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옷을 벗어라 - 법정스님 미출간 원고 68편 수록
법정 지음 / 불교신문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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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옷을 벗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낡은 옷을 걸치고 있으면 자신은 어떨지 몰라도 보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감화시킬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낡은 옷을 이미 벗어버렸어야 할 옷이기 때문이다. 버렸어야 할 것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낡은 옷을 입은 사람은 법정 스님하면 떠오르는 말인 '무소유'에서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무소유가 아니라 소유욕에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스님은 자신의 삶 속에서 무소유를 실천하려고 또 실천하라고 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지 않아도 될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하니, 우리가 옷을 안 입을 수 없듯이, 스님들이 승복이라는 일종의 제복을 거부할 수 없듯이 꼭 필요한 것들은 당연히 소유해야 하지만, 버려도 될 것들은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제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신 지, 열반에 드신 지 10주년을 맞아 불교신문사에서 추모집으로 발행한 책이 이 책이다. 행여 이 책이 낡은 옷에 해당하지 않을지 걱정도 되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모든 옷이 낡은 옷이 되지 않듯이, 또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을 발하는 보석이 있듯이, 연륜이 묻을수록 더욱 신뢰를 주는 얼굴이 있듯이, 스님의 이 글들도 세월이 흘렀어도 낡은 옷이 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계속 입고 싶어지는 편안한 옷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할까? 아주 오래 전에 쓴 글들이지만 지금도 생각할 것이 많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반성하게도 한다.

 

불교계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스님의 비판적인 글이나 불교대학을 표방한 동국대학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스님의 의견, 또 불경을 번역하는 일에 대한 스님의 관점 등이 지금 읽어도 그렇게 낡지 않았다.

 

물론 동국대학교에 관한 글은 지금 동국대학교를 생각하면 이제는 별 의미가 없어 벗어버려야 할 낡은 옷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불교대학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면 여전히 불교계에서는 입어야 할 옷이라는 생각을 한다.

 

불경을 번역하는 일은 지금도 유효하다. 읽지 않는 경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경전은 성인의 말씀을 적어놓은 글인데, 경전을 읽음으로써 성인의 말씀을 듣게 되는데, 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한문으로 되어 있어 읽지 못했는데, 1960년대에 불경 번역을 시도하는데, 거기에 대한 법정 스님의 의견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경전 번역에서 중복을 피하고, 한글로 번역을 하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야할 것. 또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러 사람이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 번역할 것.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경전을 읽고 부처에 귀의할 수 있게 할 것인데, 여기서 부처에 귀의한다는 의미는 부처를 섬긴다는 뜻이 아니라 부처가 말한 것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절이나 부처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삶에서 부처가 말한 바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에 귀의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으니...

 

스님이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한 것도 부처의 삶을 산 것이라 할 수 있다. 법정 스님 원적 10주기 추모집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 책. 꼭 10주기가 아니어도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떤 낡은 옷을 입고 있나 생각하게 되니까.

 

나 역시 낡은 옷을 벗어버려야겠다. 낡은 옷에 집착하는 그런 삶이 아닌지 반성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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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9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규원 2021-05-07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고견을 풀어내는 솜씨가 부럽습니다

kinye91 2021-05-08 05:32   좋아요 0 | URL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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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남미 페루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론 소설이다. 사실이라고 해도 소설로 창작이 된 이상 소설이라고 해야 한다. 소설을 가지고 사실이다 아니다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소설로 창작이 되었다는 것은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란 뜻이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러므로 현실이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일.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 간접체험을 할 수 있으므로. 그 간접체험으로 우리가 삶에서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 있으므로.

 

작가는 분명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또 소설 속의 인물은 현실의 삶에 간여해서는 안 된다(6쪽.서문)고 하고 있다. 즉, 사실에 기반하지만 소설을 소설로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서 그런 간접체험을 했다면 현실은 소설에서 벗어나 자신의 체험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럼에도 이 소설 제목에 있는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두 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부정부패와 독재로 얼룩졌던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 소설 주인공인 판탈레온을 보면서는 독일 나치스의 아이히만이 생각났고, 특별봉사대는 일제 군위안부를 떠올리게 했다.

 

세상에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미치도록 잘하는 인간이 있는데, 그것이 유대인 학살을 용이하게 했던 존재가 아이히만이라면,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보라. 그는 자신이 한 일에 일종의 자부심마저 지니고 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그런 자부심.

 

이 소설에서는 군위안부를 특별봉사대란 이름으로 조직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판탈레온 대위가 그런 존재다. 그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그것도 자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평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임무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는다. 과연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바람직하지 않은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명령 너머를 사유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오로지 주어진 일을 잘 하기를 바랄 뿐이다. 거기에 도덕관념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오히려 효율성만을 따진다. 군인들이 민간인을 강간하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봉사대를 조직하여 그들의 성욕을 해소하게 한다. 그것도 잘하기 위해서 횟수, 시간 등을 통계내고 먼저 흥분하도록 책자를 제공하는 일까지 한다.

 

그에게는 오로지 특별봉사대원들에게 군인들이 성욕을 해소해서 민간들을 강간하는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러나 역사적으로 군대를 따라다녔던 위안부들의 존재를 이토록 잘 드러낸 소설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렇지만 소설은 결코 무겁지 않다. 아주 가볍다. 유머가 넘친다고 해야 하나? 광신도들이 십자가에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들을 매다는 장면에서도 긴박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아주 가벼운 문체로 넘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광신도와 특별봉사대. 아마존 밀림에 존재하는 그러나 소위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져야 할 존재, 가려져야 할 존재들. 이 두 존재들과 여기에 관계된 인물들이 모자이크 식으로 소설 속에서 짜여져 있다.

 

이 이야기와 저 이야기가 섞여서 나오는데, 그렇다고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게 되지는 않는다. 여러 이야기가 막 섞여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래서 인물들의 특성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대신 무겁지 않게 비극적인 사건에 다가가게 된다. 읽을 때는 무겁지 않게 아주 경쾌하게 소설을 읽어가지만 읽고 나서는 많이 무거워진다.

 

세상에 아이히만과 같은 존재를 주인공으로 만나는 소설을 읽고 어떻게 가벼워질 수 있겠는가. 우리 주변에 이렇듯 최선을 다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다하고 본인은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소설 속에서 한 장군은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그 자는 그걸 엉망으로, 그러니까 아주 불완전하게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바보는 특별봉사대를 육군에서 가장 효율적인 조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272쪽)

 

사실 우스꽝스런 정책을 입안하는 지도층을 비아냥거려야 하는데,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현되도록 하는 중간관료들이 있다. 그런 관료들로 인해 말도 안되는 정책이 실행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휩쓸리게 되는데, 소설 속 인물인 판탈레온 대위 역시 그런 인물 중 하나다.

 

그에게는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거나 그것을 고의로 태업을 함으로써 좀더 바람직한 정책으로 바뀌게 할 생각, 능력이 없다. 이런 인물들로 인해 잘못된 정책이 잘 시행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일의 전모가 드러나면 지도층은 부인하기 일쑤다. 군위안부 문제를 보라. 군에서 분명 관여를 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판탈레온은 비밀로 하라는 명령을 미스 브라질의 죽음으로 어기게 되는데, 이때 군부에서는 우리가 익히 일본 군부, 정부가 한 반응에서 알 수 있는 일들을 똑같이 한다.

 

"특별봉사대라고 일컬어지는 조직은 그 어떤 경우에도 군사 기관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은 민간 거래업체로 임시로 우연히 군에 의해 묵인되었을 뿐 군의 지원을 받지도 않았고, 군 당국에 의해 공식화되지도 않았으며, 군과 그 어떤 관계도 없다고 밝혔다." (329쪽)

 

어찌 이리도 똑같을 수 있을까? 마치 작가가 우리나와와 일본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던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났던 일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판탈레온 대위도 특별봉사대에 관한 문서들, 자료들을 모두 없애버리지 않는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된 정책을 이렇게 가려버리고 부인해 버리는 것. 그리고 책임을 상층부가 지는 것이 아니라 명령에 복종한 관료들에게 지우는 것. 이것이 바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점들을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처해 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이 소설은 참으로 섬뜩하다. 소설 속에서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판탈레온이라는 실행자를 주인공으로 소설이 전개되었기 때문이지만, 끝부분에서 부분부분 드러나는 특별봉사대원들의 삶은 결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고 많은 생각과 토론이 필요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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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의 만찬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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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를 읽으며 알게 된 책. 이런 소설이 있었다니, 아니 이 소설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니. 그것도 이 소설의 작가인 이자크 디네센이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이 된 소설을 쓴 사람이었다니. 그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다니. 이토록 유명한 작가를 지금에서야 알게 되다니...

 

해설에 실려 있는 헤밍웨이가 1954년 수상 소감으로 했다는 말.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작가다.

 

'이 상은 나보다는 다음 세 사람, 칼 샌드버그, 버나드 베렌슨, 그리고 아름다운 작가 이자크 디네센에게 돌아갔어야 한다' (318-319쪽)

 

이 소설집에는 총 5편의 소설이 묶여 있다. 바베트의 만찬을 비롯하여 폭풍우, 불멸의 이야기, 진주조개잡이, 반지가 실려 있는데, 하나같이 다 읽을 만하다. 재미도 있고, 상상을 넘어서는 이야기의 힘도 있다.

 

특히 '불멸의 이야기'에서는 이야기가 현실을 넘어서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고, '폭풍우'에서는 이야기가 현실로 들어왔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폭풍우'에 나오는 한 구절. 이것이 바로 이야기와 현실의 관계를, 우리가 이야기를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였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깨닫게 하고 있다.

 

'경험과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사랑에 빠진 젊은 여배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일상생활을 무대에 올려놓는 것은 모순이며 불경한 짓임을 안다. 그렇게 되면 무대가 일상을 한 차원 높게 승화시키기보다는 일상이 무대를 한 차원 낮게 끌어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이었다.' (116-117쪽)

 

그렇다. 이야기는 이야기여야 한다.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오면 그때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야기로만, 이야기를 현실로 가져오려 하지만 그것은 계속 이야기로 남게 되는 것을 '불멸의 이야기'라는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야기가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진주조개잡이'에서 엿볼 수 있으며,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속으로 도피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은 것을 그 소설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산다.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를 만들며,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이야기라는 것을 인식한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야기가 현실과 착종이 되는 순간, 배우가 극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이 소설집의 다른 소설들은 그런 이야기의 역할, 이야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좀 결이 다른 작품이 바로 '바베트의 만찬'이다. 하녀로 지내는 바베트가 복권에 당첨되어 만 프랑이라는 돈이 들어오자 주인들을 위해 만찬을 차리겠다고 한다. 검소하게 종교적 실천을 하며 살아왔던 주인들인 자매는 내켜하지 않지만 결국 바베트의 소원을 들어주고, 마을 사람들 역시 자매들의 말을 좇아 만찬에 참여한다.

 

음식은 화려하고 맛있고, 돈이 많이 든다. 바베트는 자신이 당첨된 일만 프랑을 모두 만찬을 차리는데 쓴다. 그런 바베트에게 자매는 "우리를 위해 가진 돈을 모두 쓰다니."(65쪽)라고 말하지만, 바베트는 "마님들을 위해서라구요? 아니에요. 저를 위해서였어요." (65쪽)라고 말한다.

 

왜? 바베트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빵만이 아니라 장미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평생 가난하게 살려고, 바베트?" ... "아니에요. 전 절대로 가난하지 않아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라니까요. 위대한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마님. 예술가들에겐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어요." (66쪽)

 

그렇다. 우리는 모두 삶에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전문적인 예술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들 삶 자체가 예술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삶에서 빵만큼이나 장미도 중요한 것이고, 그 점을 소설 '바베트의 만찬'이 잘 보여주고 있다.

 

'바베트의 만찬'에서는 먹을거리만큼이나 우리들을 살리는 것은 바로 인간의 자존감이라는 것, 빵과 장미가 함께 해야지만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어떨 때는 빵보다는 장미가 더 중요하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나머지 작품들에서는 이야기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이자크 디네센은 천상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삶이 더 풍성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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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에 등장하는 수많은 꽃. 그 꽃들이 음식과 연결이 될 때도 있고 (목련보신탕, '밥을 딴다'라는 말, 장미전, 점심 꽃 등) 사람과 연결될 때도(봄꽃들, 봄밤의 냄새, 당신들이 꽃이에요 등) 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을 연결해 내는 힘.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보는 일. 그래서 우리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바로 시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시인은 어떤 존재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어떤 존재에게도 온마음을 다해 눈길을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인식하지 못하던 것을 인식하고 알려준다.

 

  그런 시들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그렇게 내 사고에 또 하나의 방향이 생긴다. 뇌에 주름이 하나 더 는다. 뇌는 유한 속에서 안으로 안으로 무한히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시인은 유한한 존재에게 무한을 깨닫게 해주는 존재이다.

 

꽃하면 화사함, 젊음을 생각하는데, 문성해의 시집에서는 늙음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추레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화사함으로 바꿔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한참 젊고 활기찬 젊음들에게서 꽃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을 바라보는 눈을 지니고 있다.

 

하여 '당신들이 꽃이에요'라는 시를 보면 마음이 찡해진다. 이런 꽃들을 꽃으로 생각하지 않고 지내오지 않았던가 반성도 하고.

 

    당신들이 꽃이에요

 

햇볕에 오글오글 쪼그리고 앉은 저 여인들

며칠 뒤면 시작되는 꽃 축제로 급하게 투입된 저 꽃들

호미와 모종삽을 든 꽃

저린 다리를 수시로 접었다 폈다 하는 꽃

작업반장의 눈을 피해 찔끔 하품을 하는 꽃

말속에 수만가지 생각이 들끓는 꽃

하루 삼만원 일당을 받는 꽃

그 일당으로 밀린 공과금 내고 나면 없다는 꽃

아직 다섯시간은 더 쪼그리고 일해야 하는 꽃 

누렇게 이가 썩고 입안에 하얀 구혈이 난 꽃

한번도 꽃인 적 없던 꽃들이

알록달록 차양 모자를 받쳐 쓰고

새로 외국에서 들여왔다는 꽃모종을 심고 있다

간들거리는 풀 모가지들을 바삐 땅에다 박아놓고

훌쩍 일어나서 점심 먹으로 가는

배꼽시계만큼은 오지게 울리는 꽃

꽃들의 훌쭉한 위장 속으로

밥덩이가 텅텅 굴러떨어지는 한낮이다

 

문성해. 입술을 건너간 이름, 창비. 2012년. 94쪽.

 

꽃에 묻혀 있던 꽃들을 발견해는 눈,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시인. 가히 이 시집의 제목처럼 '입술을 건너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입술을 건너간 이름이 우리에게 당도해, 우리들 마음에 박힌다. 그렇게 꽃은 꽃만이 아니라 모두가 꽃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봄밤의 냄새'라는 시를 보면 시인이 말하는 꽃의 의미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봄밤의 냄새

 

꼭 십구세만 말고

늙음이 만개할 때도 꽃이라 치자

꽃이 활짝 피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민경이 할머니 얼굴을 마주하면

묵은 향기에 내 옅은 졸음이 다 흔들리지

 

꽃받침이 꽃을 모시듯

차곡차곡 접혀진 목 위에서

주름진 얼굴이 송이째 웃을 때는

꽃송이가 쿵, 떨어질라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야 하지

 

어스름이 처마를 슬슬 내려앉는 시각

목련꽃들이 쉬 꽃잎을 접지 못하는 것과

마루에서 가갸거겨 한글공부 하던 민경이 할머니가

간혹 한숨을 쉬는 이유는 똑같은데

 

꽃이 꽃을 불러낸 듯

마당으로 내려선 민경이 할머니가

공중의 목련꽃들과 향기를 섞는

시큼덜큼한 봄밤이네

 

문성해. 입술을 건너간 이름, 창비. 40-41쪽.

 

이런 완벽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라니. 할머니의 얼굴이 꽃이라니. 그래 어디 젊음만이 꽃이랴. 이렇듯 신산한 삶을 살아온 사람의 얼굴 역시 꽃이다. 그런 곷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꽃들의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물아일체의 모습을 잘 드러난 시가 '버들치야, 버들치야'란 시다. 꼭 꽃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 또는 무생물과도 공감이 되는 그런 시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 시집 첫시처럼 말이다. 첫시 제목이 '산수유국에 들다'다. 꽃들의 나라다. 식물로서의 꽃만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산수유국, 즉 꽃나라는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낸 세상이다. 식물, 동물, 그리고 동물이지만 따로 구분해서 우리 인간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세상이 바로 꽃나라다.

 

이런 꽃나라 백성들, 그들이 바로 우리라는 것. 시인은 그렇게 꽃을 통해서 또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존재들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기분좋은 일이다. 이런 시들을 읽는다는 것. 마음 속에 들어오는 다른 시들도 있다. 그 중에 '반딧불이'라는 시. 꼭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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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5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6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스로 행복하라 -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특별판, 샘터 50주년 지령 600호 기념판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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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특별판' '샘터 50주년 지령 600호 기념판'이란 또 하나의 표지를 달고 있는 책이다. 스님이 가신 지 벌써 10년이 되어 가나, 하는 생각.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

 

법정 스님 하면 무소유 하는데, 스님의 책을 이렇게 소유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스님의 책이 나왔다는 광고를 보고,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지 못해. 죽어서까지 소유할 수는 없는 책이지만, 지금 당장은 이 책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하니 어쩔 수 없다. 소유할 수밖에.

 

이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면 더 좋을 듯하고. 스님은 이 책 어느 글에서 '베풂'이 아니라 '나눔'이라고 했다. 내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니 그것은 '나눔'일 수밖에 없다고. 이 책 또한 잠시 내가 소유하고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들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책 또한 나눔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스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스님의 글을 다시 책으로 엮어낸 의미이기도 하리라. 세상에 스님의 말씀만을 따르는 것 또한 집착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스님 역시 열반에 든 다음 자신의 책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책을 다 불태우라는 둥, 다시는 책을 펴내지 말라는 둥, 그것을 엄격하게 지키라는 것은 또다른 집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판단하고 할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렇게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 집착에서 소유가 나오고, 소유에서 욕심이, 욕심이 다시 다른 사람들을 밟고 나아가게 하고 있으니, 99개 가진 사람이 하나 더 갖고 싶어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

 

결국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마음에 달렸다. 그렇다. 집착 역시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출가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마음이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집착에서 벗어난 마음은 나눔으로 살 수밖에 없다.

 

무엇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나누고 나누어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일. 마음이 비워지니 자연스레 채울 일이 더 많아지고, 이 채움은 다시 나눔이 되어 다시 비워지고... 텅 빈 충만이라는 역설이 통하는 그런 상태.

 

이 상태에 들면 스스로 행복할 수밖에 없다.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글 중에 파블로 카살스라는 사람 이야기가 있다. 난 처음 듣는 사람인데, 스님의 글을 읽고 이 사람에 대해서 알아야겠다는, 비움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에 대해서 채우고 다시 나눠서 비워야겠다는 그런 생각. 왜? 그가 한 말 때문이다. 음악가인 그, 지휘자로 유명한 그가 자신의 연주를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을 안타까워 하는 대목.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그 나눔의 마음.

 

클래식 음악, 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는 탈을 쓴 부유한 사람. 돈과 시간을 얼마든지 낼 수 있는 사람 아닌가. 그런데 노동자들은 어떤가? 이들은 이런 음악을 듣고 싶어도 돈과 시간을 낼 수가 없다. 기껏 시간과 돈을 내어도 이들은 연주회장 가장 끝, 구석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들을 생각하는 음악가. 카살스다. 그러니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유명 음악인이라는 마음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음악을 나누고 싶어했다. 또 나치의 연주 요청을 거부했다는 사람이기도 하니. 법정 스님이 이 사람에 관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바로 이 사람은 나눔을 실천하려 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부처가 따로 있나? 법정 스님은 따로 없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비우고 나누는 삶을 살면 된다. 그런 삶을 이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읽으면서 마음이 비워지는, 비워지면서 그 어떤 무엇으로 채워지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읽으면서 행복해진다.

 

책 제목처럼 '스스로 행복하라' 그래, 행복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마음에서 온다. 그 마음은 꽉 들어차 있는 마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어 비어 있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에서 행복은 스스로 찾아온다.

 

우리 올해는 스스로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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