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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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많이도 들어본 제목이다. 여러 곳에서 필경사 바틀비가 하는 말이 인용되곤 했는데...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어떤 때는 노동자들의 주체 의식을 드러낸 말로 이 말을 인용하곤 했는데,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에서 자기 주장을 명확하게 하는 대사로 말이다. 그런데 읽어보니,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바틀비가 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지 소설 속에서는 별다른 개연성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바틀비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아서 그 말을 하고 일을 거부할 뿐이다. 어떤 설명도 없다. 합리성도 없고.

 

그가 그렇게 버티자 변호사가 견디지 못하고 사무실을 옮기지만 바틀비는 그 자리를 고수하다가 끌려가고 만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바틀비는 현대 노동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부터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싶었는데, 읽고 난 뒤에는 이상하게도 그리 큰 울림이 남지 않았다.

 

바틀비를 이 단편집 속에 있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 '진품'의 주인공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간.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 자신들을 귀족의 모습을 담은 진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림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사람들. '진품' 속 인물인 모나크 부부는 스스로를 '진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진품이 아니라 골동품에 불과하다. 그것도 현대에 보존할 가치가 없는 그러한.

 

여러 소설이 실려 있는데, 당시 미국의 상황을 짐작케 하는 소설들도 있고, 새로운 기법을 보여주는 소설들 도 있다. 총 11편의 소설이 시대 순으로 실려 있는데, 미국 단편 소설들을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 중에 샬롯 퍼킨스 길먼이 쓴 '누런 벽지'는 현대 페미니즘을 미리 보여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성이 자기의 의사를 인정받지 못하고 남들에 의해 갇혀 지내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을 자기 관점으로 옭매이는 것, 지금도 자주 일어나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잘못된 일인지를 이 소설을 읽으면 깨달을 수 있다.

 

오래 된 소설이지만 소설을 통해서 내 관점이 아무리 좋고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남에게 일률적으로 강요할 수 없음을, 그것도 주류에 속한 사람이 비주류에 속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면 재앙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여기에 미국 흑인 노예들에 관한 백인들의 관점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창스 W. 체스넛이 쓴 '그랜디썬의 위장'도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백인들의 위선, 그런 위선을 반전으로 까발리는 그랜디썬이라는 흑인의 모습이 통쾌하다.

 

이렇듯 이 단편집에서는 미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소설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소설도 있다. 거기다 공포물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같은 작품도 있고, 처음 읽는 작품이지만 검은 고양이와 비슷하게 결말이 괴기스러운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이란 소설도 만날 수 있다.

 

이 단편집에는 이밖에도 종교의 문제를 다룬 '젊은 굿맨 브라운', 표류하는 구명 보트에서 서로 돕고 지내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소형 보트' 등 다양한 경향의 작품이 실려 있어서 근대 미국 단편 소설을 한번에 읽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천천히 한 작품씩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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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희 시집을 읽다. 시집을 읽으며 부사(어)를 이리도 잘 쓰는 시인이 있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시 제목에도 부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대표적인 시들을 골라보면 다음과 같다.

 

  '하필'이란 말

  '이미'라는 말

  '이미'와 '아직' 사이

  차라리(里)에 가서

  차라리

 

어떤 시인이 말했다는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박상천의 '통사론'이란 시에 나오는 구절)라는 말이 연상되는 그런 시들이 많은데... 시는 말을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다른 말을 집어넣어 표현하는 문학이라는 생각을 이 시집을 읽으면 자연스레 하게 된다.

 

수많은 부사어들의 향연, 그것이 김승희 시의 특징이 아닌가 싶은데... 그런 점에서 부사어는 한정된 의미를 좀더 넓게 확장해 주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한다.

 

반대로 부사어는 무한한 감정을 유한하게 정리해서 보여주는 역할도 하고. 즉 부사어를 통해 유한과 무한의 세계를 반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미'와 '아직' 사이라는 시를 통해 우리는 단어의 의미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들이 내표하고 있는 깊고 넓은 세계를 볼 수 있게 된다. 부분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은 표현들 속에 들어 있는 세계들...

 

누구에게나 시간은 그렇다오

이미와 아직 사이에 반딧불 같은 오늘이 있고

이미와 아직 사이에 캄캄한 밤의 절망이 있고

이미와 아직 사이에 내일의 불안이 있고

이미와 아직 사이에 파도치는 희망이 있고

이미와 아직 사이에 눈물 넘치는 오작교

 

김승희, '이미'와 '아직' 사이 3연. 134쪽에서) 

 

그렇다면 김승희의 시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의 모습. 즉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이다.

 

제목이 된 시를 보자.

 

  도미는 도마 위에서

 

도미가 도마 위에 올랐네

도미는 도마 위에서

에이, 인생, 다 그런 거지 뭐,

건들거리고 산 적도 있었지,

삭발한 달이 파아랗게 내려다보고 있는 도마 위

도미

물방울이빨랫줄에조롱조롱

 

도미는 도마 위에서 맵시를 꾸며보려고 하지만

종말에 참고문헌과 각주가 소용이 될까?

비늘을 벗기고 보면 다 피 배인 연분홍 살결

그래도

고종명에 참고문헌과 각주가 소용이 되느니

물방울이빨랫줄에조롱조롱

 

도마가 도미 위에서

도미가 도마 위에서

몸서리치는 눈부신 몸부림

부질없는 꼬리로

도마를 한번 탕 치고 맥없이 떨어져

보랏빛 향 그윽한 산천

물방울이빨랫줄에조롱조롱

 

김승희, 도미는 도마 위에서. 난다. 2017년. 124-125쪽

 

이 시에서 '그래도'라는 부사가 나온다. 아마 김승희 시 중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를 떠올리게 하는 시어이기도 한데, 유한한 곧 생명이 끊길 존재에게 참고문헌과 각주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참고문헌과 각주를 부사어라고 한다면, 우리 인생을 꾸며주던 다양한 삶들의 결이라면, '그래도' 유한한 존재인 우리에게 이런 참고문헌과 각주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삶이란 단순명료한 어떤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표현되고 실현되는 그 무엇이라는,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삶이 있고 그 삶은 곧 우주만큼이나 광활한 것이라는 것, 도마 위에 올라온 도미는 유한한 생을 마감하려 하지만, 그 마감 속에서도 안으로는 다양한 삶들을 쟁여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시를 통해 내 삶에 더 많은 참고문헌, 각주들을 집어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새해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시집 읽기. 그래 내 삶에도 다양한 '부사어'들이 덧붙여져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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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을 읽는 변호사 - 1만 명 의뢰인의 삶을 분석한 결과
니시나카 쓰토무 지음, 최서희 옮김 / 알투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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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나카 쓰토무라는 일본 변호사가 쓴 글이다. 운을 읽는다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운이 좋은 삶을 살 수 있을지, 그런 운이 좋은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표지 그림이 유명하다. 카유보트가 그린 창가의 남자. 이 남자를 니시나카 변호사라고 생각하자. 책에도 나오는데 그는 창가에서 길가 사람들을 바라보다, 그 사람들이 자신의 건물로 들어올지 다른 건물로 갈지를 맞추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거의 정확하게 맞추는데,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맞추는 것이다.

 

  사람 나이 40이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오래 된 말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얼굴 표정에서 그 사람의 상태가 어느 정도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변호사로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본 그의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변호사가 얼굴 표정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에게 오는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어서 오는 사람들이니 무언가 공통적인 면을 지니고 있었으리라.

 

반면 다른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표정이 밝았다고 한다. 그 건물이 어떤가 했더니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그런 건물이기도 했다는 것. 그래서 니시나카 변호사는 말한다. 운이라는 것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따라오는 것이라고.

 

결국 운이 좋다는 말은 성실하게 남을 배려하면서 착하게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삶에서 운이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나만을 위해 살지 말아라. 함께 사는 곳이다. 그러므로 함께 살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에서 이야기한 것 중에 세 가지가 머리 속에 남아 있다. 우선 하나는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유통기한이 가장 적게 남은 물건을 사는 사람 이야기. 보통 우리는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것을 고르고 골라 사는데, 이 사람은 반대로 유통기한이 가장 짧게 남은 것을 고르고 골라 산다는 것이다.

 

왜 이리 손해보는 일을 할까? 아니라는 것. 유통기한이 짧은 것을 살수록 마트는 순환이 잘 되고, 그래서 버려지는 물건이 적어지며 따라서 가격을 올리지 않고 좋은 물건을 계속 팔 수 있게 되니, 소비자도 역시 좋은 물건을 계속 살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렇다. 이런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함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것이 결국 운으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고.

 

두번째는 그가 속해 있던 법률사무소에서 사람을 뽑을 때의 일화. 심혈을 기울여 뽑은 사람이 못 오겠다고 했을 때, 그 난감한 상황에서 창업자인 변호사가 지원서 중 아무 것이나 뽑아들고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던 장면.

 

도대체 지원서 내력도 보지 않고, 면접도 보지 않고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사무소를 지원했다는 것. 즉 자신의 사무소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니 누구를 뽑아도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 이 장면을 보면서 정치를 한다는 지원자 가운데 제비뽑기로 아무나 뽑아서 임기 내에 정치를 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자신은 정치를 하고 싶어하고 그런데도 제비뽑기로 뽑히니 선거운동으로 수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할 필요없고, 다른 사람에게도 소음을 제공하지 않아도 되고 그게 그거인 공약을 가지고 고민하지도 않게 하니... 한번 시도해 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세번째는 우리나라 교육과 관련지어서 봉사활동에 대가가 따르면 제로에 해당한다는 말. (마찬가지로 자신이 한 일에 어떤 대가가 따르면 그건 봉사가 아니라고 한다) 세상에 학생들 봉사활동에 점수를 주어 입시에 참고자료로 쓰고 있으니, 그게 무슨 봉사활동인가? 입시활동이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데, 우리는 내가 하는 일을 모두가 알게 기록해서 점수로 남겨야 하니, 하지 않은 일도 했다고 기록하게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그건 운을 살리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운을 죽이는 봉사활동이다. 이런 일은 지양해야 한다. 봉사활동에 무슨 점수? 그 발상 자체가 우습지만 무섭다.

 

이렇게 이 책은 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운이라는 것이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든 잘살고 싶을 테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자기계발서보다 더 좋은 책이 바로 이런 책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 운이 자신의 삶이다. 삶에 따라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운이다. 그런 운이 우리 삶에서 70%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당연함을 수많은 사람을 만나본 변호사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읽어 볼 만하다. 무겁지 않게... 그러나 많은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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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사온 2022-07-19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운칠기삼을 깊이 생각 못했는데 운이라는 것을 살아온 삶에 따라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주 자연스러운 거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kinye91 2022-07-19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군대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시민운동
와다 하루키 외 지음, 이원웅 옮김 / 오름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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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도록 해결이 안 된다. 정부 차원에서 진상규명하고 사과하고 보상을 하면 한방에 끝나버릴 일인데...정부는 이미 협정으로 끝났다고 하고, 소위 지식인들이란 자들은은 자기들 유리한 자료들만 대상으로 논지를 펼치고, 보상은 정부 차원에서는 없다고 못박고 있는 상태.

 

이게 벌써 몇 년이냐?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지 70년이 넘었는데도, 엄연한 주권국가로서 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해주는 일은 위안부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약간의 일. 그것도 많은 압력이 있은 뒤에야 이루어진 일이니.

 

가장 중요한 일은 진상규명이다.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여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자료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료들을 종합하는 사고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제국주의는 이미 잘못되었음을 전세계가 인정했다.

 

지금 정부가 한 일이 아니라고, 자신의 나라 과거 정부가 했던 일이라고 지금 정부의 책임이 면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책임은 완전히 청산하기 전까지는 계속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책임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끝이 안 난다. 이게 지금까기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일본 정부가 부정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미약하지만, 그리고 우리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일본 정부에서도 사과를 한 적이 있다.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하려고 한 적도 있고. 물론 피해자들이 만족감을 느끼고 완전히 용서를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되는 데는 국가 간의 외교 능력도 필요하지만 자국 내 시민운동의 역할, 즉 깨어있는 시민들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정부는 시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데...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또 그것이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쪽으로 이루어졌다는 쪽으로 알려져 있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운동이었지만,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여러 논의를 거쳐, 정부와도 협의를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다. 시민사회가 깨어 있을 때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일본에서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만큼 시민사회가 중요하다.

 

이 책은 그 과정과 결과를 담은 책이다. 일본 편자들이 자신들이 한 일을 여러 자료를 통해 밝히고 있는데, 결과는 실패다. 이 운동은 실패했다. 실패한 원인들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이들은 우선적으로 홍보부족을 들고 있다.

 

자신들이 하려는 취지가 왜곡되어 보도되고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으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위안부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그렇다고 완전한 실패는 아닌 것이 필리핀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

 

다만, 우리나라와 대만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원인을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서 추진해서 정부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 이 위로금을 받으면 일본 정부에 소송을 할 수 없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위로금을 받는 일과 국가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별도라는 것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홍보부족은 피해자 당사국들에서 벌어지는 시민운동의 주체들을 설득하지 못했던 것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나 대만에서도 위안부를 돕는 단체가 있는데, 이들 단체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시아여성기금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시하기 전에 이런 단체들과 먼저 의논을 하고 조율을 하는 과정을 거치며 양해를 구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런 일은 다시 10년 전후로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다.

 

전후 50주년을 맞아 일본 시민사회에서도 제국주의 시대에 벌였던 잘못들을 바로 잡고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가고 싶단 생각을 했나 보다. 그래서 과거의 일을 청산하는 운동을 하고, 정부에도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그 일을 추진하려고 하지 않자, 먼저 민간에서 기금을 모아 피해를 본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지원을 하고자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 운동을 했다고 한다.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정부가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사람도 있는데, 그들 역시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사과하고 보상해야 하지만 지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고도 한다. 

 

그래도 사무적인 기금은 정부에서 내고, 총리 사과문까지 동봉해서 지원금을 주겠다고, 이 일을 하면서 일본 사회에 과거의 일을 밝히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일본 국민들이 모금에 참여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게 되니 자연스레 교육적 효과도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다고.

 

이렇게 일본에서 벌어진 위안부 문제에 관한 시민운동은 몇 년 지속되다가 중지하게 된다. 그리고 잊혀졌다가 2010년대 들어와 다시 한번 불거진다. 비슷한 민간기금 문제로... 참나,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운 것인지...

 

일본 정부는 한결같이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고 나오니, 최소한 1995년처럼 총리 사과라도 했으면 좀더 나았으련만... 일본 시민운동 단체들도 힘이 많이 떨어져 이 문제는 또 흐지부지 되고,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지속되고 있다.

 

역사의 어느 단계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다. 그 일은 언제고 다시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하여 진상규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적어도 학자들이 역사적 자료들을 찾아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책임을 후대들이 지어야 한다. 후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조상들이 잘못한 일은 후손들이 마무리해야 한다. 그것이 인류다.

 

지금 일본에서는 시민사회가 많이 위축되었다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과거에 일본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이들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가해국 시민들의 압력이 가해국 정부의 사과를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되니,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할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실패의 기록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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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
토니 모리슨 지음 / 을유문화사 / 199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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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 소설 중에 두 번째로 읽은 소설. 최근에 다시 번역이 되어 출간된 책이 있지만,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이 책, 아주 오래 전 번역본으로 읽었다. 책 사진이 알라딘에 나와 있지 않으니.. 아주 오래 전에 출간된, 1993년에 출간된 책이다.

넬과 술라. 우리나라 말로 풀이하면 달동네라고 할 수 있는 바닥촌에서 살아가는 흑인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인데, 그 중에서도 동갑내기 넬과 술라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격이 정반대인 듯하지만 이들은 쌍생아라고 할 수 있다. 교양있는 엄마에게서 자란 넬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엄마에게서 자란 술라. 그런데도 이들은 서로 통해 늘 붙어 있고, 함께 지내게 된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어린 시절 여러 사건들을 겪는데, 흑인들이 겪는 일, 특히 여성들이 겪는 일들이 소설 속에 잘 드러나고 있고, 넬이 결혼하고 술라가 떠나면서 소설의 1부가 끝난다. 여기까지 함께 했던 두 소녀의 어린 시절이다.

 

2부는 10년이 지나서다. 술라가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불길한 기운과 함께 돌아온다. 술라가 돌아오고 넬은 남편을 잃게 된다. 술라로 인해 마을 사람들 역시 긴장하게 되고, 오히려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

 

마치 물고기들이 많은 수족관에 상어를 넣어두면 물고기들이 더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그런 장면들인데... 자유롭게 살아가던 술라 역시 한 남자에게 자신을 정착시키려 하는 순간 버림받는다.

 

그렇다. 술라가 지금까지 보여준 삶은 정착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그냥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만 살아가는 모습. 그것을 자유라고 하겠지만 넬과의 관계에서 보면 그건 두려움이다. 자신이 없을 때 자유로 자신을 포장하는 그런 모습.

 

결국 흑인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위악의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그마저도 잃게 되면 바닥의 삶으로 떨어짐을 술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넬은 이미 그러한 정착하는 삶을 받아들였기에 약해 보이지만 끝까지 살아남게 되고, 술라는 반대로 강해 보이지만 속은 더 없이 여린 존재이기에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된다. 이렇게 이들은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을 느끼며 지냈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두 여인을 중심으로 흑인 마을에서 흑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와 고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결코 그 고통에 굴복하지 않는 태도를 만나게 된다.

 

소설 마지막에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넬이 죽은 술라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는데... 이는 이 둘이 하나임을 알려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흑인들은 가장 높은 지대에 살고 있지만 가장 힘든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고 백인들에게 굽실대지도 않는다. 그들은 서로 돕고 산다.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후일담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이들 삶을 엿볼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을 대하는 태도. 요양원에 노인들을 보내는 모습에 관해서...

 

백인들은 늙은이들을 내보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흑인들의 경우 그들이 가도록 하게 하는 데는 상당한 대가가 지불되었다. 혹시 어떤 이가 늙고 홀로됐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가서 마루를 닦아 주거나 요리를 해주었다. 그들이 미치거나 다룰 수 없게 되었을 때에만 그들은 요양소로 떠나도록 되어 있었다. (221쪽)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렇게 살던 흑인들도 개발의 붐에 밀려 공동체를 잃어가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젠 어떤 장소조차 남겨져 있지 않고, 각자의 텔레비전과 전화를 가지고 있고, 남의 집들에는 점점 덜 들르는 각각의 집들만 있게 되어 버렸다. (223쪽)

 

술라라는 악역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술라가 죽은 뒤 그들은 구심점을 잃고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마을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공동체가 아닌 그냥 스쳐지나가는 장소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소설은 흑인 마을의 부침을 두 여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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