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 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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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일본편이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대중들에게 알린 것이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였는데, 그 책에 이어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도 나왔고, 일본 문화유산 답사기도 나온 것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늘 이야기하는 일본. 지금은 사이가 너무도 좋지 않아 여행을 가기도 꺼려지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벌어지고 있고, 일본에서는 혐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현실이라 먼 나라라고 해야만 하지만...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 역사적으로도 여러 영향을 주고받은(?)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삼국시대 이전에는 아주 가까운 나라였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백제 편에서 나당연합군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는 사실, 그런 유적이 일본에 남아 있다는 것을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으니, 더욱 가까워야 할 나라가 더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너무 가까워서 서로를 인정하면 자신이 낮아질까 두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는데, 가깝기 때문에 먼 나라에 준 피해에 비해 더 많은 피해를 주기도 했는데, 그 피해가 쌍방이라기보다는 일방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일방이었던 피해와 가해 관계에서 가해 편에 서 있는 나라가 진정한 반성과 참회, 그리고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관계는 좋아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반성 없이는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지금 일본이 하고 있는 일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모르쇠할 수는 없다. 일본과 우리가 한때는 매우 긴밀한 관계였다는 것까지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 수도 있다는 것. 특히 일본은 지정학적 위치상 우리나라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았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책에는 그래서 '빛은 한반도로부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일본의 문화 중에서 한반도에서 온 것이 꽤 많고, 그들 역시 그들 언어로 '도래인'이라고 부른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한반도에서 온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일본에 있는 우리의 문화를 답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 여전히 많은 우리의 문화가 있다는 것, 특히 도자기에 관해서는 일본인들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도자기의 시조라고 '도조 이삼평비'가 있다는 것. 또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켰다는 것.

 

일본 속에 남아 있는 한반도의 영향을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일본의 '규슈'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곳도 있지만, 적어도 삼국시대 또 조선시대의 한반도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 규슈. 이 규슈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답사를 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작은 나라가 아니라 한번에 다 돌아볼 수는 없다. 게다가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여행을 하면 시간을 많이 잡아야 한다. 그럼에도 일본 여행의 장점은 가깝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제주도에 가는 것보다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쓴다면 갈 수 있는 곳이 일본이기 때문이다. 특히 규슈는 그런 일본에서도 더 가깝다고 한다.

 

근대 이전에 배로 여행을 할 때 한반도에서 먼저 닿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규슈'였을 테니, 일본 문화유산 답사로 먼저 규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유홍준 특유의 문체가 잘 드러나고 있는 답사기. 일본에 여행하기 전 이 책을 읽고 또 들고 일본 여행을 한다면 더 깊이 일본 여행을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꼭 일본에 여행 가지 않더라도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앉아서 하는, 그것도 최고의 안내자와 함께 하는 일본 여행이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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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 장영은 엮음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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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많이 들어본 작가다. 나혜석. 나는 그를 화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은 화가로서의 나혜석이 아니라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나혜석이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온전한 자아를 글을 통해 내보낸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림으로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지만,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존재들에게는 더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충격을 무마하기 위해 그들은 글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림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이 집중하는 것은 새롭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사생활이다. 흠집을 내기 위해, 그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조그마한 잘못을 트집잡기 시작한다.

 

본말전도가 시작된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런 주장이 나왔는지, 또 그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들이 한 말이 아무리 옳아도 시대와 불화하는 생활이 약점으로 잡혀 처절하게 무너져내리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권리와 같은 권리를 주장하는 존재들을 무너뜨린다. 논리가 아니라, 감정으로, 선동으로. 하여 그들 주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이미 등을 돌리게 만든다. 나혜석도 그런 반격을 받게 된다.

 

여성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한 나혜석은 사생활로 인해 당시 주류 사회에서 내쳐지게 된다. 그가 주장한 것과 상반되는 결과를 얻기도 한다. 그렇게 나혜석은 그림이나 글로 후대 사람에게 알려지기 보다는, 남성 권력들의 이야깃거리로 남겨지게 된다.

 

프랑스 유람, 거기서 최린을 만나 불륜에 빠져 결국 이혼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우리나라 여자 화가. 이정도로. 자, 여기에는 나혜석이 무엇을 주장했고, 어떤 삶을 살고자 했는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냥 흥미거리, 또는 시대를 앞서 연애를 해서 불운한 삶을 살아간 사람 정도로만 남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나혜석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 그가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를 그의 글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나혜석이 쓴 글을 읽고,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달랑 몇 문장으로만 기억하는 나혜석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해 보라. 자신이 이혼한 경과를 당당하게 글로 써서 발표할 수 있던 사람이 그 당시에 얼마나 되었겠는가. 나혜석은 자신이 어떻게 결혼을 했고, 또 이혼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글로 써서 세상에 공표했다. 이 책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이다. '이혼 고백장'이란 글이다. 아마도 이 글을 통해 뒷담화로서의 나혜석이 아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나혜석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글 전에 소설도 발표했다. '경희'라는 소설을 보면, 주인공 경희는 나혜석의 젊은 시절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교육, 당당하게 한 인간으로 인정받으려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물론 소설은 교육을 받은 여성이 집안일도 잘하는 것으로 표현해, 여성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남자들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들은 공부만 하면 되지만, 여자들은 공부에다 집안일도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했던 시절이었음을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혜석은 점점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글로 써 발표한다. '모母 된 감상기'에서 나혜석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을 얼마나 속박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표현한 사람,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산 사람. 어쩌면 시대를 앞서 갔기에 더욱 힘든 생을 살아야 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혜석은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들이 나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나혜석은 '글 쓰는 여자'가 되었을 거고, 그런 글들이 남아 씨앗이 되어 발아되어 싹을 터서 열매를 맺기에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경희'에 나오는 장면으로 글을 맺는다. 경희가 자각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나혜석 자신이 자신에게 한 말이리라.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 산정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것도 사람이 할 것이다. 오냐, 이 팔은 무엇하자는 팔이고 이 다리는 어디 쓰자는 다리냐?

  경희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두 다리로 껑충 뛰었다.

 (소설 '경희'의 끝부분. 이 책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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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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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소설을 읽고 있는 중. [28]을 읽다. 제목이 무슨 뜻일까 생각하면서 읽는데, 단순하게 읽으면 감염병이 돌고 봉쇄된 화양이라는 도시의 28일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립된 도시에서 겪게 되는 28일.

 

작가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28은 여러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제는 <화양 28> 이었어요. 화양이라는 단어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빼기로 했어요.(웃음) ‘28’은 독자들한테 성질 나면 한번씩 이 제목을 읽어 보라는 배려라고 할까.(웃음) 그리고 2하고 8을 더하면 0이에요. 아무 것도 없는 제로 상태. 화양이라는 도시가 완전히 폐허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제로상황이 되는 걸 보여준다, 숫자적인 풀이는 그래요. 의학적으로도 28일은 뭘 할 수가 없는 기간이에요.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원인균을 밝혀내는 데에도 오래 걸려요. 그걸 밝혀야 백신이니 진단키트가 나오는데. 에이즈 원인 바이러스를 밝히는 데에도 4년이 걸렸어요. 그러니까 28일은 살기 위해서 투쟁하는 기간이에요. 개와 인간이 살기 위해서 투쟁하고, 공명해 가는 시간

(출처:  http://news.kyobobook.co.kr/people/writerView.ink?sntn_id=7208)

 

소설은 중후반까지 굉장한 흡입력으로 나를 이끌었다. 읽으면서 여러 사건들이, 여러 소설들이 겹쳐 떠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카뮈의 [페스트]도 떠오르고,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도 떠오르고, 우리나라 광주민주화운동도 떠오르고, 지금 전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판데믹도 떠오르고, 작가의 말에서처럼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으로 살처분을 당한 동물들도 떠오르고.

 

여러 사건들, 여러 소설들이 이 소설에 들어있고, 또 작가가 쓴 소설, [내 심장을 쏴라]에 나오는 인물도 나오기도 하고, 특이하게도 재난 상황이라면 인간 중심의 소설이라고만 생각하는데, 개가 화자로 나오기도 한다.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빨간 눈의 괴질이라는 병에서 이상하게도 반공이데올로기가 떠오르고,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격리시키는 힘이 있음도 생각하게 된다. 인수공통감염병이기 때문에 당연히 동물도 주인공이 되겠거니 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개 '링고'는 감염병이라기보다는 개를 괴롭히는 인간들에 저항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자신이 사랑하던 개 '스타'의 죽음을 이끈 인물들에게 복수를 하는 '링고' 여기에는 인간들의 잘못으로 인해 죽어가는, 또는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에 대한 연민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도, 소위 우리가 욕을 할 때 쓰는 '개만도 못한'이라는 표현이 무색하리만큼 링고는 뚜렷한 목표와 한없는 인내심을 지니고 행동하는 개로 나온다.

 

 

인간을 부끄럽게 하는 개다. 그러니 우리가 별다른 죄책감없이 살처분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를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한다.

 

재난이 발생했다. 원인은 모른다. 질병에 걸리면 며칠 내로 죽는다. 어떻게 감염이 되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걸리면 대부분 죽는다. 이때 가장 간단한 방법은 봉쇄다. 대체로 감염병이 창궐할 때 하는 대책이다. 더이상 외부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 그러나 갇힌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지 않는 봉쇄는 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극심한 공포 속에서 자신만은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치안은 붕괴된다. 치안이 붕괴되는 모습을 노수진이라는 간호사를 통해 잘 보여준다. 재난으로 인한 봉쇄, 대책 없는 봉쇄는 여성들에게 얼마나 고통으로 다가오는지를 노수진 간호사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눈 먼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약탈과 강간 장면이 연상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있다. 구급대 팀장인 한기준 같은 사람.그런 사람들을 통해 재난 속에서도 사람들은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봉쇄된 화양에서 사람들은 시청에 모인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이 시청 앞 광장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재난 상황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광주민주화 운동 때 도청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장면.

 

여기에 동물 편에 서 있는 서재형 같은 인물로 인해 동물을 무작위로 살처분하는 것이 얼마나 비인도적이고 감염병을 치유하는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언론의 문제는 김윤주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기사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지니는지, 또 한 사람의 인생을 파탄낼 수 있는지를 김윤주의 기사를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는 박동해.

 

작가는 박동해의 행동을 통해 우리가 감염병에 대처하는 방식이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있지만 후반부로 가면 사건이 단순해진다. 링고의 복수, 군인들의 발포. 이것이 끝이다.

 

감염병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정부는 어떻게 이 사태를 마무리하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보여줄 수가 없다. 그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마치 광주민주화운동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과 같이, 이 소설 역시 결말은 그렇게 미완으로 끝난다.

 

다시 생각하자. 극한의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까? 우리는 결코 고립되어 살아갈 수 없다. 재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돕는 모습을 통해 재난을 극복해갈 수 있다. 일방적인 통고나 혼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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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리커버 특별판)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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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가 경험하기 힘든 곳이 정신병원일 것이다. 우선 정신병원 그러면 정상적이 아닌 이라는 생각부터 한다. 온전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있는 곳. 비정상이 판치는 곳. 그들에게는 권리도 제한된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그곳을 경험하기는 참 힘들다.

 

정신병원이라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쳐서 들어왔거나 들어와서 미쳤거나'라는 말이 있듯이 이곳에서는 소위 정상적이라는 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어보라. 그들도 정상인들과 똑같이 협력하기도 갈등하기도 한다. 그들이 있는 곳도 세상일 뿐이다.

 

작가는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물론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래도 정신병원이라는 곳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다. 환자로서가 아니라 환자를 지켜보는 사람의 처지에서. 아마도 그런 경험을 통해 정신병원도 사회의 일부임을 자각했으리라.

 

소설은 환자의 처지에서 쓰였다. 그럼에도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정신병원에서 하는 환자의 말. 믿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서술자의 진술을 신뢰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특히 이 소설은 심사위원회에서 자신이 여기서 어떻게 지냈는지를 진술하는 내용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것이 감정을 이입하는데 도움이 된다.

 

소설 말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는 세상에 나오기 위해 준비를 한다. 이제 그도 당당한 존재로 자신을 인정하고 세상에서 함께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글을 쓴다. 나갈 준비로. 하지만 쓰면서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는다는 것, 자신 속에 갇혀 있는 또다른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고 그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면에서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그런 힘을 이야기가 주고 있다.

 

승민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볼펜 한 다스가 사라졌다. 노트는 열 권으로 불어났다. 그 사이 나는 무한히 자유로웠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온전히 나 자신이었다. 인생의 표면을 떠돌던 유령에게 '나'라는 형상이 부여된 것이었다. 그것이 내 안에서 나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333-334쪽)

 

이렇게 내 안에 있던 또다른 나로 인해 고통받던 나에서, 그를 또다른 나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여러 모습을 확인하고 인정하게 된 것.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나'에게는 '승민'이라는 자신의 길을 가는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와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설은 정신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들끼리 맺는 관계들이 소위 정상인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그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규정짓는 것이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아무리 가두어 두려고 해도 가둘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 인간은 본래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 따라서 자유를 잃은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은 존재가 되는 것. 정신병원에서 끊임없이 말썽을 부리는 것은 그들이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승민. 그러나 자신이 글라이더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았던 기억을 버리지 못하는, 다시 한번 완전히 실명하기 전에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승민을 통해, 자신 속에 자신을 가두었던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게 된다.

 

승민과 함께 탈출한 다음 주인공인 '니'는 자신을 가두었던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더이상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또 왜곡하지도 않고 그 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젠 더이상 사회에서 도피할 필요가 없다.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하던 것들에게 가슴을 쫙 펴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내 심장을 쏴라" 그렇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두려움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추어진 자신을 계속 가둘 수만은 없다. 그런 자신을 대면해야 한다. 물론 두렵고 어렵겠지만 대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여 이 소설은 정신병원에 갇혀 있던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펼쳐가지만, 정신병원을 사회로 확장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나'를 바로 우리 자신으로 바꾸어서 읽으면 좋다. 우리들 삶도 이렇게 비틀려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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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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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을 뒤로 돌릴 수는 없다. 이미 시작된 기술변혁의 시대에 뒤따라가기만 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 적어도 이미 변하는 시대라고 인식했다면, 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변화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

 

현대는 스마트폰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손 안에 든 그 작은 기계가 우리들 삶 전반을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결제도 현금으로 하지 않는다. 현금의 시대가 카드 시대로 넘어간 지 오래지만 이제는 카드 시대로 저물어 가고 있다. 그냥 핸드폰 하나면 다 된다.

 

심지어 자신을 인증하는 것도 주민등록증이 아니라 핸드폰으로 인증을 하게 된다. 주민등록증을 제시해도 인증을 하지 못해 물건을 구입 못할 때도 있다. 핸드폰이 없다면. 그만큼 우리들 생활에서 핸드폰은 사치품, 기호품이 아니라 필수품이 되었다.

 

핸드폰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핸드폰을 이용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원격수업을 하는데, 컴퓨터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아이들은 핸드폰으로 한다. 언제 어디에서고 핸드폰만 있으면 학습이 가능해 진 것이다.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더더욱 필요해진 것이 핸드폰이다.

 

실시간 수업을 하는 것도 핸드폰으로 할 수 있다. 그러니 가장 보수적이라는, 시대가 변한 다음에야 비로소 변하기 시작하는 교육에서도 핸드폰은 이미 대세가 되고 있다. 핸드폰 소지를 아무리 금지해도, 학생들은 몰래몰래 들고 다닌다. 핸드폰을 걷어서 보관하고 방과 후에 준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은 공기계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들의 핸드폰을 떠나보내려 하지 않는다.

 

아직도 학교는 뒤처져 있다. 핸드폰에 관한 온갖 규제들이 학생들을 얽어매고 있는 상황. 그나마 코로나19로 인해 핸드폰이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는 도구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 책 최재붕 교수의 '포노 사피엔스'는 이런 시대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변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규제가 여전한 우리나라에서 이대로 가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

 

다른 나라들은 이미 스마트폰을 이용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규제가 심해 많은 부분에서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미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은 우리들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교육부터 금융까지, 심지어는 사교까지.

 

그러니 이런 현실을 읽고 스마트폰 시대를 살아갈 수 있도록 발상을 전환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렇지 못하면 도태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스마트폰, 인공지능 등 이미 전세계는 이쪽으로 가고 있다. 이게 기반한 삶의 방식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직 온라인 플랫폼이 미국이나 중국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그만큼 우리는 오프라인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보라.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광통신망과 거의 모든 국민이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대응을 즉각적이고 적절하게 할 수 있었다.

 

아직 빅데이터를 활용하지 않고 있지만, 방역부분에서는 이런 빅데이터를 이미 활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스레 방역을 통해 스마트폰을 활용한 활동들이 우리들 삶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들 삶의 방식을 바꿔가고 있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하고, 교육 부분도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스마트폰 시대를 인식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그런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최재붕 교수도 말하고 있지만, 우리가 스마트폰 시대를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좀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사람이 기계에 종속되는 삶이 아닌, 더 여유를 가지고, 좀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기반으로 스마트폰 시대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시대는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포노 사피엔스 시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신인류를 만났다. 그런 포노 사피엔스들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세상의 변화를 잘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변화해야 할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는 사람 이 책을 읽어보라. 왜 변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스마트폰에만 전적으로 매달리는 사람,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스마트폰이 주가 아니라 사람이 주라는 것. 사람을 위해서 스마트폰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 그런 사람을 위한 세상을 위한 기반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포노 사피엔스들의 세상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여러모로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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