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의 역사 북멘토 그래픽노블 톡 1
리쿤우 지음, 김택규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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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로 보는 중국 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중국 현대사 중에서 일제의 침략을 받고 희생당한 사람들이 많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벌이는 영토 분쟁이 끝나지 않았고, 일본 역시 중국에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을 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역사가 중요하다. 가해자의 역사와 피해자의 역사가 같을 수가 없겠지만, 두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고, 또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미래로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을 과거를 묻어버리거나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는 일이다. 이 인정에서 사과도 이루어질 수 있고, 용서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과거를 현재로 끌어오지 않고 감추려고만 하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과거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지금 일본이 그렇다. 일본 시민들 가운데도 과거를 밝히고 사과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일본에서 정치를 한다고 하는, 소위 지배층은 과거를 자신의 입맛대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에게 진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 가해자의 역사, 그들은 피해자의 역사를 감추려고만 한다. 그러니 사과도 없다. 사과가 없으니 용서를 받을 수가 없다. 언제고 과거 역사가 문제를 일으키고 미래로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발목을 잡게 된다.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 쿤밍 폭격 사건에 가족을 잃은 장인을 둔 주인공. 우연히 골동품 점에서 일본군이 사용했음직한 그림을 발견한다. 그리고 골동품 주인에게서 일본인이 찍은 당시의 사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그 사진첩 사진을 카메라에 담아온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보게 되는데...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한 일들을 그들이 직접 사진으로 남겨놓았다. 그리고 그 사진을 토대로 작가는 그림으로 그려 역사로 남겨 놓는다.


무어라 변명하기 힘든, 가해자들의 역사를 피해자가 자신의 역사로 끌어온다.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가해자의 거짓을 그들이 만든 자료로 반박하기 위해.


이 만화는 그래서 중국인의 관점으로 본 일제의 침략 행위지만, 우리에게 낯설지가 않다. 중국만큼이나, 어쩌면 중국보다도 더 일제에 의해 피해를 본 나라가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은 피해에 대해서 일본은 여전히 모르쇠를 하고 있으니...


최근에 일어난 중일 영토분쟁으로 작가는 이 만화를 그릴 생각을 했다는데, 자꾸만 과거를 부정하는 일본에 너희들이 이렇게 기록을 남겼어, 이게 너희들이 한 짓이야라고 그들이 남긴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단지 일본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과거를 기억하고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만화에는 그림만큼이나 사진이 많다. 당시 일본인이 찍은 사진이 그래도 책에 나온다. 그래서 이 만화는 허구이기도 하면서 사실이기도 하다. 사실에 기반해서 상상력을 첨가해 그린 만화다. 


중국에서는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담은 만화, 또 우리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 우리 역시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담고 있는 만화.


내 가족의 역사라고 하지만, 중국어로는 '상흔'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이 받은 상처... 잊지 못할 상처. 그래서 내 가족의 역사는 중국 현대사의 비극이기도 하다. 개인의 역사가 나라의 역사가 된다. 


단지 중국만이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낸 출판사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배경으로 책도 내었다고 하니... 역사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가 없음을, 이런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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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지 않다 - 90년대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
박원익.조윤호 지음 / 지와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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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이 보수화되었는지, 여전히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왕설래하고 있다. 그런데도 딱히 이렇다 하게 마음에 드는 주장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를 딱 집어서 이야기하면 세대론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세대론은 세대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그러므로 행동도 다르다고 전제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이 책의 저자들은 2016년 촛불 집회를 예로 들고 있다. 이 집회에 세대론이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촛불을 든 사람들이 세대에 따라 다를까? 아니다. 이들은 국정농단에 분노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공감대. 그래서 그들은 광장에 모였다. 하나의 가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 목표를 위해서 모였다. 그렇다.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모이는 사람들에게 세대론을 들먹일 필요가 없다.


이 책에서는 각 세대들이 지닌 특징이 있고, 그 다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이 전부인 양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오히려 함께 사회를 바꿨던 공통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모색하자고 한다. 여기에 바로 우리들의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사회야 하고 포기하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정치변혁을 이끌어낸 경험이 있으므로, 그것을 통해서 더 나은 사회로 함께 나아가면 세대론이 차지할 자리는 없어진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또 특정 세대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그 저변에 있는 구조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왜 20대들이 분노할까? 그들의 분노는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서일까? 그렇지 않다. 20대가 행복한 사회는 다른 세대들도 행복한 사회가 된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세대들도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젠더 갈등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사회가 불평등해질수록 줄어든 자원을 놓고 첨예하게 갈등을 벌이는 양상이 나타난다. 최근 우리 사회에 민감한 문제로 떠오른 젠더갈등은 이런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젠더갈등은 불평등 사회라는 배경에서 탄생했고, 20대들을 중심으로 과열되었다. 우리 사회의 진보적 담론들이 한국 사회, 특히 20대들이 겪고 있는 불공정과 불평등에 집중하지 못하고, 성평등의 문제를 '남성이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는 방식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73쪽)


이렇게 근본적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에 접근하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세대, 젠더 갈등으로 몰아가지 말고, 20대들이 또는 각 세대들이 의자뺏기를 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건 즉, '더 괜찮은 일자리를 노동시장의 표준으로 만들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의 책임을 제대로 묻는 일이다'(102쪽)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세대 갈등, 노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청년 문제와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청년 문제와 노인 문제는 함께 갈 수밖에 없다. 


노인빈곤 문제는 청년빈곤 문제와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청년기의 저소득이 중·장년기의 낮은 저축으로 이어지고 노인빈곤이라는 악순환 구조로 연결되기 때문이다.(203쪽)


결국 청년문제는 노인문제와 떨어져 있지 않다. 함께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다. 그러니 20대들을 다른 세대로 치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한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들 20대를 달라진 세대라고 하는데, 그들의 특징을 이 책 각 부분을 연결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책 제목이 '공정하지 않다'다.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돈도 실력인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바닥은 놔두고, 천장만 없애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자신도 지키지 못할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개인적인 것에 올바름을 묻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이 제목들을 보면 청년 세대를 이해하고, 그들이 무엇에 분노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의 1부는 기성세대들이 읽고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 출발점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


2부는 청년들이 읽으면 좋을 내용이다.


누가 더 불쌍한 피해자인지 경쟁하지 말자. 실제 세계에 집중하자.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하지 말자. 웃음이야말로 강력한 무기임을 명심하자. 다른 점에 주목하기보다 같은 점을 발견하자.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자.


이제 시대가 변했다. 변한 시대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과거에 진보였다고 지금도 진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청년 세대들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이야기해도 안 된다. 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생각, 행동이 있다.


또한 세대가 달라도 공통으로 원하는 삶이 있다. 바로 내일이 보이는 삶, 희망이 있는 삶이다.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런 방향에서는 세대 갈등, 젠더 갈등이 일어날 수 없다.


따로 또 같이 갈 수 있으니까... 그야말로 그런 삶을 원하는 것에서는 '대동소이大同小異'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서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되어야 한다. 그 점을 너무도 잘 보여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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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에는 '차茶'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커피를 많이 마시고, 커피숍을 찾기는 쉬운데, 찻집을 찾기는 어려운 게 현실.


  소수의 사람만이 차를 마신다고 생각했는데, 또 차를 마시기는 어렵다고 (절차, 과정 등등이) 생각했는데, 이번 호를 읽으니 차를 마시는 사람도, 또 다양한 차를 판매하는 곳도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이제는 취향이 다변화되었고, 자신의 취향을 살려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어쩌다 카페, 커피숍이 이리 늘었을까? 음료 시장도 이렇게 단일화되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음을, 이제는 남들이 한다고 우~ 하고 몰려가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었음을 알게 해주는 이번 호였다.


차는 빨리 마실 수가 없다. 우선 물을 끓이고 우러나는 시간이 있다. 커피도 마찬가지겠지만 후르륵 마셔버리면 차 맛을 알 수가 없다.


적당한 온도에서, 적당한 양으로 천천히 우려낸 다음 맛을 음미하면서 마시는 음료가 바로 차다. 그런 시간, 기다림의 시간과 함께 하는 음료, 차.


(그렇다고 커피가 빨리빨리의 대명사라는 말은 아니다. 커피 역시 적당한 온도, 적당한 시간과 같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여기서는 차에 대한 이야기니, 커피와 대조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따라서 차를 마실 때는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름을, 빨리를 잠시 내려놓고 천천히, 여유로움을 내 곁으로 가져온다. 그렇데 우리 삶에서 누리는 기다림, 그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대상, 그것이 바로 차다.


삶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여러 과정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여러 과정, 여러 존재들이 필요하다. 


그것을 뭉뚱그려 그냥 하나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 나를 들여다보믄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빨리빨리에서 탈피하고 있지 않은가.


초고속성장이라는 말 속에는 빨리빨리가 숨어 있었는데, 성장 속도가 느려지는 만큼, 우리 삶에도 여유로움이 생겼으면 좋겠다.


[빅이슈]를 읽는 시간이 내게는 바로 그런 빠름에서 벗어나 여유로움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이번 호를 받아보았을 때 커버 사진이 A와 B로 나뉘었다. 


아마도 내용은 같겠지만 표지 사진이 다르다.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위에 있는 표지 책만 나와 있다.


내게 온 이 사진이 있는 빅이슈는 검색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을 첨부한다. 적어도 빅이슈를 위해서 표지 모델에 되어준 인물에 대한 예의는 그 책을 다룰 때 함께 언급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빅이슈에 표지모델이 되어 준다는 것 자체도 삶에 여유로움을 가졌다는 이야기 아닐까.


그리고 이번 4월에는 고 보리 작가를 추모하는 글이 있다.


[빅이슈]에 유명인이 표지 모델이 되는 계기를 마련한 작가라고 한다. 지금은 함께 할 수 없지만, 빅이슈는 그 고마음을 잊지 않고 4월에는 그 작가를 언급한다.


이 역시 빨리빨리에서 벗어난, 고마운 사람, 그리운 사람을 잊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 아닐까.


그래, 차를 마시는 행위처럼, 기다릴 줄도 알아야겠다. 기다림의 즐거움도 느껴야겠다.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말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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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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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야기가 많은 곳은? 이런 질문을 하면 '학교'라는 답도 꽤 많이 나온다. 온갖 괴담들이 유포되는 곳이 바로 학교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예전 학교들은 대부분 하나 이상의 괴담들을 지니고 있었는데, 학교를 세울 때 용꼬리를 잘라서 행사만 하려고 하면 비가 온다는 둥, 공동묘지에 학교를 세워 귀신들이 나온다는 둥, 화장실에는 귀신이 살고 있어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를 물어본다는 둥, 졸업을 하지 못한 귀신이 학교에 계속 다닌다는 둥... 참으로 많은 귀신이야기들이 학교에서 흘러나온다.


그렇다고 실체가 밝혀지지는 않는다. 아니 귀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실체를 밝힐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귀신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지도 모른다. 실체가 밝혀지지 않으면 실체가 밝혀질 때까지는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으므로.


영화로 만들어지는 괴담들은 살벌하다.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섬뜩한 느낌을 주고, 그만큼 학교라는 공간이 학생들에게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해준다. 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을 귀신이야기의 소재로 삼아도 학교는 계속 존재한다. 왜 그럴까?


이렇게 견딜 수 없는 학교라고 하는 데도 학교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할까? 어쩌면 학교라는 공간은 살벌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과거와 현재의 고통을 넘어서서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곳이기 때문 아닐까.


각종 괴담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더 많은 희망이 있는 곳, 정세랑이 쓴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귀신의 실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 그들이 겪는 어려움들을 이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 소소한 연애이야기부터 사고를 일으키는 학생들까지, 여기에 교사들이 겪는 일들까지 소설이 다루고 있는데...


다른 영적 존재(이를 귀신이라 지칭하자)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안은영, 학교에 보건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 사이에 떠돌아 다니는 에로에로 에너지가 변한 귀신들을 보기도 하고, 다른 귀신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것들을 물리치는 일이 안은영이 하는 일. 그래서 안은영은 엉뚱하지만 아이들이 잘 지낼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존재다.


저마다 지고 있는 어려움들이 있는데, 이 어려움을 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그 존재는 알게모르게 내 어려움을 다독거려 준다. 그것만으로도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안은영은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 또 사람들에게 나서지 않고도 위안을 주는 존재가 된다. 그런 과정을 아주 유쾌하게 펼치고 있다.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각 장들이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읽다보면 하나하나가 연결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쪽부터 읽어도 좋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려면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는 편이 좋겠다. 물론 중간에 있는 소설들은 순서를 바꿔도 별 문제가 없다. 


마지막 부분에 실린 소설이 이 소설을 결말짓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는 안은영이 자신의 어려움도 해결하게 된다는 행복한 결말이라서 소설을 덮을 때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에게서 숭고함을 느끼고, 그들의 삶에서 비장미를 느끼지만, 그렇게 살기는 힘들다고, 그것은 소수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여기게 하는 글들이 많은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비장미를 걷어내고 발랄, 유쾌, 상쾌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읽으면서 즐겁다. 귀신이 나오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된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서 귀신들이 지닌 비극성을 만나게도 된다. 비록 무겁게는 아니지만, 우리가 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소설 속에서도 귀신들은 무언가가 남아 있기에 안은영의 눈에 보인다. 그들은 아직 소멸되지 않았다.


즉 기가 흩어지지 않았다. 무언가 더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 그것을 보고 해결해주는 역할도 안은영은 한다. 물론 그냥 귀신을 등장시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소설은 유쾌하다. 귀신이라고 무겁지 않다. 또 해결이 된다. 그래서 더 유쾌하다. 이런 일들을 삶에 적용해 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고 보듬어주는 사람들, 그냥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게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음을 알게 해주는 소설이다.


우리는 홀로가 아님을,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주는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사람이 있음을, 이 소설은 생각하게 한다.


그래, 그런 사람들은 분명 있다. 또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알게모르게 도움이 되는 사람. 그 사람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학교는 여전히 귀신이야기가 성행하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학교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여전히 학교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학교에 보건교사 안은영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또 어려움에 처해 있는 학생들을 보듬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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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일 민족이라는 말이 옛날 말이 되어가고 있다. 다문화란 말이 자주 들리고, 이제는 어디에서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냥 외국인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이 된 사람들.


  그러니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더 이상 쓸 필요가 없다. 하긴 단일민족이라는 말도 엄밀하게 따져보면 우리나라 과거에도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음이 역사적 사실이니...


  하지만 아직도 단일민족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물론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핏줄을 의미하지만, 어디 민족의 개념이 핏줄로만 규정되는 개념이던가.


  오래간만에 재미 있는 시집을 만났다. 이동순이 쓴 [신종족]. 그렇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들이 현대에 들어서 수도 없이 생겼다. 한때 이들을 신인류라고 일컫기도 했지만, 신인류라는 말로 뭉떵그릴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은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


신인류를 좀더 세분하면 바로 이 시집에 나오는 '신종족'들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신종족'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었다.


얼마나 많은 신종족이 있는지, 이 시집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읽으면서 나는 이 시집에 나온 어느 종족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하면, 당신은 또다른 종족이다.


이렇게 많은 종족들이 살아가는 사회, 다문화 사회를 넘어 다민족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다민족이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다종족 사회라고 하면 되겠다. 


이 시집을 읽으며 다양한 종족들을 만나보자. 그리고 이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명심하자. 어떤 종족들이 나오는지, 이 종족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한번 시험해 봐도 좋을 듯하다.


'~족'이라는 제목을 달지 않은 시가 '혼족 스타일 (이 시 제목에는 혼족이 들어가니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 압구정 풍경(한때 오렌지족들의 삶터였던), 이불 밖은 위험해, 소확행' 이렇게 4개의 시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혼족, 혼밥족, 혼술족, 포비아족, 솔로족, 박쥐족, 빨대족, 니트족, 코쿤족, 캥거루족, 싱크족, 딩펫족, 골드앤트족, 뷰니멀족, 딩크족, 웰빈족, 거품족, 키덜트족, 홈루덴스족, 히키코모리족, 오팔족, 미스터리족, 프리터족(두 번 나온다), 갓수족, 반디족, 김포족, 베짱이족, 메뚜기족, 유턴족, 노노족, 점오배족, 둥지족, 면창족, 새벽닭족, 눈팅족, 몰카족, 파라치족, 악플족, 철퍼덕족, 된장녀족, 고스족, 폭주족, 좀비족, 오렌지족, 댓글족, 먹튀족, 스킨헤드족, 스몸비족, 쉼포족, 통크족, 에스컬레이터족, 엄지족, 쿼터족, 펌킨족, 귀차니스트족, 줌마렐라족, 한류족


에고, 족들도 만다. 이렇게 많은 종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 다양성이 판치는 사회, 이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사회다. 이 많은 종족들이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다. 이렇게 다양한 종족들은 함께 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다양성의 사회라 할 수 있다. 각자 따로가 아니라 따로 또 같이...


그 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시가 이 시집 첫번째에 실린 시다. 바로 '혼족'


  혼족


세상은 점점

고립이고 단절이다

어머니 뱃속에서도 홀로였고

살다가 죽을 때도 혼자다

가족 학교 직장

사회 조직들과 공동체 많고도 많지만

모두가 혼자 아닌 척

잠시 모여 있을 뿐

뿔뿔이 흩어져 혼자가 된다

혼자 살면서도

외로움 타지 않고

씩씩하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혼족을 본다

혼자 노는 혼놀족

혼자 밥 먹는 혼밥족

혼자 술 마시는 혼술족

혼자 설 명절 보내는 혼설족

혼자 캥핑하는 혼캠족

혼자 여행 다니는 혼여족

혼자 공연 보러 가는 혼공족

혼자 카페에서 책 읽는 혼독족

혼자 커피 마시는 혼커족

혼자 호텔에 머무는 혼텔족

혼자 맥주 마시는 혼맥족

혼자 영화 보는 혼영족

만국의 혼족들이여

단결하라


이동순, 신종족. 시와에세이, 2021년. 13-14쪽.  


자, 이 많은 혼족들이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라고 한다. 맑스의 공산당 선언을 빌려온 마지막 말이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이 다양한 종족들도 함께 살아가야 함을, 혼족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따로 살아가지만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니 따로 또 같이, 그런 삶을 이 종족들이 실천하는 사회, 그런 우리 사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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