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오늘'이라는 꼭지에는 두 개의 글이 있다. 두 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 진다.

 

  소위 촛불 정권이라는 이번 정권에서 도대체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부패한 정권을 시민들의 힘으로 몰아내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해 냈는데, 그 과실을 기존 정치권이 그대로 따먹어 버린 현실.

 

  쌍용차 해고자들의 복직을 약속했음에도 여전히 복직이 되지 않은 사람이 많고, 해고자들은 여전히 죽어나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번 호에는 벌써 30번째 죽음이 이야기 되고 있다.

 

복직이 된 사람도 어렵게 살기는 마찬가지... 누구는 복직이 되고 누구는 복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해고자 출신들이 일을 잘 안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죽어라 일만 해야 하는 현실. 도대체 무엇이 나아졌단 말인가.

 

잘못은 경영진들이 해놓고, 책임은 노동자들이 지는 구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촛불이 정권만 바꾼 것이 아니길 바랐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쌍용차만큼이나 암담한 현실이 바로 제주 강정이다. 강정 주민들은 여전히 분열되어 있고, 이들이 받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있다. 비록 대통령이 사과 발언 비슷하게 했다고 해도, 마음 속에 응어리진 상처들이 쉬 사라지지는 않을 터다.

 

여기에 관함식이라고 해서, 우리는 욱일승천기를 단 일본 군함들이 참석하느냐 마느냐만 문제 삼았는데, 강정 사람들은 왜 관함식을, 군함 사열식을 강정에서 하느냐고... 민관이 함께 사용하는 기지가 아니라 아예 군사기지로만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관함식을 평화를 추구하는 강정에서 해야 했을까? 그것도 처음에 주민들이 반대를 했음에도, 청와대 관계자들이 계속 내려와 주민들을 설득해 처음에 주민투표로 결정했던 것을 뒤집도록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이 나아졌는가? 여전히 시민들을 정치 주체로 여기지 않고 자신들이 결정한 것을 따르도록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생각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권이지 않나 싶다.

 

이번 호에서 문재인 정권에 경제 정책에 대해서 짚어보고 있다.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으니... 우리는 여전히 어려운 경제에 허덕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어떤 경제 정책을 펼쳐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이 이번 호에 실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정치나 경제나 조금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아직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축인 교육에 대해서 이번 호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교육 분야 역시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촛불로 정권을 바꾼 지 두 해가 되어 간다. 두 해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지, 무엇을 전 정권과 다르게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삶이 보이지 않겠는가. 정치권에 기대만 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우리 목소리를 내야 한다. 조금이라도 삶이 좋은 쪽으로 변해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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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3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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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3 1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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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3 1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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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3 13: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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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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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건축은 필수 요소다.

 

의식주든, 식의주든 주는 빠지지 않는다. 집, 거주할 곳, 이곳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건축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구상에 존재했을 때부터 건축은 우리와 함께 했다.

 

이런 건축을 토목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건축은 토목과 달리 우리 삶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래서 학교 건축부터 시작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교육을 하는 공간에 대한 이해 없이 지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교 건축, 답이 없다.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창의성 제로(영)에 가까운 학교 건축에서 무슨 창의 교육을 한다고 하는지, 저자는 답답해 한다.

 

교도소에 가두어 놓고 너희들은 창의적인 훌륭한 인재야 라고 백날 말해야 아무 소용이 없다. 학교 건축으로 아이들 창의성을 다 죽여놓고 그런 기대를 하는데 얼토당토 않은 소리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양계장에서 닭을 키워놓고 그 닭에게 넌 왜 독수리가 못 되었냐고 야단치는 격이라는 것이다. 학교 건축, 천편일률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규격화된 건축. 네모 속에 갇힌, 담장 속에 갇힌, 그리고 자연과 철저하게 격리된 그런 건축물 속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인간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학교 건축에서 시작하여 다른 건축으로 넘어가는데 답답함이 가중된다. 우리나라 건축이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 건축만큼 이 책에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 공원에 대한 생각이다. 공원에 대한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서울만 해도 많은 공원이 있는데 이 공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용산가족 공원이라고 해도 걸어서 이곳에 가는데는 힘이 많이 든다. 걸어서 갈 수 없는 공원. 이런 공원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지 못한다.

 

공원이 공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공원에 담장이 많다. 마치 구획을 짓듯이 담장이 자유로운 접근을 막고 있다. 아파트 단지들도 자신들의 담으로 사람들을 격리시키는데, 이렇게 길과 격리된 공간은 사람들을 끌어모으지 못한다고 한다.

 

공원이 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 또 다른 공원으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곳, 이동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으로 건축을 해야 한다. 이런 건축이 사람들 삶 속에 들어온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배려하고 사람과 함께 있는 건축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하는 건축을 저자는 주장한다. 건축에서 자연을 내몰면 우리 삶이 피폐해진다. 인류의 탄생부터 우리는 자연과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하여 접근하기 어려운 큰 공원보다는 접근하기 쉬운 작은 공원 여럿을 만드는 것이 더 좋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옳은 말이다.

 

이 책은 건축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인류 문명의 발달도 건축의 역사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건축물을 통해 권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다른 학문과 융합한 건축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읽은 재미도 있고, 그동안 놓치고 있던 것을 깨달을 수도 있고, 우리 주변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도 해준다.

 

특히 우리와 밀접하게 관련있는 학교와 공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저자가 답답해 하듯이 이렇게 건축을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정책을 펼 수 있는 사람들이 귀를 막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잠시 쉬면서 뒤를 돌아보고 숨을 고르고 우리가 살고 싶은 장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점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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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10-2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막 읽기 시작한 책이라,^^ 더욱 반가운 리뷰.

kinye91 2018-10-22 14:28   좋아요 0 | URL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우주(宇宙)


책상 위

물 한 방울

넓게 넓게

팽창을 하면

존재는 공(空)으로,

공(空)은 무(無)로,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유(有)는 무(無)고

무(無)는 유(有)임을 증명하는

책상 위

물방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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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돈을 달랑께
박경희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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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폐가'가 떠올랐다. 사람이 살지 않아 서서히 스러져 가는 집... 담장이 허물어지고 벽이 허물어지고 결국 기둥마저 썩어들어가는 폐가.

 

스산한 바람이 불면 휑~ 마음에 구멍이 뚫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폐가. 이런 느낌을 주는 이 책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어떤 글은 소설처럼, 어떤 글은 수필처럼 느껴지는데, 대부분 공간적 배경은 농촌으로 같다. 시간적 배경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기는 하지만 퇴락해가는 시골의 모습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다.

 

앞부분에서 자연재해나 사고로 돌아가시는 어른들의 모습이 마음 아프게 표현되어 있으니 우리들 농촌이 어떻게 쇠락해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여기에 시골로 돌아온 자식들도 변변찮은 삶을 살아간다. 그만큼 농촌은 살기에 퍽퍽하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그 자리에 이제는 번듯한 아파트가 들어서지만 그곳에 본래 살던 사람은 들어가 살지 못한다.

 

이들은 이제 고향을 잃는 것이다. 이들만 고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고향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모습을 담담하게 그러나 너무도 슬프게 표현되어 있는데, 사람들 삶이 꼭 슬픔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듯이 그런 슬픔 가운데서도 시골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이 표현되어 있어 조용히 웃음을 머금게 되기도 한다. 이를 해학이라고 해도 좋다.

 

이런 해학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작가는 산문같은 소설이라고 하고 있다)이 '말복'이라는 소설이다.

 

옻 알레르기가 있는 배상 씨가 겪는 일이 참 해학스럽게 표현되어 있어 밖으로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시골살이가 팍팍하다고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인해 웃음을 지닐 수도 있음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시골은 힘들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 최신식 에어컨을 설치한 아들에게 차라리 돈으로 주지라고 타박하는 어머니... (차라리 돈을 달랑께-화살나무)

 

그렇다. 이렇게 시골의 모습을 서술하면서 나무 하나씩 연결시키고 있다. 바로 집에 또는 마을에 있는 나무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 일원인 것이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만큼 나무들도 죽어나가고 어떤 이는 나무에 목매달기도 하니... 나무와 사람들이 하나로 함께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함게 쇠락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 시골은 더이상 쇠락해가서는 안 된다. 60이 되어도 청년 소리를 들어야 하는, 하다못해 나이트클럽도 50은 어리다고 들어갈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오는 이야기도 있으니(나이야가라 클럽? - 상수리나무)...

 

젊은 시골이 되어야 한다. 시골 사람들도 생활에 문제가 없게 해야 한다. 그것이 개발이 아니라, 그들이 자연과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을!'이라는 주장도 있지 않은가. 적어도 농민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농촌이 또 시골이 좀더 젊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농촌을 지금처럼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슬프게 때로는 웃으며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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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0 1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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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0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침 가려운 데가 있어 긁고 싶었는데, 어떻게 긁지 하는 생각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순간...

 

  민들레 119호가 왔다. 그리고 아픈 데를 긁을 수 있게 됐다. 시원하게. 완전히 가려움을 없애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긁을 수 있었다는 데 만족한다.

 

  가려움이 세 군데였다. 하나는 '페미니즘'이었고, 다른 하나는 '통일'에 관한 것, 또 하나는 요즘 유행한다는 '청소년들의 자해 - 칼로 손목 긋기'였다.

 

  이번 호 기획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다. 그렇다. 모든 운동은 모두를 위해야 한다. 소수를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를 위한다고 겉으로는 말한다.

 

정당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들과 이념, 이익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당이지만, 표면적으로는 모두를 위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모든 운동은 모두를 위한 운동이다. 아니, 모두를 위한 운동이어야 한다.

 

이때 모두는 구성원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다. 모두가 만족하는 일, 그런 일이 있을까? '모두'라는 말을 강조하다 보면 전체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모두를 위한'은 어떤 뜻을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가? 이때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에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 약한 사람, 가장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사회에서 가장 힘든 자리에 있어 고통을 받는 사람을 위한 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적어도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이미 너무도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 99개를 가진 사람이 하나를 갖지 못해서 억울해 하는 사회가 아니라, 99개 가진 사람이 하나도 가진 것이 없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모두를 위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역시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들으면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이 여성들만을 위한 운동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알게모르게 여성들이 받아온 차별들을 없애간다면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모두를 위한' 운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다른 존재를 배제하지 않는다. 함께 가려 한다. 물론 배제해야 할 존재는 반드시 배제해야 한다. 함께 가야 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함께 가는 것은 아니다.

 

약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차별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페미니즘이 이렇다면 통일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통일이 아니라 분단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 통일이 반드시 평화와 함께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들에 이번 호에서 이 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평화로 가는 길을 먼저 내는 것, 이 평화에 경제가 무시될 수 없으니 어떻게든 남북이 상생하는 경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 그리고 특정 단체들만의 교류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교류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모두를 위한 통일'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을 화두로 삼으면 우리나라에서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청소년들이 생각난다.

 

많은 청소년들을 자기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성적으로 구분된다. 이럴 때 온전한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청소년들, 그러나 소통이 되지 않는 이 사회에서 그들은 자신의 몸에 관심을 기울인다.

 

몸에 상처를 내는 순간, 자신의 몸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는다. 그렇게 손목 긋기가 시작된다. 이렇게 손목을 긋는 모습을 남들이 보는 순간 그는 관심의 대상이 된다.

 

성적밖에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자신이 온전한 몸으로 관심을 받는다. 그것이 비록 우려와 걱정만 넘치는 관심이지만... 어른들에게 이런 관심은 온전한 관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관계를 맺고 싶다... 이번엔 자해를 한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이 공감을 해온다. 관계가 만들어진다. 비록 소셜미디어에서이지만... 이렇게 청소년들의 자해가 유행처럼 번져간다.

 

이 이면에는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게 만든 우리 사회 구조가 있다. 청소년들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는 공부말고는 모두 하지 마라, 하니 말라는 금지뿐이지 않은가. 자기 몸조차 남들 통제에 맡겨야 하는 청소년들이 몸부림치는 것이 바로 손목 긋기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들불처럼 번져가는 손목 긋기에 대해 이번 호에서 두 글이 실려 있다. (청소년 자해가 늘고 있다- 편집실, 응답 없는 시대의 행위, 청소년 자해-이수련)

 

두 글을 읽으며 다음 호에서는 좀더 논의된 글들이 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청소년들 개인의 문제로만 넘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마음 속 가려움, 민들레가 긁어주고 있다. 가려움을 완전히 가시게 하는 것은 이제 내 몫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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