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6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곽광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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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 2권을 시작한다. 이제는 황제의 죽음까지다. 그런 생애를 요약할 필요는 없다. 이상하게 이 작품은 소설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이 아니라 진짜 회고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마 어떤 작가는 우연히 서점에서 이런 책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이 책을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유르스나르는 '친애하는 마르쿠스'로 시작한다. 양자로 맺어진 친족 관계로 따지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하드리아누스에게 손자뻘이 된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세손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시작하니,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읽으면 역사적 사료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르스나르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 작품이 소설임을 강조한다.

 

'역사소설을 별도의 범주에 넣는 사람들은, 소설가가 하는 일이란 역사와 같은 자료로 짜여진 상당수의 과거사들과 추억들 - 의식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개인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을 자기 시대의 방식의 도움으로 해석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254-2555쪽)

 

그러니 이 작품은 소설이다.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아니 사실이다. 작가가 얼마나 많은 역사적 자료들을 참조했겠는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 9권'을 먼저 읽었으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시오노 나나미가 이 책을 얼마나 참조했는지 잘 알게 된다. 아니, 그들은 어쩌면 같은 사료들을 가지고 작업을 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을 참조할 수도 있었느니, 유르스나르보다 더 많은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책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썼고, 유르스나르는 소설이라는, 자신은 문학 활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썼으니, 이 작품이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보다 표현이 더 풍부하다고 할 수 있다.

 

2권에서는 안티노오스라는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도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자기 부인인 사비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적게 나오고, 오히려 어머니 뻘인 플로티나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니, 하드리아누스에게 영향을 준 여인은 트라야누스의 부인인 플로티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그에게 부인인 사비나보다는 자신이 마음을 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 그런 대상으로 곁에 다가온 젊은이가 안티노오스. 하드리아누스는 그를 만나고 곁에 두지만 그는 20세라는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죽음으로 안티노오스는 영원한 젊음으로 하드리아누스에게 남았다는 사실.

 

누군가에게 기억할 만한 인물이 있기 마련인데, 하드리아누스에게는 안티노오스라는 젊은이가 그런 인물이었다는 것. 그렇다고 그에게 푹 빠져 다른 일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티노오스 이야기와 유대 반란 이야기, 예루살렘에 살던 유대인들을 쫓아내는 황제,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는 황제가 바로 하드리아누스이고, 자신의 몸이 좋아지지 않자 후계자를 선정하는 작업을 하는 황제의 모습.

 

이 과정에서 그는 인간 사회가 어떻게 변해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내비친다. 아마도 작가인 유르스나르의 생각이겠지만... 이 문장들은 여러 생각할거리를 제공한다.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우리들의 연약한 노력은 우리들의 후계자들에 의해 산만하게 계승될 뿐일 것이다. 반대로 선(善) 자체 내부에 포함되어 있는 과오와 멸망의 씨앗은 제(諸) 세기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싫증난 세계는 다른 주인들을 찾게 될지도 모르고, 우리에게 현명하게 보였던 것이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아름답게 보였던 것이 추악한 것으로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154쪽)

 

신중하게 고른 후계자가 일찍 죽어버리고, 결국 다시 후계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 여기에 후계의 후계까지 고려해 안토니누스를 양자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받아들에게 하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자식을 낳지 못해서 양자를 들여 후계자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지만, 어쩌면 이것은 로마의 발전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핏줄에 의해 황제 지위를 계승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식이 없는 것에 대해서 아쉬워 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 죽음에 대면해서 그가 견뎌내는 장면이 이 작품의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렇게 로마 시대 오현제라 불리는 황제들 중 세번째 황제인 하드리아누스의 이야기는 끝난다.

 

이처럼 회고록이라는 제목을 지닌 이 소설을 통해 로마 오현제 시대의 정점에 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다가갈 수 있다. 이 소설이 지닌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작가는 이 책 후반부에 창작 노트를 실어두고 있다. 이 작품을 쓸 때 견지했다는 규칙.

 

'이 작품을 쓰는 데 있어서의 규칙: 관계되는 일체의 것을 연구하고 읽고 조사할 것. (256쪽)

 

이밖에 창작 노트에서 몇 가지를 인용한다.

 

만약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세계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고 제국의 경제를 개혁하지 못했다면, 그의 개인적인, 행복하고 불행했던 일들은 나에게 덜 흥미로울 것이다. (260-261쪽)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보다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일기'가 더 좋았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행동적인 사람이 일기를 쓰는 것은 드문 일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 행동적인 사람은 거의 언제나 나중에, 행동을 잃어버리게 된 시기의 끝에 와서야 옛날 일들을 회상하고 적고 또 대개의 경우 놀라는 것이다. (267쪽)

 

나는 내가 한 위인의 생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재빨리 깨달았다. 그 때문에 나는 진실을 더욱 존중했고, 더욱 조심스러웠으며, 나 쪽에서의 개입을 더욱 삼갔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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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5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곽광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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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 9권'을 읽다가 이 책 제목을 보았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등극할 때 벌어진 정적에 대한 살해 사건을 다루는 부분에서였다.

 

소설이라고 하는데,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사실적이라는 이 작품에 대해서, 작가가 조사를 많이 하고, 사실(史實)에 기반해서 소설을 썼다고 하는, 시오노 나나미가 극찬하는 작품이었다.

 

어찌 읽어보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좋은 책이란 그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책을 읽게 만들지 않는가. 책들의 연쇄. 이 책에서 저 책을 소개하고, 다시 다른 책으로 건너가게 하는 책들이 좋은 책이다.

 

로마인 이야기 다음 권으로 넘어가기 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에 대략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지식은 있는 셈. 그렇다고 많이 알지는 못하니, 회상록이라는 형식으로 쓴 소설인데, 진짜 회상록을 읽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손자뻘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쓰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생각과 일생을 표현하고 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황제가 되어 평화를 유지할 때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는 것이 1권이다. 2권에서는 황제가 되어 로마를 다스리게 되는 중후반 이야기가 나오게 될 것인데, 1권에서는 황제가 되기까지 그가 겪었던 마음 고생, 그리고 황제가 되자마자 벌였던 살해가 정당화되고 있다.

 

그는 방어를 중심으로 로마를 다스리고자 했다. 정복으로 영토를 확장하기보다는, 이미 확보한 영토를 확고하게 지키는 방향으로 로마를 이끌어가고자 했던 황제.

 

그러니 방대한 영토를 지닌 로마를 수도에서만 머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재위 기간 중 많은 기간을 영토 순방에 나서는데, 순방에 나서서 그 지역에 맞는 해결책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들을 총독이나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이렇게 그는 제도로써 로마를 안정시키려고 한다. 그가 지속적으로 지방 순방을 다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자신의 선대인 트라야누스 황제와는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트라야누스는 장군으로서의 황제라면, 하드리아누스는 황제로서의 장군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로마가 안정이 되지 않았을 때 군사력으로 로마의 힘을 과시한 것이 트라야누스라면, 그런 정복 전쟁 다음에 로마를 안정시키는 황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하드리아누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그의 모습, 황제로 등극하기 전까지 트라야누스와 반대되는 사고를 했던 하드리아누스의 모습이 전반부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전임자를 딛고, 전임자를 넘어서야만 자신의 존재 위치를 각인시킬 수 있는 하드리아누스.

 

다른 길을 가되, 로마를 안정시키는데는 목표가 같았던 두 황제. 그리고 황제가 된 이후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계속 설명하고 있는 소설.

 

사실에 기반해서 썼기 때문에, 어쩌면 이 소설을 통해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대해서 더 잘 알아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작품은 회상록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것.

 

회상록도 철저하게 자신의 처지에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으니, 이 소설을 통해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대해서 다 알았다고 하면 그건 잘못된 읽기일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다만, 회상록이라는 형식을 통해 제정이 안정기에 접어드는 로마, 그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의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은 좋다.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문구... 이 작품 1권에서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고백하거니와 나는 법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 법이 너무 엄격하면 인간은 법을 거기에 되고, 또 그것은 당연하다. 법이 너무 복잡하면, 인간의 간지(奸智)는 그 약하고 축 늘어진 그물 틈으로 빠져나갈 방도를 쉽사리 발견한다. ... 너무 자주 위반되는 법은 어떤 것이나 나쁜 법이며, 그러한 사리에 어긋나는 법령이 당하는 무시가 더 타당한 다른 법들에 확산되지 않도록, 입법자는 그것을 폐기하거나 개정해야 한다. 나는, 불필요한 법은 신중하게 검토하여 없애버리고 확고하게 공포할 적은 일군의 현명한 법규들은 제정할 것을 목적으로 하기로 작정했다. 모든 오래된 법들을 인류의 이익을 위해 재평가할 때가 온 것처럼 보였다.' (197-198쪽)

 

이랬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다. 그러니 그가 오현제 중의 한 사람으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가 이런 자세를 끝까지 견지했을까?

 

이제 2권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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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 - 승자와 패자의 운명을 가른 역사의 한 장면
이현우 지음 / 어바웃어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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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도 싸움을 한다. 목숨을 건 싸움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동물들은 우열을 가리기 위한 싸움을 한다. 승자가 결정되면 패자는 승자에게 굴종하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싸움을 하더라도 더 큰 싸움을 한다. 종족 자체를 몰살시키는, 소위 홀로코스트라고 하는 학살을 하기도 한다.

 

종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종을 없애기 위한 활동도 한다. 그렇게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자처하는 인간은, 자신과 같은 종인 인간을 공존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고 제거하려는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으로 인해 승자도 패자도 피해를 보게 되지만,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쟁이 없는 시기는 너무도 짧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온갖 무기들이 개발되고, 그것이 지구를 멸망으로 이끌 정도로까지 위력이 강해진 현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전쟁과 가장 무관할 것 같은 예술, 그 중에 미술에서 전쟁을 만날 수 있다. 전쟁과 관련된 그림도 많아서 미술관에서 전쟁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그림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전쟁의 여러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무기들의 발달사에서부터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 (코르셋, 카디건), 먹을거리 (초콜릿) 들도 전쟁과 관련이 있음을 그림(미술)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전쟁이 꼭 역사책으로만 기록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림 속에서도 전쟁이 기록으로 남는다. 그런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전쟁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전쟁이 인류에게서 사라지는 것을 꿈꾸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미술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미술의 역사만큼이나 미술 속에 전쟁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런 미술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전쟁이 없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술 속에 나타나는 전쟁 영웅들의 모습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발견,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오는 전쟁의 참상, 또는 전쟁의 역사를 미술을 통해서 발견하고,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일, 그것이 바로 우리 몫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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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생물들의 반란

              --- 대명 비발디 파크로 가는 길에


어느 날 몸 속에 살던 미생물들이

아 따분해

무슨 재밌는 일 없을까

그래, 몸에 길을 내는 거야

없던 길들이 생기고

나들이 하고

그냥 나들이는 따분해

털들을 밀어내고

미끄럼틀을 만들어 씽씽


아 이런 길이 막히네

안 되겠다

더 넓히자!

어, 앞이 막혔네

뚫자!

털들이 무성했던 곳은

반질반질 뺀질뺀질만이 남고

온 몸에는 없던 길들에

넘치는 미생물들만 넘실댄다


어느 날

지구는 소리쳤다

이 미개한 인간들아

미생물들보다 더 못한 인간들아

숨 쉬기가 곤란하다

바로 너희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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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고양이 우리 시대 우리 삶 2
황인숙 지음, 이정학 그림 / 이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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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맘이라는 말이 있다.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 그들은 길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역시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그만큼 생명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뜻이리라.

 

시인 황인숙은 남산 해방촌에서 산다. 해방촌에 살면서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동네 고양이들을 위해 먹이를 주기도 한다.

 

물론 동네 사람들 가운데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황인숙은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사랑, 그것은 곧 시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이 책 1부는 이러한 해방촌 길고양이와 얽힌 이야기들을 싣고 있다.

 

많은 동네에서 길고양이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게 된 지금, 이 책은 조금 시일이 지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길고양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이 책에서 언급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길고양이들 처지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고...

 

시인은 길고양이와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 비와 주차 차량 이야기를 한다. 비를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시인. 발이나 옷이 젖는 것도 좋아 비가 오면 한정없이 걸었다는 시인이, 길고양이를 돌보면서부터는 비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길고양이에게 준 먹이가 비로 인해 불어터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마가 되면 길고양이들이 너무도 안 좋은 환경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길가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고마운 존재로 바뀌게 된다. 적어도 그렇게 주차되어 있는 차량 밑에서 길고양이들이 비를 피하거나, 더위를 피하거나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 어떤 존재도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 있다는 것, 시인은 이렇게 길고양이를 통해서 존재들의 다양한 의미를 생각하게도 해주고 있다.

 

읽다가 황인숙 시인이 낸 시집이 있는 것이 기억나서 시집 차례를 죽 훑어보았더니, 고양이에 관한 시가 두 편이 있다. 대충 훑어본 것이라 아마도 더 많은 시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시들은 다음과 같다.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가시덤풀 속을 누벼누벼

너른 벌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새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닥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어두운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쫓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황인숙,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문학과지성사. 1992년 4쇄. 14-15쪽.

 

  고양이

 

당신의 손끝이 내 등을 스치면

별들이 벌떼처럼 날아오르죠

당신의 손은 게을러요

당신의 손을 핥을 때

당신의 무릎에 턱을 비빌 때

떨어지는 몇 개의 별처럼

야아옹 서글피 당신을 부르는 걸

자, 그만. 하고는 마시지요

별은 내 마음에도 제멋대로 나타나

내 기분을 변덕스럽게 해요

나뭇가지 중에서도 하늘거리는

윗가지에 앉아

어지럽도록 흔들리는 게

나는 좋아요

별들이 반짝이는 건

몹시 흔들리기 때문이죠

내가 새조롱에 달려든다면

당신은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나는 당신의 새를

해치려는 게 아니어요

그저 그들과 함께 가벼이

당신 앞에서

반짝거리고 싶을 뿐

 

당신의 손은 게으르죠.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문학과지성사. 1997년 재판 2쇄. 74-75쪽.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화자의 소망은, 그렇지 못한 고양이들의 현실과 겹쳐져 사람만이 아니라 갇혀 있는 존재,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두 번째 시는 집에 있는 고양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고양이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과 함께 어울리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이 어찌 고양이뿐이겠는가. 우리들의 손은 어쩌면 그렇게 게으른지도 모른다.

 

우리 앞에서 반짝거리고 싶어 행동하는 존재들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 시. 내가 주변 사람들, 주변 존재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시.

 

고양이를 통해 나를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들과 황인숙이 경험하고 생각한 이야기들이 함께 실려 있으니 여러가지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길고양이들을 먹이까지는 주지 못하더라도 좀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고.

 

덧글

 

수필을 읽는 재미가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시가 젊음에 해당한다면, 소설은 중년에 해당하고, 수필은 노년에 해당한다는 말이 있는데, 수필은 자신이 살아온 세상을 돌아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이 글에서 이런 말을 읽고 이 말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 기술이란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 경쟁상대가 아니라 상담상대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술이다." - 앙드레 모루아의 글이라고 한다.

 

"영광의 공허함을 알고 무명의 한 존재로 편안함을 얻으려는 기분" - 누군가의 말인지 모른다고 한다.  이 말 역시 앙드레 모루아의 글이라고 하는 글도 있다. (239쪽)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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