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의 배신 - 편리함은 어떻게 인류를 망가뜨리는가
바이바 크레건리드 지음, 고현석 옮김, 박한선 해제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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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티 응우옌 킴이 쓴 [세상은 온통 화학이야]에 나오는 구절 때문에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다. 그 책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제2의 흡연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책 제목은 '의자의 배신'이다.

 

의자, 우리가 앉아 있는,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존재 아니던가. 그런데 의자가 배신을 한다는 것은 편리함보다는 위험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물론 이 책 영어 제목인 'Primate Change'는 의자의 배신이 아니다. '영장류의 변화 또는 지극한 변화(455쪽)'라고 해석이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우리들 몸을 변화시켰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의자로 대변되는 우리들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 제목을 '의자의 배신'으로 한 것은 '영장류의 변화'나 '지극한 변화'보다는 훨씬 더 잘 이 책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 의자의 배신 그러면 왠지 읽고 싶어지지 않는가.

 

편하라고 있는 의자가 배신을 한다니, 그렇다면 결국 현대인의 편리한 생활이 우리 몸에 위해를 가한다는 뜻인데, 이 책은 거기서 더 나아간다. 현대만을 다루지 않는다. 인간 역사 전반을 다룬다. 인간 역사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 몸에 어떤 건강상의 위험이 닥쳤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이런 학문을 '진화 의학'이라고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구석기 시대, 수렵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인간들은 몸의 활동량이 적을 수가 없었다. 그런 시대에 맞게 인간 몸이 진화되었다고 한다. 진화란 몇백, 몇천, 몇만 년에 걸쳐 일어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 우리 유전자 또는 우리 몸을 변화시킨다. 그러니 문명 생활을 하던 인간들이 겨우 몇만 년의 변화로 몸을 그에 맞게 변화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문명의 발달과 몸의 진화가 불일치하는 현상. 그래서 결국 우리 몸은 앓게 된다.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대인의 삶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움직임이라고 한다. 움직임,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발을 움직여 돌아다니는 것. 걷기의 부족. 전체적인 활동량의 감소.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걷기라고 할 수 있다.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점점 줄어든다. 의도적으로 걷지 않으면 그나마 걸을 수 있는 시간도 없다. 사무실에서 앉아 일하고, 이동을 할 때는 차로 움직이고, 건물 내에서는 최소한의 이동 거리만이 존재할 뿐더러, 층을 옮길 때에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로 움직이니 활동량이 너무도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이런 활동량을 채우기 위해 헬스클럽에 다니거나 요가와 같은 다른 운동을 돈을 들여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것은 바로 걷기라고 한다. 그것도 조금 빠르게 걷는다면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 점을 발부터 턱, 허리, 손까지 인류의 역사와 우리 몸이 지닌 구조, 그리고 현대로 올수록 겪게 되는 질병을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여기에 친절하게도 어떻게 하면 우리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 아주 간단한 방법도 제시해주고 있으니, 여러모로 참조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항들을 몇 개 옮겨 적어 본다.

 

볼프의 법칙은 '뼈의 밀도는 이용하지 않으면 잃게 된다'는 것이며, 데이비스의 법칙은 연조직에서도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현대적인 삶을 사는 우리에게 이두박근 위축 외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해 준다. 이 법칙은 관절 가동 범위나 인대와 힘줄의 에너지 저장 능력도 사용하지 않으면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87쪽)

 

한편 돼지나 닭에서는 새로운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이 아주 작다. 하지만 이 작은 가능성도 수십억 번 겹치면 '어쩌면'이 '언젠가'로 바뀌어서 실제로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동물은 이렇게 집중적으로 키워지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보면 하나의 돌연변이인 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자유롭게 퍼져 나가는 유행병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148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래, 이렇게 우리는 언젠가 대유행이 될 감염병의 위험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경고도 나왔다. 그럼에도 우리들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지금 팬데믹이 일어난 코로나19를 보라.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들 생활방식이 초래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 점을 알고, 이에 대한 백신, 치료제도 중요하지만, 삶의 방식을 돌아보고, 우리들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병행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앉아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의 몸에 나쁘다. 오랜 시간 가만히 있으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이는 대사 폐기물이 근육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일반적인 생각은 고관절 굴근이라는 근육을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287쪽)

 

앉아서 일하는 45-64세 사람들이 은퇴 후 요양원에 들어갈 확률이 40퍼센트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나는 러닝 머신에서 걸으면서 아이패드를 보기 시작했다. (299쪽)

 

아이들을 더 자유롭게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교사들은 창의적이거나 혁신적이라고, 또는 순진하거나 관대하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앉아 있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299쪽)

 

이 부분, 아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 속에서 떠오른 작품은 김기택의 [사무원]이란 시집이다. 이 시집은 현대인의 생활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 종일, 아니 평생을 일만 하는 사람을 '사무원(김기택. 사무원. 창비. 2010년 초판 10쇄.19-21쪽)'이라고 하는데 김기택 시를 보면 그 점이 너무도 슬프게 잘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사무원은 결국 '화석(같은 시집. 58-59쪽)'이 된다. 왜 그들은 새들보다도 땅을 적게 밟기 때문이다. 그만큼 걷지 않는다.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같은 시집. 75쪽)'

 

와! 역시 시인은 시인이다! 이렇게 진화 의학에서 각종 사례를 들어 말하는 것을 시인의 직관으로 표현하고 있다니... 김기택 시인의 [사무원]은 [의자의 배신]과 함께 꼭 읽어야 할 시집이다.

 

이렇게 우리는 사무원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학교에서 조용히 앉아 있기를 강요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 수업 시간에 문제를 일으킨 학생에게 주는 벌이 교실 뒤에 서 있거나, 또는 복도에 나가게 하는 것이었겠는가.

 

앉아 있는 것은 모범생, 서 있는 것은 문제 학생이라는 이분법이 우리나라 교육에 너무도 오래동안 자리를 잡았고, 이것이 결국 우리들을 사무원처럼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현대인의 표상인 것처럼 여기게 하지 않았던가. 섬뜩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걷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기적의 치료제이다. 걷기는 수백만 년 전 초원에서 살던 종들과 우리를 연결하는 일종의 고리이며, 인간의 모든 면에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걷기는 전만으로 인해 허리에 부하가 걸리는 현상을 줄여 주며 디스크 건강을 증진시킨다. 이는 큰 의미를 지닌다. 디스크가 크고 건강할수록 골연관절을 더 잘 보호하기 때문이다. (399쪽)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병원 몇 개를 짓는 것보다 우리들 건강에 더 좋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어디 그런가? 우리나라 도시에 걸어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을 얻기가 어디 쉬운가? 직장에 가기 위해서 걸어서 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겠지만,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걸을 테니, 가까운 학교조차도 버스 정류장으로 한 정거장만 넘으면 버스를 타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이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성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부분에서 지리산 자락에 있는 간디 학교가 생각났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 그런데 이 학교를 설립한 양희규에 의하면 기숙사는 학교에서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이 등교하면서 지리산 자락이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해서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했는데, 이것과 더불어 건강 측면에서도 이는 너무도 훌륭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양희규, 꿈꾸는 간디학교 아이들.가야넷)

 

앞으로 몇십 년 안에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시대 이전의 두 배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그로 인해 지구가 받을 영향을 논하기는 너무 이르지만, 이미 그로 인해 단백질과 미네랄 농도가 떨어지고 있으며 탄수화물 범벅인 먹거리에 당과 녹말이 더 첨가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인류세에 높아지는 이산화탄소에 의해 먹이사슬 밖으로 축출되고 있는 미량 영양소와 이를 갈망하는 인간의 식욕이 앞으로 비만을 얼마나 널리 퍼뜨릴지 궁금하다. (356쪽)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단순히 온실가스의 증가, 그래서 기후 위기를 초래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기후위기가 심각한 만큼 우리들 먹을거리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우리에게 주지만,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그 많아진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 다른 영양소들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겉으로는 더 크고 색깔도 좋은 식물들, 열매들이 맺어지지만, 내용물은 점점 없어지는, 영양소가 훨씬 줄어들어 우리들로 하여금 더 많이 먹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니, 이거야 원.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기후위기와 더불어 식량을 통한 우리들의 건강까지도 위협하는 것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다. 경각심을 지녀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들 삶이 지속될 수가 없다.

 

과학기술, 의학기술의 힘으로 지속되더라도 건강하지 않은, 병원의 삶, 요양원의 삶, 즉 연명하는 삶밖에는 안 될 수가 있다. 그러니 우리 생활방식을 다시 검토하자. 아니, 나부터 내 생활방식을 검토하고 바꾸려고 노력해야겠다.

 

가능하면 걷고, 걸어야겠다. 의자나 소파에 몸을 온종일 맡기는 일을 삼가야겠다. 무엇보다도 내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이런 책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적어도 교육 현장에서는. 에고, 책을 많이 읽으리고 그렇게 강요하는 교육 관료들, 정작 본인들은 이런 책을 읽는지 모르겠다. 너무도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교육 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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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3

           - 인류가 겪은 질병들


욕탕에 몸을 담가

피로를 푸는데

아뿔싸

물이 점점 뜨거워져도

몸은 적응해

끓는지도 모르고

욕탕 안에서

아, 좋다

아, 좋다

결국 익어버린

끓는 물 속

개구리가 되어 버린

미노스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아

죽어버린 미노스


인류세라는 말에

왜 미노스 왕이 생각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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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시선 237
김태정 지음 / 창비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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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시인을 불렀다. 그리고 그 시인의 시집을 사서 읽게 했다. 한 시가 한 시인의 시집을 불러내다니. 시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시들을, 다른 시인들을 불러낸다. 시인들뿐이랴. 시는 우리들 삶을 불러낸다.

 

김남주기념사업회에서 김남주 20주기 추모시집으로 낸 [자유의 나무 한 그루]를 읽다 김태정이란 시인을 발견했다. 아니, 시를 발견했다. 이은봉이 쓴 시다. 그런데 이 시가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런 시인이 있었단 말이지? 한번 그 시를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시집을 검색하니, 한 권 있다. 그래, 읽어보자. 그 전에 먼저 이은봉이 쓴 시부터 봐야겠다. 왜 이 시가 이렇게 마음에 와 닿았을까? 시인이 이렇게 산 사람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햇볕 좋은 날

               - 김태정

 

스님, 이제는 가야겠어요 견디기 너무 힘들어요

언제쯤 가시려고요 지금 가면 안 돼요

가을이 오면 가려고요 햇볕 좋은 날 가려고요

추석 전에 가면 안 돼요 추석 전에는 너무 바빠요

추석만 지나면 한가해져요 스님, 그때는 괜찮아요

그래요 추석이 지나야 가시는 길을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냥 화장해 주세요 달마산에 뿌려 주세요

사흘장은 치러야지요 친구들도 좀 부르고요

알았어요 스님 뜻대로 할게요 좀 기다리지요 뭐

 

추석이 지나고 열흘, 어느 햇볕 좋은 날

그녀는 갔다 바짝 마른 몸뚱이만 남겨 놓은 채.

 

김남주기념사업회, 자유의 나무 한 그루. 문학들. 2014년. 110쪽.시 '햇볕 좋은 날' 전문

 

김태정 시인은 2011년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가 쓴 시집에 달마산과 미황사, 해남이 많이 나오는데, 말년에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이란 시집을 읽다보면 서글퍼진다.무엇인지 모르는 서글픔이 차 오른다. 지나가 버린 과거가 슬픔으로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지나가 버린 과거였으면 하는 것이 아직도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여서 그런가?

 

시집을 읽으며 우리가 거쳐왔던 과거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을 생각한다. 이 시집에서 이 시를 보면서 시인은 '눈물의 배후'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가 흘리는 눈물의 배후는 무엇일지 더 생각하게 된다.

 

  눈물의 배후

 

십년 묵이 낡은 책장을 열다가 그만

목구멍이 싸아하니 아파왔네

아침이슬 1, 어머니,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때문이 아니라

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수염이 덥수룩한 도이치 사내를 펼쳐 보다가

그만 재채기를 했네

자본론, 실천론, 클라라 쩨트킨,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묘지

때문이 아니라

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던

네루다 시집 속엔

오래 삭힌 멍처럼 빛바랜 쑥이파리 한점

매캐한 이 콧물과 재채기는

먼지 때문에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그 말

때문이 아니라

다만 먼지 때문에

 

바람이 꽃가루를 날려보내듯

먼지가 울컥, 눈물을 불러일으켰나

 

청소할 때면 으레 나오던 재채기도

재채기 뒤에 오는 피로도

피로 뒤에 오는 무기력함도

무기력함으로 인한 단절과 해체도

그 쓸쓸함도, 그 황폐함도 다만

먼지 때문이라고 해두자

먼지보다 소심한 눈물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 사소한 콧물과 눈물과 재채기 뒤에

저토록 수상한 배후가 있었다니

 

꼿도 십자가도 없는

해묵은 먼지의 무덤을 열어보다가

그만 눈물이 나왔네

최루가스 마신 듯 매채한 눈물이

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김태정,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 2019년 초판 6쇄. 25-27쪽.

 

아, 이 먼지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슬픔. 그렇다. 눈물의 배후가 바로 먼지였나? 아니다. 눈물의 배후는 이미 변해버린 우리들이다. 과거로 남겨버린, 먼지가 쌓여버린 우리들 과거.

 

그 과거를 들추면 먼지가 풀썩 일뿐. 더 이상 찬란한 광채도, 어떠한 희망도 주지 못하는 그런 과거. 과거는 찬란했더라. 그뿐이더라. 그냥 그렇게 과거는 과거로만 머물고, 먼지가 쌓인 채 우리들 기억 속에서도 사라져가고 있더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지금도 우리가 벗어나지 못한 굴레가 많은데, 이렇게 이것들이 먼지가 쌓인 채로 과거 속에 처박혀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 왔다. 시인 역시 그러했으리라.

 

그래서 시인은 가고 없지만, 다시 시인의 시를 읽으며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시인의 시 때문이 아니라 나도 '먼지 때문'이라고 하고 싶은데, 시에서 먼지는 나오지 않고 오히려 시에 있는 말들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 뿐이니.

 

하지만 슬픔도 힘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눈물을 일으키는 먼지라고 해도, 먼지를 일으켰다는 것 자체는 이미 그것을 내 곁으로 꺼내왔다는 얘기가 되니... 그래, 아직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은 과거.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힘들다'고, 사람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요즘, 김태정 시인의 시를 읽으며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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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다. 혹독한 추위가 시작되고 있다. 겨울은 추워야 겨울답다고,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래도 겨울은 힘들다.

 

  사람에게도 힘들지만, 자연의 다른 존재들에게도 겨울은 힘들다. 그래서 다들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생존을 위한 적응을 해왔다.

 

  하지만 올 겨울은 더 혹독할 것 같다. 자연에게도 그렇지만 사람에게는 더더욱.

 

  코로나19. 한 해 동안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전세계인을 괴롭혔다. 사라질 만도 하지만, 겨울이 되면서 더 기승을 부린다.

 

  질병도 사람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참 견기디 힘든 질병이다. 한 해 내내 이토록 사람들을 집요하게 괴롭히다니.

 

서로의 영역이 붕괴되어 벌어진 현상이라지만, 최첨단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간다는 인간들이 한 해  동안 온전한 백신을 만들지도 못했고, 치료제 또한 개발하지 못한 상태. 이렇게 다시 겨울을 맞이 했고, 없는 사람들에겐 너무도 혹독한 겨울이 될 것이다.

 

케이-방역이라고 해서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잘 막고 있던 우리나라도 점점 확진자 수가 늘고 있다. 한 해 동안 쌓인 피로감들이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해야 할 이 때, 우리는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조류독감까지 유행할 것이라고 하니, 가금류들 또한 힘든 겨울이 될 것이니...

 

이때 마음의 위로를 주는 시를 하나 발견했다. 나무... 우리들에게 늘 희망을 주는 나무이긴 하지만, 이진희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이 시를 읽고는 우리들 내부에서도 이러한 희망, 뜨거움이 간직되어 있거니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시인의 시들이 '불균형, 불완전, 불일치' (시 '저 구름 멀리 흘러가는 곳'(40쪽)에서)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이 시는 그럼에도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 희망이 있는 한 삶은 있다. 삶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희망'이라고 하지 않았나. 밖은 너무도 춥고 힘들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스함을 준비한다. 언젠가 꽃을 피우기 위해.

 

 나무는 겨울에 뜨겁다

 

내면 깊이 상처 입은 이들이

겨울 별장에 스스로를 유폐한 뒤 상처를 덧내며

악취 풍기는 미로처럼 무자비한 계절에 대한

기나긴 비명을

간신히 썼다

지우기를 거듭하는 동안

 

뜨거워진다, 나무는

침묵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같이 보이지만

 

강철 눈보라

은박지처럼 야박한 햇빛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붙박인

나무의 내부는 그러나

 

온종일 걷는 사람의 단단한 종아리보다

질주하는 동물의 터질 듯한 심장보다

쉼없이 노래하는 사람의 달아오른 성대보다

미친 듯 춤추는 사람의 마룻바닥 같은 발바닥보다

 

뜨겁다

 

차디찬 땅속 깊은 곳 어두컴컴한 뿌리부터 뜨거워서

매번 새로운 봄의 문장을 훌륭하게 완성한다

 

이진희, 실비아 수수께끼. 삶창. 2014년. 64-65쪽.

 

1연은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는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악취 풍기는 미로'에서 헤매고 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이 속에서도 준비하는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새로운 희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는 것. 그 준비가 눈에 잘 띄지 않더라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그래 희망은 있다. 이 겨울, 다시 봄을 생각하며 견뎌내야 한다. 아직 희망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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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화학이야 - 유튜브 스타 과학자의 하루 세상은 온통 시리즈
마이 티 응우옌 킴 지음, 배명자 옮김, 김민경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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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자런이 쓴 책 '랩걸'을 읽다가 화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단 생각을 했다. 화학이 우리들 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화학에 대해서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들 삶은 화학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가 입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등등 화학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화학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수포자(수학포기자)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는 과학을 포기했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수포자는 결국 과포자이고, 그래서 과학은 우리들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이 우리들 삶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우리들 삶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과학에서 점점 멀어지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학교 교육을 받을수록 몇몇을 제외하고는 과학과는 담을 쌓고 살게 되는데...

 

담을 쌓는다고 과학이 우리 삶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 하루 생활을 이렇게 화학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니... 경이로운 책이다. 그리고 과학에 관심을, 특히 화학에 관심을 갖게 한다.

 

유튜브로 화학을 알리는 일을 한다고 하는데,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베트남 출신의 화학자 마이 티 응우엔 킴의 책이 쓴 이 책은 화학이 이토록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의 끝부분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과학 스피릿을 널리 퍼트리는 것이 나의 진짜 미션이다. (294쪽) ... 나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과학 스피릿이라는 단어를 썼다.

첫째, 세계를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둘째, 사물 내부의 아름다움을 알아본다. 셋째, 무작위 대조 시험을 기뻐한다. 넷째, 충족되지 않는 호기심 갈증을 느낀다. 다섯째, 복합성을 기뻐하고 단순한 대답을 거부한다. 여섯째, 숫자와 사실을 사랑한다. (295-296쪽)

 

이게 어디 과학자만이 지녀할 자세일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자세 아닌가. 그러므로 이런 과학 스피릿은 우리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 점을 자신이 하루 동안 만나게 되는 화학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렇게 만나는 화학 중에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었던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한다는 문제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불소가 함유된 치약을 쓰는 것에 대해선 환경단체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수돗물에 일률적으로 불소를 첨가한다는 것을 반대했는데... 화학자가 본 불소에 대한 생각은 바로 이렇다.

 

치약의 불화물 함유량은 철저히 통제되어, 효력을 내되 안전한 농도에 맞춰진다. ... 단, 수돗물에 이 정도의 농도로 불화물이 들어 있으면 위험하다. 명심하자. 농도는 언제나 맥락을 봐야 한다. 양치질의 경우 입안에 한정되고, 치약의 양을 조절할 수 있으며, 대부분 다시 뱉어낸다. (63쪽)

 

수돗물은 그렇지 않다. 치약보다 낮은 함유량을 넣어도 농도는 높아질 것이다. 그러니 수돗물에 불화물을 넣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는 지자체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논쟁이 일었을 때 우리나라 화학자들이 어떤 논리를 제공했는지 궁금하다. 물론 마이의 이 주장도 검증할 필요가 있지만. 마이 자신의 주장에 의하면 말이다.

 

여기에 놀랄 만한 이야기를 읽고, 처음 듣는 말은 아니지만,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제2의 흡연이다'라는 말(83쪽)이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한다.

 

오래 앉아 있는 건 운동을 하지 않는 수동적 행위일 뿐 아니라 건강을 해치는 적극적 행위이기도 하다. (83쪽)

 

운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체육 시간을 대폭 늘리지 않았던가. 체육 활동을 주당 4시간 이상은 하라고 하는데... 이것이 너무도 당연함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알게 됐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학생들에게 운동을 권장하고 있나? 코로나19로 쉬는 시간마저 없앤 학교가 많지 않은가. 하루 5-6시간을 꼼짝않고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강요하는 학교라니... 이 책을 읽으니 이건 정말 문제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의 운동량, 한번 진지하게 연구해 봐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들이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단지 학생만이 아니다. 사무원들도 그렇다. 직장인들도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운동할 시간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화학이야기에서 이렇게 운동까지 나아갈 수 있다니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 든다.

 

또 이건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반려 동물과 지내지 않아서 무관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개나 고양이에게 초콜릿을 먹여서는 안 된다는 것. 초콜릿에 들어 있는 테오브로민이라는 성분을 개나 고양이는 분해하기가 많이 힘들다는 것.

 

개에게는 초콜릿이 아주 위험하다. 테오브로민을 매우 느리게 분해하기 때문에, 아주 소량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다. 우리 몸은 독성이 있는 각성 물질을 무해한 다른 분자로 재빨리 바꾸지만, 개의 테오브로민 화학은 그렇게 민첩하지 못해서 분자가 체내에 쌓인다. ... 고양이에게도 똑같이 위험하다. (237쪽)

 

반려 동물과 살면서 그들을 우리 처지에서만 판단하고 대우하면 안 된다는 것을 화학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화학은 우리들 삶과 밀접하다.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새상은 온통 화학이야]다. 화학 아닌 것이 없다. 하긴 우리 몸 자체도 화학이니... 하여 화학은 내 삶을 위해서도 알 필요가 있다.

 

알아야 한다고, 그게 우리 삶을 더욱 잘살게 해준다고 마이는 말하고 있다. 유튜브는 보지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 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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