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를 읽는가
프레드 사사키.돈 셰어 엮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책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가 시를 읽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저요."다. 그런데 "저요."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여야 한다. 즉, "누가 시를 읽는가?"라고 질문을 하면 "우리가요."라고 답해야 한다. 시는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고, 우리 모두는 시를 읽으며 살기 때문이다.

 

살면서 시를 단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사람,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학교를 다닌다면 시험 때문에라도 읽었을 거고, 학교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은 부모들에게서, 또는 이웃들에게서 시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읽든 귀로 듣든 시는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 해왔다.

 

이렇게 시는 우리들의 삶과 떨어져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의식하느냐 하지 않느냐 차이일 뿐이다. 이 책은 누가 시를 읽는가라는 제목으로 시를 읽은 사람, 또는 시에게서 삶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시와 자신의 관계를 쓴 글을 모았다.

 

5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시와 자신에 대해서 쓴 글인데, 이 책을 읽다보면 시는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다못해 시하고 가장 먼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도 시를 필수로 가르친다고 하니까 말이다.

 

읽어가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 하나를 고르면 아이 웨이웨이가 쓴 글에 나오는 이 말이다.

 

시를 경험하는 것은 현실 너머를 보는 것이다. 물리적인 세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찾는 것이며, 다른 삶과 다른 층위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며 가장 중요하게는 젊고 늙고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타인과 나누는 것이다. (244-245쪽)

 

시인은 다른 세계를 본다. 그리고 그 다른 세계를 우리의 세계로 끌고 들어온다. 다른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이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가령 나희덕 시를 보자. 꽝꽝 언 호숫가에서 얼음을 지치는 일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을 쳐내기만 하는 그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호수는 잔잔하고 고요하고 맑고 깊고 그래서 포용적인데, 그 호수가 얼어버리면 내치기만 한다. 도무지 받아들일 줄 모른다.

 

최근에 정치판을 보면서 특히 공당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정당들과 대화하지 않으려는, 또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꽉 막힌 모 정당의 원내대표를 보면서 나희덕의 '천장호에서'를 떠올렸다. 그들은 그야말로 얼어붙은 호수에 불과하다. 봄이 오고 여름이 와서 사람들이 물가에서 더위를 식혀야 하는데, 그들은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자신을 더 굳게 얼리고 있을 뿐이다. 내치고 있을 뿐이다.

 

   천장호에서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 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나희덕, 그곳이 멀지 않다. 민음사. 1997년 1판 3쇄. 11쪽.

 

20년도 전에 쓰인 시가 지금 정치판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시는 문득 내게 현실을 보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니 시를 읽을 수밖에. 마음이 힘들 때 위안을 주는 시를 떠올리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시는 인류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지만 위안을 주기도 했음을, 또한 성인들의 말씀에도 시들이 많음을.

 

기독교 성경에는 시편이 있어서, 시적인 노래들이 전해 내려오고, 불교에서도 숫타니파타 역시 시라고 할 수 있으며, 법구경만 해도 시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힌두교 경전으로 알려진 바가바드 기타 역시 천상의 노래라고 불리지 않는가. 역시 시다.

 

시는 우리들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굳이 내가 의식적으로 시를 읽지 않아도 이렇게 시는 우리들 삶 속에 있다. 가끔 의식하지 못한 시들이 의식으로 떠올라 나에게 다른 세계를, 또는 이 세계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시를 읽는다. 왜 읽는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존재가 시니까 읽는 것이다.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이 스웨덴 의회에서 연설을 했다. 그 연설을 시작할 때 대통령은 신동엽 시인의 '산문시1'을 낭독했다.

 

외국 의회에서 우리나라 시인이 쓴 시를 낭독했다. 그만큼 시는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정서를 드러낸다. 그 감동... 그렇게 시는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누가 시를 읽는가?"라는 질문에 "우리 모두요."라고 답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한 장면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운 반역자들 - 역사에 도전한 여성 운동가 봄볕 청소년 4
조이 크리스데일 지음, 손성화 옮김 / 봄볕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여전하다. 이 말은 여성들이 아직도 남성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는 얘기다. 운동은 막힘이 있을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최근에 채제공이 쓴 만덕전을 읽었다. 아주 짧은 글인데, 이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당시 제주에는 여성들이 뭍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있었다는.

 

그런데 흉년으로 백성들이 굶어죽을 때 백성들을 구휼해진 공을 세운 만덕에게 소원을 물으니, 서울과 금강산 구경이라고 했단다. 제주 여성이 할 수 없는 일. 만덕은 이 일을 해내고 만 것. 이렇게 제주여성에게 주어졌던 틀을 만덕은 깨고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이는 만덕만이 아니라 다른 여성들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선구자 역할을 하는 사람. 비록 그는 힘들게 그 시대를 살아갔을지라도 그로 인해 세상은 좋은 쪽으로 한 발 더 움직이게 되었으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기록이 적은 이유도 있지만, 알게모르게 차별을 해서 여성을 역사에서 제외시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만덕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지금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500년이 넘는 조선 역사에서 여성 인물들의 이름과 한 일을 이야기 하라고 하면 몇 명이나 들 수가 있을까?

 

조선시대 여성이라?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논개, 명성황후 그리고... 한참을 생각해야 한다. 이만큼 여성들은 잊혀진 존재였다. 분명 세상의 절반이라고 하는데도.

 

이 책은 서양 역사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여성 10명을 소개하고 있다. 부끄럽게도 이들 열 명 중에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들어본 적은 있었다고 어렴풋이 떠오를 듯 말 듯한 사람은 있었지만 정말로 몰랐다.

 

이들로 인해 세상이 좋은 쪽으로 움직였음에도, 이들에 대해서 이렇게 모르고 지내온 것은 여성들이 차별을 받는 역사는 지금도 계속된다는 반증이리라. 이런 책이 계속 나와서 여성들도 역사 속에서 제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한 번 살펴 보라. 몇 명이나 알고 있는지.

 

올랭프 드 구주, 소저너 트루스, 사로지니 나이두, 루스 퍼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 존 바에즈, 레일라니 뮤어, 템플 그랜딘, 미셸 더글러스, 섀넌 쿠스타친

 

페미니즘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정도,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존 바에즈 정도. 

 

올랭프 드 구주,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사람. 이 사람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해도 이 말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는 것처럼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 (24-25쪽)는 말.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썼다는 구주는 결국 단두대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가 주장한 여성의 권리는 지금까지 계속 쟁취되어 왔으니...

 

흑인 여성으로서 노예 해방을 위해 일했던 소저너 트루스. 간디와 함께 영국에 저항하는 비폭력 운동을 펼쳤던 사로지니 나이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맞서 싸우다 경찰이 보낸 폭발물로 세상을 떠난 루스 퍼스트, 페미니즘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그리고 베트남 전쟁 반대 등 평화의 노래를 불렀던 존 바에즈.. 이들은 유명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레일라니 뮤어에 오면 우리나라 한센병 환자들에게 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우생학이라는 학문이 사회에 침투해 열성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 사람들에게 자식을 낳지 못하게 불임 수술을 했던 시대. 그런 폭력의 시대에 그것을 폭로해서 바로잡으려 했던 사람. 레일라니 뮤어.  

 

자폐증을 앓아 오히려 동물들을 읽을 수 있게 된, 동물들의 복지를 위해 일한 템플 그랜딘. 인도적인 환경에서 동물들이 사육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에 자폐증 환자에 대한 인식도 바꾸었고.

 

최근에 우리나라도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해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동성애에 관해서는 군대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직도 부정적인 관점을 많이 지니고 있으니... 하다못해 청소년 인권 조례에 성적인 지향 자유 항목이 있어서 조례를 거부하는 지방의회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인데.

 

앞서 간다는 캐나다에서도 얼마 전까지 군대에서의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고 범죄 취급했다고 하니,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노력한 미셸 더글러스의 일은 남의 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진행형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셸처럼 이미 앞서 간 사람, 틀을 깬 사람이 있으니, 우리나라도 틀을 충분히 깰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고.

 

마지막 인물은 너무도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섀넌 쿠스타친이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캐나다에서도 원주민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다는 사실, 그들에게 제대로 된 학교도 지어주지 않아 원주민 학생들이 학교를 지어달라고 청원하고 시위하게 되었다는 것, 그 사실을 널리 알린 쿠스타친.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틀을 깬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단순히 소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 신영복의 글에 있는 말처럼,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한 사람들이다. 어리석은 사람, 우직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이 조금씩 변화한 것이기도 하고.

 

그러니 이들을 기억하자. 역사는 기억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에 대해서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잡초는 억울하다 · 1


사설시조를 쓴 이가

무명씨(無名氏)라고

판소리계 소설을 쓴 이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국란(國亂)에 분연히 일어섰던 백성들이

민초(民草)라고 불린다고

그들을 경멸하거나

작품을 무시할 수 있던가

김수영이 쓴 ‘풀’이

이름이 있는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수많은 학자들 밥벌이가 되어 주는

그 ‘풀’이

이름 없다고

문학사(文學史)에서

뿌리 뽑히던가


하여,

다시

잡초는 억울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
브루스 커밍스 지음, 조행복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유월이 지나갔고, 도올이 쓴 책 [우리는 너무 몰랐다]를 읽다가 브루스 커밍스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도서관에서 그가 쓴 책을 보았을 때 이것도 인연인가 보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인데, 도올이 이 책을 출간되기 전에 커밍스로부터 받아 읽었다는 내용을 읽고, 커밍스가 우리나라와는 꽤 인연이 있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도올과 아는 사이였다니.

 

이 책의 내용을 지금은 거의 다 잊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한국전쟁은 내전이었다는 그의 주장. 그러므로 누가 먼저 총을 쏘았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내전이라... 내전에 외국 군대가 개입한다? 이런 사례는 스페인 내전에서도 일어났었다. 공화파와 프랑코파의 손을 들어준 세계적인 전쟁이 바로 스페인 내전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우리나라 전쟁도 이런 내전이고, 세계 여러나라에서 각자 편을 드는 쪽으로 가담했다는 말이지. 여기에 누가 먼저 도발했느냐보다는 내전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살피고, 그 내전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상흔들을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커밍스가 이야기하는 것도 이것이고. 그가 펴낸 이 책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도 이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내전이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왜곡된 정보로 잘못 알려진 전쟁이었다. 아니 잘못 알려진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에게는 잊혀진 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이 미국에게 이런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으로 취급한다.

 

1950년대 후반 여섯 달 동안 방위비가 거의 네 배로 증가하면서 미국의 광범위한 해외 기지를 구축하고 국내에서 안보국가를 수립한 것도, 그리고 미국을 세계의 경찰국가로 만든 것도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325쪽)

 

이것이 미국에게 한국전쟁이 지닌 의미일 텐데도, 그들은 이기지 못한 한국전쟁,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전쟁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브루스 커밍스가 책을 썼다.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 최근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북쪽으로 갔다가 다시 왔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미국 대통령들은 북한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많이들 써먹는다. 악의 축으로 몰라 군비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써먹든, 북한과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인기를 얻는 데 써먹든 북한은 여러모로 미국 정치인들에게 수단이 된다.

 

아직까지는 유효한 수단, 그만큼 북한과 미국은 완전한 화해, 평화로 가지 못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있고, 적어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전쟁에 대한 위협에 시달리지는 않으니 다행이라고 하겠지만, 한국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바로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 아닌 유산인데... 이제는 한국전쟁을 넘어서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에 관한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의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잘못된 기억은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왜곡한 정보를 유포했던 과거를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왜곡된 정보 중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한국전쟁 기간 동안에 곳곳에서 자행되었던 학살들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진실을 밝혀야 화해를 하고 용서를 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많이 알려진 노근리 학살 등을 포함해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이 책에서 이런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예로 영암군 구림마을을 들고 있다.

 

  2006년 마을의 원로들이 530쪽에 달하는 구림마을의 역사를 편찬하여 전쟁 중 사망한 이들의 명부를 가해자를 병기하지 않은 채 기록하고 합동 추모제를 후원하면서, 마을은 남한 전역에서 화해의 상징이 되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마을의 원로들은 전쟁이 끝난 뒤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밝히지 말고 복수를 하지도 말기로 공동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남한에서 이루어진 여러 조사의 목적은 책임을 묻거나 냉전의 싸움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남한 사이의 화해를 도모하고 과거에 적이었던 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인식과 태도를 얻는 것이었다. 이해란 공감이 아니고 감정이입도 아니며, 단지 적의 행동을 이끈 원칙들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 원칙들이 용납하기 어렵다고 해도, 역사적으로 그 적에게 일어난 일에 관한 나의 지식과 크게 상충되더라도 상관없다. (318쪽)

 

이제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은 남과 북이, 그리고 남과 북, 미국, 중국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디딤돌이 되게 해야 한다. 서로를 비난하고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과거로 돌리고 미래의 원동력으로 삼는 지혜, 그 지혜가 발현되어야 하는 때가 지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읽으며 한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법정스님의 뒷모습
정찬주 지음, 정윤경 그림, 유동영 사진 / 반딧불이(한결미디어)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무소유를 말씀하시던 스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어가고 있다니. 2010년에 열반에 드셨으니, 참으로 세월은 무상하다. 그동안 무엇을 하면서 지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법정 스님의 뒷모습... 누가 그랬던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은 뒷모습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신이 떠난 자리에 여운을 줄 수 있는 사람. 아니면 자신이 떠난 자리를 깨끗이 정리하는 사람.

 

재가제자로서 스님으로부터 무염(無染)이라는 이름을 받은 정찬주가 펴낸 법정 스님에 관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던져주고 있다. 자신의 산방에 머물다 간 사람들 중에 화장실까지 깨끗이 청소하고 간 사람. 이 사람이 나중에 찾아오면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말.

 

아마도 법정 스님에게 해당하는 말이겠다. 평생 자신이 쓴 글인 무소유처럼 살다 간 분이니 말이다.  김영한 여사가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단 하나 감사 한 사람만을 두겠다는 조건으로 법정 스님에게 기부하려고 했던 때의 이야기. (고승의 조건. 96-99쪽)

 

그 조건마저도 다른 고승들이 많다는 이유로 고사하셨다는. 김영한 여사가 여러 고승들을 찾아다니다 결국은 다시 감사를 두겠다는 단 하나의 조건도 없애고 무조건 법정 스님에게 맡아달라고 했다는 이야기.

 

무소유를 철저하게 실천하신 분이라는 생각.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길상사에 구내서점을 운영해 궁한 절 사림을 개선하자는 대중의 건의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하니 (90쪽) 스님의 대쪽같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런저런 법정 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냥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스님은 이렇게 떠나서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 이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좋은 절은 친절이고, 가지 말아야 할 절은 불친절입니다 (51쪽)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아니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인가. 친절은 곧 상대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맞추는 일이다. 상대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친절은 정말로 좋은 절이다. 우리가 가야 할, 가고 싶어하는 절이다. 그런데 이 친절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바로 나에게 있다. 모든 것은 바로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절을 친절로 만들든, 불친절로 만들든 그것은 바로 내가 할 일이다.

 

친절한 삶, 내 삶에 충실한 삶이고, 남에게 충실한 삶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삶은 곧 부처의 삶이다. 이렇게 사는 삶 속에 바로 절이 있다. 절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절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 속에 좋은 절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해탈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바로 친절하게 살아가는 자세, 그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법정 스님이 저자인 정찬주에게 무염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지 않았겠는가. 어디에 있든 물들지 않으면 된다. 내 마음에 절을 두고 있으면 되니...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친절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그것이 바로 잘 사는 삶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친절한 삶을 살다보면 자연스레 뒷모습도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친절한 사람일테고, 처음에는 친절을 가장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체하던 것이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굳어질 수도 있으니...

 

습관을 통해 나를 만들어가듯이 친절한 행위들을 통해 나를 만들어가다 보면 앞과 뒤가 하나가 되고, 뒷모습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렇게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 몸을 식혀주는 시원한 소나기, 추운 겨울 오슬오슬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주는 화롯불 같은 책.

 

법정이라는 숲을 거닐다 온 느낌을 주는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7-04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4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