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감독

 

우리는 이를 시감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기계가 되는 순간, 사제지간이 경찰과 범죄자의 관계로 전도되는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을 관장하는 점수의 권능. 점수 앞에서 생명 없는 기계 수준으로 떨어지는 인간들, 그들을 누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랴.

 

머리 속을 텅 비워라!

오직 눈만을 크게 뜨고

허튼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웃지도 말고

믿지도 말고

다른 행동을 하지도 말고

오직 아이들만을 쳐다보아라.

 

 

믿음, 인간의 신뢰

점수 앞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잠시도 쉬지 말고 감시 카메라를 작동시켜라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총탄.

반사적으로 펼쳐지는 방탄복.

 

점수를 끄집어 내려라

우리들의 사랑으로

우리들의 믿음으로

알고 싶은 것,

알아야 할 것을

얼마나 알고 있나를

잘 알고 있나를

평가해 보는 것

점수는 중요하지 않아

몰랐던 것,

부족했던 것은

다시 보충하면 되지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들이 함께 하면 되는 거지

 

 

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네가 좋은 학교 보내 줄 거야!

 

 

 

슬픈……

너무도 서글픈 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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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는 작은 제목이 '디지털 원주민과 리터러시 교육'이다. 아무래도 올해부터는 중학교에서부터 코딩 교육이라고, 컴퓨터 교육이 의무가 되었으니, 디지털이 학교 교과목으로 들어온 원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디지털 원주민이 된 지 오래인데, 가까스로 디지털 생활에 들어온 디지털 이주민으로 불리는 기성세대들은 디지털도 기존의 학교 교육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4차산업혁명 운운하면서도 여전히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19세기식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만 잘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온 지가 벌써 20년이 되어가는데도, 하나만 잘해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다고 인식하고 모든 것을, 특히 학교 성적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우리 현실이다.

 

하나만 잘해서는 먹고 살 수 있다와 지금 세대들은 적어도 두세 개 이상의 직업을 가질테니 하나만 잘해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의견으로 나눌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의 세상과는 너무도 다를 것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지금과 다른 세상,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만 예측만 할 뿐인 상황에서 기성세대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새로운 세대들을 교육하려 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상황, 새로운 기술에서 새로운 세대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우려고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지금껏 배워왔고 지내왔던 것을 통해서 새로운 세대들에게 무언가를 주입하려고 한다.

 

학교에 '코딩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들어온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들레 이번 호에서 이런 디지털 문제는 적절하게 잘 다루어줬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디지털 세상이라고 해서, 또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이름을 지닌 교육이라고 해서 인간 생활의 본질을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학교가 지닌 명백한 잘못은 배움보다는 교육을 앞세웠다는 것인데, 이를 디지털 교육에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배움은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배움은 지혜와 연결이 된다. 이런 지혜를 이번 호 우치다 타츠루의 글에서는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스스로 깨우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지혜, 교양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교육은 지식과 관련이 된다. 타츠루가 이야기하는 온갖 퀴즈 프로그램에서 측정하는 것이나, 우리나라 학교 시험에서 측정하는 것, 그리고 수많은 무슨무슨 지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은 지식만을 추구한다. 이런 지식을 외우게 한다. 이게 교육이다.

 

컴퓨터에 관해서, 디지털에 관해서 많이 알게 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목표는 아니리라. 목표는 바로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디지털 사용법, 또는 디지털 사용 환경이리라.

 

이것이 바로 배움이고 교양이고, 지혜가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다를까? 전통교육과 디지털 교육은 다를까? 아니다. 본질은 같다. 배움이 우선하면서 그것을 외우기보다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 그런 지혜를 갖춘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

 

그러므로 디지털 교육이라고 해서 위축될 필요가 없다. 디지털 이주민이라고 해서, 디지털을 잘 모른다고 해서 새로운 세대들과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디지털은 세대를 아울러, 공간을 아울러, 계층을 아울러 모두가 잘 소통되도록 하기 위해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교육 역시 마찬가지고, 디지털 리터러시는 이런 디지털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호를 읽으면서 공자의 말을 떠올렸다. 논어 어느 편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오도 일이관지(吾道 一以貫之)'라는 말.

 

공자도 자신의 도는 하나로 관철될 수 있다고 했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디지털이라고 아날로그와 다르지 않다. 그 점을 이번 호를 읽으면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교육보다는 배움을 우선해야 하고, 지식보다는 지혜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 그런 사람들로 새로운 세대들이 자라도록 환경을 조성해야줘야 한다는 것. 이번 호를 읽으며 한 생각이다.

 

이번 호에서 마음이 아픈 글이 하나 있다. 이게 어쩌면 우리나라 제도권 교육, 학교의 현실이라는 생각. 상호 불신, 자신의 욕심만이 판치는 학교 현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 교사들 역시 하루라도 빨리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마음이 잘 드러난 글

 

양영희 '가르치는 이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자신을 가르치는 교사를 존중하지 않으면 그만큼 자신의 아이들 역시 존중받기 힘들다는 사실...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할, 학교 현실에 대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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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킨 이야기 / 스페이드 여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최선 옮김 / 민음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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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로 시작하는 시... 어린 시절 책받침에서건 이발소에서건 볼 수 있었던, 시 구절이 너무도 좋아 외웠던 시.

 

푸슈킨의 시다. 삶은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기쁜 날도 오리라는, 그렇지만 그는 결투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참...

 

푸슈킨이 쓴 작품으로 두 편이 실려 있는 책이다. 짧게 줄여서 '벨킨 이야기'라고 했지만 차례를 보면 '고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의 이야기'라고 하여 '발사, 눈보라, 장의사, 역참지기, 귀족 아가씨 - 농사꾼 처녀'라는 제목을 지닌 다섯 편이 실려 있다.

 

짤막한 단편들. 삶의 여러 형태들이 드러나는 소설들이다. 그야말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말이 어울리는 소설이다. 삶이 그대를 속였기에 그 삶에 속아 미래를 바라지 않고 불행으로 삶을 망친 사람들(발사, 역참지기)과 그럼에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살아가 종국에는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눈보라, 장의사, 귀족 아가씨) 이야기로 나뉜다.

 

많은 삶의 유형이 있지만 삶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 지금은 힘들지 몰라도 결국에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긍정적인 마음을 지녀야 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

 

벨킨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지 알게 된다. 소설에서 너무도 명확하게 그것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의 시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스페이드 여왕'이라는 다른 작품을 보면 이것을 더 잘 알 수 있다. 자제력도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계획성도 있는 인물은 게르만은 돈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지금처럼 '돈'이 최고로 인정받는 사회는 아니지만, 그 당시 러시아에서도 돈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으리라.

 

그런 돈을 버는데 자신의 노력으로는 많이 벌기 힘들기는 당시 러시아나 지금의 우리나 마찬가지. 지금은 금수저가 아닌 다음에는 로또나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길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확 바꿔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 현실인데...

 

당시 러시아에서는 도박으로 자신의 환경을 바꾼 사람들이 꽤 있었나 보다. 이 스페이드 여왕이라는 소설에서는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꿈꾼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니 말이다.

 

물론 게르만은 도박에서 돈을 잃고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지내게 되지만, 자신의 노력보다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모습이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푸슈킨 당시의 젊은이들 중에서 이런 모습을 지닌 사람이 꽤 있었을 테고, 푸슈킨은 소설을 통해서 러시아 젊은이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스페이드 여왕에서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딘 인물, 가난한 양녀는 결국 나름대로 행복하게 사니, 자신의 삶에 체념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얘기다. 결코 마법같은 일로 자신의 삶이 한번에 확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

 

이번 푸슈킨 소설집에서는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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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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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1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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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섭, 융합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제는 한 분야에만 정통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리라.

 

  그만큼 사회가 복잡해졌지만, 복잡해진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를 알고,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권혁웅의 '마징가 계보학'을 읽으며 최서해(최학송)를 떠올린 것은 이런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는 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통섭과 융합이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만이 아니라, 문학 쪽에서도 다양한 분야들이 서로 섞이고 얽히는 관계여야 한다고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시인의 말에도 최서해를 떠올리는 말이 나온다.

 

"나는 오랫동안 달동네에 살았다. 내게 1980년대의 후반부가 독재와 민주화운동과 시의 시절이었다면, 그 전반부는 원죄의식과 주사(酒邪)와 첫사랑의 시절이었다. 나는 거기 살던 내내 언젠가 탈출기(脫出記)를 완성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거기서 벗어난 지 십오년이 되었는데 이제는 그곳이 나를 벗어나려 한다. 그곳,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142쪽)

 

최서해의 탈출기, 지지리 궁상인 생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 친 지식인의 이야기. 이 시집에 등장하는 화자는 지식인이다. 분명 지식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화자가 회고조로 다른 인물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때문에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당시 시인이 살아온 시대에서 달동네는 밀리고 밀린 사람들이 올라와 살 수밖에 없는 마을.

 

삶의 질은 계속 내려가는데 살아가야 할 곳은 점점 높아지는 현실 속에서, 그곳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나 벗어나는 것은 죽음에 이르렀을 때뿐이라는 것.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독수리 오형제'를 빗대어 쓴 시 '독수리 오형제'를 보면 세상을 구하는 독수리 오형제가 아니라 세상에서 밀려나고 밀려나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기를 쓰고 그 마을을 벗어나도 결국은 다시 낮은 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회 하층민들의 이야기. 기껏 지식인들이 나온다고 해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밀려나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 시집에 실린 '광기의 역사 - 1. 호모 인텔리쿠스'에 나오는 이모 같은 경우)

 

그래서 마치 최서해의 소설을 읽는 듯한, 일제시대로 따지면 신경향파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집이다. 그렇다고 그때의 소설과 같은 살인, 파괴 등으로 점철되지는 않는다. 소설에서도 죽음이나 떠남이 주를 이루지만 다른 작품들과 융합이 되어 소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만화영화, 영화, 노래 등등 다른 많은 작품들과 바로 자신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집에서 주를 이룬다. 이들에게서 탈출을 꿈꾸었겠지만, 이제 이들은 그곳에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우리가 외면하려 해도 시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 점을 명심하자.

 

독수리 오형제

 

 

0. 기지

 

  정복이네는 우리 집보다 해발 30미터가 더 높은 곳에 살았다 조그만 둥지에서 4남1녀가 엄마와 눈 없는 곰들과 살았다 곰들에게 눈알을 붙여주면서 바글바글 살았다 가끔 수금하러 아버지가 다녀갔다

 

1. 독수리

 

  큰형이 눈뜬 곰들을 다 잡아먹었다 혼자 대학을 나온 형은 졸업하자마자 둥지를 떠나 고시원에 들어갔다 형은 작은 집을 나와 더 작은 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십년을 보냈다 새끼 곰들이 다 클 만한 세월이었다

 

2. 콘돌

 

  둘째 형은 이름난 싸움꾼이었다 십대 일로 싸워 이겼다는 무용담이 어깨 위에서 별처럼 반짝이곤 했다 형은 곰들이 눈을 뜨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둘째형이 큰집에 살러 가느라 집을 비우면 작은집에서 살던 아버지가 찾아왔다

 

3. 백조

 

  누나는 자주 엄마에게 대들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곰같이 살아! 나는 그렇게 안 살아! 눈알을 박아넣는 엄마 손이 가늘게 떨렸다 누나 손은 미싱을 돌리기에는 너무 우아했다 누나는 술잔을 집었다

 

4. 제비

 

  정복이는 꼬마 웨이터였다 누나와 이름 모르는 아저씨들 사이를 오가며 소식을 주워 날랐다 봄날은 오지 않고 박꽃도 피지 않았으며 곰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그냥, 정복이만 바빴다

 

5. 올빼미

 

  하루는 아버지가 작은집에서 뚱뚱한 아이를 데려왔다 인사해라, 네 셋째 형이다 새로 생긴 형은 말도 하지 않았고 학교 가지도 않았다 그저 밤중에 앉아서 눈뜬 곰들과 노는 게 전부였다 연탄가스를 마셨다고 했다

 

6. 불새

 

  우리는 정복이네보다 해발 30미터가 낮은 곳에 살았다 길이 점점 좁아졌으므로 그 집에 불이 났을 때 소방차는 우리 집 앞에서 멈추었다 그들은 불타는 곰발바닥들을 버려두고, 그렇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권혁웅, 마징가 계보학, 창비. 2007년 초판 5쇄. 52-54쪽.

 

어렸을 때 본 독수리 오형제... 그러나 시에 나오는 독수리 오형제는 달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이웃이었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세상에 밀리고 밀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던 우리의 이웃.

 

시에 이런 이웃들이 많이 나온다.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 이런 이웃들이... 시인의 탈출기는 여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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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4 09: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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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4 0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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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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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소설의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모파상과 체호프. 이 소설집에는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200쪽도 안 되는 분량인데 소설이 10편이면 평균내도 한 소설당 20쪽이 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만큼 짧은 소설들... 한때 우리나라에서 엽편(葉篇)소설이라고 부르던 길이다.

 

특히 첫번째 소설인 '관리의 죽음'은 짧아도 너무 짧다. 7쪽부터 12쪽까지니 겨우 6쪽짜리 소설이다. 그래도 한두 장짜리 소설보다는 길지만... 단편소설을 읽는 재미는 극적인 반전이다. 한 사건을 두고 인물의 심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짤막한 상황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체호프의 단편들에서도 그런 점이 잘 보인다. 그래서 단편소설의 대가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관리의 죽음' 죽음이라는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운명을 두고 이렇게 짧게, 그것도 참으로 어이없는 죽음을 그리다니...

 

고사성어 중에 기우(杞憂)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기나라 사람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는 말인데, 이 말은 지나치게 섬약하여 모든 일에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지칭한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 이런 섬약한 관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하니 몸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극장에서 재채기를 한 번 했다고 며칠 동안을, 그 재채기로 인해 침이 튄 것을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으니, 이 정도 심리 상태면 병이 나야 정상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신경을 쓸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서 넘어가야 할 것은 과감하게 넘길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일에도 무심한 듯 넘어가면 안 된다.

 

그것은 공감 능력의 상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감 능력의 상실이 더 늘어나는 현실에서 체호프의 이 소설이 공감을 받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이거 또라이 아냐...이보다 더한 것도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쓰다 보면 어떻게 사회 생활을 하나?" 라고.

 

하여 요즘은 '내 탓이요'는 만병의 근원이요, 내 건강의 핵심은 바로 '네 탓이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잘하면 내 탓, 못하면 네 탓이니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바로 이 소설과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다. 

 

그래, 이 관리처럼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만, 정말 신경써야 할 일에는 신경써야 한다. 그것이 배려고, 함께 사는 기본 예의다.

 

짧지만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이 선집에 실린 작품들은 다양한 주제를 지니고 있다. 불륜을 다룬 작품도 있고(공포, 베짱이), 남과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비극도 있고(드라마), 사랑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작품도 있고(베로치카),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일의 어려움(거울)과 살아서 위대한 사람도 금방 잊혀진다는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작품(주교)도 있다.

 

우리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이 소설집에서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소설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보는 것.

 

첫번째 소설인 '관리의 죽음'을 읽으며 내가 내 행동을 판단하는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중용을 지키며 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너무 사소한 것에 집착해서도 안 되지만,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안 된다는 삶의 자세.

 

오래 된 소설이지만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의 흐름도 바꾸지 못하는 어떤 보편적인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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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2-23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제일 와닿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자세보다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이 어렵다는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훅 치고 가는걸까요.^^

kinye91 2018-02-23 21:32   좋아요 0 | URL
헤. 정말 러시아 사람들 이름 어려워요...우리나라 이름이 대부분 세 글자라서 그런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