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줘, 제발 주니어김영사 청소년문학 1
엘리자베트 죌러 지음, 임정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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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토록 끔직한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니... 어른들은 전혀 모르거나 또는 모른 채 하거나, 교사들은 알려고 하지 않거나 가리거나 그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니.

 

독일이 배경일텐데, 교육에 관해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앞서가는 그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아니 더 끔찍한 학교 폭력이 일어나다니...

 

다르다는 이유로, 별로 힘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받는 경우는 학교 교육이라는 제도가 생긴 이래로 계속 있어 왔다.

 

공동체 문화가 발전했던 예전에도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괴롭히는 존재는 어디에나 있었다. 다만 그것이 상대방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이고 강도가 점점 세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빵셔틀이라는 말이 공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을 주고 빵을 사오라고 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정도. 흔히 군대식 농담이라고 하는 100원주고 1000원짜리 빵을 사오고, 거스름돈 500원을 받아오라는 빵셔틀도 있었다고 하니.

 

학교라는 공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지금도 간간이 학생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또 폭력으로 숨졌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여전히 학교 폭력은 없어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건재하고, 해마다 소위 학폭이라고 하는 학교폭력대책위원회 회의가 열려 많은 학생들이 징계를 받고 있다. 문제는 이 학폭으로 인해 학교 교육이 망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잘못한 학생을 처벌해야 하는데, 가해 학생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난다. 또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건다. 학교는 뒤숭숭해진다. 그동안 피해 학생은 어떤 보호 조치를 받기 힘들다. 왜 판정도 나지 않았는데 그러느냐고 또 시비를 걸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 학생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이런 상황에서 가해 학생들은 다시 버젓이 학교에 나오게 된다. 피해 학생이 함께 있는 학교에.

 

이때 피해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일. 학교에 기대할 것이 없고, 부모에게도 다른 어른들에게도 기대할 것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두 극단밖에 없다.

 

하나는 자살로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 또다른 하나는 가해 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

 

자살이나 살인이 다른 원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학교 폭력 희생자가 해결할 길이 없을 때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가 너무도 잘 나와 있다.

 

자신의 무력감, 두려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 이런 상태에서 우선 도피를 하지만 가해 학생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피해 학생이 가는 곳마다 있기 때문이다.

 

가장 안전하다는 집으로 도피해 컴퓨터 게임에 빠져든다. 게임에서는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 학생들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아무리 보복을 해도 그들은 다시 되살아난다. 현실에서 괴롭힘이 없어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상대에게 맞고, 게임에서 상대를 죽이게 되는 일이 반복이 되지만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고 점점 커져만 간다. 가해 정도도 점점 심해진다. 불법까지 저지르게 한다. 안 하면 가혹한 처벌이 따른다.

 

결국 자살을 생각하지만 왜 나만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괴롭힌 존재도 같이 데려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면 그때는 살인을 계획하게 된다. 계획에서 실행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 현실에서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피해자는 극단으로 가게 된다. 더이상의 선택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학교 폭력이 극한으로 치달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이 극단까지 가게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관심, 전폭적인 이해. 말은 쉽다. 하지만 서로 살기 힘든 상황에서 별다른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이 일은 참으로 힘들다. 힘들지만 해야만 할 일인데...

 

가해 학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유가 있다. 그들 역시 피해자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치유를 해야 한다. 이들의 행동을 알게 되었다면 문제를 개인에게 또 가정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사회가 함께 치유에 참여해야 한다. 사회 분위기가 포용적인 분위기여야 하고, 폭력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분위기여야 한다. 여기에 피해자나 가해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하면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가해자와 피해자, 동전의 양면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해서, 피해자가 상처를 치유받고 존엄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가해자에 대한 치유 역시 함께 진행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힘든 일일지라도.

 

또한 학교 폭력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학교 폭력은 사회 전체의 문제다. 사회가 껴안고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말이다. 그런 점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책임을 특정한 개인에게만 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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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결딴낸 우리말
권오운 지음 / 문학수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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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다. 읽으면서 내내... 도대체 이 시에서 어떤 말이 잘못 쓰였단 말이지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읽고 또 읽어도 내가 알고 있는 어휘 목록에서 잘못된 것을 찾아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렇게 시에서 잘못된 어휘들을 잘 찾아내다니... 이렇게 잘못 쓰인 언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시를 감상하기보다는 먼저 마음의 문이 닫히고, 벽이 쌓여 시를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말이 잘못 쓰이고 있는 현실을 너무도 안타까워 한다. 책을 읽다보면 이상하게 저자의 목소리와 이오덕 선생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리는 듯하다.

 

제발 우리말을 제대로 쓰라고, 잘 쓰라고.

 

그런데 어떻게 해야 우리말을 잘 쓰지, 제대로 쓸 수 있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좋은 글을 많이 읽으라는 것으로 대체해야 하는데...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적확한 언어로 쓰인 글인가? 아니면 언어의 적확성을 떠나 마음을 울리는 글인가? 이런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사전을 통째로 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여기에 저자는 사전도 비판을 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바른 우리말, 고운 우리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저자처럼 어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믿을 만하다는 작가들이 쓴 글에서도 잘못 쓰인 어휘들이 수두룩하니 우리말을 잘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학교 다니면서 국어 시간이 가장 많았고, 중요하다고 강조도 했는데, 국어 시간에 배운 어휘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국어 시간에 표준어로 수업을 한다고 하는데,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쓰는 표준어가 얼마나 될까? 극도로 적은 양의 어휘들만 배우고 사용하고 학교를 마치지 않았는지.

 

일상에서 쓰는 말이 어휘의 보고라는 말이 있는데, 일상에서 쓰는 말 중에 잘못 쓰고 있는 말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말을 시에 쓰고 있는 시인들이 저자의 비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여러모로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고 잘 써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겠는데, 우리말을 어떤 식으로 배우고 익히고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고 있다. 저자의 책만 읽으면 되나?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건 저자도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고.

 

결국 다양한 글을 읽고 다양하게 쓰인 어휘들을 비교해보는 경험을 해야 할텐데, 갈수록 쉬운 어휘만 쓰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만을 앍고, 짧고 명확한 문장만을 다루고 있는 교과서로 배운 사람들에게는 이도 힘든 일이다.

 

어휘에 대한 생각을 늘 하고 있어야만 잘못 쓰인 어휘를 찾아낼 수 있고 고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엔 청소년들은 입시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여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고, 어른들은 먹고 살 걱정에 어휘에 대한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이래저래 우리나라 말들이 결딴나고 있는 현실인데, 작가들이, 언어로 먹고 산다는 사람들이 우리말을 살려내는, 더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한숨만 나오고 말았으니...

 

그렇다고 저자가 한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잘못 쓰인 어휘도 시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시인들이 의도적으로 낱말을 만들거나 틀리게 쓰기도 하고.

 

하여 시에서 하나하나 낱말에만 매달릴 수는 없지만, 저자의 주장을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는 시인들은 언어에 대해 아주 인색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깐깐하기 때문이다.

 

자기 감정에 맞는 언어를 고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는가. 그래서 저자는 시인들에 대해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는지도 모른다. 시인들마저 너무도 엉뚱한 실수를 저지른다면 우리말은 결딴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써서 경종을 울리는지도 모른다. 우리보도 좀 생각을 하라고. 우리가 쓰는 말에 관심을 가지라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우리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알고 있는 우리말 실력이 너무도 형편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끄러움은 성찰을 이끌어내고, 성찰은 발전으로 가게 해준다고 그나마 위안을 할 수밖에.

 

가령 이런 말 '승부욕' 정말 많이 쓰는 말 아닌가. 승부욕이 강하다. 승부욕이 없다. 이렇게 잘 쓰고 있는 이 말이 잘못된 말이라니... '승부(勝負)'라는 말이 '이기고 짐'이라고 하니 여기에 바란다는 '욕(慾)'자를 쓰면 이기고 짐을 바라는 마음이라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강하다, 없다라는 말과 함께 할 수가 없다. 조심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굳어져 있는 말인데, 이 말을 어떻게 고쳐 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하는 글들이 꽤 있었는데, 우리말이 결딴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좀더 관심을 가지고 글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들에게 발을 거는 행위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런 지적들을 통해 우리말이 제대로 쓰이도록 해야 한다는 저자의 열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우리말이 결딴나지 않게 하는 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덧글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하나. 언어에 대해서 그리도 명확하게 주장하는 저자가 '고희'에 대한 설명에서는 내가 납득할 수가 없다.

 

고희(古稀), 나는 지금까지 일흔 살로 알고 있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온 말이라고... 만 70이 아닌 걸로 알고 있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일흔 살로 나오고.

 

237쪽. 고희(古稀)" '고래(古來)로 드문 나이'라는 뜻으로 일흔한 살을 이르는 말.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에 나오는 말  이라고 나온다. 어째 좀... 오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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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부욕(勝負慾)이란 말이 과연 잘못된 말일까?
    from 마음―몸―시공간 Mind―Body―Spacetime 2018-11-19 13:30 
    가령 이런 말 '승부욕' 정말 많이 쓰는 말 아닌가. 승부욕이 강하다. 승부욕이 없다. 이렇게 잘 쓰고 있는 이 말이 잘못된 말이라니... '승부(勝負)'라는 말이 '이기고 짐'이라고 하니 여기에 바란다는 '욕(慾)'자를 쓰면 이기고 짐을 바라는 마음이라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강하다, 없다라는 말과 함께 할 수가 없다. 조심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굳어져 있는 말인데, 이 말을 어떻게 고쳐 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 k
 
 
2018-11-19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9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9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9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었던 시간

 


 

이제는 멈춘

 

능내역에서

 

한 잔의 막걸리를 마시다

 

문득 왜 능내지

 

능 안이라니, 이런,

 

하며 양수역까지 걸어가

 

전철을 타고 오는 길

 

서빙고

 

얼음역에 도달하기 전

 

차가 얼어붙었다

 

사고가 났다고

 

60년을 살았던 시간이 얼며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얼려

 

전철 안에서

 

기다리던 시간

 

남은 시간을 다른 사람

 

시간으로 가려 하는가

 

얼음역에서 능 안으로 가려 하는가

 

내 시간을 능 안에서부터 얼리려 하지 말라고

 

누군가가

 

대신 자신의 시간을 얼려버렸던가

 

꽁꽁 언

 

이제는 녹일 수 없는 시간을

 

경험하라고

 

우리들 시간도 잠시 얼려두었던가

 

언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그 시간을 잘 녹여 쓰라고

 

그렇게 온몸으로 알려주려 했던가.

 

능내에서 서빙고역으로 오던 길

 

순간 멈췄던 시간

 

순간 얼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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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균형 우리문고 10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이경옥 옮김 / 우리교육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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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균형이 어느 순간 기우뚱 기울어진다면? 견디기 힘들어진다. 삶을 지탱하는 요소들이 많지만, 청소년기 때는 친구들이다.

 

친구들이 삶의 균형을 잡아준다. 오죽하면 청소년기 때는 고민을 털어놓을 대상이 가족보다는 친구라고 하겠는가. 그만큼 친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친구 관계가 어그러지면 그때부터는 지옥이 시작된다. 꿈을 키우는 학교는 죽음을 생각하는 학교가 되고, 끼를 발산하는 학교는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되는 학교로 바뀌게 된다. 처절하게 삶이 불균형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딱히 어떤 이유를 발견하는 것도 아니다. 이유가 명확하지도 않다. 그냥 어느 순간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냥 무시당하는 정도를 넘어서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없는 존재가 아니라, 괴롭힘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것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참 찾기 힘들다. 많은 청소년들은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이 소설에서 '마스무라 미즈에'가 택한 길이다. 미즈에는 투신을 한다. 그러나 죽지 않는다. 투신을 하면서 미즈에는 후회를 했다고 한다. 그 순간, 자신의 삶을 그렇게 내몬 자신에 대해. 그래서 미즈에는 다른 삶을 살기도 한다. 당당하게.

 

이런 미즈에를 보면서 주인공은 '나'도 용기를 낸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렇게 자기 삶에서 균형을 찾아가려고 한다.

 

여기에 한 사람이 등장한다. '사라'라고 하는 어른. 이 어른으로 인해 나는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 비록 사라가 어떤 고민에 빠져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사라를 만나면서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끼고 서서히 자신의 삶에서 균형을 찾아간다.

 

그러나, 사라 역시 삶에서 균형을 잃고 있기는 마찬가지. 어른이라고 완벽하게 삶의 균형을 유지하겠는가. 자신 역시 제 삶의 균형을 찾으려 몸부림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이런 불균형은 일탈 행동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만나게 되는 일탈행위들을 그냥 도덕적인 잣대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그 행동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소설에서는 그 점을 보여준다. 사라나 나나 결국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읽어내야 한다. 자신들이 일탈행위를 하는데, 그 일탈행위가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삶의 균형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 그렇게 찾기까지 지켜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소설에서는 초록아줌마라는 신비한 존재가 나오는데, 그런 존재를 생각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초록아줌마가 아니더라도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불균형에 처해 있던 삶이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균형을 찾아가야 하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온전히 나를 받아들여주는 존재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경쾌한 문체로, 짧은 문장들로 쓰여 있어 읽기에 편하다.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문체로 이끌어간다고나 할까. 덕분에 청소년들이 읽기 편하다. 읽으면서 자신의 삶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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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형 대표시 선집
이기형 지음, 임헌영.맹문재 엮음 / 작가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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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기형 시인이 살아있었다면 올해 얼마나 기뻐했을까? 민주정부 10년이 끝나고, 다시 과거로 회귀하던 그 시절, 결국 새로운 전환을 보지 못하고 90이 넘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인.

 

젊은 시절 여운형에게 감화 받아 그와 함께 일을 했지만, 여운형이 암살당한 뒤 글에서도 멀어졌던, 그러다 60이 되어가서야 다시 문학을 하게 된 시인.

 

젊은 시절, 뮤즈의 영감을 받아 왕성하게 시를 써나가는 다른 시인들과 달리 이기형 시인은 이순(耳順)이 되어서야 왕성한 시작 활동을 했으니.

 

많은 시집을 냈지만, 그 시집들은 통일로 귀결이 될 수 있으니, 북쪽에 어머님을 두고 온 시인, 그리고 분단의 현실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던 시인.

 

남북이 하나되길 바랐던 여운형을 따랐던 시인. 그래서 그는 여운형을 기리는 시도 꽤 썼는데...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올 4월 27일. 역사적인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역사적인 날이다.

기억해야 할 날이다.

아무 것도 없었다.

살짝 솟아나온, 한 걸음으로도 넘을 수 있는

결코 장벽이 아니었다.

서로 얼굴도 마주볼 수 있는

언제라도 넘을 수 있는

죽어야, 죽여야 한다,

욕만 하던, 총을 쏘던

피냄새가 진동하던

남북관계가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되어

우리들을 가로막았다.

철조망도 아니다.

지뢰도 아니다.

우리 마음이다.

좌와 우, 왼쪽, 오른쪽

세상, 어느 쪽에 서 있어도

가족은 가족, 민족은 민족

사람은 사람

똑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 없기에

각자 자기 편한 자리에 서 있을 뿐

그 자리에 섰다는 이유로

죽일 놈이 될 이유는 없다

쫓아내야 할 놈이 될 이유도 없다

이곳 저곳 함께 있어야 더 잘 살 수 있으니

보이지 않는 선,

이념

제 머리 속에서 나온 언어가

단단한 장벽이 되어

서로 밀어내고 막아내고 있는데,

머리가 아닌 발이

한 걸음만 내디딘다면

이 장벽은 아무 것도 아니다.

북측에서 내려온

김정은 국무위원장

환하게 웃으며 한 걸음 내디딜 때

남북을 가르던 장벽은

하나의 선에 불과했다

언제든, 누구든 넘을 수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줬다.

손 잡고 다시 한 걸음

북측으로 넘어감으로써

넘어왔다 넘어갔다 넘어왔다

이 말이 아니어야 한다

그냥 왔다갔다 할 뿐.

왔다갔다 할 수 있을 뿐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고

함께 나무를 심으며

이젠 전쟁이 아닌 평화를

비방이 아닌 대화를

적이기보단 한 민족임을

서로 보여주었다

남과 북 정상이

분단 상징, 판문점에서

어떤 장벽도 우리 앞에선

우리 발걸음을 막을 수 없음을

그렇게,

북한 정권이 수립되고

전쟁이 끝난 뒤

북쪽 최고지도자가

남쪽에 온 경우는 이번이 처음,

그것도 걸어서.

판문점, 남쪽에서

회담을 하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이젠 서로 대화하자고

이젠 서로 왕래하자고

전쟁이 아닌 평화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그렇게, 하루,

우리는 웃으며

남북 정상이 만나는 모습

남북 정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나야 할 미래를

그날 보았다

한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나라가 됨을 인정하지 않던

-그럼에도 유엔엔 동시 가입을 했으니

하지만 삼국시대도, 후삼국시대도 겪었떤

우리 아닌가.

좀더 길게 함께 공존해야 한다면

두 나라면 어떠리

차라리 두 나라가 되어

친밀하게 교류하는 두 나라가 되면

여권만 있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 되고,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될텐데

실질적 섬나라가 아니라

대륙으로 뻗어갈 수 있는

기차 타고 유럽으로 갈 수 있는

나라가 될텐데

이산가족의 아픔도 많이 사라질텐데

북한 어느 곳도 못 가볼 곳이 아니고

남한 어느 곳도 못 와볼 곳이 아니니

언제든, 누구든 만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을텐데

괴뢰가 아니라

정당한 나라 대 나라가 되면

서로 더 많은 교류, 협력이 이루어질텐데

자주 만나다 보면

이젠 더 정도 들고

차이도 많이 없어져

-통역 없이 정상 회담을 하는,

미묘한 어감 차이를 서로 알 수 있는

대화 상대-

통일이란 길에 더 빨리 들어설텐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하며

우리 아이들이 총을 억지로 들지 않을

그런 시대가

'국가보안법'이라는 유령이

이제는 활보하지 못하는

밝은 대낮 세상이 되어야 함을,

두 정상 환한 미소

속에서 보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더 건강해서 오래

그 자리에 있어야

-세상에 이거 국보법 위반 아냐?

남북 화해 분위기가 더 오래 가고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가을에 평양에 오라는 초청을

흔쾌히 수락한 문 대통령이

다시 다음해 봄에는 서울에 오라고

그래서 봄엔 서울서,

가을엔 평양에서

한 해 두 번 남북 정상들이

정기적으로 만날 수만 있다면

이 만남들이

다른 만남들을 이끌어 낼 수 있을텐데

더 많은 만남들이 모여

통일 물결이 될 수 있을텐데

한 밤의 꿈은 아닐지니

이건 우리가 꾸는 낮꿈

희망이 실현되는 첫걸음일지니

수구들이 뭐라 해도

뚜벅뚜벅 제 길을 가야 한다

2018.04.27.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그 날

함께 선을 왔다갔다 한 두 정상

장벽이 우리를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준

별것 아닌 그 장벽을

머리가 아닌 발이 너무도 쉽게

넘을 수 있음을

우린 보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발임을

머리는 잠시 쉬어도 됨을

그날

우린 축배를 들었고

우리나란 조금 더 가벼워지고

조금 더 밝아졌다

수구들이 활개치기 힘들게

유령이 나올 수 없게

그렇게 밝아졌다.

 

이런 생각. 이기형 시집을 읽으며 다시 떠올랐다. 무려 세 번이나 정상회담을 한 올해. 통일로 한 발짝 더 다가간 올해. 적어도 남북 군사 긴장만은 많이 해소된 상태. 그렇게 시인이 꿈꾸던 통일 시대로 우리가 들어섰다는 생각을 한다.

 

다양한 시들이 있다. 마음을 짠하게 울리는 시도 있는데, 그렇게... 읽으며 통일을 생각한다. 시인이 보았던 6.15, 10.4 정상회담에 이어, 더 통일로 다가갔음을, 시인이 저승에서 활짝 웃으며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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