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화 상상 여행 - 신화로 인문 읽기
신동흔 지음, 젤리빈 그림 / 나라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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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코딩교육이니, 정보교육이니 하는 컴퓨터 관련 교육을 어릴 때부터 하지 말고 이렇게 신화를 읽히고 생각하는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는.

 

앞으로 다가올 세계를 살아갈 미래 세대에게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미래를 충실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오래된 미래인 신화 교육도 좋지 않을까 하는.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신화에는 관계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신화에서는 나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신이라 해도 자신만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전지전능한 신도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한다.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잘못된 관계를 맺으면 신이라 할지라도 벌을 받거나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런 관계, 나만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살아갈 삶은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데 신화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신화를 쉽게 풀이해서 썼다. 신화하면 그리스로마 신화만 생각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우리나라 신화도 그리스로마 신화 못지 않음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천지창조라는 아주 광대한 영역에서 시작하여 업이라는 눈에 잘 띠지 않는 작은 존재까지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우리나라 신화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다루어주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여기에 신화가 가진 상징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고 있으며 신화의 출전도 잘 밝혀주고 있고,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상상하기를 통해 신화를 자신에게 가져오는 활동도 하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너무도 위대하고 훌륭한 일들만을 하는 신을 이야기하지 않고 실수하고 잘못하고 그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는 신을 이야기하는 점이 좋다.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으니, 완전무결한 신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자신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으나, 우리 신화에서는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신들도 겪는다는 점에서 내 이야기로 읽을 수가 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반면교사로 삼을 수도 있다는 점, 이것이 우리 신화가 지닌 매력이다. 여기에 무슨 숙명처럼 정해져서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식의 신화는 없다.

 

우리나라 신화는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짐을 보여준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속에서 그냥 좌절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도록 하지 않는다. 운명에 맡기라고 하지 않는다. 운명을 개척하라고 한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라고 한다. 그러면 운명은 어느 새 바뀌어 있음을 신화를 통해서 보여준다. 여기에 절대적인 악, 꼭 배제해야 할 악은 없다는 점도 우리 신화에서 보여준다.

 

관계 속에 모든 존재가 들어 있다면 이 관계 속에는 절대적인 선만이 있지는 않는다. 선과 악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이다.

 

우리 신화에서는 악한 존재, 모자란 존재도 신으로 섬긴다. 왜냐고? 이들을 통해서 우리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으니까. 이들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바로 잡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코딩교육이니 뭐니 하는 정보교육보다는 이런 신화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을 엿볼 수 있고,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고립된 혼자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신이 바로 '업(業)'이다. 집에서나 또는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신. 너무 작고 하찮게 여겨져서 신이라 생각하지 않는 그런 존재. 그런 존재도 우리 신화에서는 신으로 섬긴다.

 

이렇게 작고 하찮은 존재도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 삶을 잘못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나란 존재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존재가 어떻게 관계를 허투루 맺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다른 존재들을 하찮게 막 대할 수 있겠는가.

 

신화는 이래서 과거가 아니다. 현재다. 그리고 우리 미래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를 보여주는 그런 소중한 이야기다. 신화가 지금 이 시대에도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청소년들,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우리 신화를 읽고 우리 신화를 가까이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청소년들이 살아갈 미래가 조금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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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9 0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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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9 18: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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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시간이 초 시간이 되어


예전에 약속을 할 땐

시계탑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만큼 시계는 귀했고

초로 나누지 않는 시간에

몸은 계절을 시간으로 삼았다

눈보다는 몸으로 느끼는 시간들

어느 순간

몸 시간이 눈 시간으로 바뀌었다

계절의 시간이

초 단위 시간으로 바뀌어

어느 곳에도 존재하게 되었다

시계가 넘쳐나자

현재를 살던 사람들이

미래를 살기 시작했다

째깍째깍

자꾸 내달리는 초침을 보며

시도때도 없이 알려주는 시간을 보며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바로 눈 앞에 미래가

시계를 통해 알람을 통해

다가오게 되자

현재는 미래에 밀려나

쉼 없는 삶이 되었다

몸 시간이 눈 시간이 되고

계절 시간이 초 시간이 되어

미래로 달려가야만 하는

멈춤 없는 현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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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8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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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8 1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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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사라진, 그러나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어쩌면 멸종되었다는 호랑이를 본 사람이 있다는 말을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살던 동물이니,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다는 말은 너무 슬프기 때문이다.

 

  어찌 호랑이뿐이랴. 호랑이처럼 사람 앞에 군림했던 동물도 사라졌는데, 그보다 약한 동물들이랴. 동물이 아니라 눈에 잘 띄지도 않았던 식물들이랴.

 

  이런 아련한 그리움, 아쉬움. 여기에 하나 더하면 빗소리도 마찬가지다.

 

   처마 밑에서 조용히 빗소리를 들은 기억. 이제는 처마를 지니고 있는 집을 만나기도 힘드니,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빗소리를 듣기는 참 힘들다.

 

또는 대청마루에 누워 빗소리를 듣는 일. 하늘에서 땅으로, 다시 땅에서 하늘로 튀어오르던 비들을 보는 일.

 

비들이 함성을 지르며 온세상을 누비는 모습을 보는 일, 그들의 함성을 듣는 일.

 

손택수 시집을 읽다가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그런 아련한 그리움을 만났다. 빗소리... 이런 빗소리를 탁구공으로 비유하다니.

 

빗방울이 톡톡 튀어오르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라는 존재를 통해 세상 모든 존재들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통도사 빗소리

 

탁구공 튀는 소리다

스님들도 목탁대신

탁구를 칠 때가 다 있네

절집 처마 아래 앉아 비를 긋는 동안

함께 온 귀머거리 여자는

영문을 모른 채 그저 숫저운

미소만, 미소만 보이는데

통도(通度)라면 인도까지 갈까

저 빗소리, 내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 머나먼 서역까지 이를까

흙이 아프지 말라고

흙의 연한 살이 다치지 말라고

여자는 처마 아래 조약돌을 가지런히

깔아주고 있는데, 그

위에서 마구

튀어오르는 빗방울,

저 빗방을

하늘과 땅이 주고받아 치는 탁구공 소리다

 

손택수, 호랑이 발자국, 창작과비평사, 2003년 초판 3쇄. 99쪽.

 

서로 밀쳐내는 탁구공이 아니라, 너에게 이르라고 보내는 탁구공 소리다. 도(道)를 서로에게 보내는. 받기 싫어서가 아니라 네가 먼저 받으라는.

 

좋은 것을 나 먼저 갖지 않고 다른 존재에게 먼저 보내는 그런 마음, 그런 행동. 어쩌면 시인은 통도사에서 빗소리를 통해 그런 마음을 엿보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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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7 17: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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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7 1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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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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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될 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다시 말이 칼이 되면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라는 말이 있듯이.

 

혐오표현은 말이 칼이 되는 것이다. 상대를 해치려고 입에서 나가는 말들이 바로 칼이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또는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칼이 된 말을 쓸 때가 많은데, 이것들이 바로 혐오표현이 지닌 위험성이다.

 

왜 그런 표현이 위험한지, 왜 그런 표현이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고, 상대를 움츠러들게 하고, 상대로 하여금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못하게 하는지 자신은 생각도 못하고 한 말이 혐오표현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부정한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야 하면서. 하지만 혐오표현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 말은 말하는 사람의 입을 떠나는 순간 사회적 존재가 된다. 이렇게 사회적 존재가 된 말이 칼로 작동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혐오표현이다.

 

그러니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해서 해야 할 일이다. 자신이 쓰는 표현이 혹 소수자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닌지, 우리가 흔히 자라면서 들어왔던 말들 가운데 혐오표현이 꽤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말이 칼이 되지 않을 수가 있다.

 

지금 자신이 뱉은 말이 얼마나 날카로운 칼인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칼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말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책. 바로 이런 책. "말이 칼이 될 때"

 

이 책은 혐오표현에 대한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혐오표현이 무엇인지, 그리고 혐오표현이 왜 문제인지, 또 혐오표현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지, 혐오표현을 억제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서 고민한 내용을 정리해주고 있다.

 

혐오표현을 처벌하는 것과 표현의 자유가 상충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리해주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혐오표현이 상당히 많이 나돌고 있는데, 여전히 이들을 처벌하는 법조항은 없다.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여러 나라 사례를 들고 있는데, 이들을 참조해서 우리나라에서도 혐오표현을 막을 방법을 법이나 제도 또는 사회, 문화적인 압력을 통해서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는 상대를 죽이겠다고 덤비는 사람에게 행동의 자유가 있으니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니까.

 

그만큼 혐오표현은 상대의 목숨을 위협하기까지 하는 아주 위험한 흉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혐오표현인지, 왜 혐오표현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서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혐오표현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표현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가 있고.

 

우리 사회의 관습이라는 말로,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말로 합리화 될 수 없는 것이 바로 혐오표현이다.

 

차근차근 혐오표현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한 말과 자신이 지닌 생각이 혐오표현에서 얼마만한 거리에 있는지 생각하면 된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이 점을 명심하면 된다. 내가 한 말이 칼이 되면, 그 칼은 언젠가는 다시 내게 돌아온다. 왜냐하면 그 칼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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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를 읽으면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자꾸 생각났다. 농촌이라는 장소.

 

  젊은이가 살아가야 할 장소가 바로 농촌이라는 것. 이번호 제목은 '농본주의가 세상을 살린다'다.

 

  영화에서는 농촌이 그들을 살린다. 그렇게 농촌은 젊은이들을, 노인들을 살린다.

 

  녹색평론에서 농본주의를 주장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제 4차산업혁명이라고 호들갑들을 떠는데 인공지능은 우리들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뺏는다는 것.

 

기계화된 사회에서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살아갈 장소는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농촌일 수밖에 없다.

 

자신들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 농사다. 그래서 우리는 농본주의가 세상을 살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농본주의다. 단순한 농업이 아니다. 이번 호에서도 산업농, 기업농과 소농을 비교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농본주의는 소농이다. 소농들이 1000명 농촌에 있는 것이 대농, 기업농 100명이 있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

 

우리들 생명을 이어가는 데는 이런 소농들이 필요하다는 것. 소농들도 관행 농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 농업을 해야 한다는 것.

 

단지 유기농업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함을 이번 호를 읽고 깨닫게 되었다. 농약과 같은 화학제품을  안 쓰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된다는 것. 생태순환농사의 길로 가야 한다는 것, 그것은 바로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농본주의다. 정치권이 어느 정도 민주적이 되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정치가 필요할 때다.

 

성장은 갈수록 줄 것이라는데 세계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면 성장이 안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는 바로 농업에서 시작해야 하고, 기업농이 아닌 소농, 생태 순환이 되는, 서로 나눌 수 있는 그런 농본주의가 확립되어야 우리가 지속가능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농업에 관한 제대로 된 정책을 마련할 때다. 녹색평론에서 주장하는 '농민기본소득'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

 

지금 이대로 농촌이 죽어간다면 우리의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생태순환농사를 짓는 소농들이 농촌의 주축이 되기 위해서는 '농민기본소득'은 필수다.

 

그런 정책에 대해 많이 고민해봐야 한다.

 

여기에 이번 호에서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대해서 짚어보고 있다. 일본 근대화의 계기... 일본인들은 메이지유신을 자랑스레 생각하고 있다는 것, 메이지 유신과 그 뒤 침략전쟁을 구분하고 있다고 하는데...

 

하지만 녹색평론 이번 호에서는 메이지 유신에 이미 주변 국가에 대한 침략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역사에서 메이지 유신과 그 뒤의 행동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된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글들을 읽으며 일본인들이 정말로 잘못 알고 있어서 지금처럼 행동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육의 중요성..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메이지 유신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 정책을 펼쳐 우리나라 철강산업도 된서리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어디 철강산업뿐이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우선 우리가 먼저 추구해야 할 정책이 무엇일지, 우리의 생존, 생활을 위해서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 우선 순위에 농업이 있어야 함을 이번 호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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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4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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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4 1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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