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화첩기행 1 - 예의 길을 가다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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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떤 예술가들은 우리들 기억에 영원히 남으려는 듯이 그가 활동했던 장소에 그의 흔적들을 곳곳에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영원히 기억 속에 남을 수가 없다. 그가 살았던 장소도 변해버리고, 그의 흔적들은 사라지고 없어진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예술가들은 장소를 통해 복원해 낸다. 예술가들을 우리들의 기억 속으로 다시 불러낸다. 아니 기억 속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우리 생활 속에 불러낸다. 그렇게 그는 예술가들이 살았던 장소,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장소를 찾아간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를 들고서.

 

그곳에 가서 예술가들을 만난다. 실제로 만나지야 못하겠지만 예술가들의 혼과 소통을 한다. 그런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 그 장소를 그림으로 그린다. 이것이 바로 '화첩기행'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를 통해서 많은 예술가들과 장소를 만난다. 비록 그 장소가 예술가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너무나 멀리 와 있을지라도 예술가의 흔적을 저자를 통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을 홀대했던 시대가, 나라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이제는 흔적도 찾기 힘든 장소도 많지만, 이런 저자의 노력으로 조금씩 조금씩 예술가에 대한 흔적이 남겨지고 있다.

 

그렇게 우리나라도 예술의 폭을 넓고 깊게 하고 있다. 그것이 어쩌면 문화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절대로 홀대해서는 안 될.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오는데...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을 구분하지 않는다. 예술을 그렇게 구분하는 것 자체가 예술에 대한 모독이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활동에 모두 혼신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예술가들을 보자. 어떤 장에서는 특정한 누구라고 하기 힘든 사람들도 나온다. 가령 '진도소리와 진도' 하면 그것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진도라는 섬에 대한 이야기다. 그 섬이라는 장소가 그런 소리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자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이난영과 목포, 진도소리와 진도, 강도근과 남원, 서정주와 고창, 허소치와 해남·진도, 이매창과 부안, 윤선도와 보길도, 운주사와 화순, 임방울과 광산, 이효석과 봉평, 김삿갓과 영월, 아리랑과 정선, 나운규와 서울·남양주, 김명순과 서울, 최승희와 서울·도쿄, 정지용과 옥천, 나혜석과 수원, 이건창과 강화, 김동리와 하동, 안동 하회와 별신굿 탈놀이, 이인성과 대구, 남인수와 진주, 박세환과 경주, 문장원과 동래, 암각화와 언양, 이중섭과 제주, 김정희와 제주, 정선과 금강산, 최북과 구룡연, 최익현과 금강산

 

이것이 1권에 나온 예술가와 장소다. 내가 가 본 곳도 있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알고 있던 예술가와 모르던 예술가가 함께 모여 있다.

 

이 중에 슬픈 사연, 예술가를 이따위로 대하는 나라에 대한 절망, 그 시대에 대한 분노, 바로 이인성과 대구 편이다. 이인성, 소설가 이인성은 알았는데, 화가 이인성은 모르고 있었다. 그가 한국적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 그리고 경찰관과의 시비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민중을 지킨다는 경찰이 시비가 붙었다는 이유로 한 나라의 예술가를, 그것도 자부심이 넘쳐나던 예술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그 시대, 그 야만.

 

이런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테니까. 각 공간은 그냥 물질적 공간으로만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예술가들이 그 공간에서 활동하는 순간 공간은 장소가 된다. 드디어, 공간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장소.

 

그 장소들에서 우리는 예술을 만나고 예술가를 만나고, 우리의 문화를, 우리의 삶을 만나게 된다. 그 점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2권에서는 어떤 장소에서 어떤 예술가들을 만날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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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는 함께 해야 힘이 된다


쪽수는 힘이라고 했다

쪽수는 민주주의라고 했다

쪽수는 약자들이 살아남을 길이라고 했다

그래서 약한 자들은 쪽수를 채워야 했다

더운 날 추운 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약한 자들은 쪽수를 채우기 위해

애오라지 쪽수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거리로 광장으로 나갔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고

다수의 의견에 소수가 따라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정말 그런가

값비싼 자가용을 타는 소수와

값싼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다수,

비행기 널따란 좌석에 앉는 소수와

좁디좁은 좌석에 옹기종기 앉는 다수,

누가 더 강자인가

누가 더 약자인가

동물의 세계에서 약자는 쪽수가 많다

약자는 살기 위해서 쪽수를 불릴 뿐이다

여기에 무슨 힘이 있는가

여기에 무슨 민주주의가 있는가

오직 당하고 견디고 버티고 살아갈 뿐이다

쪽수는 힘이 없음을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다

하지만

개미도 메뚜기도 함께 하면 힘을 쓴다

쪽수가 힘이 되는 길, 함께 하는 일

거리에 광장에 모여 함께 하는 길,

그 길에 있어야 비로소

쪽수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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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 10년 차 초등교사가 푸는 교육계 미스터리
김현희 지음 / 생각비행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읽는 내내 박일환의 청소년 시집 "학교는 입이 크다"에 나오는 세 편의 시가 생각났다.

 

'찔리십니까? 찔리시냐고요? 찔리실 겁니다'

 

그런데 만약 교사들이 찔렸다면 이런 책이 나왔을까? 아마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학생들이 찔리냐고 교사들에게 외쳐도 교사들은 찔리지 않았나 보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단 책이 나왔으니 말이다. 이 책은 초등학교 교사로 10년을 근무한 교사가 학교의 현실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도대체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들이 많은지를.

 

교사 개개인을 놓고 보면 이상한 사람이 별로 없을지 모른다. 정말로 이상한 교사들이 있기는 하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머리를 보면 신경질을 내던 어떤 교사를 예로 들었는데, 그렇게 이상한 교사들이 학교에 한두 명 있다고 해서 이상한 선생들이 많을까 라는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결국 학교에 이상한 선생이 많은 이유를 이 책은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구조나 제도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제도나 구조의 문제로 넘어가면 우선 학교에서는 여전히 - 뉴스에서 교권추락에 대해서 많은 기사들이 나오기는 하는데... 이는 여전히 교사가 권력자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 교사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 그런 구조다.

 

수업이나 생활지도에서 교사들은 전권을 휘두른다. 많이 완화되었다고들 하지만 아니다. 학교 현실에서는 여전히 교사의 강압이 통한다. 학생들이 이 강압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동조해주는 교사를 만나긴 힘들다. 그만큼 교직사회는 경직되어 있다.

 

이런 평범한 교사들, 보통 교사들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줄도 모르고 그 권력을 행사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권력에 취해 있으니, 자신들이 정상적으로 행동한다고 하는 것들이 학생의 처지에서 보면 이상할 수밖에 없다.

 

창의성, 21세기, 개성 운운하면서, 민주시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학교에서는 여전히 두발, 화장, 염색을 잡는다. 똑같은 옷을 입혀 놓는다. 똑같이 행동하기를 바란다. 학교에서 학생은 사람이 아니다. 그냥 학생이다. 통제되어야 할. 여기에 교육은 작동하지 않는다. 토론? 그런 거 없다. 교칙이니까 당연히 지켜야 한단다.

 

그 교칙의 정당성, 시대적 유용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런 교사들이 대다수다. 불합리한 교칙이라도 준수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또 그대로 행동하는. 이들 교사들에겐 '시민불복종'이란 없다.

 

'시민불복종'은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말이고, 실제 학교에서는 적용되어서는 안 될 말이다. 학생들이 이런 불복종 운동을 하면 학교엔 비상이 걸린다. 비상사태는 진압되어야 한다. 재빨리 진압하려고만 한다. 학생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들을 징계하기에 급급하다.

 

너희들은 아직 어리다. 판단력이 없다는 이유로. 마찬가지로 출퇴근 시간 파괴가 요즘 대세인데... 학생들을 정해진 시간까지 꼭 등교하도록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단지각이라고 해서 벌점을 주거나 다른 징계를 한다.

 

근무 유연성, 이런 거 학교에는 없다. 출결을 점수로 매기는 조직이 바로 학교다. 세상에? 성실히 학교에 나오면 좋기는 하겠지만, 나오지 않는 것이 무슨 죄라고 점수를 깎는단 말인가. 마치 학교에만 앉아 있으면 허수아비라도 모범생이 된다는 듯이... 그렇게 출결로 학생들을 움켜쥐고 있는데도 누구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데, 출석을 강조하는 초기 산업혁명 시기의 행동들을 버젓이 하고 있는 곳이 바로 학교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교사들이다.

 

이런 보통교사들,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교사가 되어 버린다.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사회와의 거리 역시 멀어진다.

 

학교만큼 변화에 둔감한 곳이 있을까. 교사만큼 변화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직업이 있을까. 그냥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내는 교사들이 많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들은 문제교사다.

 

학교를 시끄럽게 하는 교사, 교사를 불편하게 하는 교사, 그들은 다른 교사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교사들은 이상하게도 학교를 일찍 그만둔다.

 

정년까지 남는 교사들, 교감이나 교장이 되는 교사들, 장학사, 장학관이 되는 교사들, 이들은 학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가 아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하는 교사가 아니다. 학교 교육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교사가 아니다.

 

그냥 주어진 체제에 안주하고, 잘 적응하는 교사들이다. 동료관계가 좋은 교사, 특히 윗사람들과 관계가 돈독한 교사들이 그런 교사들이다. 그런 교사들만 살아남게 된다.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자리에.

 

그러니 자연스레 이상한 교사들만 득시글하게 된다. 학교에 이상한 선생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실 '선생'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선생(先生)'이라 함은 먼저 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먼저 나다는 말, 시간적으로 먼저 태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먼저 깨닫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스승'이라는 어마어마한 말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에게나 쓸 수 있는 말이다. 말로 행동으로 지식으로 하여튼 무엇으로 나에게 감명을 주는 사람,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 그들이 바로 '선생'이다.

 

이런 사람이 학교에 있는가?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선생'이 아니다. 그냥 교사일 뿐이다. 직업인으로서의 교사. 그런데 교사들이 자신들을 선생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대우해주길 바라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선생이 아닌데 선생으로, 아니 선생님으로 대우받고 싶은 욕망. 이상한 교사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권위와 존경을 강요하고 있으니...

 

절절하다. 이 책. 교사들, 읽으면 찔릴 것이다. 아니 찔려야 한다. 그런데, 안 찔릴 수 있다. 나이 든 교사 - 모두가 똑같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더 젊은 교사들도 많다. 진짜 선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대다수는 이렇다는 얘기다 - 는 이런 책을 읽지 않는다. 젊은 교사는 읽을 시간이 없다.

 

어쩌면 이런 현실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고민해봐야 바뀌지 않으니까. 그러면서 보통교사로 살아가려 한다. 이렇게 보통 교사들이 학교에 득시글하게 된다. 찔릴 수가 없다. 이런 보통교사들이 바로 이상한 선생인지도 모르면서.

 

교육부 장관, 교육감, 교장, 교감부터 또 나이 든 교사들부터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찔려야 한다. 정말로 교사들이 찔리지 않으면 학교 변하지 않는다. 교육지원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교육청, 쓸데없는 연수 하지 말고 이런 책 학교에 보급해서 교사들에게 읽으라고 권장이나 했으면 좋겠다.    

 

찔리는 교사가 많이 나오게... 그래야 학교가 바뀔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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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4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4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아온탕아 2017-07-05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단에 있습니다. 흥미롭군요.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리뷰만 봐도 벌써 찔리기 시작하는데 큰일입니다 ㅎㅎ

kinye91 2017-07-05 09:52   좋아요 0 | URL
교사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해요. 교사들이 함께 읽고 서로 토론할 수 있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이상한 선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적어도 문제를 알고 있다면 해결책을 찾으려 할테니까요.
 

위만  보고 살아가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만 보고 살아온 사람들에겐 이런저런 흠결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많은 것들을 밟았을테니 말이다. 자신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별이 되기 위해 진흙을 짓뭉개고 없애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흠결 때문에 더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높이 높이 올라가면 그 거리 때문에 흠결이 보이지 않을테니까.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별과 진흙 사이를 오르내렸을 것이라고 한다. 이 시집의 제목이 된 '단 한 사람'에서도 '나는 별일까, 진흙일까' (42쪽) 되뇌어 보기도 한다.

 

별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모든 사람이 다 하늘에 있는 별이 될 수는 없다.

 

그런 별들만 있는 세상은 오히려 더 비참할지도 모른다. 시인은 그래서 지상의 풀들에게서 별을 본다. '풀은 별이에요' (12쪽)

 

오히려 진흙에서 별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시집을 읽으면서다. 시인의 시들은 그렇게 비루한 것들에서 반짝임을 본다. 그렇다. 우리는 그런 일상에서 별을 찾아야 한다.

 

'독거초등학생'(37-41쪽)이라는 짧지 않은 시를 보면 풀이 별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독거노인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독거초등학생이라니. 이 학생의 삶을 진솔하게 시로 써내려간 이 시는, 정말, 우리에게 별은 오히려 밑에, 땅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정서를 지니고 있는 시로 '지하철 칸 속 긴 횃대에 앉아 그리어 보네'란 시를 들 수 있다.

 

        지하철 칸 속 긴 횃대에 앉아 그리어 보네

 

  지하철 칸 속 긴 횃대에 사람들이 쪼르르 줄지어 앉아 조는 그 속에 나도 끼어 졸면서 깨면서 그리어 보네

 

  앉은뱅이 그는

  일어나고 싶지 않은 願病을 이룩한 사람

 

  장님 그는

  보고 싶지 않은 願病을 이룩한 사람

 

  절름발이 그는

  앞달리고 싶지 않은 願病을 이룩한 사람

 

  벙어리 그는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願病을 이룩한 사람

 

  지금 이 칸 속에 나타났다 다가와 앞을 막다가 돌아 저 칸으로 사라진

  자신의 바람에 의해 현생을 이룬

  세상의 적지 않은 그들, 장애의 願病人들

 

  그들이 사라진 뒤에도 이 칸 속에는

  그들이 다가왔을 때처럼 언제고

  조용하고 작은 물품

  껌이나 볼펜, 실꾸리 따위가 돌고 있네

  그들 붉은 손바닥 안에서 願病의 묘약처럼 꺼내어 디밀어 주던

 

  껌이나 볼펜, 실꾸리 그리고 동전 바구니……

 

이진명, 단 한 사람, 열림원. 2004년. 18-19쪽

 

장애인을 무시하고 천대하고 피하려고만 하는데,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있다가 시인은 이런 상황을 그리어 본다. 그들은 어쩌면 자신의 소원을 이룬 사람이 아닐까.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서원을 한 지장보살처럼, 그들 역시 세상의 어떤 면을 하나하나 떨어낸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들의 그런 서원 성취가 지하철 안에서 작은 물품들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들은 우리들의 생활을 비춰주는 별이 아닐까 하는 생각.

 

별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음을, 그것도 우리보다 더 대단한 존재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못한 존재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우리가 보지 않으려 애써 눈감으려 했던 것들을 시인은 시를 통해 우리 앞에 끌어내준다. 보라고, 이것은 눈 감는다고 외면한다고 존재하지 않게 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이들을 별로 보라고. 별이라고 생각하라고.

 

우리들 인생을 비춰주는 별. 그 별을 길잡이 삼아 우리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시에 나타난 시들이, 별을 찾기 위해 하늘이 아니라 땅을 보아야 함을, 우리 주변을 보아야 함을 나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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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별들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박일환 지음 / 우리학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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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소설은 내가 살지 않은 삶을 등장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고 있다. 실제 삶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라도 소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소설은 나로 하여금 다른 인생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며, 다른 인생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이 소설을 읽게 만든다. 비록 마음을 힘들게 할지라도 소설을 통해서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으니까.

 

세월.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약인 '망각'이 작동해서 고통도 약해지고, 슬픔도 약해지게 된다. 그렇게 세월은 우리를 치유로 이끈다. 이마저도 없다면 우리 인간은 슬픔의 바다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죽게 되고 말리라. 

 

이처럼 세월이 우리를 치유로 이끄는데, '세월호'는 여전히 우리를 슬픔으로 이끈다. 지속적인 슬픔. 아직도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여전히 미수습자로 남은 사람들이 있기에... 비록 3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세월호는 망각이라는 약이 통하지 않는다. 

 

아니, 통해서는 안 된다. 세월호에는 망각이라는 약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약이 통해야 한다. 그 약을 우리는 평생 간직해야 한다. 그 약은 우리에게 슬픔을 주고 고통을 주겠지만, 오히려 그 약이 바로 세월호의 슬픔을 이겨내는 힘이다. '망각이 아닌 기억'

 

하여 세월호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만났다. 그럼에도 읽기에 망설여진다. 쉽게 책장을 펼치지 못한다. 여러 번 마음을 추스린다. 다잡는다. 읽어야 할까, 말까... 공연히 읽어서 눈시울을 자극할 필요가 있을까, 분명 읽으면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떨글텐데... 아직도,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가.

 

제목에서 슬픔이 뚝뚝 묻어난다. 별들이 하늘로 가지 않고 바다로 갔으니, 그래서 읽어야 한단 생각을 한다. 별은 바다가 아니라 하늘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바다로 간 별들"이라고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던 별이 바다로 떨어진 것이라고, 그렇게 주인공은 민지는 생각한다.

 

너희들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 게 아니라 거꾸로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너희를 삼킨 바다 위로 말이야. 한꺼번에 바다로 간 별들, 그게 바로 너희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지난 4월의 바다는 슬픈 바다, 통곡의 바다가 되었던 거고. 그렇다면 하늘의 별을 보며 너희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바다로 가 버린 너희의 영혼을 먼저 건져 올려야 하는 게 순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209-210쪽) 

 

읽기로 마음을 정한다. 바다로 간 별들의 영혼을 건져 올리기 위해서는 슬픔을 외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눈물 방울이 더 떨어져 눈물의 힘으로 건져 올릴 수 있게 될 때까지 눈물을 흘려도 좋으리란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때로는 이들의 좋았던 추억에 슬며시 미소를 짓기도 하고, 이들에게서 웃음을 빼앗아간 그 사건에 분노를 터뜨리기도 하며, 살아남은 친구들의 슬픔에 공감을 하기 한다.

 

그렇게 소설은 주인공 민지를 중심으로 중학교 때 만났던 아이들이 등장한다. 친했던 친구 수경, 민지를 좋아했던 남학생 민석, 민지와 직접 관계를 맺지 못하지만 같은 반이었던 경호. 그리고 '오죽하면'이라는 팀이름으로 함께 춤을 추던 친구들.

 

이 중에 단원고로 진학한 수경, 민석에 대한 이야기를 민지를 중심으로 펼쳐가고 있다. 단원고 학생이 아니었음에 살아남아 친구를 잃어야 했던 민지, 그 민지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친구들. 이런 민지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민지가 겪었던 일들을 함께 겪게 된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함께 기억하게 된다.

 

어른의 관점이 아닌 친구의 관점에서 세월호의 슬픔을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는 모습이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더 생생하다. 바로 이들의 이야기이고, 이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민지를 통해 '세월호'를 겪어가는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것을 극복해가는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하여 슬픔을 통해 슬픔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민지는 잊지 않기로 한다. 기억을 해야 한다. 슬픔 역시 외면하지 않는다. 슬픔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 슬픔을 자신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이들에 대한 기억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래야만 세월호는 잊히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 속에 남는다.

 

그러나 아무리 슬픔을 이기려 해도 소설 속 슬픔이 마음에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 거부해서도 안 된다.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자. 그 다음에 앞으로 나아가자. 그렇게 마음 먹고 소설을 읽는다.

 

작가 역시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 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이 소설을 너무 슬픔으로만 읽어 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슬픔을 넘어 그들이 미처 펼치지 못한 꿈들을 받아안고, 그들을 대신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223-2224쪽)

 

세월호에 관련된 소설... 그렇다. 소설을 슬픔으로만 읽지는 않는다. 슬픔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으로 바꾼다. 슬픔을 '기억'으로 바꾼다. '기억'을 '행동'으로 바꾼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기에...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책임자가 응당한 처벌을 받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우리가 '기억'할 수 있게 '행동'해야 함을, 소설을 통해 온몸으로 느낀다.

 

소설의 끝부분, 민지의 생각으로 마무리한다.

 

잊지 않을 거야. 내 친구들을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간 모든 것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눈물이 나지만 참을 거야.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게 되더라도 그건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눈물이 될 거야. 속으로 뇌고 또 뇌었다. 울컥, 하는 날들이 오래도록 이어지겠지만 그런 순간들조차 슬픔을 넘어서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 줄 거였다. (218쪽)

 

이 소설, 그런 디딤돌이 될 것이다. '바다로 간 별들'이 이제는 하늘에서 영롱히 빛날 수 있게, 그들의 영혼이 하늘로 갈 수 있게, 우리가 기억하고 행동하게 하는 디딤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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