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러나 작은


키 큰,

큰 것

높은 것

우리는

위만, 큰 것만 보도록

배웠다.


크다는 것, 높다는 것엔

어느덧

좋다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작은 것, 키 작은

행동들이

진실로 사람답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일으킴을 잊고 있었다.


우린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큰 것이 좋은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달아야 한다.

이 커다란 시대에,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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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3 0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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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3 11: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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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2 -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 그리스인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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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를 전쟁과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하면 우선 재미있다. 무척 흥미롭게 읽어갈 수가 있다. 예전에 우리가 배운 역사책들이 대부분 인물, 전쟁 중심으로 기술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역사책 서술이 바뀌기 시작했다. 인물이나 전쟁 중심이 아니라 생활 중심이 되었고 문화 중심이 되었다. 아주 작은 차이들에 대해 인식해야지만 역사 발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문화 중심, 생활 중심으로 역사 서술이 가면 역사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지금을 이루고 있는 과거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역사라면,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예전에 우리나라 역사(국사)를 배울 때 인물을 중심으로 배우지 않았던가. 세종대왕, 태종무열왕, 계백, 을지문덕, 양만춘, 강감찬, 이순신 등등. 살펴보면 전쟁 영웅이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을 중심으로 먼저 역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커다란 서술 뒤에 있는 구체적인 사실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쓴 이 책 "그리스인 이야기"는 그리스 역사에 흥미를 가지게 하는데 충분하다.

 

인물 중심, 전쟁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 생활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얘기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인물 중심으로 그것도 전쟁을 중심으로 전쟁을 이끌어간 인물들을 전면에 배치하기 때문이다.

 

2권은 페리클레스 시대를 다루고 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정점을 이끈 인물. 그는 오랜동안 스트라테고스에 임명되었다. 30년 넘게 스트라테고스에 연달아 당선되어 일을 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개인의 이익보다는 아테네의 이익을 위해 멀리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아테네는 민주주의 꽃을 피운다. 지금까지 전세계인을 불러모으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웅장하게 재건한 것도 바로 페리클레스 시대다.

 

하지만 이런 특출한 인물이 후기에 나오면 그것은 그 나라가 멸망하기 전에 잠시 반짝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별들이 폭발하기 전에 더 밝아지듯이.

 

그리스는 오랜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그것도 민주주의 꽃을 피웠다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델로스 동맹' 사이에 벌어진 오랜 전쟁.

 

직접 맞대결을 하지 않으려던 페리클레스 시대에는 그냥 서로를 위협하고 잠시 쉬고 하는 쪽으로 전쟁이 전개되었다면 그가 죽은 뒤에는 전면전이 된다. 잠시 동안 이루어졌던 휴전에 이어, 서로를 멸망으로 이끌게 되는 장기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게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멸망 직전 반짝이는 별로 등장한다. 그 다음은 오랜 전쟁,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그들은 그리스 민주주의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나라 스파르타와 개방적인 나라 아테네... 군사력을 중심으로 그것도 육군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과두체제의 나라 스파르타와 경제를 중심으로, 무역을 하기 위해 해군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민주체제의 나라 아테네.

 

서로 다른 정체를 가지고 서로 견제하고 때론 도우며 지내지만 주변국들의 상황에 따라 이들은 전면전으로 붙을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서 경제가 붕괴되었을 때 그 나라가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파르타는 자급자족을 하던 나라라서 이런 위험을 그다지 겪지 않는다. 또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 하지만, 스파르타 자국 영토에서 전쟁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파르타 시민은 경제적으로 부담없이 (물론 이들은 극도로 절제된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전쟁에 임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무역국가,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아테네는 해상으로 식량을 수입해야 한다. 그래서 해군이 중요할 수밖에 없고, 아테네와 항구도시인 피레우스를 잇는 도로, 또 방어벽을 설치한다. 이것이 아테네가 장기적으로 위험에 빠지지 않을 조건인 것이다. 페리클레스가 이 방어벽을 정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전쟁이 지속되면서 아테네 해군이 괴멸되자 식량난이 심각해진다. 경제가 무너지는 것이다. 경제가 무너진 나라, 지속될 수가 없다. 예전 미국에서 선거운동을 할 때 나왔다는 말. '문제는 경제야!'

 

이 말을 이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자국민이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하는 것. 그렇다. 전쟁은 결국 자국민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벌이는 일 아니던가. 무력으로 이루어지고, 많은 희생이 따르는 일이 전쟁이지만,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가 힘들어지면 그때는 전쟁을 그만두어야 한다.

 

아테네가 전쟁을 지속할 힘을 잃는 것, 스파르타에게 무조건 항복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페리클레스 시대부터 아테네 멸망까지 무척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2권이다. 그래, 이런 역사를 통해서 전쟁의 참상, 또 경제의 중요성.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자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정치인들은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 여기에 당시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질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가 잘 유지될 수 있다. 그리스인 이야기 2권은, 이렇게 아테네 항복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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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순간의 산고 그리스인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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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은 다음, 이제는 인간으로 돌아온다. 신들의 이야기는 곧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인 이야기에 관한 책을 뽑아들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이 저자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작가다.

 

꽤나 많은 부수가 발행된 책이었는데, 이제 나나미는 그리스인에 주목한다. 사실 민주주의 기초를 닦은 민족이 그리스인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통상 말하는 그리스인은 찾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지금 나라로 존재하는 그리스가 아니라 예전에 그리스인이라고 하면 많은 도시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들은 아테네인들과 스파르타인이다. 아테네는 민주주의, 스파르타는 군국주의라고 그냥 알고 있는데, 이들이 모두 그리스인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다들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했던 도시국가인이었다는 사실. 이들은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연합하면서 많은 세월을 지내왔다. 각 도시국가들끼리 전쟁을 하다가 서로 멸망에 이르지 않기 위해 또는 평화 기간을 갖기 위해 4년에 한 번씩은 올림픽을 치렀던 나라가 바로 이 그리스였다는 것.

 

올림픽은 무기를 들지 않은 평화기간을 보장해 주었던 옛날 장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 그리스인들을 그리스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해주는 민족이 있었으니 바로 페르시아 민족이다. 이 페르시아는 그리스인들에게 단합을 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1,2차에 걸친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그리스인들은 펠레폰네소스 동맹과 델로스 동맹을 결성하게 된다. 도시국가들이 그리스인이라는 의식으로 뭉치게 되는 사건들이다.

 

이렇게 그리스 초기에 정치활동과 군사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 책을 이끌어간다. 수많은 그리스 도시국가들 가운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인으로 나뉜다. 상대적으로 아테네가 더 잘 알려져 있어, 아테네 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어쩌면 폐쇄적인 사회를 이루었던 스파르타보다는 개방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었던 아테네가 더 다양한 지도자들이 나올 수 있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스파르타에서 다루는 인물로는 스파르타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법을 기초한 '리쿠르고스'와 영화 300으로 잘 알려진 '레오니다스' 왕, 그리고 제2차 페르시아전쟁에서 페르시아를 격파한 '파우사니아스'가 전부라고 해도 된다.

 

철저하게 신분제 사회를 고수한 스파르타, 해외팽창보다는 자국의 안전을 중시한 스파르타, 강인하게 전사를 키운 스파르타에 대한 이야기가 인물들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리스인이라고 하면 우리는 아테네인들을 주로 떠올린다. 민주주의라고 해도 역시 아테네를 떠올리고...이런 아테네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데, 스파르타는 '리쿠르고스'라는 한 명에 의해 이끌어졌다면, 아테네에서는 여러 사람이 연달아 나와 민주주의를 만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솔론'. 그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시초하고 할 수 있고, 솔론의 뒤를 이은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해 아테네는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러나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참주라고 불리는, 절대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는 '솔론'이 한 개혁이 지닌 중심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테네는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에 들어서게 된다.

 

페이시스트라토스 다음으로는 '클레이스테네스'가 등장하고, 그는 특권계급에 속했다고 할 수 있지만, 개혁을 제대로 이끌어간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반세기 정도 동안 서양의 르네상스, 중세, 고대 로마에 관해 쓰면서 깊이 생각한 것은 시대에 획을 그을 정도로 개혁을 본격적으로 실행한 사람은 모두 기득권 계급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기득권 계급에 속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자기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는 일만 생각하는 단순한 보수주의자는 아니었다. 이 계급에 속한 사람 중에서 때로 자기들이 속한 계급의 결함을 직시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개혁은 기득권 계급이 가진 결함을 파고드는 것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결함을 따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피부로 느끼는 쪽이 유리하다. (108쪽)

 

이 말은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지식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런 유기적 지식인들에 의해 헤게모니가 발현되는 과정, 이것이 곧 개혁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개혁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 중에서 문제를 인식한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한다.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해결책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인들이 나타나는 때, 개혁의 순간이 된다. 어쩜 지금 우리 사회도 이런 '유기적 지식인'이 나와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그냥 자기 특권에 안주하는 보수적 특권층만이 아니라.

 

또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도 말한다.

 

  오늘날까지 명성이 자자한 '아테네 민주정치'는 모두 최고의 엘리트들이 만들었다. 고대 아테네의 '데모크라시'는 '국정 방향을 시민(데모스demos)의 손에 맡긴다'가 아니라 '국정 방향은 엘리트들이 생각해서 제안하고 시민에게 그 찬반을 맡긴다'이기 때문이다. (108-109쪽)

 

이 부분에서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공론조사 - 원전 건설 중지와 대학입시 개편안-를 실시한 과정이 생각났다. 과연 엘리트들이 무슨 일을 했던가. 그들이 국정 방향을 제시했던가. 오히려 그들은 국정 방향을 시민에게 맡겨 버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인 듯 여기지 않았던가.

 

어떻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해당할지 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구절이었다.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고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 어떤 식으로 정치를, 국정 방향을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클레이스테네스 다음으로는 여러 사람이 나오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제1차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그렇지만 말로는 비참했던 '밀티아데스'다. 그 다음으로 제2차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는 '테미스토클레스'.

 

그가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테네가 강한 도시국가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고도 최고의 자리에서 제 때 물러난 사람이기도 하고. 물론 나중에는 추방당하기도 하고, 페르시아로 넘어가 그곳에서 최후를 맞기도 하지만... 그는 아테네가 강국으로, 특히 해상 강국으로 부상하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등장으로 아테네는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대로 민주정치를 완성해가기 시작한다.

 

아테네가 또는 그리스식 민주주의가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차지하는 역할을 무시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정치와 군사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고, 이들에 의해서 기틀이 잡히게 됨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온갖 자료들을 해석하면서 자기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면서 시오노 나나미는 그리스인들에 대해서, 그리스 민주주의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제 다음 권은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시기로 넘어간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페리클레스' 시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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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1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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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1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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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1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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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겐 박봉우는 '휴전선'의 시인이라기보다는 '황지의 풀잎'의 시인이었다.

 

  제일 먼저 읽은 그의 시집이 바로 '황지의 풀잎'이었고, 이 시집에서 좋은 시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었다.

 

  이 시집에서 '창(窓)이 없는 집'이라는 시를 읽고 시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두고두고 인용하는 시로 만들기도 했는데...

 

  알라딘 온라인 중고에서 박봉우 시전집을 발견하고는 안 살 수가 없었다. 어찌 박봉우 시전집을 사지 않으랴.

 

첫시집부터 분단의 아픔이 절절히 묻어 나온다. 분단, 우리를 가르고 있는 장벽, 그 장벽으로 인해 우리는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던가.

 

박봉우는 이런 분단을 철조망에 걸린 나비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가 아니다. 연약한 나비가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철조망에 갇힌 상태. 이것이 바로 분단이다.

 

그러니 분단이 된 땅, 황지에 불과하다. 황지, 황무지, 불모지..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그 황지를 옥토로 바꾸어야 한다. 지금, 바로 그렇게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나.

 

이제 분단은 통일을 위한 한 걸음이 되고 있다. 분단은 평화로 가는 징검돌이 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종전선언을 하려고 하는 지금, 분단은 이제 끝내야 한다. 적어도 나비들이 철조망에 걸리는 일이 없이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게.

 

전집 뒤로 갈수록 시가 단순해 진다. 그래, 어려운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시인은 단순한 말로 명쾌하게 하고 싶은 말을 우리에게 전달하려 한다.

 

분단에 대한 아픔도, 또 광주민주화운동의 슬픔도 그의 시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그렇게 우리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간 시인. 그가 바로 박봉우다.

 

이번에는 '반쪼각의 달'이라는 시를 소개한다. 이제 우리는 반쪼각의 달이 아니라 온전한 달, 둥그런 달을 노래해야 한다. 노래할 수 있다.

 

  반쪼각의 달

 

내 얼굴은

상처뿐인 조국

지도를 그린다.

 

보름달도 되지 못한

항상 반쪼각의

달.

 

언젠가 한 번쯤……

 

우리들의 보름달을 위해

모든 옷

옷들, 훨훨 벗고

 

나비

춤추며 모이는

그런 날,

 

내 얼굴은

상처뿐인 조국

지도를 그린다.

 

박봉우 시전집, 현대문학. 2009년. 264쪽.

 

이제 그 상처가 더 이상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상처가 아물어서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반쪼각이 아닌 둥근, 둥그런 보름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제 평화를 위해, 통일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들이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는 그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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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전집 2 :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사드 전집 2
D. A. F. 드 사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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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있다. 방탕한 사회를 대표하는 이름. 결국 하느님의 진노로 멸망하게 되는 도시.

 

의인 열만 있어도, 아니 의인 다섯만 있어도 멸망을 면할 수도 있을텐데... 이미 썩어문드러질대로 문드러진 사회에서는 그런 의인을 찾기가 힘들다.

 

사드가 추구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였을까? 그는 귀족이었다고 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역시 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을 리베르탱이라고 한다. 자유주의자? 무엇을 위한 자유주의?

 

자기 욕망을 끝간 데 없이 추구하는 자유? 여기에 남은 없다. 남이 없는 자유는 방탕이 아니다. 남의 고통으로만 유지되는 자유다.

 

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남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아니,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가. 내 욕망을 위해서는 남이 고통을 받아야 한다.

 

'냄비 속 개구리'처럼 욕망은 서서히 달궈진다. 서서히 달궈지지만 결국 파멸로 이르게 된다. 사드가 이야기하는 이런 방탕주의 학교는 결국 파탄으로 치닫게 된다. 그런데 누구의 파탄.

 

사드는 욕망을 추구하는 자들의 파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들이 점점 강해지는 강도로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남들을 희생시키는 장면으로 전개한다.

 

가히 사디즘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사디즘을 옹호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내용 전개다. 그렇다. 욕망이 남을 파멸로 이끌면 그 욕망은 정당할 수가 없다. 그런 욕망 추구는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드가 이 책을 통해서 그런 것을 의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는 인간이 갈 수 있는 안 좋은 행위의 극한까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극한까지 가는 인간들의 말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런 극한에까지 인간이 다다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점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저런 변태가 있나? 저런 악한이 있나?는 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인간이 안 좋은 쪽으로 치달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사드는 우리 인간이 지닌 사악함을 폭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말을 이 작품을 통해서, 아니 남의 고통을 통해 자기 욕망을 충족하는 인간들을 통해 너는 어떻게 사느냐고 질문을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작품이 의미가 있다.

 

해설에서는 인간 질환을 연구하는 작품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지닐 수 있는 안 좋은 욕망의 끝, 병적인 행동, 이런 것들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무엇인가?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으니,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다른 존재의 감정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소돔과 고모라는 망했다. 망해야만 했다.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자기 욕망만을 추구하는, 그런 사회는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 사람들이 상품으로 전락하는 사회의 모습을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사람은 결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칸트의 말대로 목적이다. 우리 존재 자체가 목적이다.

 

이런 점에서 사드의 이 작품, 사람이 수단이 될 때 어떤 모습이 되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책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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