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에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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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잘 알려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연설문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가 젊은 시절에 한 연설부터 나이들어서 한 연설까지 실려 있어서 마르케스의 인생사가 담겨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짤막한 글들의 모음이고,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알면 이 연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의 소설을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글들도 있다.

 

여기에 그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글들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고생을 하던 시절, "백년 동안의 고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알려주는 글(스페인어 메시지로 채워질 열린 영혼)을 읽으면 그에게 더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노벨상 수상 연설인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을 읽으면 그가 생각하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다모클레스의 재앙'과 같은 시사적인 문제를 다룬 글들을 통해 그의 사상을 알 수도 있다.  

 

여러 글들 중에서 그가 '시를 위해 축배를'이라는 연설에서 시에 대해서 한 말을 인용한다.

 

  시는 부엌에서 병아리콩을 삶고, 전염병처럼 사랑을 퍼뜨리며, 거울 속에 반복된 이미지들을 비추는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비밀스러운 힘입니다.

  저는 한 줄 한 줄 글을 쓸 때마다 항상, 그 성과가 크든 작든, 시라는 포착하기 힘든 정신을 불러일으키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에 제 애정의 증거를 남기려고 노력합니다. 시가 지닌 예언적인 힘, 그리고 죽음이라는 숨죽인 힘에 맞서 거둔 영원한 승리 때문입니다. 34-35쪽

 

그의 작품에 이 말을 적용할 수 있겠다. 이런 말을 듣고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의 작품에 대해서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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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승강기의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 인공기계가 내는 소리와 자연의 내는 소리.

 

높은 곳을 오르내리는 소리와 낮은 곳에 납작 엎드려 내는 소리.

 

인공이 점점 높아질수록 자연은 점점 낮아지게 되는데, 그렇다고 우리는 자연에서 떠날 수는 없다.

 

자연과 하나가 되던 시절은 이제 사라지고 없는데, 그것은 우리의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인 해마에 아직은 남아 잊지만,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해마에 기억의 흔적은 물방울 먼지처럼 남는다'고 자연은 이렇게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의 소리를 인공의 장소에서 들어도 우리가 사는 곳은 인공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잡을 수 없는 것,

 

'수염귀뚜라미 하나 내 허파꽈리에 초기 암처럼 / 마지막 광선 속에 울기 시작했다. / 나는 너의 이름을 보고 싶어 만지고 싶어'라고 외쳐도, 만질 수 없다.

 

사실, 옥수수수염귀뚜라미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냥 아련한 자연의 이름이라는 생각, 우리가 멀어져 온 자연.

 

인공과 자연의 병치 속에서 지금 우리가 어떤 자리에 처해 있는지 고형렬의 이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헌책방에서 구한 이 시집, 현대문학상을 받은 시... 자연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우리 시대, 우리의 모습. 그것을 느끼게 하는 시.

 

옥수수수염귀뚜라미의 기억

 

옥수수수염귀뚜라미

80층 승강기 아래로 내려갈 땐 잠잠하다

울음을 뚝 멈추고 승강기가 기계음을 듣는다

첨단이 아닌 이런 것들이 기척할 때가 있다

수염귀뚜라미는 철봉대 근처에 있다

기계음은 그의 풀잎 가슴속으로 들어가

해마에서처럼 사라진다

해마에 기억의 흔적은 물방울 먼지처럼 남는다

소리는 사라지고 벌써 있지 않다

80층 체인이 출렁이는 소리가 벽 속에서 들린다

기술은 그 소리를 감추려고 혼신을 바친다

내 신문 같은 얼굴이 센서에 비치면

문은 비서처럼 얼른 옆으로 열린다 그리고

곁에 서서 내가 나가기를 기다린다

나가지 않으면 문은 계속 심리처럼 서 있는다

그때 햇빛이 내 파란 핏줄 손등에 닿는다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한다 늦여름 매미처럼

나는 갑자기 미열의 아득함으로

손바닥으로 유리창을 잡는다 가을 구름 하나

아파트 뒷산 위에 떠서 불타고 있다

마지막 불 칸나가 화려하게 단장했어라,

수염귀뚜라미 하나 내 허파꽈리에 초기 암처럼

마지막 광선 속에 울기 시작했다.

나는 너의 이름을 보고 싶어 만지고 싶어

옥수수수염귀뚜라미

 

2010 현대문학상수상시집, 현대문학, 2009년. 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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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사람들·계엄령 알베르 카뮈 전집 1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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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사람들"은 오랜만에 다시 읽은 희곡이고, "계엄령"은 처음 읽은 희곡. 두 희곡의 공통점은 독재, 또는 전제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정의의 사람들"은 러시아를, "계엄령"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압제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희곡이라고 보면 되는데, 정의의 사람들에서는 테러로 권력을 휘두르는 한 개인을 암살하는 것을 소재로 삼고 있다면, "계엄령"은 페스트라는 서양을 휩쓸었던 질병에 독재를 비유해서 전개하는 희곡이다.

 

"정의의 사람들"이나 "계엄령"이나 생각할 것이 많은데, 우선 폭력과 사랑의 문제다. 그리고 복종과 저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려움.

 

더 큰 사랑을 위해서 작은 사랑을 포기하고,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정당하다. 이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은 어떠해도 된다는 말로 전이가 될 수 있는데...

 

민중을 위한 사랑이 독재자를 위한 테러로 나타나는데, 테러를 하기 전에 이들이 고민하는 점, 우리 역시 고민해야 하고, 테러가 성공한 뒤에 대공비와 이야기하는 지점에서 과연 테러는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어려운 문제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켜도 되는가라는 질문인데... 이것이 자칫 공리주의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명이란 절대적이라는 것, 그것은 누구에게도 해당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독재를 물리치기 위해서 한 개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나타나게끔 되어 있는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개인이 공고하게 그 구조를 지탱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도 할 수 있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희곡, 정의의 사람들에서는 이 질문에서 사회구조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냥 그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인물인 대공을 암살할 생각, 그 암살에 대한 정당성을 이야기할 뿐이다.

 

과연 대공의 암살 이후 사회구조가 바뀌었는가? 이는 우리나라 박정희의 죽음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과 상통한다. 사람만 바뀔, 그것도 더 좋지 않은 쪽으로 바뀔 확률도 많다.

 

반면에 계엄령엔 이러한 테러는 나타나지 않는다. 독재에 저항할 수 있는 길, 여기서는 특정한 개인을 암살하는 테러가 나오지 않는다.

 

독재자에 대해 지니고 있는 두려움, 그 사회에 퍼져 있는 이념에 대한 두려움이 자발적으로 사람들을 독재에 따르게 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이 될 수 있다.

 

지배층은 말할 것도 없고 민중들 역시 두려움에서 독재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냥 순응할 뿐이다. 그들이 말살정책을 펴도 두려움에 쌓인 민중들은 말살될 뿐이다.

 

이들이 말살되지 않기 위해서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깨어있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다. 두려움을 없앤 깨어있는 그 사람이 독재자에게 자신의 온몸을 걸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랬을 때 남들도 깨달을 수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의의 사람들이 개인의 투쟁을 중심으로 개인을 제거하는 것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계엄령은 독재를 물리치는 개인을 주인공으로 하고는 있지만 폭력이 아닌 방식으로도 독재를 물리칠 수 있음을, 어쩌면 우리나라 촛불집회를 연상시키는 그런 희곡이다.

 

박정희와 박근혜에 비유할 수도 있는 이 두 희곡들, 독재, 전제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 수단과 목적에 관한 고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좋은 작품은 시대, 나라를 초월해 적용될 수 있다더니, 우리나라와 먼 시대, 먼 나라 이야기를 다룬 이 두 희곡이 우리나라 상황에 이렇게 적용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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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물시장 길거리에 나와 있던 많은 책들 더미 속에서 발견한 책.

 

  이육사, 학창시절에 '광야, 절정, 청포도'의 시인으로 배운 사람.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그의 시는 익히 알고 있지만 그의 수필은 읽은 것이 거의 없다.

 

  육사를 좀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망설이지 않고 손에 넣은 책인데...

 

  옛날 책이라고 해야 한다. 1988년에 발간된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다.

 

  책도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가장자리는 많이도 낡아 있다. 이제는 육사의 에세이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육사의 생각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기회이니...

 

문제는 이 당시에는 각 글들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모아놓아서, 그냥 육사의 수필이구나 하고 넘어가야 한다.

 

시인으로서 윤곤강의 시집을 이야기하는 글도 있고, 중국 전문가의 모습을 보여 중국 문학과 중국의 현실에 대해서 쓴 글도 제법 있다.

 

다방면에 관심이 있고 능력이 있었던 육사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여기에 더하면 이은상의 '육사 소전(小傳)'과 육사와 가장 친했다고 할 수 있는 신석초의 '이육사의 인물'이 육사를 더 잘 알게 해준다. 인간 이육사를 만날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지사적 면모를 지닌 이육사. 그가 쓴 글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육사와 같은 그런 지사들...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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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1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1 1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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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를 먹으며

           - 납골당


하얀 통을 집으로 삼아 너는

하얀 분말로 변해 버렸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늘 국수 먹자고 하던 너는

길고도 가느다란 면발을

후루룩 후루룩

또 한 잔의 술에 곁들여

잘도 먹었지


국수는 장수의 상징

가느다랗더라도 길게

길게 우리 생을 살아가는 것

국수를 좋아하던 너와

국수를 좋아하던 나는

함께 국수를 먹으며

오래도록 

한 잔의 술을 기울이며

세상사를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이제 

하얀 통 속

흰 가루로만 남은 너를

도저히 면발이 될 수 없는 너를

국수를 먹으며 되새기고 있는

길벗을 잃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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