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도 파소도블레 - 풋내기 신입기자들의 솔직궁상 사는 이야기
이현진 외 지음 / 작은책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난해하다. 모르는 낱말이 있다. 모르는 낱말이 있으면 호기심이 작동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아예 멀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난지도는 아는 말이고 '파소도블레'는 전혀 모르는 말이다.

 

난지도는 이름과는 달리(난초와 지초의 섬이라는 뜻이었는데) 한때 쓰레기 매립지였던 곳, 쓰레기꽃을 피웠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말 그대로 공원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땅 속에서는 가스가 새어나오고 있다는 것. 한번 쌓였던 것들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데, 그만큼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은 겉모습이 살 만해져도 속으로 들어가보면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제목에 난지도가 들어간 것은 신입기자들로서, 사회 초년병으로서 편치 않게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는 난초와 지초처럼 고상하고 멋진 모습을 기대하지만, 예전 난지도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란 의미.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외국어인지 잘 모를 낱말이 제목에 떡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거 아무리 외국어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라고 해도, 좀 너무한다 싶은 말이다. 파소도블레라니...

 

찾아봐야지. 이렇게 제목도 찾아보게 만드나. 아니, 자신들의 삶이 이렇게 우리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있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찾아보니 춤 이름이란다. 스페인에서 유래한 춤이라고 하는데, 파소와 도블레라는 말이 합성된 것이라고 한다. 파소가 걸음이고, 도블레는 더블, 즉 둘이라는 뜻이니 두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존재들인 청춘들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지만, 내키지 않기는 마찬가지. 그들은 그냥 '뭔가 있어 보이는 춤의 이름을 가져다 붙였다'(8쪽)고 하는데, 뭔가 있어 보이고 싶어하는 청춘일 수는 있겠다.

 

전체적으로 제목을 보면 남들은 잘 모르지만 뭔가 있어 보이고 싶을 만큼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기자 생활을 하지만 속으로는 썩고 있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그런 소소한 일상을 글로 표현한 책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무슨 거창한 주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냥 살아가는 모습을, 남의 일기장을 읽듯이 읽어내려가면 된다. 읽어가다가 자신의 삶과 겹치는 부분을 만날 수가 있다. 이들 역시 우리나라 청춘들이 벗어날 수 없는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우리나라 청춘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은 다른 청춘들보다는 조금 나은 처지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고, 결혼을 하기도 했으며, 자식도 낳은 사람이 있고, 전세라는 형태로 거주지를 마련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포세대라는 말이 자연스레 들리는 이 시대에, 이들은 사회초년병으로서 살아가고 있으니 이를 이루지 못한 청춘들에 비하면 많이 나은 생활을 하는 것이지만, 이런 생활도 생활다운 생활을 하기에는 많이 버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버거운 생활을 '파소도블레'처럼 두 걸음을 빠르게 움직이는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 그들이 이름 그대로 난초와 지초로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속에 있는 그 가스들을 빨리 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함을 이 책은 생각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 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얼굴엔 웃음이 머금어지고 손은 누군가를 향하고 발은 그 쪽으로 가고 있으며 마음은 한없이 비어 채워도 채워도 더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비움이 곧 충만인 그런 상태가 떠오르는데...

 

  정끝별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을 읽으며 이와 반대되는 느낌을 받았다. 사랑을 노래하는 시들이 많은데, 읽으면서 마음은 자꾸 가라앉고 만다. 처연한 사랑이라는 느낌만 남아 있다.

 

  첫시부터 그렇다. 분명 사랑인데, 충만이 아니라 비움이다. 살찌는 것이 아니라 말라간다. 제목은 '춘수(春瘦)'다. '봄 여윔' 정도 되려나?

 

  왜 이렇게 처연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생각해보니, 첫시 제목에 나오는 수(瘦) 자에서부터다. 수척하다. 파리하다. 여위다라고 할 수 있는 이 말.

 

시집에 실린 첫시가 시집을 여는 역할을 하는데, 생명이 시작되는 봄에, 충만을 노래하지 않고 여윔을 노래하다니... 그러니 사랑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이 시집에서 자꾸만 처연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시작하는 봄에서 끝인 겨울을 생각하고, 채움에서 비움을 생각하고, 그렇게 서로 만나지 못하고 한없이 도는 '공전'(72쪽)이라는 시에서처럼 늘 함께 하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거리를 좁히지 않고 있는 그런 상태.

 

팔다리를 몸에 묶어놓고 / 몸을 마음에 묶어놓고 / 나로 하여금 당신 곁을 돌게 하는 / 끌어당기고 / 부풀리고 / 무거워져 / 기어코 나를 밀어내는 / 저 사랑의 포만 // 허기가 궤도를 돌게 한다

(정끝별, 공전 2,3연. 72쪽)

 

사랑의 포만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허기다.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다. 이 비움이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사랑을 갈구하게 한다. 그렇지만 채워졌을 때 다시 밀어내기 때문에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이 채워지지 않는 무한에 가까운 시간, 무한에 가까운 노력들이 사랑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처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비움에서 충만을 연상하는 그런 사랑시와는 반대되는 느낌을 받는다.

 

시인은 '자서(自序)' 에서 이렇게 말한다.

 

'삼천갑자, 그러니까 육 삼 십팔, 십팔만 년이, 금세 스러질 내 삶에, 내 몸에, 내 사랑에 숨어 있다고 믿는다'

 

결국 삼천갑자란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고, 이 시간이 사랑에 숨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을 이룬다는 것이 무한히 추구해야 할 사람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결국 사람은 사랑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니 죽어서까지도 사랑을 이루어야 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가지에 가지가 걸릴 때'(18-19쪽)란 시에서 '한 줄기에서 난 / 차마 무너지지 못한 마음과 / 차마 보내지 못한 마음이 / 얼마 동안은 그렇게 엉켜 있으리라' (정끝별. 가지에 가지가 걸릴 때. 4연. 18쪽)라는 표현... 결국 삼천갑자 동안 우리는 사랑의 빛은 복사빛을 지니고 있으리라는 것. 그런 사랑. 이루어진 사랑이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든 처연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렇게 비움이 있어야 사랑으로 채울 수 있으므로, 또 순간이 아닌 긴긴 시간을 사랑을 추구해야 인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첫시 춘수를 인용한다.

 

  춘수(春瘦)

 

마음에 종일 공테이프 돌아가는 소리

 

질끈 감은 두 눈썹에 남은

 

봄이 마른다

 

허리띠가 남아돈다

 

몸이 마르는 슬픔이다

 

사랑이다

 

길이 더 멀리 보인다

 

정끝별, 삼천갑자 복사빛, 민음사. 2005년. 13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모마일 2020-02-0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종일 공테이프 돌아가는 소리 이 구절이 좋네요.
 
혼자가 혼자에게 (Iceland Edition) - 10만 부 기념 특별 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이병률 산문집이다. 두번째로 읽은.

특별하다기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인 자신을 느끼는 것, 참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를 느끼기 위해서 여행을 가고, 여행을 가서 다시 혼자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함께 해도 좋지만 혼자여도 좋다.

사람은 홀로 와서 함께 살다 홀로 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마치 혼자가 아닌 것처럼 늘 누구와 함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간다면 자신 깊숙히 숨어 있는 내면을 제대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함께 있는 것, 자신의 외면을 확장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면을 감추는 일일지도 모르고.

남이 원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그것이 혼자가 아닌 함께일 때 우리가 쉽게 빠지는 모습이기도 할테고.

이 산문집을 읽으며 조금은 차분해졌다는 느낌을 갖는다.

책을 읽을 때도 혼자니까. 예전 책읽기는 낭송이었고, 함께 읽기였다면, 지금은 주로 혼자 읽기가 아닌가. 속으로 읽는 묵독이 대세인 시대.

그럼에도 다시 함께 읽기가 나타나고 있지만, 함께 읽어도 결국 받아들이는 것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

혼자가 혼자에게 하는 말, 그것이 읽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읽기는 그래서 홀로 떠나는 여행, 그런 여행 중에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그런 여행.

책읽기, 삶읽기 결국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이 산문집 읽기다.

제목들이 하나하나 무슨 아포리즘(경구)같다.

제목만으로도 혼자, 무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오히려 글이, 사진이 제목의 무한성을 제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제목만으로 먼저 혼자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때 들어가는 혼자는 유한이 아니라 무한이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제목만 몇 개 나열해 본다.

 

나는 능선을 오르는 것이 한 사람을 넘는 것만 같다

우리에겐 필요한 순간에 길을 바꿀 능력이 있다

의자에서 만났다가 의자에서 헤어진다

암호명은 , 시인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말할 때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이병률이 어떻게 이 제목으로 글을 썼는지 읽기 전에 이 제목으로 자신의 생각을 묻는 것.

혼자, 속으로 이 제목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보는 것.

그 다음, 혼자에서 함께로, 이병률의 글을 읽는 것.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 혼자 또 생각해 볼 것.

그런 읽기.

글자들 속에 들어 있는 너무도 많은 의미들을 다시 만들어내는 일.

이병률 산문집 읽기다.

물론 그의 산문집에는 사진도 많다.

사진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는 것도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심한 사진의 쓸모 - 카메라 뒤에 숨어 살핀 거리와 사람
정기훈 지음 / 북콤마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에 얽힌 이야기가 실린 책이다. 그런데 사진이 화려하지 않다.  눈에 확 들어오는 사진도 아니다. 그런데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언가 찡하는 마음이 된다.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 일들, 그러한 일들을 사진으로, 글로 상기시켜 주고 있다.

 

소심하다는 표현을 제목에 썼는데, 그것은 바로 인위적이라기보다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포착한 사진이라서 그렇다. 가령 시위를 하면 시위를 하는 중심적인 장면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 시위 장면에서도 우리가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부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정기훈은 그래서 사진을 찍히는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어떤 자세를 취할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마냥 기다린다. 자신이 생각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힘들게 지내는 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그들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진가. 그들에게 애정을 지니고 사진을 찍는 사람.

 

그래서 표지에 '카메라 뒤에 숨어 살핀 거리와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이 돋보이지 않고 또 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살펴야 알 수 있는 것들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글도 그렇다.

 

사진에 얽힌 글들이 우리 사회 어두운 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동안 관심없이 지내왔던 시간들을 반성하는 읽기이기도 했다.

 

사진가는 주로 우리 사회에서 약자에 속하는 사람들을 찍었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장소를 함께 찍었다. 그 장소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크게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작게, 마치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드러내는 것만큼 그렇게 표현되고 있다.

 

이들이 크게 표현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이 사진책 속에 나온 것처럼 힘들게 지내는 그런 모습들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소심한 사진이 이런 사회적 약자들이 밝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많이 나오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드러나지 않은 모습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우리가 지나치고 있던 그런 일들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것이 아마도 '소심한 사진의 쓸모'이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