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는 '마을 교육 공동체 사업'을 기획으로 삼았다. 교육이 학교라는 공간에만 머무는 곳이 아니라, 마을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마을로 교육을 확장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 교육을 학교에 맡겨두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기 때문이다.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마을이라는 개념이 점차 사라져가고 마을은 단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곳이라는 의미만을 지니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학교를 벗어난 교육을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학교를 벗어난 교육을 하려면 당연히 마을에 주목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장소에서 배움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을 교육 공동체 사업'을 하는 이유다.

 

여기에 학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교육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교육을 좀더 확장시키는 사업이 '마을 교육 공동체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교육은 특정한 공간에서 특정한 사람들에게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교육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곳이 바로 마을이다. 따라서 마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지금 흐름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마을 교육 공동체 사업과 연결지어 이번 호에서 놀이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배움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놀이터만큼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는 장소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놀이터를 획일화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놀이터, 그런 놀이터를 마을에 갖고 있으면 마을 교육 공동체 사업도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호, 교육을 학교에서 마을로 더 확장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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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은 어김없이 봄을 맞이했는데... 겨우내 잠들어 있던 싹들이 활짝 활짝 꽃피우고 있는데...

 

  삶은 여전히 겨울이다. 게다가 불이 또 우리를 괴롭히는데... 인재는 막을 수 있고 책임도 물을 수 있지만 천재는 어떡하겠는가? 하지만 천재 라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

 

  자연이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희들 이대로 살면 나도 너희도 모두 살기 힘들어진다고.

 

  삶창을 읽으며 세상을 읽게 되는데... 이번 호를 읽으며 도대체 세상에 언제 봄이 오나 하는 생각을 한다.

 

'창을 열며'에서 짙은 피로감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 중간 부분에 이런 말이 있다.

 

경제를 살린다는 핑계 때문인지 아니면 현 정권이 정말 '촛불'의 계승 세력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이에 대해(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이야기한다) 정당이 되었건 학자가 되었건, 노동조합이 되었건 이명박에게 그렇게 저항했던 문학인들이 되었건 대부분 꿀먹은 벙어리다. 이런 기현상은 현 정권 기간 동안 다시 한번, 그러나 방향은 다르게, 정신적 퇴행을 불러올 것임은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하에 개시되는 저 미증유의 파괴 사업은 이미 제주도에서 시작된 지 오래되었다. 강정 해군기지에 이어 서귀포시 성산읍에 제2공항을 만드는 문제가 그렇다. (3쪽)

 

현 정권이 잘못하면 따끔하게 이야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자꾸만 눈 감아 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든다.

 

눈감아 주는 것이 능사가 아닌데... 오히려 경제성장 프레임에 갇힌 현 정권에게 다른 길이 있음을 알려주고 그 길로 가자고 해야 할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4.3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제주도에서는 4.3이 진행 중이다. 강정이 여전하고, 영리병원이 그렇고, 제주2공항 건설이 그렇다. 자꾸만 자본의 논리만을 따라가려 한다.

 

이번 호에서 이런 제주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본의 이익이 앞서서 마을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여기에 평화라는 명목으로 자본의 논리를 추구하는 것은 비무장지대도 마찬가지다. 천혜의 자연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 생겼는데, 그곳에 둘레길을 낸단다. 사람 발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면서 모르는 체 하는지, 아니면 그까짓 자연은 인간에게 희생되어도 된다고 하는지...

 

박병상의 글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박병상,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경제가 다른 무엇보다 우선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많이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제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경제를 우선하는데도 경제를 살리는 노동자들의 삶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그들이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들이, 또한 정규직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지...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으로 합의를 이루었지만 그 합의를 지켜나간다는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삶창은 그래서 지금 현실을 바로 보자고 한다.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칭찬할 것은 칭찬하는... 우리 모두가 삶이 보이는 창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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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 특공대
박혜지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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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단편소설이 묶여 있는 소설집이다. 소설이란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허구가 공상이 아니라 상상이라고 현실에서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소설이다.

 

그냥 공상에 머무르고 만다면 소설의 생명이 이토록 길지는 않았으리라. 소설이 사실이 아닌데, 마치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 소설 속에서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 그것이 소설가가 지닌 책무일 것이다.

 

박혜지 소설집을 해설에서는 '거짓말의 매혹과 이야기의 미래'라고 했는데... 이 소설에서 백미를 이루는 것은 바로 첫번째 실린 소설, '최고의 거짓말'이 아닌가 한다.

 

갑을병정 네 명이 서로 있음직한 거짓말을 해서 거짓말의 왕을 뽑자는 내기를 하고, 그들이 서로 거짓말을 만들어내는데... 그 거짓말 끝에 왕을 뽑기는 했으나, 때마침 지나가던 유세차량에서 하는 말을 듣고 그들 모두 우울한 기분에 휩싸였다고 하는데...

 

선거유세에서 하는 말이 소설가는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최고의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우리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저는 국민 여러분의 충실한 종으로서, 국민 여러분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이 한 몸 아낌없이 바치겠습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여러부운!" (30쪽. 최고의 거짓말 끝부분에서)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거짓말 중의 거짓말이 바로 이런 정치인들이 선거 유세 때 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그들에게는 말에 대한 책임이 없다. 그렇지만 그럴 듯한 거짓말, 우리가 듣고자 하는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이기에 이 거짓말이 통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을 이 소설에서 참으로 씁쓸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소설들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문제적 개인이 사회에 맞서 싸우는 내용이 아니라 비루한 개인이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잡으려고 아등바등 대는 모습을 소설에서 표현하고 있다.

 

제목이 된 '오합지졸 특공대' 역시 그렇다. 모두 병신들만 모였다는 특공대, 한쪽 팔, 다리, 눈, 귀가 정상이 아닌 사람들... 이들이 모여 무엇을 하겠다고 특공대를 조직했지만 그들이 잡은 것은 길고양이 한 마리...

 

우리는 이토록 비루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한 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비웃으면 안 된다. 이들도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힘이다. 이야기의 힘이기도 하고... 비록 정상이 아니고, 약한 존재들이고, 사회에서 소외된, 무시당하는 존재들이지만 이들 역시 특공대를 만들고 자신들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

 

누군가가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길고양이 한 마리를 잡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함께 해나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그래야 다른 일도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소설집은 이런 식으로 웃음을 주지만은 않는다. 읽으면서 참담한 마음이 들게 하는 소설도 있다.

 

바로 '동백'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것, 이 와중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어쩌면 문학(이 소설에서는 시라고 할 수 있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다.

 

이밖에도 '거대한 무덤, 공격적 용서'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었고, 이런 소설을 통해서 현실을 재구성해 낼 수 있다.

 

소설이 거짓세계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소설은 허구라는 요소로 사실을 비춰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덧글

 

고맙게도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덕분에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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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8 - 위기와 극복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8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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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정은 확립되었다. 누구도 황제라는 지위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 누가 앉느냐를 생각할 뿐이다.

 

원로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황제 권력을 견제한다고 하지만, 그 견제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황제라는 지위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자신들의 권력이 유지되는 동안은.

 

그렇다면 황제는 어떤가? 동양처럼 세습 황제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던 시대에, 이들은 능력자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을까?

 

핏줄에 집착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세습 황제들을 만들고 싶어했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았고, 그런 핏줄에서 폭군이라 할 수 있는 황제(칼리굴라, 네로)가 나왔으니 절대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네로를 자살로 이끈 다음에 과연 나라가 평온해졌을까? 그렇지 않다. 핏줄이 끝났다. 이제는 능력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절대 권력을 쥘 수 있다. 욕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목숨을 걸 만한 일이다. 권력욕이 없는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없는 일이겠지만.

 

이제 많은 권력 다툼이 일어난다. 권력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사람은 군사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자고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로마 역시 마찬가지다. 군사들의 지지라고 하기보다는 군사령관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황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석인 황제 자리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군사령관들이다. 원로원 의원들은 이런 일에 목숨을 걸려고 하지 않는다. 적어도 혼란기에는.

 

8권은 그래서 군단장, 군사령관 출신의 황제들이 난립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갈바로부터 시작하여, 오토, 비텔리우스까지 몇 년 안에 황제들이 죽고, 죽이고 하는 과정을 거치고, 드디어 안정기에 접어드는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로부터 시작된다.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되어 로마는 차츰 안정기에 접어들고, 그 아들 티투스가 대를 이어 로마를 중흥시킨다. 그러나 티투스가 일찍 죽고 동생인 도미티아누스가 황제가 되어 로마는 제정이 안정기에 접어든다.

 

다만, 도미티아누스는 폭군으로 기록이 되고, '기록말살형'이라는 중형을 받는데, 시오노 나나미의 주장에 따르면 도미티아누스는 폭군이라기보다는 원로원과의 권력싸움에서 밀려난 사람이라고 한다.

 

즉 로마 권력을 놓고 제정이라고 해도 원로원이 견제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당하고 - 특이하게도 그는 원로원이나 군단들의 반란으로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가정사로 인해 살해당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기록말살형에 처해지고, 암살자들이 모두 처형당해서 구체적인 살해 동기와 과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 네르바가 즉각 제위를 이어받음으로써 제정이 계속되게 된다.

 

네르바는 원로원 의원이었고, 나이도 많았으며 친도미티아누스도 반도미티아누스파도 아니었기 때문에 황제로 추인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후계자를 잘 임명함으로써 로마 오현제 시대를 열어간다고 한다.

 

이제 로마는 오현제 시대에 접어든다. 이들이 오현제라고 인정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습이 아닌 능력있는 후계자를 지명했다는 데 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이렇게 한 사람에게 절대권력이 주어지면 언제든 폭군이 등장하거나 또는 살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이런 정치구조가 지닌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로마인이야기를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더해 정치구조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면서 읽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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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들이 어렵지 않다.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들이 시로 탄생했다. 우리가 거쳐온 시간... 결코 가볍지 않은 시간.

 

  광화문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함께 했던가. 단지 광화문에서만이겠는가. 우리나라 곳곳에서 모두들 시간을 함께 했다.

 

  시인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가 거쳐온 그 수많은 시간들은 참으로 무겁다.

 

  우리 시간들을 통해 세상을 바꾸었다고,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시간들의 무게가 그냥 사람들을 누르고 있었나 보다.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또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나 싶은 요즘이다.

 

이러니 그놈이 그놈이라는 말이 나올밖에. 에고...고...

 

다른 사람들 상처를 보듬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 상처들을 후벼파는 말들, 행동들이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배반하고 있다.

 

무거운 시간, 그 무겁디 무거운 시간을 몇몇은 아주 가볍게 흘려 보내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남들이 넘겨준 그 시간을 제 이익을 위해서, 제 안위를 위해서 그냥 써버리고 마는 현실.

 

이럴 때 고광헌의 시집, [시간은 무겁다]에서 첫시, 시인이란 바로 상처를 받아내는 사람이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닿는다.

 

시인이 상처를 받아내는 사람이라면, 정치인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대신해서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그 상처를 치유해주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정치인은 시인의 마음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상처를 상으로 받아야 시인이지

 

  김경미 시인 문학상 받는 날, 예쁜 축하 화분이 왔는데요, 리본에 쓰인 글이 가슴을 때립니다

 

  祝 受傷!

  상처를 상으로 받으니 축하한다는 건데요, 세상 어떤 시보다 더 시적이더라고요, 가슴속에 죽비가 떨어지데요, 시인은 세상의 모든 상처를 한 상 받아내는 운명이잖아요

 

  시인에게 상은 그저 아름다운 모욕이겠지요

 

고광헌, 시간은 무겁다. 창비. 2011년. 10쪽.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당리당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처럼 이렇게 상처를 한 상 받아내 그것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들은 자기만의 시간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이 그들 시간에 겹쳐 있는 것이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무거운지, 4년이든, 5년이든, 그 이상이든 물리적인 시간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

 

그들에게 정해져 있는 시간은 다른 사람들의 시간이 중첩되어 있는, 무겁디 무거운 시간이라는 것. 함부로 보내서는 안 되는 시간이라는 것.

 

상처를 받아내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시간의 무게를 감당하는 사람들의 자세라는 생각. 고광헌의 시집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상처를 받아내는 사람이 시인만으로 그쳐서야 되겠는가. 우리들 모두는 누군가의 상처를 받아내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부터라도, 그렇게 살아야지, 그것이 내 시간의 무게에 값하는 삶이지 하는 생각을 한 시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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