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성 빨간책 : 남자 청소년 편 - 아빠와 아들이 함께 보는 성교육 Q&A 아우성 빨간책
사단법인 푸른아우성 지음, 구성애 감수 / 올리브엠앤비(주)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은 대부분 고리타분히다. 청소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저 도덕적인 소리를 하고 있다고 외면당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런 성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교라는 곳, 참 보수적이다. 아니 보수적이기보다는 수구적이라고 해야 옳다.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과거에 매여 한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사라는 직업으로 큰소리 치면서 살아가는 곳이 바로 학교다. 그러니 미래를 이끌기는커녕 현실 상황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성교육이 대표적인 예다. 하나마나한 성교육, 예전과 다름없는 성교육, 이미 청소년들은 온갖 매체를 통해 성에 대해서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그들은 온갖 매체, 특히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잘못된 성지식을 배운 경우가 태반이기는 하지만... 또 청소년들의 성경험은 저만치 앞서 있는데, 도덕적인 소리나 해대는 성교육이라니...

 

이 책은 그런 잘못을 고칠 줄 알았다. 물론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보다는 훨씬 낫다. 남자 청소년들의 경험이 잘 드러나 있어서 남자 청소년들의 성생활에 대해서, 성고민에 대해서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답변은 여전히 도덕적이다. 이런 도덕적인 답변으로 과연 청소년들의 성고민, 성충동, 성생활이 나아질까 하는 의문이 든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답변, 그래서 누구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답변. 그럼에도 이 책은 한발 나아갔다. 자위하지 마라, 성관계 갖지 마라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충동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청소년기니, 이것들을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위를 하는 것과 음란물을 보는 것을 구분할 것, 즉 음란물은 성을 사랑으로 보지 않고 특정한 신체부위로만 생각하게 한다는 것, 성생활이 꼭 삽입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는데, 음란물은 그런 것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 또한 음란물은 여성을 대상으로만, 수단으로만 취급한다는 점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그러니 자위를 할 때는 음란물을 보면서 하지 말고, 여기에는 현실적인 몸에 대한 충고도 이어지는데, 음란물을 보며 자위를 하면 사정 시간이 점점 빨라져 조루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그러나 다른 장에서는 조루란 없다는 식의, 즉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지만 그건 그렇다치고, 서로 사랑을 한다면 사정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몸을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니, 자위를 할 때도 자신의 몸을 우선 알아가는 자위를 하라는 충고를 하고 있다.

 

천천히, 자신의 온몸을 알아가는 자위, 그야말로 자위다. 그런 자위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 점, 여기에 더해 성관계를 할 때는 책임에 대해 생각하라는 것, 상대의 동의, 피임 등등에 대해 고려하라는 충고를 하고 있다.

 

이 정도가 학교 성교육보다 나아진 점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관계다. 성관계도 역시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이런 관계가 맺어진다면 성에 관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책에 담을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 정도의 책이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성을 금기로 여기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점, 또 다양한 남자 청소년들의 고민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지우 시집을 읽다. 시집에는 예전부터 알고 있던 시가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

 

  이 시가 이 시집에 실렸었구나. 하지만 다른 시들 역시 오래 되었음에도 역시 황지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더구나 그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시로 여전히 쓰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이번엔 사진까지 넣어서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는 사실. '화엄광주(華嚴光州)'라는 시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정말 삶은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 고통이라는 월세를 지급해야 하는 것인지 하는 생각을 한다.

 

누구에게나 삶은 즐거워야 하는데, 이 척박한 세상에서 연꽃을 피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우리 모두가 한 송이 한 송이 연꽃을 피워 화엄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지불해야 하는지.

 

그런데 시인은 기회주의자들이 고통을 더 지불한다고 한다. 그들은 재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쪽을 택하기 때문에, 그들은 고통을 더 많이 지불한다고.

 

그러니 우리는 그냥 집으로 가자고.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은 고통을 지불하게 하자고 하는 쪽으로 들린다. 그래, 너희들은 그렇게 재고재고, 또 재는 고통을 이 세상에 계속 지불하거라.

 

그렇다고 너희들의 그 사색이 세상을 지배하지는 못하니까. 오히려 너희들의 괴로움을 더 늘릴 뿐이니까.

 

내게 황지우의 '겨울산'이라는 시는 그렇게 읽힌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재는 삶을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내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어느 정도 고통은 내가 당연히 내야 할 값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그렇게.

 

  겨 울 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황지우, 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1년 7쇄. 4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터 드러커 자서전
피터 드러커 지음, 이동현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경영학자로 잘 알려진 피터 드러커가 쓴 자서전이다. 자서전이라고 하기보다는 드러커가 만난 사람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겠다.

 

드러커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다.

 

남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자서전인데, 자신의 할머나로부터 자서전이 시작된다. 할머니의 독특한 말하기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마을에 살았던 사람, 헤메와 게니아에 대해서, 자신이 영향을 받았던 선생인 엘자와 소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렇듯 자서전이지만 다른 사람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또한 그들을 통해서 드러커가 어떤 점을 배웠고, 그 사람들에게서 취한 것과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던지도 알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드러커의 자서전을 나로 하여금 읽게 만든 사람은 바로 폴라니다. 아니 폴라니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서 고민하고 실천하려 했던 사람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사회 개혁을 했느냐 하면 긍정적인 답을 할 수가 없다. 세상은 한 개인에 의해 또는 한 집안에 의해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인간에 대해 탐구하면서 결국은 인간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폴라니를 보면서, 사회 변화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회는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의 노력들이 쌓이고 쌓인 상태에서 어느 순간 바뀌는 것이라는 사실. 특정한 인물이 사회를 바꾸려다 또는 자신이 권력을 행사하려다 희생되는 경우를 '헨슈와 세퍼' 편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오스트리아 태생인 드러커가 히틀러에 대해 지니고 있는 감정이 곳곳에 잘 드러나 있는데, 그가 전체주의를 얼마나 혐오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젊은 시절, 오스트리아와 독일, 영국에서 만났던 인물들에 이어 193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로 자서전을 끝맺는다.

 

미국은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강대국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즉 동일성 강요보다는 다양성 인정으로 사회를 이끌어갔기 때문에 유럽보다 더 발전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드러커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그것이 드러커를 있게 한 힘일지도 모른다.

 

이런 형식의 자서전을 읽으며 나를 살피기 전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봐야겠단 마음을 먹는다.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나는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결국 나를 만들어주는 것은 남들이다. 다른 존재들이 나를 구성해준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도 역시 다른 존재들이다. 바로 남이다. 드러커가 자서선에서 남들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런 남들에게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가 만나는 남들을 보아야 한다. 그들이 곧 나이므로. 이렇듯 이 책은 흥미진진한 사람들 이야기가 펼쳐지는 자서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리데기라고 하는 바리. 버림을 받은 바리. 그러나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린 바리. 저승으로 가는 사람들을 인도하겠다는 바리. 바리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길에 있다. 아니, 바리는 바로 죽어가는 세상에 있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 죽어가는 세상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버리는 부모, 죽어가는 세상이다. 부모가 죽어가는 데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길을 떠나지 않겠다는 자식들, 죽어가는 세상이다.

 

  자기들의 생활이 지구를 점점 죽어가게 하고 있는 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보통사람들, 자기들의 정치가 국민들을 죽이고 있는 데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정치인들, 자기 배만 불리고 노동자들의 배는 곯게 하는 자본가들, 재벌들, 그리고 온갖 현학적인 말로 그들을 정당화하는 학자들... 죽어가는 세상이다.

 

바리가 필요한 세상이다. 그러나 바리는 아직도 무장승 곁에서 일을 하고 있나 보다. 바리가 돌아오기까지, 바리가 숨살이, 뼈살이, 살살이 꽃을 가지고 오기까지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았나 보다.

 

바리가 올 때까지 그렇게 우리는 계속 죽어가고 있어야 하나 보다. 세상이 점점 죽어가고 있는데, 바리는 여전히 먼 곳에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우리가 바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바리를 버렸으니, 이제는 우리가 바리가 되어야만 하는 때가 되었다.

 

바리는 오지 않는다. 바로 우리가 바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 곳에 있는 바리, 우리가 스스로 버린 바리를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바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우리 생활을 가만히 톺아보면 살아가면 갈수록 우리는 바리를 버리고 있단 생각, 우리가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를 죽이고 있는데, 멀리 있는 바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바리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결코 오지 않는 '고도'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기다리기만 해서는 오지 않는 존재. 오히려 바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바리가 되어 와야 한다. 그래야만 죽어가는 세상을 살릴 수 있다. 

 

바리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삶과 자연의 삶이 함께 하게 하면 된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지 말고, 우리가 죽여가고 있는 자연을 기술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 그런 생활을 할 때 우리는 바리가 될 수 있다.

 

강은교 시집 '바리연가집'을 읽으며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바리'가 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시집에 실린 시 중에 하나. '백무동 물소리'

 

  백무동 물소리

 

물소리에 기대앉아 바라보네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네

구불구불 물소리 바위로 들어가고

구불구불 굽은 뼈 벼랑으로 들어가고

 

물소리에 기대앉아 바라보네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네

나막신 한 켤레 들고

바라보네 바라보네

 

이 밤

살아 있는 것들 모두 거룩해질 때까지

 

강은교, 바리연가집, 실천문학사. 2014년. 1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김경주 지음 / 열림원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극, 낯선 장르다. 요즘은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장르가 아닌가 싶다. 사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연극을 보러 가는 사람도 줄어들었는데, 시극이라니...

 

시와 극이 합쳐진 말이라고 하겠지만, 그런 말보다는 오히려 시적인 극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작품이다. 연극으로 공연이 되지 않고 읽히는 작품이기도 하고.

 

폐허가 된 해수욕장에 있는 파출소. 이미 낡아가고 무너져 가는, 잊혀가는 존재다. 여기에 근무하는 파출소 직원, 나이도 지긋하다. 그 역시 점점 소멸되어 가고 있다. 그가 업어온 김씨. 다리가 없는, 다리에 고무를 달고 땅을 기어다니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머무르는 사람이다. 그에게 땅은 자신의 온몸과 맞닿아 있는 곳, 하늘을 보며 별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는 땅에 붙어 살 수밖에 없다.

 

또 정체불명의 사내. 소년이기도 하고 청년이기도 한 사내. 그 역시 사회에서는 멀어진 사람. 즉 이 시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쇠락한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울 때는 언제였을까? 그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울 때는 서로가 서로를 받쳐줄 때다. 그럴 때 사랑하는 이는 없었다. 아니 사랑하는 이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기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핍된 존재들이 서로 기대며 서로를 인정할 때 가장 아름다울 때일 수 있다. 이렇게 시극은 빠르게 진행된다. 짤막한 대사들로 눈 내리는 날, 파출소에서 각자 떠밀린 삶을 산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서로에게 기대게 된다.

 

결핍을 서로 보듬으며 이들이 가는 곳, 그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곳이 가장 낮은 곳일테니...

 

이런 대사가 나온다.

 

김씨 : 사람은 바닥에 닿으면 그때서야 자신의 가슴이 가장 따뜻하다는 걸 배우죠. (129쪽)

 

자신이 가장 낮은 곳, 가장 힘든 상황에 있을 때에도 자신의 가슴은 따뜻하다는 것, 그렇게 서로를 보듬을 수 있다는 것, 사람에게는 어쩌면 잘 나갈 때가 아니라, 그 시절을 지나 쇠락에 접어들었을 때 따스한 자신을 찾고, 느끼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무거운 분위기임에 분명한데, 작품은 경쾌하게 읽힌다. 작품을 읽으면서 장면을 머리 속에 그리고, 그리고 낮은 곳에서 따스함을 발견하게 된다.

 

김씨의 얼굴에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 밑을 보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