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듯,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그 지긋지긋하던 무더위도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에 서서히 자리를 비켜주고 있다.

 

  이렇게 여름은 가는구나. 더위와 비로 고생을 한 여름이 한때이듯이 힘들고 지치고 절망과 좌절에 빠뜨린 세월들도 한때였으면 좋으련만.

 

  자연은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소위 배웠다고 하는, 조금은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

 

  제 잘못은 전혀 보지 못하고, 제 집에 구멍이 나 비가 숭숭 새고, 바람이 솔솔 들어와 찬 바람이 불면 견디지 못할 지경임에도 다른 집 낙서만 손가락질 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자연의 섭리를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가면 올라갈 일이 있는 것.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은 바래고 만다는 것.

 

지금 자신이 높은 곳에 있다고 해도 그 자리에 영원히 앉아 있지는 못한다는 것, 오히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낮은 곳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남에게 돋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제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 어쩌면 자연에서 하찮은 것이 없듯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이런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

 

최서림의 시집을 읽다. 집과 말이 이 시집의 주요 소재다. 집, 시간이 갈수록 낡아가는, 그러나 낡아감이 익숙함으로 변해야 하는데, 그 익숙함은 그 집에서 계속 살 때, 그 집을 아끼고 사랑하고 가꿀 때만 그럴 수 있다는 것.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늙어가지 않고 낡아간다. 낡아서 어느 한 순간 폭삭 무너져 버린다. 마찬가지다. 말도. 언어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말은 칼과 다름 없다. 사랑이 없는 말은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관계의 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끊어버리는 절단의 말이다.

 

그런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국제적으로도 관계의 말이 아닌 절단의 말, 단절의 말이 난무하고 있고, 우리나라 안에서조차도 관계의 말이 아니라 절단, 단절의 말들이 난무하고 있으니...

 

말들이 이렇게 가시 돋치고, 날카로움만 지니면 말들로 인해 사람들은 상처받고 소외되기만 한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낮은 곳을 보지 못한다. 오로지 강한 것, 큰 것, 화려한 것과 같이 노력하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을 숭배하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 이런 '오랑캐꽃'과 같은 내용은 나올 수가 없다. 아니, 반대다. 시인은 이런 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오랑캐꽃'과 같은 시를 노래하고 있다.

 

시로써 시인은 사람들의 눈을 틔워주고 있다. 제발 눈 좀 뜨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저절로 보이는 크고, 화려한 것들만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적으로 찾아야 할 작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그러한 것들이라고.

 

시를 보자.

 

    오랑캐꽃

 

모든 꽃은 다 꽃을 피운다

바위취, 국수나무 같이

그늘 밑에 자라는 것들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

평생 남의 그늘에 가려

영영 꽃이 없을 것 같은 생명들도

언젠가는 꽃을 피워 올린다

버려진 들판의 찔레꽃 냄새가

담장 안의 장미꽃 향기를 감싸 안듯,

이름이 뭣해서 불러주기 민망한 쥐똥나무

꽃냄새가 화장실 냄새를 덮어주듯,

누군가를 위해 물길처럼 낮아지고

남의 인생을 데워주기 위해

불길처럼 굽어져 본 사람, 한평생

남의 그늘에 가려 제 그늘이 없는 사람도

이른 봄 오랑캐꽃처럼 꽃을 피워

젖은 낙엽을 살짝 밀어 올릴 줄 안다

하늘을 들어 올려 순간

제 그늘을 희미하게 만들 줄 안다

 

최서림, 물금, 세계사, 2011년 초판 2쇄. 37-38쪽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시인의 눈.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주는 시인의 말. 표현. 그래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찾을 수가 있다. 시인 덕에.

 

자연의 섭리처럼 사람들 사이에서도 꼭 필요한 것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들이 있음을, 비록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음을, 그 존재들은 그런 존재 자체로 소중함을,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이런 존재들에게 눈길을 줄 때 집은 익숙함으로 늙어가고, 말은 사랑이 넘치는 관계의 말로 바뀔 것이다. 이제는 그래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라는 말을 앞에 달고 있고, 제목은 "설전(雪戰)"이다. 책이 조금 친절하지 않게 두 스님의 문답이 언제 이루어진 것인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하긴 이 문답이 하루에 이루어진 것도 아닐 것이고, 또 그것이 언제인지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때와 장소가 중요하지 않고 무엇을 말하였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면목을 깨우치게 하는데 문답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두 스님의 문답은 손가락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본다면 자신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가 없다. 그런데, 자꾸만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이런 대화들을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손가락에서 벗어날 수가 없나 보다.

 

이 손가락에서 벗어나는 순간, 내 마음에 낀 먼지를 조금은 날려보낼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책의 겉표지 뒷부분에 쓰여 있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마음에 와 닿는다.

 

'차갑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수도자의 자세를 '눈'이라는 매개로 형상화하는 한편,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성철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과 인연을 표현하고자 했다.'

 

다른 스님들이나 일반인들이 함부로 말을 걸기가 어려웠던 스님이 성철 스님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엄격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레 보여줬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평생 동안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결심을 지켰던 분이기도 하고. 그러니 이런 구도자의 자세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으로 다가왔으리라.

 

다만, 법정 스님만은 성철 스님과 많은 대화를 했다고 한다. 성철 스님 역시 법정 스님을 도반(道伴)으로 인정했나 보다. 책을 편찬할 때는 법정 스님에게 도움을 구했다고 하니 말이다.

 

이 책 곳곳에서 성철 스님을 모셨던 원택 스님의 글이 있어서 성철과 법정 스님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된다. 또 이 책의 처음과 끝에 성철 스님과의 인연을 말하고 있는 법정 스님의 글이 있다. 그 글을 통해서도 두 분의 관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법정 스님과 성철 스님의 묻고 답하기를 통해 불교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문답이라는 형식은 어렵지 않게 일반인들에게도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질문과 답이 모두 마음에 받아들이고 명심해야 할 것들이지만, 그 중에서 특히 몇몇 구절은 가슴을 때리고도 남았는데...

 

법정 : 그렇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독립된 현상만이 아니고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저희들 자신이 종교인이기 때문에 종교인에게도 그런 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철 : '종교인에게도'가 아니지요. '에게도'가 아닙니다. 우리 종교인이란 정신을 지도하는 근본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니 책임은 근본 책임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 그러니 종교인이라는 사람, 성직자라는 사람부터 근본 자세를 바로잡아서 참다운 정신적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위에서 정신적 지도자부터 잘못되었다고 하면 밑에서 지도받은 사람이 탈나고 잘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니 근본 책임을 맡은 종교인, 성직자인 우리가 참회해야 한다고 봅니다.  (36-37쪽)

 

지금 사회가 어지러운 지경에 처한 것에 대해서 대화를 하는 중에 나온 말이다. 법정 스님은 '종교인에게도'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성철 스님이 '에게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

 

이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졌을까. 아닐지도 모른다. 생명경시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너무도 어지러운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떤 종교인이 이렇게 참회를 하고 있단 말인가.

 

종교인에게 세금을 내게 하자는 안건도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고, 통과되지 않고 있는 현실 아닌가. 자기들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면서도 점점 가난해져 땅과 가까워지는 사람들은 외면하는 종교인들이 많지 않은가. 부끄러워해야 할 말이다. 이 말이 단지 종교인에게만 해당하겠는가.

 

'나는 진리를 위해서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서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닙니다. ...... 참으로 진리를 위해 살려면 세속적인 일체 명리는 다 버려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앞서면 진리는 세속적인 영리를 추구하는 일종의 도구가 되어 버리니까요.' (51쪽)

 

'불교 믿는 첫 조건으로 모든 생명,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모셔라. 모든 존재를 부모같이 섬겨라. 모든 사람, 모든 존재를 스승으로 섬겨라 하는 3대 조건이 있습니다.' (80쪽)

 

'불교의 사회봉사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금강경]이나 반야사상 같은 데서는 어떠한 선한 일을 하더라도 아무 자취 없이 하라고 강조합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보살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82쪽)

 

'인간의 가치란 누구나 똑같습니다. 남을 도우려면 존경하는 마음으로 해야지, 조금이라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 저쪽 인격을 무시하는 겁니다.' (82쪽)

 

이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턱 막혔다. 도대체 지금 이 나라는 봉사활동이라는 명목으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무슨 무슨 기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사진 촬영을 해서 언론에 내보내는 그 작태는 그들이야 그렇다치는데, 이들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잘못된(?) 학교 교육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점수화하고 있다. 몇 시간 이상을 해야지만 기본 점수를 받는 것이다. 알리지 않고, 남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봉사활동을 학생 시절부터 점수를 위해서, 그것도 기록이 되지 않은 봉사활동은 아무런 효력이 없으니 꼭 기록을 하게 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학교 교육 아닌가.

 

그렇다면 얼마나 잘못된 교육인가. 봉사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봉사조차도 자신을 드러내는 쪽으로 쓰게 하는, 현재의 정치인들의 행태가 이런 사고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었는데... 아마도 거꾸로이겠지. 정치인들의 그런 행태가 학교에서 하는 봉사활동을 점수화 할 생각을 하게 했겠지만... 참, 이제는 이렇게 지낸 학생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동을 하는 나이게 되었으니...

 

그럼에도 성철 스님은 말을 적게 하라고 했다. 글 역시 마찬가지다. 주옥 같은 말들이 더 많이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아가면 될 듯하니... 이만 줄여야겠다.

 

다만, 당장의 깨우침은 없을지 몰라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깨우침에 대한 생각, 즉 손가락이 무엇을 가리키려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이름은 들어봤음직한 성철, 법정 스님의 묻고 답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인 이야기 2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2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우리는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정치, 군사적인 면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바로 인접해 있는 강대국인 중국과 어떻게 관계를 풀어갈 것인가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지금은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강대국 아닌가. 미국과 중국의 틈새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전략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때이다.

 

그냥 기분대로, 감정대로 외교문제를, 국제문제를 풀 수는 없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할 수 있는 정치, 그러한 정치가 기대되는 때이기도 하는데...

 

1권에 이어 2권을 읽었다. 현대 중국의 혁명 여성가들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친숙한 작품이 하나 등장한다. 영화 "색,계"의 원작을 쓴 장아이링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중국에는 인물고 많고 사건도 많았다고 보면 된다.

 

 

전우용은 "우리 역사는 깊다"와 "서울은 깊다"라는 책을 썼지만, 역사가 깊기로는 중국을 따라가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중국은 대국이다. 큰나라다. 큰나라 답게 깊고 넓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결코 좁지도 얕지도 않다. 그들의 어떤 일면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책에도 나온다. 중국인들이 - 아마도 남자들이겠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음식과 여자라고. 그런데 여기서 끝날까?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이런 막장도 막장이 없다 싶을 정도로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 하다못해 우리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알고 있는 쑨원만 해도 여자 관계만큼은 배울 것이 없다고 봐도 된다. 쟝제스 역시 마찬가지고, 마오쩌뚱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이런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럴 수도 있다라든지, 또는 다른 능력이 더 탁월하니 됐다라든지 정도다. 큰나라에서 활동한 사람들이기에 한쪽으로만 판단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든다.

 

더하여 중국인들은 천상 의심이 많다고 한다. 의심, 이들은 무엇이든 의심하고 본다. 쑨원의 최대 약점이 의심을 잘 못했다는 것이라고 하니, 무언가를 먼저 의심하고 들어가는 것, 중국인들의 기본이라고 한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선의, 우리 뜻은 그게 아니고 하는 말들은 외교에서 중국인들에게 그다지 잘 먹혀들어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무엇이든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의심하고 확인하고 점검하고 여러 번을 검증한 다음에야 믿는다. 중국의 온갖 첩보기관들이 암약하게 된 이유도 이러한 의심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 중국이 공산화 된 다음에는 혁명을 이룬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그런 일이 발생을 하지.

 

이 책에 나오는 팽더화이(우리에게는 팽덕회로 더 잘 알려져 있다)와 마오쩌뚱(모택동)의 관계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결국 권력을 쥐지 못한 팽덕회가 진실을 말함으로써 몰락해가는 과정이 잘 나와 있는데...

 

중국 현대사를 이끈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2권에서는 특히 여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쑨원(손문)에 대한 이야기, 쑨원과 장졔스의 부인이 되는 송경령과 송명령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어서 현대사의 뒷이야기를 알 수 있어서 더 좋다.

 

읽으면서 참 놀란 사실이 장졔스를 감금했던 장쉐량이 연금생활을 했다는 것... 그럼에도 참 오랫동안 살아 있었다는 것, 먼 과거의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장쉐량과 장졔스의 부인인 송명령이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 등등, 그동안 잘 모르고 있던 일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무엇보다도 중국 현대사의 인물들에 대한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이란 나라, 절대로 단순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 그들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그들 국민들의 특성, 정치지도자들이 지닌 특성을 알아야 우리가 중국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역사가 깊은 만큼 중국 역사도 깊음을, 그 점을 이해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만들어가야 함을  "중국인 이야기"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


맑은 소리가

하나 둘 떨어진다.


푸른 잎,

굳은 땅,

그리고 메마른 가슴 위에.


촉촉히 젖는

저 하늘의 울림.


후두둑, 똑 또르.


한 줄기 시원한

바람과

물줄기가 떨어진다.


내 대지 위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의 프로페셔널 - 자신이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한 사람들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텔레비전 채널을 이러저리 돌리다 우연히 '역사 저널 그날'을 보게 되었다. 가끔은 보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천민 출신인 장영실을 세종이 기용하여 쓰려고 하는데, 천민에게 벼슬을 주어 기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황희가 그런 전례가 예전에도 있었음을 이야기하며 장영실을 쓰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내용.

 

이것이 바로 선례의 힘이고, 기록의 힘이고, 아는 것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번 행해진 일들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재판에서도 판례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사람을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는 아니었지만, 그런 사회에서도 능력에 따라 쓸수 있는 전거를 마련해 놓았다는 것이 머리 속에 남았는데...

 

이 프로그램의 내용과 이 책이 연결이 되었다. 우리가 이런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조선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반으로 행세깨나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다.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천민, 기생까지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번듯한 기록은 잘 남아 있지 않지만 이들의 활동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여기저기에 산발적으로 남아 있던 자료들을 모아 저자가 정리해주고 있다.

 

기록의 힘이다. 이렇듯 조선시대에도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 소위 '덕후들'이 있었음을. 이런 '덕후들'로 인하여 조선사회가 좀더 깊고 넓어졌음을.

 

열 명의 프로페셔녈을 다루고 있다. 영어로 프로페셔널이라고 하지만, 우리말로는 전문가, 대가 정도 될테고, 요즘 용어로는 '매니아' 또는 '덕후'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여행가 정란, 바둑기사 정운창, 화가 최북, 조각가 정철조, 무용가 운심, 책장수 조신선, 원예가 유박, 천민 시인 이단전, 음악가 김성기, 과학기술자 최천약

 

조선시대 많은 인물들을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 중에 최북만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다 정철조 편을 읽으면서 그의 호가 '석치'라는 사실에 박지원과 관련된 일화들에서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듣는 이름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여행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원예가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 

 

이들을 모두 한자어로는 벽(癖), 광(狂), 나(懶), 치(痴), 오(傲)라고 한다. 자기분야에 빠져 다른 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에게도 자부심이 넘쳐나서 다른 사람에게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남들 눈에는 한쪽으로 치우쳤거나, 미쳤거나 오만하거나 바보같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요즘 용어로 표현하면 이들은 모두 '매니아'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매니아 수준을 넘어 전문가가 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신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신이 처한 환경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신분과 환경을 넘도록 자신을 채찍질하고 단련하고 노력하여 결국 넘어선 사람들이다.

 

이들의 존재를 안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신분에 의해, 환경에 의해, 또는 끼리끼리에 의해 자기들만의 경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장영실이 기용된 것이 전례가 있었기에 가능했듯이, 지금 우리가 '덕후'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들에게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시대에 남들이 하지 않은 일, 하고자 하지 않은 일들을 한 사람도 있고, 신분 제약을 넘어 일가를 이룬 사람도 이 책에 등장한다.

 

그나마 다른 양반들의 기록에 이름자를 남겼기 때문에 이들의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있고, 또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인데...

 

그렇게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찾아 하나로 엮어낸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저자의 노력으로 조선후기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알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세대들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생각하게 할 수도 있으니...

 

덧글

 

여기에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다. 바로 '책장수 조신선' 편인데... 영조, 조선후기 문화 중흥을 이끈 임금임에도 이때에 분서갱유라 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 그것 참... 이래저래 문화는 정권에게는 견제해야만 할 어떤 것인가 보다...

 

씁쓸했다. 이 부분은. 책의 유통과 출판을 국가가 통제한 이유도 바로 이런 정권 유지였을테니... 지금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참으로 오랜 연원을 두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8-15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5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