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지니고 있던 생각을 뒤집는 말들을 만나면,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 속에 살아왔는지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란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

 

  외로움, 이건 홀로 있음과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있음으로해서 외로움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태형의 시집 [코끼리 주파수]를 읽다가 반대로도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디아스포라'(11쪽)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외로운 것은 혼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외롭다? 혼자가 되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일까? 군중 속의 고독일까? 혼자가 될 수 없는 현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외로움조차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말일까?

 

그래, 외로움을 이해받지 못함일 수도 있다. 많은 존재들이 내 주변이 있지만, 그 존재들이 그냥 주변에만 있는 것, 그것은 아무리 많은 존재들 속에 둘러싸여 있더라도 내 마음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없기 때문에 외로울 수 있다.

 

외로움은 결국 이해받지 못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외로운 식당'이란 시도 마찬가지다. 식당이 외로울 수가 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그 사람들은 모두 음식을 받아들고 있는데... 그런데도 시인은 '외로운 식당'이라고 했다. 왜? 홀로 있지 못하기 때문에, 홀로 있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존재도 자신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로운 식당

 

초행이라 길 찾기 바쁜데도

길가 음식점 간판에 눈길이 머뭅니다

뭐 좀 새로운 게 없을까 싶어 찾아든 식당

빈자리 하나 잡기도 쉽지 않군요

그 틈새에 겨우 끼어

돌솥밥 한상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손님들 뒤쪽으로

기러기탕 백숙 육회

이 집 특별식 메뉴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습니다

식용으로 사육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기러기라니

멀건 하늘처럼 끓고 있는 탕 속에서

보글보글 날고 있는 기러기들

먼 길 떠나는 날갯짓 소리는

사람들 시종 떠들어대는

온갖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습니다

저 늙어가는 사람들이 차라리

어디 가서 조용히 불륜이라도 저질렀으면 하고

측은해집니다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기러기 한 마리씩 뜯어먹는 대신

뭔가 그리워하는 얼굴로

안타까워하는 모습들로 앉아 있으면 안되나

아까 올려다본 흐린 하늘의 기러기떼가 아니었으면

내가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을 뻔했습니다

 

김태형, 코끼리 주파수, 창비. 2011년. 98-99쪽

 

시끌벅적한 식당을 외롭다고 표현하고 있다. 차라리 조용한 상태로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홀로 바라본 하늘의 기러기로 인해 사람들 속에 있지만 자신은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우리 모두는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해 갈수록 우리는 더더 외로운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스마트폰 시대에 더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육체는 비록 혼자만의 공간에 있을지 몰라도 전자세계를 통해 끊임없이 밖으로 나가고 있는 상태. 전혀 홀로일 수가 없는 상태. 따라서 외롭다고 하지만 그것은 외로움이 아닌 상태.

 

초연결상태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째 우리는 외로움마저 잃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시를 읽으며 생각하는데... 이 시를 통해 뭔가를 그리워하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아주 오래 전에 학교 다닐 때 들었던 책이름 '군중 속의 고독'. 이것을 이처럼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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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임헌영 지음 / 소명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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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거대 담론보다는 미시 담론이, 그래서 미시사라고도 하고 생활사라고도 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다. 연구 방향도 거대한 흐름을 추적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로도 많이 흘렀고.

 

그렇다고 미시사로만 역사가 구성되지 않는다. 이런 미시사들이 모여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역사 연구는 학자들이라는 전문가 속에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결국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알고 미래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니까 미시와 거시가 함께 잘 어우러져야만 한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일상의 소소한 세계만 표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거창한 흐름만 표현할 수도 없다. 거창한 흐름 속에서 소소한 일상들이 제대로 표현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이 책은 그런 작품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다. 평론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 소설에 나타난 정치 현실 또는 작가들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평론을 통하여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지금-여기'일 터이다.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어떠한가를 작품을 통해서 살펴보라고, 자신은 이런 작품들을 이렇게 읽었다고. 단지 읽은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삶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작품들이 나오는데, 그동안 읽지 않았던 작품들도 꽤 등장한다. 아주 오래 전 작가라고만 여기고 묻어두었던 작가들, 그냥 그런 작가라고만 생각했던 작가들의 작품도 나온다. 그리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읽고 싶어지게 한다.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선구적으로 비판했던 작품은 남정현이 쓴 '분지(糞地)'다. 미국을 이렇게 대놓고 풍자한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 필화 사건에 휘말렸던 작품이기도 한데, 이 작품만 기억하던 나로서는 남정현이 '허허선생' 연작으로 우리 사회를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풍자라 함은 비꼼인데,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비꼬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비꼬아 그 사람의 허위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한 존재로 군림했던 미국과 또 그에 추종하던 사람들을 풍자한 남정현의 소설은 당시 우리 사회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당시뿐만이 아니라 지금 현실을 이야기할 때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들 때 문학적으로 어떤 장치를 이용해 표현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이런 작품뿐만 아니라 최인훈의 작품도 마찬가지고... '총독의 소리'나 '주석의 소리'를 보라. 얼마나 당대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지. 이렇게 많은 작가와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사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최근에 읽은 책들에서 다시 주목하는 작가가 이병주인데... '지리산'의 작가로만, 또 보수적인 작가로만 알고 있던 이병주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박정희에 대해서 꽤 비판적인 작품을 썼다는 것. 그런데도 이병주를 1970년대 이전의 작품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게 해준다. 물론 이병주는 박정희와도 잘 어울렸지만 5.16쿠테타 직후 감옥 생활을 하게 되어 반감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반감이라고 해서 다 소설이 되지는 못한다. 그는 많은 자료를 모아 5.16이후 우리 사회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소설은 역사가 아니지만, 소설을 통해서 역사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는 있다. 그렇다면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소설을 통해서도 할 수 있는데, 그 작업을 이병주가 했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역사가 아닌 소설, 그래야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이다.

 

(이병주가 쓴 작품인 ['그'를 버린 여인], [그해 5월]을 읽어보면 소설 속 인물로 표현된 박정희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밖의 다른 인물들도.)

 

여기에 더불어 박화성과 한무숙이라는 작가에 대한 글을 통해 우리 소설에 대한 지식의 폭을 좀더 넓힐 수 있다.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우리나라 현실을 잘 반영한 소설들을 들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로 사회 속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활인이자 정치인이다. 정치가 그들의 삶에서 사라질 수가 없다.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정치기 때문이다. 이런 소설들을 통해서, 당시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파악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지금 우리나라 정치현실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게 된다.

 

관심이 있으면 찾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삶과 관련짓게 된다. 우리가 정치를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인간은 원초적으로 경제인이지만 정치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런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소설들을 통해 지금-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하는 듯하다.

 

평론집, 안 읽은 지가 오래되었는데, 그만큼 문학에서 멀어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소설을 읽어 봐야겠다는, 소설이 우리 사회의 모습, 우리들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어, 소설을 통해서 나를, 우리 사회를 발견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뱀발

 

이 책을 읽으면서 지식나부랭이에 해당하는 작가들의 가족관계를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인데... 박화성의 아들이 천승세인것, 그리고 한무숙과 한말숙이 친자매지간인 것. 여기에 한묘숙이라는 자매가 있는데, 이 분의 활동에 대해서도 찾아보게 되는 호기심을 갖게 되고... 임헌영 평론가가 남정현, 이호철, 최인훈과 어울리는 이야기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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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의제 민주주의, 이대로 될까'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 결국 선거다. 내 의견을 대신해 줄 사람을 뽑는 투표. 그리고 끝.

 

  아마도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이렇게 투표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정말 민주주의일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내 의견을 반영해 줄 거라 믿고 투표했는데, 정작 국회에 가서, 지방의회에 가서, 또 지방자치단체장이 되어 내 의견과 반하는 정책을 펼치면, 그때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아무런 대책없이 다음 선거 때까지 기다려야지. 국민(주민)소환제도가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길거리로 나서는 일이나 또는 법에 호소하는 일밖에 없는데, 법에 호소하는 일은 우리 일을 법에게 넘겨주는 꼴밖에 되지 않으니 좀 그렇고 -지나치게 거대해진 사법 권력은 우리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 이것도 조심해야 한다-, 길거리에 나서는 일은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게 대의제 민주주의가 지니는 문제다. 대의제라고 하지만 과연 대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대의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대처 방법이 없는 것이 지금의 대의제다. 이것을 보완하겠다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자고 했지만,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기껏 만들어 놓은 대의제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그것도 겨우 30석에만 적용하는 무슨 한계를 정한 비례대표제도.

 

그것도 묘수라고 하는 꼼수를 쓰는 정당이 있으니 민의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대의제는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녹색평론에서 우려하는 점도 이 점이다.

 

제대로 대의를 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대의제 민주주의로만 정치체제를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

 

숙의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말도 있고, 준연동형이 아니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그것도 비례대표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지금 현실에서는 대의제를 없앨 수는 없으니...

 

직접민주주의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대의제를 보완할 수 있는, 대의제가 말 그대로 대의가 될 수 있도록, 시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모색되어야 한다.

 

아니면 대의제와 더불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하고. 선거 때만 주권자가 되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 한다. 녹색평론이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감염병 확산이 잘 마무리 되면(그렇게 되어야 한다) 4월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이 대표적인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과연 내 의사를 잘 대변하는 사람, 정당을 선택할 것인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번 호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글은 채효정의 '문재인 정권 3년을 돌아본다'다. 촛불로 인해 탄생한 정부가 이제 임기 반환점을 넘어서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마라톤으로 따지면 이제부터 제 속도를 유지해야 할 때다.

 

남 눈치를 보면 자기 속도를 잃는다. 자기가 생각했던 대로 달려 나가야 하는 때... 정부도 마찬가지다. 마라톤에서 페이스 메이커가 어느 지점까지는 이끌어주지만, 그 이후는 자기 힘으로 달려야 한다. 자신의 속도로, 자신이 계획한 대로.

 

정부도 마찬가지다. 전 정권이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해 준 것이 1-2년이라면, 이제 반환점을 돌아선 지금은 오로지 이번 정부의 능력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자신들이 내세웠던 공약이 무엇인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공약을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대의제 민주주의에 걸맞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점검해서 적어도 공약의 3/5 정도는 실현되었다는 자체 평가가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했는지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왜 이 정부를 국민들이 선택했는지, 국민들이 지닌 염원이 무엇이었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 점검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과거에 했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또 처음에 지녔던 마음을 되새겨야 한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해서는 안 된다. 채효정의 글과 같은 비판을 읽으며(들으며) 자신들의 정책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쓴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슴, 그리고 실행할 수 있는 손과 발을 지닌 정부였으면 좋겠다. 그런 정부라야 대의제 민주주의로 운용되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녹색평론 171호를 읽으며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정치, 경제, 생태, 환경 등등... 내 삶을 유지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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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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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가 쓴 '영혼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참 복잡한 사람이구나, 카잔차키스란 사람은 이란 생각을 했다. 이 작가는 영혼의 구제를 위해 모험을 떠나는 사람과 같다. 구도의 길을 떠나는 수행자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가 도달한 길이 어디일지는 모르겠다.

 

육신을 벗어던지고 영혼의 해방을 추구하지만 육체없는 영혼이 가능하겠는가? 반대로 영혼없는 육체란 빈껍데기에 불과할텐데... 육체와 영혼의 합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유에 이를텐데, 그 길이 만만치가 않다.

 

소설이지만 사실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 [그리스인 조르바]다. 실제로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를 만났기 때문에, 또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이 소설 말미에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그가 조르바에 관한 글을 완성했을 때 편지 한 통이 온다. 그 편지 내용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조르바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것, 그것은 조르바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라는 것을.

 

만남에서 헤어짐 속에서 많은 일들을 겪는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소설 속 화자는 성장해 간다. 그는 자유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완전한 자유에, 조르바와 같은 자유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것을 조르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니오.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요.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 거요.'

내가 오기를 부렸다. 조르바의 말이 정통으로 내 상처를 건드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러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받았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생략)' 462-463쪽.

 

이런 조르바의 말을 들으며 화자는 자신을 인정한다.

 

어릴 때부터 나는 초인에 관한 야망과 충동에 사로잡혀 이 세상일에 만족하지 못했다.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조용해졌다. 나는 한계를 정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가르고 내 연(鳶)을 놓치지 않도록 꼭 붙잡았다. (463-464쪽)

 

이게 우리들 모습 아닌가. 날아가고 싶지만 끈은 놓지 않으려 하는. 자신의 끈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날려고 하는. 그러면서 자신은 자유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런 존재. 화자는 조르바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그는 한없이 자유로운 조르바란 인간을 만나 자신의 삶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행복이다. 사람이 제공한 행복.

 

그래서 조르바는 화자에게 사람책이 된다. 그는 비록 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이런 펜대를 지닌 인간에게 쓸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또한 삶을 성찰하고 다른 삶으로 옮겨가게 할 수 있는 책인 것이다. 사람책. 화자는 조르바라는 사람책을 만나 자신이 지닌 펜으로 그의 삶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책이 하는 역할이다.

 

그걸 깨닫는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351쪽)

 

자, 이런 사나이에게 조국이란 윤리란 명예란 미래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는 오로지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는 살아간다. 자신의 의지로.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일을 할 때는 그 일에만 몰입한다. 다른 것들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게 한다.

 

일을 할 때는 일에 요리를 할 때는 요리에, 춤을 출 때는 춤에, 사랑을 할 때는 사랑에... 몰입한다. 자신을 그것에 일치시킨다. 이리저리 요량을 하지 않는다. 그냥 할 뿐이다. 그는 그렇게 살아간다. 현재를. 그러니 거창한 이념이나 윤리 도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펜대를 지닌 인간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다. 이것저것 재느라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 늘 손익을 계산하는.

 

하여 조르바의 삶은 화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비록 그가 조르바와 같은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조르바라는 사람책이 준 영향은 상당하다.

 

반대로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조르바를 욕망에만 충실한 인간으로 좁게 볼 수도 있다. 자신의 욕망만 충족하면 그것이 사람인가? 짐승이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조르바가 자신의 욕망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을 보면 그에게 도덕의식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는 그에 합당한 행위를 한다. 수도사들에 대한 카잔차키스의 부정적인 생각이 이 소설에서도 잘 드러나 있는데, 조르바는 이들을 골탕먹이지만 선량한 마을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욕망으로 그들이 피해 입을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

 

또한 말로는 여성을 암컷이라고 비하하지만, 그 여성들을 대할 때는 최선을 다한다. 여성들을 결코 수단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여성들 또한 목적으로 대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살해당한 과부의 사건에서 그런 조르바를 알 수 있고, 오르탕스라는 전직 매춘부와 지내는 모습에서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행위하는 것이다.

 

욕망에 충실한 것이 다른 사람의 피해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도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조르바의 자유는 바로 그런 것이다. 이렇게 그는 바로 지금 여기에 충실하기 때문에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또 윤리니 돈이니 하는 것이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 역시 조르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책을 읽어도 그 책의 진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구도의 방황을 한 화자는 조르바라는 사람책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조르바라는 사람책을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카잔차키스. 조르바. 다시 읽으며 나는 얼마만한 줄에 매여 있는 연(鳶)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줄을 끊어버리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길게는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 이것도 조르바가 보기엔 펜대에 얽매인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같은 생각이겠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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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쇼크 - 인류 재앙의 실체, 알아야 살아남는다, 최신증보판
최강석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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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전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현대는 몇 년을 주기로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우리를 습격하고 있다. 습격이라는 말을 썼지만, 사실 우리가 바이러스들을 불러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지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각자 고유한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 있던 생명체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져,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담이 없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담장 안에만 있던 바이러스들이 담장을 넘어서 들어오니 '신종'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밖에.

 

국지적인 질병이란 이제는 없다.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종간 감염이 안 된다고 알고 있던 감염병들이 종을 넘나들면서 질병을 일으키고 있다. 종들간에 굳건히 닫혀 있던 문들이 열리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한 대로 종들 특유의 자물쇠가 있고, 그 자물쇠를 열 열쇠는 종 내부에만 있었는데, 이제는 종 외부에도 열쇠가 마련된 상황이라는 것.

 

이 열쇠를 마련하는데 매개되는 동물이 있는데, 그 동물들은 예전부터 우리 인간들과 함께 지내왔던지, 아니면 최근에 인간들이 식용으로 먹는 동물들에게서 자물쇠를 여는 열쇠가 나온다는 것.

 

그래서 새로운 바이러스는 늘 나타날 위험성이 있다. 새롭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 그것은 모른다는 말과도 통하고,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단지 두려움을 넘어 공포로 넘어가면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된다.

 

2016년에 나왔던 책의 개정증보판이 나온 이유도, 메르스 공포를 넘어 이제는 코로나19로 우리 사회가 비상사태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때 바이러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이 책을 다시 펴냈다고 하는데...

 

마스크를 쓰는 것이 감염병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두말 할 것 없는데, 그것이 너무 심하게 작용하여 마스크 대란을 일으키고 결국 마스크 5부제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학교들이 개학을 연기하는 그런 재난 상황에 이르게까지 되었는데...

 

이제는 이런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이 한때 그랬지로 끝나지 않고 상존하는 시대에 접어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바이러스와 인간은 함께 지내왔지만, 그리고 공존하는 방법으로 진화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진화란 늘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변화해 가니... 바이러스나 세균들과 인간들도 역시 위협과 공생을 통해 함께 지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바이러스나 세균을 완전히 박멸할 수 없듯이 세균이나 바이러스 역시 숙주인 우리 인간을 완전히 멸종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자신들도 사라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이러스에 대해서 그냥 그렇지 하고 넘어가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지나치게 공포심을 지니는 것도 옳지 못하다. 이때 우리게에 필요한 것은 바이러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 그리고 그것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 및 행동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된다. 바이러스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도 도움이 되고, 그것들을 예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온 바이러스들이 창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구촌에서 신종 바이러스 출현 자체를 저지하는 선제적 예방 노력은 출발점, 그 선상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스 바이러스처럼 이미 바이러스 출현 경로가 알려진 경우와 달리, 그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어느 지역에서 어떤 경로로 나타날지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신종 바이러스 출현 배경을 제공하는 푸시&풀 여건 (산림파괴, 대도시화, 기업축산, 기후변화, 여행증가 등)을 개선하려는 발걸음은 여전히 출발선 이상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바이러스 학자들이 지구촌 야생세계에서 미지의 바이러스를 찾고 있고, 우리 주변의 동물인 가축에서 신·변종 바이러스 출현을 감시하고 있지만, 사람에게 위험이 되는 신종 방이러스를 찾아내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려운 일이다. 설령 그런 바이러스를  수집하더라도 향후 사람에게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지 판단하는 데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다. (350쪽)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호모 데우스로 가는 길목에 있다고 자부하는 인간에게 아직도 신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바이러스와 세균들 존재다. 인간이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존재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면 호모 데우스가 되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 단계에 머물러도 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세상이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가 바로 바이러스와 세균을 극복하는, 또는 그들과 공생하는 것이다.

 

적어도 인류가 절멸의 위험에 처하지 않게 이들을 적절히 예방하는 기술을 만들어야 하고, 또 이들로부터 건강을 지키며 살 수 있는 행동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알아야 이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야 대응할 수 있다. 많은 것들이 이 책에서 이야기되고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산림파괴, 대도시화, 여행증가 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지금도 산림은 파괴되고, 거기서 살고 있던 동물들이 살기 위해서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해서 전파된 바이러스가 대도시화로 인해 밀집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퍼지는데, 비행기나 다른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하루 만에 전세계 퍼질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개인위생에 만전을 기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신종이라는 이름을 단 바이러스가 최근에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인간이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

 

지금 신종 바이러스를 옮기는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는 박쥐들 이야기가 있는데, 이 책은 어떻게 해서 박쥐가 신종 바이러스를 옮기는 주 역할을 했는지, 왜 코로나19에도 박쥐가 의심을 받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 박쥐가 인간에게 복수심을 품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닌 것을 잘 알지만, 한번 퍼지기 시작한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은 우리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니 조심해야 한다. 결국 서로의 영역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이 참에 우리들의 생활도 돌이켜 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감염병에 대해서 신종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많은 질병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공포심을 지닐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개인들 위생 수칙에서부터 생활방식과 더불어 각 나라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폭넓게 고민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사그라들기를 바라며, 또다시 이런 혼란을 겪지 않도록 많은 준비를 해야 함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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