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학교의 눈물
SBS스페셜 제작팀 지음 / 프롬북스 / 2013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마음이 답답해지는 책이다. 학교에 관한 책이라면 사실 마음을 편하게 하기보다는 더 불편하게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학교는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교육은 즐거움이어야 한다. 세상에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배움의 고통만을 안고 지내는 학교에서 어떻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고통이 즐비한 학교에서 조금이나마 탈출구를 마련하는 일은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는 일이 아닐까. (그러면 안 되지만, 전두엽이 덜 발달한 청소년기에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아주 작은 차이로도 배제시키고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 고통 속에서 서로 연대해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게 되는 모습.

 

학교 폭력은 과연 사라졌는가. 이 책이 나온 것은 2013년. 그때만 해도 학교 폭력은 심각했다. 아니 지금도 심각하다. 오죽하면 학교에 전담경찰관제도가 있고, 배움터 지킴이라고 하여 전직 경찰관 출신이나 교사 출신들이 상주하고 있겠는가.

 

또 웬만한 폭행사건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회부하게 되어 있으니, 이것들만 봐도 학교 폭력은 여전히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심각한데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소송만능주의가 횡행해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해서 행정소송을 거는 학부모들이 비일비재하다.

 

일각에서는 학교 폭력이 변호사들의 새로운 블루오션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이제는 학교 폭력은 학교를 떠나서 법의 세계에 들어서고 있다.

 

법이 교육에 우선하는 시대, 그럼에도 학교 폭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더욱 음성화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방송으로 내보냈던 것들을 그 시작과 과정 결과들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 폭력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뿐만이 아니라 방송에서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또는 학교 폭력에 가담한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학생들과 함께 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의 사례들까지, 또 학부모가 해야 할 일까지 제시하고 있어서 학교 폭력에 관한 종합적인 사례을 알려주고 예방할 수 있는 예방 지침서라고 할 수가 있는데, 문제는 이 책을 읽어도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 말대로 학교를 없애면 학교 폭력이 사라진다고나 해야 할까.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학교 폭력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폭력이 심해지는 사회는 빈부격차가 큰 사회다. 빈부격차가 크다는 말은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 지수가 높은 사회라는 뜻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공동체라기보다는 다른 계급에 의해 불평등하게 유지되는 사회라면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대화나 타협보다는 폭력과 강압이 먼저 나올 뿐이다.

 

그러니 답답할 수밖에.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특히 정치권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인데, 그것이 쉽지 않음은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그럼에도 학교 폭력 예방이나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또 그렇게 교육 정책을 짜고 있기도 하다.

 

이들이 실험한 학교는 '소나기 학교'라고 해서 8박9일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섞어 함께 지내게 하면서 치유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서 운영했다.

 

이를 학교에서 응용하면 되는데, 이 '소나기 학교'와 다른 점은 소나기 학교는 교사 수가 학생 수보다 많았고, 학생 수가 14명으로 아주 적었지만, 대다수의 학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작은 학교를 폐교처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학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기본적인 것은 교사와 학생 간 신뢰관계를 확립하는 거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에게는 허튼 행동을 하지 못한다. 교사와 학생이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또 규칙에 얽매인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서 만남을 이룬다면 학교 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발판은 마련한 셈이다.

 

여기에 학생들이 자존감을 지닐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하고, 비폭력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학교에서는 집안의 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런 일이 선행이 되면서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 한 교실에 20-30명이 앉아 있고, 교사 한 명이 그들과 만나야 하는 구조에서는 학교 폭력이 제대로 예방될 수 없다.

 

또한 입시를 향해 무한히 달릴 수밖에 없는 교육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입시로 인해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넘어선다. 이런 스트레스를 엉뚱하게 옆에 있는 만만한 학생에게 풀기도 하는 것이다.

 

내 맘이 편치 않기에, 내 맘 속에 분노와 울분이 가득 차 있기에 누군가가 잘못 건드리기만 해도 그것이 터져 버리는 것이다. 이런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입시위주의 교육을, 학교에 더해서 학원이나 과외로 더해지는 공부까지 문제삼아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생존을 걱정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의 생존이 문제가 되기에 입시에 목매달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학교만 보아서는 안 된다.

 

물론 최초의 책임은 학교가 져야 하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변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해야만 학교 폭력을 없앨 수가 있다.

 

이래서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학교 폭력을 없애는 길은 참으로 먼 길이라는 생각. 그럼에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 때문이다.

 

여전히 학교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집단 생활을 하는데 그들 사이에 폭력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스웨덴 교장의 말을 명심하자.

 

학교 폭력은 학교에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막는 교육을 해야 한다. 한시라도 눈을 떼서는 안 된다. 사회에서도 누구나 생존을 넘어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 폭력이 줄어들게 된다.

 

'학교의 눈물'이 앞으로는 '학교의 웃음'이 되는 그런 교육, 그런 교육정책, 그런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교와 관련이 있을테니, 이 책을 꼭 읽고 현실을 바로보았으면 한다.

 

학교에서는 법보다는 교육이 먼저라는 사실을, 법만으로는 학교 폭력이 해결되지 않음을 명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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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5 1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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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5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스러운 국민 -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근대 국가의 법과 과학 RICH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총서 5
홍양희 엮음,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젠더연구팀 기획 / 서해문집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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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차별은 사라졌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여성이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차별의 뿌리는 깊고도 깊다는 것을 이 책이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일제시대부터 시작을 한다. 법 규범이 근대적으로 확립되기 시작한 시기부터 여성이 법에서 어떻게 규정되었는지를 살핀 책이다.

 

여러 논문들을 모아 놓은 책인데, 법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이 얼마나 차별을 받았는지, 여성을 독자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이나 가족 구성원의 일부로만 인식했음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가령 이 책에서 이야기한 간통죄를 보면, 지금은 다행히 폐지되었지만,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법이었다고 한다.

 

배우자가 있는 여자에게만 간통죄가 성립되었고, 간통죄로 고소를 하면 반드시 이혼을 해야 했으니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아내들은 남편의 간통을 알고도 고소를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반대로 남편이 아내와 이혼을 하고 싶은 경우,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고 싶은 경우에는 아내를 간통죄로 고소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여성에게 불리한 법이었다.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음행매개죄나 혼인빙자간음죄 등에서도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온전한 인격체로 다루지 않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해방이 되고 나서 국적을 취득하는 과정에서도 여성에게 불리한 법 적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은 폐지된 호주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가족을 남편을 중심으로 보았듯이 국적 역시 남편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동성동본금혼법도 문제가 되는데, 개인이 사랑을 하고 결혼할 자유를 구태의연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옥죄고 있었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법에 의해 남성들보다는 주로 여성들이 고통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이런 법들은 폐지가 되어 다행이지만 이런 법들이 유지되어 왔던 관계로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차별의 잔재들이 남아 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성에 비해 여성이 월급을 적게 받는다든지, 취업을 할 때 불이익을 받는다든지, 육아휴직을 하고 재취업을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가사노동과 직업노동을 병행하는 일을 도맡게 된다는지 하는 등등 여전히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지낸다고는 할 수 없다.

 

여기에 마직막 부분 배아복제로 인한 난자 제공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난자를 여성과 동떨어진 어떤 사물로 취급하고, 이것을 국가주의에 환원시킨 그때의 열광이 여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국익을 위해서 개인의 몸을 희생하라는, 그것도 여성의 몸을 희생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논리인데, 그것이 먹혀들었던 때가 있었음을, 적어도 이러한 과학 연구는 여성을 떠나서 생명이라면 모두가 존중받아야 함을, 신성불가침한 생명권이 있음을 망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논의들이 쌓여 세상이 조금더 평등한 쪽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단지 남성과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이 되고 싶은 여성, 여성이 되고 싶은 남성 등 다양한 성정체성이 있음을, 그것을 인정해야 발전된 사회임을 생각하게 한다.

 

이제는 법 쪽에서는 남녀가 많이 평등해졌다고 본다. 세상에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아내들에 관한 법이 있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는 않았다. 남성과 여성만이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많은 젠더들에 우리는 아직도 법적으로 또 암묵적으로 차별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봐야 한다.

 

법 뿐만이 아니라 내 일상생활에서 이런 차별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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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세계에서 인증받지 못한 나는...


헌책을 팔러 중고서점에 갔다

본인확인을 하고 내 계정에 들어갔음에도

휴대전화 인증을 해야 한다고 한다

휴대전화 없는데요

안 된단다

주민등록증으로도 다른 신분증으로도

안 된단다

애오라지 휴대전화 인증만 가능하단다

날 증명해줄 증명서를 지닌 내가

바로 앞에 있음에도

휴대전화가 없으니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나를 인증할 수가 없다


아날로그 판매를 위해 들고 간 책들이

0과 1의 세계에 들지 않았다고

판매를 거부당했다

제4차산업혁명이라고 모든 것을

0과 1로 만들어내는 디지털 시대

0과 1로 인증받지 못하면

육체를 지닌 실체하는 나는

나일 수가 없다, 내가 아니게 된다

0과 1이고 싶지 않은

피와 살을 지닌 나를

다른 방법으로 증명할 수는 있어도

휴대전화로는 인증받지 못하는 나는

디지털 세계에선 내가 아니다

가상의 세계에선 존재할 수 없다

인증할 수 없으니까

휴대폰이 없으니까


그럼

어떤 휴대전화든 있기만 하면

나는 내가 될 수 있다.

0과 1의 세상,

나를 만들기 얼마나 쉬운가

수많은 내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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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4-12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객이 전도된 세상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끔직한 현실이네요.

kinye91 2017-04-12 21:2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나를 앞에 놓고도 나를 인정받을 수 없는 세상, 과연 디지털 세계에서 나란 누구인가, 또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네요.
 
광주시편
김시종 지음, 김정례 옮김 / 푸른역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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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김시종 시인의 광주시편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이미 37년이 지난, 일제강점기보다도 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광주에 관한 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

 

일제강점기 36년(통칭 말하는, 이 시집에서도 36이라는 숫자는 일제강점기를 뜻하는 숫자로 나오니 정확한 기간 대신에 이 기간을 쓰도록 한다)이 제대로 해결이 되었던가.

 

청산이 되었던가. 아니다. 지금도 친일인명사전을 둘러싸고도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 있듯이 친일대상자들이 거의 세상을 떠났음에도 명백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광주는 아직도 대상자들이 살아 있으니, 더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친일잔재 청산이나 광주민주화운동이나, 좀더 내려가면 4.3운동이나 모두 미완성인, 진행 중인 역사이다.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역사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김시종의 광주시편을 읽어야 한다. 그의 광주시편은 제두 4.3을 겪고 일본으로 밀항한 시인이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도저히 침묵할 수 없어 언어로 표출해낸 결과물이다.

 

얼마나 안타까웠을 것인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듣기만 하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시인. 그의 마음 속에서 터져나오는 피울음을 언어로 표현해낸 것, 그것만이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더더욱 슬픈 그런 시편들.

 

게다가 우리 글이 아니라 일본어로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표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황.

 

그런 마음들이 절절하게 담겨 있는 시편들이 이 시집이다.

 

최근에 광주와 관련하여 이순자의 회고록이 문제가 되었다. 전두환도 피해자라고... 사람들이 분노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심사인가.

 

모 대통령 후보는 광주에서 일어난 발포책임자를 찾아내겠다고 했다. 총을 쏜 군인들은 있는데, 발포명령자는 없는 상태.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건가 뭔가, 도대체... 그 당시 최고 책임자가 누구인가, 그것은 이미 다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러면 발포명령자를 찾지 않아도 발포책임자는 명확하게 가릴 수가 있다.

 

'그 한밤중에도 또 / 멀리 천둥소리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먼 천둥'에서)고 표현하는 그런 총소리, 발포 책임자

 

누구인가, 우리는 누군지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발포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누가 올렸는가 만장 하나 / 팽팽 펄럭펄럭 / 하늘 끝 한 점을 뒤틀리며 펄럭이고 있다'('흐트러져 펄럭이는'에서)고, 이런 희생자들이 있는데, 함께 하지 못해 '살아 있는 몸을 의지로 바꾼 남자가 죽었다. ... 살아가야 할 인생을 걸고 / 남자는 벽 속의 평온을 끊었다' ('입 다문 말-박관현에게'에서)는 사람도 있는데...

 

아직도 책임회피를 하고 있다니.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니.

 

그렇다. 광주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어야 한다. 진행형을 종결짓기 위해서.

 

재일 시인, 김시종, 그가 피어린 마음으로 쓴 시편들, 그리고 일본 작가가 그린 광주민주화운동 그림들.

 

이 시집을 번역하기 위해 고생한 사람들, 이 사람들을 위해서도 광주를 기억 속에 가두기 보다는 우리의 삶으로 끌어내 완결지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다.

 

이 시집은 그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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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 다빈치 art 11
구로이 센지 지음, 김은주 옮김 / 다빈치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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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런 그림이 그려졌다면 그 그림이 전시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화가다.

 

외설스러운 내용이 들어가면 소설도 금서가 되고 작가가 처벌받는 사회에서 - 설마 지금은 아니겠지 하지만 맞을 것이다. 외설의 기준을 판검사가 판결을 하니 원- 이토록 적나라한 그림이 전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에곤 실레도 당시에 외설스러운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구류처분을 받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상황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불상사도 있었지만 그의 그림은 계속 전시되었고, 그는 화단에서는 인정받는 화가로 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그림이 외설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의 화집을 전철 안에서 보기는 조금 민망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겠지만 - 음모까지 적나라하게 그려진 여인의 나체나 남자의 나체 그림을 모르는 대중들이 있는 공간에서 본다는 것은 자신의 그림을 아이들의 눈에 잘 띠는 곳에 걸어놓아 아이들이 보게 했다는 혐의로 구류처분을 받은 실레의 경우처럼 여전히 성에 관해서는 표면적으로는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 남들의 시선이 고울 수는 없을 것이다 - 그의 그림들이 성욕을 자극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다.

 

오히려 비틀린 성에 대한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벌거벗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표현을 사용하면 '추함 속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의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본능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생각이 든다.

 

'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고, 특히 어린아이에게는 가리지 않는 호기심의 대상이다. 그런 '성'에 대해서 에곤 실레는 어린아이의 영혼으로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 '영원한 아이'라고 한 이유도 여기서 연유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러한 성적 표현이 아름답지 않고, 거친 선으로, 거친 색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성적 욕구를 자극한다기보다는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욕망을 발견하도록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전체적으로 그의 그림은 어둡고, 거칠고, 난삽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기는 하겠지만, 그가 그린 수많은 자화상들을 보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다.

 

자화상을 통해서 분열된 자신의 모습을 보이려 했는지 몰라도, 그가 그린 자화상들을 보면 기괴하다는 느낌,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착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영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가 오래 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자살도 아니고 스페인 독감으로 28세에 세상을 떠난 그지만, 그의 그림에서 이미 그는 다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토록 어두운 그림, 이렇게 분열된 자화상, 벗은 몸을 그렸음에도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추하게 그려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그림들, 그런 추함을 통해 아름다움을 찾도록 하는 그의 그림은 바로 에곤 실레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그의 삶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림이 순서대로 나온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의 삶을 시간 순으로 이야기하면서 중간 중간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과 삶을 하나로 보고 설명하는 형식.

 

그리하여 에곤 실레의 삶과 그림을 전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풍부한 그림과 자세한 설명으로 에곤 실레라는 화가를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있기에, 에곤 실레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어쩌면 읽으면서 또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게도 한 책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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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4-10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에서 에곤 실레의 그림을 몇 점 직접 감상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 훨씬 더 오래 머물긴 했지만, 에곤 실레의 그림들도 코앞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더랬지요. 비엔나에 가기 전에 남부 보헤미아 지방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작은 마을에도 에곤 실레의 미술관이 있던데, 그 미술관 문앞까지 갔다가 Closed 팻말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두고두고 아쉽기만 합니다.

kinye91 2017-04-10 13:38   좋아요 0 | URL
그래도 직접 보신 그림이 있네요. 저는 책에서나 봤지 직접 본 그림은 없어서요. 그럼에도 미술관 앞에서 문이 닫혀 감상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참 아쉬웠겠단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