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서 나를 본다. 나는 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바로 수많은 너들 덕분이다.

 

  그런데 가끔 그런 너를 잊을 때가 있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잊는다. 그냥 나만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다.

 

  그러다 너란 존재가 없으면 과연 나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 그때서야 너란 존재는 바로 나임을 깨닫게 된다. 너와 내가 함께 해야 함을 인정하게 된다.

 

  너는 나를 이루는 존재다. 모든 존재다. 내 곁에 있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존재가 바로 너가 된다.

 

시인은 이런 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주로 나무나 새들과 같은 자연에서 너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사람에게서도 너를 발견한다. 너를 발견하는 일은 바로 나를 찾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나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너를 보는 일이다.

 

제목이 된 시 '상처 있는 나무는 다 아름답다'에서 시인은 나무가 피는 꽃을 상처에서 발견한다.

 

'(중략) 나무는 자신의 몸에서 / 그 꽃이 아름답게 필 수 있도록 / 상처를 내 / 꽃길을 반든다 / 그 처연한 아픔 속에서 / 꽃의 한 생을 위해/ 기꺼이 상처마저 / 넉넉히 받아들이는 걸 보면은 / 상처 있는 나무는 다 아름답다 (생략)' (이 시집 12쪽)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시에서 시인은 결국 나무만이 아닌 사람을 발견한다.

 

'(중략) 상처 하나 없는 사람보다는 / 상처 속에 살아온 그대가 / 아름답습니다 (생략)' (13쪽)

 

이 시에서 상처에 주목할 수도 있지만, '살아온'이라는 말에 더 마음이 간다. 누구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상처 속에 주저앉는 사람도 많다. 상처를 애써 가리는 사람도 있다. 상처를 부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상처 속에 살아온 그대'가 아름다운 것이다.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사람, 그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상처를 감싸안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렇게 시인은 너를 통해 나를 이야기한다. 상처 속에 살아온 그대가 아름답다는 얘기는 자신도 상처를 받아들이고 살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 '동거'에서는 나이들어가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병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겠다는 시인의 다딤이 나온다. 그렇게 상처를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모습, 상처까지도 또다른 너,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시인은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 갇혀 '너'를 보지 못하고, '너'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적이 많다. 수많은 '너들'이 바로 '나'임을 잊으면 안 되는데... 그렇게 이 시집을 읽으며 다시 수많은 너들이 나임을 생각한다.

 

'공상'이란 시를 소개한다. 이것이 단지 공상일까? 아니. 너가 바로 나임을 이 시를 통해서 더 생각하게 된다. 이를 상동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공상

 

밤나무에

밤꽃이 익어

밤꽃 냄새가 피는 것을 보면은

가끔은

내 은밀한 몸도 익어

밤꽃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은

어쩌면

나와 밤나무의

조상은 같은 것이 아닐까

 

김산, 상처 있는 나무는 다 아름답다. 책만드는집. 2013년.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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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면 그냥 산문이다. 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물의 속성을 좀 바꾸면 시가 될 수 있다.

 

  허만하 시인의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이 주는 충격. 비가 수직으로 서서 죽다니... 그럴 수가 있나? 끝없는 하강. 땅으로 직행. 이것이 죽음인가?

 

  꿋꿋하게 자신을 잃지 않고 떨어지는 비... 수직으로 떨어지는 비. 그래서 시가 된다.

 

  이번엔 물이다. 물은 중력의 법칙을 너무도 잘 드러낸다. 낮은 곳으로 한없이 흘러가는 물. 비도 하늘에서 땅으로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던가.

 

그런데 이번엔 비는 아래로가 아니라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고 했다. 언뜻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물은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위로 흐를 수도 있다.

 

물이 위로 흐를 때 생명이 유지된다. 그렇게 생명에의 목마름, 그곳으로 물은 흐른다. 제목 자체가 시가 된다. 이렇게 제목이 된 시는 '육십령재에서 눈을 만나다'이다.  3연에 이 구절이 나온다.

 

  물은 낮은 쪽으로 흐르는 비굴이 아니다. 물은 언제나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거꾸로 서서 흐르는 물은 가혹한 의지意志만으로 한 그루 오리나무처럼 비탈에 서 있다.

 

허만하,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솔. 2002년 초판 2쇄.육십령재에서 눈을 만나다. 3연. 16쪽  

 

삶에의 욕구. 그것으로 향하는 물. 물에서 생명의 운동을 보고 그것을 노래하는 것, 이것이 시다.

 

이 시집에 실린 첫시.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바벨탑 공화국'이라고 일컬어 지는 우리나라, 자꾸자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만 가는 건물들, 그런 건물들에서 가장 높은 곳, 전망이 좋은 곳. 그러나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어떻게 달동네를 전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달동네는 전망이 좋은 곳이라기보다는 전망이 어두운 곳이다. 생활에 치여 살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삶의 아름다움이 있다. 시인은 달동네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높이는 전망이 아니라고.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높은 곳은 어둡다. 맑은 별빛이 뜨는 군청색 밤하늘을 보면 알 수 있다.

 

  골목에서 연탄 냄새가 빠지지 않는 변두리가 있다. 이따금 어두운 얼굴들이 왕래하는 언제나 그늘이 먼저 고이는 마을이다. 평지에 자리하면서도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흙을 담은 스티로폼 폐품 상자에 꼬챙이를 꽂고 나팔꽃 꽃씨를 심는 아름다운 마음씨가 힘처럼 빛나는 곳이다.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정신의 높이를 어둡다고만 할 수 없다.

 

허만하,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솔. 2002년. 초판 2쇄. 15쪽

 

바벨탑 공화국에서 이렇게 사람 냄새 나는 곳들을 하나하나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없애고 있다. 위로 위로만 가는 건물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비록 삶은 힘들지라도 그곳에서 '정신의 높이'를 잃지 않고 세워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 그런 곳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그늘이 먼저 고이지' 않도록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풍경에 대한 추억이다'라고 시집을 시작하기 전에 시인은 말하고 있다. 이렇게 시인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우리 눈 앞에 펼쳐보인다. 이래서 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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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 - 우울증은 어떻게 빛나는 성취가 되었나
앤서니 스토 지음, 김영선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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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어떻게 빛나는 성취가 되었나'라는 번역된 작은 제목을 달고 있는 책. 영어를 보면 -짧은 영어실력이지만- 이런 작은 제목은 없는데... 오히려 그냥 '인간 정신의 다양한 현상들' 정도로 하면 될 것을...

 

우울증을 앓던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해서 자신만의 성과를 거둔 사례들이 이 책에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작은 제목이었지만 그것은 아니다.

 

처칠이나 카프카, 뉴턴에 관해서는 맞다. 제목에 처칠의 검은개, 카프카의 쥐라고 했으니, 이들을 앞장에서 소개한 것도 맞겠다. 그러나 다음부터는 우울증보다는 정신 현상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보면 된다.

 

읽다보면 저자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가령 '진정한 천재는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장에서는 광기와 천재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천재와 광기라... 광기와 영감을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신경증적인 면과 정신 질환이 천재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광기와 천재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것. 

 

'왜 인간은 폭력적이 되는가'라는 장에서는 인간 사회의 폭력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공격성 자체가 비난받을 것은 아니지만, 이 공격성이 무차별적 폭력으로 발현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공격성이 폭력성으로 발현되는 경우를 들고 있는데, 알코올과 같은 화학물질, 어린 시절의 학대, 인간의 복종 성향, 가해자와 희생자 사이의 거리(심리적 거리가 아니라 물리적 거리), 두려움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인간이라고 여섯 가지의 요인을 들고 있다.

 

이렇게 폭력성이 발현되는 요인을 이야기하면 원인이 나왔기 때문에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즉, 정신 현상을 연구함으로써 공동체가 좀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신의학이 지닌 힘이다.

 

반대로 이것을 악용하면 정신의학은 사람들의 자유를 그럴 만하다는 의심으로도 구속할 수가 있다. 그렇게 악용된 경우도 있고. 이것에 관한 내용이 '열린 사회에서 정신의학의 책무'라는 장에 나와 있다.

 

딘순한 사례 중심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뱡으로 정신의학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 두 장에서 흥미를 유발해서 끝까지 읽도록 만들고 있다. 만약 처음에 처칠이나 카프카로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계속 읽기는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정신의학이 그다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분야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인이 어떤 질환을 앓았고, 그 질환을 이겨내면서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를 처칠, 카프카, 뉴턴을 통해서 알 수 있으니, 평범한 우리들 역시 나름대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을 수 있다.

 

누구나 사람들은 자기만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그 어려움을 피해가지 않고 이겨내려는 노력 속에서 사람다움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런 정신의학 관련 책이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단지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역시 사람의 정신 현상을 연구하는 정신의학이 알려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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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이방인 - 사회심리학에서 찾은 철학적 사색의 즐거움
고자카이 도시아키 지음, 박은영 옮김 / 레몬컬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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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책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였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대를 나오고도 프랑스로 망명을 해야 했던 사람, 홍세화. 그곳에서 그가 살기 위해 택한 직업이 택시운전사였다.

 

우리나라에서 택시운전사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우리나라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다른 곳을 통해 우리를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프랑스라는 나라, 똘레랑스(관용)의 나라라고, 융통성, 포용성이 있는 나라라고, 그렇게 우리 역시 우리의 생각을 돌아봐야 한다는 충격을 준 책이었다.

 

왜 이 책이 인기를 끌었을까? 우리 자신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속에 푹 빠져서 우리 바깥에서 우리를 보지 못하고 있을 때, 다른 눈으로 우릴 보게 해준 책이기에 의미가 있었다.

 

지금 읽은 일본인 학자가 쓴 "나는 빠리의 이방인" 역시 예전에 읽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떠올리게 해줬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이 책을 읽고 예전 책을 떠올렸다는 것은 그동안 변화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 아닌가.

 

홍세화가 그 당시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그가 소수자였기 때문이다. 이방인이었기 때문이고, 경계인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보통 소수의 사람들이 안티테제를 제시한다. 하지만 소수가 다수의 상식을 능가하더라도 소수의 생각이 답습되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다수의 상식과 대립하는 것을 넘어 대립의 전제마저도 뛰어넘어야 한다. 이질적인 생각들이 충돌해 생겨나는 파괴와 재구성의 끊임없는 운동. 소수는 바로 그런 운동의 기폭장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변혁을 통해 세계를 바꿔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수의 존재 의의다. (48쪽)

 

당시 홍세화는 소수자였고, 안티테제를 제시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변혁되어야 함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이런 소수자는 꼭 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데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현실 너머를 볼 수 있던 사람들은 늘 존재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주목하든, 주목하지 않든.

 

그러나 몇십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세상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 소수자가 세상을 변혁시킨다고 했지만, 우리는 대립의 전제를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비교는 했지만, 비교에서 그치고 다른 쪽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보고 거기서 멈추었기 때문일 수 있다.

 

다시 이 책을 인용한다.

 

(사실 이런 인용은 이 책을 쓴 저자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이다. 자기 나름대로 제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책에 대한 느낌을 쓰는 글이니까 라고 넘어가기로 하자)

 

해당 시스템의 논리만으로는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없는 이탈자의 의견·가치관·행동이 시스템 내부에 반드시 존재한다. 사회는 열린 시스템을 취하고 교란 요인이 발생한다. 이 교란 요인은 사회의 기존 규범에 흡수되지 않고 사회의 구조를 변혁시켜 간다. 이것이 모스코비치의 발생 모델이다. (79쪽)

 

깊은 변화를 가져오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진정한 영향은 소수파만이 일으킨다. 세계를 변혁하는 것은 이탈자다. (91쪽) - 모스코비치의 말이라고 이 책에 나온다.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모스코비치의 소수자 이론이라고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말을 통해 어쩌면 우리 사회는 교란 요인이 사회의 구조를 변혁시켜 간 것이 아니라, 사회의 기존 규범에 흡수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즉, 소수파가 해외에는 있었는데, 해외에서 다른 시각으로 우리 사회를 보는 것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쪽 사정일 뿐이라고, 우리는 다르다고 지레 포기하고 만 것은 아닌지, 아니면, 해외에 존재하는 이방인, 경계인과 더불어 사회 내부에도 소수파가 존재해야 하는데, 그런 이탈자가 내부에서 살아남기 힘든 구조였는지...

 

하지만 세상 변혁을 이끈 사람들은 소수파일 수밖에 없다. 혁명가들은 늘 소수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 세상은 확 바뀌게 된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 또한 만만치 않다. 계속 이 책을 보자.

 

기득권은 족쇄를 만들어 오히려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그만큼 인간은 약하다. 항상 변명을 하고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편한 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퇴로를 미리 차단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216쪽)

 

강하게 비판하는 소수자였다가 어느 순간 다수파로 변하는 순간, 그만 소수파들은 스스로의 족쇄에 갇히게 된다. 사회 변혁을 주장했던 소수파들이 어느 순간 다수파가 되고, 기득권에 흡수되어 기득권 세력이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바로 '퇴로' 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피할 곳이 있었으므로,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 비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방인, 경계인에게는 '퇴로'가 없어야 한다. 스스로 없애야 한다. 바로 백척간두에 서서 한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만이 소수파가 된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세상은 바뀐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것. 스스로를 계속 바깥에 위치시키는 것, 경계에 서서 실천하는 것, 그런 경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변혁을 이끄는 소수파다.

 

틀 속에 살면서도 꼭 틀 바깥에서만 보아야 경계인, 이방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틀 내부에서도 경계인,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변해왔음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와 마찬가지로 저자 자신이 프랑스에 정착하게 되는 자전적인 과정도 서술되어 있어서, 자서전을 읽는 느낌도 주고, 또 일본인이 어떻게 서양을 모방하고, 서양에 대해서 어떤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는지 - 이 책에서는 그것을 명예백인이라고 한다 - 도 알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자신의 삶도 이방인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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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rlca 2019-02-27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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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독서 -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최영화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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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기막히게 잘 붙였다는 생각...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라는 작은 제목에 '감염된 독서'라니...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읽기가 전염되는 물질처럼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마음까지도 감염시킨다는 내용이지 않을까 추측을 했다.

 

얼마나 멋진가? 읽기의 감염. 그 감염은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해주고, 서로를 이해하게 해주며 공통된 경험, 문화를 지니게 할 테니... 이렇게 생각하고 읽었는데, 첫장부터 예측이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읽기가 감염된다는 얘기가 아니구나. 문학 작품에 나온 질병에 대한 이야기구나. 그렇다면 그 질병으로 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이야기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감염내과 전문의로 일하는 저자가 병과 관련된 글을 쓴 것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러니까 의사가 질병에 대해서 글을 쓰는데,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질병과 관련지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서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작품을 분석한 책도 아닌, 수필집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수필이니까 저자의 느낌, 생각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제목에서 받았던 신선한 느낌을 글에서 받기는 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의사들의 내면을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고, 문학작품 속에 질병이 이만큼이나 많이 등장하는 것은 질병이 인간의 삶에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모두 질병을 안고 살고 있는 환자다. 병원에 가든 가지 않든 우리는 모두 환자임에는 확실한데, 그것을 전문의에게 맡길지 아니면 자신에게 맡길지, 약으로 고칠지 생활습관, 환경을 바꿈으로써 고칠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물론 너무 심한 병은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하고,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질병은 저자가 감염내과 전문의이니 만큼 감염병들이다.

 

홍역, 성홍열, 결핵, 장티푸스, 콜레라, 천연두, 인플루엔자 등등

 

감염병이 아니더라도 다른 질병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저자의 전공과 관련된 질병, 그리고 문학 작품에 나오는 그 질병에 관해서, 자신의 경험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딱딱한 의학서적이 아니라 편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문학의 감염역을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실망을 안겨줄 수 있기도 하다.

 

또 질병이 나오는데, 딱딱하게 쓰지 않으려 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질병에 대해서 보충설명이 있었으면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 각 질병을 한 쪽 정도 할애해서 설명해주었으면 좀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물론 그러면 분량이 많이 늘어나겠지만, 동일한 질병들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으니 이를 하나로 묶으면 분량 문제도 해결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가령 성홍열에 관한 글이 있는데 (성홍열과 홍역 사이 -형제, 나를 살찌운 것들-만화책과 성홍열)을 보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수긍하기 힘든, 그런 구절이 있다.

 

성홍열인데 이 병에 걸리면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항생제가 없던 시절의 성홍열 사망률이 25퍼센트였다고 하니 걱정할 만했지요. ('성홍열과 홍역 사이- 형제'에서 102-103쪽)

 

성홍열은 A군 사슬알균에 의한 세균성 인후염으로 피부 발진이 동반되는 게 특징이고 근접 접촉이나 비말(飛沫 - 날아 흩어지거나 튀어오르는 물방울)로 전파되는데 고열, 두통, 인후통, 발진이 있고 혀가 딸기처럼 빨개집니다. 심하지 않으면 일주일쯤 앓다가 열이 떨어지고 낫는데 피부가 살짝 벗겨지는 게 특징이지요. ... 루이자 올콧이 활동하던 시기엔 항생제가 없었으니 진통제로 벨라도나를 먹은 뒤 실컷 앓으면 면역을 얻었을 것입니다. ('나를 살찌운 것들-만화책과 성홍열' 171-172쪽)

 

두 글을 읽으면 한쪽 글에서는 성홍열에 걸리면 목숨을 잃을 걱정을 해야 하는 그런 긴박감을 다른 글에서는 마치 독감을 앓고 마는 듯한 가벼운 느낌을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같은 병인데, 게다가 루이자 올콧 -작은 아씨들의 저자-이 살았던 시대는 루쉰이 살았던 시대보다 앞선 시대인데...

 

이런 부분을 하나로 엮어서 더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러나 이런저런 얘기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의사들을 경원하지 않게 해준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 지금도 마음을 울리는 구절은 이런 질병과 관계가 없는, 그러나 내 마음을 감염시킨...'닥터 노먼 베쑨'에 나오는 그 구절...

 

"닥터 봉, 당신은 도대체 어느 대학을 나왔소?" (이 책 167쪽. 테드 알렌 외, 닥터 노먼 베쑨, 실천문학사. 1999년 초판 43쇄. 322쪽.)

 

환자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중국인 의사에게 베쑨이 하는 말... 마지막 말,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의사는 대학을 나왔다는 생각.

 

세칭 386이라는 사람들이 (이 말 역시 써서는 안 될 말이지만) 처음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몇 학번이에요?"라고 습관적으로 묻는 말.

 

우리나라 사람이 모두 대학을 나왔다고 가정하는 건지, 원... 이제는 이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고 잘 쓰지 않지만, 그만큼 폭력적인 말이 "너 어느 대학 나왔니?"라는 말.

 

오죽하면 영화에서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저자는 이 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 베쑨은 나중에 사정을 알고 닥터 봉을 진심으로 대한다. 그는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어깨 너머로 의사들이 치료하는 것을 보고 외우고 익혀서 사람들을 치료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사람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여기에 무슨 학력이 필요하단 말인가?  베쑨은 닥터 봉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고쳤던 것이다. 감염된 독서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한 법정 전염병 제1호는 '학벌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나 감염되고 치유하기도 힘든 그런 질병.

 

그래, 의사가 환자들의 마음까지 보기 위해서는 겉모습을 거쳐서 더 깊은 곳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그만큼 정성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의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다.

 

사람을 대할 때 겉에서 시작하겠지만 반드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감염시켜야 한다. 그런 자세를... 이 책에서 '감염된 독서'를 했다면 그렇게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태도에 감염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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