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얼음 - 경계인 송두율의 자전적 에세이
송두율 지음 / 후마니타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8년 4월 27일. 나는 역사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걸어서 남북 경계선을 넘는 장면. 그리고 그와 손을 잡고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북쪽으로 경계를 넘어갔다 돌아오는 장면.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남북 경계를 스스럼없이 넘는 모습. 그리고 판문점 선언. 이제 남북은 영원히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그 선언. 일제가 강제 병합함으로써 남북이 갈렸다면, 전쟁으로, 또 수많은 총격전으로 심리적인 분단까지 있었는데, 그래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전전긍긍하던 생활이었는데, 두 정상이 단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천을 하겠다는 의지까지 표명을 했으니.

 

남북이 평화롭게 지내게 될 그 회담을 보면서, 경계선을 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여러 사람이 떠올랐다. 남북 평화, 남북 통일을 위해서 남과 북을 오갔던 사람들. 그래서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 그들이 그렇게 힘들게 넘었던 그 경계를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을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중 한 사람, 송두율이었다. 그가 우리나라에 돌아왔을 때, 독일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으로 그를 구속, 재판까지 한 우리나라. 그것도 인권변호사 출신 고 노무현 전대통령 때였으니, 충격이 더했다.

 

그가 구속되고 재판을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 다시 독일로 돌아가기까지, 우리나라의 민낯을 전세계에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87민주화운동이 얼마나 형식에 머무르고 있었는지, 그야말로 형식적 민주주의만 이루었고,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 바로 송두율 귀국 사건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남북은 평화체제로 돌아서고, 남북이 자유로운 왕래를 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럴 때 송두율에 대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북한에 갔다는 것이 구속 사유가 되었고, 재판에서도 그 점은 유죄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독일 국적을 지닌 학자가 북한을 방문한 것이 죄가 된다면 우리나라에 도대체 어떤 학자들이 올 수 있단 말인가?

 

북한을 방문한 학자들은 모두 우리나라로 들어올 수 없단 말인가? 아니다. 송두율은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가 지닌 국적과 상관없이 그는 우리나라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다녔고 독일로 유학가서 돌아오지 못했을 뿐이다.

 

독일에 있을 때 우리나라에 오지 않고 북한을 방문했고, 또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해외에서 돕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사상이 좌익이고, 친북이고, 반체제 세력인 것이다. 이런 그가 우리나라에 들어온단다. 독일인 송두율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송두율이 돌아온단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거창하게 환영한단다. 이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수구세력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 수구세력을 누를 힘이 없었다.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보라. 우리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유령이 우리 곁에 늘 상존하고 있고, 그래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도 국가보안법이라는 필터를 거치게 된다.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송두율 역시 마찬가지다. 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올가미에 걸린 것이다. 그를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심하라고 경고를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송두율이 싸울 수밖에... 재판을 통해, 또는 다른 길을 통해.

 

이런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경계인 송두율의 자전적 에세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책이니 말이다. 그가 태어나서 유학을 가고, 독일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과정, 북한을 왜 방문했는지, 우리나라에 와서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최근까지 세계 상황과 관련지어 쓴 글이다.

 

이 책의 첫구절이 송두율 삶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첫제목과 시작은 이렇다.

 

기억 속에 없는 어머니

 

(전략) 우리 삶의 시작이자 많은 추억의 큰 원천은 무엇보다 '어머니'일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그런 어머니에 대한 대한 추억이 없다. 내가 두 살 반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기억의 편린조차 남기지 않고 떠났기에 나는 어머니에 대한 꿈을 한 번도 꾸어본 적이 없다.  (19쪽)

 

그렇다. 그에게 친어머니는 너무도 일찍 돌아가셨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일로 유학을 떠나고 37년 동안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그것도 오자마자 감옥에 가듯이 어머니에 해당하는 조국은 그에게 없는 존재다.

 

조국이 기억 속에 있더라도 독재로 점철된 반민주적인 나라로만 기억될 뿐이다. 애틋한 기억을 유발하는 어머니가 그의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조국인 우리나라도 그에게는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책에는 그의 새어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새어머니 품에서 그는 자란다. 새어머니가 그가 성장하는 동안 그를 보살펴 주었듯이 독일은 이제 그의 새어머니가 된다. 그가 자라고 제 꿈을 펼치도록 해주는 장소, 그곳은 독일이다.

 

이렇듯 가정사와 그가 살아온 삶이 연결이 된다. 이런 삶을 사는 그에게 조국이 처한 현실은 답답했을 것이다. 이런 답답함이 조국이 민주화 되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는 행동을 하게 했을 것이다. 분단되어 있는 조국에 다른 쪽인 북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테고.

 

남북한이 통일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해 그는 여러 활동을 한다. 그게 비록 자신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했을지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옳다고 생각했으므로.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행동이었으므로.

 

그리고 37년만의 귀향. 구속, 감옥, 집행유예를 거쳐 다시 독일로. 그에게 이미 친어머니는 없는 존재다. 조국은 없다. 그는 독일사람이다. 그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그는 '경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쪽이냐 저 쪽이냐는 이분법 논리를 벗어나 그는 이 쪽도 저 쪽도 다 아우르는 '화쟁'의 '경계인'이 되려고 한다.

 

내가 먼저 경계인이 됨으로써 다른 경계인들을 부를 수 있다고, 그래서'경계인들'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이라고. 이렇게 새로운 경계인들, 바로 그들은 '불타은 얼음'이라고.

 

'계몽과 해방'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양쪽을 다 아우르는 '경계인들' 송두율은 이제 그를 꿈꾸고 있다. 그들과 함께 나아가려 하고 있다.

 

그 '경계인들'의 모습을 이제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어느 한 쪽의 진영논리를 강요하는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이젠 그런 진영논리가 먹혀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진영논리가 얼마나 폐해를 지니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 너무도 잘 알 수 있다.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조국의 민주화 운동을 돕기 위해 활동한 것을 빌미로 그를 탄압하는 모습, 역시 진영논리이기 때문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만 강요하는, 그래서 경계인들은 억압받고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모습. 수많은 경계인들이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았는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그들 덕에 이렇게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경계를 넘을 수 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송두율을 얽어매었던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남북이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돌아서는 이 시점에 구체제 망령인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존재한다면 또다시 '판문점 선언'은 선언으로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을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족속들이 아직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휘두를 수 있는 칼을 이 참에 아예 없애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제2, 제3의 송두율이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사를, 분단의 비극을, 그 비극 속에서 비극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한 지식인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평화체제에 생각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경계인 송두율, 그의 삶이 우리에게 '불타는 얼음'이 되었음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Nergy flow 2018-05-03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북 정상이 분단 경계를 손쉽게 넘나드는 걸 보며 저게 뭐라고 이렇게 멀리 싸우며 살았나 생각했습니다.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kinye91 2018-05-0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서합니다. 저는 요즘 우리나라가 밝아졌다는 느낌을 받아요. 남북을 가르고 있던 그 선 정말 별것 아니라는 생각들을 하게 됐으니까요.

2018-05-03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3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남근. 권력의 상징이다. 이 남근 하나로 얼마나 군림을 했던지. 기껏 밖으로 늘어진 고깃덩어리 하나로 세상 권력을 다 쥐어야 하는 것처럼, 또는 당연히 존중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살아온 세월이 얼마든가.

 

  지금은 좀 나아졌던가. 아니다. 겉으로 나와 있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이를 써먹고 싶어 안달인 사람들이 여전하다.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번지는' #미투 운동'을 보면 이놈의 남근이 일으킨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힘이 있을 때 얘기. 남근이 겉으로 무슨 기둥 마냥 힘을 쓸 때는 자신도 힘을 쓴다고 착각하고 살지만, 더이상 기둥을 만들지 못하고 축 처져 버렸을 때는 자신도 힘이 다했다고 삶 자체도 축 처지는 사람이 많다.

 

고깃덩어리가 권력이 되느냐 그냥 가죽 주머니가 되느냐, 그것도 힘차게 물을 뿜어대던 것에서 이제는 졸졸도 아니고 남아 있는 물줄기를 어떻게든 밖으로 내보내야 되는데, 부식되고, 노폐물들이 쌓여 물도 제대로 배설하지 못하는 남근이 되면, 삶은 이제 더욱 힘이 없어진다.

 

이은 시인 첫시집 "불쥐"를 읽다가 이 시를 보면서 힘이 없어진 남근이 얼마나 삶을 힘들게 하는지, 결국 우리는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몸이 점점 쇠해질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가죽 주머니

 

말굽 같은 변기를 뒤로 젖히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오줌줄기를 엿보았죠

감탕처럼 고였다가 흘러나오는 아버지의 내부를

온 힘을 다해 길어 올린 아버지의 오줌 줄기가

음경 끝에서 뒤틀린 신음으로 매달린 것을

아버지는 그것을 치약처럼 둥굴게 말아 쥐어짜고 있었죠

 

변기 앞에서 주춤거리는 아버지

주름진 가죽을 내려다보는 아버지

걸쭉한 지린내가 진동했죠

등골 빠지게 길어 올린 아버지의 길이

다 말라버린 걸까요

자꾸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오줌소리

깊은 우물에서 지하수를 길어올리듯

가늘게 뽑아 올린 물줄기가 저절로 새어나와

사타구니를 적셨죠

움켜쥔 그것을 꽉 붙들고

놓지 않는 아버지

마지막 남은 몇 방울을 위해

아버지는 몸을 둥굴게 말아봅니다

간신히 끌려 나온 오줌길에

흥건히 아버지가 젖었죠

 

이은, 불쥐, 지혜.년초판 2쇄. 26-27쪽.

 

아버지로 상징되는 권력, 아버지를 더욱 권력 있게 한 남근, 그러나 이제는 사라진 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된 삶. 

 

결국 우리는 아무리 힘이 있어도, 어떤 권력을 쥐고 있어도 나중에는 이렇게 된다. 힘이 없을 때가 온다. 그때 잘살기 위해서는 제가 힘이 있을 때 잘살아야 한다.

 

남에게 군림하지 않고 제 힘 자랑하지 않고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 남근이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남근 역시 생명을 상징하기도 하지 않는가.

 

힘이 있을 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남근 아니던가. 단지 배설의 기쁨을 누리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그래서 생명과 생명을 잇는 존재가 남근이다. 그런 남근이어야 한다. 

 

그런 존재도 결국은 소멸된다. 모든 존재는 사라진다. 그 사라짐의 순간을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 힘이 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다. 불기둥에서 가죽 주머니가 될 수밖에 없는 남근을 지닌 존재들. 현재 기둥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 가죽 주머니가 될테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5-02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2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피 공부 - 매일 언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핼 스테빈스 지음, 이지연 옮김 / 윌북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꼭 광고에 종사하는 사람만 읽을 필요는 없다. 소설을 쓰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 등등 말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면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꼭 말하고 관계 있다고 할 필요가 없다. 세상에 말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누구나 말을 하고 사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옆에 놓고, 시간 나는 대로 아무 곳이나 펼쳐보아도 좋다. 짤막한 문구들이 1060개가 있다. 이를 경구라고 해도 좋다.

 

'279 광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근친상간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들은 광고를 쓰고, 광고를 읽고, 광고를 이야기하고, 광고와 자고, 꿈에서도 광고를 본다. 그 결과 아이디어끼리 교배를 하여 신기하게도 똑같은 배치와 문구를 가진 콘셉트와 해석이 나온다.

 

280 광고는 커뮤니케이션의 예술이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사람들과, 자연과, 주변 세상과, 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 (77쪽)

 

이런 말이 꼭 광고에만 해당하겠는가. 직장인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닌가. 오로지 자신의 직종만 생각하다 보면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 늘 그게 그거인 생각, 기획만 하게 된다. 이럴 때 다른 곳에 간다든지, 다른 이를 만난다든지, 다른 일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좋다고 하는 회사에서는 이렇게 딴짓하는 시간을 일부러 주고 딴짓을 권장 또는 의무로 하고 있다. 이는 생각의 근친상간을 막는 방법이다.

 

생각의 근친상간을 막는 방법, 그것은 곧 대화하는 것이다. 바로 280번 경구처럼 하면 생각의 근친상간을 막고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다.

 

광고에 딱 어울리는 말, 그러나 바로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

 

798 소비자가 볼 때는 머리로 보지만, 살 때는 마음으로 산다. (228쪽)

 

그렇다. 우리는 주로 머리로 판단을 한다고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음이다. 그래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그 여정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머리에만 머물러 있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가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손과 발로 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마음, 가슴을 거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손발을 움직일 수 없다. 광고가 그러하다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참 많은 경구들이 있다. 광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것을 다른 분야로 확장할 수 있다. 우리 삶과 연결지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나 읽어야 한다.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새겨야 한다.

 

예전에 학창시절 땡볕 운동장에서 교장 훈화를 듣던 때를 생각해 보라. 참 좋은 말,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교장이지만, 그 좋은 말이 학생들 머리로 들어가던가. 머리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말들이 어떻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손과 발을 움직이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교장 말은 그냥 말로써 허공에 흩어져 버리고,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제 행동만을 하지 않았던가. 그 길고도 길었던 교장 훈화.

 

마지막으로에 환성을 올리면 다시 끝으로가 시작되고, 끝났다 싶으면 다시 한번 말하자면으로 또 시작되던 그 지루한 말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많은 말들은 의미없다고 한다. 특히 광고에서는. 짧은 말 속에 많은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말들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지나치게 장황한 말들은 결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없으니까.

 

좋았다. 그냥 한 구절, 한 구절 읽는 것이. 읽으면서 어떤 말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해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으니까. 

 

곁에 두고 언제든 아무 쪽이나 펼쳐 읽으며 생각에 잠기면 좋을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5-01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2 0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첫 젠더 수업 창비청소년문고 27
김고연주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젠더' 수업이다. '젠더'를 생물학적인 성인 '섹스'와 비교해서 '사회적인 성'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생물학적이든 사회적이든 무언가로 규정되면 이미 어떤 한계 속에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젠더 수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바로 한계 속에서 나오는 것, 틀을 부수는 것,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시작을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제로 시작한다.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지만 남녀가 지니는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남성과 여성으로서 서로 다른 본성을 지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아니다다.

 

아니라는 연구 결과를 가지고, 남녀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이 실은 사회적ㅡ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틀 속에서 본성이라는 것도 자연스레 형성되는데, 이것이 '다이어트'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다음에 사랑, 또 모성으로 논의를 확대해 나가는데...

 

본능에 가까운 정서라고 여기고 있던 것들이 실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제목이 '나의 첫 젠더 수업'이듯이, 젠더라는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받아야 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니, 청소년들이 어떤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으면 그것이 고정관념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책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이번엔 직업이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과연 일에 남녀가 구분되는 일이 있을까. 지금까지는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을 구분하고, 그렇게 교육했다면, 이제는 아니다. 일은 평등하다.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최초'라는 이름을 단 사람들을 언급한다.

 

이 '최초'들이 있어서 사회에 퍼져 있던 편견들이 하나하나 깨져가고 , 이제는 '최초'라는 말을 쓰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가정으로 돌아와 보면 어떤가? 라고 질문을 한다. 가정으로 돌아오면 사회에서 양성 평등이 많이 이루어졌고, 남녀 구별이 많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 있는 차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이 말을 듣고 참 좋은 말이다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맞벌이'와 '맞살림' (136쪽)이라는 말... 맞벌이는 많이 하는데, 아직도 맞살림은 거의 하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 현실. 그러니 갈 길이 멀다.

 

젠더 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쓰는 '혐오의 말'을 인식하는 일이다. 혐오의 말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양성평등으로 가기 힘들다. 이런 '혐오의 말'은 파농의 말을 빌려 '수평 폭력'이라고 하는데, 자기가 분노해야 할 대상이 아닌 주변에 있는 약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폭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수평 폭력'이다.

 

가부장적 사고에 빠져 있거나, 남녀는 달라야 한다는 사고에 빠져 있는 경우, 그렇지 않으면 과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경우, 이런 '수평 폭력'을 휘두르기 쉽다.

 

그러니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젠더 박스'에 갇혀 살지 모른다. 자신은 갇힌 줄도 모른 채.

 

어쩌면 이 '젠더 박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일지도 모른다. 상대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관점으로 재단하는. 자기 관점에서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침대.

 

이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는 없어져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젠더 박스' 또한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좀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아니, 내 자신이 나를 인정하고, 남과 함께 연결되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박스에 갇혀 있으면 다른 사람과 제대로 연결될 수 없기에. 우리나라 청소년들 공부다 뭐다 해서 자꾸만 박스 속으로만 들어간다. 그렇게 들어가면 안 된다. 이 책은 그런 청소년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젠더 박스를 벗어나라고 말을 건다.

 

젠더 박스에서 나와야지만 너는 너답게 살 수 있다고,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그래서 우리는 우리답게 서로 연결되어 서로 존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덧글

 

프란츠 파농은 20세기에 살았던 알제리 사람이에요. 학자이자 의사이며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였을때 독립 투쟁을 이끈 지도자이기도 하지요. (181쪽) 라고 되어 있는데,

 

파농이 알제리 독립 투쟁에 참여한 것은 맞지만, 알제리사람은 아니다. 파농은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출신이다. 알제리는 그가 활동했던 나라이지 조국은 아니다. 체 게바라가 아르헨티나 사람인데 쿠바에서 활약했듯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4-30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30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는 답안지입니다


직사각형의 종이에

검은 벌레,

빨간 벌레가 있습니다.

제 집에 안주한

벌레는

쳐다보는 사람의 눈을

즐거움으로 빛나게 하지만

제 집을 찾지 못한

벌레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굴을 찌푸리게 합니다.

같은 벌레인데

어느 칸에 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일으키는

엄청난 변이.

이런 변이를 창조하는

수많은 아이들.

아이들의 손.


저는 답안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