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천재 이제석 - 세계를 놀래킨 간판쟁이의 필살 아이디어, 개정판
이제석 지음 / 학고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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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다. "NEW"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초판과 내용이 완전히 다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절반 정도는 겹친다.

 

그래도 개정판 답게 그 후의 활동이 책에 실려 있다. 특히 공익광고에 대한 생각이 들어있고, 공익광고 사진들이 많이 있다.

 

그 광고 사진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쩌면 글보다도 사진이 먼저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런 재미, 이 책을 읽는 재미다.

 

초판과는 다르게 개정판에서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1부는 초판과 거의 같다. 그러나 2부에는 초판에는 없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 광고계에 대한 비판과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무엇보다도 학력이나 어떤 끈들로 연결된 우리나라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들어온 그가 자리잡게 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우리는 여전히 벗어던져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광고라는 것을 특정한 분야로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분야라는 것.

 

그는 광고를 통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 한다. 그렇다. 광고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는 분야이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한 것이다.

 

2부의 제목이 '홍익인간 하리라'라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 광고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가려고 하는 것.

 

그것이 잘 나타나 있고, 사진으로도 볼 수 있어서 좋다.

 

초판과는 다른 맛... 개정판. 초판과 함께 읽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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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 관한 시들이 많이 실려 있는 시집이다. 시집에 실려 있는 '시인의 말'에 의하면 시인은 산에 다니면서 산을 즐긴 지가 30년이 된다고 한다.

 

  그만큼 시인은 산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 발견을 시로 표현한다. 우리는 시인의 시 속에서 산을 함께 오르고 내리며 또 산을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 산을 그리면 참 단순하게 그렸다. 그냥 세모꼴의 형태에 색깔은 초록으로 아주 단순하게 그린 것. 그런데 산은 멀리서 보면 이렇게 단순하지만 가까이 들어갈수록 너무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함, 변화무쌍함. 이것을 품고 있는 것이 산이다. 이런 산에 대해 알면 알수록 사람들은 삶에 대해서 알게 된다.

 

자연과 삶이 어떻게 분리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을 이 시집에서 충분히 느낄 수가 있다.

 

 하산(下山)

 

내려가는 일이 더 높은 곳에 이르는 길이라고

산이 나에게 가르친다

 

깊게 생각하므로 말수가 적어지고

낮게 밑바닥에 숨어서 지내므로

아래로 아래로 스며드는 물처럼 흐르다가

겸손하게 잦아지거나 앙금으로 남거나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 없어 진흙 밭에 뒹굴다가

그때마다 내 영혼은 몸에서 빠져나가

별에 가 닿았음을 알아차리므로

차분하게 사람 사는 모습내려다 보는 이 기쁨!

 

이성부, 도둑 산길, 책만드는집, 2010년. 초판2쇄. 95쪽.

 

이 '하산'이라는 시를 거꾸로 읽는다. 시인은 '내려가는 일이 더 높은 곳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는데, 이는 '올가가는 일이 더 낮은 곳에 이르는 길'이라고 해도 된다.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낮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행은 오를 때나 내릴 때나 모두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혼자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삶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산행은 자신을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산이라는 거대한 존재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 그것이 바로 산행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을 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산처럼 묵묵하게 그러나 모든 것을 받아들이되, 결코 자신을 잃지 않는 그런 존재, 사람들이 꿈꾸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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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 2 - 불꽃 속으로 수인 2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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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다. 에필로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이 책의 제목이 '수인(囚人)'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 (448-449쪽)

 

제목에 대한 이유가 나와 있는 구절이다. 그렇다면 황석영은 수인생활을 청산했는가. 아니다. 그는 영원히 수인이다. 작가라는 숙명은 수인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수인에서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얻었을 때 작가는 작가로서의 소명을 잃는다. 그는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황석영이 살아왔던 우리 현대사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거름을 주었는지, 그 거름이 역하고, 피하고 싶고 고통스러웠겠지만, 농부가 거름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작물을 키워내듯이, 작가 역시 그러한 거름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작품활동을 한다.

 

그런 작가들이 문학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 영원히 죽지 않는. 비록 그는 수인의 삶을 살았지만 수인의 삶을 살았기에 작품을 통해서 자유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이 황석영의 자전을 읽으면서 근대소설이 문제적 개인이 등장하여 문제적 사회를 고발하는 것이라는 루카치의 명제를 단지 인물과 사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작가 역시 문제적 개인이라는, 문제적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이 점을 더 굳혀주는 것이 바로 황석영 자신이 왼손잡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활동을 주로 했지만, 무의식 중에는 왼손이 먼저 나온다는 그런, 왼손잡이가 겪어야 했던 일은 그를 문제적 작가로 만들어주기에도 충분했다고 본다.

 

"이들 오른손잡이를 위한 물건들과의 불화를 통해서 나는 세상과 사물을 다르게 보는 방식을 가지게 된다. 작가로서 남들과 달리 보는 방식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 (444쪽)

 

이런 개인적인 면과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면이 황석영 개인에게 작용하여 그는 현대사 격랑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단지 소설가로서가 아니라 문화운동가로서 또 통일을 열망하는 사람으로서 굴곡많은 현대사를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처지에서 살아오게 된다.

 

2권에서는 그래서 그의 과거 모습, 우리나라 70-80년대 모습을 알 수 있게 된다. 황석영 개인의 사적인 일보다는 우리 사회와 겹치는 면이 더 많다.

 

따라서 단순한 한 사람의 자서전이라기보다는 황석영이라는 개인을 통해 보게 되는 우리 현대사인 것이다.

 

방랑 - 감옥5 - 파병 - 유신 - 광주 - 감옥6 - 에필로그

 

이것이 2권의 구성이다. 제목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격동의 한국현대사가 드러나 있다. 월남 파병을 다녀오고, 그곳에서의 경험이 "무기의 그늘"이라는 소설로 나오게 되고, 광주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으로 나오게 되는...

 

그의 방랑시대에 겪었던 일들은 "객지"라는 소설로 형상화되며, 그의 가족들의 비극은 "한씨 연대기"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

 

이렇게 그는 시대에 언어에 갇힌 생활을 하지만, 그 갇힘을 통해서 오히려 자유를 더욱 선명하게 그려 자유를 우리 곁으로 데려온다. 수인이 되어서 자유를 알게 되는 것, 그 자유를 작품으로 우리에게 내보이는 것, 그런 모습들을 2권에서 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황석영에게 수인의 생활이 끝났을까? 질문을 한다. 답은 역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수인 생활이 끝났다는 것은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여전히 수인이다. 다만, 남에 의해 강제로 갇힌 수인이 아니라, 스스로 작품을 위해 가둔 수인, 아직도 사회는 여전히 문제적 사회이기 때문에 그는 문제적 작가로 수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고희를 훨씬 넘어선 그가 앞으로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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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kim 2017-09-07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때 골수 팬 이었는데...갈짓자 행보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자숙이 없는 글 쓰기는 자기변명에 다름아니다.

kinye91 2017-09-07 09:03   좋아요 0 | URL
황석영 작가처럼 많은 작가들이 변했지요. 이 책에 나오는 김지하 같은 경우도 그렇구요. 님의 말씀처럼 반성과 자숙이 있는 글쓰기를 해야 더 좋은 작가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bgkim 2017-09-07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젊은 날의 그는 이문구씨와 함께 제가 사랑 했었더랬죠.비록 짝사랑 이었지만 행복한 시절 이었구요.어제도 한 방송사의 모 프로그램에 나와 그 특유의 구라를 풀더군요.한 참이나 멍 해지더군요.제가 편협한 건지 과거 일제에 부역한 그의 선배 문인들이 생각나는 씁쓸한 아침입니다.제가 너무 나갔나요.님의 독서활동에 초를 친거 같아 죄송하네요.좋은 하루 되세요.

kinye91 2017-09-07 11:44   좋아요 0 | URL
제 독서활동에 초를 친 것은 아니고요... 저는 그의 자전을 통해 우리 현대사를 보게 되어서 이 책이 좋았고요, 황석영 개인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관점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17-09-07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7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커닝


  우리는 이를 부정행위라 한다. 한데 행위임이 분명한지라 시험이 있는 곳엔 언제나 따라 다닌다. 더불어 시험 감독관을 예민하게 한다. 점수가 인생을 결정한 시대의 부산물이다. 슬픈 역사 유물이었으면 좋으련만, 현재 기승을 부리는 생물이다. 징그런 놈!


평가가 아니다.

전쟁이다.

목표는

좋은 내신.

수단은

도덕을 갖지 않는다.

보자, 베끼자.

하나라도 더 맞게끔.

남, 알 바 아니다.

오직, 

내 성적만이 중요할 뿐.

눈은 

사시(斜視)가 되고,

마음은

황무지가 돼 가도

점수는 

풍성해 진다.

풍년이다.

 

배 고픈 소크라테스는

교과서 속에만 있다.

학생들은

그렇게 학생들은

배 부른 돼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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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6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6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레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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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냥 재미있게 읽어갈 수가 없다. 무슨 내용인지, 소설이 무슨 학술서인양 주가 많이 달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양이나 남미의 문학, 역사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르헤스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해하기 힘든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소설의 미로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미로 속에서 나오지 못하지 않고 어떻게든 나오게 되는, 자신이 나온 길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들어가라고 하면 또다시 헤매게 되는 그런 미로이지만, 그것은 소설의 이해와는 다른 차원인데, 그런 소설들이라는 생각에 심호흡을 하고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읽다 놓았다, 다시 읽다, 또 놓았다, 읽다를 반복하는 것은 "픽션들"과 마찬가지지만, 이번에는 좀더 수월하게 읽는다.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기보다는 이상하게 이 소설집에서는 서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줄거리가 있고, 내용이 눈에 들어오는 소설들이 있다.

 

그럼에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소설들도 있지만, "픽션들"을 읽어서인지 친숙한 느낌을 지니며 읽게 된다.

 

이 소설집에서 첫소설과 마지막 소설을 중심으로 내용을 이해하기로 했다. 처음이자 끝이지만 끝이자 처음인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구분이 되지 않는, 처음과 끝이 없는 소설. 첫소설 제목은 '죽지 않는 사람'이고 마지막 소설 제목은 '알레프'이다.

 

죽지 않는 사람, 그 주인공이 바로 호메로스이다. 오딧세이와 일리아드를 쓴. 그렇다. 작가는 죽지 않는다. 죽을 수가 없다. 그들은 작품을 남김으로써 영원히 산다. 유한한 생물로서의 목숨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재하는 존재, 사람들 기억에 영원히 남아 유전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그는 죽을 수가 없다. 죽지 않는 사람이 된다. 이런 작가는 '알레프'를 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본 알레프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사람.

 

'알레프란 모든 지점들을 포함하는 공간 속의 한 지점'(204쪽)이라고 하는데, '모든 언어는 상징들로 이루어진 알파벳이고, 그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하나의 과거를 공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겁에 질린 내 기억이 간신히 간직하고 있는 그 무한한 알레프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208쪽)

 

'알레프의 직경은 2~3센티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지만, 우주의 공간은 전혀 축소되지 않은 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각각의 사물은 무한히 많은 사물들이었다. 그것은 내가 우주의 모든 지점들에서 그 사물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다.' (209쪽)

 

이것이 작가이다. 첫소설에서는 작가의 시간적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마지막 작품에서는 공간적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한 공간에서 우주의 모든 공간과 시간을 본다. 그 공간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중첩되어 있다. 한 공간에 지금까지의 우주 역사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본 사람, 그가 바로 작가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작가의 목숨은 유한하다. 유한한 생명을 지닌 작가가 무한한 세계를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것을 알려줄 수 있는 언어 또한 한계가 있다.

 

이 한계들을 인정하고 거기에서 시작하는 일. 그것이 바로 작가의 일이다. 그 일이 성공했을 때 작가의 알레프는 작품으로 남는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죽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소설은 이렇게 순환한다. 처음이 끝이 되고, 끝이 처음이 된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삶 자체가 바로 알레프라고 하는 듯하다.

 

우리 삶에는 전 우주의 역사와 삶이 담겨 있다. 이 유한한 삶에 무한함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 보르헤스 소설을 읽으며 한 생각이다.

 

하여 이 소설집을 읽으면 앞으로 똑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제 자리로 돌아온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커다른 원에서는 원이 직선이듯이, 우리의 삶은 이렇게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행로를 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굳이 안과 밖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 이 소설집의 제목인 '알레프'처럼, 우리 역시 우리 삶의 알레프를 볼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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