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 한국인 유일의 단독 방북 취재
진천규 지음 / 타커스(끌레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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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편견 없이 읽기는 힘들다. 그동안 내게 쌓여 있던 배경지식들이 먼저 작동하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책들, 들었던 것들, 보았던 것들,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이 이미 내 안에 자리를 잡고 내 시각을 고정하고 있다. 이런 시각의 틀에 맞지 않는 책은 끝까지 읽기 힘들다.

 

책읽기도 그런데, 정치체제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우리가 흔히 보수다 진보다라고 편 가르기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보수도 진보도 사람들 삶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하는 사상이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살게 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는데 그 방향이 다를 뿐이라고 하면 되는데, 서로 죽이지 못해서 안달인 것이 바로 이런 이념이다.

 

여기에 더 심한 것이 바로 남북 관계다. 좋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경색 국면으로 가고, 한창 전쟁 발발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평화체제로 가기도 하는 등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남북관계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리 긴장이 고조되어도 전쟁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지니고 일상생활을 유지해 가고 있다. 아무리 북한의 침략 위협 운운해도 사람들의 삶은 평온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북한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알 수가 없다. 철의 장막, 죽의 장막, 인의 장막보다 더 강한 것이 바로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이다. 그 장벽을 깨뜨리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노력을 한 사람을 오히려 종북좌파라고 몰아부치면서 우리 사회에서 추방한 것이 남한의 모습이라면, 자본주의를 선전하려는 사람이라고 추방당하는 것이 북한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남과 북은 서로가 서로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가려져 있을 뿐이다. 가릴 뿐이다. 사실을 알리려 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흘리거나 또는 사실을 왜곡한 정보만을 유출할 뿐이다.

 

사실보다는 온갖 추론과 상상만 난무하는 것이 남북관계다. 그래서 우리는 남북관계를 볼 때는 아주 특이한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다. 내 눈에 있는 안경 색깔에 맞춰 그 사회가 보인다. 남한도 북한도 그러한 안경을 아직은 벗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사진기자 출신이지만 미국 영주권이 있는 진천규가 북한을 단독 취재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단독취재라? 북한이 우리나라 기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진천규는 이것이 편견임을 보여주고 있다. 단독취재를 하면서 그는 평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삶을 자유롭게(?-완전히 자유롭게 취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안내원이 늘 따라다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취재와는 다르게 꽤 자율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취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이 사는 아파트에도 들어가 보고, 지하철도 타보고, 버스도 또 산책도 하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 기록을 했다.

 

그가 느낀 것을 하나로 정리하면 평양에 살고 있는 사람도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 이후, 또 미국의 대북제재 이후 어렵게 살아서 얼굴에 궁색함이 가득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그들의 삶에 만족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없는 것. 그럼에도 진천규의 사진이나 글에서 평양 사람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지 않겠는가.

 

북한 사람들의 삶이 우리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의 편견임을 이 책에서 진천규는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나름 자유롭게 취재를 하면서 북한의 실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남과 북이 하루 빨리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 체제를 마련하여 함께 교류하며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자유롭게 교류를 한다면 서로가 지녔던 편견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체제가 달라 막혀 있는 교류의 길을 풀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왕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도 이룰 수 있다. 통일을 잠시 뒤로 미루더라도 남과 북은 서로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고(유엔에 동시 가입이 되어 있으니, 어느 정도 서로를 국가로 인정한다고 할 수 있다)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세상에 세상 어느 나라도 거의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데, 말이 통하는 단 하나의 나라만 여행을 할 수 없는 세상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서로가 오해를 쌓고 그 오해가 쌓이고 쌓여 서로를 불신하면서 계속 담을 쌓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담을 허물기 위해서는 만나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쌓였던 오해도 풀리게 된다. 그런 오해를 푸는 디딤돌로 이 책은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진천규는 또 통일TV라고 하여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는 방송을 하려고 한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를 안경 없이 바라보고 만날 때 통일의 시간도 조금 더 빨라질 것이다. 이제 평양과 서울의 표준 시간은 같다고 한다. 시간만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도 함께 갈 수 있도록 서로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평화로워야 하니까 말이다. 북한에 대한 편견을 덜어버릴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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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1

             - 쓰레기


쓰고 남은 것들은

순환이었다

똥이 쌀의 다른 이름이듯이

부산물은 

다른 산물들을 위한 밑거름

자연의 혈관을 도는

원활한 순환


어느 순간

부산물은

쓰레기가 되어

쌓이고 쌓여

자연의 혈관을 막아

순환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으니

만성 고혈압인 자연


인류세라는 말에

자연의 동맥경화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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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안 수업 - 어떻게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는가
윤광준 지음 / 지와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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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테니까.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같은 사물이라도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많을까? 그다지 많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아름다움을 느끼기 보다는 하루하루의 생활에 빠져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삭막한 삶이라고 할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아름다움도 우리들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에도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듯이, 삶에 여유가 없으면 아름다움을 느끼기 힘들다. 그냥 살아갈 뿐이다. 살아간다는 말보다 살아진다는 말이 어울리는 삶이 된다.

 

그러니 아름다움을 느끼는 삶은 우리들에게 중요하다. 삶을 살아가게 될 테니 말이다. 수동에서 능동으로 삶의 자세가 바뀌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심미안 수업이라고 하지만 딱히 어떤 비결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우선은 경험해야 한다. 한번으로 끝나는 일회성 경험이 아니라 두번 세번 네번 반복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한다.

 

자꾸 경험해야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지식만으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함으로써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장소성이 중요하다. 어느 장소에서 경험하느냐가 중요하다.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 분야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국악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국악 하면 따분하고 지루하다고 여기는데, 국악을 직접 현장에서 들었을 때 그것도 한옥에서 하는 공연을 보았을 때국악이 이렇게나 아름답구나 하고 느꼈다는 것. 이것은 바로 그 장소와 아 름다움이 접목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책으로 아무리 보아도, 해설을 아무리 읽어도 미술관에 가서 또는 전시회에 가서 보는 것만 못하다는 것. 자신의 눈으로 현장에서 봤을 때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건축의 경우에는 이런 말이 기억에 남는다. 좋은 건물에서는 데이트가 잘 된다는 말. 좋은 건물이 내뿜는 그 무엇이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 아름다운 것 사이에 사람들이 있을 때와 추한 것들 사이에 있을 때 사람들 관계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니 우리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생활용품들에서도 이러한 아름다움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디자인이 하는 역할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아름다움을 자신의 외부에서만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 우선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자신의 삶에 여유를 두어야 한다. 삶의 여백이 없으면 아름다움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그러니 심미안을 기르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에게만 책임을 두어서는 안된다.

 

사회적으로 개인이 삶에 여백을 둘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에 그런 여백을 아름다움을 찾는 것으로 채우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삶 도처에 있는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들어올 수 있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 심미안이 길러질 수 있다.

 

이 책, 심미안 수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겠지만, 사회 역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서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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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 - 임승수의 방구석 경제수업
임승수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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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런 질문을 한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무엇? 그러면 공산주의요! 하는 대답이 곧장 들려온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일텐데, 또는 전체주의일텐데, 쉽게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라고 말을 한다. 같은 층위에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닌데 말이다.

 

여기에 분단된 나라에서 살다보니 우리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었다.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것이 있었던 나라에서, 공안 검사들이 꽤 힘을 발휘했던 나라에서, 지금도 종북이라는 말이 상대를 옭아매는데 더없이 좋은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사회주의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서는 안된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상대가 되는 체제는 자본주의다. 이렇게 개념을 명확하게 해야 논쟁이 된다.

 

이념으로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어떤 체제가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나를 끊임없이 토론해야 한다. 토론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을 좀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상대를 억압하고 억누르고 없애기 위해서 하는 토론이 아니라.

 

따라서 이 책은 소중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대등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들 개념을 정리해주고 있고, 왜 이런 체제를 옹호하는지를 두 인물을 통해서 잘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소유와 오평등이라는 가상 인물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장점과 단점, 사회주의의 장점과 단점을 짚어주고 있다. 두 체제가 완벽하지 않다. 세상에 완벽한 체제는 없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삶에 유리한 쪽으로 체제를 바꾸어나갈 뿐이다.

 

따라서 어느 고정된 체제만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두 체제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음으로써 좀더 나은 체제로 수렴되어야 한다.

 

주장은 마음껏 발산되어야 하지만 삶을 통해서 수렴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수렴된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사회주의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주의에서 실현했던 제도나 또는 이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라고 해도 모든 것이 민영화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또 모든 것을 민영화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극소수에게만 부가 집중되고 소외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계도 위협받는 지경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자본주의 요소와 사회주의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두 체제가 갖는 장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제목이 된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는 두 체제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두 체제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무시할 수 없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자유라는 개념이 흘러가는 것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두 체제에 대해서 이해하고 우리들의 삶에 어떤 체제가 더 좋을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적어도 레드- 콤플렉스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처럼 버젓이 사회주의를 이야기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책의 구성이 청소년들이 두 체제를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두 체제에 대한 기본 지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에 대한 찬반, 사회주의에 대한 찬반, 그리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고 한 것이 느껴진다.

 

꼭 어느 체제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절충도 가능하다. 세상은 이렇게 두 체제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며 우리들 삶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체제는 적어도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된다. 그 생각이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몫이겠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책읽기에 응모해 당첨되었다. 덕분에 잘 읽었다. 우리학교 출판사, 청소년들을 위한 책을 꾸준히 내고 있다. 청소년들이 지혜로워지는데 도움이 되는 출판사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좋은 책 꾸준히 많이 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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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우 시는 어렵지 않다.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 일상에서 겪는 일들이 시로 나타난다. 그렇다. 우리 삶이 시가 될 수 있음을 박성우는 자신의 시를 통해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다. 읽으면서 우리들의 생활을 만난다. 이미 떠나온 농촌의 삶도 만나고, 가족도 만나고, 그리고 소소한 것들에서 큰 의미를 만나기도 한다.


  시란 너무도 어려워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그냥 자기들끼리 즐기라고 접어두는 존재가 아니라, 도처에서 시를 발견하고, 또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음을 박성우는 자신의 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시를 보자. 참 짧다. 그런데, 그렇지! 하면서 맞장구를 칠 수 있다.


   칫솔과 숟가락


내 속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칫솔과 숟가락이다


박성우, 웃는 연습. 창비. 2020년 초판 4쇄. 11쪽.


늘 내 입속을 들락거리는 존재. 그것도 보통 사람이라면 하루에 세 번은 꼭 드나드는 존재가 바로 칫솔과 숟가락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보다 적게 들락거리기도, 또 어떤 이에게는 이보다 더 많이 들락거리기도 하겠지만, 입속, 누군가의 입속을 이렇게 자주 드나들면서 구석구석 살펴보는 존재도 드물 것이다.


그러니 이런 시를 읽으면 아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그래, 이것이 시지. 이렇게 내 생활 속에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시라고...


숟가락이 바깥에 있던 존재를 나에게 가져다 주고, 내 속으로 집어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래서 숟가락은 외부와 나를 하나로 연결해 주어 내게 더하기의 역할을 한다면, 칫솔은 내 안에 있던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빼기의 역할을 한다. 


이제는 나에게 필요없는 것들을 꺼내는 것. 덕지덕지 불필요한 것들을 지니고 있지 말라고 하는 것. 그러니 내게 필요한 것을 내 속으로 직접 날라주는 숟가락과 내 안에 있는 불필요한 것을 밖으로 직접 내보내주는 칫솔만큼 내 속을 잘 아는 존재들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하기와 빼기의 조화!


기가 막히다. 늘 손에 쥐고, 내 입 속에 넣었다 뺏다를 반복하는 이 존재들이 이렇게 시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자랑할 줄이야. 이런 시들이 제법 있다. 그렇다고 이런 시들만 있지는 않다. 박성우 시인이 만나는 사람들이 시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사건들도 시에 나오고.


이런 시들 중에서 '나이'란 시. 정말 먹고 싶지 않지만 아무리 거부해도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먹을 수밖에 없는 것. 먹으면 먹을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 


한번 먹으면 뱉어낼 수 없는 불가역적인 존재. 어떤 이들은 이를 부정하기도 하지만, 겨우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도 있었으니,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 


그렇지만 이것을 현명하게 활용하면 정말로 좋은 대접을 받게 해주는 존재. 추함을 넘어 원숙함이 되게 하는 존재. 바로 나이다. 시를 보자.


   나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중심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것


먼 기억을 중심에 두고

둥글둥글 살아간다는 것


무심히 젖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


박성우. 웃는 연습. 창비. 2020년 초판 4쇄. 82쪽.


이렇게 나이 먹어갔으면 좋겠다. 아니다. 먹는 게 아니라 들어갔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나이에 젖는 것, 그것이 물들듯이, 나이 들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가지 않고 나이 들어가는 삶을 사는 것.


그래, 나는 이제 나이 들어가야 한다. 자연스레 나이가 내게 들어와 나를 물들이게 해야 한다. 그래서 중심에서 멀어지지만 남들에게 가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둥글둥글 부드럽게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렇게 나이 들어가야 한다. 물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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