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고, 우수도 지나고, 이제는 봄이 다가와야 하건만, 계절은 어김없이 봄을 향해 가고 있단 믿음이 있는데, 그럼에도 순간 순간 닥쳐오는 추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아직 완연한 봄은 아니구나. 봄이 이처럼 쉽게 오지는 않는구나. 순환하는 계절도 이렇게 한차례씩 또는 몇차례씩 고통을 동반하면서 오는구나.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도 편하게 오는 계절은 우리에게 감흥을 주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자연은 그래도 조금 늦거나 빠르거나 또는 혹독하거나 부드럽거나 제 철을 보내주고, 우린 제 철을 맞이하게 되는데, 정치는 아니다.


어쩌면 선거는 우리에게 또다른 봄을 맞이하게 해줄 기회이기도 하지만, 겨울로 되돌아가게 할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겨울철 칼바람만큼이나 살벌한 말들이 난무하고, 그 말들로 인해 몸과 마음은 더 추워지고 있는 상황.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 말로는 우리들에게 봄을 선사하겠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는 겨울로 우릴 끌고 가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춥다. 정치판에서 나오는 찬바람들에... 이럴 때 따스한 바람, 부드러운 바람, 우리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줄 바람을 쐬고 싶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 [빅이슈] 269호가 왔다. 표지가 초록바탕에 반려견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탠져린즈'들이 있다.


반려견들, 요즘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지만, 반려견이 되지 못한 개들 역시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반려견들은 귀엽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등등의 말들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함께 지내지만 어느 순간 반려견의 지위를 잃은 개들은 무섭다, 더럽다, 위험하다 등등의 부정적인 말들과 함께 사람들에게서 멀어져야 할, 또는 안락사를 시켜야할 존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반려견과 비반려견의 차이가 무엇일까? 단순히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이유로 나누고 차별을 한다면, 과연 그것이 타당할까? 이번호에서 제주 탠져린즈를 다룬 글에서는 그러한 반려견/비반려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우리 생명이 소중하듯이, 우리 존재가 모두 하나하나 온전한 존재이듯이, 이들 역시 온전한 존재라는 사실, 존중받아야 할 생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여기에 더불어 무거운(?) 주제를 다룬 글들이 있다. (성현석-조용한 궁리: 한니발은 왜 승리를 활용할 줄 몰랐을까?와 녹색빛: 기후 대선을 위한 선택)


무겁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우리에게 봄이 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에 대한 글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오늘만 살지 않고,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현재에 불러오면서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는 삶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눈 앞의 이익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눈 앞의 이익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갖추고 또 지금 당장은 필요없게 여겨질지라도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해야 할 일들은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고, 인류가 오랫동안 생존해 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니발은 왜 승리를 활용할 줄 몰랐을까?'란 글에서 지금 우리에게 다가올 선거를 생각하게 된다. 한니발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미래를 책임질 정치에 대해서, 우리에게 봄을 가져올 정치가 어떤 정치여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기후위기, 또는 기후재앙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기후 면에서는 혹독한 겨울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겨울에서 봄이 오게 하려면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 행동하기 위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후위기 역시 정치와 떨어져 있지 않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도록 나설 정치가 되도록 하는 일, 역시 시민의 몫이다. 그러니 이번 호는 봄을 앞두고 마냥 기다리지만 말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적어도 우리들이 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그래야 봄이 올 수 있다고 하는 듯하다.


뭇생명들에 봄을, 우리 정치에도 봄을, 그래서 우리들 삶에도 봄이 깃들기를... [빅이슈] 269호를 읽으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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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김태연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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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시집이 있을 뿐이다. [입 속의 검은 잎] 


그 밖에 산문집도 나왔고, 전집도 나왔지만, 기형도를 우리에게 다가오게 한 작품은 바로 이 시집이다. 시들이다. 그래서 기형도는 시인이다. 그의 시들이 주는 암울한 분위기, 읽으면서 자꾸만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 듯한 느낌을 받는 그런 시들. 하지만, 그 시들을 통해서 기형도를 잊지 않게 된다.



이 책은 기형도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일들은 기억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소설이라기보다는 기형도에 관해 친구가 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시절과 그 이후의 이야기에 국한되어 전개된다. 당연하다. 연세문학회에서 만난 기형도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형도의 과거가 조금씩 나오기는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만난 기형도 이야기를 한다.


문학회에서 만나 기형도가 죽기 전까지 만나왔고, 함께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그래서 기형도를 실감나게 만날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 기형도, 참 멋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좋은 시인'이 되고자 했다고 한다. 좋은 시인. 유명한도 아니고 훌륭한도 아닌 좋은, 그렇다.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이 얼마나 좋은가. 그는 말 그대로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남들을 배려하는 마음씨를 지닌. 그리고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공부도 너무 잘하는.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에 지니고 있던 깊은 상처. 그 검은 어둠을 몰아내지 못하고, 몸에서는 병을 간직하고 지냈던 사람. 불의의 죽음으로 전설이 된 시인. 그 시인과의 만남과 이별을 이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전설이 된 기형도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회를 살아갔던 살아 있는 인물이었던 기형도를 만나게 해주고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기형도의 시에 대한 열정도 열정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것이 결국 기형도를 좋은 시인이 되고자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며 소설이라 그렇겠지만, 그래도 (양력과 음력을 모두 떠나서) 기형도가 좋아했던 시인인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 날이 2월 16일인데, 기형도가 태어난 날이 2월 16일이라니... 윤동주의 죽음도 20대, 기형도도 20대에 세상을 떴으니, 이런 우연의 일치가... 이 소설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소설적 장치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일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중 인물인 허승구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기형도.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 기형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으면 좋겠다. 기형도라는 사람, 시인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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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무스와 방랑자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랜 지음, 호르스트 렘케 그림, 문성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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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리드 린드그렌. 말괄량이 삐삐로 알려진 사람. 스웨덴 국민작가로 불린다고 하고, 또 우리나라 백희나 작가가 린드그렌상을 받아 알려지기도 했던 작가.


라스무스라는 고아 소년이 고아원을 탈출해 방랑자 오스카를 만나 여러 일들을 겪은 뒤에 오스카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는 내용.


어린 시절 갖게 되는 모험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소설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어서 좋다.


말괄량이 삐삐도 사실 어른들 관점에서 보면 일탈행위를 하는 아이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지니는 호기심, 모험심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지 않는가.


라스무스도 마찬가지다. 고아원에서 입양되기를 바라는데, 자신처럼 머리 숱이 별로 없는 남자아이는 입양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겨우 아홉 살 난 아이.


개구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아이. 라스무스가 고아원을 나가 오스카를 만나 함께 하는 여정에서 오스카에게 애정을 느끼고, 결국 오스카의 집에서 살게 된다는 설정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행복한 결말이리라.


이 과정에서 강도들을 만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읽으면서 얼마나 손에 땀을 쥐겠는가. 그렇게 아이들은 라스무스를 통해서 집을 나가는 간접 경험을 하고, 또 라스무스를 통해서 자신들이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모험을 하게 된다.


문학이 아이들에게 주는 역할은 바로 이러한 대리 만족이다.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 해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의 폭을 넓혀가는 일.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아홉 살짜리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심성을 잃지 않는 라스무스와 돈 없이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방랑 생활을 하는 오스카지만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갈 때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자세를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뭐, 책을 읽으면서 굳이 윤리니 도덕이니 철학이니 궁리할 필요 없다. 재미 있게 읽으면 된다. 재이 있게 읽으면서 자연스레 마음 한 구석에 인물을 닮아가려는 태도가 깃들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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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좋을 때 그때를 있게 만든 존재를 잊기 쉽다. 그냥 지금에 취해서 마냥 그랬다는 듯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좋음에는 좋지 않음이 반드시 있고, 좋지 않음에는 좋음이 따를 수 있다.

 

  활짝 핀 꽃을 보면서 그 꽃이 피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보태준 존재들이 있기에 꽃이 필 수 있다는 사실.

 

  마찬가지로 내 성공은 나만의 성공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 그것이 비록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수많은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지금 내 성공이 있게 된 것이다.

 

그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지금 막 피어난 꽃에게 시인은 이렇게 당부한다.

 

 꽃이 피는 너에게

 

사랑의 시체가 말했다

 

가장 잘 자란 나무 밑에는

가장 잘 썩은 시체가 누워 있다고

 

가장 큰 사랑의 눈에는

가장 깊은 슬픔의 눈동자가 있다고

 

봄나무에게서 꽃이 피는 너에게

 

김수복, 외박, 창비. 2012년. 14쪽.

 

성공이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이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래, 지금 화려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건 너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들 덕이라고... 그 점을 명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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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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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유정 하면 1930년대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소설가고, 춘천에 가면 김유정문학관도 있으니, 김유정 문학상이 당연히 있을텐데, 이번 작품집으로 김유정 문학상을 처음 만났다. 한때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꼬박꼬박 사서 읽은 적도 있었으니, 이상과 김유정이 구인회 회원이었고, 이상이 김유정이라는 소설도 썼으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총 7편의 소설이 실렸다. 수상작 1편과 후보작 6편. 수상작은 한강이 쓴 '작별'이다. 마치 카프카가 쓴 '변신'을 연상시키는 작품.


첫 시작에서 어, 변신이네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13쪽) 자고 일어났더니 그레고리 잠자가 벌레가 되어 있었다와 비슷하다.


그런데 장소와 변신한 대상이 다르다. 우선 카프카 작품에서는 집 안, 자기 방에서 자다 일어났고, 시간은 아침이다. 그리고 벌레로 변했다. 한강 작품에서는집 밖, 밤이고, 눈사람이 되었다. 


집 안과 집 밖은 단지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상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집 안에서 자신들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설정은 이 대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그래서 결국 방 안에 가두거나 또는 죽어서 내보내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즉, 벌레가 된 존재가 작별하는 방식은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다.


한강 소설은 이와 반대다. 집 밖에서 변신했다. 이는 작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로 집 안으로 가야 한다. 그것도 눈사람으로 변햇으니, 집 안에 있기는 힘들다. 눈사람은 소멸하는 존재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 밖에 있어야 하는 존재. 그러하기에 굳이 내몰 필요가 없다. 작별은 스스로,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하게 된다.


비슷한 방식의 변신이지만 작별하는 방식에서는, 또 변신한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상반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소설도 그런 식으로 전개가 된다. 


갑자기 눈사람이 되었다는 설정. 눈사람은 녹을 수밖에 없다. 즉, 소멸할 수밖에 없는,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변신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있는 사람과 작별하는가를 살필 수가 있다.


카프카 소설이 위태위태하다면, 이 소설은 비슷한 변신임에도 불구하고 따스하다. 우리는 눈사람에서 차가움을 느끼기보다는 따스하고 포근함을 느끼지 않는가. 서서히 녹아가는 존재.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알면 준비를 하고 작별을 하게 된다.


어느 순간 예기치 않게 작별하는 모습이 아니라 내 의지에 의해서 그동안 사랑했던 사람들과 작별하는 모습, 그런 모습을 이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하여 단순한 변신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을 알게 된 사람이 주변 사람들과 아름답게 작별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소설이라고 하면 된다.


만나면 헤어지게 마련, 생명체는 어느 순간이 되면 생명이 꺼질텐데, 그 죽음의 순간, 함께 했던 존재들과 어떻게 작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래서 죽음을, 변신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읽으면서 마음은 따뜻해진다. 


역시 한강은 환상적인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조금씩 끼워넣어, 등장인물의 상황을 더욱 잘 드러나게 하고 있는데, 가령 이런 부분, 


'... 그녀는 뉴스와 관련된 꿈을 자주 꾸었다. 노동절 시위 중에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노동자의 시신을 경찰이 유족 동의 없이 부검하겠다고 발표한 날 밤에는 

... 특히 지난 삼 년 동안은 죽은 아이들의 꿈을 되풀이해 꾸었다. 겹겹이 흰 천으로 감싼 수백 명의 아기들의 시신을 차례로 종이 상자에 담으며 그녀는 벌벌 떨었다...'(57쪽)


이 서술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작별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런 작별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이 사람들과 관련이 없는 인물이 꾸는 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눈사람으로의 변신은 갑작스런 작별이 아니라 작별할 시간을 주는 작가의 설정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할 시간은 있으니... 그래서 더 애절하고 애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작별은 이러해야 한다고. 이런 장면들이 마음에 찡하니 남아 있다.


수상작인 한강 소설 말고도 강화길의 '손', 김혜진의 '동네 사람', 이승우의 '소돔의 하룻밤', 정이현의 '언니'란 소설에서는 견고한 벽을 통해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느낀다.


이방인이라는 말을 해야 하나, 방외인이라는 말을 해야 하나, 집단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속에 끼지 못하고 있는 존재들의 모습.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 모습.


강화길 소설에서는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 이 소설에서 말하는 손은 흔히 귀신 또는 악귀라고 할 수 있다. 손 없는 날이라고, 이 날이 행사하기 좋은 날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손'인데... 마을 공동체에서 외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시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중첩되어 누가 '손'일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김혜진 소설에서는 성소수자가 동네에서 배척당하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고, 마을 공동체의 벽에 가로막힌 외부에서 이사온 사람들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어떻게 읽든 자기들끼리 꽁꽁 엮여 있는 공동체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 이야기다. 그런 삶이 얼마나 힘들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다.


이승우의 소설 역시 성경에 나오는 롯의 이야기에서 빌려와 다양한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는데, 결국 롯이란 인물이 이방인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정이현의 소설에서는 학벌로 지칭되는 벽과 대학원생을 부려먹는 학계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인회라는 인물을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네 소설은 서로 다르지만 견고한 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밀려나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들이다. 수상작인 한강 소설이 작별을 하면서도 다른 존재들을 끌어안고 있다면, 이 네 소설에서는 다른 존재들을 밀어내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니, 우린 다른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를 질문하는 소설들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처음 만난 김유정 문학상 작품집이 좋아서 다른 수상작들도 찾아보려는 마음을 지니게 하고 있으니... 이 책은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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