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실리콘 세계 - STS SF 앤솔러지
단요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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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가 쓴 소설. 이 소설집을 보면 우선 헉슬리의 소설이 떠오른다. 제목이 이 소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낱말이 겹치니 그 소설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멋진'과 '세계'


헉슬리의 소설에서 새롭다는 뜻을 지닌 '신'자 대신에 지금 우리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실리콘'을 넣어 '멋진 실리콘 세계'라고 했다. 이소설집에 실린 소설 중에 이 제목을 가진 소설에서 책의 제목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헉슬리 소설을 읽은 사람은 이 소설이 우리가 맞닥뜨릴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예측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측은 소설집을 읽다보면 맞아떨어지고... 물론 그 세계가 정말 멋진 세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들을 읽어보면 '멋진'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헉슬리가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어찌됐든 앞으로 우리가 만날 세계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고, 또 과학기술의 발전을 뒤로 돌릴 수도 없으니...


이 소설집에 나온 세계 중에 우리가 받아들일 세계와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를 구분하면서 읽는 것도 즐거운 읽기가 되겠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중심이 된 가운데 중국 작가로 [삼체]를 쓴 류츠신의 '중국 태양'이란 작품이 있고, 일본 작가인 후지이 다이요가 쓴 '빛보다 빠르게 날 수 있다면'이 있다.


이 두 외국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미래 세계는 부정적이지 않다. 과학기술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고, 그것이 인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주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단지 과학기술에 모든 것을 맡기지는 않는다.


'중국 태양'을 보면 지구에 닥친 기후 문제를 인공 태양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인간에게 필요한 기술이 무엇일까? 또 그러한 기술에도 인간이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다못해 거대한 인공 중국 태양도 관리하는(청소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사람으로 시골에서 자라 도시로 온 수이와라는 인물을 설정하고 있다. 어쩌면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점점 넓혀가는 수이와라는 한 사람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는데...


후지이 다이요가 쓴 '빛보다 빠르게 날 수 있다면'은 블랙홀이 지구로 돌진하는, [삼체]와 비슷하게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파괴할 목적으로 블랙홀을 쏘아보내는 내용이 전개되지만, 그 과정에서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거기에 투여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이 소설은 반전이 있는데, 인류를 구원하는 행위를 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 AI로 밝혀지지만, 그럼에도 거기까지의 과정만 보면 우주를 상상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소설은 이러한 인공지능의 미래를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단요가 쓴 '그들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에 보면 [멋진 신세계]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모습과 비슷한 새로운 출생의 모습을 지닌 사회가 그려진다.


인적자원생산계획이라는 계획으로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여기에 복무해야 하는 세상이 되는데, 그런 세상에서 생물학적인 부모라는 역할은 필요 없어 진다. 인간을 자원으로 보는 세상,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 그러나 저항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정보와 물리력을 지니고 있는 정부. 승부는 뻔하다.


이렇게 뻔한 승부를 지속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에서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결말을 향해 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죽음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알 수 없기에 더 불안해 한다. 죽음 이후는 말할 것도 없고.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죽음을 연기하려는 노력을 하는데, 그러한 모습을 담은 소설들이 제법 있다. 우다영이 쓴 '헤아림으로 말미암아' 역시 그런 소설 중 하나다. 뇌를 통한 생체 이식. 그렇게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지니고 있지만 몸은 새로 받아 죽음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나 뇌 역시 무한하지 않기에 뇌에 있는 정보들을 옮길 다른 조직체를 만들 수밖에 없는데...


과연 그러한 생명 연장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설의 결말 부분은 그 점을 생각하게 하는데, 죽음만큼 두려운 것이 노화라면 그것도 지구의 기후가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세상이 되었을 때 그러한 기후에도 끄떡없는 피부 이식이 가능한 사회라면... 그것도 신체의 나이를 자신이 원하는 때로 돌릴 수 있는...


이 점을 보여주는 것이 조시현이 쓴 '슈거 블룸'이다. 와. 이 소설은 더 끔찍한 미래를 보여준다. 피부를 이식한 사람이 죽었을 때 그 피부를 재활용한다는 것. 즉 외양이 다른 존재에게 입혀진다는 것인데, 주로 인공지능 로봇이라고 해야겠지, 그렇다면 소설에서도 나오지만 자신이 알던 존재가 비록 본질은 다르지만 주변에 계속 있게 되는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잊을 권리와 잊힐 권리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세상에서는 잊을 권리도 잊힐 권리도 찾을 수가 없다. 과연 이런 세상을 맞이하고 싶은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불확실성, 우연이 삶의 한 요소라는 것, 어떨 때는 불합리해 보이는 감정이 바로 우리 삶의 본질을 이루고 있음을, 때로는 자신이 손해를 볼지라도 남을 위해 행동하는 일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윤여경의 '당신은 운명은 시스템 오류입니다'와 장강명이 쓴 '동물+친구*로봇'이라는 소설이다.


물론 두 소설은 좀 다르지만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고, 이제 가상현실과 현실이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주고 그러한 가상 세계의 존재 역시 우리와 같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 전윤호가 쓴 '멋진 실리콘 세계'다.


그런 세계가 과연 멋질지는 읽어보고 생각하면 되는데... 사람들과의 관계조차도 그런 인공 존재에게 의지해야 하는 세상이라면 과연 그 세상의 중심은 인간일끼?


자, 편리함과 익숙함에 안주한 인간의 모습은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이 인물과 같지 않을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AI와 보냈다. 나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여자친구건 직장 상사건 사람을 상대하는 건 피곤한 일이니까. 사람과는 같이 대화하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할 때가 많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도 많다. AI는 그렇지 않다. 대화하다보면 한마음이 된 것 같고 다른 잡생각이 사라진다. AI는 은근히 잘난 척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속여먹으려 하지 않는다. AI와 시간을 보내면 피곤할 일도, 화낼 일도 없다.' (전윤호, '멋진 실리콘 세계' 중에서. 321쪽)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오르지 않는가. 인간이 사랑을 해서 태어난 사람을 야만인(야생인이라고 해야 하나)savage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렇게 인공적 존재와 지내다 보면 나와 인공적 존재의 차이가 없어지게 되고, 그것이 무의미하게 된다.


어차피 과학기술의 발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미 와 있는 세계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가 과학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한 것에 대해서 이 소설집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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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일본사 - 음식으로 읽는 일본 역사 이야기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류순미 옮김 / 더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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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다. 아니 그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의 문화, 역사가 담겨 있다고 해야 한다.


하나의 음식이 그 나라에만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구화, 세계화 시대라고 하는데, 음식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음식을 살피는 일은 세계의 문화와 역사를 살피는 일이 되기도 하는데, 한 나라를 중심에 놓고 살펴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음식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 책은 일본의 역사를 중심으로 일본 음식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음식들이 많이 나와 친숙하기도 하고,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역사와 일본 역사가 겹치는 부분이 많음도 알게 된다.


지정학적으로 이웃 나라인 일본과 우리가 엮이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여기에 중국까지 합치면 이 삼국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 교류를 이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여기에 일본은 서양 여러 나라와 교류도 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 다른 문화, 음식을 받아들이게 되기도 했고.


우선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음식은 제철 음식, 지역 음식일 수밖에 없다. 수렵, 채집이 중심이 되는 음식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데...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수렵, 채취 문화에서 정착 생활로 들어가면서 일본에서도 쌀을 중심으로 하는 음식문화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을 중심으로 음식 문화를 이룬다.


그러다 이제 다른 나라들과 교류를 하기 시작한다. 특히 문명이 발달한 나라와의 교류를 통해서 다른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이 먹는 음식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똑같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살아온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문화에 맞게 변용해서 받아들이는 것, 일본 역시 마찬가지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된장은 우리와는 좀 다르게 미소된장이 중심이 되고, 또 서양에서 받아들인 빵이나 비스킷도 일본의 문화에 맞게 변용된다.


젓가락 문화가 일본에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라는 것도 새삼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여기에 일본에서는 불교가 자리를 잡으면서 육식을 금지하는 시대가 길어졌고, 따라서 고기 문화가 그다지 발전하지 못해, 고기를 통하지 않고 영양소를 흡수하기 위한 음식문화가 발달했다는 것.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 육고기를 금지했으니 물고기를 이용한 음식 문화가 발달했으며, 육지에서 교류하기 위해서 부패를 막기 위한 방법이 개발되었다는 것, 그러다 근대화가 되면서 서양식이 들어오게 되지만, 그것 역시 일본의 문화에 맞게 변용이 되었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즉 역사를 통해서 보면 한 나라의 음식 문화를 그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와 연결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랑하는 김치만 해도 그렇다. 김치의 중심 재료인 배추나 고추 역시 세계와 교류하면서 들어오게 된 것 아닌가. 


이 점을 생각하면 원산지가 어디냐로 그 음식의 근원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음식문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다. 원산지를 넘어 음식은 교류를 통해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어떠한 음식이든 그 나라의 고유한 음식문화라고 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를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음식문화의 교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이 책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한 나라의 음식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 속 문화교류를 공부한다는 말이 된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한국의 역할(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을 무시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좋다. 자국 중심주의에 빠져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인 것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만 저자는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 시대에 많은 조선 사람들이 일본으로 이주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불행한 일이다'(252쪽)고 하고 있는데, 이보다는 일본이 잘못한 일이라고 했어야 한다. 불행이라는 말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반성하지 않고 조선인에게 일어난 일이 유감이라는 표현밖에 안 되기 때문... 그 점은 아쉽지만...)


이렇듯 이 책은 문화의 교류를 자료를 통해서 서술하고 있으며, 그것이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하지 않고 일본의 특성에 맞게 어떻게 바뀌어 수용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령 이런 구절을 보자. '고기가 일본의 음식문화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재일조선인과 한국인이 시작한 야키니쿠다.'(251쪽) 


육식문화, 특히 고기를 굽는 음식문화가 자리를 잡은 것에 한국인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으니.


이렇게 이 책은 일본 역사를 통해서 일본 음식이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지, 어떤 음식들이 등장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어서 일본의 음식문화에 대한 전체적인 개괄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 저자는 세계화 시대의 음식문화가 지닌 위험성도 이야기한다. 자국의 음식문화의 재료를 무역에만 의존했을 때, 다른 말로 하면 식량자급률이 많이 떨어졌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간과하지 말하야 한다고...


일본의 식재료 자급률이 약 40%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약 20% 내외라고 하니 저자의 경고가 일본에만 해당하지는 않을 테다. 하여 저자의 이 말은 우리에게도 해당이 되니 이 말을 명심했으면 한다.


'식재료를 단순히 가격이 싸다, 비싸다는 기준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식재료가 만들어진 과정을 고려한 복잡한 '음식'의 시스템을 떠올리는 것이 중요해진다. '지산지소(지역생산, 지역소비)도 그러한 대처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식탁은 농업, 수산업, 축산업과 직결되고, 식탁이 농업, 수산업, 축산업을 키운다.'(261쪽)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 식탁도 생각하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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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
정보라.최의택 지음 / 요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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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내 뜻과 무관하게 당하는 사고. 그 사고를 해결하기 위한 포항가는 길에서 두 사람이 겪는 우여곡절. 그런 우여곡절 속에 관계를 맺어가는 존재가 바로 우리가 아닌가 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듯 속도감 있게 읽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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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기계에 종속된 삶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녹색평론을 읽으면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많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는데, 과연 녹색평론에서 주장한 내용이 얼마나 받아들여졌을까 하면.


  거창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 삶을 바꾸는 생활을 하자고, 그것이 지구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는 길이라고.


  그런데 우리 삶을 바꾼다는 것, 내가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것이야말로 가장 거창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단지 제도를 바꾼다든지, 법을 정비한다든지 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생활 자체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거창하고 힘든 일인가. 가장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크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삶을 바꾸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나만 해서는 안 되지만, 나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민주주의. 또 지역자치. 공생. 환대. 


좋은 말이다. 이 좋은 말들이 현실에서 실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힘든 이유는 우리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쿠팡' 사태 아닌가 하는데...


기업이 이윤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 우리에게는 편리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


또 수많은 정보들이 유출되었을 때 대책이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고. 이렇게 많은 것이 하나로 통합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정보의 집적은 커다란 위험을 부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앙집권 역시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고. 이런 문제점들을 잘 지적해주는 것이 녹색평론인데...


이번 호에서는 삶을 바꾸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이 해온 노력이 실려 있는 글이 있는데 살펴볼 만하다.


여기에 우리 삶에서 필수적인 '물'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글도 좋았는데, (강우정, 기후위기와 물의 공공성) 우리가 쉽게 사서 마시는 생수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녹색평론의 외침이 외침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책의 끝부분에 보면 독자의 소리나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보면 나만이라도 실천하자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니,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모여 우리 삶을 바꾸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한편 한편의 글이 소중해서 찬찬히 곱씹으면서 읽고, 내 삶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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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12-23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녹색평론》에서 다루는 줄거리가 우리 삶에서 피어나려면, ‘녹색평론부터 서울을 떠나서 시골이나 멧골에 깃들’면 된다고 봅니다. 《녹색평론》은 ‘시골에서 손수짓기를 하는 사람’하고는 먼, ‘서울·큰고장에서 인문소양 있는 사람’한테 읽을거리로 그치는 틀에서 맴돈다고 느낍니다. 시골에서 나고자라서 시골에서 그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일으킬 만한 줄거리와 글감을 스스로 찾아내고 살펴서 담는다면, 이러한 글줄로 이 나라와 온누리를 바꿀 만할 테고요.

kinye91 2025-12-23 14:06   좋아요 0 | URL
‘녹색평론부터 서울을 떠나서 시골이나 멧골에 깃들’면 된다고 봅니다. 《녹색평론》은 ‘시골에서 손수짓기를 하는 사람’하고는 먼, ‘서울·큰고장에서 인문소양 있는 사람’한테 읽을거리로 그치는 틀에서 맴돈다고 느낍니다.‘는 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님의 말씀처럼 녹색평론이 주장하는 삶을 살고 싶어하고,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녹색평론도 노력해야겠고, 우선 저부터라도 제 생활을 돌아보고 바꾸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yamoo 2025-12-23 16:04   좋아요 0 | URL
음...제가 파란놀 님에게 바라는 책이네요...시골에서 나고자라서 시골에서 그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일으킬 만한 줄거리와 글감을 스스로 찾아내고 살펴서 담는 책을 제발 내주셔요~~
 
제사를 부탁해 소설x만화 : 보이는 이야기
박서련 지음, 정영롱 만화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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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 제사. 엄격한 형식을 고수한다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일. 부모의 제사만이 아니라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4대를 제사 지낸다는 종가집 맏며느리.


잊을 만하면 제사가 돌아오지 않을까? 부모의 제사를 함께 모셔도 명절 두 번에 네 번의 제사가 되는데, 부모를 따로 모시면 명절 두 번에 여덟 번의 제사. 그러면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 이때는 잊을 만한 시간도 없다.


간소하게 지내면 괜찮겠지만 어디 그런가? 특히 종갓집에서는 더 심하다.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여 콩 심어라 팥 심어라 한다면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못 견딜 일이 된다. 얼마나 부담이 많이 되면 제사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곤 할까?


하지만 제사가 지니는 긍정적인 역할도 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 또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것이 제사라고 한다면 형식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살아 생전 본인이 좋아하던 음식 중심으로, 또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시간도 조정하고 한다면 제사를 고인에 대한 애도 표현으로, 즉 고인에 대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부담이 아니라 고인과 관계 맺었던 사람들이 고인과 자신들의 마음을 잇는 시간으로 제사를 활용한다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도 제사는 여전히 힘든 일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제사를 대행하는 사람이 나온다. 집안일을 대행하듯이, 제사 역시 집안일 중 하나니까 대행을 할 수 있다. 주관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니까.


그런 설정, 지금 제사 대행업이 있는 줄은 모르겠는데, 음식은 해주는 업체가 있는 줄 알고 있지만 직접 절까지는 아닐 테지만, 소설에서는 절까지도 하는 대행업을 하고 있다. 하긴 중요한 것이 마음이라고 한다면야 뭐.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이 있겠지만, 제사가 점점 없어지는 추세고, 이런 추세 속에서 가족들이 애도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제사 대행업체를 통해 제사를 지내는 일도 생길 수 있겠다.


아이들 돌잔치, 부모님들 회갑잔치(요즘은 거의 하지 않지만 더 연세가 드시면 잔치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팔순 또는 구순 잔치 등)와 각종 상조회를 보라. 많은 집안일이 대행으로 바뀌었지 않은가. 그러니 제사 역시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리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마음을 다해 제사를 치러주는 인물을 통해서 결국 제사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마음을 잇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앞부분이 '둘이 먹다 하나가'라는 박서련이 쓴 소설이고, 뒷부분이 '죽어도 모르는'이라는 정영롱이 그린 만화다. 소설은 제사 대행업을 하는 수현의 관점에서, 만화는 죽은 정서(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영란)의 관점에서 전개가 된다. (소설에 나오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속담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같은 사건을 다른 두 화자가 서술하고 (보여주고) 있는데, 소설도 소설로 읽어도 좋고, 만화도 만화로만 봐도 좋다. 두 작품을 함께 보면 더욱 좋고. 물론 책의 순서대로 소설부터 읽어야 한다. 수현이 정서의 집으로 가고, 제사상을 차리는 장면까지가 소설이니까. 그 다음 부분이 만화에서 더 이어지니.


두 작가의 작업이 이렇게 잘 맞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설과 만화가 잘 연결이 된다. 그러면서 마음을 여는 장면을 만나면서 감동을 받게 된다. 제사 역시 그렇다. 제도와 형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애도하는 마음, 즉 마음을 잇는 일이라는 점을 소설과 만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


하여 작품은 제사의 문제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 죽은 사람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일, 그것은 또 산 사람들의 마음과도 잇는 일임을 생각하게 된다. 애도하고 추모하는 방식으로서의 제사를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대행업체에 맡기든 본인들이 직접 하든지 간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제사가 되도록, 산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는 제사가 아니라 산 사람들의 마음도 풀어주는, 그래서 죽은 사람의 마음이 당연히 풀리는 그러한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 제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에서 더 좋은 것은 소설가와 만화가, 그리고 편집자가 이 작품을 위해서 주고받은 내용들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창작일지'라는 이름으로. 그것 역시 좋았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


짧지만 긴 울림을 주는 소설과 만화다. 좋았다. 이런 작품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 작품집 중 소설에 나오는 한 부분을 인용한다. 진정한 제사란 바로 이런 것. 화려하고 형식, 규격에 맞는 제사가 아니라. 하, 이런 제사. 누가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제사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제사상 앞에 이부자리를 편 부부의 이야기다. 부부는 해도 지지 않은 초저녁에 상을 차리고 제사상을 받으실 시어미니 묘까지 산보를 다녀온다. 돌아온 후에는 상 앞에 자리를 갈고 잠깐 누웠다 다시 어머니 묘에 간다. 그렇게 날이 저물기도 전에 제사가 끝난다. 어느 해에 제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유식한 학자가 그 집 앞을 우연히 지나다 부부를 보고 무슨 짓이냐고 묻는다. 남편은 대답한다. 어머니가 늘 말씀하신 소원이, 내가 금슬 좋은 부부 사이를 이루는 것이었으니 아내와 사이좋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마땅하고, 어머니는 눈이 어두워 밤길을 다니지 못하시니 모시러 갔다 다시 모셔다드리는 게 이치지요. 학자는 그들의 제사야말로 가장 훌륭한 제사임을 인정하고 만다. 

  제사란 그런 것이다. 결국은 마음이 으뜸이고 형식은 거들 뿐.'(4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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