 힘이 센 상태로 태어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정상적인, 아니 의사가 판단하기엔 정상범주에 드는 아이지만 이 가족의 기준에 다섯째 아이는 정상이 아니다.

 

아이에게 정상의 시선을 주지 않는데 어떻게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아이를 내치지 못하는 모성. 이 아이 하나로 인해 친척들이 멀어져 간다. 나머지 아이들도 하나하나 가정을 떠나간다. 남편 역시 가정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어머니인 해리엇 역시 가정의 행복에서 멀어진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저 다섯째 아이가 남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났을 뿐인데, 가정이 해체되어 버린다. 그 해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집을 팔기로 결정하는 것으로 가정 해체는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다.

 

다름이 비정상이 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 아이를 버리든지, 다른 아이를 포기하든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어느 선택도 행복한 가정이 될 수는 없다. 어느 하나를 버리는 것은 이미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름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회, 이미 정상의 범주를 정해놓고, 그것에서 벗어난 아이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 속에서 아이는 정상의 범주에 들어올 수 없다. 들어오지 않고, 그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는 오히려 정상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자꾸만 어긋나는 관계... 가족은 다름을 포용하고 함께 하는 것인데, 다름을 배제로 바꾸어버리는 순간 이 가족은 깨질 수밖에 없다. 해리엇이 모성으로 아이를 받아들이려 하지만, 그 모성을 다른 가족들은 자신들에 대한 배제로 받아들이지만, 해리엇조차도 다섯째 아이(벤)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섯째 아이인 벤은 가족을 해체한 아이, 남과 다른 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아이에게는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결론을 내지 않는다. 소설은. 그게 더 소설답다. 결론은 없다. 이 결론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름을 우리는 배제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다름이 있는지... 그 다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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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에 맞서 길 위에 서다 - 민중의 카타르시스를 붓 끝에 담아내는 화가 홍성담, 그의 영혼이 담긴 미술 작품과 글 모음집
홍성담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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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카타르시스를 붓 끝에 담아내는 화가 홍성담. 그의 영혼이 담긴 미술 작품과 글 모음집'

 

책 표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예술은 논란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상식적이면 예술이 아니다. 상식이면 왜 그리고 만들겠는가? 예술가는 항상 사회적 금기와 터부를 마음껏 넘나들어야 한다. 국가의 운명이 파시즘으로, 독재로 흐를수록 풍자는 많아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정치인들을 신성시하고 절대화하면 국가주의 파시즘이 번식한다.' (222쪽)

 

화가, 홍성담. 참 험난한 시대를 건너왔다. 그는 늘 길 위에 있었다. 길 위에 있어야 민중과 함께 할 수 있다. 자신의 작업장에만 있는 예술가는 민중과 함께 할 수 없다.

 

길 위에 있는 예술가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는 늘 진실을 마주하고 그 진실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진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진실을 예술적으로 표현한다. 그것이 풍자든 해학이든 자신의 작품으로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 작품을 가지고 이렇다저렇다 말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진실이 불편한 권력자들이거나 권력자를 추종하는 자들 뿐이다.

 

이런 자들에 의해서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예술을 정치에 종속시키려 한다. 그렇게 엄혹한 시절을 겪기도 했다. 그런 시대에 미술가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던가.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홍성담과 같은 화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이 진실의 편에 서서 진실을 표현하려 했다.

 

책은 모두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우리나라 민중미술인 걸개 그림에 대해서 보여주고 이야기한다. 시작부터 민중과 함께 한다. 그 다음,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작품으로, 글로 보여준다.

 

세월호, 일본제국주의 침탈로 인한 비극들, 우리 현대사들 통해 겪어 왔던 일들, 환경 파괴, 그리고 촛불...

 

이 책에 실린 그림들, 글들은 길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모두 길 위에 있다. 길 위에서 민중과 함께 한다. 마치 예술은 민중과 함께 해야 한다는 듯이.

 

하여 책을 읽으며 보며 우리 현대사를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지, 왜 정치권력을 쥔 자들이 예술에 대해서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이 책을 보면서 알 수 있게 된다.

 

천박한 정치인들은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지 못하고, 예술적 표현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고 겉모습만 보고 탄압하려 들지만, 오히려 그것이 민중에게 예술의 효과를 보여주는 역할만 하기도 한다.

 

신랄한 풍자를 통해 민중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자신들의 마음 속에 응어리져 있던 것들을 예술을 통해 풀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주는 예술가야 말로 민중들에게 사랑받는 예술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성담은 민중들에게 사랑받는 예술가다. 그의 그림을 보며 통쾌함을 느낀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예전에 보았던 그림을 책에서 다시 보는 내내 나 역시 그런 통쾌함을 느꼈다. '불편한 진실에 맞서 길 위에 선' 화가 홍성담, 그의 그림과 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책, 한 번 보길 권한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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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을 켜다 삶창시선 48
손병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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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걸 시인.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선천적인 것이 아니고, 어느 순간 빛을 잃었다고 하는데...

 

하여 시인은 눈으로 보지 않고 통증으로 본다. 시인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길, 그것은 바로 '통증을 켜는' 일이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통증, 손가락에 켜는 통증으로 시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이런 통증들이 잘 느껴지는 시집이다. 읽으며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냥 내 처지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느끼고, 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 시집에서 '입동 무렵'이란 시... 이런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다.

 

 입동 무렵

 

모두 다 춥다 춥다 껴입을 때

나무는 이파리를 다 벗는다

 

생활의 옳고 그름을

옷매무시 한 가지로 따질 수는 없겠지만

내 삶 오롯이 알몸인 적 없었다

 

삶을 온전히 살아낸다는 말

언 바람을 베어대는

저 나무의 당당한 목소리다

 

깡마른 가지를 휘두르며

때로는 뚝뚝 부러져나가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듯

나무는 결코 눕지 않는다

 

종내엔 뿌리의 내력을 송두리째 드러내고

딱 한 번 유언을 오롯이 남기겠다는 듯

어둠을 움켜쥔 체 꼿꼿한

전라의 나무 한 그루

 

또 한 겹의 나이테를 여미고 있다

 

손병걸, 통증을 켜다. 삶창. 2017년. 50-51쪽

 

어쩌면 살아가면서 자꾸만 덧씌우기만 한 것이 아닐까. 삶은 이렇게 자꾸 자신을 덧칠하기보다는, 자신을 덮고 있는 것들을 덜어내는 일 아닐까.

 

추울수록 더 입는 것이 아니라, 추울수록 다 떨어내는 나무들처럼 그렇게 우리의 삶도 어려운 때를 만나면 덜어내고 덜어내서 깡마른 알몸으로 버틸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무에게서 삶의 자세를 보는 시인, 그런 시인의 시를 읽고 삶의 자세를 생각하게 된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너무도 고맙게 잘 읽었다. 마음에 새겨둘 시들이 한두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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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아, 엉덩이!

-그리스 여인들의 풍성한 엉덩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상이 이랬지.

풍만한 가슴과

더 풍성한 엉덩이.

인류의 생명이 여기에 달려있는 양

가슴과 엉덩이는 더욱 커지고

자손들이 번창하게 되었지.

너무 많은 자손들,

이제는 넘쳐나

그만, 그만 하게 되는데,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가슴과 엉덩이는 이제,

비만과 혐오의 상징이 되었지.

하지만 아직도

그 풍만한 엉덩이를

지니고 있는 여자들,

거리에 즐비한

바오밥나무들,

제 발로 걷지 않는

그리스 여자들,

그 풍성한 엉덩이,

아, 엉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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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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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9쪽) 란 말로 소설은 시작한다.

 

책 한 권의 영향으로 삶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의 이야기는 많다. 그래서 소설은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도대체 무슨 책이야? 궁금증을 유발한다.

 

책을 읽고 주인공인 오스만은 방황을 한다. 그는 이미 기존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에 접어들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는 더이상 자신의 세계가 아니다.

 

그는 다른 세계로 가야 한다. 그 세계로 가기 위해 같은 책을 읽었던 사람을 찾는다. 자난이라는 여성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그 여성을 통해 메흐메트라고 하는 먼저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그들의 관계는 어긋난다. 메흐메트와 자난이 그에게서 사라진다. 오스만은 그들을 찾아다니다 자난을 만나다. 자난과 함께 메흐메트를 찾는 여행을 한다. 그 여행이 현실적이지 않다. 그들은 버스를 타고 터키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도대체 새로운 인생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는다. 마치 청춘의 방황처럼 이들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움직이긴 하지만 무엇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은 없다. 결국 메흐메트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오스만.

 

여기서 과거와 현재의 터키가 중첩된다. 서구화되는 터키를 막고자 하는 메흐메트의 아버지인 나린 박사. 하지만 그 역시 책으로 인한 아들의 방황을 인정하지 못한다. 아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사람을 붙이고, 서구화되어 가는 터키를 반대하는 일을 하는데...

 

오스만은 나린 박사와도 함께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서구화된 터키를 인정할 수도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젊은이, 그것이 바로 오스만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그가 읽은 책 '새로운 인생'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여기서 나중에 밝혀지는 '새로운 인생'이라는 카라멜이 나오는데, 책과 카라멜이 같은 제목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쓸모가 비슷하다는 얘기 아닌가. 젊은이들에게 달콤함을 주지만 결국은 사라지고 마는.

 

카라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판 사람은 나중에 장님이 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반면에, 책 '새로운 인생'을 쓴 사람은 총에 맞아 죽게 된다. 한때의 달콤함이라지만 어린이에게 주는 달콤함은 그 해악이 죽음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

 

그렇다면 청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책을 쓰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과도 같은 일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래서 책에 대해서는 역대 정권에서, 특히 독재정권에서 더 심한 탄압을 하는지도 모른다.

 

탄압이 심할수록 청년들은 이런 책에 더욱 흥미를 지니고 읽게 되고, 책에 쓰여 있는 일들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한다. 책에 있는 인생을 현실에서 실현하려는 욕구, 그것들이 바로 청년들이 지닌 욕구고, 그것이 바로 '새로운 인생'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소설엔 '새로운 인생'이 세 번 펼쳐진다. 주인공 오스만이 읽고 영향을 받은 책'새로운 인생', 어린 시절에 오스만이 먹었던 카라멜 '새로운 인생', 마지막으로 그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이 소설 '새로운 인생'

 

우리는 이 '새로운 인생'을 읽으며 새로운 인생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결말은? 새로운 인생은 없다. 모두 덧없음이다. 사라짐이다.

 

오스만은 책의 끝부분에서 천사를 만난다. 그가 젊은시절 만나려 했던 천사를 죽음에 이르러 만나는 것이다. 천사는 삶과 함께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천사는 죽음과 함께 존재한다. 그것을 '자난'이 잘 보여주고 있다.

 

자난'은 터키어로 '천사'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주인공 오스만은 자난을 사랑하고 자난과 함께 하고 싶어하지만 그들은 함께 할 수 없다. 이는 천사는 삶에서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다. 물론 잠시는 함께 할 수 있다.

 

우리 안의 천사들이 작동하는 때가 바로 그런 때이다. 그러나 이런 때는 지속적이지 않다. 우리의 인생에서는 천사보다는 삶의 일상성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오스만이 새로운 인생을 찾아 헤매지만 그가 만나는 인생들은 현실의 삶들일 뿐이다.

 

일상에서 살아가는 일, 자난이 떠난 뒤 오스만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런 그에게 다시 과거를 회상시키는 일이 생기는데...

 

젊은시절에 새로운 인생을 찾아 헤매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는 현실에서 배척당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해야 할 일이라는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딱 젊었을 때까지다. 이미 일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인생을 찾아 가는 일, 또는 자신의 과거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때는 죽음만이 새로운 세계로 이끌 수 있다. 오스만 결국 그는 천사를 보게 된다.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의 꿈을 안은 채.

 

처음에는 서구화냐, 전통고수냐를 놓고 젊은이와 기성세대간의 갈등이 주를 이룰지 않을까 했다. 중반까지도 그랬다. 터키의 역사와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메흐메트를 감시하는 사람들 이름에 시계 이름을 붙여준 것에서 그럴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소설은 이것만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터키의 역사와 기성세대와 젊은세대의 갈등도 다루고 있지만, 도대체 어떤 것이 새로운 인생인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도 '새로운 인생'이라는 카라멜도 모두 '새롭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이들도 역시 기존의 것들을 융합한 것일 뿐이다.

 

우리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기존에 살아온 사람들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인생은 없다. 그들이 살아온 인생, 방식에 내 삶을 살짝 얹는 것 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소설을 읽으며 끝부분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새로운 인생은 없다. 우리는 모두 함께 아주 조금 다르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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