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어른
백기완.문정현 지음 / 오마이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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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들이 판치는 사회라고 했다. 꼰대들은 자신들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런 꼰대들이 사회 곳곳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는 거다.

 

그러니 사회도 꼰대처럼 될 수밖에. '어른 없는 사회'라는 일본 학자 우치다 타츠루가 쓴 책도 있지만 우리나라 역시 어른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어른은 없고 꼰대만 있을까? 세상에 그런 사회는 없다. 어디서든 어른은 있다. 이런 어른들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없을 뿐이지.

 

어쩌면 꼰대들을 어른이랍시고 모시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서 더욱 어른들이 없는지도 모른다. 제 잇속만 챙기는 그런 사람들을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잘못.

 

어른과 꼰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어른들이 더 많이 눈에 띄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데...

 

책 제목이 "두 어른"이다. 이런 책을 보면 무조건 사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단지 제목만이 아니라 비닐로 감싸놓아 내용을 볼 수는 없지만 겉표지에 보이는 두 어른의 뒷모습 때문이다.

 

직접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두 분의 뒷모습. 세월이 흘러도 한참 흘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두 분의 뒷모습.

 

우리나라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두 어른의 뒷모습이라니... 세월이 이리도 흘렀구나, 이분들이 이젠 노인이 되었구나, 그러나 노인이란 육체적인 늙음을 이야기하는 것일뿐.

 

이 분들은 여전히 길 위에 있으니, 육체는 노인이나 정신은 젊은이 못지 않은, 그래서 어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하니.

 

이분들의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직접 길 위에서 늘 들을 수 있는 것 아니니, 집에 책을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장 한장 들춰본다면 언제든 두 어른의 말씀을 들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

 

그러니 무엇을 망설일까? 어른 없는 사회에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말씀이 들어있는 책인데...

 

맘에 새겨둘 말들이 많이 있지만, 말에 중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분들은 말보다는 행동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까지... 이분들은 발까지 자신들의 삶이 도달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두 어른은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다. 두 분 다 여전히 길거리에 계시는데... 그만큼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이 어른들을 길거리로 불러내고 있다는 얘기인데... 두 어른들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진이, 우리들의 어깨에 기댄 사진으로 바뀌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더 말이 필요없다.

 

두 어른들의 말씀 한 도막씩만 옮기고 글을 맺는다. 더 주절거릴 필요가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직접 읽으며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가슴에서 발로 우리를 옮겨가야 하는 글, 말들이기 때문이다.

 

74. 문정현

 

나는 참 좋은 몫을 받았다고 생각해.

좋은 몫을 가졌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정말 빈틈없이 살았어. 공백이 없어.

 

사건과 사건이 계속 연결되고

계속 길 위의 삶이었어.

 

길에서 살다 죽는 것이 내 보람이야.  (101쪽)

 

 

77. 백기완

 

저 때문에 쓰는 힘은

갈데없이 시퍼런 칼이 된다.

나아가 저 한 사람 때문에 쓰면

어김없이 사나운 창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남몰래 수굿수굿

이 벗나래(세상)를 위해서 흘리는 땀은

곧 하제가 되는 거다.

 

하제라니 무슨 뜻일까.

희망이란 뜻을 글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내둘한

무지랭이들의 벅찬 숨결이다.  (104쪽)

 

참고로 이 책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왔다.

 

'꿀잠'과 오마이뉴스가 두 분의 말씀을 엮어 대담집을 만든다고 나섰을 때도 두 어른은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설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두 어른은 수십 년 동안 길 위에서 민중과 함께 '외치는 자'였고, 고통의 거리에 천막 교회를 짓고 십자가를 세우는 '남은 자'였다. 비정규노동자들이 꿀잠 잘 곳을 짓는다는데, 그 부족한 비용을 채우겠다는데, 이를 마다할 어른들이 아니었다.  (142쪽)

 

이 책은 바로 없는 사람, 약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진실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두 어른의 연민과 참여와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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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6 11: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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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6 14: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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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눈, 벌레의 눈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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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이 책에 나와 있는 단어로 이 책을 정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정리가 아니라 마음에 파고들어오는 말들이라고 해야겠다.

 

시인인 김해자가 여러 시인들의 시에 대해서 쓴 글인데..

 

모심(母心)

 

어머니 마음이다. 동사 '모시다'의 명사형인 '모심'이 되겠다. 모심이라는 말은 그래서 모시다라는 말과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뜻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자고로 시인이란 세상만물을 모시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은 높은 데서 내려다 보는 새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땅을 기어다니는, 또는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시의 눈, 벌레의 눈'이다. 시인은 이런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고, 동물과 식물과 사회를 본다. 그렇게 자신이 본 것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시다.

 

이런 벌레의 눈을 누가 지니고 있는가. 섬김, 모심. 바로 어머니 마음이다. 어머니는 그런 마음으로 자식들을, 세상을 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존재를 내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그런 어머니 마음이 아닐까 한다.

 

많은 시인들의 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의 시에는 이러한 '모심'이 드러나 있다. 그런 '모심'을 읽으며 우리도 위로만 위로만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짓밟고 올라가려고 하지 않고 밑에서 함께 하려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김해자는 이런 시인들의 마음을, 시인들의 표현을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다.

 

도서관, 미싱(재봉틀), 자전거 그리고 시

 

근대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온갖 이상 기후들은 우리 인간이 초래한 결과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문명을 건설해온 인간에게 그래도 생태적인 문명이 무엇이냐고 하면 세 가지를 꼽는다고 한다.

 

도서관과 재봉틀과 자전거. 인간이 이룩해낸 문명이기는 하지만 생태와 공생할 수 있는 존재들. 이런 존재들과 비슷한 존재가 바로 '시'라는 것이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어떤 이는 세상에 시인이 나무보담도 흔하다며 너도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시인이 많은 게 무슨 죄인가 전 국민이 시인이면 어떻단 말인가 그들은 밥을 굶으면서도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다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것은 시인이 정치꾼보다 많기 때문 아닌가'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것은'이란 시의 부분... 정희성 "그리운 나무"  이 책 289쪽에서 재인용)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들, 시인. 그렇담 시도 역시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적어도 우리들 마음을 순화시킨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시는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니 이 책은 인간 문명이 탄생시킨 생태적인 것들 중에 시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시는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외면해도 자신들의 마음을, 자신들이 본 것을, 느낀 것을 언어로 표현한다. 결코 멸종되지 않을 종족, 시인들. 이들의 시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이런 시들을 좀더 친숙하게 만나볼 수 있게 하는 책, 김해자의 이 책이다.

 

문(門)

 

좋은 책은 읽으면서 다른 책을 읽게 만든다고 한다. 김해자 역시 한 책을 읽으며 다른 책을 읽는다고도 한다. 그랬을 때 모호하던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온다고도 했다. 시를 철학과 연계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도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왜 아니겠는가. 시 자체가 이미 삶에 대하여 고민하는 철학 아니겠는가. 그렇게 시는 다른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온갖 크기의, 온갖 모양의 문들이 우리 앞에 있다. 그 문들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우리 몫이다. 그냥 안을 보여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그냥 보여주기만 하면 흥미를 갖지 않는다. 누구나 열 수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 열어젖혀야만 열리는 문들. 시는 그렇게 우리 앞에 갖가지의 문을 갖다 놓는다.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 그 문을 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렇게 많은 문이 있는데 안 열고 배기겠는가 하는 듯한 마음이 들게 이 책에는 다양한 시들이 소개되어 있다. 시라고 하기보다는 시인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정말 많은 문 앞에 선 느낌을 받는다. 열고 싶은 문, 어떤 문은 그냥 지나치고 싶은 문. 하지만 그 문들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내가 놓치고 있던 세계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시는 문(門)이 된다. 김해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를 이런 문으로 이끈다. 이제 문을 여느냐 마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난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그런 세계로.

 

그렇게 문을 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주는 책이고,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시인과 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 시집을 읽는 것과는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김민기에 대한 글이 있는데... 재작년에 노벨 문학상을 밥 딜런이 탔듯이, 김민기 역시 시인을 다루는 이 책에 나올 수 있음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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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5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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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5 1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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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무너짐

- 삶과 죽음


선이 있다고

명확한 경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삶을 충실히 살고,

죽음을 향해 가야한다고,

한 면과 다른 면이

같지 않다고,

만나지 않는다고,

선을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과 밖이

하나임을,

한 쪽을 달리다 보면

이미 

다른 쪽에 와 있음을,

선과 선이

엉켜있음을,

삶이 곧 죽음인 것을

나이 들어

비로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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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4 0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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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4 0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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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밀
홍명진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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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의 단편소설들이 묶여 있는 소설집이다. 다른 내용들이지만 소설을 흐르는 주된 흐름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이다.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은 사람,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 불현듯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 등등.

 

하나같이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 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정규직 비율이 50%가 안 되는 나라에서,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직장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 - 이것은 곧 생계와 직결이 된다 - 한창 경제활동에 종사해야 할 사람들도 이렇듯 실직의 위험을 곁에 두고 있는데, 이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을 허덕이며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이 과정에서 받은 상처들이 자신의 삶을 환하게 드러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첫번째 소설에서부터 그런 모습이 나타난다. 자원봉사로 야간에 전화상담을 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사소한 밤들'

 

주인공 역시 비정규직으로 생활하다가 해고가 된 뒤에 자원봉사로 상담활동을 한다. 상담활동을 할 때는 마치 다 안다는 듯이 말해서도 안되고, 가르치려는 듯이 이야기해서도 안된다. 그냥 말하는 사람에게 곁을 주면 되는 것이다.

 

말할 틈, 말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게 들어주는 일, 남의 상처를 터뜨리지 않고, 그렇다고 그 상처를 무시하지도 않고 그냥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

 

상담자원봉사를 하는 주인공은 이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남의 상처 곁에 조용히 머무를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상처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에서는 죽음으로 떠나간 동창생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던 친구들. 그들은 같은 시간을 살았지만, 같은 공간에 있기도 했지만 함께 했다고 할 수가 없다.

 

결국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함께 지내기는 했지만 서로에게 열려 있지 않았기에, 자신들만의 시간을 살았기에 이들이 함께 한 시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이 된다는 것 아니겠는가.

 

육체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함께 한다고 할 수 없음을, 동창생들의 삶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렇게 형식적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마음과 마음이 통하지 않을 때 어떤 삶이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조용한 생'이다. 주인공 순조는 소박하고 조용한 생을 원했지만, 보여주는 삶을 추구하는 그의 아내 모란과는 맞지 않는다.

 

이러니 이 부부는 함께 살고 있지만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그런 생활을 하게 된다. 이것이 어쩌면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곁에 있는 사람의 상처를 보아줄 시간, 마음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아닐까 한다.

 

제 상처가 있지만 다른 사람의 상처를 제 상처처럼 아파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음을 '당신의 비밀'에서 보게 된다.

 

삼남매를 키웠지만 늘그막에 홀로 지하방에서 사는 노인. 그에게 자식들은 애물단지다. 그러나 그런 애물단지라도 자신에게는 귀한 자식일 뿐. 그런 점을 옆집에 사는 성범죄자를 자식으로 둔 엄마를 보면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는 주인공.

 

그렇다. 세상 모든 부모들에게 자식은 그냥 자식일 뿐이다. 아무리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부모에게는 사랑스런 자식일 뿐. 자식들의 상처를 감싸주고 싶을 뿐.

 

이런 자신의 마음을 자원봉사자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식들이 다른 사람의 입질에 오르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부모의 마음을 제대로 아는 자식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 이렇게 소설집에 나오는 소설들은 각자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주로 자신의 상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게 된다.

 

'마순희'라는 소설이 그렇다. 청각장애인인 마순희를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게 된다. 동종요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은 마순희가 그럼에도 제 삶을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바로 보게 된다.

 

'해피크리닝'에서 아무런 대가없이 상처를 보듬는 모습이 나오고, '너무 멀리 가지 마'에서 결국 능선을 넘지 않는 모습, 저 멀리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내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는 모습이 나온다.

 

상처, 외면하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 내 상처든, 남 상처든 그 상처를 인정하고 함께 할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그냥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삶임을.

 

소설을 읽으며 이런 상처입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럼에도'라는 말을 떠올리며 상처를 보듬고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생각했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즐겁게 잘 읽었다. 우리들 삶을 이렇게 보여주는 소설, '삶창'다운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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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17: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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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17: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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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 일리노이 주립대 학장의 아마존 탐험 30년, 양장본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 꾸리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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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선교할 목적으로 아마존 밀림 지대에 살고 있는 피다한 족을 찾아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함께 생활한 사람의 이야기.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하면 끝인데, 여기에 기독교와 원주민들의 신앙, 그리고 언어에 대한 이론이 겹쳐져 여러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럼에도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가 들어가 산 마을인 피다한 부족들의 언어는 지극히 간단하니까 말이다.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다.

 

원주민을 선교할 목적으로 그들의 언어를 배웠지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면서 선교보다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옳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즉, 그들과의 생활은 저자의 생활과 신념을 바꾸었다. 이것이면 된다.

 

저자인 다니엘은 젊은 나이에 가족을 이끌고 피다한 마을로 들어가 그들의 말을 배운다. 그들의 말을 배우는 목적은 단순하다.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읽게 하는 것.

 

결국 성공한다. 그는 피다한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고, 피다한 말로 마가복음을 번역한다. 그들에게 녹음하여 들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결과는? 피다한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예수는 직접 경험한 사람이(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한 일만을 믿는 그들에게 기독교 성경은 허황된 이야기다.

 

그러니 선교는 실패할 수밖에. 선교가 실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인 다니엘은 자신의 믿음이 흔들린다. 이들에게 어떤 결핍을 깨닫게 해야 하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그들은 직접적인 경험을 믿고 또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다. 죽음도 그들 삶의 일부다. 죽어가는 사람을 억지로 살리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겨내지 않으면 죽을 뿐이다. 이런 그들에게 내세를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과연 내세를 위해 현세를 고민하며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저자인 다니엘은 기독교를 포기하고 만다. 그 결과로 가족들을 잃었을지라도, 그는 문화의 다양성, 신념의 다양성, 언어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남에게 강요한다.(?) 그들은 절대로 강요라고 하지 않지만, 자신의 믿음이 옳고, 자신의 신은 절대진리라고 하고, 다른 신들은 우상이고, 다른 믿음은 미신이라고 여긴다.

 

여기에 다양성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오로지 하나로 수렴하는 운동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로 수렴하기 위해서는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 수천 년, 수백 년 살아오면서 형성한 믿음, 다양성들이 한 순간에 포기되겠는가.

 

그렇다면 더 큰 힘이 작동하게 된다. 다양함을 단순함으로 수렴하는 데는. 그것이 오랜 시간에 걸친 선교사들의 희생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선교활동은 폭력일 수밖에 없다. 잘 살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잘살지 못해, 너희는 불행해!라고 끊임없이 강요하는 활동이 아무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고 해도 그건 폭력에 불과할 뿐이다.

 

다니엘은 결국 이 점을 깨닫게 된다. 그가 기독교를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피다한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생활한 것이다. 피다한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책에도 나와 있는데..

 

"피다한 사람들은 풀을 먹지 않아. 네가 우리말을 잘하지 못하는 건 그것 때문이다. 우리 피다한 사람은 우리말을 아주 잘하지. 우린 풀을 먹지 않아." (372쪽)

 

피다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은 자신들처럼 사는 생활 속에서, 또는 다른 피다한 사람들과 맺는 관계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들처럼 생활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들의 말을 한다고 해도 진정으로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아니다. 마이시 강 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마코 앵무새처럼 그저 '소리'를 따라 흉내 내는 것일 뿐이다. 혹은 전화기에 녹음된 메시지처럼 정해진 말만 되풀이하는 것으로 간주할 뿐이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영리한 앵무새나 녹음된 전화메시지에 불과했다. 이방인인 나는 진정으로 자신들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러한 피다한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언어와 문화의 관련성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373쪽.

 

이런 고민들이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자신이 피다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고 공감해가는 과정. 결국 자신의 신념을 되돌아보는 과정.

 

이것은 다양성을 인정한다면서도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함으로 수렴하려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심지어 자신의 종교까지도.

 

그는 가족을 잃고, 친구를 비롯한 문명의 많은 것을 잃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기도 하고.

 

피다한 원주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갔고, 그들과 생활하면서 겪은 일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단 책의 뒷부분에 언어-문법 이론에 관한 내용은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한다.

 

전문적인 언어학자인 저자와 언어학자와는 거리가 먼 우리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이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는 것이 더 좋겠다. 촘스키의 문법이론부터... 너무도 전문적인 문법이론이 나오는데... 그냥 피다한 사람들의 삶에 저자가 어떻게 동화되어갔는지를 살피면서 읽으면 더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이미 지구촌이라는 말이 통할 정도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연결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살리는 쪽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점점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는 이 세계에서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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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1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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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1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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