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마음속 108마리 코끼리 이야기
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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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동화 [파랑새]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바로 곁에 있는 행복을 두고 우리는 너무도 멀리 나간다. 죽도록 고생을 하면서 행복을 찾지만, 그 행복은 늘 앞에만 있다. 다가가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절대 좁혀지지 않는 거리. 그것은 바로 외부에서 찾는 행복이다.

 

이 거리를 단 한번에 없애는 방법,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마음은 술 취한 코끼리처럼 어디로 갈지,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지 않는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때 마음은 술 취한 코끼리가 아니다. 우리가 마음을 들여다 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마치 술 취한 코끼리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아잔 브라흐마라는 서양 출신 승려가 쓴 마음에 관한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바로 마음이라고 한다. 이 마음을 알면 행복을 찾으려 헤매지 않아도 된다. 행복은 바로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행복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마음은 불행도, 고통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주 커다란 크기를 측정할 수 없는 마음에서 불행과 행복을 찾으면 어떤 것이 더 많을까? 아마도 행복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과 행복 중에 어느 것이 더 눈에 뜨일까? 그것은 불행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행복을 찾는 노력을 한다. 이미 자신은 행복한데 행복한 줄 모르고 행복을 찾는 것이다.

 

브라흐마는 이 책에서 이런 현상을 이렇게 말한다. 담을 쌓을 때 천 개의 벽돌을 썼다고 하자. 그 중에 998개의 벽돌은 아주 잘 쌓였다. 그런데 달랑 두 개의 벽돌이 좀 어긋나 있다. 자, 이 담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담은 멋있는 담일까? 망가진 담일까?

 

우리는 두 개에 주목해야 하는가, 아니면 998개의 다른 벽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마음이라는 넓은 곳에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 왜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불행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간단 말인가. 오히려 더 많은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행복하게 지내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브라흐마가 하고 싶은 말이다. 우리 마음에 있는 수많은 행복들에 주목하자. 이 행복들에 주목한다는 것은 욕심의 자유가 아니라 욕심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다.

 

욕심의 자유는 자신의 욕심을 채울 자유를 의미하고, 욕심을 채운다는 것은 늘 결핍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내 삶에서 결핍에 주목하면서 그것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하면 나는 늘 불행할 수밖에 없다.

 

욕망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채우려고 하면 할수록 진만 빠지고 절망에 빠지기만 한다. 그러니 욕망의 자유는 곧 불행으로 가는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해서 가는 불행에의 자유.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욕망을 없애는 것이다. 욕망을 없앤다는 것은 결핍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핍이 없겠느냐마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마음 속에 있는 다른 행복들에 눈이 가기 시작한다.

 

내가 지니고 있는 행복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그것들로 인해 더 행복해질 수 있는데... 이 때 행복은 마치 화수분처럼 써도 써도 고갈되지 않는다. 그러니 욕망의 자유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고,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화수분을 얻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도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나, 문득 문득 내 삶에 대해서 불만이 이는 것은 결핍을 느끼기 때문인데, 이는 아직도 욕망의 자유를 버리지 못해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욕망의 자유에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 나아가는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사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미루기만 하고 실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이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물론 다른 구절들도 다들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았지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갈수록 덜 자주 실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255쪽)

 

실수를 덜하기 위해서는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아, 내가 잘못했네 하고 인정하는 순간, 실수는 불행에서 행복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된다. 젊은 시절에는 실수한 줄도 모르고 지낸다. 그래서 실수를 해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더 빨리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실수를 줄인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그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한 실수들을 깨닫는 순간 다음에는 그런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는 무엇일까?

 

이 책에는 세 가지 질문이 나온다. 옛이야기를 빌려 말하고 있는데...

 

1.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

2.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

3.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보살핌과 배려. (169쪽)

 

너무도 당연해서 당연하게 잊고 지내는 일들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그저 편하다는 또는 가깝다는 아니면 바쁘다는 이유로 이 세 가지를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서 행복해지기는 힘들다.

 

이 세 가지와 함께 하는 것은 행복과 함께 하는 것이다. 여기에 나와 함께 하지만 늘 나와 함께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네 사람의 아내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내용인데...

 

죽음까지도 함께 하는 아내는 첫 번째 아내였다. 그렇다면 아내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 첫 번째 아내는 '카르마(업)'이다. 두 번째 아내는 '가족'이고, 세 번째 아내는 '재산'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네 번째 아내는 '명성'이다. (293쪽)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 죽음에 이르러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네 아내를 통해 생각하게 해주고 있는데... 그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서 욕망의 자유에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 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단지 알게 되는 데서 멈추면 안 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게 브라흐마가 이 책을 쓴 이유일 것이다.

 

뱀발

 

이 책에는 아주 재미 있는 제안이 있다. 202쪽에 말에 세금을 매기자는 제안. 직접 책을 읽어보라.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지금 국회를 보면 더더욱.

 

또 이 책에는 우리나라 학생들과 비슷한 브라흐마가 겪었던 일화가 있다. 슬픈, 이렇게 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입시를 위해 공부 외에 다른 것은 뒤로 미뤄두어야 하는. 그렇게 행복을 계속 남겨두기만 하는 삶에 대해. (221-224쪽에 잘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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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디드 범우고전선 4
볼떼르 지음 / 범우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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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 남들이 [깡디드]를 인용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다시 읽게 된 책.

 

어떤 계몽적인 내용이 들어 있을까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당시 유럽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고, 전쟁이라든지, 돈에 대한 욕심, 종교적 타락, 사기 등을 깡디드가 여행을 하면서 겪게 되니, 당시 사회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엘도라도에서 황금과 다이아몬드를 많이 갖고 온 깡디드가 그 돈으로 자신과 관계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는 하지만, 돈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그 돈을 보고 몰려드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비판.

 

여전히 신분 질서에 얽매여 있는 사람도 있고, 세상은 낙관적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그 시대에 사람들이 우선 해야 할 일은, 자신이 먹고 살 것은 스스로 마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이 책의 끝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깡디드가 삶에 대한 답을 얻으려 노승에게 갔다가 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한가해 보이는 노인에게 들은 말.

 

일을 하고 있으면 세 가지 커다란 불행이 우리에게서 멀어지지요. 그것은 즉 권태, 타락, 궁핍이랍니다. (176쪽)

 

그렇다. 현란한 탁상공론은 필요없다.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의존도 또 신에 대한 믿음도 많이 사라진 시대, 깡디드에 나오는 성직자들은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들이니, 종교의 타락도 비판하고 있는데... 이런 시대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깡디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린 우리의 뜰을 경작해야 합니다라고.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깡디드가 도달한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자기 손으로 노동을 해서 자립하는 삶. 그 삶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쟁의 비참함을 서술함으로써 전쟁을 비판하고, 돈을 보고 덤벼드는 온갖 사기꾼들을 서술함으로써 금전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있으며, 타락한 성직자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종교가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성에서 쫓겨나 시작된 여행이 콘스탄티노플에서 끝나는데, 뀌네공드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과정, 결국 돌아오게 되지만, 돌아온 다음에 깡디드는 다른 존재가 된다.

 

허황된 관념을 좇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앞에 있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다들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 적어도 일을 하면 권태, 타락, 궁핍은 멀어지게 할 수 있을테니. 그러나 여기엔 전제조건이 있다. 적어도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 자신의 자유의지로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는 것. 어쩌면 볼테르는 사람들에게 그런 장소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 그것이 정치가들의 책무이고, 지식인들이 주장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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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6 0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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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6 1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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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우리교육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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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는 과학소설로 유명한 작가다. 그의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들이 영화로도 만들어져 우리에게 많이 다가왔는데...

 

이 소설 [아이, 로봇]은 로봇소설의 고전이라 불릴 만한 작품이다. 아주 오래 전에, 1940년대에 쓰인 작품이니 얼마나 오래 된 작품인가. 그때는 컴퓨터가 원시적인 형태를 띠고 있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지금 시대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또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을 이기고, 지금은 인간들이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도 이 소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생각할거리를 많이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총 8대(단위를 나타내는 말을 고르기가 힘들다. 기계를 나타내는 '대'라는 말을 쓰기도 그렇고, 사람을 지칭하는 '명'이라는 말을 쓰기도 그렇기 때문이다)의 로봇이 등장하는데, 이 책의 순서대로 읽으면 로봇의 발달 순서를 알 수 있게 짜여져 있다.

 

우선 이 소설에서는 유명한 로봇 3원칙이 나온다. 로봇들이 거부할 수 없는 원칙 세 가지. 이것들이 지켜져야 인간들이 기계에 종속당하지 않을 수 있는데, 과연 그럴까? 이 3원칙이 잘 지켜져도 인간들이 기계에 종속당하는 일은 생기게 된다. 그것은 이 소설을 읽다보면 웃으면서도 무언가 섬뜩함을 느끼게 되는 데서 알게 된다.

 

우선 로봇 3원칙을 보자.

 

제1원칙 :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이 어떻게 로봇에게 위험이 되는지, 또 인간들이 이 3원칙으로 인해 늘 로봇을 잘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 3원칙으로 인해 로봇에게 이용당하고 속기도 하는지가 소설 속 로봇의 이야기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 산업혁명 시대에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같이 로봇을 거부하는 '인간을 위한 사회' 회원들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이 소설집 마지막에는 이 3원칙에 더해서 하나의 원칙이 더해져야 함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것을 역자 후기에서 아시모프가 나중에 0원칙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0원칙은 '로봇은 인류가 위험에 처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별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인류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니 말이다. 환경 파괴와 같은 경우.

 

처음 '로비'라는 로봇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사람과 로봇이 이렇게 서로를 위하면서 지낼 수 있을 거라는 것에 흐뭇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런 로봇만 존재한다면, 인간들이 굳이 인간보다 힘도 세고, 빠르고, 판단도 좋은 로봇을 거부할 리가 없다.

 

그러나 '스피디'라는 로봇에 가면 로봇 3원칙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즉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적인, 또는 그 상황에 가장 알맞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로봇이 나온다. 인간의 자율성과 로봇의 자율성이 차이나는 간격인데, 이 간격은 곧 메워지게 된다.

 

생각하는 로봇이 나오고, 이 로봇이 자신보다 훨씬 열등한 존재로 인간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큐티'라는 로봇인데, 이 로봇은 자신의 추론을 활용하여 신을 만들어내고, 자신은 예언자가 된다. 마치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로봇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하는 로봇에 이어서 대장 노릇을 하는 로봇(데이브)도 나오고, 이번에는 거짓말하는 로봇(허비)도 나온다. 그런데 로봇이 거짓말 하는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밖에.

 

거짓말을 한다는 것, 인간을 위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지만, 그것이 극한으로 가면 자존심이 강한, 즉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로봇(네스터 10호)도 나온다. 인간과 무엇이 다른가.

 

여기에 지금의 인공지능과 같은 로봇이 나온다. 모든 것을 계산하고 심지어 우주선까지 만들어내고 원격조정하는 로봇(브레인). 지금 우리가 꿈꾸는 인공지능 시대를 소설은 이렇게 앞서서 구현하고 있다.

 

이미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로봇 다음에 올 로봇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인 로봇이다.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그러나 인간보다 더 깔끔하게 인간 사회에 적응하는 로봇(바이어리)이다. 시장이 되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로봇까지 나오니... 어찌 이 소설을 과거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가 상상하고 또 현실로 만들어내는 로봇이 많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로봇들로 인해 일어날 문제점도 선취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간을 위한 사회' 회원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인공지능에 대해 연구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을 위한 사회를 위해서 아닌가.

 

그러므로 이 소설에 나오는 문제점들에 대해 깊이있게 고민해 봐야 한다. 너무 무서운 상상을 할 필요는 없지만, 또 인공지능 시대를 무작정 거부해서도 안 되지만, 적어도 발생할 위험에 대해서는 수많은 토론을 거쳐야 한다. 그런 토론 주제로 이 소설은 유용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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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질 듯, 좋아질 듯, 가까워질 듯, 가까워질 듯 하면서도 이상하게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서로 웃으면서 만나도 그 다음 만남에 대한 약속은 하지 않는다. 만나면 해결될 듯 하면서도 결코 해결을 하지 않는다.

 

  웃음 속에 수많은 계산이 들어있는지, 서로의 셈법이 다른 것인지, 평행선은 지속된다.

 

  핵을 폐기한다고 했다. 순차적이든, 전면적이든, 완전한,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를 약속한다고 했다. 그러마고, 믿는다고, 그래서 이제는 평화롭게 지내자고도 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지금까지 계속해 왔던 통상적인 군사훈련이라고 계속 실시하고, 한쪽에서는 평화 분위기를 깨는 행위라고 정체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포탄을 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대화 단절, 만남 단절. 그럼에도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하고 있으니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말과 행동이 이렇게 다른 경우, 어느 쪽에 판단 기준을 두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다시 지지부진한 상태에 돌입했다.

 

다른 할일도 많은데...

 

전기철의 시집 [로깡땡의 일기]를 읽었다. 로깡땡의 일기가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이기도 하고,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로깡땡이 낯설다. 시집에서 주를 달아놓기를 샤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그냥 그렇게 로깡땡에 대해서 넘어가고... 다음 시를 통해 지금 우리 현실을 읽어낼 수가 있다. 

                      

 

북한 핵에 관한 감상

 

  너와 나 사이에 위험한 물건이 있다. 너는 한사코 그 물건에 손을 대려 하지만 나는 너를 말리느라 정신이 없다. 너는 화가 치밀어 나를 밀어낸다.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네 얼굴에서 무언의 땀방울이 더 위험하게 떨어지려는 찰라, 꽃은 어떻게 피는가를 생각했다.

 

  위도와 경도의 정확한 지점에 피는 꽃의 스캔들을 추적하고 거리와 진폭, 시간을 연산하지만, 답은 소수점 몇 자리로도 떨어지지 않아

  위험한 물건은 그대로 위험한 채로 너와 나 사이에 있다.

 

  이렇게 위험한 물건을 버려야 할 것인가, 모른 채 할 것인가. 너와 나 사이에 꽃은 필 것인가.

 

전기철, 로깡땡의 일기. 황금알. 2009년. 76쪽.

 

우리가 모른 체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너와 나 사이에 꽃이 피게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으니...

 

위험한 물건은 당연히 버려야 하고, 그 위험한 물건을 마음 놓고 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때 너와 나 사이에 꽃은 당연히 필 것이다.

 

그 꽃을 우리 모두 함께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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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식탁 - 식물학자가 맛있게 볶아낸 식물 이야기
스쥔 지음, 류춘톈 그림, 박소정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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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할수록 자연에 대한 향수도 깊어진다. 사람이 자연과 떨어져 살 수는 없지만 어느새 우리는 자연은 자연, 우리는 우리라는 식으로 살아가면서 아련한 그리움으로만 자연을 대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 제목을 보면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론 책장을 몇 장 넘기지 않아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식물들이 나온다. 그것들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온갖 효용을 들이대면서 식물들의 이로운 점을 말해준다.

 

자주 가는 음식점 벽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밥은 근원이 같다는 말로 풀이되는 말. 그러니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라는 말로 받아들였는데...

 

이 먹을거리로 병도 치유한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좋은 약효를 지닌 식물들이 이 책에 나올 것인가 하는 기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서 곧 이건 아니구나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은 중국인이 쓴 책이다. 그러니 중국 식물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중국 식물이라고 해서 무슨 국경이 있어 우리나라 식물과 완전히 다른 존재는 아니겠지만,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공연히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같은 식물이라도 어느 토양,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성분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식물 이름들이 너무도 낯설다는 것이다.

 

중국말로 식물을 이름지어 부르고 있으니, 알 수가 있나. 가령 첫식물은 은행이다. 이 은행이야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고 또 먹기도 하니, 별 문제가 없는데, 은행 바로 다음에 나오는 식물 이름이 용규(龍葵)다. 자, 용규가 무엇인가? 알 수 있겠는가? 모른다. 한자로 표기해 놓아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름이다. 밑에 주를 달았는데... 아주 작은 글씨로 까마중이라고 되어 있다. 아하, 용규가 까마중이구나. 그냥 제목을 까마중이라고 하고, 괄호 안에 용규라고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이름들이 주욱 나오니 읽어도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점이 많이 아쉬웠는데... 이런 책은 번역이 아니라 번안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림도 있지만, 사진 자료를 더 첨부했으면 훨씬 이해하기 쉬웠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사실을 아는 즐거움이 있는데... 자, 중국어로 미후도(獼猴桃)라는 식물을 아는가? 중국 태생인데 외국에 나가서 더 유명해졌다가 다시 요즘에는 중국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식물이라고 하는데...

 

중국에 흔하게 있었으나 원숭이나 먹는 과일이라고 해서 미후도라는 이름이 있다는 이 과일은 바로 키위다. 키위 하면 뉴질랜드를 생각하고, 그곳이 원산지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키위의 원산지는 중국이고, 뉴질랜드에서는 중국에서 종자를 가져다 성공적으로 재배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중국 학자가 쓴 글이니 그 점을 참조하더라도.

 

 그해(1904년) 이사벨은 델리시오사의 종자 한 봉지를 뉴질랜드로 가져갔다. 그녀가 가져간 종자는 미후도 세 그루로 자라 순조롭게 개화하고 열매를 맺었다. 이 세 그루가 현대의 미후도 산업을 일으킬 줄이야! 현재 전 세계 키위 공급량의 80%를 차지하는 품종인 헤이워드가 바로 이 델리시오사 세 그루의 후손이다.  (206쪽)

 

  1960년대 이전까지 델리시오사는 서양인들에게 '이창 구스베리 - 이창은 중국 후베이성 남부에 위치한 도시-' 또는 '차이니즈 구스베리'로 불렸는데, 썩 맛있는 과일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미후도라는 속칭은 더 수준 미달이었다. 양도, 귀도, 후도라는 이름 중에서도 맛있고 고급지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은 없었다. 과일 상인들은 필히 새로운 이름을 지어야만 했다.

  그래서 맨 처음 작명을 위한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미후도의 상품명을 '꼬마 멜론(Mellonette)'으로 정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있었다. 소리가 맑게 울리기도 하고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괜찮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 이름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과(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국회에서는 수입한 과류 과일에 중과세를 징수했는데, 과일 상인들은 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별로도 진행된 힘겨운 작명 회의를 거쳐 결국 뉴질랜드 국조인 '키위Kiwi'의 이름을 따서 미후도를 '키위 Kiwi fruit'로 부르게 되었다. (212쪽)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다양한 식물이 음식으로 쓰이고, 그것들이 어떤 효용이 있고, 또 독성이 있는 것은 어떻게 발현되는지도 이야기해 주고 있어서 식물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독성이 있는 식물을 우리가 먹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지도 잘 알려주고 있어서 많이 유용하다.

 

다만, 중국어로 식물 이름이 나오고, 전문적인 용어들이 나와 머리 속으로 쏙쏙 들어오지 않는다는 단점은 있다. 그래도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 자연에 들어가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아무것이나 막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약식동원이라고 또 몸에 좋은 식물이라고 해도 지나치면 좋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번은 참조할 만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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