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없는 미래로 - 출구는 자연에너지다
이이다 데쓰나리 지음, 한승동.양은숙 옮김 / 도요새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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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에 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는 중. 한 때의 관심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생각으로 원자력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원자력 전문가처럼 과학에 정통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원자력에 대해서는 우리의 상식 수준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수준에서 생각하면 된다.


그 중의 하나가 원자력이 왜 대도시에 건설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원자력이 청정에너지 발전이고, 안전한 운영을 할 수 있는 시설이라면 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고 필요로 하는 대도시에 건설하지 않는가라는 질문. 여기에 대한 대답은 뻔하다.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오지에 건설하고 있고, 먼 거리에 있는 대도시에 에너지를 수송하기 위해 다른 부대시설이 또 필요하다는 답이 나온다.


한 때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폐기물 저장소를 건설하는 문제로, 핵폐기물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님비주의에 빠진 사람들이니, 지역이기주의니, 다른 사람의 선동에 넘어간 순진한 사람들이니 하는 말들이 있었다. 이 때 어느 지식인이(누군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원자력 폐기물 저장소가 안전하다고 하면 서울 한 복판에다 건설해라라고 한 적이 있었다. 다들 미친 소리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는데... 안전하다면 왜 서울은 안 되는지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겠지만.


이제는 원자력발전에 대해서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반대가 기정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대안을 제시하지 못 하더라도 우리 삶을 위협하는 발전은 하지 않아야 하지만 말이다. 원전 반대의 역사도 40년이 넘으니, 이제는 어느 정도 대안이 제시되고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원전에 대한 대안은 이미 어느 정도 나와 있는 편이라고 해야 한다.


이웃 일본에서도 원전 말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그런 결과가 이번에 책으로 나왔다. 이미 실천하고 있고, 앞으로 실천해야 할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고 있어서, 원전에 대한 대안이 뭐냐 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야라고 제시해줄 수 있는 좋은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제목은 “원전 없는 미래로”라고 하지만 작은 제목이 “출구는 자연에너지다”이다. 즉 자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에너지로 발전을 하면 우리에게도 지구에게도 모두 좋은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연에너지, 생소하다면 생소한 개념이지만, 이는 오래된 미래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가 사용하던 에너지다. 이를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연관지어 더욱 발전시킨 것이 자연에너지 발전이다.


태양력, 풍력, 지열 등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원천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방법. 이미 몇 십년 해오고 있으며, 또 유럽이나 미국 쪽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많기에 충분히 실현가능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발전을 부안 쪽에서 하고 있다고 들었고, 상당히 성공적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만큼 자연에너지는 앞으로 우리가 발전시켜나가야 할 에너지이고,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자연에너지에 대한 오해에 대한 반론으로 시작하여, 자연에너지의 역사, 그리고 일본에서의 실천 등을 자세하게 담고 있어,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각 정당들의 강령에 자연에너지에 대한 정책이 들어가게 압력을 넣어야 한다. 


다른 나라처럼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태양광 발전을 의무로 한다든지(서울에 있는 고층빌딩들에 태양광 시설을 한다면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주택을 지을 때는 단열에 신경을 써서, 스웨덴처럼 난방을 하지 않아도 겨울에도 견딜 수 있게 한다든지 하는 방안을 지역 조례로 제정해서 실시한다면, 동시에 하지 않아도 자연에너지를 이용하는 마을들이 점점 늘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너지는 결코 거대 산업이 되면 안 된다. 이는 지역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에서부터 시작한 자연에너지 사업은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렇게 지역에서부터 시작한 자연에너지 발전이 점점 확산되는 구조로 가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원자력에 의존하는 모습은 점차 사라지게 되고, 환경도 점점 좋아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생활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 책의 말미에 있듯이 우리는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지 않았던가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에너지 효율만 높여도 우리들이 희생하지 않고도 더 적은 에너지로 더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는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원자력 르네상스라고 하는 이 시대, 다른 나라들은 원자력 르네상스를 포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정부 스스로 포기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그렇다면 정부가 포기할 수 있게, 다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 제시 방법은 자연에너지에 있고, 자연에너지 사업은 기존 기득권을 가진 사업체들과 꼭 상반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기존 업체들과도 충분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함께 한다면 자연에너지로 우리의 생활을 영위하는 일은 먼 나라 일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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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
강은주 지음 / 아카이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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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2011년. 세상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사고가 일어난 해. 안전하다고 말하던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아니면 자신의 삶터에서 쫓겨나야 했던 해. 그리고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진행이 되고 있는 문제가 발생된 해.

 

체르노빌, 후쿠시마. 아마도 이 도시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구상 가장 큰 재해 중의 하나로.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재해 중의 하나로 말이다.

 

체르노빌은 사고가 발생한 지 26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진행 중이다. 사람들은 살 수 없으며, 원인 모를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원자력 발전소는 아직도 제대로 폐쇄되지 않았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여기에 2011년 겨우 1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체르노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의 일처럼 취급했다. 그냥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오히려 우리나라 원자력을 세계에 수출할 절호의 기회라고 떠들어대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멈추거나 앞으로 어떻게 폐쇄할 것인지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도 건설하겠다고, 지금의 23기도 부족해서 더 짓는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생각들을 지니고 있는지. 이번 총선에서도 원자력발전의 문제는 강하게 제기되지 못했고, 원자력발전 폐기를 들고 나왔던 녹색당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원자력 발전이 거대한 집단들의 연합으로 작은 힘으로는 막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각인시켰다고 할 수 있다.

 

체르노빌에서도 후쿠시마에서도 사고를 예측하지는 못했다. 안전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도 사고가 났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3개 원자력 발전소 중 하나라도 큰 사고가 난다면 이는 거대한 재앙으로 우리에게 다가올텐데...여기에 원자력발전소를 더 짓겠다니.

 

체르노빌, 후쿠시마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이 책에 나와 있다. 결국 원자력 발전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고, 발전 중에도, 또 사고가 난 뒤에 더 큰 희생을 당하는 존재들은 평소에도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이 책 곳곳에서 알 수 있다.

 

우리는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을 때의 피해만을 생각하기 쉽다.

 

폭발했을 때의 피해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고, 그러한 폭발 사고는 몇 십년이 지나도, 아니 몇 백년이 지나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뒷부분에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굳이 폭발 사고가 아니더라도 원자력발전소는 건설과정부터 작동 중일 때도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삶터를 잃어야 하는 사람들에서부터, 한 마을 공동체가 얼마나 철저하게 망가지는지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으며, 원자력 발전소 인근 마을에서는 송전탑 문제로 또한 자신들의 생활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로 인해 마을이 파괴되고, 또한 보관한 방법도 별로 없어 먼 미래 세대에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발명한 오만한 기술이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현실. 그래서 대안이 뭐냐라는 말을 하기 전에, 이 기술은 우리가 사용해서는 안되는 기술이라는 인식을 먼저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적정기술과는 거리가 먼 기술이기에 하루바삐 다른 기술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생활방식을 되돌아보고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에는 원자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로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단다. 이 내용을 읽는 순간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원령공주"가 생각났다. 인간이 만든 무기 총으로 인간이 자연의 신을 살해하는 순간, 자연이 처절히 죽어가는 장면. 거기에서 멧돼지 지도자가 했던 말. 점점 자신의 종족들이 작아지고 있다는. 인간의 힘이 늘어날수록 자연의 힘은 약해지고, 자연의 정복이 가속화될수록 인간도 역시 제대로 살기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이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데... 총이 아니라 원자력은 그야말로 핵임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영화의 끝장면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데...

 

원자력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공존, 아니 생존을 위해서는 폐기되어야 할 기술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나 할까.

 

무지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원자력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 실상을.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원자력을 핵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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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멈춰! - 보살핌 우정 배움의 공동체 평화샘 프로젝트 2
문재현 외 지음 / 살림터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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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뜨거운 화두다.

 

학교를 보내면서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학원으로 아이들을 보내기도 하고, 또 학교 폭력이 심각하다고 경찰들까지 배치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내 아이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 있기도 하고, 청소년기엔 다들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배움에서도 생활교육에서도 학교에 그리 만족하지 않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학교는 보낸다. 아니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자신들의 길을 스스로 찾는 아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다수의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고도 행동도 학교에 규정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 존재인가? 자아실현을 하게 하는 장소이어야 하는데,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알려주지 않는 공간이 학교이다. 학교는 지식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지식 습득에 뒤처지면 생활도 뒤처지게 된다. 자연스레 그런 학생들은 따돌림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집단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결국 성적, 성적 하는 학교가 폭력을 조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폭력은 반복될 뿐만이 아니라 확대재생산된다.

 

청소년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폭력의 문제는 너무 심각하다. 단순한 한 때의 다툼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가해자도 역시 정신적으로, 삶적으로 피폐해진다.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은 교사들이 평화샘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천결과를 책으로 내었다. 북유럽의 실천을 받아들이고,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고쳐서 폭력을 없애는 나름의 지침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지침서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하나하나 따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폭력의 반대가 평화라는 사실, 보살핌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보살핌이 학교에서 살아날 수 있음을 자신들의 실천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실천 중의 하나인 폭력에 대처하는 4대 규칙을 보자.

 

1. 우리는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2. 우리는 괴롭힘 당하는 친구들을 도울 것이다.

3. 우리는 혼자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할 것이다.

4. 만약 누군가가 괴롭힘당하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학교나 집의 어른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누구나 실천하기는 힘든 이 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멈춰!"를 도입한다. 괴롭힘이 있을 때 피해자가, 또는 주변의 친구들이 멈춰라고 말하고, 회의를 소집한다. 회의과정에서 역할극을 하고, 이를 다른 경우로까지 적용하여 일반화한다. 그래서 폭력을 단지 방지하는 차원을 넘어서 평화를 만드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가게 한다.

 

이 제도가 정착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교사부터 선언해야 한다는 사실, 본인부터 체벌을 하지 않겠다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존중하겠다는, 폭력에는 끝까지 책임지고 대처하겠다는 그런 선언을 해야 한다고 한다.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교사가 하고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형성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평화가 깃들도록 하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아니, 반드시 교실에 평화가 깃들도록 해야 한다.

 

남학생의 사례에서 여학생의 사례, 직접적인 폭력에서 간접적인 폭력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들고, 그 해결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학교 폭력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교사들이 꼼꼼이 이 책을 읽고 대처한다면 학교 폭력이 많이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 책이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풀어가기에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그 수준에 맞는 해결방안을 더 고민해야 한다는데 있다. 담임이 거의 모든 시간을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초등학교와 담임이라고 해도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중,고등학교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러한 실천사례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평화샘들이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럴텐데, 중,고등학교에서도 이러한 실천사례들을 정리해서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에 대처하기보다는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평화로운 학급, 보살핌이 있는 학급, 학교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럼, 우리 아이들에게서 우리는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다. 다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학습에 시간을 쫓기는 아이들에게서는 평화는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자신을 차분히 돌아보고, 남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면 폭력은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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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인류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담으로 세상 읽기 지식여행자 14
요네하라 마리 지음, 한승동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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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책, 이게 두 번째 책이다. 첫번째 책은 발명마니아.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의 자유로의 사고와 거침없는 표현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생각과 거침없는 표현이 잘 드러나고 있다. 또한 박학다식하다. 정말로 많이 안다. 아는 것을 우리에게 쉽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파사현정(破邪顯正) : 그릇된 것을 깨뜨려 바른 것을 드러낸다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 교수신문에 한 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를 싣고 있다. 이 파사현정이란 말은 2011년을 대변한다고 하는 사자성어다.

이 말의 뜻을 풀이해주지 않으면 '아, 이런 뜻이구나'하고 알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한자어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한글이 이미 우리 말의 중심이 된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한 나라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꼭 이렇게 한자어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식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우리나라에 속담이 얼마나 많은데... 그 속담들 중에서 한 해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을 골라 발표를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얼마전에 "미주알 고주알 우리말 속담"이란 책이 우리말 속담에 대해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삶과 관련지어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 책을 읽으며 참 좋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이번에 읽은 이 책은 한 나라의 문화, 생활을 넘어서 세계적인 공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속담이라는 것이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골고루 퍼져 있으며 또한 민족이라는 특수성이 인류라는 보편성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우물 안 개구리를 넘어

 

속담이 한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비슷하다면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 속담을 아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속담은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우리의 생각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 있는데, 이 도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도구라면 속담에 대해 안다는 사실은, 이미 우물을 벗어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속담을 아이들이나 쓰는 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이 책의 마지막 속담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어 이미 시작을 했다면 반은 성공한 것이나 진배없다고 시작의 중요성을 알리는 말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지만, 그리고 이 시작을 끝까지 밀고 나갈 노력의 중요성도 우리나라의 '공든 탑이 무너지랴'처럼 세계적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고, 또 그것을 밀고 나가 제대로 된 끝마무리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세계 어디서나 인종을 불문하고, 장소를 불문하고 비슷하다는 생각. 그래서 우리는 인류라는 동료애를 지니고, 인간애를 지니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

 

이 책에 어울리는 말이다. 아니 보기 좋은 떡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러나 구성면에서 참 재미있게 되어 있다. 속담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나오지 않는다. 속담을 작은 제목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각 속담의 시작은 재미있는 이야기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이야기와 속담이 연결이 되고, 각 나라의 속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한다. 보기 좋은 떡이라고 하기보다는 읽기 좋은 책이 이해하기도 쉽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재미도 있고, 읽으면서 생각도 할 수 있고, 여기에 사회문제까지 건드려주고 있으니, 속담을 통해 두 마리 새를 모두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군데 생각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니 세상 일을 바로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세상일을 속담으로 표현해내고 있으니, 촌철살인, 그야말로 재밌게 읽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런 글쓰기, 지금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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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전기 - 세계 사랑을 위하여
엘리자베스 영 브륄 지음, 홍원표 옮김 / 인간사랑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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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온 지도 꽤 오래되었고, 그의 거의 모든 저서가 번역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물론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있다. 그러나 그의 주요 저작들은 이미 다 번역되었다고 봐야 한다.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정신의 삶과 같은 책들을 우리는 한글로 읽을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아렌트는 영어보다도 독일어로 사유하고, 독일어로 글을 썼다고 봐야 하는데, 그의 사상들이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이 될 때도 많은 과정을 거쳤을텐데, 이 저작들이 다시 한글로 번역이 될 때 우리는 아렌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나 하는 의문.

 

워낙 고대 그리스 사상부터 로마, 그리고 중세, 또 칸트, 헤겔에 맑스에 이르기까지 사상의 편력이 다양한 사람이라서 어느 한 면으로 아렌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학문 풍토에서 이들 서양철학자들을 전면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서양철학에 서양정치사상사까지 훑은 학자는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공부가 아니라 그 정도는 공부해두어야 아렌트 사상의 핵심을 이해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하여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는 읽는 나 자신의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에, 한글로 된 책을 읽으면서도 글자는 한글이되, 그 글자들이 모여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렌트 전기도 마찬가지다. 전기문이라서 쉽게 생각하고 덤벼든 것이 우선 잘못이었다. 우리는 전기문을 학생들에게 권할 정도로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하지 않나. 그냥 그 사람의 일생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접어든 이 책은 우선 분량에서부터 주눅들게 했다. 아니 무슨 책이 이렇게 두꺼워.

 

여기에 만만치 않은 가격. 이렇게 비싼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책에 매겨진 값만큼은 읽고서 남겨야 하지 않나 하는 부담감. 전기문을 집어들었는데, 가격과 분량에서 우선 부담을 지니고 들어갔으니...

 

내용도 만만치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 읽기가 힘들다. 이건 전기문이 아니다. 굳이 전기문이라고 한다면 출생에서 죽음까지 다루었다는, 전기문의 시간적 형식을 갖추었다는 점에서만 전기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기문 중에 평전이라고 하면 된다.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 전기문.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평전과 또 전기문과 자서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아렌트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일생에 대해 알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그것은 실수다. 곧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망설이게 된다. 끝까지 읽을 것인가, 중간에 그만둘 것인가?

 

전기문이라고 하기보다는 아렌트 사상 해설서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이 전기문 자체가 아렌트 사상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고, 아렌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러한 사상을 지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렌트 사상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나온다. 따라서 아렌트의 책을 미리 읽지 않았다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니, 읽었다고 하더라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것은 아렌트 자신의 해설도 아니고, 아렌트의 책을 읽은 우리들의 해설도 아니고, 이 전기문을 쓴 영-브륄의 해설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읽으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해내었다는 마음. 그런 마음이 든다. 정치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은 도전해볼 만한 책이다.

 

나는 여기서 아렌트의 삶이 사회 전반의 문제에서 인간의 문제, 그리고 사유의 문제로 계속 더욱 정교하게 발전되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직접 자신이 겪었던 무시무시한 세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나타난다면, 그 세계에서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인간의 조건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다면 세계속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이 정신의 삶. 즉 사유-의지-판단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아렌트는 결국 무국적자였다는 생각. 무국적자였기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관찰하는 사람에 가까웠고, 관찰하는 사람이었기에, 사유-의지-판단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런 고민이 결실을 맺었으면 우리가 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기문이 아니라, 철학사상서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이 두꺼운 책은, 끊임없이 우리의 머리를 괴롭힌다. 제발 생각 좀 하라고. 그냥 따라 읽지 말라고. 네 생각을 정립하면서 따라오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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