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이 낸 첫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시 하면 무언가 아름답고, 세련되고, 조금은 돌려 말하는 그런 표현방식을 택했다고 생각했는데, 장정일은 첫시집에서 직설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들이밀었다.

 

  특히 '낙인'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시에서 대중문화를 잘 융합시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음에 신선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그는 어느 한쪽에 자신의 생각을 고정시키지 않고, 기존 관념을 넘어서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시인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읽은 그의 시집은 달랑 두 권... 『햄버거에 대한 명상』과 『서울에서 보낸 3주일』이 다다. 소설도 썼지만 읽은 것은 없고, 장정일의 독서일기도 그냥 그런 책을 냈구나 하고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다 다시 그의 초기 시집에서 뽑은 시들을 엮은 선시집을 발견하고는 읽어야지 하는 생각에 중고서점에서 구입을 했다.

 

이 시집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현재는 절판된 『상복을 입은 시집』 (1987), 『서울에서 보낸 3주일』(1988), 『천국에 못 가는 이유』(1991)에서 가려 뽑은 것들이다. 여기 실린 시들이 내 시의 진면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세 시집 가운데서도 일부러 가장 '내 것'다운 것을 빼고 평이한 형식과 친근한 주제를 가진 것들만 골랐다. 그만큼 '늙어, 힘이 빠졌다'는 뜻도 되지만, 현대시의 쇄말성과 난해함을 씻어보자는 뜻도 있다. (120쪽) 

 

2005년이면 장정일이 1962년생이라고 하니 43-44세 정도의 나이다. 시인으로서는 중견 시인이 될 때인데, 그는 시에서 멀어졌다고 한다. 아마도 다른 글쓰기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고, 그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시귀'가 빠져나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절판된 시집들은 구하기 힘드니, 이렇게 그 시집들에서 자신이 뽑아서 실은 시들을 독자들이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이 시집은 시들 끝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았다. 왜 그런 시를 썼는지 알 수 있기에 장정일의 고민을 알 수 있어서 더 좋은 시집이다.

 

많은 시들 중에 '개'라는 시를 보자. 어떻게 해석해도 좋다. 시 끝에 있는 시인의 말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개

 

  코가 길고 귀가 껑충한

  엄숙하고 예절바른 개들의 사회에서

  함부로 으르렁대고

  함부로 이빨을 드러내 보이고

  함부로 짖고 물어뜯으며

  함부로 씹하고 사생아를 낳고

  하루 종일 놀고먹으며 빈둥대는 개를 가리켜

  저 개는 인간 같이 더러운 성질을 가졌군

  하고……

 

나는 개를 좋아한다. <벤지>라는 영화도 몇 번이나 봤다. <아이 필 러브>라는 주제곡도 기억난다. 길에서 개를 보면 저절로 발걸음이 멈춘다.

 

장정일. 주목을 받다. 김영사. 2005년. 38쪽.

 

개만도 못한 * 이런 욕을 많이 하는데, 지금도 이런 개만도 못한 *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면 개들 처지에서는 인간 같은 개, 또는 인간만도 못한 개라는 말이 가장 심한 욕이 될 수도 있겠다.

 

개나 다른 짐승들, 또는 생명들에게 인간에 빗대어 비난하는 욕들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할텐데...

 

이 '개'라는 시를 보면 어려운 말 하나 없다. 그럼에도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쏙쏙 들어온다. 머리 속에서 계산을 하기 전에 이미 시의 내용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 이런 평이한 시. 그러나 할 말을 다 하는 시. 장정일이 우리에게 보여준 시들이다.

 

다른 많은 시들 역시 이렇듯 머리 속에서 한참 궁리하기보다는 마음으로 그냥 파고들어 온다. 쇄말시, 난해시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것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장정일이 쓴 시들은 이랬다. 그리고 그 시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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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3 - 승자의 혼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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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포에니 전쟁까지 치르면서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 이제 외부의 적은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적이 외부에 있었을 때 결속되었던 단결이 외부 적이 없어짐으로써 내부에서 적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향했고, 그로 인해 내부 결속이 깨지는 과정이 바로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이 3권은 그 과정을 다루고 있다. 세상이 변해가고 있는데, 정체(政體)가 경제를 따라가지 못하게 된 상황. 또는 사회개혁을 하지 않으면 로마에 멸망당했던 나라들과 같은 전철을 밟을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시대.

 

시오노 나나미는 이 권의 제목을 '승자의 혼미'라 붙였다. 이제 로마는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다. 강대국이 된 로마를 어떤 나라로 만들 것인가가 논의되기 시작하는 때. 이 때 등장한 형제가 바로 그라쿠스 형제다. 무려 9살 차이가 나는 형제라는데, 두 형제가 모두 평민을 대변하여 정책을 펼친다. 그러다 원로원 중심의 권력자들에게 살해당한다.

 

이들은 전쟁이 없는 나라에서 이제는 경제, 복지 쪽으로 눈을 돌리고, 가난한 사람들도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지 않으면 로마도 다른 나라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개혁을 추진한다. 그러나 개혁은 늘 방해를 받는다. 기득권 세력들에게 개혁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권리, 이익을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지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라쿠스 형제도 평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들은 결정적일 때 이 형제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라쿠스 형제에게는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을 비극으로 이끈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웠던 개혁정책들은 그들과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이어지게 된다.

 

형제가 죽은 뒤 마리우스가 등장하지만 정책면에서는 징집병을 지원병으로 바꾸는 것 외에는 별로 한 것이 없고, 그는 군사적으로 성공할 뿐이다. 그와 술라의 시대에 여러 정책들이 입안된다. 그 중에 하나가 동맹국 사람들에게도 시민권을 주는 것. 그라쿠스 형제가 처음 제기했지만 그땐 통과되지 못했던 법안이 이때 통과가 되고, 이것으로 인해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산다.

 

나나미는 이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건국하는 과정에는 어떤 나라도 이질분자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패권국이 된 이후에도 이질분자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국가는 드물지 않을까.' (142쪽)

 

이것이 과거에 일어난 일만이 아님을 최근 미국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주민의 나라라 할 수 있는 미국이 엄청난 장벽을 쌓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이래서 현재를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로마가 앞으로도 더 오래동안 지속되는 이유는 비록 동맹시 전쟁이라는 전쟁을 겪었지만, 이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다는 데 있다. 아직 로마는 발전할 여지가 더 있는 것이다.

 

형제의 개혁이 실패한 다음 원로원을 강화하는 정책을 펼치는 술라가 등장한다. 술라는 추방당하지만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군한다. 내전이 시작된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 이 싸움에서 이긴 승자가 로마를 이끌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이끈 군대들은? 나나미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란 오래 계속될수록 당초에는 품지 않았던 증오심까지 고개를 쳐들게 되는 법이다. 전선에서 싸우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도 모르게 된다. 오직 증오심만이 그들을 몰아세운다. 내전이 처참한 것은 목적이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173쪽)

 

또 미국이다. 노예제 문제로 남북전쟁을 겪은 미국. 이들도 내전을 겪었다. 내전을 겪을 당시 전쟁 당사자였던 민중들은 과연 노예해방이라는 대의에 대해 생각했을까? 아니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적, 그 적을 물리치는 것만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이 내전이 위험한 것이다. 끝나고도 그 상처를 치유하려면 오래 걸리니까.

 

술라, 그는 쿠테타로 집권을 하지만 그가 원한 로마는 공화제 로마다. 그는 이 점에서 확고하다. 평민들이든 귀족들이든 탁월한 누군가가 절대 권력을 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이 반대했지만 이미 실행되고 있는 법안들을 모두 폐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독재자였지만 시대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독재자였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이 믿고 있는 공화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조건에서. 

 

따라서 술라는 공화제가, 원로원 중심으로 지속되게 하기 위한 법안을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술라가 아무리 이런 법안들을 마련해 놓았어도 그것은 그가 살아있을 당시에만 유효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법안을 무력으로 깨뜨리는 모습, 무력으로 법안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술라가 죽자 그 후예들은 술라가 만들어논 법을 무시한다. 그들에게는 무력이 있다. 무력으로는 못할 것이 없다. 내전을 통해 술라가 만들어놓은 로마 공화제 원칙은 다시 그 후예인 폼페이우스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이제 로마는 절대자가 등장할 때인 것이다. 법이 아무리 정비되어 있어도 힘을 가진 자가 등장해 법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힘을 지닌 자가 절대자가 나오지 못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이런 모순 속에서 로마는 승자의 시대를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는 이 시대를 '승자의 혼미'라고 했다.

 

폼페이우스가 힘으로 법을 무력화시키고, 자신이 절대자가 되고 싶어했겠지만, 절대자는 그가 만들어놓은 길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이 다음 권에 등장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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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8 0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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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8 1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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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제일 앞부분에 실려 있는 시인의 말이 곧 시다. 시인의 자세다.

 

  시를 쓰면서 늘 생각하는 비유란 / 결국 결합이다. / 이것과 저것, 여기와 저기를 접붙여 / 새로운 의미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 / 그런 게 시라고 배웠다./ (중략) /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 내가 앞으로 계속 시를 쓴다면 / 결합이 아니라 분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 그동안 너무 많이 붙어먹었다는 것부터 고백해야 한다고 (5쪽)

 

  시는 서로 다른 것을 연결시켜 준다. 연결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데, 시인의 말에서는 이제는 분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왜? 그렇다. 분리가 그냥 잘라내는 것,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뭉뚱그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우리를 한계짓고,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언어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쉽게 어떤 말로 뭉뚱그려지지 않았던가. 또 뭉뚱그리려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개인이 지닌 개개인의 특성은 그 뭉뚱그림 속에 파묻혀 버리지 않았던가.

 

비유가 서로 다른 대상에서 비슷한 점을 찾아내거나 비슷하게 만드는 표현이라면 비유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분리가 되어야 한다. 한 대상을 뭉텅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이 모여 있는, 융합되어 있는 부분들의 결합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분리를 통해서 다시 결합을 할 수 있다. 즉 분리와 결합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동전의 영면과도 같은 것.

 

그러나 앞에서 인용한 시인의 말은 우리 사회가 결합에만 너무 치중하지 않았나, 하다못해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고 있지 않느냐고...개개인의 특성을 생각하기 보다는 먼저 전체를 보고, 전체 속에 개인을 위치시켜 버리는 사고 습관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이 없는 전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자꾸 전체란 이름으로 또는 '우리'란 이름으로 부분을, '나'를 가두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시작되는 자리'란 시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앞부분 생략)

나와 애인의 얼굴을 하나로 뭉뚱그리려는 체제와 이데올로기는 사랑을 모른다 / 체제와 이데올로기가 쳐놓은 막을 찢어버린 자리에서 사랑은 시작되고 / 그 길 끝에서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뒷부분 생략) - 33쪽

 

이런 시인이니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는 말에도 다른 생각을 한다.  '어떤 수업'이라는 시다.

 

(앞부분 생략)

꼭 숲을 이루어야 할까? / 숲 밖에 서 있고 싶은 나무도 있지 않을까? / 벌판에 키 작은 나무로 서서 / 더불어 숲이 아닌 / 지나가는 바람이며 길 잃은 새들에게 어깨를 내주는 ' 더불어 홀로의 삶도 괜찮지 않을까? (뒷부분 생략) - 158쪽.

 

뭉뚱그림. 결합만을 앞세웠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뭉뚱그림에서 부분을 찾아내는 것, 그 부분을 인정해 주는 것. 부분이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함임을, 그래서 전체는 완전한 부분들의 결합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뭉뚱그림 속에서 지내다가는 어떤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지, 뭉뚱그림을 인식하지 못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을 '자두맛사탕'이란 시에서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자두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오로지 자두맛만을 기억하고 그것만을 인정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뭉뚱그림의 사회다.

 

이런 뭉뚱그림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모습이 시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군상'이란 시가 그렇다. 2016년 촛불 시위에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이응노 화백의 그림 '군상'과 연결시키는 것, 그렇다고 무작정 결합이 아니다.

 

독립된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루듯, 우리 사회를 바꿀 힘을 보여주었던 것, 시인은 이렇게 뭉뚱그림에서 벗어나 다른 연결을 한다.

 

무엇보다 제목이 된 시 '등 뒤의 시간'

 

  등 뒤의 시간

 

봄이 와도

껶여 나간 나뭇가지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봄이 왔다고 부산한 이들 가운데

지난겨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하는 이 드물고

유난히 푸짐하게 내렸던

하얀 눈발을 은총이라 착각하며

껶여 나간 나뭇가지 같은 건

진작 잊어버렷을 게다

눈도 쌓이면 죄업의 무게를 이루듯

아름다움은 곧잘 배반을 동반하는 법

그러므로 새순이 돋는 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기도 하지만

그 앞에 무수한 죽음이 있었다는 걸

슬쩍 밀쳐내기도 한다

 

박일환, 등 뒤의 시간. 삶창. 2019년. 40쪽.

 

이 시에서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우리는 자주 우리 등 뒤의 시간을 밀쳐내고 살지 않는가. 마치 앞만 존재한다는 듯이. 이것 역시 시간들의, 삶들의 뭉뚱그림 아니겠는가. 이렇게 뭉뚱그려진 존재들을 시인은 하나하나 완전한 존재로 다시 불러내고 있다.

 

전체는 이러한 개별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음을, 쉽게 하나로 뭉뚱그려서는 안 됨을 이 시집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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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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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2권은 마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는 느낌이다. 130여 년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은 단연 한니발과 스키피오다.

 

이 둘을 통해서 로마인 이야기 2권은 채워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이야기하는 데 잠시 등장할 뿐이다.

 

포에니 전쟁은 3차에 걸쳐 일어나고 결국 카르타고의 멸망으로 끝난다. 어린 시절 한니발이라는 장군은 얼마나 동경의 대상이었던가.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는, 로마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는 장군. 그러나 그는 이기지 못했다는 것. 로마에 스키피오라는 젊은 장군이 한니발을 격퇴했다는 것. 이 정도가 어린 시절 읽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알게 된 사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 2권이 부제가 한니발 전쟁이고, 로마인들에게 포에니 전쟁은 곧 한니발 전쟁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한니발은 로마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의도한 것과는 반대로 로마가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군사력을 지니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의견이다.

 

한니발과 거의 16년 정도를 싸우면서 로마인들은 한니발에게서 전술을 배웠고, 그로 인해서 실전 경험을 함으로써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전쟁기계와 같은 군인들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로마 장군인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수제자라 할만큼 그의 전략을 잘 이해했다고 한다.

 

그런 스키피오에게 한니발이 패배하고, 한니발의 패배 이후 카르타고는 힘 한번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가 멸망하게 되는 것인데...

 

읽으면서 씁쓸했다. 세계에 평화란 이렇게도 멀고 먼 길인가? 팍스 로마나라고 하지만 그것은 무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던가.

 

결국 고대 시기에는 무력으로 평화를 이루었다는 것인데, 지금도 이것이 지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씁쓸할밖에.

 

여기에 한니발에 대한 실망. 어렸을 때는 영웅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니발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게 됐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가 이야기하듯이 그가 세계에서 10명 안에 드는 전략가라는 데는 나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지만... 그를 꼭 칭송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지고... 잠깐의 평화기간 동안, 한니발은 카르타고에 있지 않고 에스파냐에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거기서 세력확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 어느 정도 세력을 확장해서 그곳에서 평화롭게 지낼 수도 있었는데...

 

로마와 부딪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지냈다면 평화 시기가 좀더 오래 지속되었고, 수많은 목숨들이 사라지지는 않았을텐데...

 

과거에 대한 복수로 한니발은 로마 침공을 감행한다. 전쟁터는 이탈리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의 스페인에서 이탈리아까지 군대를 몰고 가는 것.

 

카르타고는 전쟁하고는 상관없이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 본토가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한니발 군대도 돌아갈 길이 없다. 한니발이 로마 점령을 못하고, 강화 조약도 못 맺고 그가 머무르면서 끝까지 버티는 곳은 이탈리아 반도의 남쪽.

 

결국 그는 자신의 재능을 전쟁으로, 살륙으로 소모하고 말았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하더라도 이렇게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은 용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는 로마 장군인 스키피오가 훨씬 낫다.

 

전투에서 한니발을 격퇴하기도 한 그는 철저한 살륙보다는 협정을 통해서 전쟁을 끝내기도 하는 사람이었으니.

 

한니발은 우직한 장군이었고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동료를 만들지 못한 혈혈단신의 외로운 장군이었다면, 스키피오는 장군이자 동료를 얻어 함께 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정치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한니발이 그에게 이길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전쟁이 꼭 필연적인 이유 때문에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나 전쟁의 피해는 엄청나다는 것, 몇몇의 공명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참화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 전쟁은 한쪽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과거 포에니 전쟁에서 이런 것들을 읽어내고,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팍스 로마나가 이제는 팍스 아메리카나로 바뀌었고, 로마 연합이 미국과 우방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치닫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미 전쟁을 겪은 우리는 이 로마인 이야기 2권을 더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인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이 책을 전쟁 중심으로 전쟁의 원인, 경과, 결과, 그리고 민중들이 겪게 되는 일들을 중심으로 읽을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읽는 것이 이 책을 현재에 접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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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조금만 뒤로 돌리면, 이런 소녀들을 만날 수가 있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취업해야 했던 소녀들.

 

  일명 공순이라 불리던 소녀들, 그들에게 있었던 수많은 꿈들은 학교를 떠남과 더불어 사라져 버리고, 남은 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

 

  공장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면서 자신들의 꿈을 점점 지워가야 했던, 그리고 무자비한 대우들... 소녀들은 소년들에 비해 더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60-80년대 우리나라 모습이었다. 이런 소녀들, 우리나라를 지금으로 끌어올린 소녀들을 이기인 시집에서 만날 수 있다.

 

  노동 착취뿐만 아니라 성 착취까지 당해야 했던 소녀들. 그러나 꿋꿋하게 살아가려 했던 소녀들을 말이다.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이라는 제목으로 14편의 시가 실려 있다. 소녀들이 공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 그런 소녀들의 몸을 탐내는 곰들(소녀들을 성적 대상으로 대하는 권력을 쥐고 있는 남자들)에 대해서도 이 연작시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중 첫시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 오래된 삽

 

오늘은 피가 나서

하루 쉰다

 

자빠진 삽에게 일 안하냐고 묻지 마라 

 

이기인,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창비. 2005년 초판 3쇄. 8쪽.

 

이 시 하나면 된다.

 

쉬는 것도 마음대로 쉴 수 없었던, 연차, 월차를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었던 시절에... 생리휴가라는 것을 받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시절.

 

그렇게 일을 하다 스러져 가는 소녀들. 이들을 보고 전태일은 얼마나 마음 아파했던가. 그런데 70년대가 저물어가고 80년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이런 소녀들이 있었다는 것.

 

충분히 쉬지도 못하고, 쉬면서도 눈치를 보는 그런 상태... 지금 이 소녀들이 모두 사라졌을까? 아니다. 이들은 다시 청년 비정규직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안 되는데... 시를 읽으며 다시 우리나라 노동현실을 생각한다. 이런 소녀들이 과거에만 있었다면 하는 생각. 그냥 흘러간 과거였으면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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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0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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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