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또는 생활 속 거리두기. 여기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낱말은 거리두기다. 거리두기란 밀접한 관계를 맺지 말라는 말이다.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말이 중립을 지킨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관계를 포기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너와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겠다. 그래서 너무 가까이 하지도, 너무 멀리 하지도 않겠다. 그냥 그렇게 아는 사람으로만 지내겠다. 따라서 이 한자어는 사회적 거리두기나 생활 속 거리두기와 어울리는 말이 된다.

 

  그런데 사람은 사회적 동물, 정치적 동물, 놀이하는 인간 등등으로 불리고 있다. 사람이 인간이라는 한자로 불릴 만큼 사람은 홀로가 아니라 함께 존재한다. 그런데 거리두기를 하지 않으면 고소, 고발을 당한다. 처벌을 받는다.

 

자, 어떤 사람들에게 거리두기는 아무런 고통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자족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거리두기는 엄청난 고통을 일으킨다. 그들의 삶은 자족적이지 않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기를 통해서만이 삶이 온전해 지기 때문이다.

 

이 거리두기란 말이 우리 사회에 들어온 지 어언 8개월이 되어 간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 얼굴에는 거의 전부 마스크가 씌워져 있다. 2미터 이상 거리를 둔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방역 지침이 있지만, 그것은 지침일 뿐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에 나가 보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넌 뭐냐? 너 때문에 우리가 코로나19에 걸려도 되냐?는 식의 눈총.

 

거리두기뿐이 아니라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다니는 시절이 되었다. 이럴 때 누가 가장 고통 받는가? 이런 물음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이 시대에는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정책이 우선해야 한다.

 

장애인들, 비정규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책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러했던가? 오히려 자본가들을 위한 정책이 먼저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반성해야 한다. 그 점을 이번 [삶이보이는창] 122호에서 짚어주고 있다.

 

여전히 노동은 나중에 고려해야 할 대상이 되고 있으니 이번 호에 실려 있는 글들을 읽으면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경제 위기를 핑계로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제약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노동을 중심에 둔 정책, 사회적 약자를 중심에 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

 

[삶이보이는창] 122호를 읽으며 그 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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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으로부터 - 감히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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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가 쓴 '행복한 왕자'를 읽으면 참 행복했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를 만난다는 것.

 

세상이 악보다는 선이 더 많다는 것, 받는 것보다 주는 행위에서도 행복을 더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동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읽으면서는 삶에 대해서, 삶이 자신의 몸에 어떻게 새겨지는지를 생각했다. 내 몸은 내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유미주의니, 탐미주의니 하는 것들을 떠나 그냥 그렇게 그의 작품을 읽으며 삶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동성애자. 그게 무엇이 문제인가? 서양의 고대에서는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한 종류 아니었던가.

 

기독교가 지배 윤리로 작동하면서 동성애는 배격해야 할 사랑이 되었다. 그래서 동성애는 죄악이고, 질병이고, 어떻게든 사회에서 격리하든지, 치료하든지, 처벌해야만 하는 악이 되었다. 감정이 죄가 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

 

하여 오스카 와일드는 작가로서 정점에 있을 때 소송에 휘말리게 되고, 패소하면서 감옥에 가게 된다. 그는 정점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이 책 표지에 적혀 있는 '감히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라는 말처럼 사랑을 했다고, 그것을 밝혔다고.

 

그래서 그는 감옥이라는 심연에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 심연은 그에게 그냥 바닥이 아니다. 삶을 더 깊게 볼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자신이 한 사랑을 되돌아 보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사랑했던 사람을 더 깊게 볼 수 있게 된 시간과 공간. 바로 그 장소.

 

그 장소, 심연으로부터 그는 편지를 쓴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그 내용 중에서 몇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나 역시 환상을 가지고 있었지. 나는 내 삶이 한 편의 눈부신 희극이 될 거라고 믿었어. 당신은 그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우아한 인물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알고 보니 내 삶은 한 편의 역겁고 혐오스러운 비극이었던 거야. 그리고 그 대재앙의 사악한 - 한 가지 목적만의 추구와 편협한 의지력의 발현에서 - 동인은 바로 당신이었지.  (88쪽)

 

사람은 상상력을 먹고 자라지. 우리는 상상력에 의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현명해지고,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나아지고, 지금의 우리보더 더 고귀해질 수 있어. 상상력에 의해 우리는 삶을 하나의 전체로 볼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오직 상상력에 의해서만 실제적이고 이상적인 관계 속에서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있고 말이지. 오직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게 상상된 것만이 사랑을 살찌울 수 있는 거야. 하지만 증오는 무엇이든 먹고 살을 찌울 수 있지. (90쪽)

 

증오는 우리를 눈멀게 하지.  ... 사랑은 아주 멀리 떨어진 별에 쓰인 것도 읽을 수 있게 하지만, 증오는 당신을 철저히 눈멀게 해 담장으로 둘러싸인 옹색한 정원, 방탕함으로 꽃이 시들어버린 저속한 욕망의 정원 너머는 볼 수 없게 만들지. 당신의 끔찍한 상상력 부족 - 당신 성격 중 실제로 치명적인 단 하나의 결점 - 은 전적으로 당신 안에서 살았던 증오의 결과물이야. (92쪽)

 

예술가는 오직 표현을 통해서만 삶을 상상할 수 있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에겐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  하지만 그리스도는 전혀 그렇지가 않아. 그는 우리를 경외감으로 가득 채우는 광범위하고도 경이로운 상상력으로, 목소리를 잃어버려 표현을 하지 못하는 고통의 세곌르 자신의 왕국으로 삼아 스스로 그곳의 영원한 대변자가 되었지. ... 아름다움의 개념을 슬픔과 고통을 통해 실현하는 사람의 예술적 기질과 함께, 어떤 생각이든 하나의 이미지로 구현되지 않는 한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느끼고는 자신을 고통의 인간의 이미지로 구현한 거야. 그는 그런 식으로 예술을 매료하고 지배했어. (170-171쪽)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권이지. 그리고 난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 (188쪽)

 

사실, 나의 몰락은 삶에 개인주의를 지나치게 요구해서가 아니라 너무 적게 요구한 데서 비롯된 거야. 내 삶에서 유일하게 수치스럽고 용서받을 수 없고 경멸할 만한 행위는 당신 아버지로부터 나를 지켜달라며 마지못해 사회에 도움과 보호를 요청했다는 거야. (194쪽)

 

속물은 사회의 무겁고 거추장스럽고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힘들을 지지하고 돕는 사람, 그리고 인간이나 어떤 운동 속에서 역동적인 힘을 만날 때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지. (196쪽)

 

그는 이렇게 감옥에서 더 깊어졌다. 그런데 그 깊어짐이 작품활동으로 나왔어야 하는데, 더 이상의 작품활동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언급하는 것은 감옥에 가기 전 작품들인 것이다.

 

삶이 예술을 이긴 경우라 해야 하나? 이미 감옥에 다녀온 와일드로서는 개인주의자가 되는 것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사회 속 개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늘 동성애자라는 딱지가 따라다녔을 테니, 개인주의자로서 사회를 무시하고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힘든 딱지였을 것이다.

 

주홍글씨... 이것을 극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오스카 와일드처럼 정점까지 올라갔던 사람에게는. 하지만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편지글을 남겨주었다. 편지글을 통해 그의 삶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고, 또 그가 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되어 그 점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책 뒷부분에는 앙드레 지드의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지드가 만난 와일드. 이 글들이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와일드가 이런 일을 겪은 지 100년도 더 지났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와일드가 겪은 일에서 자유로운가?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와일드가 개인주의적인 일을 사회에 호소했다는 실수를 자책하고 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개인주의를 사회적 압력으로 굴복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더더욱 읽어야 한다. 우리에게 여전히 부족한 것이 개인주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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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보다 더한 인생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왜 안 그러겠는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사람, 겪는 일들이 소설 속에 나오는 것들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소설은 그러한 삶들 중에서 작가가 표현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정한 형태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문학의 한 양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난해한 소설이라고 해도 삶보다는 난해하지 않다.

 

  삶은 때로는 너무도 난해해서 도무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냥 자신이 살아낼 뿐인 삶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삶을 우리 모두는 살고 있다.

 

  삶을 소설에 비유하면 단편, 중편, 장편이나 대하소설로 나눌 필요가 없다. 아무리 짧은 인생이라고 해도 그 속에는 대하소설에 나타나는 모든 요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은 미완성일지라도 완결된 작품이라고 해야 한다. 또한 삶은 완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진행 중인 작품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삶은 책이다.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가 담겨 있는 책. 이 책을 자신이 읽어도 되고,다른 사람이 읽어도 된다. 아니, 읽지 않아도 된다. 삶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 삶을 읽고 싶어진다. 도무지 답이 없는 것 삶을 읽어서 답을 찾고 싶어진다.

 

고재종 시집 [꽃의 권력]을 읽다가 '홀로 인생을 읽다'란 시를 읽으며 그런 삶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홀러 인생을 읽다

 

페이지 페이지마다 저항한다 

재미없고 어렵고 빡빡한 이따위 책이라니

건성건성 지루함을 뛰어넘고

알 듯 알 듯한 문장만 마음껏 해석해 버린다

하지만 행간에 얼크러진 미로들과

딱딱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발을 거는 맥락의 숲이 부르는 유혹들

그 속으로 다시 길을 잃는다

피로 쓰였다니 온몸으로 읽어야지

나는 미련하고 오기 창창하여서

절벽에 부딪고 심연에서 소리 지른다

그 어떤 책도 저 혼자인 책은 없다지 않나

수많은 이미지의 난무와

겹겹 숨어 버린 의미들의 여러 시간

제기랄, 한 귀퉁이에서 잡념이나 낙서하다가

다시 페이지를 넘기면 삶의 황홀한 서정들

그다음 페이지엔 죽음의 혹독한 서사

생과 사는 앞뒷면으로 반복되는데

말도 안 되거나 말하기 싫어하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담론처럼

말하고 싶으나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들의

징후까지를 짐작해 보는 시간은 깊고 깊다

이걸 혈투라고 해야 하나

혈투 끝 폐허라거나 숭고라고 해야 하나, 내게

주어진 고전(古典)이 의도하는 것과

의도하지 않는 것까지 가늠해 보는

독서는 마쳤는데 책은 여전히 펼쳐져 있다

 

고재종, 꽃의 권력, 문학수첩. 2017년. 82-83쪽.

 

이것이 바로 삶책 아니겠는가. 삶책을 덮을 일이 있을까? 내 삶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언젠가는 내 삶책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기도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우선은 내 삶책을 읽기 전에 삶을 살아가야겠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바로 책 내용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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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언론에서는 '사상초유'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낸다. 최근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사상초유다.

 

그런데 그 사상초유가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설마 설마 하면서 그냥 넘어간 것은 아닌지.

 

코로나19. 잠잠해질 기미가 안 보인다. 백신이 나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자연의 생태계를 깨뜨린 결과 맞이한 재난이다. 인간이 초래한 재난이라고 해야 옳다. 결자해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문제를 일으킨 존재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이미 해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해답을 찾아내려 하지 않는다. 아니, 알고 있으면서도 해잡을 비켜간 답을 계속 제시한다.

 

더 잃을 것이 무엇이 있다고?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의한 질병으로 고생하는 인류. 기후 위기로 종잡을 수 없는 폭염과 혹한과 폭설과 폭우를 겪고 있는 지금 현실에서도 '성장'이라는 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이 예전에 녹색평론사에서 나왔는데, 그 책을 과연 정책입안자들이나 정책결정자들이 읽었는지 의심스럽다.

 

  이 책을 보면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텐데... 전혀 그렇지 않은 현실이니...

 

  그렇다면 스웨덴 청소년인 그레타 툰베리가 주장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는가?

 

  그냥 남 나라 청소년 이야기로 치부하지는 않았는가.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그레타 툰베리처럼 기후 위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행동으로 나섰는데, 그들의 행동을 얼마나 큰 비중으로 다뤄주고 있는지... 그냥 무시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꼭 읽어봐야 한다. 툰베리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이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아니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지구 건너편 특이한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할 행동. 우리는 이미 재앙의 입구에 들어서 있는데, 그것을 지금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이상 기후들이 보여주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이상 기후가 정상 기후가 되고 말텐데...

 

이런 기후 위기에 대해서, 아니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서 몇십 년 전부터 꾸준히 김종철 선생이 주장해 왔는데... [녹색평론]을 통해서 그렇게 위기를 알려왔는데...

 

위기를 알리는 종은 늘 울리고 있었는데 우리가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하지 않았는지, 여전히 '성장'을 버리지 못해 '녹색'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면서까지 '성장'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근대 문명이라는 틀에 갇혀서 생태 문명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못하는 현실. 이것은 상상력의 부족에 다름 아니다. 

 

  상상력의 부족. 현실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지금 현실 너머를 볼 수 있는 상상력. 다른 삶을 그려볼 수 있는 상상력이다. 그런 상상력의 결핍. 우리는 교육을 통해 상상력을 죽이는 연습만 해오지 않았던가.

 

  틀에 갇혀 그 틀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틀 속에 가두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지... [녹색평론]의 말들이 허공 중에 흩어져 버린 것들이 그런 상상력의 결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상초유'라는 말... 이제는 진부한 수식어가 되어 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우리는 사상초유의 일들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대로 나가다간. 우리들 삶의 형태를 바꾸지 않았다간.

 

최장 장마 기간을 기록하고 있는 지금... 이런 것들이 이미 우리가 재앙의 문을 열고 한발짝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단 생각을 한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 행동하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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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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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지구를 살리는 어느 가족 이야기
그레타 툰베리 외 지음, 고영아 옮김 / 책담 / 2019년 9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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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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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1- 김종철 칼럼집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6년 1월
11,000원 → 10,450원(5%할인) / 마일리지 33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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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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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교토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쯤 되는 도시. 딱 한번 가본 적이 있는 도시. 그래서 이번 답사기는 좀 친숙하다. 물론 교토를 책 한 권으로 정리할 수가 없어서 두 권으로 나눠서 서술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교토라는 도시가 지니고 있는 문화가 어찌 책 한 권으로 정리될 수 있겠는가.

 

교토에 갔을 때 놀랐던 점은 집들이 높지 않다는 점.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 가도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것에 견주어 교토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교토에서 문제가 되는 건물이 현대에 건축된 교토역과 교토 타워라고 할 정도니 말이다.

 

또한 너무도 깨끗한 길거리, 그들의 질서의식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카페를 찾기 힘들었다는 점도 그랬다. 우리나라 도시 어디를 가도 카페는 100미터 이내에서 몇 개를 찾을 수 있는데, 교토에서 좀 쉬고 싶어서 - 그날은 많이 걸었다. 다리가 무척 아파서 카페에 들어가 쉬고 싶었는데, 잘 보이지 않아 더 많이 걸었다 - 찾았는데, 간신히 찾은 카페가 아주 단촐했다. 좌석이 네 개도 채 안 되는, 그러나 체인점 이름을 달지 않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그런 모습에, 어쩌면 천년 고도라고 하는 교토에서 만날 수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답사기에서도 일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모습에 놀라는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그들은 결코 남을 채근하지 않는다. 줄지어 관람을 해도 앞사람들이 나아가지 않으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기다린다. 또한 작은 것에 공을 들인다 등등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택시기사의 친절함까지.

 

이런저런 것을 떠나서 교토 시대가 되면 (교토 시대라는 말보다는 헤이안 시대와 가마쿠라 시대 정도가 걸려 있는 답사기가 이번 3권이다) 일본은 일본다운 문화를 확립한다. 그들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가 만들어지고 발달해 가는 것이다.

 

그런 문화들이 지금도 남아 많은 사람들을 교토로 오게 한다. 그래서 교토 여행을 할 때 일본 역사를 알면 더 교토를 깊이 있게 여행할 수 있게 된다.

 

이 답사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유홍준이 바라는 역사 교육이고, 문화 교육일 것이다.

 

  나는 지금 교토 답사기를 쓰면서 독자들이 은연중에 유물과 유적을 통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익힐 수 있기 바라면서 교토 이전의 광륭사부터 시작해서 헤이안시대의 동사, 연력사, 청수사 그리고 후지와라시대의 평등원까지 서술했다. 답사기를 통해 내가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입장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299쪽)

 

그래서 교토에 있는 유물을 통해 일본 역사를, 또한 일본과 관련이 있는 동아시아 역사를 알아가게 된다. 한 나라의 문화를 본다는 것은, 그 나라만의 문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의 문화를 함께 살핀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신사(神社)의 나라라고 하는데, 유홍준의 답사기에서는 신사에 대한 언급은 최소한에 그치고 있다. 우선은 일본 문화 속에 있는 우리 문화를 살피는 것, 또 일본 문화와 우리 문화, 동아시아 문화의 관련 양상을 살피는 것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토에서도 절을 중심으로 이 답사기는 펼쳐진다.

 

일본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이 답사기에서는 절을 중심으로 펼쳐가고 있다. 하여 단순히 절 건물의 모습이라든지, 절에 있는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하여 일본의 역사를 정리해 알려주고 있다.

 

유물을 통해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여기에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역시 유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 그것은 역사를 단순히 지식의 나열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영상으로 우리 머리 속에 담으라는 의도일 수 있다.

 

지식은 장소성을 띨 때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성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덧글

 

2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삼십삼간당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1600년부터 10년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원 아래 대수리가 이루어졌다. (324쪽) 고 되어 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8년에 죽었으니, 그 아들 히데요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지... 정정이 된 판본이 나왔는데, 내가 읽은 책에 그 부분이 빠진 건지, 아니면 인물들의 생몰년도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그것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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